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16 두 번째 접속 =========================================================================
반의 앞에는 멀쩡한 모습으로 서 있는 태상과, 그의 앞에 축 늘어진 채 죽어 있는 바위악마가 있었다.
놈의 이마부분에 작은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태상이 놈을 죽였던 것은 치명적인 단 한군데를 노렸기 때문이었다. 한 발로는 놈을 죽이지 못했겠으나 여러 발의 총알이 한 군데를 계속해서 타격하자 끝내 놈의 몸을 뚫고 들어간 것이다.
사실 태상이 바위악마를 죽였다는 건 말도 안 돼는 일이었다. 물론 반이나 다니엘, 안나도 저렇게 할 수야 있지만 생 초보였을 때를 생각하면 말이 안 됐다. 지금 이만큼 강해졌기에 가능한 일이었지 자신들이 초보였을 땐 불가능했다. 그런 일을 태상이 해낸 것이다.
반에게 들어 태상의 실력이 제법 심상치 않은 실력을 갖고 있다는 건 알았지만 저 정도일 거라고는 생각을 못하고 있었던 안나와 다니엘이 놀라 눈을 크게 떴다.
아무래도 본능적으로 자기 목숨 아까운 줄 아는 게 사람인지라 저렇게 살기를 내뿜고 달려오는 바위악마에게 침착하게 총을 쏴서 죽였다는 게 믿어지지가 않았다.
“주, 죽인 거에요?”
레베카가 다음으로 침묵을 뚫고 물었다. 반이 크하하! 하고 웃으며 말했다.
“그래! 저놈이 죽였다. 목숨이 여러개도 아닐 텐데 배짱 좋군.”
태상이 축 늘어진 두 명의 악마를 보다가 일행이 있는 곳으로 다가왔다.
“이제 저 나무에서 사과를 따가면 끝이야?”
“네가 혼자 다 잡았으니 황금사과는 우리가 따지.”
반이 안나를 쳐다보자 안나가 고개를 끄덕이고 황금나무가 있는 곳을 향해 달려갔다. 마치 소설 속에 나오는 엘프처럼 가벼우면서도 빠른 몸놀림으로 움직인 그녀는 금세 나무 꼭대기로 올라가 커다란 황금 사과 두 개를 가져왔다.
안나가 사과를 챙길 때, 다니엘은 죽은 악마에게로 가서 그들의 심장을 챙겼다.
신기하게도 악마들이 죽고 얼마 지나자 몸이 사라지고, 파란색 보석이 남아 바닥을 뒹굴고 있었다. 다니엘이 그것을 생겨 온 것이다.
“이게 바로 악마의 심장이다. 이걸 천사한테주면 점수를 얻을 수 있지. 그 점수로 할 수 있는 게 뭔지 잘 알고 있겠지?”
레베카와 태상이 고개를 끄덕였다.
마침 악마가 두 마리였기에 반은 하나씩 레베카와 태상에게 나눠주었다.
“우리들은 미션성공으로 주는 보상으로 충분해. 이건 너희들 몫으로 넣어두라고.”
“저는 한 게 아무것도 없는데, 이걸 어떻게 받아요. 그럴 수 없어요.”
레베카가 반이 내미는 악마의 심장을 받지 않고 고개를 저었다. 그리곤 태상에게 두 개 모두 가져달라고 부탁을 해왔다.
“태상씨가 다 가지는 게 맞아요.”
사양하는 레베카에게 태상이 딱 잘라 말했다.
“리더가 나눠 가지라고 하면 나눠가질 것이지 뭔 말이 많아?”
“하지만....”
“태상이 말이 맞다. 리더가 나눠 가지라고 하면 나눠가지는 거야.”
반이 레베카의 손에 심장 하나를, 태상에게 나머지 심장을 주었다.
“자, 그럼 이제 돌아가자고.”
돌아갈 때도 마찬가지였다. 다만 아까와 다른 점이 있다면 이번에는 스크롤이라고 하는 것을 찢어 이동했다는 점이 다를 뿐이었다. 무엇인지 모르는 태상에게 레베카가 이곳으로 오기 전 있었던 장소로 되돌아 갈 수 있다고 설명을 해주었다.
이번에도 똑같이 속이 뒤집히는 끔찍한 멀미가 찾아왔다. 두 번째였지만 영 익숙해지지 않았다.
욱욱 헛구역질을 하며 태상이 몸을 휘청거렸다. 레베카의 안색도 당연하게 창백해졌고 말이다.
“절대 익숙해지지 않을 것 같은 불길한 느낌이 든단 말이지....”
태상이 절레절레 고개를 저으며 중얼거렸다. 반이 그런 태상의 어깨를 두드려주었다.
“자, 처음으로 미션을 성공해본 소감이 어떻지?”
“생각보다 간단해서 의외였어. 굉장히 어려울 줄 알았는데.”
반은 태상의 말에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웃었다.
“대부분 처음 미션을 하고 나면 넋을 놓는 편인데, 생각보다 쉬웠다라....하여간 웃기는 놈이라니까. F등급은 이렇게 몇 시간 만에 가능하지만 등급이 올라 갈수록 난이도는 상상 그 이상으로 올라간다. 악마도 방금 전에 봤던 것처럼 약한 놈들이 아니지. 생각을 하고, 전술도 짜는 놈이야. 앞으로 싸워야 할 놈들을 너무 만만히 보지 않는 게 좋을 거다. 그리고....이걸 받아라.”
“이게 뭔데?”
반이 태상을 위해 충고를 해주다가 무언가를 내밀었다.
그건 방금 전에 찢어서 원래 있었던 곳으로 돌아왔을 때와 비슷한 스크롤과 정체를 알 수 없는 종이였다.
“저게 스크롤이라는 건 알고 있겠지? 이걸 찢으면 우리가 있는 곳으로 올 있다. 그리고 저 종이는 네 계약자에게 보이면 미션에 대한 보상을 받을 수 있을 거다.”
종이를 보니 정 가운데에 커다란 도장이 하나 찍혀 있었다.
“흐응~”
태상이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자 반이 계속해서 말했다.
“이곳엔 많은 길드가 있긴 하지만 그중에서도 우리 길드는 제법 높은 편이다. 자신 있으니까 널 데려가겠다고 당당하게 말하는 거다. 그러니 꼭 나중에 또 보자.”
더 이상 다니엘도, 안나도 그를 길드에 들이는 것에 대해 반대하지 않았다. 악마를 잡을 때 보여준 실력에 다들 반의 안목이 뛰어나다는 걸 다시 깨달을 수 있었다. 좀 많이 건방진 편이긴 하지만 태상은 그래도 될 만큼의 실력을 가졌다.
태상은 일단 반의 호감을 거절하지 않고, 받아들였다.
그들 덕분에 좋은 정보를 얻을 수 있었던 건 사실이기에 태상도 만약 길드를 든다면 그의 길드에 드는 게 낫다 생각하고 있었다.
태상과 반이 서로 악수를 했다.
레베카는 태상과의 헤어짐이 아쉬운지 연신 그를 힐끗힐끗 쳐다봤다.
“꼭...나중에 다시 만나요.”
레베카가 머뭇거리다가 말했다. 태상은 그녀의 말에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그러자 레베카가 수줍은 웃음을 지었다.
레베카, 안나, 다니엘 그리고 반이 스크롤을 찢어 이동했다.
그들이 사라지자 혼자 덩그러니 남게 된 태상이 기지개를 폈다. 생각지도 못하게 하게 된 미션에 무기와 악마의 심장까지 얻게 되었으니 굉장한 수확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나저나 라마스한테는 어떻게 돌아가는 거야?”
물어 볼 사람들은 이미 다른 곳으로 가버렸기에 물을 곳이 궁색했다. 그러나 곧 그는 그런 걱정을 더 이상 하지 않아도 됐다. 그의 앞에 라마스가 떡하니 나타났기 때문이다.
“라마스?!”
“부르셨습니까.”
“뭐야, 어떻게 온 거야?”
“제 이름을 부른 걸 듣고 왔습니다.”
“아...!”
아무래도 그를 부르는 건 이름인 듯 했다. 하마터면 방법을 코앞에 두고 고생할 뻔 했다. 태상은 한숨을 작게 쉬고 그에게 악마심장을 내밀었다.
“이거 말이야. F등급 미션 다녀와서 얻은 거거든.”
“네?”
라마스는 태상의 말에 한껏 당황해서 그에게서 악마심장과 미션완수를 증명해주는 종이를 받았다.
“혼자서 다녀오신 겁니까?! 전 다만 길드에 들라고 이곳에...!”
“길드를 아직 든 건 아니지만 들어도 괜찮을 것 같은 곳은 생겼어. 거기 미션, 다른 사람들이랑 같이 했거든. 그 정도 사람들이라면 함께해도 나쁘지 않단 생각은 들더라고.”
“혼자서 하신 게 아니라고요?”
라마스가 뜻밖의 사실에 화를 누그러트렸다.
“일단은 보류야. 여전히 혼자 해보고 싶은 생각이 더 많아. 솔직히 F등급, 시시했거든. 그렇게 우르르 모여 가서 고작 두 마리 잡고 온다는 게 좀 어이없었어.”
아예 길드에 들 생각이 없었는데, 드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하니 라마스는 이 정도에서 물러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일단 그에게 보상을 정산해주기로 했다.
“일단 장소를 옮기겠습니다.”
라마스가 그렇게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태상의 주변이 순식간에 바뀌었다.
사람들이 돌아다니다보니 소음이 자연스럽게 들려왔는데, 이곳은 무척이나 조용했다.
“F등급 악마심장과 미션완수 보상 합쳐서 5포인트 얻으셨습니다.”
“5포인트라...그걸로 뭘 할 수 있어?”
“힘, 체력, 민첩, 지능 등의 기본 능력치를 올리는 것에 사용할 수 있고, 혹은 전투에 필요한 무기나 갑옷 등을 구매할 수도 있으며 노예를 구입하거나 돈으로 바꿀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 현재 갖고 계신 포인트로는 대부분의 것들은 구매하지 못할 겁니다. 아니, 구매 한다 해도 하급의 것만 얻을 수 있을 겁니다. 좀 더 포인트를 모으는 걸 추천합니다.”
저번에 태상에게 보여주었던 것들이 정말 거짓이 아닌 듯싶었다.
태상의 능력치는 힘 상급 체력 상급 민첩 중급 지능 최상급이었는데, 이 포인트로 중급인 민첩을 상급으로, 힘과 체력을 최상급으로도 바꿀 수 있다는 뜻이었다.
“내가 여기에 온지 얼마나 지난 거야?”
사람마다 이곳에 접속할 수 있는 접속 시간이 정해져 있었다. 이곳의 시간이 흐르면 현실의 시간도 당연히 흐르기 때문이다. 해서 이곳에서 나가야 할 때는, 현실의 그의 몸이 깨어나는 시간이었다.
“현실 시간은 현재 6시입니다.”
“6시면 이제 슬슬 가봐야겠네.”
“그럼 접속을 해제시켜드리겠습니다.”
“다음에도 길드니 뭐니 그거 들라고 강요할 건가? 난 다음엔 F등급 미션을 혼자서 받아 보고 싶은데.”
그동안 라마스는 그에게 미션을 하는 걸 굳이 말렸었다. 그가 방심을 해서 허무하게 목숨을 잃을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여전히 혼자서 미션을 하겠다고 하는 건 못 미더웠지만 라마스가 그가 원하는 것을 더 이상 막을 수가 없었다.
솔직히 그가 미션을 해서 악마심장을 가져오는 게 라마스에겐 이득인 일이었다.
“알겠습니다. 다음에 오실 땐 미션을 하실 수 있도록 준비해놓겠습니다.”
“그래, 좋네. 잘 부탁해.”
라마스의 확답을 들은 태상이 씨익 웃었다.
다음번엔 어떤 일을 하게 될지, 상상만으로도 기대가 됐다.
그는 이곳에 슬슬 재미를 붙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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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꺅!”
“뭐야?”
접속을 해제한 태상은 갑자기 들려오는 비명소리에 놀라 벌떡 일어났다. 그가 알고 있기론 지금 현재 시각은 아마 6시일 것이다. 다들 잠들어 있어야 하는 게 맞는 시간인 것이다. 그런데 가까이에서 비명 소리가 들려왔고, 그 목소리가 송이의 것이라는 것을 깨닫자 태상의 눈이 절로 번쩍 떠졌다.
그가 문을 벌컥 열고 밖으로 나가자 송이가 바닥에 주저앉아 있었다.
그가 그녀의 어깨를 잡아 부축하며 물었다.
“뭐야? 무슨 일이야!!”
도둑이라도 들었나 해서 놀랐다. 태상의 집에는 방범 시스템이 잘 갖춰져 있지만, 이곳에선 아니니까 충분히 가능한 일이기도 했다. 더욱이 송이의 표정이 굉장히 창백하지 않은가. 태상의 놀란 얼굴을 멍한 표정으로 본 송이가 입을 열었다.
“꿈이...아니었어.”
“그건 또 무슨 소리야?”
얘가 무슨 소리를 하는 건가 싶어 태상이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 그녀의 얼굴이 정말 귀신이라도 본 것 같았다.
“도둑이라도 든 줄 알았잖아! 젠장, 하긴 그럴 리가 없지 실수로라도 도둑이 들어왔으면 적선하고 나갈 집이니까.”
그럼 도대체 무엇이 송이의 얼굴을 저렇게 만든 것일까? 태상은 알 수 없는 상황에 답답해 버럭 소리를 질렀다.
“아 진짜! 왜 그러냐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