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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약자-23화 (23/251)

00023  C등급 미션  =========================================================================

라마스는 태상의 말에 잠시 침묵했다.

그가 거짓말을 할 이유가 없으니 정말 태상의 능력이 C등급 악마에게 먹혔다는 게 사실일 것이다. 그런 보조 종류의 능력이 C등급 악마에게까지 먹힌다는 건 처음 들어보는 소리였다. 태상의 능력이 일반적인 단순 보조 능력과는 조금 다르다는 것을 진즉부터 알고 있긴 했지만 이 정도일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C등급 악마 공헌도 1위로 잡았는데 설마 또 F등급 미션 줄 생각은 아니겠지?”

태상이 그렇게 말하자 라마스가 더욱 할 말을 잃었다.

“계약자 실력이 어느 정도 되는지 정확히 판단해야 하는 게 네 할 일 아닌가? 넌 날 강하게 만들어 준다고 했었잖아. 그런데 이렇게 싸고돌기만 해서 어떻게 강해지겠어. 좀 더 내 능력을 쓸 수 있는 곳을 마련해 달라고. 난 하루라도 빨리 그놈한테 복수를 해야 해.”

“....제가 굳이 태상님에게 F등급 미션을 권했던 것은, 지금 태상님이 복수에 너무 눈이 멀어 계시다는 것 때문이었습니다. 복수, 그것 때문에 죽어간 능력자들이 많습니다. 태상님도 그들 중 하나가 되길 바라지 않았기에 그리 했던 것 입니다.”

라마스가 자신이 생각을 태상에게 털어놓았다. 태상은 그의 말을 듣고 그럴 수 있었겠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이해는 하더라도 그의 방법이 옳았다고는 말 할 수 없었다.

“그건 복수에 모든 걸 다 건 놈들이나 하는 짓이지. 내게 복수는 인생의 전부가 아니야. 지금도 놈이 내 몸을 차지하고, 가족들을 속이고 있다는 생각이 들 때마다 열불이 터지긴 하지만 그놈은 내 손으로 처리할 거니까 상관없어.”

“......그게 정말 이십니까?”

라마스는 그가 높은 미션을 하려하고, 강해지려 하는 이유가 복수에 있다 생각했다. 하지만 태상은 고작 복수를 인생의 전부로 하기에는 세상엔 재밌는 게 너무 많았다. 지금 태상은 현실에선 송이 덕분에 재미있었고, 이곳에선 미션을 하고, 점수를 획득하는 것들이 굉장히 재밌었다.

예전 강태상의 몸으로 살 때보다 솔직히 지금이 더 재밌긴 했다.

그땐 시시하게도 그의 인생 목표가 할아버지의 후계를 잇는 것뿐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고리타분한 것에 인생을 낭비하지 않아도 되지 않은가.

돈이라면 이미 차고 넘치는 데 또 돈을 벌자고 인생을 낭비하는 게 싫었다. 하지만 할아버지가 태상을 마음에 들어 하고, 후계자로 낙점했기에 그의 기대를 저버릴 수 없어 그렇게 살아 온 것뿐이었다.

온통 세상이 너무 쉽기만 해서 재미가 하나도 없었는데, 요즘은 정말 재밌는 일들이 많았다.

“난 지금 굉장히 재미있어. 내 재미를 부디 빼앗아가지 않아줬으면 해. 네가 날 도우려고 하는 건 알겠지만, 그건 내가 원하는 게 아니야. 이제 알겠지?”

라마스는 그가 하는 말이 진심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태상은 정말 전투가, 색다른 삶이 재미있는 거였다.

전투는 고되고 힘들다. 하지만 자신이 얻고 싶은, 얻어야만 하는 것들을 갖기 위해 싸우는 거였다. 재미를 위한 게 아니라 말이다. 그런데 태상은 지금 이 일들이 모두 재미있다고 말하고 있었다.

라마스는 다소 황당한 말에 당황하다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그런 거라면 저도 앞으로 태상님을 최대한 돕겠습니다.”

“좋아. 그럼 우리 합의 한 거다?”

태상이 만족스럽게 웃었다. 둘은 그렇게 오해를 풀고, 본격적으로 그동안 모은 점수를 확인하기로 했다.

“C등급 미션 공헌도 1위 보상과 미션 보상을 받아 총 240000점을 획득하셨습니다.”

“점수 많이 획득했네.”

“그동안 모으신 점수까지 총 합산하여 240875점 되셨습니다.”

“그 정도면 할 수 있는 게 꽤 될 것 같은데.”

“물론입니다. 어떤 걸 원하시는 지 알려주시면 됩니다.”

태상은 뭐부터 할까 고민했다. 좋은 무기를 살까, 아니면 충격을 막아주는 갑옷?

것도 아니면.....

“일단 힘이랑 체력 민첩 이런 것들부터 최상급으로 올리고 싶은데 가능해?”

“20만점을 사용하시면 힘, 체력 중 한 가지를 최상급으로 올리시는 게 가능하며, 8만 포인트로 민첩을 중급에서 상급으로 올리실 수 있습니다.”

라마스의 말에 이번엔 태상이 할 말을 잃었다.

C등급 미션이 아니었다면, 그리고 그가 공헌도 1위를 하지 않았다면 절대 모으지 못했을 20만점이라는 점수가 훅 까이게 생겼으니 얼마나 어이가 없겠는가.

태상이 뭐가 그렇게 비싸냐며 화를 내자 라마스가 차분하게 답해주었다.

“그래도 태상님은 아주 높은 시작점을 갖고 계셔서 유리한 편이십니다. 다른 계약자들은 최하급이나 하급에서부터 출발하는 게 일반적입니다. 하지만 태상님은 기본 능력 평균이 상급으로 이루어져 있기에 아주 적은 점수로 올릴 수 있는 겁니다.”

“아니 그래도 20만점은 너무하잖아....”

“태상님의 마나건 공격력이 강한 건 힘과 지능이 높아서 입니다. 만약 힘을 최상급으로 올린다면 더 강한 공격을 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라마스가 그렇게 말하자 고민이 될 수밖에 없었다. 라마스도 장비보다는 기본적인 수치를 최상급으로 모두 올리는 걸 추천하고 있었다. 장비를 사면 일시적으로 높아질 순 있지만 장기적으로 봤을 때엔 수치를 올리는 게 더 이득이라면서 말이다.

결국 태상은 20만점을 사용해서 힘을 최상급으로 올리기로 했다.

나머지 5만점은 나중에 민첩을 상급으로 올릴 때 쓰기로 하고 남겨두었고 말이다.

“멋진 무기라도 하나 장만하나 싶었더니...결국 또 이 총이네.”

태상이 투덜거리며 총을 만지작거렸다. 그도 사람인지라 좀 더 멋있고, 좋은 장비를 갖고 싶은 마음이 컸다. 하지만 그는 이내 어리둥절한 얼굴을 했다.

“어라? 안 무겁네?”

“힘 능력치가 최상급으로 올려진 덕분에 부담이 줄어들으셨을 겁니다.”

그동안 태상은 총을 사용할 때 묵직한 충격을 계속해서 부담해야 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총을 아무리 이리저리 흔들어도 전혀 무게감을 느낄 수가 없었다. 그냥 종이쪼가리를 드는 것마냥 가벼웠다.

설마 총을 쏘고도 그럴까 싶어 태상이 하늘을 향해 총구를 겨누고 쏴보았다.

탕! 탕탕!!

“뭐야, 진짜 하나도 안 무겁잖아? 심지어 쏠 때 오던 무게감도 전혀 없네.”

라마스의 말을 듣고 힘을 올리길 잘 한 것 같았다. 태상은 매우 흡족한 표정을 지었다. 확실히 무기나 그런 것들을 사는 것보다 이런 식으로 능력치를 올리는 게 훨씬 이득인 게 맞는 듯 했다.

“오늘 수고 많으셨습니다.”

라마스가 태상의 피로를 풀어주려는지 손짓을 하자 태상의 몸이 빛났다.

그녀의 손짓에 그의 몸이 가벼워지는 게 느껴졌다. 그리고 그 순간 태상은 꿈에서 깨어나듯 그곳에서 벗어났다.

짹! 짹짹! 짹!

참새가 우는 소리가 태상의 귓가에 울렸다.

그의 옆에는 여전히 송이가 잠들어 있었다. 다만 달라진 것은 그들이 잠들어 있는 곳이 아주 푹신한 침대라는 것이었다. 푹신한 침대 감촉에 잠자리가 바뀌어 어색할 만도 한데 송이는 아주 깊게 잠들어 있었다.

오늘 태상은 검사로서 출근을 해야 하는 날이었다.

**

정장을 입고, 넥타이를 맨 태상이 화장실에서 머리를 정돈했다.

오늘 송이에게 말하진 않았지만 그는 검사직을 그만 두려고 하고 있었다. 좀 더 체력을 단련에 집중할 생각이었다.

“준비 다 한 거야?”

송이가 아침상을 준비를 했기에 그가 식탁에 앉았다. 오랜만에 출근을 한다는 것 때문인지 송이가 제법 힘주어 요리를 한 듯 했다. 송이는 그가 요리에 대해 한마디 해줄 거라 생각했는데, 태상이 아무런 말도 없이 숫가락을 들어 먹기 시작하자 실망을 했다.

하지만 사실 태상에겐 이런 힘준 밥상이 일상이었기에 별다른 특별함을 눈치 채지 못하고 있었다.

“뭐야, 엄청 힘써서 요리했더니 맛있다는 말도 안 해주는 거야?”

“응?”

다른 생각을 하다 송이의 말을 듣고 그녀를 쳐다봤다. 그녀가 무슨 말을 했는지 몰라 하자 푹 한숨을 쉬었다.

‘오랜만에 출근해서 정신이 없겠지.’

송이는 자신이 이해하자고 생각하며 아무것도 아니라고 웃었다.

“맛있게 먹어. 든든하게.”

“그래.”

차는 아직 뽑지 못했기에 택시를 불러 탔다. 일하는 곳에 도착하자 태상은 잠시 막막해져 멍하니 건물을 바라봤다. 그가 소속되어 있는 곳은 다행이도 명진의 소지품을 확인해보면서 알 수 있었기에 찾아가는 데에 어려움은 없었다.

안으로 들어가서 ‘서울지검 특수 범죄수사부’라고 적혀 있는 곳의 문을 열었다.

“엇! 이검사님 오셨네.”

“이검사님!”

안으로 들어가자 먼저 출근한 사람들이 자리에 앉아있는 게 보였다. 태상은 그들을 쭉 훑어 본 후에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가장 먼저 그에게 다가와 말을 건 것은 안경을 낀 여자였다.

“몸 괜찮으세요? 갑자기 쓰러지셨다고 들었는데...”

태상이 고개를 끄덕이는 걸로 대답을 대신했다.

“이 검사님 없으니까 어찌나 일이 많은지 저희들은 진짜 죽을 뻔했어요.”

“여기 책임자가 누굽니까?”

태상은 여기에서 일할 생각이 전혀 없었기에 책임자를 만나서 그만둔다고 곧장 얘기하고 나갈 생각이었다.

“여기 책임자가 이 검사님이시지 누구겠어요.”

하지만 사람들은 그가 그런 생각을 아예 하지 못했기에 그녀가 웃으면서 그렇게 말했다.

“.....”

“여기 인사 관리하는 사람이 누구냐고 묻는 겁니다.”

“인사..관리요? 그건 갑자기 왜....아, 혹시 이번에 쉰 것 때문에 그러시는 거에요? 이미 병결로 다 처리 되어 있어요. 하여튼 꼼꼼하시다니까.”

“여기 커피 드십시오.”

여자 말을 듣고 있던 태상에게 살집이 좀 있는 편인 남자가 다가와 커피를 내밀었다. 딱 봐도 인스턴트 커피인지라 태상이 사양했다.

“먹고 왔어요.”

“아...예.”

남자가 머쓱하게 커피를 뒤로 물렸다.

“저기 근데 인사과는 나중에 가셔야 할 것 같아요. 지금 사건이 또 터져서 난리가 아니었거든요.”

“사건?”

태상이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아뇨, 지금 제일 급한 건 인사과에 가는 겁니다.”

“정말 급해요. 이번에 드디어 용의자가 나왔거든요. 그 자를 잡으면 그동안 풀리지 않았던 연쇄 사건들을 모두 다 풀 수 있을 거에요.”

여자가 태상의 말을 듣지도 않고 호들갑을 떨었다. 하지만 정작 태상은 그녀가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전혀 알 수가 없었다. 얘가 뭘 수사하고 있는지 그가 상관할 일이 아니었다.

“목격자가 범인 얼굴을 똑똑히 봤대요. 그리고 그놈이 또 이상한 수작을 쓰는 것도 전부 다 봤다고 하고요.”

‘이상한 수작?’

사건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던 태상의 귀에 쏙 박히는 단어였다. 들어가자마자 이곳을 그만두리라 생각했던 태상을 막게 했다.

“이상한 수작이라면 정확히 어떤 걸 말하는 겁니까?”

“이번에는 물을 막 자유자재로 다루는 놈이었어요. 물이 전혀 없는 곳에서 익사한 시체가 발견되고, 그 근처에는 다량의 물자국이 남아 있었죠. 놈은 물을 다룰 줄 아는 거에요.”

태상은 그런 것들을 사용하는 자들을 아주 잘 알았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그런 것들을 할 수 있는 자들과 함께 있다가 온 것이니 말이다. 그런데 한 가지 걸리는 것이 있다면 자신이 알기로는 그런 힘들은 천사들이 있는 그곳에서만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이런 곳에서 그곳 얘기를 들을 줄 몰랐던 태상은 자연스레 관심을 줄 수밖에 없었다.

============================ 작품 후기 ============================

선추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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