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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약자-41화 (41/251)

00041  전투  =========================================================================

[저곳이야.]

[으슥한 곳에 있네.]

태상이 사로나를 데리고 움직인 곳은 바로 악마 계약자들이 있는 별장이었다. 악마 계약자들과의 전투를 앞둔 그들의 얼굴에는 긴장감이 맴돌았다.

[내가 들어가고 10분 정도 뒤에 뒤쪽 문으로 들어오면 돼. 그럼 바로 내가 무력화를 사용할 테니까.]

그 다음은 굳이 말하지 않아도 그녀가 알아서 할 것이다.

그렇기에 더 이상의 말은 하지 않고, 사로나가 고개를 끄덕이자 태상이 차문을 열고 나왔다. 더 이상 은밀하게 움직일 필요가 없기에 차는 별장 가까이에 대놓은 상태였다.

태상의 능력을 알게 된 사로나는 그가 다칠 것을 전혀 염려하지 않았다.

그가 성큼성큼 별장 안으로 들어서자 안쪽에 있던 악마 계약자들이 기척을 느끼고 밖을 확인했다. 그리곤 다가오고 있는 이가 이명진이라는 것을 발견하자마자 벌컥 문을 열며 그를 반겼다.

“야! 너 이 자식! 이제 오면 어떻게 해!?”

“엄청 기다렸다고! 빨랑 들어와!”

그들은 무척이나 명진을 애타게 기다렸는지 잔뜩 신나서 반겨주고 있었다. 태상은 그들의 안내를 받아 당당하게 적진 한 가운데로 입성할 수 있었다.

그들이 납치해 온 여자는 여전히 나체인 모습으로 그때 봤던 그 상태보다 더욱 나빠진 모습으로 구석에서 몸을 누이고 있었다. 태상이 여자를 바라보자 악마 계약자들이 그녀가 누구인지 설명해주었다.

“우리가 미션을 빨리 해결하려고 인터넷에 카페를 만들어서 천사 계약자들끼리 뭉치자고 글을 올렸거든? 근데 그 말을 저 년이 홀랑 믿고 찾아 왔더라고. 자기 입으로 천사 계약자라고 말했어 그래서 심심해서 좀 갖고 놀았지.”

“지금 생각이 있는 건가? 내가 얌전히 있으라고 했는데, 그걸 고새 못 참은 거야? 지금 내가 너희들 사건 해결하려고 고생을 얼마나 했는지 알아? 근데 또 이런 일을 저질러버리면 어쩌냐고!”

태상이 일부러 그들에게 크게 화를 냈다. 그들은 전혀 죄책감 없는 얼굴로 어차피 천사 계약자이니 잡아 죽여야 했을 년이라며 태상을 설득하려 했다.

“앞으로도 계속 천사 계약자들을 죽여야 하는데, 이년 하나 건드렸다고 화를 내는 거야?”

“이 짓으로 지금까지 천사 계약자들 몇 명을 잡았지? 이 미션은 좀 더 구체적이고 체계적으로 진행되어야 해. 너희들이 이렇게 충동적으로 미션을 해결하려고 하면 곧 경찰들이 너흴 잡으러 올 거다.”

“젠장, 그놈의 법! 법! 천사 계약자를 죽이는 건 당연한 건데 그게 왜 죄냐고! 생각 같아선 경찰들도 다 죽여 버리고 싶어.”

남자가 그렇게 말을 하자 옆에 있던 남자가 맞장구를 쳤다.

“맞아. 천사 계약자들이 누구인지 알 수 있는 방법만 있었어도 모조리 싹 다 한꺼번에 죽여 버리면 되는데 말이야. 메디노만 소환하면 다 끝장이잖아. 법이니 뭐니 그딴 거 다 필요 없이 우리 세상이니까!”

메디노?

그들이 말하는 메디노가 무엇인지 몰랐지만 어투를 봐서는 이 미션을 하게 만든 악마일 확률이 높았다. 태상이 능청스럽게 남자의 말을 받아쳤다.

“방금 한 말, 실현 가능성 없는 거 알고 있겠지?”

“그래~ 나도 잘 알아. 젠장 맞게도. 그래서 일은 어떻게 됐어? 다 해결 한 거야?”

“대충은. 사람 한 명 매수해서 대신 형 받게 해놨어. 증거조작도 다 끝냈으니까 조금만 더 여기서 버티고 있으면 깔끔하게 해결 될 거야.”

“좋았어. 이제 슬슬 다시 움직일 준비를 해도 되겠네! 야, 박상현! 저 년 데려와 이제 질리니까 그만 데리고 놀자고.”

“네, 형.”

다섯 명의 남자 중 가장 나이가 어려보이는 남자가 그의 말에 움직였다.

저 아이가 바로 이명진이 대신 죄를 뒤집어씌운 자의 아들이었다. 아무래도 그는 이명진이 그런 짓을 했다는 것을 아예 모르는 듯 했다. 만약 알았다면 저렇게 태평하게 이곳에서 있지 않았을 테니 말이다.

이명진은 그들이 저지른 살인사건을 수습하기 위해 아들을 살인마로 감방에 넣고 싶지 않다면 대신 죄를 뒤집어쓰라고 했을 것이다. 나중에 박상현이 모든 사실을 알게 되면 어떻게 수습하려 했는지 모르겠지만 일단 박상현은 살려둬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박상현이 여자의 머리채를 잡아 끌어당겼다. 여자는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그저 작게 꿈틀거리며 질질 끌려왔다. 그녀의 하체에 굳은 핏자국이 보였다.

그 참혹한 광경에 저도 모르게 인상을 찌푸려질 정도였다.

상현이 앞으로 데려와 머리채를 놓자 그대로 여자의 몸이 바닥에 쓰러졌다. 여자의 눈동자가 초점 없이 텅 비어 있었다.

“뭐해, 죽여.”

남자가 상현에게 여자를 죽이지 않고 뭐하냐며 눈치를 주자 알겠다며 여자를 향해 손을 뻗었다. 능력을 사용해서 여자를 죽이려 하는 게 분명했기에 태상이 그의 팔을 잡아채고 말했다.

“잠깐, 하나만 묻자. 이 미션을 너희들한테 준 게 아까 말했던 메디노라는 악마인가?”

“뭐하는 거야? 왜 당연한 걸 묻고 그래?”

상현에게 여자를 죽이라고 시켰던 남자가 어처구니없어 하며 말했다. 태상이 그렇구나...생각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 하나 더 궁금한 게 떠올랐는데, 이 미션 받은 계약자 너희 다섯이 전부인 거지?”

“.....”

태상이 자꾸만 이상한 것을 묻자 남자의 눈빛이 달라졌다. 남자는 대답 대신 그의 멱살을 잡아챘다.

“지금 뭐하는 거야? 너 딴 꿍꿍이라도 있는 거야?”

“야야, 왜 그래?”

주변에 있던 남자들이 그를 말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미 수상한 낌새를 눈치 챈 그를 설득시킬 순 없었다.

“이놈, 자꾸 수상한 짓만 하잖아!! 너희들도 느꼈으면서 왜 모르는 척이야!?”

“뭐가 수상해. 그냥 물을 수도 있는 거지.”

태상은 멱살을 잡혔음에도 여유로운 표정을 잃지 않았다. 주변의 말림으로 결국 남자가 멱살을 놓자 태상이 아쉽다는 듯 말했다.

“방금 전에 한 게 마지막 질문이었는데 쿨하게 그것까지 대답해주지 그랬냐.”

“대답해주기 전에 네가 갑자기 그걸 왜 묻는지부터 알아야겠는데?”

태상과 남자가 대치하고 있을 무렵, 바닥에 쓰러져 무의미하게 꿈틀거리고만 있던 여자가 소란을 느끼고 무의식중에 소리가 들리는 곳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그녀는 자신의 머리 위에서 대치하고 있는 태상과 남자의 모습을 발견하고 입을 벌렸다.

“아.....?”

그녀의 눈동자가 조금씩 초점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녀의 시선이 태상을 향해 정확히 꽂힌 순간, 여자의 눈에서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그녀는 저기 저 남자의 얼굴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정신을 놓을 수밖에 없는 끔찍한 고통 속에서도 유일하게 자신이 뻗은 손을 잡아주었던 남자의 얼굴만은 또렷하게 각인되었었다. 지금 그녀의 눈앞에 있는 이가 허상인지, 진짜인지 구분이 되질 않았지만 그래도 유일한 희망이었기에 덜덜 떨리는 손을 들어 올렸다.

이번에도 부디 그가 자신의 손을 잡아주길 바라면서 말이다.

여자가 태상을 향해 필사적으로 손을 뻗자 대치하고 있던 태상과 남자 그리고 주변에 있던 이들의 시선까지 모두 그녀에게로 향했다.

“뭐야, 죽은 오징어처럼 흐물흐물해져서 아무 반응도 없더니 다시 살아났네?”

남자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중얼거렸다. 그리고 허무하게도 그것이 남자의 마지막 유언이 됐다. 갑자기 사방으로 분수처럼 튀는 핏방울에 상황을 빠르게 파악하지 못한 악마 계약자들이 멍한 표정을 지었다.

서걱- 하는 소름끼치는 소리가 은밀하게 남자의 목을 스쳤기에 단 번에 그것이 공격이라는 것을 알아차릴 수가 없었다.

그들이 얼을 타는 사이 태상은 무력화를 사용한 뒤 자신에게로 뻗은 여자의 팔을 잡아 채 그녀의 몸을 어깨에 들춰 맸다. 놈들의 능력을 무용지물로 만들었으니 굳이 그가 도울 필요까진 없었던 것이다.

대신 미리 찍어 둔 살려놔야 할 놈인 박상현의 가슴을 발로 차 넘어트리고 사로나에게 외쳤다.

[이놈은 살려!]

그의 말은 다른 놈은 다 죽여도 된다는 말이었던 지라 그녀의 손속에 자비가 없어졌다.

뒤늦게 정신을 차린 세 명의 남자가 반격을 하려 했지만 모두 소용없었다.

“왜!! 왜! 능력이 안 써지는 거야!!! 흐아아아악!!”

"살...컥!"

그들은 왜 능력이 써지지 않는지 이유조차 모른 채 사로나의 칼에 당해 바닥에 쓰러져야 했다. 박상현은 주변에서 펼쳐지는 끔찍한 살인에 도망갈 생각조차 못하며 넋을 놓고 몸을 벌벌 떨었다. 애초부터 능력을 사용할 엄두도 내지 못하는 것 같았다.

“이봐 아가씨. 내 얼굴 기억 나?”

주변은 핏방울로 엉망이 되긴 했지만 어쩐지 아까 전보단 깨끗해진 기분이 들었다. 여자가 멍한 표정으로 태상의 품에 안겨 그의 얼굴을 빤히 바라봤다. 태상이 얌전히 안겨 있는 여자에게 물었다.

그녀는 입이 잘 떼어지지 않는지 대신 아주 작은 끄덕임으로 그의 질문에 답했다.

능력을 잃은 그들은 민간인과 다를 바가 없었다. 순식간에 그들을 해치우고 여유를 되찾은 사로나가 얼굴에 튄 피를 옷깃으로 닦아내면서 다가왔다. 순식간에 네 명의 남자 모두를 해치워버린 그녀지만, 식후 운동도 안 된 듯 보였다.

악마 계약자들 사잉서 버티는 게 얼마나 힘들었을지 어렴풋이 짐작하긴 했지만 생각보다 여자의 상태가 더 안 좋자 얼굴을 찌푸렸다.

[나머진 내가 처리하고 있을게. 병원에 다녀와.]

사로나의 말에 태상이 고개를 끄덕이다가 자신이 자리를 비운 사이 그녀가 박상현을 고문할까 싶어 말했다.

[저놈, 살려둬야 하니까 아직 고문 하지 마.]

[알겠어.]

그에게 알아내야 할 것들이 많긴 하지만 박상현이 아직 해주어야 할 일이 있기에 고문을 할 순 없었다. 박상현이 잘못 되면 그의 아버지인 박동환이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이명진의 몸에 있는 그가 잘못을 피하기 힘들었다.

그 일을 깔끔하게 끝내기 위해서는 박상현이 살아서 그의 앞에 나타나야 한다. 그러니 그를 살려놓으라고 한 것이다.

그녀를 안아 차 보조석에 태우고 제일 가까운 병원으로 움직였다. 병원에 그녀를 입원시키자 간호사들이 심상치 않음을 느끼고 곧장 경찰서에 신고를 해 잠시 태상을 귀찮게 만들었지만 치료를 받는 정신없는 와중에도 여자가 태상이 자신을 구해준 것이라 증언해준 덕분에 경찰서에 끌려가는 일까진 당하지 않을 수 있었다.

의사가 태상에게 그녀의 상태를 자세하게 얘기했다.

“환자분이 심한...일을 당하셔서 아무래도 임신이 힘드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너무 오랫동안 방치 되서 손쓸 시기를 모두 놓쳤습니다. 그런데 지금 문제는 그게 전부가 아니라는 겁니다. 이대로 그냥 두면 다리에 문제가 생겨서 기형이 될 수도 있습니다. 당장 수술해야 하는데, 수술을 한다 해도 완치를 장담하기가 힘듭니다.”

“아, 잠시만요.”

태상이 의사의 말을 잠시 끊고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 이럴 때를 대비해서 미리 준비해 둔 게 있었기 때문이다. 상대편에서 전화를 받자 의사에게 폰을 건네주면서 말했다.

“여기선 급한 응급처지만 해주시면 됩니다. 전화 받으시면 집도하실 의사 선생님께 상태를 자세히 알려주시면 되고요.”

태상의 말에 어리둥절해 하던 의사는 곧 들려오는 누군가의 목소리에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놀라 눈을 동그랗게 떴다. 상대편에서 자신이 누구인지 소개를 했는데, 그 이름을 의사도 잘 알았던 것이다.

잠시 후, 태상은 알아 들을 수 없는 의사들의 의학용어가 진료실을 가득 메웠다. 의사가 상기 된 표정으로 전화를 끊자 태상은 그에게 여자를 잘 부탁한다고 말하고 진료실을 나왔다. 전화통화를 한 의사가 지금 헬기를 타고 이곳으로 날아오고 있다는 것을 들었던 터라 의사는 태상의 부탁에 마냥 알겠다고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만약 그가 미리 의사를 준비해놓지 않았다면 이렇게 빠르게 처리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태상은 급한 불을 껐으니 나머지 불도 다 꺼야한다는 생각에 서둘러 병원을 나왔다. 아직 별장의 일이 완전히 마무리 되지 않았기에 그것을 마저 해결해야 했다.

별장에 도착하자 사로나는 도도하게 의자에 앉아 있었고, 박상현이 눈물을 뚝뚝 흘리며 바닥에 흘린 핏자국을 닦고 있었다.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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