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19 C등급 미션 =========================================================================
“내가 잠들었다고?”
“놀라셨다면 죄송합니다.
어리둥절해서 말하는 태상에게 라마스가 사과를 해왔다. 왜 그런 소리를 하나 했더니 그녀가 일부러 그를 부르기 위해 잠이 오도록 만들었다고 말해왔다.
“급하게 부른 거기 때문에 자세한 설명은 드릴 수가 없습니다. 나중에 설명을 해드릴 테니 우선 미션을 받아주십시오.”
라마스의 말에 태상이 자신의 목에 걸려 있는 목걸이를 옷 속에서 꺼내 들었다. 영롱한 붉은 빛으로 목걸이에 박혀 있는 보석이 빛나고 있었다.
이 목걸이는 라마스가 준 것인데, 미션을 받거나 떨어져 있는 라마스와 대화를 할 수 있게 해주는 장치였다. 이 목걸이가 푸른 빛으로 반짝이면 라마스에게 소식이 온 것이고, 붉은 빛으로 빛나면 미션이 왔다는 뜻이었다.
목걸이의 보석 부분을 누르자 지이이잉-하는 소리가 들리더니 이내 빛이 사그라들었다.
라마스는 그가 미션을 받았다는 것을 확인한 후 말했다.
“잘하셨습니다.”
“무슨 미션인데 이렇게 급하게 사람을 부른 거야?”
“흔치 않은 보상이 후한 미션이라서 급하게 부를 수밖에 없었습니다. 절대 후회는 하지 않으실 겁니다. 선착순으로 마감을 받는 미션이라서 어쩔 수가 없었고요.”
“어떤 미션인데?”
“C등급으로 악마를 죽여야 하는 미션입니다.”
“C등급?!”
지금 태상은 F등급 미션을 받아 점수를 모으고 있는 중이었다. 그런 그에게 갑자기 C등급의 악마를 죽이라는 건 말이 되질 않았다. 그를 죽이려고 일부러 그러는 게 아니라면 말이다.
“물론 아직 태상님은 C등급 악마를 죽일 힘을 갖고 계시지 않죠.”
“그런데 나보고 이걸 하라고?”
“이번 미션은 한 두 명이 하는 게 아닙니다. 수많은 계약자들이 이 미션을 수락하고 있습니다. 태상님은 가만히 서 있다가 보상만 받으시면 됩니다.”
“그러니까 네 말은 다른 놈들이 이 미션을 깨줄 거니까 그냥 꼽사리만 껴서 얌전히 있다가 보상을 받아라 이 말이네?”
“맞습니다.”
태상은 영 마음에 차지 않았지만 라마스가 말하는 미션 보상 점수를 듣고 입을 다물어야 했다. 그가 왜 이렇게 다급하게 그를 불렀는지 알 수 있었다.
“미션 보상 점수가 10000점?!”
“거기에 더해서 활약에 따른 추가 공헌까지 받으면 어마어마한 포인트를 쌓을 수 있습니다. 오히려 보상 점수보다 공헌도로 포인트를 더 많이 얻을 수 있습니다.”
“그런 거면 내가 뭔가를 좀 더 해야 이득 보는 거 아닌가?”
태상의 말에 라마스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지금까지 태상님이 상대하던 F등급의 악마와 C등급의 악마는 차원을 달리합니다. 그러다가 목숨을 잃으실 수 있습니다. 이번에는 절대로 다른 행동을 하셔서는 안 됩니다.”
“쳇.”
아쉽다는 듯 입맛을 다시는 태상이었다. 그때, 갑자기 그의 주변이 일그러져 보이기 시작했다. 라마스는 태상이 잠에서 깨어나고 있음을 깨닫고 말했다.
“조금 있다 뵙겠습니다.”
라마스의 말을 끝으로 태상이 잠에서 깨어났다.
송이가 그를 깨우고 있었다.
“무슨 잠을 그렇게 깊이 자?”
“어. 깜빡 잠들었네.”
태상이 무릎에서 일어나자 송이가 손가락에 침을 바르고 자신의 코에 묻혔다.
“으....다리 저려.”
“계속 그러고 있었던 거야?”
“네가 너무 곤히 자니까 비킬 수가 없었어. 그러다가 깰까봐. 피곤하면 밥 먹고 좀 더 자. 배 안 고파?”
아무리 준비를 할 게 딱히 없다 해도 송이가 부산을 떤 바람에 시간이 지체되어 밥을 먹지 못했다. 그제야 배고픔이 느껴지는지 태상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사하면 원래 짜장면 먹는 거지만 이렇게 식재료가 많은데 그런데에 돈 쓸 필요 없으니까 해먹자.”
“안 피곤해?”
태상보다 훨씬 피곤해야 할 사람이 송이인데도 그녀의 눈동자는 여전히 초롱초롱했다.
“아냐. 여기서 쉬고 있어. 알았지?”
“알았어.”
송이가 쪼르르 달려가 주방에서 분주하게 음식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깨끗하고 새 것인 그릇과 주방 도구들을 쓰는지라 송이의 입에선 연신 콧노래가 나왔다.
태상이 소파에 앉아 그런 송이의 모습을 빤히 바라봤다.
“아참! 나 오늘 되게 웃긴 일 있었어.”
“무슨 일인데?”
요리를 하던 송이가 갑자기 생각났다는 듯 말했다. 그녀가 태상을 바라보고 음흉하게 코를 벌름거리며 웃었다.
“으흐흐. 오늘 어떤 남자가 나한테 작업 걸었어.”
“...작업? 너한테?”
태상의 표정이 미묘하게 굳었다. 하지만 이를 보지 못한 송이가 더욱 신이 나서 말했다.
“응응. 쓰레기봉투 버리러 갈 때 갑자기 나타나서 나 대신 쓰레기봉투를 들어주는 거야. 내가 괜찮다고 했는데도 쓰레기장에 버려줬어. 그러더니 갑자기 나한테 뭔가 더 도울 게 없냐고 하는 거 있지?”
“뭐 하는 녀석인데 갑자기 나타나서 그딴 소리를 지껄여?”
그의 목소리가 화가 난 것 같은 음성이 들어 있어서 일까? 송이의 얼굴이 저도 모르게 개구지게 바뀌었다.
“글쎄~ 근데 우리 동네랑 안 어울리게 굉장히 비싼 옷이랑 시계 같은 거 입고 있더라고. 아무래도 우리 동네 사람들은 아닌 것 같았어.”
“비싼 옷이랑 시계?”
태상은 그런 사람이 이런 촌동네를 왜 왔을까 곰곰이 생각해봤지만 딱히 다른 이유가 있을 동네가 아닌 것 같아 인상을 찌푸렸다.
어쩌다가 볼 일이 있어 왔다고 해도 얌전히 있다가 갈 것이니 남의 마누라는 왜 건드리나 싶었다.
태상이 눈썹을 이리저리 꿈틀거리며 물었다.
“그놈 어떻게 생겼는데? 나보다 잘 생겼나?”
“생긴 거? 음...그냥 남자답게 생겼다? 사실 처음엔 옷보단 딱 기세? 분위기? 그런 걸로 봤을 때 귀티가 나더라고. 그래서 아 좀 사는 남자구나 싶었어. 덩치가 되게 커서 조폭인 줄 알았는데 자세히 보니까 절대 그런 일 할 사람으론 안 보이더라고.”
“그래서, 부자라서 혹했어?”
“혹하기는! 지금 질투하는 거야? 당연히 딱 잘라 말했지! 유부녀라고.”
송이의 말에 태상이 여유를 찾고 팔짱을 끼고 소파에 몸을 기댔다. 그러다가 그는 그녀가 말했던 덩치라는 말이 슬슬 거슬리기 시작했다.
“그놈 생김새, 좀 더 자세히 말해봐.”
그냥 간단하게 넘길 줄 알았는데 태상이 또 다시 묻자 송이가 요리를 멈추고 그를 보며 말했다.
“아유~ 괜히 얘기했네. 그게 다야. 딱 잘라 거절하고 집으로 왔으니까 신경 쓰지 마. 장난으로 얘기해본 거야. 자기 마누라 아직 안 죽었다고~”
“덩치가 제법 있고, 부자 티가 났다 이거지? 키는 얼마 정도 돼 보였어?”
“그만해~~”
송이가 대답 안 해 줄 거라며 단호하게 말하자 결국 태상이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는 어쩐지 그 남자가 자신이 잘 아는 이일 지도 모른다는 직감이 들었다. 하필이면 부자인데 덩치가 큰 놈이 하필이면 송이가 있는 동네에 왔고, 하필이면 그녀에게 호감을 보였다.
그런 일이 우연히 일어날 확률이 얼마나 될까?
태상은 이런 일이 우연히 일어난다는 것을 그다지 믿지 않았다.
그가 만약 송이에게 미련이 있거나, 혹은 이명진이 된 자신의 상태를 확인하러 온 것이라면?
그게 사실이라면 불쾌함을 감추지 못할 것 같았다. 만약 놈이 내 앞에 있다면 주먹으로 놈의 면상을 흠씬 두들겨 패줄 것이다. 자신의 몸까지 훔쳐갔으면서 뻔뻔하게 그 낯짝을 들이 미는 거니 그 꼴을 어떻게 참겠는가.
“다음번에 그 놈이 또 나타나면 무조건 날 불러. 장난 아니고 진심이다. 내가 아는 놈 같은데 일부러 너한테 접근하는 것 같아.”
“어? 진짜?”
송이가 굉장히 놀라 했다. 생각 못했는데 그는 이래봬도 검사였다. 검사에게 원한을 진 범죄자가 한 두 명 있을 수도 있었다. 송이가 덜컥 겁이 나 물었다.
“너 뭐 위험한 사건 맡은 거야? 혹시 그때 3일 동안 못 깨어난 거, 그것도 그거랑 관련 있는 거고?”
사실 어찌 보면 그녀의 말이 맞긴 했다. 태상이 잠시 고민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런 거니까 그놈이 또 나타나면 반드시 나부터 부르라고. 알겠어?”
“응. 그럴게.”
송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사정이 있는 줄도 모르고 낙천적으로만 생각했으니 얼마나 바보같은지 모르겠다.
송이는 자신을 자책하며 팔에 돋은 소름을 쓸어내렸다.
만약 그가 나쁜 해코지라도 하려 했다면 어떡할 뻔했는가.
송이는 조심해서 다녀야겠다고 다짐했다. 더불어 태상에게도 조심하라고 걱정해 주었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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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셨습니까.”
밤이 됐고, 태상은 조금 이른 시각임에도 불구하고 잠을 청했다. 송이가 무언가를 원하는 눈빛을 보내긴 했지만 그건 아침에도 할 수 있는 일이기 때문에 망설...솔직히 조금 갈등을 하고 망설이다가 잠에 들었다.
“안 늦었지?”
태상이 묻자 라마스가 아직 시간이 넉넉하다고 알려주었다.
“그래서 정확히 미션에서 뭘 어떻게 하는 거야?”
아침에 급하게 들어왔을 땐 단순히 C등급 악마를 죽이라는 것만 들었던 태상이다. 미션에 본격적으로 들어가면 어떻게 하고, 무얼 해야 하는 건지 좀 더 자세히 정보를 들어야 했다.
“악마가 지금 갑작스럽게 저희 쪽 진영을 공격하여 빼앗긴 상황입니다. 해서 그 자를 죽이고 저희의 땅을 되찾아야 합니다.”
“C등급 악마가 정확히 얼마나 강한 거야? 짐작이 안 가는데.”
“놈은 방어력이 강해서 웬만한 공격에도 끄떡하지 않는 자입니다. 그 자의 이름은 메로메로입니다. 수많은 전쟁에서 놈의 방어력을 뚫지 못해 희생당한 천사들이 많았죠.”
“공격은 별 볼 일 없고, 그냥 방패처럼 딴딴한 녀석인 거야?”
“공격력은 다른 C등급 악마들에 비해 떨어지는 편이긴 합니다. 하지만 같은 등급의 악마라 해도 메로메로를 무시하진 못합니다. 그의 방어력이 얼마나 뛰어난지 알고 있기 때문이죠.”
“그 방어력을 뚫으려면 엄청나게 많은 놈들이 공격을 퍼부어야겠네?”
“그렇습니다. 안타깝게도 현재 초보자인 태상님은 공격한다 해도 메로메로에게 공격이 먹히진 않을 겁니다. 하지만 이번 기회 C등급 악마를 가까이에서 경험할 수 있는 게 나중에 굉장히 도움이 될 겁니다.”
“뭐가 됐던 잘 됐어. F등급 미션 하는 거 솔직히 굉장히 지루했거든. 시시하고.”
그동안 태상은 라마스의 권유에 어쩔 수 없이 계속해서 F등급 미션을 해왔었다. 처음으로 F등급을 했을 땐 다른 이들과 움직였지만 그 이후로는 혼자서 F등급 미션을 완수했다. F등급 미션은 하품이 나올 정도로 계속해서 시시했다.
대부분 그의 무력화 능력과 마나건에 속수무책으로 죽어나갔기 때문이다.
그런 와중에 E등급도 아닌 C등급 미션이 넝쿨 째 들어왔으니 재미를 보겠다 싶었다.
자잘자잘하게 점수를 모으는 것도 성미에 안 맞고 말이다.
라마스는 너무 걱정이 많았다. 그는 좀 더 높고 강한 곳으로 가서 싸울 준비가 됐는데, 계속해서 좀 더 시간을 두고 천천히 하자며 그를 말린 것이다.
그러던 중 이런 기회가 왔으니 당연히 이런 기회가 반가울 수밖에 없었다.
“좋아. 미션하러 가자고.”
“네. 그럼 이동시켜드리겠습니다.”
예전에 천사가 있던 이상한 무늬로 이동을 했을 때처럼 그렇게 이동할 필요는 없었다. 라마스가 곧장 그곳으로 이동시켜주었기 때문이다. 라마스가 보내주는 것은 울렁거림이나 그런 후유증이 없었다.
나중에 왜 그랬는지 물어보니 그게 천사들의 등급 때문이라고 했다.
라마스는 A등급 천사이고, 그런 잡일을 하는 천사는 E등급 아래의 천사이기 때문에 후유증을 겪을 수 있다고 말해주었다. 태상은 그동안 라마스에 대해 몰랐음을 깨닫고 새삼 놀랄 수밖에 없었다.
C등급 악마의 힘이 그토록 강하다면 A등급 천사인 라마스는 얼마나 강할지 짐작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라마스가 A등급인데, 계약자인 자신은 F등급이나 전전하고 있다는 게 자존심 상하기도 했다.
“그럼 부디 몸 조심히 다녀오십시오.”
라마스가 태상을 이동시키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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