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55 수련동 =========================================================================
마계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던 주변이 바뀌었다. 그의 주변으로 휭~ 하고 바람이 거세게 불더니 어느새 그의 주변엔 엄청난 수의 물약병들과 장비들이 좌르륵 걸려 있었다. 그 물품들은 끝이 보이지 않는 저 먼 곳까지 계속해서 쭉 이어졌다.
“인간계에서 악마 계약자들의 계획을 훌륭하게 막아 주신 것에 대한 보상입니다. 원하시는 만큼 가져가십시오. 단, 이 모든 물약은 마계에서만 사용할 수 있도록 되어 있습니다.”
태상은 원하는 만큼 가져라가는 말에 화색이 돌았다가 뒤를 이어 하는 라마스의 말에 그를 째려봤다. 기왕 선심 쓰는 거, 제대로 쓸 것이지 쩨쩨하게 이번 S등급 미션에서만 사용하라는 듯 ‘마계’라는 조건을 달았기 때문이다.
덕분에 왕창 가져갈 생각을 하던 태상은 멕이 쭉 빠져버릴 수밖에 없었다.
“뭔가 담을 만한 자루 같은 것 좀 줘봐. 마계에서밖에 사용 못하겠지만, 그래도 네 말대로 마음껏이라도 담아보게.”
태상의 말에 라마스가 얼마든지 그렇게 하라며 자루 하나를 만들어주었다. 태상이 너무 작다며 불평을 하려는데, 라마스가 그의 말을 쏙 들어가게 하는 말을 했다.
“무한의 자루입니다. 원하시는 만큼 다 담으셔도 꽉 차지 않을 겁니다.”
이곳에서야 말도 안 되는 것들이 판을 치니 라마스의 말은 굳이 의심할 필요가 없었다. 태상은 무척이나 흡족해하며 주변에 생겨난 진열대에 있는 물약들을 모조리 자루에 쓸어 담기 시작했다.
그 물약이 무슨 기능을 하는지도 모르면서 마구마구 담는 모습에 라마스가 경고하듯 짧게 말했다.
“마음껏 담으시는 거에 뭐라 하려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신중하게 담으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그 자루, 10시간용이거든요. 그리고 물약도 물론 사용기간이 있습니다.”
“.........”
열심히 자루에 쓸어 담던 태상의 움직임이 우뚝 멈춰 섰다. 그의 말은 이곳에서 잔뜩 쓸어간다 해도 마계에까진 가져갈 수 없단 뜻이었다. 결국 그가 마구잡이로 쓸어 담는 물약들을 다시 쏟고, 진짜 필요한 것들로만 챙기기 시작했다. 20명밖에 갈 수 없기에 많이 쓸어 담는다 해도 들고 갈 수 있는 한계가 있었다.
“이런 것도 있었어?”
태상은 물약을 집어서 무슨 기능을 하는지 살폈다. 그러자 태상은 생각보다 신기하고 쓸모 있어 보이는 것들이 굉장히 많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쿨타임 감소 물약도 있고, 스피드를 빠르게 해주는 물약도 있었다.
눈이 좋아지는 능력, 투명을 감지하는 능력 등등의 다양한 종류의 물약들이었다. 이 물약들을 점수로 환산해 사려 했으면 꽤 많은 점수를 소모 해야 했을 것이다. 속으로 라마스를 욕하며 투덜댔던 태상은 꿍얼거리는 것을 그만뒀다.
그 정도로 물약들의 기능은 그의 마음에 쏙 들었다.
라마스는 태상이 필요한 것을 챙기는 것을 조용히 지켜봤다.
“흐음...”
쓸모 있어 보이는 물약을 넉넉하게 20명 분량으로 챙기자 장비 쪽으로 시선이 돌아갔다.
문제는 저기 있는 장비들이 좋은 건지 안 좋은 건지 알 수가 없다는 점이었다.
태상이 장비를 바라보며 심각하게 서 있자 기다렸다는 듯이 라마스가 날개를 펄럭이며 다가와 한 자루의 마나건과 흑색 갑옷을 그에게 건넸다.
“이게 뭐야?”
태상이 어리둥절해 하며 물었다.
갑옷은 얇은 비늘로 만들어져 있었는데 전신으로 이루어져 있어서 하나만 입어도 몸 전체를 보호 할 수 있어 보였다. 하지만 비늘이 무척 얇아 보였기에 그다지 방어력이 높아 보이진 않았다.
그리고 라마스가 건넨 총도 검정색이었다. 그 때문인지 갑옷과 한 세트인 느낌이 들었다.
“이번 미션에서 큰 활약을 해주셨던 것을 감안하여 제가 특별히 준비해 온 겁니다.”
“특별히?”
“A등급 악마의 애완동물이었던 흑룡의 가죽과 뼈로 만든 마나건과 갑옷입니다. 착용감도 뛰어나고, 무게도 가벼운데 웬만한 공격에도 끄떡없고 절대 찢어지지 않죠. 마나건 또한 무게가 무척 가볍고, 연사 속도가 빠릅니다. 더욱이 가장 좋은 점은 탄환이 무한이라는 점입니다.”
“그럼 계속 쏴도 탄환이 계속 생겨난다는 거야?”
그동안 태상을 가장 귀찮게 했던 것이 바로 총알을 다시 채우는 일이었다. 그 시간동안은 적에게서 완전히 무방비 상태가 되기 때문에 혼자서 미션을 할 때 가장 위험한 순간이 됐다. 그런데 이 마나건을 쓴다면 이제부터 그럴 일이 아예 없어지는 거였다.
사실 갑옷은 받아도 그만 안 받아도 그만이었다.
태상의 능력이 무력화인지라 그는 이곳에서 한 번도 목숨이 오갈 정도의 강한 타격을 받아 본 적이 없었다. 위험할 때 무력화를 사용해 놈의 공격을 0으로 돌려버렸으니 당연했다. 하지만 이런 성능 좋은 마나건은 환영 그 자체였다.
그는 마나건을 당장 손에 쥐고 허공을 향해 총구를 겨눴다. 라마스의 말대로 무거운 마나건을 사용하던 태상에겐 든 것도 같지 않은 가벼운 무게였다.
탕! 탕탕! 탕탕!!
마나건의 연사는 갖고 있던 것보다 훨씬 더 빠르고 매끄럽게 쏘아졌다. 반동도 심하지 않았고 말이다. 하지만 파괴력은 얼마나 될지 알 수가 없었다.
“파괴력은?”
“갖고 계셨던 것보다 3배는 좋으실 겁니다.”
“좋네.”
태상이 만족스러워하자 라마스가 미소를 지었다.
라마스가 S등급 미션에 물품을 지원해주겠다고 하긴 했지만 사실 그에게 건넨 장비가 진정한 보상이라고 할 수 있었다. 이 장비를 받아 낼 수 있었던 것도 모두 라마스가 천계 회의에서 말을 잘 했기 때문이었다.
제대로 태상을 서포트하기로 마음먹은 이상 라마스는 그를 아주 크게 키울 생각이었다. 처음엔 그를 불안하게 만들었지만 어느덧 그에게서 아주 큰 가능성을 본 라마스다. 그가 강해질 가능성이 충분하다면 라마스는 지원을 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A등급 천사인 라마스는 그가 건네주는 C이하의 악마심장에 만족하지 못했다.
“반을 만나봐야겠어.”
태상의 머릿속에 대충 어떻게 싸워야할지 그림을 그리고 있긴 하지만 많은 경험이 있는 반이라면 그에게 더 좋은 방법을 알려줄 수도 있단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내가 생각해봤는데, 이 미션을 성공하려면 내가 강해져야 할 것 같아. 그 수밖엔 없어.”
태상은 이 미션을 성공시킬 수 있는 열쇠가 천사도 아니고, 계약자들도 아니라 바로 자신이라고 생각했다. 그가 ‘무력화’를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이 미션의 난이도는 천차만별이 될 것이다.
100여명은 되어 보이는 악마 계약자들을 상대할 수 있는 것도, A등급 악마 메디노를 잡는 것도 모두 그의 무력화가 통한다면 절대 어렵지 않은 미션이 될 것이다. 아마 20명에 불과하다 해도 말이다.
“어떻게 하면 짧은 시간 안에 강해질 수 있지? 혹시 방법 없어? 이런 장비 업그레이드 말고 내 고유 능력을 강회시키고 싶어.”
라마스는 태상의 말에 선뜻 답을 하지 못했다. 그냥 강해지는 것도 아니고, 짧은 시간 안에 강해져야 한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능력을 강화시키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긴 했다.
가장 쉬운 방법은 점수로 능력치를 올리는 것이고, 어려운 방법은 직접 몸으로 익히며 능력을 강화시키는 거였다. 하지만 태상은 갖고 있는 점수가 현재 없었다. 길드를 만드느라 거의 다 사용해야 했다. 그러니 쉬운 방법은 뒤로 하고, 어려운 방법을 생각해야 한다는 건데 그 방법은 시간이 오래 걸렸다.
그래도 태상이 하겠다고 하면 라마스는 환경을 지원해줄 생각은 있었다.
"점수로 올리는 건 현재 태상님이 갖고 계신 점수가 별로 없기 때문에 불가능합니다. 다른 방법이 하나 있긴 한데....이건 직접 몸으로 익히며 능력을 강화시켜야 하는 거라서 시간이 오래 걸립니다. 태상님이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짧아질 수도 있겠지만요."
"직접 몸으로 익힌다는 건 예전에 나 처음 왔을 때 했었던 괴물 상대하는 거 말하는 거야?"
라마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비슷합니다. 지칭으로는 수련동이라 부르지만 거의 폐관수련과 같은 뜻이라 생각하시면 됩니다. 일정시간이 지나지 않으면 밖으로 나올 수 없게 되어 있으니까요. 수련동에 들어가게 되시면 몬스터가 나오는데, 그들을 상대하며 실력을 쌓으실 수 있습니다. 문제는 수련동이 무척 위험성이 높다는 겁니다. 솔직히 지금은 수련동을 사용해서 강해지는 계약자는 없습니다."
도대체 얼마나 위험하기에 아무도 사용하지 않는다는 건지 궁금했다. 태상이 관심을 보이자 라마스가 이걸 말해줘야 하나 말아야 하나 잠시 고민하다가 입을 열었다.
"그곳은 랜덤적으로 몬스터가 무작위 소환됩니다. 숫자도, 어떤 몬스터가 나올지도 아무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곳은 넓고 둥근 공터뿐이죠. 도망칠 곳이 없다는 겁니다. 물론 그곳에서 죽으면 진짜 죽습니다. 도와줄 사람도, 위험하다고 뒤를 봐줄 이도 없습니다. 오직 자신의 능력만으로 헤쳐나가야 한다는 뜻입니다. 험난한 만큼 수련동을 성공적으로 완수하고 나온 이는 능력이 아주 많이 향상되곤 했습니다."
무작위 숫자로 몬스터가 소환된다. 주변에 있는 거라곤 둥근 공터밖에 없다. 도망칠 곳도, 도와 줄 이도 없다.
태상은 왜 수련동라는 게 없어졌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거기서 죽으면 진짜 죽는 거다. 누가 미친놈도 아니고 강해지겠다고 쉬운 길 두고 어려운 길을 택하려 하겠는가. 강해지는 다른 방법이 없는 것도 아닌데.
"후에는 성공하는 이보다 실패하는 이가 더 많아 거진 폐쇄와 마찬가지가 됐고, 이젠 수련동에 대해 아는 이도 드물어졌습니다."
라마스의 얼굴을 보니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겠냐는 시선이다.
태상이라고 위험하다는데 가고 싶겠는가. 당연히 그도 꺼려졌다. 하지만 그가 지금 강해질 수 있는 방법이 그 것 뿐이라는 것 때문에 선뜻 안 가겠다고 대답을 할 수가 없었다.
나이트 레드가 함께 간다 해도 악마 계약자 100명까지 상대한다는 건 절대 쉽지 않았다.
천사들로 유인을 시켜 몰래 진입한다 치자, A등급 악마가 공격을 받는다는 걸 알게 되면 악마 계약자들이 그들에게로 몰려 들게 뻔했다. 그럼 완전히 독 안에 든 쥐꼴이 될 것이다.
C등급 천사들이 100여명이나 되는 악마 계약자들을 상대할 수 있을까? 태상은 그렇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시간은 좀 끌어 줄지 몰라도 후에는 결국 그들에게 당하고 말 것이다.
악마 계약자들 중에 실력자가 끼어 있다면 그들이 끌 수 있는 시간은 더욱 단축 될 것이다.
그건 좋은 방법이 아니었다.
그러니 지금 이 상황을 모두 타개할 수 있는 건 태상의 '무력화' 능력밖에 없었다.
그가 강해져야 미션을 완수할 수 있는 확률도 올라가고, 일행의 안전도 높아진다. 그러니 결국 태상은 라마스가 알려 준 수련동에 갈 수밖에 없었다.
"반한테 지금 상황을 얘기하고, 곧장 수련동으로 가야겠어."
태상이 결정을 내리자 라마스가 갑자기 손을 움직였다.
그러자 태상의 옷이 아까 전 라마스가 주었던 흑색 비늘 갑옷으로 바뀌어 있었다.
"뭐야?"
"그 갑옷이 도움이 될 겁니다."
태상의 결정이 걱정이 되긴 했지만 그래도 그가 진짜 강해지기 위해선 꼭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더욱이 이렇게 강해지겠다고 의욕을 불 태워주는데 막을 순 없는 노릇 아닌가. 사실 라마스는 이번 일이 아니라 해도 태상에게 수련동을 권유할 생각이었다.
물론 그곳에서 많은 계약자들이 죽은 건 사실이다. 하지만 아예 다 죽은 건 아니었다. 분명 수료한 이가 있었다. 그리고 그곳을 수료한 이들은 천계에서 강자로 손꼽히는 이가 되었다. 라마스는 태상이 그런 이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기 위해선 반드시 수련동을 거쳐야 한다고 생각했다.
생각보다 일찍 말한 감이 없지 않아 있지만 지금까지 태상이 해온 행보를 보았을 때, 지금이 적기일 수도 있었다.
그는 다른 이들보다 출발점이 굉장히 앞서 있다. 그러니 이르다 생각하는 지금임에도 불구하고 죽지 않을 확률이 분명히 있었다.
라마스는 태상이 그곳에서 죽을 확률을 간과하지 않았다. 해서 그를 더욱 확실하게 지원할 생각이었다. 라마스가 날개를 한 번 크게 펄럭였다. 그러자 머리 위에서 갑자기 빛가루들이 휘날리며 내려와 태상의 몸에 내려앉았다. 태상은 자신의 주위에서 꽃가루처럼 흩날리는 빛들에 어리둥절해했다.
물론 라마스가 한 거라는 것을 알았기에 피하지는 않았다. 이게 뭐냐고 태상이 묻기 전에 라마스가 설명을 해주었다.
“축복입니다. 수련동에서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겁니다.”
물약을 먹은 것과 비슷한 효과라고 생각하면 된다고 짧게 설명을 덧붙였다.
태상은 목걸이로 반에게 연락을 넣었다. 반은 잠시 미션을 위해 나와 있다며 급한 용건이 있으면 나중에 얘기하자고 말했다. 태상은 오늘 천사에게 메디노가 있는 곳을 발견했다는 소식을 들었다며 라마스에게서 들은 상황을 설명해주었다.
반은 상황이 심각해 보이자 미션이 끝나면 연락을 다시 줄 테니 만나서 얘기하자고 했지만 태상은 그럴 수 없다며 안 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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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마는 도대체 언제 죽이러 가지? -_-a
cursed님, 후원쿠폰 정말 감사합니다 ^^
달음누리님, 악마가 죽었을 때, 20명이 와서 죽였다고 하면 아~ 저놈이 깝치다가 약해서 뒤졌구나라는 반응을 보이지만 100명 넘게 우루루 와서 죽이면 이것들이 우리랑 해보자는 건가? 이런 반응이 나올 거라 생각해서 그렇게 적었습니다 악마랑 천사들은 너무 오랫동안 싸워서 한 명 죽는다고 우루루 몰려가진 않거든요. 이해에 도움이 되셨길 바랍니다! 아, 그리고 후원쿠폰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