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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약자-113화 (113/251)

00113  결혼식  =========================================================================

"라마스에게 얘기를 듣긴 했지만 성격이 독특하시군요. 예, 짐작하신 데로 제가 이렇게 온 건 부탁드린 일이 어떻게 됐는지 알고 싶어서입니다. 제가 들은 바로는 그녀가 이동마법진을 통과하지 않았다고 들어서요."

엔드는 지금 가장 최악의 상황까지 생각을 하고 있었다. 태상이 악마에게 여왕을 빼앗겼다는 생각 말이다. 라마스의 계약자라기에 믿었건만 아무래도 자신이 잘못 생각한 듯싶었다.

엔드는 라마스에게서 태상의 능력에 대해 듣고, 여왕의 일을 어쩌면 그가 해결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긴 했지만 가능성이 크다고는 생각하지 않고 있었다.

태상은 엔드의 물음에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아~ 그거 빼앗길 바에야 죽이라고 해서 죽였는데.”

“예?”

엔드는 잠시 자신이 잘못 들었다 생각했다.

분명 카반에게 모든 설명을 들었을 텐데, 그는 마치 지나가는 하급 악마를 죽인 것 마냥 말하고 있었으니 당연했다. 엔드는 그 어떤 천사도 해내지 못했던 일을 태상이 정말 해냈다고 생각할 수가 없었다.

“정말 그녀를 죽였습니까?”

태상이 고개를 끄덕였다. 엔드는 확인하는 질문을 한 번 더 했음에도 불구하고 다시 한 번 물었다.

“그녀의 숨이 확실히 끊어졌음을 확인하신 겁니까? 재생 하지 않았고요? 혹시 얘기를 듣지 못하신 거라면...”

태상이 그의 말을 끊고 말했다.

“죽이니까 가루가 돼서 사라지더라. 흔적도 없이 먼지처럼.”

"....먼지로 말입니까?"

“먼지가 돼서 흩어졌는데도 여왕이 다시 살아 날 수 있다면 지금쯤 어딘가에서 살아 있을 수도 있겠지. 근데 내가 생각했을 때, 그렇게까지 살아남고 싶어 하진 않더라고.”

“.........”

엔드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태상의 말을 사실로 받아들여야 하는 건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엔드는 좀 더 확실한 증거가 필요했다. 그렇지 않고서는 믿을 수가 없었다.

“확인할 수 있는 다른 증거는 없겠습니까?”

엔드가 계속해서 귀찮게 하자 태상이 싸늘한 어조로 말했다.

“너희들 능력이 부족해서 죽이지도 못하고 가둬만 두던 여자를 너흴 위해서 죽여줬어. 그런데 지금 물에 빠진 거 구해놨더니 보따리 내놓으라는 건가?”

사실 여왕에게서 받을 보상 때문에 한 일이었지만 그 사정은 쏙 빼고 말하는 태상이었다. 엔드는 태상의 말 때문에 꿀 먹은 벙어리처럼 아무런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어찌됐던 당신이 미션을 줄 때, 악마에게 빼앗길 바에는 그냥 죽이라고 했으니 난 일을 제대로 한 거야. 안 그래? 그럼 이제 일을 시켰으면 대가를 줘야겠지?”

태상이 손을 내밀었다. 엔드가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본래 그에게 줄 보상은 별 볼일 없는 것이었다. 헌데 그가 난이도를 무시하는 어마어마한 일을 해버렸다. 누구도 하지 못했던, 본인 스스로도 못하는 여왕의 생명을 끊는 일을 말이다.

그 정도 공이라면 그가 태상에게 주려 했던 보상은 턱없이 부족했다. 일단 엔드는 표정관리를 하며 알겠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허공에 손을 뻗자, 그 손 위에 악마의 심장이 나타났다. 엔드가 옆에 있던 카반에게 그것을 내밀며 말했다.

“카반, 이걸 보상으로 주도록.”

“예.”

카반이 엔드에게 심장을 받아 든 후 태상에게 악마의 심장을 건넸다. 그러자 엔드가 태상에게 설명했다.

“C등급 악마의 심장입니다. 라마스에게 건네서 점수로 바꾸시면 충분한 보상이 될 듯싶습니다.”

겉으로는 단순히 여왕을 데리고 이동마법진으로 가는 간단한 미션이었으니, 속사정을 모르는 사람이 본다면 C등급 악마의 심장이 과한 보상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태상은 그가 자신의 능력을 통해 여왕을 죽이려 했음을 알았기에 C등급 악마의 심장이 적절한 보상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는 지금 천사들의 오랜 골칫덩어리를 없애 준 거였다.

태상은 카반이 준 C등급 악마의 심장을 바닥에 떨어트렸다.

카반이 놀라 태상을 바라봤다. 엔드도 그의 행동을 똑똑히 봤기에 말했다.

“뭔가 불만이라도 있으신 겁니까?”

“이렇게 눈 가리고 아웅 할 생각인가?”

아무 것도 모르는 계약자였으면 놈에게 감사하다며 감지덕지 했겠지만 태상은 그럴 이유도, 성격도 되질 못했다.

“그 정도 미션에 C등급 악마의 심장이면 충분하다고 생각했습니다만....”

“정말 그렇게 생각해? 근데 난 왜 자꾸 호구가 된 것 같을까?”

‘역시 여왕이 한 말이 맞네.’

천사들은 정말 계약자들을 일회용 도구로 보고 있었다. 계약자들은 그런 것도 모르고, 미션과 점수에 홀려 그들의 머슴노릇을 하고 있고 말이다.

“무엇이 불만이신지 얘기해주실 수 있으십니까?”

엔드가 그에게 물었다. 태상은 피식 웃었다.

“그걸 지금 몰라서 묻는 건가?”

“..보상이 마음에 들지 않으셨나보군요.”

“당연하지. 고작 그런 보상을 받겠다고 내가 그 여자한테 능력을 쓴 것 같아?”

“제가 좀 더 신경을 써드리지 못해 죄송합니다. 원하시는 보상이 있으신가요?”

엔드는 절대 감정적으로 얘기하지 않았다. 어떻게 보면 차갑다 볼 수 있었다. 하지만 갑자기 당황스러운 일을 당했을 때, 이성적으로 문제를 볼 수 있다는 좋은 효과가 있었다.

“당신 스스로가 적절했다고 여길 정도의 보상을 원해.”

“글쎄요....”

엔드가 선뜻 답을 하지 않았다. 지금 그는 태상이 얼마를 원하고 있는 건지 감을 잡고 있는 것일 것이다. 태상은 일부러 자신이 원하는 것을 구체적으로 그에게 얘기하지 않았다.

만약 지금 태상이 무엇을 달라고 말을 한다면 이번 보상은 그 이상의 것을 받을 수가 없을 것이다. 자신 스스로가 충분한 보상을 받지 못하도록 갇히게 하는 꼴이 되는 것이다.

엔드가 한참 생각하다가 말했다.

“태상님께서 원하시는 보상일지 모르겠으나, 이걸 드려볼까 합니다.”

엔드가 다시 손을 공중에 뻗었다. 그러자 그의 손에서 물건 하나가 튀어나왔다.

“축복의 오르골입니다. 이걸 사용하시면 언제 어디서든 축복을 받으실 수 있습니다. 일회용이 아니기 때문에 높은 점수를 벌어야 구매하실 수 있는 제품입니다. 이 정도면 태상님의 마음에 흡족하실 거라 생각합니다.”

엔드는 축복의 오르골이 좋은 것이라는 걸 열심히 설명했으나 태상의 마음에는 차지 않았다. 저런 걸 내어 놓는다는 것 자체가 아직도 자신을 얕잡아 보고 있다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내가 바라는 보상은 아닌 것 같은데?”

“죄송합니다만 어떤 식으로 보상을 받길 원하시는 지 알 수 있겠습니까? 태상님이 원하시는 게 뭔지 구체적으로 알아야 제가 드릴 수 있을 것 같아서요.”

“구체적으로라.......”

일부러 놈이 태상의 마음에 차지 않는 걸 보여준 것이 분명했다. 해서 이렇게 태상이 먼저 보상을 털어 놓게 할 생각일 것이다. 천사들은 늘 계약자들을 존중해주는 척 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가 않았다.

“좋아, 당신이 상황파악을 못하는 것 같으니까 내가 직접 원하는 걸 얘기하지. 난 A등급 악마의 심장을 주길 바라.”

“A등급 악마의 심장이요?”

엔드는 그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냐며 그럴 수 없다 단호하게 말했다.

“결코 태상님의 노고를 무시하는 게 아니지만, 그건 제가 해드릴 수 없는 보상입니다. 태상님께서 악마의 심장으로 보상을 받고 싶어 하시는 것 같으니, B등급 악마의 심장으로 하는 게 어떻겠습니까?”

엔드가 자연스럽게 조정을 했다. 이 정도면 태상도 고개를 끄덕이리라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태상은 그럴 생각이 없었다.

“그거 참 마음에 안 드는 소리네. 여왕이 어떤 존재인지 서로 잘 알잖아. 내가 결코 과한 보상을 원하는 게 아니라는 걸 알 텐데?”

“.......”

엔드의 표정이 살짝 일그러졌다.

‘라마스가 너무 오냐오냐 키웠군.’

엔드는 속으로 그렇게 중얼거렸다. 어차피 심장이야 다시 라마스를 통해 돌아 올 것이니 상관은 없었다.

하지만......

엔드는 잠시 고민하다가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B등급 악마의 심장 두 개를 드리겠습니다.”

엔드가 마지막이란 생각으로 제안을 했다. 이게 그가 해줄 수 있는 마지막 선이었다. 태상이 어림없다는 듯 또 다시 말했다.

“계산 잘해. B등급 악마의 심장 4개 아니면 A등급 악마의 심장 1개야. 둘 중 선택해. A등급 악마의 심장을 받아야 했을 일이었어. B등급 두 개로 퉁치는 건 말이 안 되지.”

“......”

엔드가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그들의 대화를 듣던 혜연이 툭 하니 끼어들어 말했다.

“일을 시켰으면 그만한 대가를 줘야지, 이건 완전히 사기잖아 사기. 만약 이 미션을 받지 않고 함께 싸웠으면 미션이 이렇게 실패하지 않았을지도 모르는데.”

혜연의 말을 똑똑히 들은 엔드는 자신이 태상이 건 조건에 선택을 할 수밖에 없다는 걸 깨달았다. 결국 그는 A등급 악마의 심장 대신 B등급 악마의 심장 4개를 태상에게 건네야 했다. 그 사이에 3개로 하면 어떻겠냐는 카반의 노력은 묵살당하고 말았다.

“다음에 또 봐요, 계약자 아가씨.”

카반이 혜연에게 윙크를 했다. 혜연은 별 이상한 놈을 다 보겠다는 듯 흥! 하고 고개를 돌렸다.

사실 태상에겐 A등급 악마의 심장을 받는 것보다 B등급 악마의 심장 여러 개를 받는 게 더 필요했다. 여왕이 알려준 악마의 심장을 섭취해 볼 생각인데 처음부터 A등급 악마의 심장으로 하는 건 부담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B등급 악마의 심장 4개를 얻은 것은 태상에게 아주 흡족한 결말이었다.

천계로 돌아 온 태상은 일행에게 심장을 하나씩 나누어주었다.

“잘 간직해둬. 천사들한테 넘기지 말고. 나중에 여왕의 말대로 되는지 확인해 볼 생각이니까.”

"너 혼자서 얻은 건데 왜 우리한테 주려고 해."

사로나가 고개를 저었다. 혜연도 받지 않으려는 듯 그에게 악마의 심장을 다시 내어놓으려 했다. 하지만 태상이 단호하게 말했다.

"내가 얘기 했잖아. 다 함께 강해질 거라고. 나 혼자서 강해지는 건 의미 없어. 내가 몸이 여러 개도 아니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정해져 있다고. 그러니까 너희들이 강해지는 게 나한테도 좋은 거다."

“전 악마의 심장이 필요 없으니 아이라양이 써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카살라가 자신의 몫을 아이라에게 넘기겠다며 아이라에게 건넸다. (그녀는 정말로 말했던 것처럼 그들이 되돌아 올 때까지 꼼짝도 않고 길드 건물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계약자가 아니라 천사이기에 악마의 심장을 섭취할 필요가 없었다.

아니, 일반적인 천사였다면 가능했겠지만 그의 몸은 천사의 심장을 통해 새롭게 만들어진 몸이었다. 그러니 악마의 심장을 섣불리 사용하려 했다가 부작용이 생길 수 있었다. 그렇기에 자신의 몫을 그녀에게 넘긴 것이다.

“제가요?! 제가 뭘 했다고 이걸 받아요! 전 괜찮아요.”

아이라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녀가 길드에 들어 온 것은 이런 것들을 원해서가 아니었다. 하지만 카살라는 정말 괜찮다며 그녀의 부담스러워하는 마음을 덜기 위해 계속해서 그녀에게 악마의 심장을 내밀었다.

그렇게 한동안 보상 분배에 서로 대화를 나누던 일행은 곧 각자 접속을 끊었다. 태상 또한 라마스가 부재중이었기에 카살라에게 피로도 회복을 받은 후 접속을 끊으려다가 잠시 멈춰야 했다. 그의 목걸이가 반짝였기 때문이다. 그에게 온 연락이었다.

[태상아!]

"반?"

연락을 한 이는 바로 반이었다.

"무슨 일이야?"

[어~ 혹시 너 지금 시간 있나 해서. 우리가 이번에 기가막힌 미션 하나 잡았는데, 원래 우리 길드만 가려다가 네놈 생각이 나서 말이다.]

다른 때 같았으면 그의 말에 당장 반색하며 좋다고 했을 것이다. 미션을 하나 하긴 했지만 싸움을 길게 했던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오늘은 그럴 수가 없었다.

"음....지금은 안 될 것같아."

[아 그래? 거참, 난이도 높은 미션이라 네 녀석이 있음 참 든든하겠다고 생각했는데 말이야. 어쩔 수 없지. 알았다. 다음에 보자고.]

태상이 안 된다고 하자 반이 쿨하게 알겠다고 말했다. 태상은 그의 그런 성격이 마음에 들어 피식 웃음을 지었다.

일행 모두가 이미 접속을 끊은 상태였다. 오늘 더 이상 아무런 일이 없을 거라는 걸 잘 알았기 때문이다.

그건 바로 태상이 지금 악마의 심장을 곧장 취하는 것보다 중요한 일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바로, 드디어 태상의 결혼식이 있는 날이었기 때문이다.

태상이 서둘러 접속을 끊었다. 그를 기다리고 있는 송이를 보기 위해서였다.

============================ 작품 후기 ============================

코멘을 보고 설명을 덧붙였습니다.

지적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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