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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약자-27화 (27/251)

00027  악마 계약자  =========================================================================

하지만 사실 태상도 그녀가 정확히 어떤 사람인지 잘 몰랐다. 대신 소개를 해줄 만큼 아는 게 없는 것이다.

정희도 송이가 누구인지 궁금했는지 눈을 깜빡였다.

“이분은 누구야?”

“이분은 누구세요?”

송이와 정희가 동시에 같은 말을 물었다. 태상이 잠시 침묵하다가 송이를 가리키며 도정희에게 말했다.

“내 와이프.”

그리고 다음으로 정희를 가리키며 송이에게 말했다.

“같이 일하는 사람.”

“......”

“.....”

깔끔하게 잘 정리해서 얘기를 해준 것 같은데 이상하게도 두 여자 사이에서 깊은 침묵이 내려앉았다. 그러다가 돌연 송이와 정희가 동시에 웃기 시작했다.

“호호호.”

“호호호호.”

“....??”

태상이 어리둥절해 할 뜬금없는 웃음 포인트였다. 하지만 그건 그만의 생각이었는지 송이와 정희가 서로 손을 내밀어 악수를 했다.

“만나서 반가워요. 도정희라고 해요.”

“얘기 많이 들었어요. 명진씨 와이프 임송이에요.”

“호호호, 참 이상하네요. 전 이 검..명진씨가 결혼했다는 말은 지금 처음 듣거든요.”

어디선가 으드득하는 이 가는 소리가 들렸지만 태상은 그 소리가 송이에게서 난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아~ 그러셨어요? 그만큼 안 친하시구나. 난 또~”

살살 약 올리듯 웃는 그녀의 모습에 태상이 왜 저러나 멀뚱히 바라봤다.

“죄송한데 아시다시피 남편 몸이 좋지가 못해서요. 이만 가 봐도 될까요?”

“아, 그게 아직 명진씨한테 얘기할 게 남아서요. 일 얘기라서 일반인은 들으면 안 되거든요.”

그녀의 말이 사실인지 궁금했는지 송이가 태상을 바라봤다. 태상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그것 외에 더 할 말 있었습니까?”

“음..그게....”

정희가 힐끗힐끗 송이를 쳐다봤다. 그건 분명 그녀가 있기에 말을 할 수 없다는 뜻이 분명했다 송이가 주춤하며 표정을 구겼다. 일 이야기면 송이가 나설 명분이 없기 때문이다. 태상은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

“이 여자, 내 아내입니다. 비밀보장 걱정할 필요 없으니 그냥 지금 얘기 하세요.”

이 여자가 안다해도 별 다른 문제는 생기지 않을 것이다.

“그렇지만 지금 이 문제는 어느 때보다도 보안이 중요하다고 명진씨가 말씀하셨잖아요.”

정희가 투덜거리며 입술을 내밀었다. 하지만 태상은 그런 그녀의 투정보단 말이 무척이나 거슬렸다.

처음부터 이 검사라고 불렀으면서 왜 지금은 이명진의 이름을 부르는지 몰라 태상이 얼굴을 찌푸렸다. 송이가 자신을 이명진이라고 부르는 것은 어쩔 수 없기에 참고 있지만 다른 사람들까지 그 이름으로 부르는 걸 참아주긴 어려웠다.

“그런데 왜 갑자기 절 이름으로 부르죠? 제가 당신 상사 아닙니까? 검사라는 좋은 명칭 두고 갑자기 왜 이름을 부르는지 이해가 안 되네. 우리가 친굽니까?”

표정 굳히고 말하자 정희의 표정이 굳고, 송이의 표정에 희미하게 미소가 피어올랐다. 정희가 입술을 깨물다가 말했다.

“죄송해요....급한 건 다 말씀 드린 것 같아요.”

“언론 확실히 막아주시고, 이거에 관련 된 자료 전부 다 다시 준비해주세요.”

“전부 다요?”

“처음부터 다시 시작할 겁니다. 내일 바로 볼 수 있게 준비해주세요.”

“내일 바로 출근하게?”

송이가 태상의 말에 놀라 끼어들어 물었다. 몸에 아무런 이상이 없다는 것을 태상이 가장 잘 알았기에 나가지 않을 이유가 없었지만 송이는 그것을 알지 못했으니 당연히 걱정이 될 수밖에 없었다.

“안 돼. 적어도 하루는 쉬어야 해.”

단호한 송이의 표정을 봤지만 그에겐 이게 굉장히 중요한 문제였기에 그녀의 뜻대로 할 수가 없었다.

“네. 그럴게요. 오시면 바로 볼 수 있게 다 준비 두겠습니다!”

일부러인지 모르겠으나 도정희가 알겠다며 대답을 했다. 그러자 송이가 도정희를 슬며시 째려 봤다. 정희가 돌아가자 송이의 태상의 팔에 팔짱을 꼈다.

“왜?”

“왜긴 왜야. 부축해주려고 하는 거지. 나한테 기대.”

송이가 괜찮은 멀쩡한 태상의 몸을 꾸역꾸역 부축하며 병원 로비를 나왔다. 택시를 타고 집에 도착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송이의 과한 간호는 계속됐다. 몸이 멀쩡했던 태상은 그녀의 극진한 간호에 헛웃음을 지었다.

아무리 괜찮다고 해봐도 그녀가 말을 들을 생각을 안했다.

“너 같은 애는 진짜 처음이다.”

“응? 내가 뭐?”

시치미를 뚝 떼는 바람에 태상은 그저 웃음을 짓고 말아야 했다. 송이의 그런 행동들이 기분 나쁘지 않았다. 그동안 그의 주변에는 온통 가식으로 가득 찬 이들만 있었다. 머리가 좋은 그가 그걸 눈치 채지 못했을 리가 없다.

알면서도 비지니스 적으로 그도 상대를 해주어야만 했기에 묵인했을 뿐이다.

그런데 지금은 그러는 사람이 없었다. 적어도 송이는 그러지 않았다. 그를 진심으로 걱정하고, 위했다. 그게 본래 이명진의 것임을 알기에 짜증나긴 하지만 이젠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려고 한다.

어차피 더 이상 이명진도, 자신도 서로의 몸을 바꿀 수 없는 상태였다. 그러니 송이가 주는 사랑은 온전히 자신의 것이 맞았다.

누구도 그것을 빼앗아가지 못할 것이고 말이다.

**

“여긴가?”

“예, 회장님.”

“남의 돈으로 제법 잘 살고 있구만.”

강회장이 뒷좌석에서 나와 지팡이로 땅을 짚고 섰다. 누군가는 그가 이빨 빠진 호랑이다 뭐다 하는 이가 있지만, 그건 제대로 된 정보를 모르는 어중이들이나 할 이야기였다.

전혀 죽지 않은 날카로운 눈매로 그가 건물을 훑었다. 어떻게 가능했는지 모르겠으나 cctv가 무섭지도 않은지 흔한 모자 하나 쓰지 않고 당당하게 얼굴을 보이며 그의 돈을 훔친 도둑놈이 이곳에 둥지를 틀었다고 들어 찾아 온 것이다.

이렇게 그가 직접 움직이는 건 굉장히 이례적인 일이었다. 그는 거의 대부분 사람을 시켜 일을 처리하곤 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이번 일은 강회장이 직접 자신이 나서야겠다고 나섰다. 그가 그렇게 한다면 하는 거였다. 누구도 막을 수 없었다.

해서 강회장이 도둑놈이 사는 아파트까지 오게 된 것이다.

그의 안위가 염려되긴 했지만 그의 말을 꺾을 간 큰이는 존재하지 않았다.

“이쪽입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 강회장이 현관문 앞에 섰다. 그의 수행원이 초인종을 누르고 안쪽에서 여자 목소리가 들려왔다.

[누구세요?]

“여기가 이명진씨가 사는 곳 맞습니까?”

이미 그의 신상정보는 모두 조사한 후였다.

[맞긴 한데...누구세요?]

“이명진씨를 만나러 온 분이 계십니다.”

[이상하다...누구 온다고 한 적 없는데...]

인터폰이 꺼지고 곧 현관문이 열렸다. 살짝 문을 열어 나타난 이는 예쁘장하게 생긴 여자, 송이였다.

“이명진씨 안에 계십니까?”

“네, 있긴 해요. 그런데 무슨 일로 명진이를 찾아 오셨어요? 아...혹시 오늘 일 때문에 오신 건가요?”

검은 정장과 선글라스를 낀 수행원의 포스에 송이의 목소리에 경계심이 가득 깃들어 있었다. 수행원이 길을 비키자 강회장이 송이의 시야에 들어왔다.

‘노인?’

송이의 얼굴에 의아함이 가득 담겨졌다.

“예쁜 아가씨로구만. 난 강태풍이라는 사람인데, 아가씨 남편한테 돌려받을 물건이 있어 왔다오. 그러니 잠시 문을 열어줄 수 있겠나?”

“음...잠시만요. 일단 명진이 불러올게요.”

“그렇게 하시게.”

송이가 잠시 다시 집으로 들어가 명진을 부르기 위해 화장실 문을 두드렸다. 하필이면 그가 씻고 있었기에 곧바로 나갈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서 굉장히 난감했다.

똑똑똑!

“명진아~~~”

송이의 목소리가 울리자 꾸준히 들리던 물소리가 사라지고, 화장실 문이 벌컥 열렸다. 뿌연 김 속에서 적당한 근육이 붙은 나체의 모습으로 태상이 화장실에서 나타났다.

“꺅! 야~ 내가 옷 입고 나오라고 했잖아.”

그의 중요 부위가 움직일 때마다 덜렁거려 송이가 인상을 찌푸렸다. 그런 송이의 말을 무시하고 태상이 물었다.

“뭔데?”

“누가 너 찾아왔어. 너한테 받을 게 있다던데? 나이가 좀 많이 드신 분인데, 성함이 강태풍이라고 하셨어.”

“뭐?!”

태상의 눈이 커지며 놀랐다. 송이는 예상치 못한 태상의 과한 반응에 왜 그러냐며 물으려는 순간 태상이 그녀를 지나쳐 현관으로 걸어갔다. 송이가 아무것도 가리지 않아 훤이 보이는 그의 토실한 엉덩이를 보고 기함해 소리쳤다.

“어머 쟤 미쳤어! 야!! 너 옷 입고 나가!!!”

하지만 태상은 그녀의 말을 모두 듣지 못하고 벌컥 현관문을 연 상태였다.

바깥에서 그를 기다리던 강회장과 수행원이 나체로 나타난 태상을 보고 몸을 움찔 떨었다. 태상의 눈동자와 강회장의 눈동자가 서로 마주쳤다. 그들 사이에서 잠시 침묵이 돌았다.

강회장은 나체로 나타난 태상 때문에 당황했을 만도 한데 표정 하나가 바뀌질 않고 있었다. 태상 또한 자신이 나체임을 알텐데도 꽤나 당당한 얼굴이었다.

“뭐야? 진짜 여기까지 온 거야?”

“가뜩이나 눈 안 좋은 늙은이 실명이라도 하라고 테러하는 겐가?”

송이가 후다닥 달려오는 소리가 들렸다. 그녀가 서둘러 수건으로 태상의 중요부위를 가리고 고정을 시켰다. 송이가 깊게 한숨을 쉬었다.

“이, 일단 들어오세요.”

태상이 노인을 아는 눈치이자 송이가 그들에게 안으로 들어오라 권유했다. 태상도 그녀의 말을 반대하는 건 아니었는지 뒤를 돌아 길을 비켜주었다.

강회장이 안에 들어와 소파에 앉았고, 태상이 그 맞은편에 앉았다. 송이가 재빨리 그의 얼굴에 옷을 들이밀었기에 태상이 옷을 입느라 뒤늦게 앉은 것이다.

수행원은 앉지 않고 강회장 뒤에 시립했고, 송이는 서둘러 급하게 음료를 준비했다. 강회장은 마치 집들이 온 친구처럼 집을 한 바퀴 쭉 둘러보았다.

“집을 잘 꾸며 놓고 사는구만.”

강회장은 태상의 집에 온 적이 있었다. 해서 지금 이 집을 보고 이상함을 느끼고 있을 것이다. 태상은 자신이 행동하기 가장 편한 데로 집을 만들어 놓는다. 그러니 강태상이었을 때 지냈던 집과 아주 흡사한 상태로 가구가 배치가 되어 있을 것이다.

눈치가 빠른 강회장이 그것을 모를 리가 없었다.

“왜 왔어?”

태상이 자신의 손을 깍지 끼고 말했다. 강회장에게 다짜고짜 반말을 하는 태상의 태도에 수행원의 얼굴이 절로 꿈틀댔다. 하지만 정작 당사자인 강회장이 아무런 말도 하질 않으니 나설 수가 없었다.

============================ 작품 후기 ============================

선추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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