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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약자-46화 (46/251)

00046  정혜연  =========================================================================

혜연은 사람들의 이목이 없이 편하게 얘기를 나눌 장소로 자신의 집을 추천했다. 근처 카페를 가기도 뭐했기에 태상인 선뜻 고개를 끄덕이고 그녀의 집으로 목적지를 잡았다.

집으로 가는 내내 혜연은 자신이 얼마나 강한지, 태상에게 얼마나 도움이 될 수 있을지에 대해 어필을 해왔다. 덕분에 태상은 혜연의 집에 도착했을 때쯤, 그녀에 대해 꽤나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혜연은 B등급 악마를 잡을 정도로 능력이 뛰어난 여자였다. 만약 그녀도 악마 계약자처럼 능력을 쓸 수 있었다면 그렇게 쉽게 당하진 않았을 것이다. 그녀의 집에 거의 도착할 때쯤, 그녀가 조심스럽게 그에게 말을 해왔다.

“한 가지 여쭤도 되겠습니까?”

“음? 뭔데.”

“사실 제일 궁금했던 게 있었습니다. 태상님께서도 악마 계약자들처럼 이곳에서 능력을 사용 하실 수 있으신거죠? 정확히 기억은 안 나지만 함께 있던 여자분이 그들을 상대하는 걸 봤어습니다. 순식간에 그 악마 놈들을 죽였죠. 그건 분명 평범한 여자는 낼 수 없는 그곳 능력이었습니다.”

“음...맞아. 악마 계약자가 지구에서 천사 계약자들을 죽이고 있다는 걸 알게 되서 천사가 우리에게 이곳에서도 힘을 쓸 수 있도록 만들어줬어.”

태상의 말에 혜연이 혹시나 싶었는지 설레어하며 물었다.

“혹시 저도 이곳에서 능력을 사용할 수 있을 까요?”

“이젠 굳이 이곳에서 그곳 능력이 필요 없을 텐데 왜? 더 이상 이곳에서도 능력을 사용할 수 있는 악마 계약자들은 없어.”

혜연이 고개를 푹 숙였다. 그녀의 몸이 옅게 떨리고 있는 것이 아무래도 자신이 당했던 그때를 떠올리는 듯했다. 그녀는 잠시 침묵하다가 입을 떼었다.

“....그런 무력감, 두 번 다신 느끼고 싶지 않습니다. 강해지고 강해져서....누구도 절 힘으로 어찌할 수 없어졌으면 좋겠습니다.”

그녀가 느꼈어야 할 무력감은 태상도 이해한다. 태상은 잠시 고민이 됐다. 그녀는 이제부터 자신의 수족이 될 것이다. 그럼 그녀가 강하면 강할수록 그에게 도움이 되는 것이다. 어차피 라마스가 준 환약은 19개였다.

그 중 한 개는 사로나가 먹었기에 지금 그의 손에 있는 건 18개였다.

천사들도 현실에서 능력을 사용할 수 있는 계약자를 20명까지는 커버 할 수 있다고 생각했으니 그에게 그만큼의 환약을 준 것이리라 생각했다.

“이곳엔 없고, 천계에 가야 해.”

“!! 그 말은 제가 능력을 쓸 수 있게 만들어주신다는 뜻이신가요?”

태상이 너무 쉽게 그녀에게 허락할 줄 몰랐던지라 혜연이 감격스러워했다. 그 사이 그녀의 집에 도착한 태상이 차를 세웠다.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함께 차 안에서 내린 태상과 혜연이 아파트에 들어가려했다. 그런데 그때 여자의 또각또각 구두소리가 다급하게 다다다 들려왔다.

“이 검사님!! 이 검사님!!”

“?”

익숙한 목소리가 그를 다급하게 부르고 있었다. 그리고 그 주인공은 다급한 구두소리의 주인공이었다. 태상과 혜연이 동시에 고개를 돌리자 그들의 앞에 씩씩거리며 선 여자는 바로 도정희였다.

“이검사님 맞으시네!”

정희가 태상을 보며 반가워했다. 하지만 그 사이 그녀의 눈은 빠르게 혜연의 모습을 아래에서부터 위로 쭉 훑은 상황이었다.

“도정희씨가 여긴 무슨 일입니까?”

“제가 여기에서 살거든요. 그런데 이 검사님은 여기 무슨 일로 오셨어요?”

정희는 이 상황이 뻔히 짐작이 되는 상황이라고 생각하면서도 모르는 척 물었다. 혜연이 예전에 그가 소개(?)시켜주었던 송이가 아니라는 것쯤은 멀리서도 단박에 눈치를 챘기에 정희의 눈초리가 더욱 예리해졌다.

딱 보기에도 삐쩍 마른 게 자신보다 몸매도, 얼굴도 수준 낮은 여자였다. 덕분에 정희는 그에게 자신이 먹힐지도 모른다는 희망이 솟아났다.

“잠깐 볼 일이 있어서 왔습니다.”

태상은 그렇게 말을 하고 뒤로 돌아섰다. 뜻밖으로 정희가 아는 척을 해오긴 했지만 그 이상 볼 일이 있는 사이는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희가 다급하게 그의 팔을 잡아 가려는 걸음을 멈췄다.

“이 검사님!! 제가 검사님한테 정말 할 말이 많거든요. 도대체 갑자기 사직서를 왜 내신 거에요? 혹시 변호사 개업 하시나요?? 제가 이 검사님 사직서 냈다는 말 듣고 얼마나 놀랐는지 알아요? 어떻게 저한테 말 한 마디를 안 해주시고...정말 많이 서운했다고요.”

정희의 정신없이 쏟아지는 말에 태상이 미간을 찌푸렸다.

태상은 예정했던 데로 검사직을 그만뒀다. 박상현이 예정대로 아버지 대신 들어가게 되자마자 말이다. 물론 송이는 아직 그 사실을 몰랐다. 다른 이에겐 전혀 얘기하지 않고 사직서만 내고 나와버린 터라 뒤늦게 안 정희는 무척 황당했었다.

전화를 해도 받질 않으니 어떻게 만나야 하나 입맛만 다시고 있었는데, 이렇게 만나게 되니 무척 반가웠다. 물론 옆에 다른 여자가 있다는 건 무척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말이다.

정희가 태상의 팔을 슬쩍 잡아 끼었다. 태상은 피할까 하다가 이 여자가 무슨 짓을 하는지 가만히 보고 있었다. 그녀가 자신에게 끼를 부리고 있다는 것을 이제 태상도 잘 알았다. 줄 사람은 생각도 안 하고 있는데 혼자서 설레발치는 게 웃기기도 했다.

그때, 혜연의 눈동자가 어둡게 반짝였다. 정희와 무슨 사이인지 몰랐기에 가만히 잠자코 있었던 건데, 딱 봐도 태상의 심기가 그다지 좋아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혜연의 눈빛에 스산한 살기가 서리기 시작했다.

“근데 이 여자는 누구에요? 설마 이런...취향이셨어요? 이런 여자보단 내가 낫지 않겠어요? 좀 더.....은밀한 걸 하기엔 말이에요.”

태상이 자신을 밀치지 않자 좀 더 자신감이 붙었는지 그녀의 손길이 그의 가슴에 닿았다. 끈적끈적한 의도를 담아 그의 가슴을 쓰다듬었다. 만약 진짜 태상과 혜연이 그렇고 그런 사이인지라 이곳에 들어가는 거였다면 혜연을 완전히 무시하는 거였다.

그때, 갑자기 혜연이 튀어나가 정희의 목을 잡아 채 벽으로 밀쳤다. 갑작스러운 충격에 정희가 꺄아악!! 하고 비명을 질렀다.

태상도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기에 눈을 크게 뜨고 혜연을 봤다.

“왜 그래?”

태상이 묻자 혜연의 눈동자에 이미 완전해진 살기가 가득 흘렀다.

“죽일까요?”

갑작스러운 상황에 당황하긴 했어도 혜연의 목소리는 똑똑히 들을 수 있었기에 정희가 놀라 눈을 왕방울만 하게 떴다. 그녀가 한 말은 단순히 친구들 사이에서 장난으로 하는 어투가 아니었다.

정희가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다.

“왜 이러세요? 마, 말로 해요.”

삐쩍 마르고 볼륨감이 없어 만만히 보던 정희가 생각을 고쳤다. 생각보다 그녀의 기가 세다고 인정을 한 것이다. 그녀가 한 말이 진심이라는 것을 알았다면 절대 못할 생각이었다.

그때, 혜연이 정희의 목을 쥔 손에 힘을 주기 시작했다. 정희가 그녀의 힘을 느끼고 아아악! 하고 고래고래 살려 달라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다. 혜연이 시끄러워지는 것을 막기 위해 정희의 뺨을 올려쳤다.

짝!

“입 닥쳐. 목 꺾어버리기 전에.”

혜연의 살벌한 말에 정희가 금세 꿀 먹은 벙어리가 되어 입을 닫았다. 그녀의 몸이 벌벌 떨리며 작은 목소리로 살려달라고 빌기 시작했다.

“사, 살려....이 검사니이..컥!!”

정희의 얼굴에 금세 눈물 콧물이 줄줄 흘러나왔다. 아무래도 더 위협을 하면 오줌을 흘릴 기세였다. 그녀의 살려달라는 목소리도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혜연이 목을 쥔 손에 더욱 힘을 준 것이다. 그로인해 정희가 꺽꺽거리며 숨을 쉬지 못하기 시작했다.

이대로 두면 정말 송장 치를 기세인지라 태상이 혜연의 어깨에 손을 올리며 말했다.

“그만하고 목 놔줘.”

“네.”

혜연이 태상의 말을 듣자마자 곧장 손아귀에 힘을 풀었다. 정희가 켈룩켈룩 기침을 하며 바닥에 쓰러졌다. 그녀가 엉금엉금 필사적으로 태상에게 향해 움직였다. 그가 자신을 지켜 줄 거라고 생각하는 듯했다.

“네.”

이렇게까지 할 정도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그녀의 행동에 어쩐지 속이 좀 시원해지긴 했다. 그가 아는 도정희라면 분명 이런 짓을 하고 가만히 있을 여자가 아니었다.

더욱이 법에 대해 잘 아는 여자이니 혜연을 고소한다거나 할지도 몰랐다.

“흐으윽...! 저 여자 뭐에요? 미친 거 아냐? 어떻게 사람 목을..!! 이거 내가 다 신고할 거야! 여기 CCTV있죠?”

정희가 CCTV를 찾아 고개를 두리번거렸다. 역시 태상의 예상대로 고소부터 할 생각을 하는 듯 했다.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여전히 자신의 목을 잡은 그녀가 무서운지 태상의 옷깃을 놓지 않고 있었다. 태상이 정희의 귓가에 대고 속삭였다.

“저 여자, 굉장히 험하게 사는 여자라서 고소하면 당신 진짜 죽일지 모릅니다. 그러니까 그만 도발하고, 조용히 집으로 가세요.”

그의 의미심장한 말에 정희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태상의 말에 그녀를 공격하는 것을 멈췄던 혜연은 여전히 빤히 무표정한 얼굴로 정희를 노려보고 있었다.

그녀의 얼굴을 보자 그의 말에 더욱 크게 와 닿았다. 결국 정희는 슬금슬금 뒷걸음질 칠 수밖에 없었다.

“이리와.”

혜연에게 태상이 손짓했다. 그녀가 입구를 막고 있는 바람에 정희가 오도가도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혜연이 태상에게로 움직이자 정희가 꺄아아악! 소리를 지르며 꽁지가 빠져라 도망을 쳤다. 혜연은 그 모습을 빤히 보며 미간을 찌푸렸다.

“가자.”

혜연과 함께 태상이 드디어 그녀의 집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집에 들어가자 아무도 없을 거라 생각했던 집 안에서 또 다른 인기척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그건 놀랍게도 아주 작은 키를 가진 난쟁이였다.

“이건 뭐야?”

“어서 오세요 주인님!! 손님님!!”

난쟁이는 작은 키로 혜연과 태상에게 90도 인사를 해왔다. 집안일을 하고 있었는지 작게 만들어진 앞치마를 하고 손에는 걸레가 들려 있었다.

혜연은 익숙한 듯 놀라지 않고 안으로 들어섰다.

“귀한 분이시니까 특별한 음식을 준비하도록 해.”

혜연이 난쟁이에게 말하자 녀석이 알겠다며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네! 주인님! 아직 방 청소가 다 끝나지 않았는데 음식부터 할까요?”

“응. 차부터.”

난쟁이가 쪼르르 주방으로 움직였다.

“뭐야 저건?”

태상이 묻자 혜연이 모르시냐며 말해주었다.

“제 노예입니다.”

“노예?”

그러고 보니 혜연이 굳이 요즘엔 잘 쓰지 않는 노예니 뭐니가 되겠다며 자신에게 무릎을 꿇었던 게 떠올랐다. 저런 노예는 어디서 구하나 싶어 곰곰이 생각해보니 점수로 산 것인가 싶었다.

“혹시 점수로 산거야?”

“네. 집안일을 책임져주고 있습니다. 혹시 요정 노예가 없으신 거라면 데려가서 쓰셔도 됩니다.”

“저것도 요정이야?”

태상이 알고 있는 요정들과는 생김새가 많이 달랐다. 눈이 하나밖에 없었고, 등 뒤에 달려 있어야 할 날개도 없었다. 저런 쪼그만 녀석이 무슨 살림을 하나 싶었다. 사람에게 맞춰져 있는 주방에서 어떻게 요리를 할까 싶었던 것이다.

“그다지 쓸모 있어 보이지 않는데...”

그런데 그런 그의 기우를 완전히 놀리듯 요정이 허공 위를 자유자재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작은 손에 들려 있던 걸레가 지팡이로 바뀌더니 이리저리 휘두르자 주방 기구들이 녀석이 시키는 데로 저절로 움직였다.

“생긴 거와는 달리 훨씬 능력이 좋습니다.”

“....그러네.”

혜연은 소파에 앉은 태상의 맞은편에 앉았다.

태상은 이리저리 날아다니는 난쟁이를 빤히 보다가 그를 손짓으로 불렀다.

“네! 부르셨어요. 귀한손님!”

행동도 빠릿 빠릿한 게 진짜 집에 하나 두면 편할 것 같아 보이긴 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럴 수 없는 것이 송이가 이 세계의 일을 전혀 모른다는 점 때문이었다.

“난 냉녹차로 부탁해.”

“네! 알겠습니다.”

"같은 걸로."

난쟁이가 고개를 끄덕이고 얼마 후, 얼음이 담긴 냉녹차 두 잔을 가져왔다.

태상은 녹차를 마시며 목을 축였다.

============================ 작품 후기 ============================

일요일이라 쉴라했는데 200명 넘은 기념으로...연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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