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계약자-88화 (88/251)

00088  태상vs명진  =========================================================================

하지만 정작 몇 걸음 가지 못해서 그는 몸을 숨겨야 했다. 갑자기 엘리베이터가 열리고 사람들이 쏟아져 나왔던 것이다. 태상은 서둘러 명진의 몸을 이리저리 구겨 자신의 뒤에 숨기고, 나타난 불청객을 보았다.

‘이런.’

절로 한숨이 튀어나온다. 그렇게 도망치라고 했건만 이곳에 나타난 것이다. 세연과 송이가 말이다.

세연과 송이 그리고 그녀들의 주변에 서 있던 경호원들이 바닥에 묻어 있는 흥건한 핏자국에 놀라  머뭇댔다.

그녀들의 안색이 무척이나 창백했다. 아마도 너무 놀라 그런 것이리라.

그냥 봐도 현기증이 날 텐데, 저 피가 태상의 것일지도 모르기에 받은 충격은 더욱 컸다. 태상을 구하기 위해 서둘러 온 것일 것이다. 그런데 정작 태상과 명진은 사라지고, 핏자국만 흥건하게 남아 있으니 놀랄 만도 했다.

하지만 의도는 좋으나 태상에게는 그저 방해 밖에 되질 않는다. 송이 앞에 엉망이 된 명진을 보이면 어떻게 되겠는가. 가뜩이나 놀란 그녀는 아마 기절할 지도 모른다. 지금 명진의 몰골은 여린 사람이 보면 기절할만한 충분한 몰골이었다.

그리고 엄마가 발견한다면 죽이지 말라 할 것도 같았다. 그녀는 여전히 태상의 몸뚱이에 미련이 남아 있을 테니 말이다.

그러나 태상은 명진을 살려 보낼 생각이 전혀 없었다. 그를 계속 살려두었다가 나중에 후환이 될 것 같았다. 그러니 저들의 앞에 나설 수가 없는 것이다.

“지금 다들 뭐하고 서 있는 거야? 빨리 찾아. 내 아들 당장 내 눈앞으로 데리고 와!”

세연이 비명을 지르듯 소리 쳤다. 그녀의 목소리를 듣고 경호원들이 사방으로 움직였다. 세연이 이마를 부여잡고 휘청거리자 송이가 서둘러 그녀의 몸을 부축했다.

“괜찮으세요!?”

“흐윽...흑흑...분명 그놈일 거야! 그놈이 우리 태상이를 죽이려고 수작질을 했겠지. 심하게 다쳤으면 어떡하죠? 겨우 다시 만났는데 이렇게 잃을 순 없어! 내가 망설이는 게 아니었는데....”

이 모든 게 다 자신 탓 같았다. 하지만 어떤 엄마가 선뜻 자식을 죽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그 안에 든 것은 다른 사람일지 몰라도, 겉모습은 여전히 자신이 낳고 애지중지 기른 아이였다. 그래서 선뜻 죽이라고 할 수가 없었다.

방법이 없다면 결국은 그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고집했던 지난날의 자신이 너무 후회스러웠다. 고작 몸뚱이 때문에, 자식을 잃을 줄 누가 알았겠는가.

세연이 송이의 품에서 펑펑 눈물을 흘렸다.

송이는 왜 명진을 태상이라고 부르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걸 묻기엔 그녀가 너무 서럽게 울었다. 그러니 눈치 없게 지금 상황에서 그녀에게 왜 그를 태상이라고 부르는지 물을 수가 없었다. 해서 송이는 마냥 그녀를 다독이로 위로할 수밖에 없었다.

그녀는 지금 무척 얼떨떨한 상태였다.

그가 위험하다고 말을 하자 세연의 얼굴이 자신과 비슷하게 창백해졌다. 그러더니 지금은 이렇게 오열을 하고, 송이보다 훨씬 더 그를 걱정하고 있었다. 마치 그녀가 진짜 엄마라도 되는 것 마냥 말이다.

몇 분 전 약속시간에 늦은 송이에게 한 소리 하려 했던 세연은, 송이의 몰골을 보자 그럴 수가 없었다.

그녀의 머리가 산발이 되어 있었고, 안색도 창백했기 때문이다. 얼마나 급하게 달려왔는지 숨도 굉장히 거칠었다. 더욱이 그녀는 세연을 보자마자 바닥에 쓰러지며 말했다.

‘명진이가 위험해요. 도와주세요!’

그녀가 말하는 명진이 그녀의 아들 태상임을 어찌 모르겠는가. 그 말을 들은 세연의 안색도 송이처럼 창백해지는 데에는 그리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경호원들을 서둘러 부르고, 내려가자 바닥에 뿌려져 있는 피에 세연의 마음이 무너져 내렸다.

태상이 보이질 않는다. 그는 어쩌면 이미 잘못 됐을 지도 몰랐다.

그런 안 좋은 생각만이 그녀의 머릿속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태상은 경호원들이 점점 자신이 있는 곳으로 좁혀 들어오자 일단 명진을 숨겨두고 몸을 움직였다. 그는 기절을 한 듯 몸이 축 늘어졌기에 잠시 동안이면 혼자 둬도 괜찮을 것 같았다.

경호원 한 명이 자신을 발견한 듯 눈을 크게 떴다. 하지만 그는 다른 이들에게 그 사실을 알릴 수가 없었다. 태상이 번개같이 움직여 경호원의 목을 내려치고, 다른 손으로는 그의 입을 막아 바닥에 쓰러트렸기 때문이다.

“으읍!”

경호원이 꿈틀거렸다. 태상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목 내려치면 원래 기절하는 거 아닌가?’

그동안 그가 보아 왔던 것이 순 뻥인 건지, 아니면 그가 잘못 내려 친 것인지 경호원은 여전히 고통 속에서 허우적대고 있었다.

결국 그는 다시 한 번 목을 내리쳐 그를 기절시켜야 했다. 아마도 깨어나게 되면 꽤나 고생을 할 듯싶었다. 첫 번째는 힘 조절을 했지만, 두 번째에는 아주 약간만 힘 조절 하고 내려쳤기 때문이다.

경호원 하나를 쓰러트리니, 다른 놈이 소란한 소리를 들은 것인지 달려왔다. 주차장의 안 좋은 점은 소리가 울린다는 점이었다.

“저기다!”

그를 발견하고 달려온 경호원이 하필이면 소리를 치며 왔다. 해서 숨어서 조용히 처리하고 움직이려 했던 태상의 계획은 물 건너가고 말았다. 흩어져 있던 경호원들이 태상을 향해 달려갔다.

아무래도 그를 명진으로 착각하는 듯 했다. 경호원 두 명이 그를 공격했다. 하긴, 피투성이가 된 사람을 피해자라고 생각하지, 멀쩡한 모습으로 서 있는 그를 피해자로 생각할 순 없었을 것이다.

세연은 소란이 들리는 곳으로 가봐야겠다며 움직였다. 송이가 위험하다고 말리려 했지만 그녀는 고집불통이었다. 말보다 몸이 먼저 나갔기에, 송이도 결국 그녀를 따라 움직여야 했다. 사실 그녀도 그가 걱정됐기 때문이다.

태상이 경호원들을 때려눕히고 있었다. 세연은 또 다시 비명을 지르듯 소리쳤다.

“지금 이게 무슨 짓이야!!! 당장 멈춰!!!!”

그녀의 목소리가 쩌렁쩌렁하게 울려 퍼졌다. 경호원이 놀라 몸을 움츠리자 세연이 태상에게로 달려가 그를 끌어안았다.

“태상아!!”

“아 엄마 진짜....하아...”

태상이 손을 축 늘어트리고 한숨을 쉬었다.

경호원은 이게 무슨 일인가 싶어 어정쩡하게 서 있었다. 그리고 자신들이 사람을 잘 못 봐도 한참 잘 못 봤다는 것도 깨달았다.

“흑흑...엄마가 미안해...흑...흐윽....어디 다친 데 없어?”

세연이 간신히 그친 울음을 또 다시 터트렸다. 우는 엄마한테 도대체 왜 이렇게 일을 크게 만드냐며 화를 낼 수가 없어 태상이 말했다.

“내가 도망가라고 얘기했는데 여긴 왜 왔어? 엄만 아들을 그렇게 못 믿어?”

자초지정을 설명했을 송이가 떠올라 물었다.

“송이는?”

“나 여기 있어. 괜..찮은 거야?”

송이는 이상한 일을 겪었던 것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분명 엄청난 바람이 불었었다. 그 바람은 일반적인 바람이 아니었다.

태상이 그녀의 몸을 단단히 붙들어 준 덕분에 휩쓸리지 않았던 거지, 자동차가 바람에 들썩거릴 정도였다. 더욱이 흥건한 핏자국도 있었기에 당연히 그가 당했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녀의 걱정과는 달리 태상은 멀쩡한 모습이었다. 다친 곳도 보이질 않았다.

그 두렵고 무서운 힘을 가진 남자한테서, 어떻게 저렇게 멀쩡한 모습을 하고 있을 수 있는지 무척이나 궁금했다.

더욱이 그는 세연을 ‘엄마’라고 부르기 주저하지 않았다. 송이는 그와 함께 자라오면서 그의 많은 것을 알고 있다 생각했지만, 어쩌면 그를 가장 모르는 사람은 자신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송이가 태상에게로 다가왔다. 그녀의 눈동자에 깃든 혼란을 본 태상은 이 일이 마무리 되면 그녀에게 모든 사실을 말해주어야 할 것 같다 생각했다.

그녀가 많은 것들을 궁금해 하고 있을 거라는 걸 어찌 모르겠는가.

“건물 밖에서 기다리고 있어. 곧 갈게.”

세연이 불안했는지 그의 팔을 잡아왔다. 그녀가 뭐라 하기 전에 태상이 재빨리 다시 말했다.

“아직 못 끝낸 일이 있어서 그래.”

“그러고 보니, 그놈은 어디 간 거니? 설마 도망쳤니? 그놈을 잡아서 절대 가만두지 않을 거야!!”

태상은 그녀의 질문에 답하지 않았다. 대신 어정쩡하게 쓰러진 동료들을 챙기고 있는 경호원들에게 말했다.

“경호원들은 자기 동료 알아서 챙기시고 퇴근하세요. 오늘 수고비는 나중에 넉넉히 챙겨 드릴 테니까.”

태상이 경호원들에게 말했다. 자신들이 엉뚱한 사람을 제압하려 했던 실수를 묻어주겠다는 뜻이었기에 그들은 곧장 고개를 숙이고 사라졌다.

그들 중 저 피가 도대체 누구의 것인지 묻는 이는 없었다. 경호원들이 지켜야 하는 조건 중에, 호위 시에 생긴 일들에 대한 철저한 보안이 있었기 때문이다.

“엄마도 빨리 송이랑 같이 올라가 있어. 내가 무사한 거 봤으면 됐잖아. 금방 갈게.”

태상이 단호하게 말했다. 세연이 그냥 같이 가면 안 되겠냐고 물으려 했으나 입 밖으로 내뱉지는 못했다. 그녀는 지금 태상이 짓고 있는 표정을 잘 알았다. 저런 표정을 할 땐 어떤 부탁도, 어떤 말도 승낙을 받아낼 수 없었다.

세연은 오랜 세월동안 그를 보아오면서 그걸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세연이 포기를 하자 송이도 그녀를 따라 얌전히 움직일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겨우 사람들을 모두 보내고, 태상이 서둘러 명진을 놔둔 곳으로 움직였다.

“젠장!”

하지만 그곳에 도착한 태상이 와락 얼굴을 구겼다. 명진이 그곳에 없었기 때문이다. 솔직히 그가 도망을 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긴 했다. 생각지 못하게 세연과 송이를 보내는데 시간이 너무 많이 걸렸다.

사지를 분질러놨기에 도망쳐도 금방 잡을 수 있단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놈의 기척을 주변에서 찾아 볼 수가 없었다. 더욱이 그의 시선을 끄는 게 있었다. 바로 바닥에 떨어져 있는 유리병들이었다.

태상이 떨어져 있는 유리병 하나를 주워들었다. 그 유리병의 모양새가 굉장히 익숙했다.

“설마 체력물약?”

성한 곳이 하나도 없을 게 분명한 놈이 어떻게 도망을 쳤나 했더니 물약을 갖고 있었던 듯 했다. 능력은 그렇다 쳐도 그곳의 물건까지 이곳에 가져 올 수 있을 줄은 몰랐다.

이 물약이라면 완치는 아니더라도 몸을 가누고 도망을 칠 수 있을 정도는 되었을 것이다. 한 개도 아니고 네 병이나 바닥에 뒹굴고 있었다.

아마 각각 두 팔과 두 다리에 사용했을 것이다.

놈이 사람들 사이로 숨는다면 그로서는 아무것도 할 수 있는 일이 없어지진다. 이목이 집중되어진 곳에서는 그를 죽일 수가 없지 않겠는가.

태상은 결국 명진의 뒤를 쫓는 것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이곳이 시골도 아니고, 사람이 많기로 유명한 곳이니 방법이 없었다. 다음 기회를 노리는 수밖에 말이다.

태상은 일단 핸드폰을 꺼내 강회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할아버지, 통화 가능해?”

[어, 그래. 무슨 일인 게냐.]

강회장이 해주어야 할 일이 있었다. 바로 명진을 찾아주는 것이었다.

“오늘 이명진이 송이랑 날 습격했어.”

태상이 먼저 자초지정을 설명했다. 강회장은 생각지 못한 말에 놀랐으나 차분하게 물었다.

[그래서 어찌 했냐.]

“기절한 줄 알고, 방심했는데 그 사이 도망을 가버렸어. 그냥 놔두면 분명 화가 될 놈이야. 할아버지가 좀 도와줘.”

사람을 찾는 것은 강회장에게 그리 어렵지 않은 일이 될 것이다. 그랬기에 태상이 그에게 부탁을 한 것이다.

[뭘 해줬으면 좋겠느냐.]

“당연한 걸 묻네. 모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이명진 그놈을 좀 찾아줘. 어디에 있는지만 알려주면 돼. 아마 이 녀석 오늘부터 몸을 꽁꽁 숨길 거야.”

[그 녀석이 본 모습을 드러냈다면, 나머지는 내게 맡겨도 된다.]

강회장은 충분히 깔끔하게 놈을 없앨 수 있었다.

자신의 사람을 푼다면, 놈이 어디로 도망갔는지 위치를 알아내는 것도 순식간이다. 하지만 태상은 고개를 저으며 강회장을 막았다. 놈은 능력을 사용할 수 있다. 그것도 바람이라는 제법 위험한 능력을 말이다.

일반인이 감당해낼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오직 태상만이 놈을 끝낼 수 있었다.

그러니 강회장에게 그런 일을 맡길 생각이 없었다. 아니, 맡겨선 안 되는 일이었다.

============================ 작품 후기 ============================

다음편은 17분에 올라옵니다.

fls1님 후원 감사합니다!

이명진을 깔끔하게 끝내지 못해 죄송합니다. ㅜㅜ

쟨 아직 할 일이 남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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