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92 여왕 =========================================================================
태상이 반응을 하긴 했으나, 솔직히 누군가를 위한 이벤트는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었다. 누군가가 자신을 위해 하는 것이 당연했기 때문이다. 혜연이 사로나의 의견을 듣고 말했다.
“이벤트만 하면 서운하죠. 이벤트에 선물까지 있으면 금상첨화일 거에요.”
“한 번도 해본 적 없어.”
태상은 자긴 못한다며 고개를 저었다.
그런 이상한 짓을 나더러 하라고? 절대 못한다.
“에이~ 말도 안 돼요. 그럼 프러포즈는 어떻게 하셨는데요.”
“......”
프러포즈?
태상은 무언가 띵한 기분이 들었다. 그의 표정을 본 혜연이 설마...? 하는 생각으로 물었다.
“그 표정은 어쩐지....설마 사모님이랑 결혼하실 때 프러포즈를 안 하신 거에요?”
당연히 하지 않았다. 왜냐면 그는 송이와 결혼식을 올린 적이 없으니까.
혜연은 그건 좀 아니라며 이번 기회에 제대로 프러포즈를 다시 해보는 게 어떻겠느냐 말했다.
"프러포즈는 여자들이 제일 기대하는 거라고요. 그걸 안 하셨다니...사모님이 많이 서운하셨을 거에요!"
태상은 입술을 깨물었다. 무언가 새로운 탈출구를 발견한 느낌이 들었다. 프러포즈라....그녀는 아마 결혼할 때 이명진에게 그것을 받았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 자신의 아내가 되기로 했으니 자신에게 다시 프러포즈를 받는게 맞았다.
“왜 그 생각을 못했지?”
태상이 호응을 하자 혜연이 적극적으로 얘기했다.
그녀는 자신이 마치 이벤트의 주인공인 것처럼 설레어했다.
“이벤트는 어떤 느낌으로 준비할까요?”
“아니, 그냥 이벤트 말고 아예 다른 걸 할 거야.”
태상이 그녀가 설레어 하는 마음을 허무해지게 만드는 말을 했다.
“다른 걸 한다고요?”
“결혼식. 결혼식을 올릴 거거든.”
프러포즈도 해야 하긴 하지만 가장 큰 이벤트는 결혼식이 될 것이다.
그리고 그게 송이와 태상의 시작이 될 것이다.
강태상으로 송이를 만나는 첫 시작 말이다. 혜연은 결혼식이라는 말에 당황스러워했다. 태상은 늘 그녀를 이렇게 당황하게 만든다.
갑자기 뜬금없이 결혼식이라니....
왜 올렸던 결혼식을 왜 또 올린단 말인가. 하지만 태상에게는 그녀와 진짜 함께 살기 위해서 그 절차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결혼식을 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서로 함께 평생을 살 것을 약속하는 절차였다.
태상은 자신의 결혼식은 많은 이들의 축복 속에, 화려하게 이뤄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런 결혼식은 혜연이 맡아서 하기엔 무리가 있었다.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하지, 아마추어가 하기엔 태상의 눈을 만족시킬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 일은 내가 알아서 할게. 의견 줘서 고맙다.”
태상의 얼굴이 처음으로 밝아졌다. 오늘 들어왔을 때부터 쭉 표정이 좋지 않았기에 걱정이 많았던 혜연은 안도의 숨을 쉬었다.
“제가 뭔가 도와드릴만한 게 없을까요?”
“아니, 이건 가족이 해야 하는 일이니까.”
결혼식까지 그녀가 신경 쓴다는 건 말이 되질 않았다. 그녀에게 뭘 어떻게 해야 해줘야 할지 몰랐는데, 이젠 알 것 같았다. 그러니 절로 기분이 풀렸다.
한편으로는 송이가 자신과의 결혼식을 동의해 줄 것인지 걱정이 됐다.
'아니, 지금 그런 걸 걱정하고 있을 순 없지.'
그와 그녀에겐 아이가 있다. 송이는 아이를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그가 아는 송이라면 말이다. 그러니 그녀는 결국 자신에게로 되돌아 올 것이다.
더 이상 그녀가 이명진에 대해 신경을 쓰지 못하도록 그도 곧 처리를 할 것이고 말이다.
태상이 생각을 정리하고 있을 무렵, 길드건물 문을 똑똑 두드리는 노크소리가 들렸다. 사로나, 태상, 그리고 혜연이 서로 얼굴을 쳐다보며 어리둥절해 했다.
“누구지?”
“아! 카살라가 온 걸지도 몰라요.”
카살라는 잠시 일이 있다며 자리를 비웠다. 흔치 않은 일이었다. 늘 길드건물을 지키던 카살라에게 볼 일이 생겼다는 것은 말이다. 하지만 굳이 무슨 일인지 캐묻지는 않았다.
그래서 회의를 할 때 그가 없었던 거였다. 그는 대부분 일행들이 하는 일에 따라다니기만 했기에 회의에 참석하는 것에 자유로웠다. 태상도 그에게 반드시 참석하라는 말은 하지 않았다.
그가 계약자가 아니라 천사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들의 예상과는 달리 카살라가 문을 두드리고 노크한 게 아니었다. 아니, 애초부터 카살라가 돌아 온 거였다면 그냥 문을 열고 들어왔지, 노크를 할 이유가 없었다. 문을 열고 들어 온 것은 뜻밖에도 반가운 사람들이었다.
“반! 레베카!”
“이야~ 오랜만이다.”
"안녕하세요."
태상이 반가움에 문 쪽으로 다가가 들어 온 사람을 반겼다. 반과 레베케가가 그의 앞에 서 있었다. 둘만 온 것인지 다니엘이나 안나는 보이지 않았다.
“아니, 여긴 어떻게 온 거야?”
전혀 연락을 받은 게 없었기에 이런 갑작스러운 방문에 놀랄 수밖에 없었다. 태상이 언제든지 오라며 그에게 말을 한 적은 있었다. 그런데 진짜 이렇게 올 줄 몰랐다. 반은 서프라이즈로 온 거라며 그에게 털털하게 웃어보였다. 레베카는 종종걸음으로 들어와 태상을 빤히 바라보며 인사했다.
그녀의 시선이 어쩐지 초롱초롱하게 반짝이고 있었다.
“오랜만에 봬요.”
“어 그래, 레베카. 잘 지냈어?”
“네에...”
레베카의 얼굴에 수줍은 미소가 피어올랐다. 사로나는 레베카와 만난 적이 있었기에 그녀가 태상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잘 알았다. 방금 전까지 아내와 다시 결혼식을 올리겠다고 말하고 있었는데, 레베카가 들어오니 절로 눈살이 찌푸려졌다.
이건 좀 아니라는 생각이 든 것이다.
태상이 레베카의 마음을 아는 건지 모르는 건지 잘 모르겠기에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있긴 하지만, 저렇게 계속 혼자 마음을 키워가도록 내버려 두는 건 좋지 않다고 생각했다.
“안으로 들어오시죠.”
“앉아.”
사로나가 말하자 태상도 그들에게 자리를 권했다. 레베카와 반이 의자에 앉자 혜연이 익숙하게 차를 한 잔씩 타왔다.
“이야~ 제법 태가 나네 이제. 레베카가 하도 널 보러 오자고 난리를 피워서 이렇게 갑자기 왔다. 어찌나 때를 쓰던지, 내가 두 손 두 발 다 들고 왔어.”
“제, 제가 언제요!”
반의 말에 레베카가 물고기처럼 팔짝 뛰었다. 그녀의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아, 안 그랬어요..."
안 그랬다고 주장하는 것치곤 무척이나 목소리가 작았다. 거짓말을 하고 있는 티가 팍팍 났고 말이다. 그녀는 힐끗거리며 태상의 눈치를 봤다. 정작 그는 반의 말을 대수롭지 않게 넘겨버렸지만 말이다.
레베카가 말을 돌리고 싶었는지 말했다.
“요즘 계약자들 사이로 T.P길드가 유명해요. 불카누스 길드랑 동맹 맺으셨다면서요. 축하드려요.”
“필요한 게 있으면 말만 하라고. 뭐든 다 도와줄 테니까 말이야. 난 솔직히 네가 새로운 길드를 만든다고 했을 때, 이렇게까지 해낼 수 있을 거라고 생각 못했었거든. 정말 난 놈은 난 놈이다. 처음에 봤을 때에도 여간 놈은 아니라고 생각하긴 했는데 말이야.”
반은 태상에게 참 대단하다며 엄지를 척 하니 들어올렸다.
처음에 태상이 길드를 만든다고 했었을 때, 차라리 멘 땅에 헤딩을 하는 게 더 지혜로운 결정이라고 생각 했었다. 그런데 태상은 혼자서 대형 길드와 동맹을 얻어냈다. 그게 얼마나 대단한 일인지 반은 아주 잘 알았다.
지금도 그리 많은 건 아니었지만 처음에 그가 길드를 만든다고 했을 땐, 사로나와 태상 둘 뿐이었다. 2인 길드라니, 말도 안 되는 소리다. 결국 길드가 망해서 자신에게로 올 지도 모른다 생각했던 반이다.
그런데 그는 어느덧 새로운 길드원 혜연과 카살라를 더 들이기까지 했다.
초보자도 아니고, 제대로 된 계약자들을 데려오는 게 신통방통했다.
아마 태상의 길드는 앞으로도 계속, 이렇게 인원을 늘려가게 될 것이다. 다른 대형 길드도 더 이상 그들을 건드리지 못할 테니 날개를 단 꼴이다. 대형길드 불카누스와 동맹인데다가 또 다른 대형 길드인 카와 길드와도 동맹을 맺은 상태였다.
아직 카와길드와의 동맹 사실은 널리 퍼지지 않은 상황이었다. 불카누스 길드와 동맹을 맺었다는 소식을 들은 반이 다짜고짜 태상에게 연락을 넣고, 어떻게 우리랑 먼저 동맹을 맺을 생각을 안 하고, 불카누스랑 했냐며 투정 같은 화를 냈기 때문이다.
덕분에 반의 길드인 카와 길드와도 동맹을 맺게 된 T.P다.
아무리 신생길드라 해도 두 대형 길드와 동맹을 맺은 T.P 길드를 건드릴 멍청한 놈은 없을 것이다. 요즘 떠오르고 있는 T.P길드의 길드원이 꼴랑 네 명밖에 안 된다는 걸 알게 되면 얼마나 황당할까.
아마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말라며 농으로 생각할 것이다.
고작 네 명밖에 안 되는 길드가 대형 길드와 동맹을 맺는다는 건 말이 되질 않으니 당연한 오해였다.
“저희랑도 동맹 맺었으니까, 좀 더 자주 봬요. 자주 만나지 못해서 많이 서운했어요.”
레베카가 용기있게 말하긴 했으나 무척이나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녀의 얼굴은 여전히 빨갛게 달아 올라 있었다. 태상은 그녀의 모습이 귀여웠는지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래. 그러자.”
레베카의 얼굴이 더욱 더 붉어졌다. 그녀는 고개를 푹 숙이고 그의 손길에 기뻐했다. 심장이 쿵쿵 뛰고, 표정관리를 하고 싶었는데 잘 되지가 않는다. 자꾸만 웃음이 세어 나오는 것이다.
이를 본 사로나가 태상에게 말했다. 그녀의 말은 이 상황에서 전혀 어울리지 않는 화제였다. 하지만 그녀가 이 얘기를 하는 것은 다른 이유가 있었다.
“결혼식 하는 거, 날짜 정해지면 얘기해줘. 나도 참석할게.”
“너도?”
태상은 사로나의 다른 목적을 몰라하는 건지, 모르는척 하는 건지 알 수 없는 얼굴로 대답했다.
“아이라가 널 무척 보고 싶어 해. 다시 한 번 한국 여행을 가보고 싶다고도 하고. 겸사 네 결혼식도 참석하면 좋을 것 같아서.”
“멋진 생각이에요! 그런데 결혼식은 사모님께 비밀로 하실 건가요?”
혜연이 손뼉을 짝! 하고 치며 말했다. 그러자 반과 레베카가 어리둥절한 얼굴을 하고 물었다.
“음? 이게 무슨 소리야?”
“결혼이라니요? 누가요?”
레베카의 눈동자가 불안한 듯 떨리고 있었다. 태상은 그를 알지 못한 채 대수롭지 않게 머리를 긁적였다.
“아아, 여러모로 복잡한 일이 있어서, 일이 그렇게 됐어.”
“여러모로 복잡한 일로 결혼을 한다는 소리가 도대체 뭔 소리야. 결혼을 하는 거면 하는 거고, 안 하는 거면 안 하는 거지.”
"저 원래 결혼 했었어요. 유부남"
태상의 말에 반이 헉 하고 슬쩍 레베카의 눈치를 살폈다.
레베카가 태상을 무척 좋아하고 있다는 것을 반도 잘 알고 있었다. 모르는 게 이상했다. 레베카는 자주 그에 대해 얘기하곤 했으니 말이다. 그를 말할 때 레베카의 표정에 활기가 돌았다.
그러니 모를 수야 없는 것이다.
이렇게 온 것도 정말 그녀가 자꾸만 가자고 가자고 졸라 대서 온 거였다. 혼자서 가라고 하니까 그건 또 창피해서 그럴 수가 없다고 바득바득 조르던 레베카였다.
애초부터 그가 올려봐선 안 되는 나무일 줄 어떻게 알았겠는가. 레베카는 태상의 결혼 소식에 고개를 푹 숙인 채 표정을 보이지 않고 있었다. 차마 밖으로 드러낼 수가 없는 것이리라.
아마 아주 크게 충격을 받았을 것이다. 반은 일이 골치 아프게 됐다고 생각하며 한숨을 쉬었다. 아마 한동안 이 진실을 받아들이기 위해 레베카가 고생을 좀 할 듯 싶었다.
사로나는 레베카의 마음이 더 깊게 빠지기 전에 진실을 알리기 위해 그런 말을 한 거였다. 더 이상 그에게 마음을 주지 말라는 충고였다.
레베카가 과연 잘 알아 들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태상은 예전부터 결혼을 했었어요. 이번에 임신을 한 아내를 위해 이벤트 겸으로 결혼식을 다시 올린다고 하더라고요.”
사로나가 쐐기를 박듯이 말했다.
이 정도면 아마 레베카는 태상에 대한 마음을 차곡차곡 접어버릴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이런,이런...”
반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이마를 짚었다.
분위기가 묘하게 돌아가자 태상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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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우우우우우우천! 다음편은 곧 올라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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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월희님// 피는 체력물약을 마셨기 때문에 상처를 대충 회복시키고 사라진 거인지라 핏자국으로 추적을 하지 못했습니다. ㅎㅎ
많은 분들이 추척 기능 있던 그 시계를 말씀하시던데 그건 악마계약자는 불가능합니다. 제가 그부분은 생각지 못해 안 적어 놨는데, 수정하겠습니다! 그랬다면 천사계약자들이랑 악마계약자들이 다 그 시계를 갖고 인간계에서 서로 죽이려고 할 테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