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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약자-74화 (74/251)

00074  타락천사  =========================================================================

“영리한 녀석이니까 괜찮을 거야. 녀석이 간 곳으로 가보자고.”

“뭔가를 발견해서 움직인 거겠지?”

사로나가 걱정스레 물었다.

태상은 아마도 그럴 것이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 않고서야 야호가 갑자기 튀어나갈 이유가 없었으니 말이다. 어디로 가야할지 막막했는데, 녀석이 방향을 제시해준 듯 했다.

야호는 지하로 향했기에 그들도 계단을 타고 아래로 내려갔다. 빛 한 점 없는 어두컴컴한 성안의 모습은 금방이라도 귀신이 튀어나올 것 같은 분위기를 풍겼다.

물론 지금 이 성에는 귀신보다 훨씬 더 무서운 ‘악마’가 있긴 했지만 말이다.

계속 계단을 타고 내려가니 한도 끝도 없어보였다. 분명 야호는 순식간에 사라져버렸는데, 태상은 마치 어디로 간 건지 정확히 아는 듯 망설임 없이 계속해서 내려가고, 또 내려갔다. 알고서 움직이는 건지, 아니면 그냥 보이는 데로 쭉 내려가는 건지 몰랐기에 보다 못한 사로나가 그에게 물었다.

“어디로 갔는지 알고 가는 거야?”

계단 중간 중간에 문이 있었는데, 태상은 그것을 쳐다보지도 않고 지나치고 있었다.

“계속 내려갔어. 그러니까 우리도 계속 내려가면 돼.”

“그걸 어떻게 알아. 저 문들 중에 하나로 들어갔을 지도 모르잖아.”

사로나가 태상의 말에 반박하자 그가 아니라며 설명을 해주었다.

“그 녀석 영리한 거 알잖아. 분명 자기가 들어갔으면 표시를 해뒀을 거야. 가령 문을 저렇게 열어 놓는다던가 하는 식으로 말이야.”

태상이 계단 아랫층을 내려다보다가 희미하게 빛이 흘러나오는 열린 문을 가리켰다.

태상은 아마 저곳으로 야호가 들어갔을 게 분명하다고 생각했다.

"저기로 들어간 게 분명해."

태상이 단호하게 말했다.

녀석이 덩치가 있으니 문을 열어 들어갔다면 저 정도로 열려져 있는 게 맞았다. 일행을 버리면서까지 빠르게 뛰어간 녀석이 예의 바르게 문을 닫아두고 가진 않았을 것이다.

태상이 가리킨 곳으로 들어가자 그들의 앞에 놀라운 광경이 펼쳐져 있었다. 문 사이로 흘러나오던 빛이 어디에서부터 나오는 것인지 궁금했는데, 안으로 들어가자 그 빛의 근원지가 나타났던 것이다..

“세상에...!”

혜연과 사로나는 놀라 소리를 질렀고, 태상은 굳은 표정으로 입을 닫고 바라봤다.

유리로 만들어진 것으로 보이는 투명한 공간 안에 천사가 눈을 감은 채로 잠들어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천사의 모습이 어딘가 좀 이상했다. 마치 인간이 날개를 달고 있는 것 같았다. 천사의 날개에서 뿜어져 나오는 은은한 빛이 그들이 본 빛의 근원지였다.

“천사...맞아?”

사로나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본래 천사는 덩치가 인간보다 훨씬 컸다. 그런데 그들 앞에 있는 천사는 평범한 성인 남자와 다를 바 없는 덩치와 생김새를 갖고 있었다. 더욱이 성별이 없는 걸로 알고 있는 천사의 몸에 없어야 할 것이 달려 있었다. 천사 아랫도리엔 굵직한 성기가 달려 있었던 것이다.

그러니 당연히 천사라기 보단 천사 날개를 달고 있는 인간이라고 말하는 게 맞는 듯 했다.

“야호가 없어.”

사로나가 천사에게서 시선을 떼고 주변을 봤지만 야호를 찾아내지 못했다.

아무래도 이곳을 지나쳐 다른 곳에 간 모양이었다. 천사가 들어 있는 유리관 뒤쪽으로 통로가 눈에 띄었다. 아마도 야호는 천사를 그대로 지나쳐 저곳으로 들어간 모양이었다.

“일단 저 천사가 문제의 그 천사인 것 같으니 구하자고.”

태상의 말에 헤연과 사로나가 고개를 끄덕였다.

유리관 안에는 물로 보이는 이상한 액체가 가득 차 있었다. 천사는 그 속에서 고요히 눈을 감은 채 잠들어 있었다. 태상은 유리를 손으로 똑똑 노크하듯 강도를 확인한 후 마나건으로 유리를 겨눴다.

“다들 뒤로 물러나. 깨질 테니까.”

태상이 경고하고 마나건을 쐈다.

탕!!

쨍그랑!!

마나건 한 방에 유리가 와장창 깨지며 액체와 함께 천사를 밖으로 토해냈다. 천사는 축 늘어진 채로 그대로 밖으로 나와 바닥에 축 늘어진 채로 미동도 하지 않았다. 가까이 다가가려는데 혜연이 태상을 말렸다.

“악마한테 물들었을 지도 몰라요. 조심하세요.”

생김새가 이상했기에 불안한 모양이었다.

태상은 마나건을 손에 쥐고 언제든 무력화를 사용할 수 있게 대비한 뒤 움직였다. 태상이 다가가자 천사의 몸이 꿈틀거리며 조금씩 움직이고 있었다. 깨어나고 있는 게 분명했다.

태상이 쪼그려 앉은 후, 천사의 몸에 손을 가져다대고 흔들었다.

“어이, 정신 좀 차려 봐.”

천사는 계속해서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겉으로 봤을 때엔 그가 악마에게 물들었는지 아닌지를 구분할 수가 없었다. 이대로 계속 내버려 둘 수 없었기에 그에게 물약을 먹여야 할지 말아야 할지 결정해야 했다.

“그러다가 완전히 몸을 회복하고 우릴 공격하면 어쩌려고.”

“계속 이렇게 시간을 끌 순 없어. 그리고 아직 정신이 물들지 않았다면, 구출하는 게 미션이었으니 그를 챙겨야 해.”

그래야 보상 점수를 더 많이 받을 수 있었다.

태상은 사방에 유리가 깔려 있었기에 일단 그의 몸을 번쩍 들어 안전한 곳으로 옮겼다. 그리고 그의 턱을 잡아 입 안으로 체력물약을 넣었다. 다행히 먹을 정신은 있었는지, 천사는 꿀꺽꿀꺽 물약을 모두 마셨다.

물약의 효과가 빠르게 천사의 몸을 휘감았다. 눈꺼풀이 파르르 떨리며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하고, 그의 눈동자가 보이기 시작했다. 태상은 정신을 차린 듯 보이는 천사에게 말했다.

“정신이 좀 들어?”

“......”

천사는 이게 무슨 상황인지 잘 모르겠는지 멍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봤다. 태상은 일단 천사가 자신을 공격하지 않음을 보고 한시름 놓을 수 있었다.

솔직히 다짜고짜 공격을 해올 수도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태상은 일단 상황을 좀 더 지켜보자 생각하며 다시 한 번 물었다.

“네가 누구인지 설명해줄 수 있겠어?”

태상의 말에 천사는 멍한 표정을 지우고 잠시 심각한 고민을 시작했다. 자신이 누구인지 떠올릴 수 있다면 그는 아직 악마에게 물들지 않았다고 볼 수 있었다. 부디 자신이 천사였다는 것을 기억해내길 바랐다.

하지만 그는 끝내 하지 못하겠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왜 설명 할 수가 없지?”

태상이 차분하게 그에게 물었다. 천사는 지금까지 꾹 다물고 있던 입을 처음으로 열어 대답했다.

“...기억이 나질 않습니다.”

“아예 아무 것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거야? 아니면 다른 건 생각나는데 네가 누구인지는 모르겠다는 거야?”

“아무 것도 기억이 나질 않습니다. 당신은 누구십니까? 전 누구죠?”

천사로 추정되는 남자는 무척이나 혼란스러워하는 표정으로 태상에게 말했다.

“네가 누구인지, 뭘 해야 하는지, 어떻게 이곳에 오게 됐는지 아무 것도?”

태상이 다시 한 번 확인하기 위해 물었다. 그러자 천사는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예, 전혀 모르겠습니다.”

그나마 다행인 일이었다. 태상은 그에게 정체를 알려주었다.

“일단 대충 말하자면 넌 천사다. 뭐...겉보기엔 좀 그렇긴 한데 아마도 맞을 거야. 우린 널 구출하기 위해 이곳에 왔어.”

“천사...?”

천사가 다시 처음처럼 멍한 표정을 지었다.

천사는 연신 구출...천사....이 두 마디의 말을 중얼거리며 혼이 빠진 얼굴을 했다.

“음...이거 상태가 영 그러네.”

태상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힐끗 옆을 보니 사로나와 혜연이 난감한 얼굴로 서 있었다.

그녀들이 가까이 다가오지 못하는 것은 천사가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상태로 있었기 때문이다. 천사는 자신이 나체라는 것을 전혀 신경 쓰지 않았기에 더욱 그랬다. 당당하게 드러나 있는 것이 사로나와 혜연을 가까이 다가오지 못하게 만들고 있었다.

만약 그 천사가 태상을 공격했다면 그런 것을 신경 쓸 겨를이 없었지만, 다행히도 천사는 적의를 보이지 않고 있었다.

사로나와 혜연을 위해서라도 그가 걸칠 만한 것을 찾아줘야 했다. 안 그러면 그냥 저 모습 그대로 이곳을 활보하고 다닐 것 같은 불길한 기분이 들었다. 마침 창문에 달려 있는 커튼이 태상의 눈에 들어왔다.

“저기 커튼 좀.”

태상이 말하자 재빨리 혜연이 가서 커튼을 뜯어왔다. 커튼을 이용해서 그의 아랫도리만 가려줘도 지금보단 나을 것 같았다.

“일어날 수 있어?”

“네, 할 수 있습니다.”

천사는 태상의 말에 몸을 벌떡 일으켰다.

태상은 일어난 천사의 허리에 커튼을 빙빙 휘감아 고정시켰다. 천사는 왜 자신에게 이런 걸 해주는 건지 모르겠는지 연신 고개를 갸웃거렸다. 하지만 궁금해 하면서도 태상이 자신에게 해주는 것을 말리지는 않았다.

“나참, 내가 원래 남의 시중 들어주고 막 그런 캐릭터 아닌데....”

천사는 말똥말똥 눈을 깜빡이며 태상을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태상은 그의 시선이 부담스러워 얼굴을 찌푸리며 물었다.

“뭘 그렇게 사람을 빤히 쳐다봐?”

“저는 누구입니까?”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

“절 구출하기 위해 이곳에 오셨다고 하셨습니다. 절 알기 때문에 오신 거 아닙니까?”

충분히 천사가 그렇게 생각할 수 있는 일이긴 했다. 하지만 태상은 정말 그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다.

“그건 이따가 여길 나가서 알려줄게. 나도 천사한테 의뢰받은 거라 아는 게 없거든. 그건 네 동료인 천사들한테 물어봐. 그럼 속 시원하게 대답해줄 테니까. 그리고 이제부터 널 이렇게 만든 놈을 잡으러 갈 거니까 얌전히 따라와. 괜히 나대다가 다치지 말고.”

태상은 천사의 몸 상태가 생각보다 빠르게 괜찮아지고 있다는 것을 눈치 챘기에 더 이상 시간을 지체하지 않고 움직이는 것을 택했다.

야호가 사라진 것이 아까부터 계속 마음에 걸렸기 때문이다.

태상은 아까 봐뒀던 통로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천사는 그의 말을 고분고분하게 잘 들으며 얌전히 그들의 뒤를 따랐다. 아무것도 기억이 나지 않기에 궁금한 게 많을 텐데도 말이다.

통로는 생각보다 굉장히 길었다.

그리고 경사가 있어서 일행은 다시 위층으로 올라가고 있었다. 태상이 계단을 통해 올라왔던 것을 다시 거꾸로 거슬러 올라가고 있는 듯 했다. 아마 이 통로 끝에는 악마가 있을 확률이 높았다.

그리고 그들 일행보다 먼저 앞서서 야호가 이 길을 올라간 게 분명하고 말이다.

한참 통로를 계속해서 걸으며 올라갔을까?

시작이 있듯이 끝이 보이기 시작했다.

태상은 통로 끝에 도착하자 바닥을 흥건하게 적시고 있는 피 웅덩이를 보며 얼굴을 찌푸려야 했다.

바닥에 쓰러져 있는 괴물들의 시체 수가 제법 됐다.

“이게 다....야호가 한 걸까요?”

혜연이 놀라 물었다.

바닥에 있는 시체들의 모습이 굉장히 기괴했다. 마치 키메라를 보는 듯한 기분이 들었던 것이다. 그들의 생김새가 각자 일관성이 없어 더욱 그랬다.

어떤 놈은 늑대같이 생겼는데 코는 돼지코를 달고 있기도 했다.

누가 봐도 서로 팔이 바뀌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놈들도 있었다. 털색이 녹색인데 팔 부분만 빨간색이었으니 말이다.

아무래도 이번 악마는 실험을 좋아하는 놈인 듯 했다. 그래서 천사를 개조하니 뭐니 하는 것일 테고 말이다.

그렇다면 저 천사 날개를 달고 있는 놈도 사실은 천사가 아니라 진짜 인간인데 천사 날개를 달게 된 걸지도 몰랐다.

의심은 되지만 확신은 없었기에 일단 태상은 그 시체들을 지나쳐 걸었다. 전투의 흔적을 보니 야호의 솜씨가 분명했다. 짐승의 것으로 보이는 손톱자국이 벽과 괴물들의 상처에 확연하게 드러나 있었던 것이다.

C등급 악마의 심장을 먹은 보람이 있는 듯 했다. 악마의 심장이 피와 살만 된 줄 알았는데, 이렇게 싸운 흔적을 보니 것도 아닌 듯싶고 말이다.

“야호가 정말 대단하네요.”

“잘 싸우는 걸?”

혜연과 사로나도 괴물 시체들을 보며 감탄했다. 그녀들에겐 그저 보호해주어야 할 귀여운 애완동물에 지나지 않았던 야호가 이런 전투를 할 정도로 강한 녀석이었을 줄이야. 상상도 못한 일이었다.

============================ 작품 후기 ============================

추천 감사합니다.

월요일 시작이네요.

이번주도 부디 잘 부탁드립니다.

선추코 후원쿠폰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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