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94 여왕 =========================================================================
태상이 소식이 없이 늦자 혜연이 야호를 끌어안고 그를 찾으러 나왔다. 야호는 그녀의 품에 쏙 들어갈 정도로 작은 몸집을 하고 있어 혜연이 충분히 들 수 있었다.
혜연이 그를 찾은 지 얼마 되지 않아, 그녀는 반 일행과 함께 있는 태상을 발견할 수 있었다. 하지만 혜연은 태상의 모습을 보자마자 미간을 찌푸렸다. 레베카가 태상의 한쪽 팔에 팔짱을 낀 채 그와 대화를 나누고 있었기 때문이다.
태상은 그녀의 그런 행동을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고 있었다.
혜연은 레베카와 헤어졌던 그날을 아직도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기에 그녀의 그런 변화가 무척이나 거슬렸다. 저 여자애가 임자 있다고 밝힌 태상을 또 다시 건드리고 있는 게 분명했다. 우리 순진한 태상님은 그것도 모르고 당하고 계신 것이고 말이다.
저 계집의 불손한 태도에 대해서는 사로나에게 이미 들은 그녀다.
혜연은 사모님을 위해서라도 저 계집에게서 태상을 벗어나게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혜연이 빠르게 걸어 가 태상을 불렀다.
“태상님.”
“아, 왔어?”
레베카가 혜연이 나타나자마자 얼굴을 찌푸렸다. 하지만 그 얼굴을 눈치 챈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녀의 표정이 순식간에 평소와 다름없이 펴졌기 때문이다.
“안 오셔서 찾으러왔는데...”
“오, 그 아가씨군.”
반이 혜연에게 아는 척 인사를 했다. 이를 무시 할 수 없었기에 혜연이 고개를 숙여 그의 인사를 받았다. 하지만 혜연은 레베카가 태상의 팔에 감히 팔짱을 끼었다는 것에 정신이 팔려 그의 인사를 무척이나 대충 받았다.
“계속 여기 계셨던 거에요?”
“응.”
혜연은 레베카가 잡지 않은 다른 쪽 팔을 덥석 잡고 그를 살짝 잡아당겼다.
“이제 그만 돌아오셔야 해요. 준비해야 하니까.”
평소라면 절대 이런 식으로 그의 몸에 손을 대며 부르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레베카가 무척이나 신경 쓰였다. 그래서 그녀가 태상을 저렇게 잡고 있는 것을 가만히 보아줄 수가 없었다. 그때, 레베카가 꼭 붙잡은 그의 팔을 힘주어 잡아 당겼다. 태상의 시선이 자신에게로 오자 배시시 웃으며 애교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안 가시면 안 돼요? 저희랑 같이 다녀요.”
태상은 레베카의 투정에 피식 웃었다. 늘 그의 앞에서는 순진한 모습만 보였기에 이런 그녀답지 않은 애교에 웃음이 나왔던 것이다. 하지만 그건 그것이고, 일은 일이었다.
태상은 그들과 함께 할 수 없는 분명한 이유가 있었기에 고개를 저었다.
“이미 계획한 게 있어서 그럴 수 없어. 나중에 미션 끝나면 회포나 풀자.”
태상이 그녀의 팔을 매끄럽게 빼냈다. 너무 순식간이었던 터라 레베카는 정신을 차려보니 그의 팔을 잃은 후였다. 레베카는 그것이 못내 안타까운지 손을 움찔거렸지만 끝내 그에게 뻗지는 못했다.
“그럼 이만 가볼게.”
“그래, 다음에 또 보자고!”
반이 손을 흔들어주었다. 레베카는 그가 가버리는 것에 크게 실망했지만, 티를 내지 않으려 노력했다. 만약 그랬다면 반이 레베카에게 또 다시 한 소리를 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날, 레베카는 생각지 못한 태상의 결혼 얘기에 패닉이 되어 뛰쳐나왔다. 그때, 반은 그녀를 따라 나와 마음을 최대한 빨리 접도록 그녀를 설득했다. 레베카는 한참을 펑펑 울다가 그의 말에 알겠다며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한쪽의 일방적인 짝사랑이었으니 이 억울함을 어디에도 호소할 곳이 없었다. 속으로 삼키는 일밖엔 말이다. 반은 그녀의 말을 믿겠다며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때때로 그녀를 감시하듯 쳐다보는 그의 시선을 느꼈던 레베카다.
해서 레베카는 반에게 자신의 마음을 접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그를 예전처럼 아니 오히려 더 친근하게 대했다.
그래야 진짜 자신이 마음을 접었다고 오해 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오히려 그를 대면대면하게 대하는 게 아직도 그를 마음에 품고 있다는 걸 알리게 하는 꼴이었다. 그의 결혼 사실이 자신에겐 아무것도 아니라는 걸 보여주어야 했다.
혜연이 종종 걸음으로 서둘러 가자며 태상을 재촉하고 있었다. 그 때문에 레베카의 눈동자가 가늘어졌다. 도대체 그가 결혼을 한다는 여자는 누구일까? 레베카가 가장 억울했던 것은 그에게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는 점이었다.
무언가를 해봤다가 이렇게 실연을 당한 거라면 좀 덜 억울했을 것이다.
그녀의 마음속에 태상에 대한 미련이 아직 남아 있다는 것을 혜연은 귀신같이 알아차린 모양이었다. 그녀에게서 태상을 저리도 급하게 빼앗아 가는 걸 보니 말이다.
혜연은 걸어가다가 힐끗 뒤를 돌아 레베카가 있는 곳을 응시했다. 그녀는 다른 곳에 시선을 옮기지 않고 태상의 뒷모습을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역시 빼내오길 잘했어.’
사실 태상이 이렇게 급하게 움직일 이유가 없었다. 하지만 레베카의 모습이 심상치가 않았다. 그녀는 앞으로 저 여자를 최대한 태상이 만나지 못하도록 해야 겠다고 다짐했다.
“준비 다 끝냈어?”
태상이 일행이 있는 곳으로 들어가자 물었다. 사로나와 카살라 둘 사이에서 맴돌던 아주 기나긴 침묵이 사라지고, 태상의 목소리가 끼어든 것이다.
카살라가 태상의 질문에 답했다.
“네, 끝냈습니다.”
“물약 다들 잘 챙겼지?”
“응.”
태상이 모두 확인을 하자 만족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곧 모두가 기대하고 있는, 마계습격 미션이 시작 될 것이다.
계약자들의 얼굴에 긴장이 맴돌았다. 자주 있는 전투지만, 시작할 땐 늘 긴장이 된다. 아니, 긴장을 해야 살아남을 수 있었다. 호랑이 굴에 들어가도 정신만 똑바로 차리면 살 수 있다는 속담이 있듯, 이곳에선 반드시 정신을 똑바로 차려야 한다.
그래야 허무하게 목숨을 잃지 않을 수 있고, 부상도 막을 수 있었다.
[계약자 분들께 알립니다. 곧 미션이 시작 됩니다. 모두 밖으로 나와 부대를 정렬해주십시오.]
그때, 귓가에 쏙 들어와 박히는 목소리가 있었다.
이제 곧 미션이 시작되니 밖으로 나오라는 말이었다. 태상과 일행들이 모두 막사 밖으로 이동했다.
긴 줄이 이어져 있었다.
그리고 베이라의 옆으로 천사 한 명이 흰 날개를 펄럭이며 서 있었다. 인원이 많아 이동 마법진 같은 것으로 이동하기에 무리가 있어서 높은 등급의 천사가 이동시켜 주려는 모양이었다. 베이라에게 모든 이들의 시선이 꽂혔다.
그녀는 그 시선들이 부담스럽기도 할 텐데, 그런 내색 하나 하지 않고 태연하게 그리고 강한 기운을 담아 말했다.
[이제부터 우리는 마계를 정벌하러 가게 될 것 입니다!]
그녀의 목소리는 멀리 있는 계약자들의 귀에까지 모두 똑똑히 들렸다. 마치 마이크를 사용하는 듯 한 느낌이 들었다.
[앞으로 가게 될 마계에는 수많은 악마들이 저희들의 앞을 막을 것입니다. 분명 쉽지 않은 여정이 될 테죠. 하지만 저는 우리가 승리할 것을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저희들은 이길 겁니다. 이기기 위해 시작하는 여정입니다. 모두 다 함께 승리를 이룹시다!!]
와아아아아~!!
계약자들이 무기를 들어 올리고, 환호했다.
베이라는 흡족한 듯 웃었고, 천사에게 고개를 끄덕여 신호를 주었다.
둥! 둥! 둥! 북소리가 울렸다. 그리고 천사는 날개를 활짝 펼치며 그곳에 있는 이들을 모두 한 거번에 마계로 이동시켰다.
태상이 눈을 감고, 다시 떴을 때 그들은 천계가 아닌 마계에 서 있었다.
마계에 도착하자 계약자들이 달리기 시작했다. 그들의 앞에는 하늘에 닿을 듯 높게 올라가 있는 탑이 하나 있었다. 그리고 그 주위에는 F, E등급 악마들이 탑을 지키고 있었다.
계약자들은 망설이지 않았다.
각자 무기를 꺼내들고 우루루 악마들을 사냥하기 시작했다. 그들 모두 B등급 이상의 계약자들이었던 지라 F등급이나 E등급 악마들은 순식간에 죽일 충분한 능력이 됐다.
콰아앙!!
거대한 폭발이 일어났다. 그 쪽으로 시선을 돌리자 나이트 레드가 악마들 속으로 들어가 마음껏 날뛰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나머지 계약자들은 나이트 레드를 따라 계속해서 쭉쭉 악마들을 몰아 붙였다.
태상은 다른 계약자들처럼 달리지 않았다. 사로나와 혜연 그리고 카살라와 함께 베이라가 있는 곳으로 움직였다.
정예 멤버는 총 15명이었다.
그들도 달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미리 말했다시피 그들이 움직이는 방향은 정면이 아니라 오른쪽으로 치우쳐 있었다. 그들은 우측으로 빙 돌아가 옆을 칠 것이다. 다른 악마들이 정면에 신경을 쓰느라 방심한 사이에 말이다.
하지만 악마들을 아예 만나지 않은 건 아니었다.
자리에 남아 지키고 있든, 아직 채 소식을 듣지 못해 가지 않았던 악마들도 있었다. 그런 잔여물들은 정예 멤버들의 길을 막을 수가 없었다. 거의 3~5초 사이로 바닥을 뒹굴어야 했다.
태상이 무력화를 쓸 필요도 없었다. 초반에는 F, E등급 악마들이었기에 그랬다. 하지만 탑 가까이로 다가가면 다가갈수록 달리는 것이 아닌, 조심스럽게 기척을 숨기고 움직여야 했다. 왜냐면 더 이상 악마들이 호락호락한 놈들이 있는 게 아니었기 때문이다.
특히 탑 안으로 들어가는 문을 지키는 문지기들이 가장 큰 문제였다.
다른 악마들은 갑작스러운 습격을 막으러 거의 대부분 빠진 모양인데, 그놈들은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들의 모습은 마치 케로베로스를 연상시켰다. 석상이라 오해할 만큼 돌과 똑같은 색을 한 강아지 두 마리가 뾰족뾰족한 바늘이 돋아나 있는 꼬리를 흔들며 굳게 닫혀 있는 문을 수호하고 있었다.
“몇 등급짜리죠?”
“적어도 C등급은 되는 것 같은데?”
개를 연상시킨다고 덩치가 정말 개처럼 작은 건 아니다. 한 마리도 아니고, 두 마리가 함께 있다는 것 자체가 일행을 주춤하게 만들었다.
베이라가 태상을 바라보며 물었다.
“할 수 있겠어?”
그녀의 물음은 저놈들에게 무력화를 사용해 달라는 뜻이었다. 최대한 은밀하게 들어가야 했기 때문에, 그의 무력화가 필요했다.
그냥 막 치고 들어가는 거였으면 그들이 한꺼번에 덮치면 놈을 쉽게 제압할 수 있긴 했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다른 악마들의 시선을 끌 확률이 높았다. 그리고 옆에 좀 더 쉬운 방법으로 놈들을 상대할 수 있게 해주는 태상이 있는데, 써먹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고민할 필요도 없어. 가자고.”
태상이 말하자 베이라가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부터 쭉 뚫고, 여왕이 있는 곳까지 올라갑니다. 쉬지 않을 거니까 힐러는 버프 돌려주세요.”
모든 버프를 완벽하게 받자, 태상이 앞쪽에 섰다. 그가 무력화를 사용하면 나머지 이들이 악마를 없애 줄 것이다. 베이라가 태상의 옆에서 그를 보호하기로 했다. 하지만 사실 그녀의 보호는 그다지 필요가 없었다.
그녀는 태상에 대해 한 가지 오해를 하는 부분이 있었다.
그의 실력이 무력화가 다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아니, 솔직히 그 무력화 하나만 있어도 그는 충분히 뛰어났다. 능력 자체가 워낙 사기적이라서 그의 공격력이 주목받지 못하고, 빛을 잃은 것이다.
태상과 베이라가 신호를 하고, 달리기 시작했다. 케로베로스 두 마리가 왕왕 하고 짖으며 그들을 향해 거대한 이빨을 드러냈다.
"감히 천사 계약자들 따위가 여기가 어디라고 오느냐!!!"
하지만 누구도 놈의 말에 겁을 먹지 않았다. 태상이 케로베로스에게 무력화를 건 후, 마나건으로 놈의 미간을 향해 쏘았다.
탕!! 탕! 탕!!
방어력이 낮아진 놈이 태상의 마나건을 버텨낼 수 있을 리가 없었다. C등급 악마인 케로베로스가 허무하게도 태상이 쏜 마나건에 직결타를 맞아 쓰러졌다. 하지만 아직 놈은 꿈틀거렸다. 즉사는 면한 것이다.
물론 그 숨통이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베이라의 화염에 순식간에 재가 되어 사라진 것이다. 다른 한 마리도 마찬가지였다. 놈은 그렇게 오랫동안 그들의 길을 막아내지 못했다.
그녀가 바닥에 떨어진 악마의 심장을 주워들어 챙기고 있을 무렵, 막스는 두 악마가 지키고 있던 거대한 문을 힘으로 열고 있었다. 끼이이이익--!! 하는 요란한 소리와 함께 거대한 문이 밀리고, 그 안의 모습이 드러났다.
“으윽. 역겨워.”
누군가가 안을 본 뒤 소감을 얘기했다. 그리고 다른 이들이 모두 그의 의견에 전적으로 동의했다. 왜냐면 그 안에는 박쥐처럼 천장에서부터 죽 늘어진 끈적끈적한 막들이 잔뜩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더욱이 들어오자마자 맡아지는 역한 냄새가 그들의 코를 찌르르하게 울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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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베칼...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어느덧 선작 3천의 고비가..!! (감격!)
선작 3천 되면 기념으로 그날도 3연참을 감히 약속해봅니다.
선작, 추천, 코멘, 후원쿠폰 정말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