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계약자-75화 (75/251)

00075  타락천사  =========================================================================

“라마스가 헛말을 한 건 아니었네.”

하지만 괴물들은 그렇다 쳐도 아직 어린 야호가 악마를 혼자 상대할 수 있을지는 확신할 수가 없었다. 녀석이 혹여 자신의 힘을 과신하고 덤볐다가 큰 코를 다칠 수 있지 않은가.

시체들을 밟고, 피하며 지나쳐 움직인 일행은 캬오오! 하고 우는 야호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태상은 소리를 눈치 채자마자 달리기 시작했다. 사로나와 혜연이 그의 뒤를 서둘러 뒤따랐다.

목소리가 들린 곳에 도착하자 펼쳐진 장면은 피투성이가 된 야호가 무언가를 물고 있는 광경이었다. 녀석은 무언가를 입에 문 채 싸우고 있었다. 하지만 그 싸움은 거진 막바지였다. 야호가 놈의 목을 잡은 채로 흔들다가 벽에 던졌다.

쿵!!

정체를 알 수 없는 그것이 벽에 부딪혀 그대로 바닥에 쓰러졌다. 숨이 끊어진 건가 생각했으나 놈은 옅게 꿈틀거리며 미동을 하고 있었다. 야호도 그것을 눈치 채고 못 마땅한 듯 다시 놈에게 달려가 날카로운 이빨로 놈의 목을 물었다.

태상은 야호의 몸에 묻은 피가 녀석의 것이라 잠깐 오해했으나 아니라는 것을 곧 깨달았다. 야호는 태상을 보자마자 꼬리를 흔들었다. 완전히 승리한 모양인지 표정이 꽤나 득의양양했다.

놈은 입에 문 정체모를 것의 숨통을 완전히 끊어 놓으려는 모양이었다. 놈에게 물린 것의 핏방울이 바닥을 향해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그 피가 웅덩이를 만들 때쯤, 결국 숨이 끊어졌는지 몸이 축 늘어졌다.

그것을 확인한 야호는 신이 나서 태상의 앞으로 달려왔다. 마치 태상에게 이것 좀 보라는 듯 주둥이를 내밀기 까지 했다. 태상은 피범벅이 된 야호를 난감하게 바라봤다. 어쩐지 녀석의 눈동자가 칭찬을 바라는 듯 해보였기 때문이다.

생각 같아선 그래그래 하며 머리라도 쓰다듬어 주고 싶었지만, 꼴이 가관이었기에 손이 가질 않았다.

태상은 녀석의 입에 물린 것을 가리키며 물었다.

“이게 뭐냐?”

그러자 야호가 황당하다는 듯 태상을 봤다. 도대체 이걸 왜 모르냐는 눈빛이었다.

태상은 왜 자신이 야호의 표정을 저토록 잘 읽는지에 대해 나중에 심히 고민해봐야겠다 생각하며 물었다.

“그거 설마 악마냐?”

하지만 악마라기엔 덩치가 너무 작았다. 크기가 작은 악마는 처음 보았기에 태상은 그것이 악마라고 생각할 수가 없었다. 야호는 태상의 설마 하는 생각을 확신으로 바꿔주었다. 녀석이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위 아래로 끄덕였던 것이다.

녀석의 입에 물린 시체에서는 여전히 피가 흐르고 있었기에 흔들리는 광경은 그리 볼 만한 것이 되질 않았다.

“일단 그것 좀 내려놔. 더럽게 그런 걸 왜 물어?”

툭-

야호가 태상의 말에 입에 문 것을 바닥에 내려놓았다. 형체를 알아보기 힘든 악마의 시체였다. 태상은 물끄러미 녀석을 바라보다가 야호에게 물었다.

“얜 악마면서 왜 이렇게 매가리가 없어?”

캬릉!

야호는 여전히 악마가 맞는지 의심하는 태상에게 항의하듯 소리쳤다.

“알았어, 인마. 악마 맞겠지.”

태상은 조금 허무하지만 야호의 활약 덕분에 손 안 대고 코를 푼 격으로 미션을 완수 할 수 있었다. 그리고 마치 녀석은 자신이 악마라는 것을 알리기라도 하듯 보석으로 변해 사라졌다. 야호는 저번에 C등급 악마의 심장을 먹어버린 것에 대한 보상이라는 듯 보석을 손으로 툭 쳐서 태상 쪽으로 밀었다.

“골 때리는 녀석이네.”

태상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혜연은 야호의 피범벅이 된 모습에 울상을 지었다. 흰 털이 가장 큰 매력인데, 녀석의 털이 피로 엉켜서 보기만 해도 절로 눈살을 찌푸리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다 같이 갔으면 이렇게까지 되진 않았을 텐데...”

혜연이 한숨을 깊게 쉬었다. 야호는 그러거나 말거나 이리저리 주변을 돌아다니며 혹여 살아 있는 놈은 없나 경계를 하고 있었다.

“라마스부터 불러야겠네.”

태상이 목걸이를 꺼내 라마스를 불렀다.

라마스는 악마를 죽였다는 것과 천사도 무사히 구출했다는 말을 듣고 공간을 이동에 그들의 앞에 나타났다.

“빨리 끝내셨군요.”

라마스가 주변을 살펴보다가 바닥에 떨어져 있는 악마의 심장을 거둬들였다. 이렇게 빨리 끝낼 수 있었던 건 모두 야호 덕분이었다. 녀석이 길을 안내하지 않았다면 이 커다란 성을 다 뒤지고 있었어야 했을 테니 말이다.

“야호가 한 방에 끝내버렸어.”

“아, 그랬나요? 그래서 혼자서 저렇게 피투성이가 된 거군요.”

라마스는 미소를 지으며 손을 움직였다. 그러자 야호의 몸이 언제 그랬냐는 듯 뽀송뽀송한 상태가 되어 본래의 모습을 되찾았다. 야호는 잠시 놀란 듯 눈을 크게 뜨고 굳었다가 이내 깨끗해진 자신의 몸을 보고 흡족한 듯 날개를 펄럭였다.

“그리고 천사를 구하긴 구했는데....상태가 좀 그래.”

“예? 천사를 구하셨다고요?”

태상은 못 봤냐며 고개를 돌려 천사가 있는 곳을 바라봤다.

“응?”

그런데 당연히 있을 줄 알았던 천사가 그 자리에 없고 텅 비어 있었다. 사로나와 혜연도 모르는 눈치였다. 분명 아까까지만 해도 있었는데, 한 눈을 판 사이에 사라진 듯싶었다.

“분명 아까까지만 해도 있었는데 어디 간 거지?”

“정말 천사가 맞았나요?”

태상은 라마스의 물음에 선뜻 고개를 끄덕일 수가 없었다.

녀석의 생김새가 보통과 달랐기에 그도 이상하다 생각하지 않았는가.

“그게...천사라고 하기엔 좀 이상하긴 했어.”

“천사라고 하기엔 이상하다? 정확히 어떤 게 이상했는지 말씀해주시겠습니까?”

“날개는 천사가 맞는데, 모습은 인간 같았거든.”

“맞아요, 그리고 성별도 있었어요.”

혜연이 말을 덧붙였다.

“성별이요?”

혜연의 말에 라마스가 얼굴을 찌푸렸다. 그는 심각해져 다시 한 번 물었다.

“정말 성별이 있었습니까?”

“응. 근데 그게 중요한 건가? 이상하다고 생각하긴 했는데, 어쨌든 날개가 달려있어서 천사라고 생각했거든.”

“예, 아주 중요합니다. 천사에겐 성별이 있을 수 없습니다. 그러니 성별이 생겼다는 건 더 이상 천사가 아니게 됐다는 뜻이 됩니다. 아니, 천사는 천사지만 천사가 아니니 타락한 천사라고 표현하는 게 맞을 것 같군요.”

“천사지만 천사가 아니라고? 그게 무슨 두루뭉술한 말이야?”

본래 천사라는 것은 인간에게 신의 뜻을 전달하는 자를 가리킨다. 그리고 그것 외에도 선함을 상징하기도 하고 말이다. 하지만 태상이 알기론 그들의 생김새가 그저 천사처럼 생기고, 악마처럼 생겼기에 우리들에게 그렇게 불리는 것뿐이라고 알고 있었다.

라마스도 그래서 자신을 소개 할 때 ‘저희들은 여러분들에게 천사라고 일컬어지고 있는 존재입니다.‘라고 설명했다.

천사 계약자라고 착하고, 선하게 살면서 악마 계약자들을 상대하는 게 아니듯이 천사라고 나쁜 짓 하지 못할 이유가 없었다.

그러니 천사의 상징적인 의미는 그들과는 상관이 없는 것이다. 천사도 이기기 위해 나쁜 짓을 할 수 있었다. 태상은 오히려 그들이 그렇게 해서라도 악마와의 싸움에서 이기길 바랐다. 그러니 악마 계약자와 악마를 죽여 달라고 말하는 이들에게 착하니 뭐니 그런 도덕 얘기를 하는 건 어리석은 짓이었다.

근데 문제는 타락이라는 것의 정의가 올바른 길에서 벗어나 잘못 된 길로 빠지는 것을 말하는 거였다. 누군가를 죽이라 말하고 다니는 천사들이 왜 성별로 ‘타락’을 했다 뭐다 하는 걸까?

“타락 천사가 바로 제가 말씀드렸던 악마에게 물든 상태를 말합니다.”

“악마에게 물든 상태라는 게 정확히 어떤 거야?”

“악마에게 심장을 빼앗긴 거죠. 악마에게 심장이 있듯이 천사에게도 심장이 있습니다. 그 심장은 힘을 의미합니다. 야호가 악마의 심장을 먹고 힘을 얻었듯이 말입니다. 저희들도 악마의 심장을 모아 힘을 축적하고 있습니다. 그 힘을 통해 악마들과 싸우고 말입니다.”

“힘을 축적해서 악마와 싸운다? 그래서 심장을 받고 우리들한테 점수를 준 거구나.”

“네, 맞습니다.”

“근데 심장을 빼앗기면 원래 죽는 거 아니었어? 죽어야 심장이 나오잖아.”

“네, 그 천사는 이미 죽은 겁니다. 그 심장을 통해 악마가 개조를 한 거죠. 그래서 그자는 천사이나 천사이지 않은 겁니다.”

천사의 심장을 개조해서 천사를 상대할 병기를 만든다는 게 무슨 말인지 대충 이해가 됐다.

“근데 병기라고 하기엔 좀 모자라 보이던데? 우릴 봤는데도 공격 안 했고, 오히려 기억이 없어서 혼란스러워 보였어.”

“아마 점점 이성이 사라지고, 본능만 남게 될 겁니다. 그리고 닥치는 대로 공격하겠죠. 타락 천사가 무서운 점은 그자가 천사이기 때문에 천계를 마음껏 돌아다닐 수 있다는 겁니다. 심층부에서 공격을 한다면 많은 이들이 죽게 되겠죠. 그러니 어서 그자를 잡아 그럴 수 없게 해야 합니다.”

라마스는 단호하게 말했다. 그는 타락천사가 반드시 천사들에게 해가 되는 짓을 할거라고 확신했다. 그의 확정적인 말에 일행은 심각해질 수밖에 없었다.

일단 이 이런 일을 저지른 악마는 죽어서 악마의 심장만 남긴 채 사라졌다. 그나마 다행인 일이었다. 더 이상 저런 천사가 생성되지는 않을 거란 뜻이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 천사 한 명이 저지를 수 있는 일은 무궁무진 했다.

태상은 천사들이 전투로 다친 채 널브러져 있던 천계의 모습을 똑똑히 기억한다. 아마 타락천사가 천계에 나타난다 해도 뒤에 달린 날개 때문에 누구도 의심하지 않을 테니, 그런 곳에서 공격을 한다면 천사들은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 있었다.

기껏 골치 아픈 악마를 죽여 놓았는데, 그보다 더 골치 아픈 타락천사가 나타나다니....

의심이 들었을 때 그냥 죽여 버렸거나 아니면 놈이 다른 짓을 하지 못하도록 주시를 했어야 했다. 태상은 뒤늦게 후회를 해야 했다.

“근데 여기서 천사를 어떻게 찾지? 이미 다른 곳으로 이동해버렸으면 골치 아픈데.”

그때, 얌전히 앉아 있던 야호가 천사라는 말에 귀를 쫑긋거리더니 벌떡 일어나 태상에게 다가왔다. 태상은 야호가 왜 그러는지 몰라 고개를 갸웃거렸으나 라마스는 무언가 생각이 난 듯 말했다.

“야호가 찾을 수 있을 지도 모릅니다. 한 번 본 자의 체취는 쉬이 잊지 않으니까요. 더욱이 악마나 천사의 체취는 가장 예민하게 반응합니다.”

그래서 야호가 성에 들어오자마자 악마를 향해 뛰어갈 수 있었던 것이다.

태상이 야호에게 물었다.

“아까 전까지 여기에 있었던 천사가 어디 있는지 알 수 있겠어?”

그의 물음에 야호가 자신 있다는 듯이 목을 쭉 내밀었다. 야호의 행동을 본 태상이 말했다.

“그럼 안내 해. 놈을 잡으러 가자고.”

야호가 일행을 안내하기 위해 앞장 서 움직였다. 이번에도 야호는 자기 발걸음에 맞춰 달려가려 했지만 이번에는 태상이 어림없다는 듯 야호의 꼬리를 잡아 멈춰 세워 그럴 수가 없었다.

“안내하라고 했지 너 혼자 가라고 안 했다. 걸어. 한 번만 더 혼자 마음대로 움직였단 봐.”

태상에게 혼이 난 야호는 축 늘어진 날개를 힘없이 파닥거리며 느릿하게 움직여야 했다.

라마스는 자신이 마계에서 오랫동안 움직이면 악마가 눈치 채고 올 것이기 때문에 자리를 피해 있겠다고 말했다.

“아, 라마스.”

그때, 태상이 갑자기 걷던 걸음을 멈추고 라마스를 불렀다. 다행이 그가 이동하기 전이었기에 그의 부름을 받을 수 있었다.

"예? 무슨 일이십니까."

"하마터면 깜빡할 뻔 했네. 하나만 좀 묻자."

라마스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태상을 바라봤다.

============================ 작품 후기 ============================

이얏! 연참을 받아랏!

추우우우우우천!

부우우우우우탁!

드리이이이이입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