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67화 (68/93)

   @@[제5장 코워드 공작의 재침@@]

  쿠베론 성 함락 직전.

  대륙의 북방과는 반대쪽에 위치한 헥토르 공국에서 8만의 병력이 발키리 영지를 향해 진격하고 있었다. 코워드 공작은 이번 전쟁에 모든 힘을 다 쏟아 붓고 있는 상태였다. 발키리 영지의 절반 이상의 전력이 빠져 있는 지금이 적기였다.

  코워드 공작은 8만의 병력과 군수물자를 확보하기 위해서 공국 내의 모든 자금을 소모한 상태였다. 이번 전투에서도 패한다면 뒤를 돌아볼 수 없게 되었다.

  전투를 벌이기 전에 코워드 공작은 버루거 자작을 제거해 버렸다. 남아 있는 불순분자를 살려두기에는 후환이 너무 컸다. 버루거 자작이 살기 위해 몇몇의 귀족을 선동했던 것이다. 하지만 그의 세력은 코워드 공작보다 작았다. 결국 일을 해보기도 전에 코워드 공작의 손에 제거되었다.

  헥토르 공국 내의 반감세력을 정리하고 난 후 곧장 발키리 영지로 향한 코워드 공작이었다.

  “가르딘! 네 이놈! 어디 망가져가는 네놈의 영지를 멀리서 지켜보며 피눈물을 흘려라!”

  가르딘에 대한 원한이 골수까지 스며들어갔다. 반쯤 미쳐 가고 있던 코워드 공작이다. 자존심에 상처받은 인간이 어떻게 변해가는지 보여주었다.

  “공작님! 그들을 믿을 수 있겠습니까?”

  “믿지 않는다.”

  “그런데 어째서 그들의 말을 들어준 것입니까?”

  “내 일을 도와주겠다는데 굳이 마다할 이유는 없지"

  비린스 자작은 그제야 코워드 공작의 의도를 알아챘다. 협상이 아니라 쓰고 버리는 말에 불과했던 것이다.

  하지만 불안하기는 마찬가지였다. 협상한 존재들이 결코 만만하지 않았다. 왕국도 아닌 제국의 후작이었던 자다. 그런 자가 아무런 대책도 없이 협상을 벌였을까!

  코워드 공작이 그자들을 너무 얕게 보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너무 쉽게 보는 것이 아닌가.’

  그에 반해 코워드 공작은 그다지 개의치 않고 있었다. 놈들의 힘이 아무리 강해도 소수였다. 일전에는 방심하다 허를 찔렸던 것에 불과했다. 제대로 된 힘으로 붙으면 절대 지지 않을 것이다.

  ‘둘이 치고받다 사라지면 더 좋고.’

  놈들은 발키리 영지의 내부에서 전투를 벌인다고 했다. 적당히 때를 맞추어서 공격을 하는 것으로 방향을 잡고 있었다.

  * * *

  발키리 영지의 방어를 총책임 지고 있었던 유타와 갈라는 코워드 공작이 공격해 온다는 소식을 들었다. 설마 했는데 이처럼 빨리 진격할 줄은 예상하지 못하고 있었다.

  하필이면 가르딘과 통신이 잘 되지 않고 있었다. 쿠베론 성의 주변에 쳐진 마력장과 통신방해 마법진으로 인해 가르딘과의 통신도 잘 되지 않았다. 상황이 이상하게 코워드 공작을 도와주는 것 같았다.

  “적 병력은 8만 정도라고 하던데."

  “꽤 많네.”

  “전투가 끝나고 난 후 파멜라가 진법을 재정비했으니 문제는 없을 거다."

  “나는 우선 병력을 이끌고 전방으로 갈게. 너는 영지 내의 일을 마무리하고 따라와!”

  “알았어.”

  갈라가 파멜라와 함께 병력을 이끌고 전방으로 움직였다. 반 이상 남아 있는 발키리 기사단과 크레이지드래곤 창기병도 전방으로 배치가 되었다.

  유타는 남아서 영지민들의 안전을 위해서 준비를 하고 있었다. 때마침 안젤리카가 마법사들을 이끌고 유타를 찾아왔다. 유타가 안젤리카를 반갑게 맞았다. 이럴 때는 다른 어떤 존재보다 든든한 아군이었다. 안젤리카가 드래곤이라는 것에 안심했다.

  “마법사들을 이끌고 왔어요.”

  “조금만 있으면 준비가 끝나니 나하고 같이 가지.”

  “그럴게요."

  마법사들도 상당한 수준이라는 것이 느껴졌다. 유타는 마법사들을 효율적으로 시용하면 전투가 더 쉬워질 것이라 여겼다. 코워드 공작의 경우 마법사들을 버리는 바람에 마탑의 미움을 받고 있었다. 따라서 마법 공격에는 쉽게 대처하지 못할 것이 확실했다.

  한편, 전장으로 출전을 한 갈라는 일부 병력을 빼서 영지의 곳곳에 설치된 발리스타를 전방으로 배치시키도록 했다. 전투에서 발리스타의 효용성이 크다는 것은 입증된 사실이었다. 파멜라는 진법이 제대로 작동이 되는지 마지막으로 테스트를 해보았다.

  모든 준비를 마치고 나서야 갈라와 파멜라는 한시름을 놓았다.

  “아직도 정신 못 차리고 또 공격을 하다니!”

  “그래도 8만이나 되는 대군이잖아요! 조심하지 않으면 많은 희생을 초래할 거예요.”

  “병력이 많다고 걱정할 필요는 없어. 8만의 병력 중에서 정예병은 얼마 되지 않을 거야. 어중이떠중이로 모아놓은 오합지졸에 당할 정도로 우리가 약하지는 않으니까! 너무 걱정 하지는 않아도 될 거다.”

  “그래도 신중을 기해야 한다는 것에는 변함이 없어요. 피해를 보게 되면 영주님이 절대 가만히 있지 않을 테니까요.”

  “하긴.”

  코워드 공작에게 피해를 입는다는 것 자체가 자존심 상하는 일이다. 이번 전투는 압도적인 차이로 이겨야 했다. 갈라는 가르딘이 할 수 있었기에 자신도 할 수 있다고 여겼다.

  “다 왔구려."

  “놈의 저택이 저기에 보이는군."

  “이제 피의 복수를 할 차례가 다가왔소이다."

  “피는 피로 갚는다!”

  로브를 입은 자와 갑옷을 입은 자가 음침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살벌한 기운을 형성하고 있는 그들의 눈빛은 마귀와 같았다. 적에 대한 일말의 자비심도 존재하지 않았다. 앞을 막는다면 모조리 다 죽여버릴 기세였다.

  뚜벅! 뚜벅!

  두 사람은 천천히 목표를 향해 걸었다. 저택과의 거리는 그다지 멀지 않았다. 저택의 주변에 마법진이 형성되어 있는 것이 보였다. 침입에 대비해서 마법진을 펼쳐놓은 것이다.

  “그 정도로는 어림도 없지.”

  —얼스퀘이크(지진).

  마법진을 무너뜨릴 수 있는 가장 이상적인 마법이 바로 지진 마법이었다. 형성된 마법진의 형태가 일그러지기 때문이다. 그런데 예상 이상으로 마법진의 능력이 대단했다. 벤투스가 시전한 마법이 튕겨 나가버리는 것이 아닌가!

  “이럴 수가! 설마 7서클 마법진이란 말인가?”

  “그게 무슨 소리지?”

  “쉽지 않군."

  시작부터 좋지 않은 예감이 스치는 벤투스였다. 말이 좋아 7서클 마법진이지 실제로 만들기는 무척이나 어렵다. 이처럼 규모가 큰 마법진일수록 고서클의 마법진을 사용하기 힘들다. 진짜로 7서클 마법진이라면 펼친 자는 그보다 서클이 높을 수도 있다는 말이 된다.

  벤투스의 생각과는 다르게 마법진은 5서클에 불과하다. 다만 파멜라의 진법과 안젤리카의 마법진이 서로 혼용이 되어 진의 효과가 더 커졌던 것이다.

  벤투스는 마법진 안에 흐르는 기운을 파악하기 위해서 집중했다. 마법진에 흐르는 마나의 흐름은 벤투스의 처음 예상과 다르게 5서클이었다.

   “그런데 이게 뭐지?”

  마법진을 구성하는 마나의 흐름을 비틀고 지나가는 또 다른 흐름이 느껴졌다. 원래 마나의 경우 다른 성질의 마나가 비집고 들어가게 되면 서로 충돌하여 무너지기 마련이다. 그런데 눈앞에 보이는 마법진은 마나의 흐름을 비틀면서 더욱 견고하게 틈을 메우고 있었다.

  ‘뭐 이런 진이 다 있어?’

  안젤리카와 파멜라가 밤샘을 마다 않고 고심한 진법과 마법진의 결합이었다. 고서클의 마법진은 아직 무리가 있어서 구축하지 못했지만 이 정도만 해도 7서클 마법사를 곤란하게 만들 수 있었다.

  “어쩔 수 없군!”

  -골렘 소환!

  슈슝!

  열 개의 골렘이 공간에서 벗어나 모습을 드러냈다. 6미터에 달하는 골렘은 당당한 위용을 자랑했다. 그동안 절치부심한 벤투스의 노력이 엿보였다.

  “가딩스타 후작, 진법의 축이 되는 부분을 공격해 주시오!”

  “알겠다.”

  우선은 마나의 흐름이 이어지는 축을 무너뜨리고, 골렘을 투입해서 하나씩 해결을 해야 할 것으로 보았다. 가딩스타 후작과 골렘이 한꺼번에 움직인다면 충분히 뚫어낼 수 있을 것이다.

  투과과과꽝!

  건물이 부서지는 소리가 들리며 대기의 유동이 느껴졌다. 집무실에 있던 유타와 안젤리카는 동시에 누군가 침입했다는 것을 느꼈다. 느껴지는 기운의 파동으로 봐서는 보통 적이 아닌 것처럼 느껴졌다.

  “이게 뭐지?”

  “상당한 자들이 침입했나 보네요."

  안젤리카는 느껴지는 기운 속에 7서클 마법사가 있다는 것을 파악할 수 있었다. 더군다나 사람이 아닌 것 같은 기운은 아무래도 골렘인 것 같았다. 골렘 특유의 파장이 안젤리카의 신경을 건드렸다.

  “고서클 마법사와 골렘, 오러마스터로 구성이 된 것 같네요.”

  상상할 수 없는 엄청난 구성이었다. 한 명만 해도 감당이 되지 않는 존재들이 쳐들어오고 말았다.

  유타는 하인들을 시켜 빨리 저택의 비밀장소로 피하도록 했다. 가만히 있다가 잘못하면 모두 죽을 수도 있었다. 전방에는 소식을 알리기 애매해졌다. 영지 내부가 소란스럽다는 것을 알리게 될 경우 우왕좌왕할 수도 있었다. 우선은 안젤리카와 같이 해결을 해볼 생각이었다.

  “가자, 안젤리카!”

  “알겠어요.”

  푸아아앙!

  유타와 안젤리카가 저택 밖으로 나왔을 때 마법진과 진법은 상당 부분이 파해된 상태였다. 적들이 곧 모습을 드러낼 것이 분명했다. 유타는 쳐들어온 적들의 수를 줄여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안젤리카! 적들의 움직임을 확인할 수 있어?”

  “가능해요."

  “그럼 내가 쏠 테니 위치를 알려줘.”

  저택 내에 설치된 발리스타 한 대를 조준했다. 만약의 경우를 대비해서 가르딘이 저택 내부에 갖다놓은 발리스타였다. 이처럼 유용하게 사용될 줄은 유타도 예상하지 못했었다. 아무튼 가르딘의 철저한 대비로 인해 어느 정도는 도움이 되었다. 유난 떤다고 타박했던 것이 오히려 미안했다.

  “전방 30미터, 우로 30도예요!”

  유타는 발리스타를 조준한 후 진 안으로 쇠활을 발사했다. 골렘의 움직임은 둔한 편이라 반응하지 못할 것이 확실했다. 더군다나 안젤리카가 설명한 조준점은 골렘의 핵이었다. 핵 의 위치를 정확하게 알아맞춘 것이다.

  처어엉!

  쇳소리가 울려 퍼지며 발리스타가 진 안으로 쏘아져 나갔다. 사람 크기만 한 쇠활이건만 무척이나 빨랐다. 순식간에 공간을 가르며 무언가에 부딪혔다.

  푸우우웅!

  철커덩!

   발리스타의 쇠활에 맞은 골렘이 그 자리에서 꿰뚫린 채 바닥에 무너져 내렸다. 거대하고 단단한 신체를 가진 골렘이 속수무책으로 당했다. 제대로 된 반항도 하지 못하고 핵이 박살 나버렸다. 다시 일어서기에는 무리였다.

  찌이잉!

  골렘과 상충되는 충격을 받은 벤투스는 아찔한 기분을 맛보아야 했다. 벤투스는 정신을 차리고 골렘의 상태를 확인해 보았다.

  “이럴 수가!”

  골렘이 발리스타 한 방에 쓰러진 것이다. 말도 안 되는 일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충격은 한 방으로 끝이 나지 않았다. 또다시 발리스타가 정확하게 날아가서 골렘을 쓰러뜨렸기 때문이다. 세 대의 골렘이 쓰러지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벤투스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필생의 여력을 바친 골렘이 허무하게 부서졌다. 화가 나다 못해 폭발하기 일보 직전이었다. 엄청난 위력의 발리스타로 인해 네 대를 잃어버린 후에야 마법진과 진법을 파해할 수 있었다.

  “죽여버린다!”

  정면에 나타난 유타와 안젤리카를 향해 분노를 표출한 벤투스였다. 그에 반해 유타는 조금 당황한 듯한 표정을 지었다.

  “가딩스타 후작! 당신이 여기는 왜?”

  “오늘이 네놈들의 마지막이 될 것이다!”

  심상치가 않았다. 가딩스타 후작의 몸에서 흘러나오는 기파가 상상 이상으로 강했다. 전보다 더 강해진 것이 눈에 보였다.

  ‘보인다.’

  유타는 상대의 실력이 느껴지자 신기한 느낌과 더불어 자신의 실력이 더 강해졌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마스터가 되고 나니 전과는 다른 세상이 보이고 있었다.

  ‘이거 가르딘에게 고맙다고 해야 하나.’

  마스터가 되지 않았다면 비명횡사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딩스타 후작은 자신을 절대 살려두지 않을 테니 말이다.

  “안젤리카, 마법사를 맡아줘."

  “걱정 마세요. 제가 알아서 할게요."

  “그럼 나는 저자를 맡지.”

  안젤리카라면 안전에 대해서 걱정할 필요가 없다. 마법의 조종이라는 드래곤이 인간 마법사에게 당하지는 않을 테니 말이다.

  문제는 자신이었다. 실력이 얼추 비슷하기는 하지만 상대는 오래전에 마스터가 된 자다. 섣불리 움직였다가는 아무것 도 해보지 못하고 죽는 수가 있었다.

  그런데 이상했다.

  상대가 마스터라는 것에 유타는 전율을 맛보았다. 실로 오랜만에 느껴보는 느낌이 아닐 수 없다. 전율이 일자 오히려 살아 있다는 생동감을 느낄 수 있었다.

  ‘오랜 시간 잊고 있었던 느낌이 다시 살아오는 것 같잖아.’

  게으르고 나태한 것을 좋아하는 줄말 알았는데 유타의 잠재된 마음은 전투를 원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가딩스타 후작은 유타가 물러서지 않고 대응하자 눈가를 찡그렸다. 두려움에 떨어도 부족한 판국에 놈은 입가에 미묘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자신을 무시하는 태도라 여겼다. 이제까지 당한 상처들이 떠올라 가딩스타 후작의 자존심을 자극했다.

  “네깟 놈이 감히 나와 맞서겠다는 거냐!”

  “그럼 비겁하게 굴복해서 빌어야겠냐.”

  “그게 네놈에게 어울린다! 어서 빌어라! 고통 없이 죽여줄 수도 있다!”

  가딩스타 후작은 유타가 비겁하게 굴복하는 모습을 보고 싶었다. 그래야 자신의 상처 입은 자존심이 다시 회복될 것 같았다.

  “흥! 멍청한 거냐. 명색이 내가 피닉스 기사단이다. 라이언 기사단은 굴복하거나 도망치는 것을 자주 하나 보지.”

  가르딘에 비해 부족하다 뿐이지, 동기들 모두 수준급의 염장질 실력을 갖추고 있었다. 가딩스타 후작은 복수를 위해 도망을 쳐야 했다. 이유를 불문하고 도망친 것은 사실이다. 가딩스타 후작이 듣기 싫어하는 말을 유타가 끄집어낸 것이다. 화가 나지 않을 수 없었다.

  “갈기갈기 찢어주겠다!”

  “그딴 말은 나를 이기고 나서 하시지.”

  “어디 그 입만큼 실력이 있는지 보아주마!”

  파팟!

  가딩스타 후작이 흥분하여 검을 먼저 출수하였다. 지면을 거세게 차며 유타를 향해 돌진했다. 흥분한 가딩스타 후작에 비해 유타는 냉정했다.

  ‘흥분해 준다면 나야 땡큐지.’

  검이 뻗어오는 목표물이 어디인지 알 수 있었다. 전이라면 알아도 막기 힘들 정도로 차이가 났겠지만 지금은 달랐다. 마스터의 경지에 이른 자 앞에서 이처럼 선불 맞은 오우거처 럼 단순한 공격을 하다니 어리석기 짝이 없어 보인다. 목을 잘라버리려는 가딩스타 후작의 의도가 보였다.

  유타는 카이만 심법을 극성으로 끌어 올리고 있었다. 침착하게 운용할 수 있는 최대한의 힘을 사용하여 가딩스타 후작의 검을 피했다.

  슈우욱!

  “아니?”

  가딩스타 후작은 설마 피할 줄 몰랐다는 듯한 경악성을 내질렀다. 그 즉시 유타의 절기가 펼쳐졌다. 승기를 잡을 수 있는 기회를 마다하지 않는 유타였다. 기회가 왔을 때 확실하게 마무리를 짓지 못하면 오히려 역으로 당할 수도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한편 맞은편에서 대결을 벌이게 된 벤투스는 방심하지 않았다. 안젤리카의 외모가 아름다워서 잠시 흔들리기는 했지만 방심할 수 없는 상황이다. 안젤리카의 마력이 6서클이었다. 더군다나 그녀를 따르는 20명의 마법사들 역시 5서클 이상은 되어 보였다. 아무리 그가 7서클 마스터에 이르렀다고 해도 쉽지 않은 승부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지?’

  의문이 들었다.

  발키리 영지에 마법사가 있다는 말은 들어보지도 못했다. 지금까지 발키리 영지를 공략하기 위해서 조사한 내용과는 전혀 달랐다. 이처럼 고위급 마법사들이 많을 줄은 그도 예상하지 못했다. 남아 있는 여섯 기의 골렘과 자신이 이들을 맡아야 하니 부담이 되었다.

  벤투스가 가딩스타 후작을 보았다.

  ‘응?’

  가딩스타 후작이 밀리고 있었다. 더욱이 놀라운 것은 상대 역시 오러마스터라는 것에 있었다. 발키리 영지에 마스터는 가르딘을 제외하고 없어야 했다. 그런데 버젓이 오러마스터가 자리하고 있었다.

  대량의 고서클 마법사에, 알지도 못하는 오러마스터의 등장. 벤투스의 머리를 어지럽게 만들었다. 성공할 것이라는 예상과는 다르게 불안감이 점점 증폭되어갔다.

  ‘이게 뭐야?’

  허억!

  벤투스가 잠시 한눈파는 사이에 안젤리카가 버스트 플레임(불꽃탄)을 던졌다. 다섯 개의 불꽃이 벤투스의 전신을 덮어 오고 있었다. 버스트 플레임은 던지는 순간 폭발력이 세 배 이상 증가하는 마법이다. 함부로 경시하다 된통 당할 수 있다.

  깜짝 놀란 벤투스가 그 즉시 실드 마법을 쳐서 간신히 막아냈다.

  “이런 치사한!”

  ‘헉!’

  안젤리카는 벤투스가 뭘 하든지 상관하지 않았다. 6서클 마법을 연속적으로 계속 날리고 있었다. 또한 그녀를 뒷받침해 주기 위해서 20명의 마법사들이 5서클 마법을 벤투스에게 퍼부었다. 대량학살 공격을 자행하고 있는 안젤리카와 마법사들이었다.

  벤투스는 정신없이 마법을 방어해야만 했다. 미처 골렘을 움직일 여유조차 없게 되었다. 골렘은 마법사의 명령에 의해서만 움직일 뿐 자의적인 움직임은 불가능했다.

  가르딘과 오래 생활해서 그런지 안젤리카도 선제공격을 선호했다. 이기면 그만이라는 가르딘의 평소 지론이 먹혀 들어가고 있었다.

  반면에 당하는 입장에서는 황당할 따름이다. 지적이고 교양 있어 보이는 안젤리카가 이처럼 치사하고 무식할 줄 누가 알았겠는가! 안젤리카의 아름다운 얼굴에 속은 것이 실수였다. 그런데 대부분은 알고도 속을지 모른다. 그 정도로 안젤리카의 외모는 압도적이다.

  진법으로 가로막힌 지점을 두고 코워드 공작이 버티고 있었다. 이번에는 당하지 않기 위해서 제법 신중을 기하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무언가를 준비해 온 것 같은 움직임이었다. 100명 정도의 병력이 포대를 들고 앞으로 나서고 있었다.

  코워드 공작을 맞이하기 위해서 나선 갈라는 유타가 오기를 기다렸다. 전쟁이 시작되고 있는 이 시점까지 오지 않는 것이 이상했다.

  ‘왜 안 오지?’

  무서워서 도망쳤다는 말도 안 되는 것만 빼고 이런저런 생각이 드는 갈라였다. 잡생각이 들 시간은 없었다. 지금 당장은 전투에 신경을 써야 했다. 적이 코앞에 있는 상황에서 다른 데 정신을 파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다.

  갈라는 코워드 공작이 진법에 들어서기 전, 포대를 든 100명의 병사를 보낸 것에 주목했다. 괜히 보내지는 않았을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발리스타를 저놈들에게 겨냥해서 쏴라!”

  “예!”

  무언지는 모르지만 불안감을 자극하는 것들이다. 일을 꾸밀 때까지 놔둘 정도로 갈라의 아량이 넓지 않다. 일단은 공격하고 나중에 고민하면 그만이다.

  아홉 대의 발리스타가 100명의 병사들을 겨냥했다. 그리고 망설이지 않고 발사했다.

  처어엉!

  쿠구구궁!

  진법의 상공을 뚫고 쇠활이 날아가 병사들을 공격했다. 갑작스럽게 날아오는 쇠활에 공격받은 병사들은 육신이 박살나며 저 세상으로 하직해 버렸다. 그와 동시에 병사들이 들고 있던 포대자루가 굉장한 폭발을 일으켰다.

  투과과과과광!

  지축을 흔드는 엄청난 폭발력이었다. 병사들은 각자 거리를 떨어뜨린 채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삽시간에 아홉 번의 폭발이 일어났지만 남아 있는 병사들이 포대자루에 든 마력탄을 진법 안으로 던졌다.

  퍼퍼퍼퍼퍼펑!

  그 순간에도 발리스타는 계속 날아갔다. 죽어가는 병사들과 터져 나가는 마력탄이 진법에 충격을 주고 있었다. 코워드 공작이 제법 머리를 썼다는 것을 반증했다.

  사실 이번 작전은 코워드 공작의 머리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벤투스의 머리에서 나온 것이었다. 마법진을 공략할 방법이 떠오르지 않자 어찌해야 할지 고민하는 코워드 공작에게

 벤투스가 마력탄을 제공해 주었다. 마법진이라고 해도 모든 방위를 견고하게 만들 수 없으니 마력탄을 사용하면 어느 정도는 마법진을 무너뜨릴 수 있다고 한 것이다.

  우우우웅!

  100개의 진법축 중에서 30개의 진법축이 충격을 받았다. 그로 인해 진법의 흐름이 불규칙적으로 흐르게 되었다.

  “제법 머리를 굴렸군!”

  “진법축이 손상되었어요.”

  갈라가 선제공격하지 않았다면 더 큰 피해를 볼 뻔했다.

  “마력탄은 어디서 구한 거지?”

  마탑과 척을 진 코워드 공작이 저만한 양의 마력탄을 구한다는 것 자체가 이해되지 않았다. 뒷거래를 한다 해도 구하기가 어려울 것이다. 돈도 돈이지만 마력탄을 구하는 것 자체가 위험한 일이었다.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니, 모두 전투대형을 갖추고 대기해!”

  “예!”

  진법 안이 불안하니 산개 전투는 하지 않는 게 나을 것 같았다. 잘못하면 진법 안에 갇히는 수가 있었다. 생각했던 대로 전투가 진행되지 않자 갈라는 유타가 오지 않는 것이 더 궁금해졌다.

  코워드 공작은 진법이 흔들리는 것을 보자 아쉬움이 더했다. 마력탄을 좀더 가까이에서 터뜨렸다면 무너뜨릴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아쉽군.”

  “계속 투입하면 무너뜨릴 수 있을 겁니다!”

   “병력을 앞으로 더 보내!”

  병사들이 죽든 말든 상관하지 않았다. 진법을 걷어내기만 하면 이번 전투는 승리할 수 있었다.

  ‘내부에서 놈들이 날뛰고 있으니 수는 더 줄어 있겠지!’

  지금쯤 벤투스와 가딩스타 후작이 영지 내부를 공격하고 있을 것으로 짐작한 코워드 공작이었다. 발키리 영지가 전장에 모든 병력을 쏟아 붓지 못할 것이라 예상했다. 발키리 영지를 장악하고 난 후, 가르딘이 당황할 것을 생각하니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네 이놈! 감히 나를 건드리고 그냥 넘어갈 성싶었던 것이냐! 평생 씻을 수 없는 후회를 하게 만들어주마!’

  원한에 사로잡힌 코워드 공작에게 다른 것은 들어오지 않았다. 오직 가르딘에 대한 복수뿐이다.

  퍼펑! 타탕!

  가딩스타 후작은 심장부를 파고 들어오는 오러블레이드를 쳐내고 난 후 연방 뒤로 밀려나가고 있었다. 기세를 잃은 순간부터 지속적으로 밀렸다.

  가딩스타 후작은 정신적으로 상당한 충격을 받았다. 설마 변방 영지의 기사 따위가 오러마스터일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그로 인한 심적인 충격과 기선제압으로 인해 몇 번의 위기를 맞았다.

  “젠장!”

  가딩스타 후작이 거친 노성을 터뜨렸다.

  유타는 침착하게 검을 출수하면서도 가딩스타 후작의 반응에 내심 곤혹스러워했다. 방어 도중에 출수되는 반격이 만만하지 않았다. 별다른 표정 없이 막아서고 있지만 간담이 서늘해지고 있었다.

  “역시 라이언 기사단의 부단장이구나!"

  검의 능숙함이 비교가 되지 않았다. 기선제압이 이루어지지 않았다면 정말 목숨을 내놓아야 할지 몰랐다.

  카카카캉!

  수백 초의 검격이 부딪쳤다.

  그러면서도 가딩스타 후작은 결정적인 공격은 필사적으로 막아내어 심각한 부상을 당하지는 않았다. 검격이 교차되는 시간이 지날수록 익숙해지고 있다는 반증이었다.

  지금까지 유타는 킹덤나이트에서 배운 일렉트릭 검법과 스톰 검법만을 적절히 혼용하고 사용하고 있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여유를 찾고 있는 가딩스타 후작이 본격적으로 반격을 준비했다.

  “네놈도 여기까지다!”

  코카 왕국의 삼대검법이라고 불리는 라이언 검법이 본격적으로 펼쳐지려고 했다. 수비에서 공격으로 전환하는 시점이었다.

  유타는 냉정하게 상대를 보고 있었다. 아직도 그의 검과 마음은 흔들리지 않았다. 초반의 기세를 꺾는 것으로 승부를 결정짓기에는 가딩스타 후작의 실력이 녹녹치 않다는 것을 수백 초를 부딪치면서 깨달았다. 그래서 절초를 숨기며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

  마침내 참고 있던 가딩스타 후작이 공격으로 전환을 했다. 수비에서 공격을 전환하는 시점에 찰나의 틈이 발생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마스터의 틈은 마스터가 아닌 이상 공격하기 쉽지 않았다. 유타이기에 가능한 방법이다.

  유타는 공격하는 그 찰나의 틈을 파고들며 뇌전폭풍도법의 천뢰섬을 펼쳤다. 뇌전의 빛줄기가 폭풍처럼 뻗어나갔다. 뇌전의 줄기가 섬광이 되어 가딩스타 후작의 시야를 어지럽게 만들었다.

  “이...런!”

  이제까지 이런 절기를 숨기고 기다릴 줄 예상하지 못했다. 여기서 검을 뻗었다가는 뇌전에 몸이 뚫려버릴 수도 있었다. 황급히 몸을 틀어 방어하는 데 주력했다. 있는 힘을 다해야 벗어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얍!”

  슈슈슈슝!

  뇌전의 빛줄기가 가딩스타 후작의 허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살이 타는 듯한 충격을 받았지만 가딩스타 후작은 상처에 신경을 쓰지 못했다. 곧이어 유타가 뇌전폭풍도법의 폭풍뢰를 출수했기 때문이다. 벼락같은 일격에 이어지는 폭풍처럼 강력한 일격이었다.

  파아아아앙!

  “크윽!”

  검격을 막아낸 가딩스타 후작의 입에서 신음성이 터져나왔다. 폭풍뢰에 실린 힘을 흘려버릴 수 없었던 것이다. 검력에 실린 힘을 고스란히 정면으로 받아낸 가딩스타 후작은 심각한 타격을 받았다. 유타는 심호흡을 한 번 하고 난 후 뇌전 폭풍도법의 마지막 절초를 사용하였다.

   -뇌전폭풍도법-4절초-참풍멸마.

  바람을 베는 압도적인 빠름으로 마를 멸하는 뇌전폭풍 도법의 궁극의 절초가 발현되었다. 유타가 마스터가 되고 난 후 처음으로 펼치는 완벽한 초식의 구현이었다. 빠르고 사나운 오러블레이드가 가딩스타 후작의 전신을 노리며 베어왔다.

  사사사삭!

  퍼퍼퍼펑!

  오러블레이드가 허공과 지면을 휘젓자 먼지가 사방을 가득 메웠다. 한 줄기 바람이 스치고 지나갔다. 뿌연 먼지가 사라진 후 두 사람이 검을 잡은 상태로 서 있었다. 둘 다 호흡이 조금 거칠어져 있었다. 하지만 모습은 천양지차였다. 가딩스타 후작의 머리카락은 산발이 되어 있고, 갑옷은 군데군데 잘려 나가 있었다. 그에 반해 유타는 절기를 출수한 후 호흡이 조금 거칠어져 있을 뿐 전에 비해 차이가 없었다.

  울컥!

  핏물이 목구멍을 타고 흘러나오려는 가딩스타 후작은 참을 수 없는 모욕감을 맛보았다. 가르딘도 아니고 그 부하에게 밀려서 상처를 입고 말았다. 자존심에 심각한 타격을 받은 가딩스타 후작은 더 이상 참지 않았다. 기사로서의 자존심이 무너진 이상 이제는 반드시 이겨야 했다. 이기는 것만이 자존심을 회복할 수 있는 마지막 방법이었다.

  “죽인다!”

  -헬 나이트(지옥의 기사) 소환!

  가딩스타 후작이 잡고 있던 검의 그립 아래의 검은 보석이 암광을 뿜어내었다. 검은빛이 번쩍이고 난 후 가딩스타 후작의 바로 앞 공간이 벌어졌다. 벌어진 공간에서 전체적으로 검은색의 거대한 기체가 지상으로 내려왔다.

  쿠쿵!

  묵직한 소리와 함께 드러난 기체는 지옥의 기사를 연상케 하였다. 8미터에 육박하는 거대한 기체의 머리가 열렸다. 그 안으로 가딩스타 후작이 올라타서 들어갔다.

  퍼펑!

  -헬 버스터(지옥의 광선).

  벤투스와 골렘, 안젤리카와 마법사들의 대결이 치열해지고 있었다. 벤투스가 서클에서 앞서고는 있지만 안젤리카의 주변으로 마법사들이 방어 마법을 펼치고 있기에 별다른 효용을 보지 못하고 있었다. 벤투스의 골렘들도 마법사들이 결계를 치며 움직이지 못하게 만들고 있었다.

  골렘과 마법을 동시에 사용하는 벤투스는 마력이 거침없이 소모되고 있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불리하게 진행이 되었다. 상대가 마법사가 아니라 기사였다면 그나마 덜 불리했을 것이다.

  불리하게 전투가 진행되는 때에 가딩스타 후작이 헬 나이트를 꺼내 들었다. 헬 나이트는 벤투스가 만들어놓은 희대의 역작이었다. 골렘을 연구하면서 축적된 기술력을 바탕으로 모든 연금술과 마법력을 쏟아 부은 타이탄이었다.

  벤투스는 감히 장담할 수 있었다. 헬 나이트야말로 지상최강의 병기라고 말이다. 그 어떤 존재도 막아낼 수 없다고 자신했다.

  벤투스는 고전하는 상황이 단번에 역전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타이탄을 상대할 수 있는 것은 타이탄밖에 없다. 현 대륙에 타이탄은 사라진 존재다. 시골 변방의 영지에 타이탄이 있을 리 만무했다.

  ‘이제 끝이다. ...아니?’

  벤투스의 눈동자가 한도 끝도 없이 커졌다. 말도 안 되는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어떻게 저럴 수가 있는지 눈을 비비고 다시 봐도 믿을 수가 없었다.

  “이럴 수가! 어찌하여 이번 변방에 저것이 있을 수 있단 말이... 허억!”

  벤투스는 또다시 한눈팔다 안젤리카의 역습에 당할 뻔했다. 하지만 안젤리카의 공격보다 더 놀라운 것은 타이탄이 출현했다는 것에 있었다.

  놀라기는 헬 나이트를 소환한 가딩스타 후작도 마찬가지였다. 눈앞에 헬 나이트와 비견되는 존재가 소환이 된 것이다.

  유타는 가딩스타 후작이 헬 나이트를 소환하자 당황했었다. 설마 그 안에서 타이탄이 나올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 타이탄은 모든 병기의 최정점에 달해 있는 전설의 병기다. 아무나 구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소리다. 상황이 적잖이 당황스럽게 흘러갔다.

  유타는 어쩔 수 없다는 것을 느꼈다. 웬만한 일이면 타이탄을 소환하지 않겠지만 적이 타이탄을 소지하고 있다면 얘기가 달라졌다.

   ‘동기들 중에서 내가 가장 먼저 사용하게 됐구나!’

  연습은 해도 시용할 일이 없을 것이라는 애초의 예상이 빗나갔다. 때마침 적시에 적이 나타나주는 바람에 사용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유타가 비장한 각오를 한 후 이름을 불렀다.

  -발키리 소환.

  우우웅!

  공간이 갈리며 발키리가 모습을 드러냈다. 헬 나이트와 비슷한 크기와 신체 구조를 가지고 있는 발키리의 위풍당당한 모습이었다. 유타가 잽싸게 발키리에 올라탔다.

  가딩스타 후작은 당황한 채 한동안 멍하니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도 타이탄이 예사 병기가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이런 곳에 또 다른 타이탄이 있을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의문은 끝을 모르고 커져갔다.

  의심이 들자 가르딘이 도대체 뭐 하는 놈인지 알 수가 없게 되었다. 영지에 오러마스터와 고서클 마법사가 있지 않나! 이제는 타이탄까지 구비를 하고 있었다. 변방 오지의 영지에 없는 게 없었다. 이 정도 전투력이라면 제국이라고 해도 쉽게 무너뜨리지 못할 것이다. 헥토르 왕국이 왜 발키리 영지를 점령하지 못했는지 이해가 갔다.

  ‘가르딘은 위험한 놈이다! 이런 놈이 이제까지 자신을 숨기고 있었다니!’

  세상을 지배하기 위해서 힘을 숨기고 있었다는 말도 안 되는 상상을 하게 된 가딩스타 후작이었다. 그러나 가르딘의 진실을 알면 놀라서 혈압이 터질지도 모른다. 이 모든 게 가족의 안위를 위한 것이라면 말이다.

  물론 사실을 말해도 보통 사람은 믿지 못한다. 가딩스타 후작도 믿지 않을 것이 틀림없다. 그 어떤 미친놈이 이런 대단한 병기들을 가족 방어만을 위해 사용하려고 하겠는가! 상식적으로 이해가 불가능할 것이다.

  가딩스타 후작은 가르딘에 대한 극도의 두려움을 느꼈다. 그가 보여준 이제까지의 진실이 모두 거짓이었다. 지금까지 보여준 것만 해도 자신은 상대가 되지 않는 존재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놈이 오기 전에 부숴버린다!’

  가르딘이 여기 없다는 것에 안도의 한숨이 흘러나왔다. 만약 그놈이 있었다면 복수는커녕 목숨도 보존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그나마 다행이었다.

  가딩스타 후작이 결심을 굳히고, 유타를 상대하기 위해 움직였다.

  처척! 처척!

  발키리와 헬 나이트가 서로를 노려보며 거리를 쟀다. 묵직하고 커다란 기체에 비해 무척이나 가볍고 경쾌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었다.

  먼저 공격을 한 것은 역시나 가딩스타 후작이었다. 5미터에 달하는 헬 나이트의 검이 일직선으로 그어졌다. 유타도 방심하지 않고 가딩스타 후작의 움직임에 주시하고 있다가 검을 뻗었다.

  타아아아아앙!

  우우우우우웅!

  두 기체의 힘과 힘이 부딪치자 사방으로 그 여파가 퍼져 나갔다. 발생한 풍압만으로 주변의 모든 것들이 날아가 버렸다.

  휘익!

  휘청!

  유타가 힘을 발휘했다. 발키리의 기본적인 힘이 발산되자 헬 나이트가 힘을 이기지 못하고 뒤로 밀려났다. 드래곤이 만든 타이탄과 인간이 만든 타이탄이 부딪친 최초의 대결에서 발키리가 승기를 잡았다. 밀려난 가딩스타 후작은 전처럼 방심하지 않았다. 곧바로 중심을 잡고 라이언 검법을 펼쳤다.

  타타타타타타탕!

  검력과 검력이 폭발적으로 부딪쳤다. 사방으로 불꽃이 튕겨 나갔다. 유타는 헬 나이트의 공격에 제법 유연하게 대처했다. 동기들 중에서 감각에서는 가장 뛰어난 능력을 보이는 유타였다. 본능적인 감각을 최대한 발휘하여 헬 나이트의 공격 궤도를 유추해 내고 있었다.

  공격을 하고 있는 가딩스타 후작은 점점 놀라고 있었다. 기본적인 성능에서 발키리가 헬 나이트를 능가했던 것이다.

  벤투스의 경우 타이탄을 만든 것이 이번이 처음이다. 그 수준이 마도시대의 타이탄과는 비교될 수가 없는 실정이다. 더군다나 기본적인 형태를 구축해 나가는 데에 바탕이 된 것이 골렘이기에 그 수준을 넘어가는 정도밖에는 구현하지 못했다. 정확히 말하면 엑서스 급(연습용) 타이탄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벤투스의 타이탄 제조 능력이 떨어진다고는 할 수 없다. 현 시점에서 타이탄을 만들어낸 것만 해도 대단한 능력이기 때문이다. 기술적인 독창성에서는 누구도 따라오지 못하는 경지에 이르렀다. 

  라이젠이 만든 타이탄은 엑서스 급보다 한 단계 위인 노멀 급에 해당한다. 더군다나 그 원형이 플레튬 급 타이탄 가이안을 기초로 해서 만들어졌다. 상급의 원형과 더불어 라이젠이 가진 드래곤하트가 마력을 뒷받침해 주고 있었다. 기능적인 레벨 차이가 현격하게 벌어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밀리면 끝장이다!’

  가딩스타 후작은 밀리지 않기 위해서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오러마스터로서의 실력 차이가 어느 정도 있기에 이 정도로 대결을 벌이고 있는 것이지 아니었다면 순식간에 결판이 났을 것이다.

  -라이언 검법-라이언 임팩트.

  헬 나이트가 발키리의 다리를 노리며 공격하였다. 다리를 공격하여 중심을 무너뜨리려는 수작이었다. 밀리고 있을 때 펼친 시기적절한 공격이 아닐 수 없다. 보통이라면 당황스러운 공격이지만 유타는 그다지 당황하지 않았다. 발키리에는 여러 가지 마법이 결합되어 있다. 순간 점프를 해서 공중으로 날아올랐다.

  “걸렸다!”

  가딩스타 후작은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공중으로 날아오르면 기체의 이동이 자유롭지 못하다.

  하지만 이후에 벌어지는 발키리의 유연한 움직임에 공격 하지 못하고 말았다. 발키리가 공중에 떠오른 상태로 있었기 때문이다. 타이탄의 무게를 감안하면 플라이 마법을 사용하기 힘들었다. 또한 저 정도로 자유롭게 날지도 못한다. 가딩스타 후작의 입장에서는 환장할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유타는 공중에 떠오른 상태에서 뇌전폭풍도법을 사용하였다. 오러 전이를 통해 발키리의 검에 오러블레이드가 형성되었다. 발키리의 검에 형성된 폭풍 같은 힘을 헬 나이트를 향해 휘둘렀다. 오러 전이에 의해 몇 배나 커진 오러블레이드의 힘은 무자비할 정도로 광폭했다.

  슈슈슈슉!

  꽈과과과과과과과광!

  마치 하늘에서 벼락이 내리치는 것 같은 형상이었다. 지상을 모두 쑥대밭으로 만들어놓고 있었다. 그 아래에 버티고 있는 가딩스타 후작은 공격을 피하기 위해서 안간힘을 다했다. 공격이 너무 강해서 헬 나이트로는 방어할 수 없었던 것이다.

  “이...런!”

  피하는 것도 한도가 있었다. 결국 몇 방을 맞은 헬 나이트가 충격을 받고 튕겨 나가버리고 말았다. 기체가 많이 손상되기는 했지만 아직 움직일 수는 있는 상황이었다.

  “으윽!”

  “허억! 허억!”

  유타에게서 당했던 내상이 다시 도지고 있었다. 숨이 가빠오고, 전신에 땀이 비 오듯이 흐르는 가딩스타 후작이었다.

  지상으로 내려온 발키리가 헬 나이트를 향해 달려들었다. 움직이지 않고 있다고 해서 가만히 있을 유타가 아니었다. 거리를 좁히며 달려든 발키리가 헬 나이트의 머리통을 발로 차버렸다.

  터어어엉!

  쿠다다다당!

  쇠공을 찬 소리가 나며, 헬 나이트는 10미터를 붕 떴다가 바닥을 데굴데굴 굴렸다. 안에 타고 있는 가딩스타 후작은 정신이 하나도 없는 상태였다. 기체의 충격이 고스란히 전달이 되었다.

  유타는 망설이지 않고 또다시 달려들어 헬 나이트를 마구 잡이로 밟았다. 엎어진 자는 밟아주어야 한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아는 유타였다. 기사의 예우 따위는 원래부터 가지고 있지 않았다. 가르딘과 동기들을 만나면 이 점을 유의해야 한다.

  터터터터텅!

  “저럴 수가!”

  자신이 만든 지상최강의 병기가 허무하게 무너지는 충격에 벤투스는 얼이 빠져버렸다. 안젤리카의 공격보다 더 심한 정신적 충격을 받았다. 믿을 수가 없는 현실이었다.

  정신이 무너진 마법사는 더 이상 마법사로서의 역할을 수행하지 못한다. 정확한 주문 영창이 이루어지지 못한 벤투스가 안젤리카의 마법을 맞고 처참하게 나뒹굴게 되었다.

  커어어억!

  가딩스타 후작과 벤투스 모두 비참하게 바닥을 뒹굴었다.

  이제 한 방씩만 더 맞으면 이 세상과 하직할 수 있는 상황이 되었다. 복수를 꿈꾸며 세운 모든 계획이 엉망이 되어버렸다. 말도 안 되는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들은 이것이 꿈이라고 여겼다. 꿈이라면 지독한 악몽일 것이다.

  “꿈...이다.”

  “악...몽이다.”

  부정하고 싶은 것은 알지만 현실은 부정한다고 해서 사라지지 않는다.

  “후우우!”

  제법 힘겨운 전투를 끝낸 후 가볍게 한숨을 내쉰 유타였다.

  까딱 잘못했으면 큰일날 뻔한 상황이었다. 만약 자신이 없는 가운데 저택이 공격받았다면 엄청난 인명피해를 각오해야 했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자 벤투스와 가딩스타 후작에 대한 분노가 치밀었다. 그들은 처음부터 가르딘의 가족을 노린 것이다. 후환을 남겨둘 수 없었다. 반드시 죽여야 하는 존재들이다.

  유타는 망설이지 않고 검을 들어 올렸다.

  안젤리카가 마지막 마법을 발현하였다. 한 방씩만 맞으면 벤투스와 가딩스타 후작은 이 세상을 하직할 것이다.

  “잠깐.”

  어느새 노인이 지척에 다가왔다.

  노인은 안젤리카의 아버지인 라이젠이었다. 라이젠은 전투가 끝날 때까지 곁에서 지켜보고 있었다. 자신이 만든 발키리의 성능을 확인하면서 만족한 듯이 감상했다. 정 위험하면 나서려고 했지만 그 정도까지는 아니었다. 예상대로의 결과였다.

  ‘타이탄을 만든 놈이 저놈이겠지. 이놈도 오러마스터고 말이야.’

  아주 좋은 일꾼을 발견한 라이젠은 기쁨의 환희를 내질렀다. 저런 일꾼을 그냥 죽이기에는 너무 아까웠다.

  유타와 안젤리카는 갑작스러운 라이젠의 등장에 검과 마법을 멈추었다. 유타는 라이젠이 드래곤이라는 것을 알기에 신중하게 대처했다. 무슨 일인지 확인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유타는 발키리를 역소환하고 밖으로 나왔다.

  “무슨 일이십니까?”

  “이거 나한테 주면 안 되나."

  “그러십시오."

  유타는 거절하지 않았다. 아무리 담이 커도 드래곤의 말을 거절하지는 못했다. 따지고 보면 발키리도 라이젠와 것이나 다름없다.

  군말 없이 주는 유타가 이상할 만도 하건만 라이젠은 그냥 모른 척했다. 라이젠은 바보가 아니었다. 지금까지의 상황만 봐도 가르딘을 제외한 동기들이 자신의 정체를 알고 있다는 것을 짐작하고 있었다. 의외로 안젤리카는 모르는 것 같았다.

  [안젤리카의 유희를 위해서도 모른 척해 주게.]

  메시지 마법이 유타의 뇌리를 강타했다.

  [물론입니다.]

  괜히 아는 척하는 어리석은 짓은 절대 하지 않는다. 그리고 심증이 확증이 되었다는 것에 유타는 심장이 떨렸다. 이제까지 어느 정도는 가르딘의 말이 뻥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었다. 당사자에게 직접 들었으니 사실로 확인이 된 것이다.

  “저와 안젤리카는 이만 전장에 가보겠습니다.”

  “승리를 기원하겠네."

  “아빠, 저도 그럼 가볼게요.”

  “우리 예쁜 딸 조심해야 하는 것 알지!”

  “아빠도 참! 저도 다 컸다고요.”

  “알지 그럼!”

  유타는 드래곤 부녀의 모습을 보자 누군가 겹쳐 보였다.

  ‘완전 가르딘이잖아!’

  왜 가르딘과 드래곤이 함께하는지 이해가 되었다. 유타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전장으로 향했다. 뒤는 라이젠에게 맡겨 놓으면 되었다.

  유타와 안젤리카가 전장으로 간 후 라이젠은 벤투스와 가딩스타 후작을 내려다보았다. 상처가 심한 것 같지만 이 정도는 마법으로 치료가 가능했다.

  씨익!

   움찔!

  라이젠이 미소를 짓자 벤투스와 가딩스타 후작이 몸을 떨었다. 기절한 상태지만 본능은 살아 있었다. 과연 살아 있는 것이 행운일지 악운일지 경험하게 될 것이다.

  * * *

  퍼퍼퍼펑! 꽈과과광!

  지속적으로 마력탄이 터지고 있었다. 코워드 공작은 마법진을 부수는 데 모든 마력탄을 다 소모하고 있었다. 진법이 흔들리는 것을 눈으로 보고 있기에 멈출 수가 없었던 것이다.

  갈라는 진법이 무너지는 것을 보면서도 별다른 동요는 없는 편이었다. 적의 규모와 힘을 파악하고 있기에 동요할 필요성을 느끼지 않았다.

  “마력탄을 다 써주면 나야 땡큐지.”

  마력탄은 전쟁시 유용한 무기다. 한 발 값이 장난 아니 라는 것만 제외하고, 그 위력을 무시할 자는 없다. 갈라는 코워드 공작이 마력탄을 다 소모하기를 기다렸다. 마력탄을 전투에 사용하게 되면 많은 인명피해를 각오해야 한다.

  갈라는 파멜라를 뒤로 후퇴시켰다. 전투가 벌어지면 되도록 보호하겠지만 만일의 사태가 발생할 수 있다. 발키리 영지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이 파멜라다. 그녀의 두뇌에서 모든 것이 이루어진다. 파멜라는 반드시 지켜야 하는 중요한 인물이었다. 굳이 위험을 감수하며 전장에 있을 필요가 없다.

  파멜라는 후방으로 빠지기 전에 진법에 변화를 주었다. 어차피 적들이 부수는 전방지역의 진법은 흐름이 무너진 상태다. 그럴 바에는 과감하게 진법의 흐름을 단절시켜 분리시키는 것이 나았다. 여러 개의 혼용진으로서의 역할은 할 수 없게 됐지만 단일진법으로서의 역할은 수행할 수 있을 것이다.

  파멜라는 마지막까지 병사들의 희생을 줄이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병사들도 그 마음을 알고 있었다.

  갈라가 모든 전투태세를 갖추고 적의 침입을 대비하고 있을 때 유타와 안젤리카가 왔다.

  “왜 이렇게 늦은 거야?”

  “일이 조금 있었다.”

  유타는 소리 내어 말하지 않았다. 전투가 벌어지기 직전에 기사들과 병사들에게 불안감을 조성할 필요는 없었다. 대신에 전음으로 일의 경위를 갈라에게 설명해 주었다. 전음을 들을수록 갈라의 표정이 굳어졌다.

  [피해는?]

  [건물이 부서진 것뿐이니까, 걱정할 필요는 없어.]

  [설마 코워드 공작과 그들이 공조를 할 줄이야.]

  지금 생각해 보니 우리 상당히 위험할 뻔했지.]

  [당연한 소리는 빼라.]

  코워드 공작과 가딩스타 후작이 합공을 한 것은 유타와 갈라도 예상하지 못한 변수였다. 만일 그들의 계획대로 이루어졌다면 치명적인 타격을 입었을 것이다. 쥐새끼에게 한 방 먹을 뻔했다는 것 자체가 자존심 상하는 일이었다.

  “받은 만큼 돌려줘야지."

  “이번에는 박멸해도 괜찮겠지."

  “물론."

  유타와 갈라는 코워드 공작에 대한 살의를 느꼈다. 살려 보내준 은혜도 모르는 배은망덕한 놈이었다. 그런 놈을 두 번 살려줄 정도로 마음이 넓지 않다. 이번에는 가장 비참하게 죽여줄 계획이다.

  “기사와 창기병은 전방의 적들을 맞이하고 마법사들은 뒤를 맡는다."

  기사와 창기병 그리고 마법사들의 이상적인 결합이다. 한 영지에 6서클에 달하는 마법사가 20명 이상이 되는 경우는 이제까지 본 적이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누구나 알고 있다. 마법사와 기사, 병사들이 적절하게 결합이 되면 그 무엇보다 무서운 조합이라는 것을.

  “발리스타는 적 후방을 교란하는 데 주력하라."

  “예!”

  흔들리는 진법이 이제는 완전히 사라지고 적의 시야가 보이기 시작했다. 진법이 무너진 것이다. 코워드 공작은 진법이 무너진 것을 확인하자 잔인한 미소를 지었다.

  “드디어 무너졌구나!”

   “그렇습니다. 이제는 공격하는 일만 남았습니다!”

  “날 모욕한 대가를 치르게 해줘야지! 전원 공격대형을 갖춰라!”

  코워드 공작군이 열 개 병단으로 공격진형을 형성했다. 8만의 군단이 열 개로 쪼개지며 돌격준비를 마쳤다.

  1차 선봉으로 두 개의 병단이 전진했다. 코워드 공작은 뒤에서 귀족들과 기사들에게 명령을 하며 결전을 지켜보았다.

  척! 척! 척!

  돌격 명령이 떨어지자 병단이 일제히 진격하였다. 적을 향해 거침없이 밀어붙였다. 돌격하는 병단 뒤로 줄을 이어 나머지 병단이 진격을 감해했다. 평야를 채우며 내달리던 병단이 발키리 영지군과 맞닥뜨리기 일보 직전이었다.

  ‘헛!’

  정면으로 진격하던 1차 공격선봉병단의 병사들이 갑작스럽게 펼쳐지는 검은 구름으로 인해 혼란을 겪게 되었다. 파멜라가 진법의 앞부분과 뒷부분을 분리시키면서 마련한 흑운진이라는 진법이다. 검은 구름으로 시야를 가리는 진법이다. 물리적인 위협을 가하는 진법은 아니다. 적의 시야를 가리면서도 아군의 시야는 멀쩡하다는 것이 장점이다.

  “쏴라!”

  갈라의 외침이 허공에 메아리쳤다.

  앞에 대기시킨 궁수대가 진법을 향해 화살을 쏘았다. 허우적거리는 적을 향해 가차 없이 화살을 날렸다. 적은 화살이 날아가는 줄도 모르고 있었다. 방비조차 하지 못할 것이 확실했다.

  슈슈슈슈슈슈슈슉!

  시커먼 화살이 적 병단을 향해 날아갔다.

  푸우욱! 푸우욱! 푸우욱!

  “커억!”

  “크악!”

  “헙!”

 어둠 속에서 쏟아지는 화살비로 인해 병사들은 방비조차 하지 못한 상태로 절명했다. 순식간에 2천의 병사들이 죽어 나갔다. 어디서 날아오는지 알 수가 없기에 두려움은 가중되었다. 허둥지둥 전진을 반복하며 많은 수의 병력이 목숨을 잃었다.

  전진하는 병사들이 화살비와 암흑을 해치며 간신히 흑운진 밖으로 나올 수 있었지만 그 앞에 발키리 영지군이 버티고 있었다. 마치 먹잇감이 이제야 나타났냐는 듯이 송곳니를 드러내며 살기를 뿜어내었다.

  “죽여랏!”

  와아아아!

  기사단과 창기병이 선두를 맡아 병사들을 이끌고, 적을 향해 돌진했다. 우왕좌왕하며 간신히 빠져나온 코워드 공작군은 발키리 영지군의 압도적인 기세에 별다른 저항도 하지 못하고 죽어 나갔다. 병사들의 질적인 차이가 현격했다. 1차 전투는 압도적인 차이를 보이며 발키 리 영지군의 승리가 확실시되었다.

  전장에서 멀찍이 떨어진 곳에서 지켜보고 있던 코워드 공작은 갑자기 병사들이 허우적대다가 화살비에 몸빵한 것을 보자 기가 막혔다. 어리둥절해하는 것도 정도가 있지 반격 한 번 못해 보고 2만에 달하는 병사가 죽어 나간 것이다.

  “저게 도대체 뭐 하는 거냐?”

  “아...무래도 마법진이 또 있는 것 같습니다!”

  “뭐야!”

  부들!

  코워드 공작은 분노가 치밀었다. 마법진을 모두 해체할 줄 알았건만 또다시 마법진이 가로막고 있었다. 전투를 벌이는 것도 아니고 마법진에 당하기만 하니 짜증과 분노가 함께 치 솟았다.

  “어서 마력탄을 쏟아 부어!”

  “알겠습니다.”

  남아 있는 마력탄도 그다지 많지 않았다. 또한 흑운진은 발키리 영지군과 가까운 위치에 있었다. 유타와 갈라가 마력탄을 터뜨리도록 가만히 놔두지는 않을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마력탄을 들고 가는 병사들을 향해 화살이 쏟아졌다. 마력탄을 던지기도 전에 화살에 맞고 죽어 나가는 병사들이 상당수였다.

  후방 코워드 공작군의 병단에 발리스타가 쏘아지며 수많은 병력 피해를 양산해 내고 있었다. 공격다운 공격도 해보지 못하고 막대한 피해를 입은 코워드 공작군이었다.

  퍼퍼퍼펑! 쿠과과광!

  막대한 손해를 보면서도 코워드 공작은 멈추지 않았다. 후퇴하는 병사들을 가만두지 않았다. 병사들은 어쩔 수 없이 전진하다 희생당하고 말았다. 죽음을 향해 돌진하는 불나방과 신세가 같았다.

  수없이 많은 피해를 보고 난 후에야 흑운진에 마력탄을 던져 무너뜨릴 수가 있었다. 이때까지 입은 피해만 해도 족히 3만 5천은 되었다. 남은 병력이 4만이 조금 넘었다. 적지 않은 피해를 본 코워드 공작이었지만 아직도 이길 수 있다고 장담하였다.

  “적은 고작 1만... 응?”

  1만도 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과는 다르게 적의 규모가 2만은 넘어 보였다. 2만에 달하는 발키리 영지군은 4만의 적을 보면서도 기세를 내뿜었다. 이미 승리를 맛본 이후라 적에 대한 두려움이 사라졌다. 자신감으로 가득 찬 기세가 코워드 공작군을 압박했다.

  “이게 어찌 된 일이야? 왜 병력이 저렇게 많아?"

  “아무래도 가딩스타 후작에게 속은 것이 아닐지.”

  비린스 자작은 처음부터 가딩스타 후작과 음침한 마법사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들이 배신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감히 나를 배신했단 말이냐! 가만두지 않는다!”

  적의 수가 예상보다 많다 해도 절반밖에 되지 않았다. 코워드 공작은 공격 명령을 내렸다. 배나 많은 전력으로 후퇴한다면 웃음거리가 될 것이다.

  “전원 공격해! 남김없이 쓸어버려!”

  4만 3천의 병력이 발키리 영지군을 향해 돌진했다. 수적인 우위를 앞세워 이기겠다는 수작이다. 돌격하는 코워드 공작군을 보자 발키리 영지군의 선봉이 날카로운 기운을 뿜어내었다.

  갈라와 유타는 오랜만에 전면전을 하게 되었다. 준비된 전술을 모두 사용했으니 이제부터는 본격적인 전투만 남았다.

  갈라와 유타는 정면에서 물러서지 않았다. 후방에서 지휘 하는 것은 적성에 맞지 않는다. 더군다나 아군의 사기는 지휘자에 의해 결정이 된다. 쥐새끼처럼 말만 앞세워서는 전장을 지배할 수 없다.

  “전장은 우리가 지배한다!”

  “다가오는 적을 모조리 다 죽여라!”

  “악!”

  발키리 영지군이 짧고 간결하게 기합을 내질렀다.

  중앙을 맡은 유타와 갈라가 본격적인 전투를 치르기 위해 달려 나갔다. 안젤리카가 마법사들을 이끌고 그 뒤를 맡았다. 마법사들은 연방 주문을 외워두고 있었다. 전투가 벌어지는 즉시 마법을 날릴 준비가 되었다.

  “이야야야!”

  “아아악!”

  병사와 병사들이 중간에서 부딪쳤다.

  단병전이 시작이 된 것이다. 수가 많다고 해도 적은 어중이떠중이를 모아놓은 자들에 불과했다. 오랜 시간 고된 훈련을 한 정예군인 발키리 영지군과는 전투력 차이가 현격했다. 더군다나 발키리 기사단과 크레이지드래곤 창기병의 압도적인 위력은 여전히 건재했다. 삽시간에 코워드 공작군의 사상 자가 평야를 채워나가기 시작했다.

  푸욱! 컥!

  발키리 영지군 한 명이 코워드 공작군 두세 명의 병사들을 맞아 유리하게 전투를 펼치고 있었다. 또한 발키리 영지군은 합격술에 대단히 능숙했다. 코워드 공작군의 병사들이 공격을 할 때 일부러 뒤로 후퇴하며 끌어들인 후 원형 포진법을 사용하여 일시에 수명의 병사들을 죽여 나갔다. 유인과 포위를 적절히 구사하여 별다른 피해 없이 적을 사살했다.

  푸아아앙! 활! 활! 활!

  “불이닷! 으아악!”

  불 속성 마법을 시전하여 발키리 영지군을 지원하는 마법사들이었다. 파이어윌, 파이어 필드, 파이어 볼트, 파이어 웨이브 등 각종 대인살상 마법을 연속적으로 사용하였다. 마법에 취약한 병사들이 당황하다가 불에 타 죽어 갔다.

  하늘에서는 화살비와 발리스타가 내리꽂히고, 마법이 난무하고 있었다. 전방에 배치된 발키리 영지군의 무시무시한 전투력에 압도당한 병사들이 두려움에 떨다 죽어가야 했다.

  유타와 갈라는 전진을 멈추지 않았다. 그를 따르는 기사와 병사들이 있는 이상 적을 죽이며 앞으로 나아갈 뿐이다.

  “가자! 적의 수장이 저 앞에 있다!”

  전투는 거의 일방적이었다.

  주력 병력도 아닌 근 시간 내에 모은 병사들이었다. 또한 철저한 준비를 하고 기다리고 있던 발키리 영지와는 다르게 코워드 공작은 다급하게 공격을 서둘렀다. 압도적인 수적 차이라면 모르겠지만 고작 두 배 차이로 이기려고 했던 것 자체가 잘못이었다.

  코워드 공작은 아연실색했다.

  이번에도 처참한 패배를 당하고 있었다. 적들의 공격이 너무 대단했다. 그가 지금까지 알고 있던 전투와는 전혀 달랐다. 병사들의 수적 우세만 가지고서는 이길 수 없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끼고 있었다.

  “또 지다니!”

  “공작님, 이대로는 가망이 없습니다. 후퇴를 해야 합니다!”

  “이럴 수가!”

  코워드 공작은 절망감이 들었다.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이대로 돌아간다고 해도 남은 것이 하나도 없는 상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삶에 연연했다. 여기서 죽고 싶지 않았다. 세상사 죽으면 끝장이다. 일단 살고 봐야 후일을 도모할 수 있다는 것이 코워드 공작의 평소 지론이다.

  “후...퇴하라!”

  코워드 공작은 결국 후퇴를 명했다. 그러면서 가장 먼저 발길을 돌렸다.

  병사들은 아직 후퇴하기에 무리가 있는 상태였다. 발키리 영지군이 빠져나갈 기회를 주지 않고 있었다. 4만의 병력 중 이제 남아 있는 병력은 1만도 되지 않았다. 기동성도 받쳐주지 못하는 상황에서 후퇴하는 것은 자살행위나 마찬 가지였다. 무책임한 후퇴 명령으로 인해 병사들은 무기를 버리고 투항해 버렸다. 병사들의 희생으로 시간을 벌 수 있었다.

  코워드 공작과 살아남은 몇몇 귀족들만 도주를 하게 되었다.

  전투에 종지부를 찍은 갈라와 유타는 도망치는 코워드 공작을 보며 혀를 찼다. 대부분의 사람은 모든 것을 잃으면 끝까지 싸우다 죽는 게 보통이건만 저 치는 그런 생각이 처음부터 없었던 것이다.

  “살기 위해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는다라.”

  “저런 놈은 살려두면 끝까지 방해가 될 거야!”

  “지금 죽여야겠지."

  후환거리를 남겨두면 나중에 고생한다. 끝까지 추적해서 뿌리를 뽑아버려야 했다. 갈라와 유타는 기사단과 창기병을 이끌고 코워드 공작을 추격했다. 어차피 이곳에서 도망칠 곳은 한정되어 있다.

  또다시 필사적으로 도주하게 된 코워드 공작과 일행이었다. 그들은 뒤에서 쫓아올지 모르는 적과 앞에서 나타날지 모르는 적 때문에 불안했다. 예전에도 따돌렸다고 생각하는 순간에 가르딘이 나타나지 않았던가!

  “빌어먹을!”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씩이나 대패를 한 코워드 공작은 자신에게 화가 났다. 왜 계속 패배하는지 이해를 할 수 없었다. 다른 사람들은 다 이해하는 것을 정작 본인은 이해를 못 하다니 패배하는 사람들의 공통적인 특징을 가지고 있었다.

  “다음에는 반드시 복수를 해주마!”

  코워드 공작은 아직도 정신 못 차리고 복수를 꿈꾸고 있었다. 어쩌면 이것이 코워드 공작의 장점이며 단점일지 모른다. 그러나 복수는 해보기 전에 가로막히고 막히고 말았다. 언제 나타났는지 모르게 유타와 갈라가 코워드 공작이 가는 길을 막아서고 있었다.

  “어떻게?”

  “이 지역은 정찰병이 파견되어 있는 곳이다. 너희들이 이동할 곳을 미리 파악하는 것 정도야 간단하지.”

  마법을 사용하지 않아도 정찰병이 있기에 사전에 방위를 차단할 수 있었다.

  코워드 공작과 귀족들의 눈빛이 흔들렸다. 여기서 잘못하면 뼈를 묻어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코워드 공작은 주변을 에워싸고 있는 발키리 기사단과 창기병의 흉흉한 기세를 느낄 수가 있었다. 빠져나갈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방법은 한 가지뿐이다.

   “항복하겠네!”

  뻔뻔하게 이번에도 항복하겠다는 뜻을 내비추었다. 한 번이 어렵지 두 번은 쉬웠다. 더군다나 코워드 공작은 항복에 연연하는 스타일이 아니었다. 지금 당장은 살아야 한다는 것이 중요할 뿐이다.

  “거절한다.”

  유타가 고만도 해보지 않고 코워드 공작의 항복을 거절해 버렸다. 코워드 공작은 다급해졌다. 설마 이처럼 매정하게 거절할 줄은 예상하지 못한 것이다. 똥줄이 탔다.

  “아직 나에게는 많은 자금과 병력이 있네. 내가 항복하면 그대들에게도 좋은 일이 될 것이야!”

  “그런 말은 듣고 싶지도 않아."

  갈라가 눈치를 주자 발키리 기사단과 창기병이 검을 뽑아 들었다. 코워드 공작과 귀족들을 조여들며 검을 들이대었다.

  “살려...주시오!”

  “항복한 자를 죽이는 법은 없소이다!”

  유타와 갈라는 모른 척해 버렸다. 저런 자들을 살려두면 후일 귀찮아진다. 또한 이번에 벌어진 전투에 대해 외부로 알려져 봤자 좋을 게 없다. 이들의 죽음은 전투시 사망했다고 처리해 버리면 그만이었다. 전장은 혼란의 연속성을 가진 지대. 그 안에서 누가 죽건 모든 증거가 사라질 뿐이다.

  “미안하지만 죽어줘야겠다.”

  “제발... 살려주시오!”

  “목숨만 살려주면 무슨 일이든 하겠소이다!”

  코워드 공작과 귀족들이 눈물, 콧물을 흘리며 사정을 했다. 막상 죽는다고 하자 덜컥 겁이 난 것이다. 삶에 대한 처절한 본능이 다시 한 번 고개를 들었다. 자존심 때문에 복수를 감행한 코워드 공작마저 별반 다르지 않았다.

  “제발 그러지 마라. 그러면 우리가 악당 같지 않냐.”

  누가 보면 생사람 잡는 것 같은 장면이 연출되었다. 갈라와 유타는 그들의 사정조에 흔들리지 않았다. 단호하게 결단 했다.

  “죽여.”

  “안 돼! 커억!”

  발키리 기사단과 창기병이 귀족들을 가차 없이 죽였다. 그들에 대한 일말의 동정심도 존재하지 않았다. 자기들만 살기 위해 병사들을 내버려두고 도망간 자들에게까지 예의를 차리는 것 자체가 사치였다.

  부들! 부들!

  코워드 공작은 결국 오줌을 지리고 말았다. 다시 한 번 추태를 보인 것이다. 참으려고 해도 눈앞에서 귀족들이 죽어 나가자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저절로 온몸이 떨리고, 이성은 저 멀리 날아갔다.

  “살려...주시...오!”

  “그딴 말은 죽은 병사들에게나 하시지.”

  “안...돼!”

  사아악!

  “커어억!”

  복수를 하려던 코워드 공작은 결국 허무하게 죽고 말았다. 이로써 발키리 영지를 위협했던 존재를 대륙에서 사라지게 만들었다. 조만간 헥토르 공국은 다시 분열될 것이다. 발키리 영지로서는 더없이 좋은 일이다. 이후에 가르딘이 돌아오고 난 후 헥토르 공국을 집어삼킬 수도 있을 것이다.

  “이제 끝났나.”

  “가르딘에게 연락해야 끝나지."

  “짜식이 많이 놀랄 텐데."

  “그렇겠지."

  “뭘 물어볼지 뻔하다."

  * * *

  외상이 치료가 된 두 사람이 동굴에 누워 있었다. 정신을 차리지 못한 그들을 누군가 발로 건드렸다. 중년인은 두 사람이 편안하게 계속 자고 있는 것이 눈꼴 시렸다. 건방진 놈들이 계속 자고 있는 것을 가만히 두고 볼 수 없다는 사명감에 불타올라 있었다.

   투둑!

  건드린 충격에 의해 정신을 차린 두 사람은 주변을 둘러보았다. 아직까지 살아 있다는 것을 믿을 수 없는 그들이었다. 그놈들이 자신들을 살려둘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정신이 드냐.”

  “누구냐?”

  그제야 자신들을 깨운 존재를 인식하게 된 벤투스와 가딩스타 후작이었다. 중년인의 모습을 한 그는 가볍게 미소를 짓더니 말을 했다.

  “너희들의 상관.”

  “뭔... 개소리냐! 감히 우리가 누군 줄 알고 그따위 소리를 하는 거냐!”

  “죽고 싶으냐!”

  가딩스타 후작과 벤투스가 살기를 뿜어내었다. 예상과 다르게 몸에 금제가 되어 있지 않았다. 이 상태라면 도망칠 수 있을 것이다. 먼저 눈앞에서 헛소리를 지껄이는 건방진 놈을 저 세상으로 보내버리고 도망치면 되었다.

  “아직 정신을 못 차렸네.”

  “죽어랏!”

  -홀드.

  멈칫!

  중년인이 홀드 마법을 걸자 가딩스타 후작과 벤투스의 몸이 굳었다. 몸을 움직이려고 해도 마력과 오러가 반응하지 않았다. 가딩스타 후작의 경우 외상은 나았지만 내상은 아직 낫지 않았다. 오러의 움직임이 부자연스럽기에 더욱 힘들었다.

  “이...럴 수가!”

  벤투스는 기겁하고 말았다. 가딩스타 후작과는 다르게 벤투스는 마법사였다. 상대의 역량이 느껴진 것이다. 자신으로서는 도저히 상대할 수 없는 압도적인 마력이었다. 족히 8서클은 되어 보였다.

  “정신 못 차리면 맞아야지.”

  정지 마법을 걸어놓은 후 멜버른 후작은 가딩스타 후작과 벤투스를 개 잡듯이 패주었다. 움직이지도 못한 채 일방적으로 맞아야 하는 벤투스와 가딩스타 후작은 미칠 것 같았다.

  “크어어억!”

  “그...만!”

  “상하불복종은 아구창 1천 대.”

  헙!

  멜버른 후작은 마치 누군가에게 분풀이를 하듯이 벤투스와 가딩스타 후작을 마구 때렸다. 매에는 장사가 없다고 벤투스와 가딩스타 후작은 맞다가 지쳐버렸다. 때마침 라이젠이 나타나지 않았다면 맞아 죽을 뻔한 두 사람이었다.

  “그만 해라."

  “옙!”

  라이젠의 말이라면 무조건적으로 따르는 멜버른 후작이다. 그 즉시 힐링 마법을 걸고 뒤로 물러섰다. 빠르기가 눈에 보이지도 않을 정도다.

  가딩스타 후작과 멜버른 후작은 숨을 몰아쉬며 긴장한 채 라이젠을 보았다. 8서클 마법사가 저처럼 깍듯이 대하는 존재에 대한 두려움이 들었다. 보는 순간 온몸을 옥죄는 듯한 기분이었다.

  “타이탄을 만들 줄 알지.”

  “내....가 말해 줄 성... 커억!”

  퍼퍼퍼퍼퍽!

 멜버른 후작이 또다시 달려들어 벤투스의 주둥아리를 사정없이 짓밟았다.

  “감히 주인님이 말씀하시는데 그딴 식으로 대답을 해! 입을 뭉개주마!”

  “그만.”

  “옙!”

  언제 그랬냐 듯이 힐링 마법을 걸고, 뒤로 빠지는 멜버른 후작이었다. 라이젠은 인자하게 웃으며 다시 물었다.

  “타이탄을 만들 줄 알지.”

  “그...렇다. 커억!”

   “반말하지 마라! 이 개잡놈아!”

  멜버른 후작이 또다시 주둥아리를 짓밟았다. 라이젠은 굳이 제지하지 않았다. 마치 일부러 그러는 것 같은 모습이었다.

  “나를 위해서 그 지식을 사용해야 할 것이다."

  “어림없다. ...커억!”

  반말을 하거나 주군의 뜻에 반대되는 말을 하면 어김없이 멜버른 후작이 주둥아리를 밟았다. 벤투스는 주둥아리를 맞는 것이 죽는 것보다 더 자존심 상했다.

  ‘왜 때려도 입만 때리는 거야!’

  힐링 마법을 걸어주는 멜버른 후작이 무척이나 얄미웠다. 그때까지 가딩스타 후작은 가만히 있었다. 나서다가 맞을 것 같았다. 이럴 때는 가만히 있는 것이 상책이라고 본능이 말해 주고 있었다.

  “도...대체 누구십니까?”

  “드래곤.”

  “거...짓말!”

  우웅!

  라이젠이 가진 압도적인 기운이 몸에서 뿜어져 나왔다. 기세만으로 벤투스와 가딩스타 후작은 몸이 떨려 말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 드래곤이라는 사실을 믿을 수밖에 없게 되었다.

  그런데 문제는 왜 드래곤이 자신들을 잡아왔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드래곤은 인간의 일에 이처럼 관여하지 않는 것이 보통이었다.

  “우리를 왜 잡아오신 겁니까?"

  “필요해서."

  “우리를 어떻게 하실 겁니까?”

  “세뇌할 거다.”

  “어...찌 그런 잔인한 짓을!”

  벤투스와 가딩스타 후작은 다급해졌다. 세뇌당하고 싶지 않았다. 어떤 존재가 세뇌를 당하고 싶겠는가! 존재 자체를 잃어버리고 싶은 자는 아무도 없었다.

  “괜찮아. 저놈 봐라. 세뇌당했는데도 잘 살잖아.”

  “주인님을 만나서 나는 세상에서 제일 행복하다.”

  라이젠이 멜버른 후작을 가리켰다.

  멜버른 후작은 세뇌당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듯이 기뻐했다. 정상은 아닌 것처럼 보인다.

  벤투스와 가딩스타 후작이 보기에 멜버른 후작이 8서클 마법사이기는 하지만 정신적으로 이상해 보였다. 다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더 세뇌당하고 싶지 않았다.

  “안 돼!”

  “전에도 그런 말 들었다.”

  “그런데 왜?”

  “그때도 내 맘대로 했지."

  -슬립!

  멜버른 후작도 똑같은 말을 했다. 그럼에도 세뇌는 당했다. 반항한다고 해서 될 일이 아니라는 소리다. 수면 마법으로 재우고 난 후 세뇌 마법을 천천히 거는 라이젠이었다.

  라이젠은 타이탄 제조에 대한 새로운 장을 열 수 있을 것이라 기대를 많이 했다. 벤투스와 가딩스타 후작의 인생에 대해서는 양심의 가책도 느끼지 못했다.

  어차피 하는 짓이 나쁜 놈이다. 그런 놈들 좀 평생 부려먹겠다는데 누가 뭐라고 하겠는가! 만약 따지는 놈이 있다면 새로 개발한 스크류 브레스를 날려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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