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르딘 전기 9 건드리고고 @@[Title [email protected]@]
@@[제1장 황궁 혼란@@]
황도 오스란은 어수선했다. 잘했건 못했건 황제는 황제였다. 황제의 죽음에 대한 제국민의 애도의 물결이 이루어졌다. 카이로만 제국 황제의 죽음에 대한 신성제국과 각 왕국들의 사신들도 속속 들어오고 있었다. 황도와 제국 주변국들이 애도하는 분위기와는 다르게 황궁은 혼란스러웠다. 이유는 황제의 죽음에 대한 규명과 다음 대 황태자위에 대한 선정이었다. 아직 어떠한 것도 정해진 것이 없기에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는 분위기다.
황제의 죽음에 대한 진상규명이 먼저 이루어졌다. 1황자와 3황자의 주요 수뇌부인 발리스타 공작과 네벨리언 공작아 진상규명에 대한 증인으로 참석했다. 사실 증인보다는 서로의 움직임을 감시하기 위한 견제였다. 상대가 수작을 부리는지에 대한 원천봉쇄 역할을 했다.
신성제국에서 파견된 대신관 직속 1급 신관 5명, 제국의 7서클 황궁마법사 3명, 특급 치료사 4명이 진상규명에 동원되었다. 조사일은 정확히 10일 이상이 소요되었다. 황제의 몸을 관찰하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압박감을 받는 일이었다. 자칫하여 일이 잘못되는 날에는 규명을 했던 자들 역시 무사치 못하는 위험한 일이다. 조사는 신중하며, 철저하게 이루어졌다.
10일 후에 조사 결과가 발표되었다.
아무런 확증도 발견하지 못했다. 흑마력, 독, 마법력 등 각종 검사가 이루어졌지만 그 어떤 것도 발견되지 않았다.
각 공작이 공증하는 가운데 황제의 죽음이 자연사로 판명되었다. 이제는 황제의 공식적인 장례절차와 황태자 위 선정에 대한 일만 남은 상태였다.
공식적인 규명절차가 끝이 나는 상황에서 발리스타 공작은 아직 의혹이 남은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황제 폐하가 쓰러지고 난 후 다시 일어났을 때부터 갑자기 활력이 넘쳤다. 코스트너 황제의 경우 나이가 너무 많았다. 쓰러진 후 활력이 넘치는 것부터가 이상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마지막에 치료사가 황제의 몸을 검사하는데 이상한 말을 한 적이 있다. 모두가 있는 곳에서 공식적으로 이루어진 말이었다.
-폐하의 심장이 무리한 흔적이 보입니다.
무리하게 일을 진행시키고, 평소보다 많은 움직임을 보였으니 그럴 수도 있지만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발리스타 공작은 한마디의 말도 쉽사리 넘기는 성격이 아니었 다. 치료사에게 다시 물었었다. 한시적으로 사람의 신체에 활력을 줄 수 있는 것이 있는지를 말이다. 치료사는 대답을 망설였다. 갑자기 쓰러진 자가 젊거나 체력적으로 왕성하다면 가능하지만 황제의 경우는 어렵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있다면 치료약 중에서도 금기로 알려진 것 정도다. 금기약도 쉽게 만들 수 없는 어려운 작업을 해야 한다. 치료사는 아는 만큼 대답을 해주었다. 발리스타 공작의 의혹은 점점 더 커졌다. 이제부터는 다른 방향으로 조사를 해야 할 것 같았다. 조사를 위해 발리스타 공작은 러쉬 황자와 파스트론 공작을 대면했다.
“무슨 일인가요?”
“황제 폐하의 죽음에 석연치 않은 점이 있습니다.”
러쉬 황자와 파스트론 공작은 발리스타 공작의 심상치 않은 모습을 보자 의아함을 감추지 못했다. 공식적으로 자연사로 발표되기 전이었다. 장례가 시작되는 10일 후에는 모든 것이 끝이 난다. 발리스타 공작은 미심쩍은 부분을 설명해 나갔다.
“너무 앞서가는 것이 아닌가. 그 정도 일로 의심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고 보는데.”
“아닐 수도 있지. 황제 폐하의 생전 모습과 갑자기 돌아가신 일에 관계가 있다고 보네. 의혹이 있다면 명확하게 밝혀져야 한다고 생각하네.”
러쉬 황자는 쉬이 입을 열지 않았다. 아버지의 죽음에 관계된 일이라면 반드시 밝혀내야 하는 것이 자식된 도리다.
하지만 무리한 조사를 할 경우 3황자 진영에서 가만히 있지 않을 수도 있었다. 조사를 한다는 것은 상대방을 의심한다고 노골적 인 의사표현을 하는 것과 다르지 않았다. 한동안 고민하던 러쉬 황자가 결론을 내렸다.
“비밀리에 조사를 하세요.”
“걱정하는 바는 알고 있습니다. 무리한 조사는 아닙니다. 확실한 증거를 중심으로 조사하겠습니다.”
“그렇게 하세요.”
발리스타 공작은 황제의 죽음과 연관된 증거를 파악하기 위해서 방대한 자료를 분석하였다. 특히, 활력, 심장, 죽음에 연관된 3가지를 집중적으로 분석해 나갔다. 발리스타 공작 가 내의 정보 분석가들을 총동원하여 이루어졌다.
8일이 지난 후에 발리스타 공작은 단서를 발견할 수 있었다. 지금은 사용하지 않는 금기시 되는 약을 찾아내었다. 이름은 데스티브로 400년 전에 사용이 된 약이었다. 독이 아니라 약이었다. 현재, 사라진 이유는 흑마법사들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약을 만들기 위해서 흑마력이 동원되었다. 또한 노인이나 심장이 약한 자들에게는 죽음을 선사하여 데스티브라는 이름이 붙었다. 데스티브의 성질을 파악한 발리스타 공작은 의혹이 더 깊어졌다. 데스티브의 효능이 한 달이었다. 황제가 쓰러지고 다시 일어나서 활력이 넘쳤던 기간과 일치했다.
발리스타 공작이 조사를 진행하는 시기에 또 다른 움직임이 있었다. 황제 직속 비밀기사단 피닉스윙이 비밀리에 조사 를 진행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들은 황궁 내의 은밀한 움직 임을 파악하고 황제의 죽음 이전에 있었던 일들을 밝혀내기 위해 노력했다. 마침내 증거를 확보할 시점이 되었다. 그런데 그때 의문의 죽음이 발생했다. 황궁에서 황제에게 진상하는 술을 담담하던 주조장이 갑자기 급사한 것이다. 의문의 죽음이었고, 왜 죽었는지에 대한증거는 밝혀지지 않았다.
“역시 만만치가 않군요.”
''내일 장례식이 진행됩니다. 더 이상 조사는 이루어지지 않을 겁니다. 안심하셔도 됩니다.”
“안심이라.”
다마트 3황자는 일이 계획대로 진행되지 않는다는 것을 느꼈다. 은밀히 이루어지는 일이었기에 어떤 의혹도 남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건만 적은 벌써 낌새를 차렸다. 예상보다 상대방의 능력이 뛰어났다. 과연 제국의 5대 공작다웠다. 발리스타 공작이 어디까지 진실을 파악했는지도 의문이었다. 또한 황제의 비밀기사단도 신경 쓰이기는 마찬가지였다.
“지금까지 조사한 내용이 밝혀져도 문제가 될 소지가 있겠지요.”
“사실을 모두 파악했다면 이미 나섰을 게 분명합니다!”
“의심의 추궁은 확실할 때 이루어지겠죠. 그전까지는 놈들도 밝힐 수 없을 겁니다. 하지만 그로 인해 파탄이 생기면 불리해지는 것은 우립니다.”
타이가라 공작은 망설이다 대답했다. 발리스타 공작과 피닉스윙이 어느 정도까지 파고들었는지 짐작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지금 당장 대답을 한다고 해도 그것이 확실하지 않았다. 피닉스윙은 2황자의 죽음에 대한 일까지 조사를 하고 있는 상태였다. 시간이 지날수록 불리한 입장이었다. 잘못하다가는 잡아 놓은 고기들까지 놓칠 수 있었다.
“시간이 우리에게 불리하다면 계획을 앞당기는 수밖에 없겠군요. 장례가 끝나는 대로 황태자위 선정에 대한 귀족들의 의견을 모으세요.”
“그렇게 하겠습니다.”
차근차근 진행하려던 계획을 조금 더 서둘렀다. 어차피 시간싸움이었다. 황태자위 선정은 쉽게 끝나지 않을 것이다.
극단적으로 치달을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상황이 빠르게 진행되면 조사는 이루어지지 않을 가능성이 컸다. 이미 일은 벌어졌고, 수습하는 일만 남을 것이다.
황도에 제국 황제의 장례가 치러졌다.
장례는 성대했다. 변방의 귀족들을 제외하고 제국의 모든 귀족들이 참석한 상태다. 수많은 제국민이 장례를 보기 위해 모였다. 카이로만 광장을 가득 메우는 인파는 장관을 이루었다.
적정한 절차에 의해 식이 이루어졌으며, 제국의 황후와 황자가 식의 마지막을 장식했다. 형식적일 수도 있지만 모인 사람들 모두 비통해하는 모습이었다. 제국의 흔들리지 않은 기틀을 마련한 코스트너 황제였다. 그의 살아생전 이룩한 업적은 제국의 역사에 길이 남을 것이다. 마지막에 아이시런 공주가 황제의 주검 앞에 대성통곡하는 모습은 귀족들과 제국민의 가슴을 울컥하게 만들었다.
장례식이 진행되고 난 후 10일 동안 황제에 대한 예를 갖추기 위한 절차가 이루어졌다. 그 뒤로 30일 동안은 황제에 대한 추모기간으로 정해졌다. 장례절차가 모두 끝나야만 다음 일이 진행되는 것이 이치에 합당한 일이겠지만 세상일이 다 그렇게 순차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었다.
예견된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각 황자 진영에서 황태자위선정에 대한 의견이 조금씩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누가 먼저 시작했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어느 쪽이 먼저 했건 그에 대응할 수 있는 움직임이 있어야 했다.
재상인 바이멘 후작이 중재를 하며 황궁회의를 개최하게 되었다. 러쉬 황자와 다마트 황자가 참석해 있는 상황에서 상급귀족들이 참석했다. 각 황자 진영의 귀족들은 규합된 내 용을 공작들을 통해 공표하였다. 대립은 극단적으로 치달았다. 어느 한쪽도 양보하는 기색이 없었다. 황태자위 선정이 이루어지고 난 후 공식적인 황제 즉위식이 이어지게 되어 있었다. 황태자위 선정이 제국의 황제가 되는 초석이었다. 기득권을 쥐기 위한 귀족들의 투쟁은 치열했다. 하나라도 더 얻기 위해, 하나라도 빼앗기지 않기 위해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그것이 정쟁의 치열함이다. 서로를 모략하는 것도 정쟁의 일부일 뿐이었다.
“황태자는 제국의 기틀이 되실 분입니다. 누구보다 깨끗 하고 공명정대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맞는 말입니다. 따라서 그에 걸맞은 분은 러쉬 황자님뿐 입니다. 제국의 장자이자 코카 제국과의 대전에서 큰 공을 세우신 것은 누구나가 아는 사실입니다!”
파스트론 공작이 1황자를 지지하자 네벨리언 공작이 반박에 나섰다.
“누가 깨끗하다는 겁니까! 지니언 황자님이 죽음으로써 가장 큰 이득을 본 사람이 누군지 아직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그걸 잊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코웃음을 치며 러쉬 황자에게 노골적인 적의를 드러내었다. 그에 대해 발리스타 공작이 호통을 쳤다.
“말이 지나치다고 생각하지 않소! 증거도 없이 사실처럼 떠벌리는 공작의 의도가 무엇이오!”
“지나치다니,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을 나는 말했을 뿐이오!”
“그 사실을 누가 아는지 모르겠소이다! 정 그렇다면 나도 밝힐 것이 있소!”
발리스타 공작은 잠시 뜸을 드렸다. 아직 확실한 증거를 잡은 것은 아니었다. 그저 증거를 토대로 말을 할 뿐이다.
“사실 황제 폐하가 갑자기 승하하신 것도 이해가 되지 않소이다! 그로 인한 조사가 이루어지는 과정에서 벌어진 의문의 죽음 또한 아직 밝혀지지 않았소이다!”
그때에 발리스타 공작의 옆으로 누군가 모습을 드러내었다. 그는 이제까지 비밀리에 황제를 보필하던 피닉스윙의 기사단장 드원이었다. 드윈은 황금색의 가면으로 얼굴을 반 이 상 가리고 있었다. 피닉스윙의 존재에 대해서는 알려졌지만 누가 기사단에 속해 있는지는 비밀이었다. 그것은 제국 역대로 지켜져 온 일이다.
장내는 발리스타 공작의 발언에 의해 상당히 시끄러웠다.
무척이나 놀란 듯한 귀족들의 모습이다. 황제의 죽음에 의혹이 있다는 것 자체가 시끄러운 소지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민감한 사안이었다.
'‘황제 폐하 직속 기사단 피닉스윙의 단장을 맡고 있는 드윈입니다.”
그는 성을 밝히지 않았다. 황제 직속의 기사단은 성이 없다. 그저 황제의 신변을 지키고, 황실을 보존하는 역할을 하기 위해 선택이 됐을 뿐이다.
그는 지금까지 조사한 내용을 숨김없이 발표했다. 객관성을 토대로 설명해 나갔기에 누가 옳고 그른지는 황자와 귀족들이 결정해야만 한다. 그러나 들으면 들을수록 1황자보다 는 3황자를 주목하는 것 같은 느낌을 받지 않을 수 없었다.
네벨리언 공작이 다시 일어섰다.
“모두 심증만 있을 뿐 확증은 하나도 없는 빈 수레일 뿐이오! 더군다나 이번 조사는 공식적으로 이루어진 것도 아니오! 그저 발리스타 공작의 개인적인 조사일 뿐이오!”
네벨리언 공작의 말도 설득력이 있었다. 1황자에게 유리 하게 조작하기 위해서 조사를 벌였을 가능성이 크다고 보는 것이었다.
네벨리언 공작은 마음속에 드는 일말의 불안감을 무시했다. 그걸 인정하게 되면 지금까지 자신이 한 행위 자체가 정당성을 잃어버린다. 사람은 태어나서 한 번쯤 물러날 수 없는 상황을 맞이하게 된다. 네벨리언 공작이 바로 그와 같았다. 그는 한번 정한 결정을 바꿀 생각이 전혀 없었다.
각자의 주장은 계속되었다. 귀족들의 의견이 정확히 둘로 나뉘었다. 누구의 말이 설득력이 있는지는 알 수 없다. 그저 벌어지지 않아야 할 일이 점차적으로 다가올 뿐이었다.
황궁이 혼란스러운 만큼 제국도 혼란스러운 상황이다. 귀족세력이 1황자와 3황자로 갈리면서 제국의 황도를 중심으로 정확히 반으로 갈리고 있었다. 그에 따른 군사적 동향 역 시 놓칠 수 없었다. 결국 힘이 누가 더 강한가에 의해 새로운 황제가 선출될 것이다. 어차피 세상은 승자의 역사다. 이겨야만 세상의 정의로서 역사에 기록이 된다.
발키리 영지도 황궁의 움직임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었다. 가르딘은 황제의 장례식에 참석하지 않았다. 거리가 먼 것도 있지만 영지의 준비상태를 점검하는 것이 먼저였다. 황제야 이미 죽어버렸으니 상관없겠지만 남아 있는 사람들에 게는 커다란 짐이 되고 있었다.
가르딘은 발키리 영지를 전시체제로 바꾸었다. 영지민들에게는 미안한 말이지만 상황의 심각성을 알리지 않았다. 괜히 혼란만 가중시킬 뿐이다. 우선은 군사력에 모든 힘을 쏟았다. 부족한 인구에서 군사의 수를 늘리기란 어려운 일이었다. 따라서 상시적으로 동원할 수 있는 병력을 확보하기 위해서 영지민들에게 군사훈련을 실시했다. 기본적인 방어를 할 수 있도록 만들기 위한 방안이었다.
“젠장! 더럽게 골치 아프네!”
군사력을 증강시키자니, 인원도 딸리고 돈도 많이 부족한 실정이다. 돈을 더 마련한 방안을 모색하기 위해 머리 싸매며 고민하고 있었다.
끼이익!
집무실의 문이 열리고 필리언이 들어왔다. 필리언도 요즘 기사들의 수련에 박차를 가하느라 시간이 많이 부족한 상황 이었다.
“무슨 일이야?”
“검을 수리해야 할 것 같아.”
“알았으니까. 모두 모아 놔. 내가 처리할게.”
검을 수리할 때가 되었다. 기사단의 검들 모두 검날이 많이 상한 상태라 다시 예리하게 갈아 놔야 했다. 또한 낡은 검은 새 검으로 확보해야 한다. 기사들에게 검은 생명이다. 검 이 부러지면 생명도 꺾이는 것이다.
“그런데 황제의 장례식에 안 가도 되냐?”
“안 가도 돼. 이미 죽은 사람인데 나한테 신경이나 쓰겠냐.”
“그래도 다른 귀족들이 귀찮게 할 텐데.”
“그런 걱정은 할 필요도 없어. 내게 신경 쓸 시간 따위는 없을 테니까.”
황태자위 선정을 하기도 바쁜 와중에 장례식에 참석하지 않은 귀족들을 일일이 파악할 여유따위는 그들에게 없었다.
“그리고 쥐새끼도 안 갔잖아.”
“그러게.”
“뭔가 꿍꿍이가 있을지 몰라.”
주변 영지 중에 주의를 기울여야 하는 곳은 한곳밖에 없는 실정이다. 바로 코워드 공작이었다. 핵토르 공국에 머물고 있는 코워드 공작에게는 10만의 병력이 있었다. 갑자기 쳐들어오면 문제가 심각해진다.
“그럼 위험한 것 아니냐! 아무리 그래도 병력 차이가 많이 나는데.”
“그래서 파멜라에게 진법을 다시 설치하라고 했지.”
“시간이 많이 걸리잖아.”
사실이 그랬다.
핵토르 공국과 전쟁을 치를 때보다 시간이 촉박할지 몰랐다. 대규모 진법을 설치하기 위해서는 시간과 돈, 그리고 뛰어난 기술자가 필요하다. 빠른 시일 내에 대규모 진법을 설치하기는 예상보다 쉽지 않은 일이다.
“그래서 하는 말인데.”
가르딘이 필리언에게 작전을 속삭였다. 의아심이 드는 필리언이 반문했다.
“아무리 그래도 걸려들까.”
“내 생각에는 걸려들 것 같은데.”
“생각이 있는 사람이라면 또 걸려들까.”
“쥐새끼는 머리가 비어 있거든.”
“그럴지도 모르겠다.”
가르딘과 필리언은 코워드 공작을 개무시하고 있었다. 이제까지 보여준 것만 봐도 그럴 이유는 충분했다.
필리언이 나가고 난 후 가르딘은 파멜리를 다시 불렀다.
“부르셨어요.”
“여기 서류를 모두 검토했거든. 우선은 전시체제에 맞춰서 영지를 운영할 수 있도록 점검을 하고 통계를 내줘.”
“알겠어요. 그리고 시키신 대로 진법을 설치하고 있어요. 시간이 부족해서 너무 엉성한데 괜찮을까요.”
시간이 부족한 관계로 고단위 진법을 설치하기에는 무리였다. 범위도 크고, 언제 어떻게 상황이 변할지 예측하기가 어렵다.
“괜찮아. 그놈은 걸리고도 남으니까.”
“그래도 조금 부족한데요.”
“아까도 말했는데, 쥐새끼는 생각이 없다니까.”
“음! 그렇겠네요.”
파멜라도 코워드 공작을 개무시하는 것은 별반 차이가 없는 듯했다. 가르딘의 말에 곧바로 수긍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한편으로 가르딘은 파멜라를 믿고 있었다. 엉성하게만 들었다고 해도 처음 겪는 진법을 코워드 공작이 파훼할 수 있으리라 믿지 않는다. 그런 주변머리를 가졌다면 벌써 공국의 공왕이 되었을 것이다.
나는 드워프 마을에 가봐야 하니까, 내가 말해 놓은 것들을 빠른 시일 내에 분석해 줘.”
“내일까지 작성해 놓을게요.”
가르딘은 미뤄 놓은 일을 파멜라에게 맡기고 난 후 드워프 미올로 떠났다.
파아앙!
공기가 쇳소리를 낸다.
너무 빠르다 보니 주변의 풍경이 느리게 보이기까지 한다. 가만히 서 있는 것처럼 보였다. 가르딘의 움직임은 섬전을 능가하는 것 같았다. 너무 빨랐다. 다크랜드에 들어서자마자 섬전행을 시전했다. 무지막지한 속력이었다. 가는 길에 오우거 1마리가 서 있는 것이 보였다. 오우거는 자신을 향해 무언가 오는 것을 느꼈지만 막상 무엇이 오는지는 볼 수 없었다. 그저 바람이 대기를 가르는 소리만 들렸다.
휘청!
대지를 가르며 달리는 가르딘의 신형으로 인해 풍압이 발생했다. 오우거마저 풍압으로 인해 휘청거릴 정도로 강했다. 바람 같은 신형 사이로 가르딘의 입가에 사악한 호선이 그려졌다.
‘심심한데.’
바보같이 서 있는 오우거의 모습이 보였다. 엉덩이를 내밀고 주변을 살피는 것이 마치 박아 달라고 요청하는 것처럼 보인다. 가르딘은 사양하지 않고 주변에 널브러져 있는 나뭇 가지 하나를 들었다. 사람 팔 굵기보다 조금 더 두꺼운 몽둥이였다. 바람처럼 쾌속하게 움직여 목표를 향해 망설이지 않고 찔렸다.
푸어어억!
‘응?’
엄청 들어간다.
바람이 획! 하고 지나간 순간 오우거는 그제야 느낌이 왔다. 상상할 수 없는 엄청난 고통이 휘몰아치고 있었다.
부들! 부들!
주르르록! 주르르룩!
까칠한 피부 사이로 땀이 비 오듯 흘러내린다. 몸이 저절로 떨리며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핏줄이 마구 튀어나왔다. 눈이 시뻘겋게 달아오른 순간에 입을 크게 벌리자마자 비명성이 다크랜드를 마구 흔들었다
“쿠어어어어어어 엉어어어어어어어어어 영!”
뒤에서 들려오는 상큼한 비명을 들으면서 가르딘은 빠르게 이동했다. 이제 더 이상 오우거는 쾌변의 상쾌함을 느끼지 못하게 될 것이다. 막힌 자의 고통은 직접 겪어봐야 한다. 겪어보면 알 수 있다. 뚫으려고 해도 뚫리지 않은 답답함. 정말 최악이다.
‘미안하다! 외면할 수 없었다.’
똥침을 부르는 엉덩이를 가진 오우거였다. 그것이 오우거의 비애였다. 하필이면 가르딘이 가는 곳에 있는 바람에 횡액을 겪고 말았다.
가벼운 여흥을 즐긴 가르딘은 드워프 마을로 향했다. 요즘 들어 쌓인 불만이 조금은 가라앉는 것 같은 기분을 느꼈다.
탕! 탕! 타아앙! 탕! 탕! 타아앙!
드워프 마을에 도착하자 망치질 소리가 규칙적으로 들려 왔다. 언제 들어도 마음을 시원하게 해주는 호쾌한 쇳소리였다. 드워프가 아니라면 할 수 없는 망치질이었다.
마을 주변에 감시자는 없었다. 가르딘이 마을에 들어가는 동안에도 쇳소리만 여기저기에서 들려올 뿐 나와 있는 드워프는 하나도 없는 상태였다. 무언가에 열중하고 있는 것 같았다.
가르딘은 조심스럽게 움직였다. 민감한 작업을 하는 동안에는 작은 발걸음 소리나 숨소리에도 영향을 받을 수 있다. 힘겹게 일하는 장인에게 부탁하러 온 사람이 방해할 수는 없지 않은가! 가르딘은 지면으로부터 공중 부양했다. 몸속의 내공을 이용하여 대기의 기운과 반작용을 일으킨다. 몸을 깃털처럼 가볍게 만들어서 몸을 띄우는 허공답보의 경지를 의미한다. 고작 4미리미터를 지면에서 띄운 쪼잔한 허공답보지만 대단한 능력이 아닐 수 없다. 가르딘은 지면으로 미끄러지듯이 나아가 마을 촌장인 루인돌프를 찾았다. 초감각의 경지에 이른 가르딘에게 루인돌프를 찾는 일은 식은 수프 먹기였다.
드워프 미을에서 가장 크고 용광로의 온도가 높은 대장간이 있었다. 대장간 밖으로 거푸집에는 여러 명의 드워프가 모여 금속을 주조하는데 열을 올리는 모습이 었다. 무척이나 세심한 작업을 하는지 어느 누구도 호흡소리조차 크게 내지 않았다. 드워프가 이처럼 세심한 작업을 하는 경우는 가르딘도 처음 보았다. 차마 루인돌프 촌장을 부를 수가 없는 상황 이었다.
‘뭔데? 저렇게 열중하는 거야?’
가르딘도 궁금해서 기척을 죽이고 집중했다. 동공을 확대하여 유심히 관찰해 보았다. 검이나, 창, 기타 무기를 만드는 작업은 확실히 아니었다. 여러 가지 금속을 이용하여 부속품 을 만드는 작업처럼 보인다. 하나하나 따로 떨어져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모두 이음새가 만들어져 있어 호환이 가능해 보인다.
“오늘은 이만하지.”
루인돌프 촌장이 작업을 중단하자고 하자 그제야 드워프들이 작업을 멈췄다. 상당히 공을들인 작업이라서 그런지 모두 힘들어하고 있었다. 체력적으로 어디 가서 떨어진다는 말을 듣지 않는 드워프가 힘들어 할 정도의 작업이라는 뜻이다.
스르륵!
빙판을 미끄러지듯이 자연스럽게 나타난 가르딘이 루인돌프 촌장의 등 뒤를 두드렸다.
톡! 톡!
움찔!
갑자기 뒤에서 두드리자 루인돌프 촌장이 놀라서 뒤를 돌아보았다. 언제 나타났는지 가르딘이 서 있었다. 드워프들 대부분이 다 놀라는 눈치였다. 그가 뒤에 서 있는지 아무도 몰랐다는 것이 놀라울 따름이다. 하여튼 평범한 인간은 절대 아니었다.
“애 떨어질 뻔했네, 갑자기 나타나지 좀 말게.”
“뭔데 그리 열중한 겁니까?”
가르딘이 금속부품을 가리켰다.
“저거 말인가. 한 달 전쯤에 라이젠 님이 부품설계도를 가져오셨네. 설계대로 부품을 만들어서 놓으라고 해서 만들고 있었지.”
“라이젠 님이 뭘 만들라고 한 거죠?”
“글쎄, 내 짐작에는 골렘 아니면 타이탄이 아닐까 생각하는데.”
‘호오!’
가르딘이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시간이 꽤 지났으니 지금쯤이면 타이탄을 만들 준비가 거의 완료되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생각하면 할수록 이상하다. 전번에 가르딘이 가이안이라는 핵토르 공국의 타이탄을 거의 다 부쉈다고 했다. 그런데도 설계도를 만들어낼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 상식적으로 말이 되지 않는 일이 아닐 수 없다.
‘내가 중요한 것을 놓친 것 같은데.’
이대로 가만히 있을 가르딘이 아니다. 돈에 관련된 먹음직스러운 냄새가 물씬 풍기고 있었다. 손 놓고 구경만 한다면 가르딘이 아니었다.
“자네는 무슨 일인가?”
“검을 좀 손봐주실 수 있나 해서요.”
가르딘은 아공간 주머니에 넣어 둔 발키리기사단의 검들을 모두 꺼냈다. 총 200자루 정도가 되었다. 검들은 날이 조금씩 나가 있고, 검면이 손상된 상태였다. 이대로 더 사용하게 되면 목숨을 건 대결에서 검이 부러지는 위험한 일이 발생할 수도 있었다.
가르딘이 드워프 마을로 온 이유는 돈이 들지 않기 때문이다.
루인돌프가 손짓을 하자 드워프들이 검을 확인해 보았다. 철로 만들어진 검이라 손만 조금 보면 금세 원래 상태로 되돌아갈수 있었다.
"전번에 파이럴 광석을발견했는데, 조금 섞어 줄까!”
“정말입니까?”
“드워프 마을의 은인에게 그 정도는 해줄 수 있지.”
가르딘도 양심이 있었다. 많은 은혜라고 할 수도 없다. 진법 설치 시 드워프들이 해준 것만 해도 가르딘은 감사하고 있었다. 파이럴은 드래곤본과 맞먹을 정도로 값비싼 광석이다. 일반 기사들이 파이럴을 사용한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았다. 제국의 공작이나 후작 정도는 되어야 가능할 것이다.
“그럼 아주 소량만 섞어 주십시오. 너무 많이 섞어도 의심을 받습니다.”
“그렇게 하겠네.”
그래도 주는 것을 마다하지는 않는다. 공짜로 준다는데 마다하는 인간이 이상한 인간이라고 보는 가르딘이다.
소량의 파이럴이라고 해도 기사들의 능력을 배 이상 강력 하게 만들어줄 것이다. 파이럴의 특징 중에 하나가 바로 오러의 전달력을 높인다는 것에 있었다. 전달력이 높다는 것은 작은 오러 에도 반응한다는 뜻과 일치한다. 오러 소모가 적으면서도 강력한 검기를 사용할 수 있다.
“언제쯤 수리가 되겠습니까?”
“10일 후쯤에 오게. 그럼 다 만들어 놓겠네.”
“그럼 그때 찾아뵙겠습니다.”
가르딘은 루인돌프와 드워프 장로들에게 인사를 하고 난 후 바람처럼 사라졌다. 지면을 미끄러지듯이 유령처럼 움직였다. 대화를 하는 동안에도 허공에 떠 있었던 가르딘이다. 오러 소모가 장난 아닌 능공허도를 유지하고 있었던 것이다. 단, 떠 있는 것인지 알 수 없다는 것이 문제다. 지면에서 4미 리미터니 발바닥을 확인하지 않는 이상 알 수 없다.
루인돌프는 가르딘이 떠나간 곳을 보며 고개를 가우뚱했다.
“저긴 발키리 영지로 가는 길이 아닌데.”
쌔애애앵!
여전히 바람을 가르며 달려 나간다. 가르딘이 가는 곳은 동굴이었다. 그것도 몹시 크고 화려한 동굴이다.
설계도에 따라서 차근차근 부착을 하고 있는 라이젠이었다. 집중하고 있기에 다른 것에는 신경을 쓰고 있지 못했다. 부품의 연계와 마정석의 결합이 가장 중요한 난제였다. 그 옆으로 한 사람이 분주하게 움직이며 라이젠의 시중을 들었다.
“마정석을 가져왔습니다.”
“조심해서 기계의 중심에 올려놔.”
시중을 드는 인물은 라이젠에게 억지로 세뇌를 당했던 멜버른 후작이었다. 멜버른 후작은 이전의 반항적인 성격이 완전히 사라져 버렸다. 라이젠의 말이라면 불구덩이라도 뛰어들 수 있을 정도로 완벽한 세뇌를 당했다. 더군다나 타이탄의 핵심기술과 사용방법을 고스란히 라이젠에게 모두 까발렸다. 물어보기도 전에 알고 있는 사실을 모두 말해 버렸다.
하지만 멜버른 후작도 완벽하지는 않았다. 그가 알고 있는 것은 이미 만들어진 타이탄의 구동 기술 정도뿐이었다. 나머지는 순전히 라이젠의 노력 덕분에 이만한 성취를 얻어낸 것 이다.
“핵심동력기관이 남아 있는 것이 다행이었어. 아니었다면 어림도 없었을 거야. 그렇지 않냐! 멜버튼!”
“역시 라이젠 님은 짱이십니다. 라이젠 님이 아니라면 아무도 이런 엄청난 연구를 하지 못했을 겁니다. 라이젠 님이야말로 저의 등불이자 희망이십니다! 오오! 영원하라 라이젠 님이시여!”
타이탄의 구동기술은 라이젠에게 상당한 영감을 주었다. 오러의 운용을 위해서는 마정석과 기체에 흡수력과 탄력을 가지고 있어야 했다. 그 점을 미세하게 조절하는 것인 핵심 동력기관의 역할이었다. 만약 가르딘에 의해 완벽하게 부서졌다면 다시 만들 엄두도 나지 않았을 것이다.
멜버른 후작은 정신이 이상해진 것 같아 보였다. 세뇌가 너무 강력했던 모양이다. 멜버른 후작은 7서클 마법사다. 더군다나 가르딘에 대한 원한이 너무 커서 라이젠이 마력을 심하게 사용했다. 아마 그에 대한 부작용이 아닐까 추측한다.
“음! 그렇단 말이지요.”
“응?”
획!
뒤에서 말소리가 들리자 라이젠이 고개를 돌렸다. 갑작스러운 말소리에 드래곤 하트가 두방망이질 쳤다. 하마터면 하트 브레이커(심장파열)에 걸릴 뻔했다.
‘이 자식이 언제 여기 온 거야?’
어떤 느낌도 없었다. 레어 전체에 9서클 디텍트(탐색) 마법이 걸려 있어, 침입자가 있으면 바로 알아차릴 수 있게 되어 있다. 디텍트 마법의 경우 보통 6서클 정도로 사용하기 마련이지만 가르딘이 갑자기 올지 모른다는 생각에 9서클 마력을 사용하였다. 그런데도 가르딘에게는 무용지물이었다. 레어 입구에 설치한 마법진조차 소용없었다는 뜻이 아닌가! 더군다나 드래곤의 감각은 그 어떤 존재보다 예민하다. 마력이 분출되는 숨 쉬는 공간 안에 어떤 존재도 숨어 있을 수 없다. 아무리 타이탄 제조에 집중하고 있었다고 해도 등 뒤에 있는 존재를 몰랐다는 것 자체를 믿을 수가 없었다.
'잠자다 암살당하는 것 아냐!’
순간 소름이 돋는다. 수면기에 조용히 찾아와서 목을 따버리면 천하의 라이젠이라고 해두 살아날 가망성은 제로다. 알면 알수록 괴물같이 느껴지는 가르딘이었다.
“이놈아! 왔으면 인기척 좀 해라!”
“난 알고 있는 줄 알았죠. 설마 드래곤이신 라이젠 님께서 몰랐을 줄 알았겠습니까.”
“물... 론 알고 있었지.”
“그럴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무슨 일이냐?”
"좀 전에 핵심동력기관이 그대로 남아 있다고 하셨는데, 이게 어찌된 일일까요. 분명 제게는 다 망가졌다고 한 것 같은데.”
“크흠!”
확실히 전에 다 망가져서 돈도 주지 않고 모조리 다 가져 왔다. 드래곤은 망각의 동물이 아니다. 잊어버릴 수가 없는 내용이다. 또한 거짓말을 할 수도 없다. 시답지 않은 일로 거 짓말을 하게 되면 자연의 품으로 돌아갈 때 곤란함을 겪는다. 라이젠의 머리가 기민하게 회전했다. 거짓말이 아닌 말로 위기를 넘어가야 한다는 사명감을 느꼈다. 이상하게 가르딘에게는 지고 싶은 마음이 없다. 어떻게 해서든 이기고 싶은 감정이 앞섰다.
가르딘은 라이젠의 속마음을 꿰뚫고 있었다.
‘짱돌 굴러가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립니다. 그래서 제게 되겠습니까!’
한동안 말을 하지 않고 눈동자가 돌아가는 것부터가 급해졌다는 반증이다. 망설이는 모습을 보여주지 말았어야 했다. 되는 대로 지낄이더라도 당당할 필요가 있다.
그때였다.
“이놈! 감히 라이젠 님에게 무례하게 굴다니 죽고 싶은 것이냐! 내 한 몸 불살라 네놈의 악행을 응징하겠다! 죽어탓!”
-7서클 빙계 최강 마법 아이스스톰(빙결폭풍).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가르딘에게 덤벼드는 멜버른 후작이었다. 누가 말릴 사이도 없었다. 라이젠은 고민하느라 주변 상황에 한눈 팔 여력이 없는 상태였다. 가르딘은 난데없이 7서클 마법을 난사하는 멜버튼 후작을 어이없어 했다. 물론 마법공격에 당해 줄 가르딘이 아니었다.
아이스스톰은 대단한 위력이다. 7서클의 마력이니 일반 기사들이 당하면 온몸이 얼어붙어 버리게 된다. 반면에 가르딘은 평범한 기사가 아니다. 그 즉시 천룡무상신공의 화룡을 꺼내 들었다. 초열의 기운을 가진 화룡을 품은 가르딘의 몸이었다. 아이스스톰 마법공격은 시원한 바람 역할 밖에 되지 못했다. 열과 한기가 부딪치자 수증기가 발생하여 레어 안을 가득 메워 버렸다.
취이이이이익!
시야를 가리는 수증기 사이로 가르딘의 신형이 번개처럼 움직였다. 별 시답지 않은 존재가 끼어들어 대화 타이밍을 망쳐 놓는 것을 더 이상 방관하지 않았다. 멜버른 후작이 급 히 마법을 다시 시전하려는 찰나에 가르딘이 등 뒤를 점령했다. 멜버른 후작은 눈치도 채지 못했다.
탁!
가르딘의 수도가 멜버른 후작의 목 뒤 혈을 두드렸다. 가볍게 두드리면 마사지가 되지만 그 이상의 힘을 가하면 의식을 끊어 놓을 수 있다.
털썩!
반항 한 번 제대로 못 하고 쓰러져 버린 멜버른 후작이었다. 가르딘은 쓰러진 멜버른 후작을 보면서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갑자기 주제도 모르고 끼어드는 이유를 알 수가 없었다.
“이자는 왜 갑자기 저를 공격하는 겁니까?”
“글쎄, 전에 마력을 조금 심하게 사용하기는 했는데! 그 후로 약간 오버하는 경향이 강해졌어.”
“세뇌를 시켜도 좀 적당히 하시지.”
“그게 다 자네 때문이야.”
“왜 저 때문입니까?”
“자네에 대한 원한이 커서 쉽지 않았다니까.”
사실이 그렇다. 가르딘에 대한 원한이 커서 마력을 심하게 사용했다. 좀 전에 가르딘을 공격을 한 것도 원한 때문일지 몰랐다. 무의식적으로 가르딘에 대한 적의가 작용했던 것 같 다.
‘그보다 내가 조금 손봐서 7서클을 넘어 8서클에 이르는 마력을 가졌는데, 단 한 방에 보내 버리다니! 참, 이놈의 한계는어디까지야.’
7서클을 넘어서는 멜버른 후작을 단숨에 처리하는 가르딘이 점점 더 괴물처럼 느껴지는 라이젠이었다. 좀 전에 보인 화룡의 기운은 레드 드래곤의 브레스와 맞먹는 기운이었다. 솔직히 능력의 한계가 짐작이 되지 않는다. 다 까발려보고 싶지만 그렇게 되면 목숨을 걸어야 할지 몰랐다.
“그보다 먼저 선결되어야 하는 게 있지 않습니까? 아직 해명은 듣지 못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설명이 이렇게 느려서야 의혹만 더 커질 뿐입니다. 제가 마음이 좋아서 참고 있는 것이지, 다른 사람이었다면 기다리다 지쳐 화를 냈을 겁니다.”
“그... 무슨 말인가!”
‘그건 네 생각이고, 어느 놈이 감히 내 앞에서 함부로 말을 할 수 있냐! 네놈 같은 괴물이 아니면 불가능하지!’
드래곤 앞에서 하고 싶은 말 다할 수 있는 인간이 있을까! 가르딘을 제외하고 없다고 봐도 무방했다. 드래곤이 설혹 아니라고 잡아떼도 입을 닫아야 하는 게 정상적인 드래곤과 인간의 관계였다. 할 말 못 할 말 자유롭게 할 수 있으면 드래곤 체면 다 떨어지는 일이 된다.
라이젠의 뇌리에 번뜩이는 섬광이 스치고 지나갔다. 가르딘이 가장 소중히 여기는 존재에 대한 기억이었다.
“나는 자네 부인과 딸을 구해준 것으로 알고 있는데.”
‘음!,’
가르딘도 그 사실을 알기에 머뭇거렸다. 가장 중요한 부분을 찌르고 들어오고 있었다. 약점을 집요하게 물고 늘어지는 것이 대화를 유리하게 이어 나가는 중요한 덕목이다.
“그때 당시에 안젤리카에게 도움을 주는 것과 타이탄 재료를 모두 가져가는 것으로 보상이 된 것으로 압니다. 물론 제 아내와 딸을 구해준 것은 정말 고맙게 생각합니다. 저는 그것이 라이젠 님의 순수한 호의라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설마 아니라고 하시지는 않겠지요. 여기서 중요한 것은 라이젠 님이 저를 속이기 위해 거짓말을 했냐는 겁니다. 진실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만약 거짓말이 아니었다면 진실의 맹약을 통해 선언을 해주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렇게 한다면 저는 두말 않고 물러나겠습니다.”
움찔!
‘이런 여우같은 놈!’
아내와 딸을 구해준 것이 순수한 호의가 아니었다고 할 수도 없는 처지다. 그에 대한 약점을 계속 물고 늘어지면 치사한 드래곤이 되어 버린다. 앞뒤로 어떤 말을 해도 빠져나갈 수 없도록 절대방어마법을 펼치고 있었다. 아무래도 가르딘은 드래곤 수백 마리는 삶아먹은 놈이 분명했다. 대화에서 이길 수 없었다. 더군다나 진실의 맹약은 드래곤도 함부로 해서는 안 되는 중요한 약속이며 진실된 언어다. 어길 경우 정신적으로 심각한 타격을 받을 수 있었다. 분하지만 라이젠은 결국 가르딘의 말발에 또다시 무릎을 꿇어야 했다. 가르딘이 이처럼 집요하게 물고 늘어질 때는 이유가 있다. 그렇기에 라이젠이 먼저 물었다.
“원하는 게 뭔가?”
“전 그저 진실을 알고 싶을 뿐입니다.”
“그만 하게.”
“정 그렇게 원하신다면 말하겠습니다.”
‘이게 원한 거냐! 이 개... 크옥!’
가르딘이 얄미워서 한 대 치고 싶은 라이젠은 화를 꼭꼭 눌러 참았다.
가르딘은 바닥을 가리켰다. 레어의 바닥은 돌로 되어 있다. 그러나 돌은 그저 겉을 감싸고 있을 뿐이다. 드래곤의 숨 쉬는 마력에 의해서 저절로 금이 녹아 바닥에 스며들어가 있 는 상태다. 즉, 두께가 1미터에 달하는 황금이 바닥에 깔려 있을 것이다.
가르딘은 반경 1미터를 중심으로 사각을 그렸다.
“자네 내 침대까지 노리는 건가?”
“그저 조금만 떼어가겠습니다.”
실실 쪼개는 가르딘의 얼굴에 라이젠은 몹시도 분했다.
‘다시 말하지만 저놈의 아가리에 내 기필코 브레스를 작렬시킬 테다!’
다음에는 반드시 이기고 말겠다는 의지를 불태웠다. 패자는 말없이 물러나는 것이 아름답지만 가르딘과 라이젠은 그런 깨끗한 성격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둘 다 뒤끝이 지평선 끝까지 갈 정도로 집요하고 더러웠다.
“알아서 하게.”
“그럼 감사히 받겠습니다.”
가르딘이 천룡무상신공을 운용하여 천룡무상진기를 일으켰다. 기운은 점점 응축이 되었고, 얇지만 그 어떤 칼보다 예리한 검을 만들어내었다. 가르딘의 손바닥 위에 생겨난 검은 투명했다. 겉으로는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엄청난 위력을 가진 검이다. 마음과 오러 그리고 대기의 기운이 일치했을 때야 비로소 완벽한 검이 이루어진다. 이것이 바로 심검이었다. 마음의 검이 가르딘의 의지에 의해서 손바닥 위에 형성되었다. 길이는 그다지 길지 않았다. 정확히 1미터였다.
휘이익!
사아아악!
바닥을 감싸는 돌과 황금이 반항 한 번 제대로 하지 못하고 가볍게 베어졌다. 정사각형으로 베어진 황금 덩어리를 보며 만족한 미소를 짓는 가르딘이었다. 가르딘은 황금 덩어리 를 향해 손짓을 했다. 그러자 저절로 공중으로 떠오르는 것이 아닌가! 돌덩어리보다 무거운 황금 덩어리다. 허공섭물을 이용하여 들어 올리는 것이 결코 쉬울 리 없다. 가르딘은 들어 올린 황금 덩어리를 사용하기 편하도록 만들기 위해 심검을 사용하였다. 심검이 그물망처럼 퍼져 나가 황금 덩어리를 감싸서 훑고 지나갔다.
사아아악!
파팟!
황금 덩어리는 순식간에 작은 덩어리로 분리가 되었다. 족히 수백 개로 분리가 되어 일상생활에서 사용할 수 있는 정도의 크기가 되었다. 지금 이 순간 보여준 가르딘의 능력은 그 어떤 때보다 가공할 만했다. 이제까지 이만한 능력을 보여준 적이 단연코 없다. 이런 굉장한 능력을 고작 황금 자르는 데 사용했다는 것이 문제는 문제였다.
지켜보고 있던 라이젠조차 전신에 소름이 돋았다. 심검으로 황금이 잘릴 때 마치 자신이 잘려 나가는 것 같은 충격을 받았다. 솔직히 가르딘이 심검을 사용하면 막을 수 없을 것 같았다.
“자네 그게 도대체 뭔가? 오러가 맞긴 한 건가!”
“오러라고 하기도 조금 그렇네요. 그냥 간단하게 제 의지의 검이라고 하면 됩니다. 별거 아니니까 신경 쓰지 않아도 됩니다.”
가르딘은 웃으면서 아무렇지 않게 말했지만 라이젠은 웃음이 나오지 않았다. 저걸 보고 웃을 수 있는 놈이 미친놈이었다.
‘저게 뭐가 아무것도 아니야, 의지의 검이라니! 마음먹은 대로 사용할 수 있다는 말 아냐!’
마음만 먹으면 무엇이든 잘라 버릴 수 있다는 말과 진배없었다.
가르딘은 겉으로는 힘들지 않은 척하지만 실제적으로 무척 힘들어하고 있었다. 심검과 허공섭물을 동시에 사용하고 의지를 수백 개로 나누어 그물망처럼 만들었다. 이것이 쉽다니 말이 되지 않는다. 천룡무상신공을 6성 이상 사용해 버린 상태였다. 아무래도 돌아가는 즉시 운기행공을 해야 할 것이다.
'말하기도 힘들다.’
대수롭지 않은 척하기도 힘들었다. 라이젠을 기죽이기 위해서 별짓을 다하고 있는 가르딘이다. 두 팔불출 아버지의 기싸움이었다. 이상하게 서로 지지 않으려고 이를 악물고 있었다.
“저는 영지에 바쁜 일이 있어 먼저 갑니다. 나중에 타이탄이 만들어지면 한 번 보고 싶습니다.”
“그렇게 하게.”
가르딘은 황금을 아공간에 집어넣고 라이젠의 레어를 빠져나와 영지로 신속하게 돌아갔다. 돌아가는 중간에 한 번은 쉬었다가 가야 했다. 오늘따라 무리를 해서인지 몸이 많이 피곤했다.
가르딘이 돌아가고 난 후 라이젠은 레어를 나와 드라이스 산꼭대기에 올라섰다.
-현신
라이젠이 본체로 돌아갔다. 엄청난 크기의 라이젠이다. 골드 드래곤 역사상 가장 큰 드래곤일지도 모른다. 그는 크게 심호흡을 했다. 대기의 숨결이 라이젠의 전신으로 스며든다. 라이젠의 거대한 입에서 상상할 수 없는 기운이 형성 되었다.
후우우우흡!
푸아아아아아앙!
라이젠은 북쪽 허공을 향해 힘껏 숨결을 토해내었다. 억눌린 화를 쏘아내듯이 기운을 발사했다. 기운은 허공의 대기마저 갈라 버리는 무서운 위력을 보였다. 이것이 바로 드래곤 의 전매특허기술이자 최강의 공격력을 자랑하는 브레스였다. 발포된 브레스는 끝도 없이 날아갔다. 도시 하나를 한 방에 보내버릴 수 있다는 말이 허언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라이젠은 표정이 좋지 못했다. 현신한 상태로 표정을 알기는 어렵지만 왠지 그런 것 같다.
“이런 젠장! 이 정도로는 어림없겠어!”
심검을 무너뜨리려면 아직도 부족하다고 보는 라이젠이었다.
“회전력을 한번 줘볼까!”
브레스에 회전력을 싣게 되면 위력이 더 강해질지 모른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사실 드래곤의 브레스는 시간이 지나면 자연적으로 강해지기 때문에 굳이 연구하지 않아도 된다. 또 한 어떤 인간이 브레스를 막아낼 수 있단 말인가! 이제 막 성룡이 된 드래곤의 브레스도 인간아 막아낸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렇기에 브레스를 강화시키려는 수련 따위는 하지도 않는다. 고룡급 드래곤이 브레스 강화수련을 하려고 하다니 상식적인 일은 절대 아니었다. 가르딘을 이겨보려는 의지의 드래곤 라이젠만이 할 수 있는 일이었다.
이로 인해 드래곤 역사상 처음으로 회전이 실린 브레스를 만들어내는 시초가 되었다.
-파워 스크류(Power Screw) 브레스.
사상 최강의 브레스라고 불리게 될 것이다.
가르딘과 라이젠의 자존심 싸움은 아직 끝난 것이 아니었다. 4차전이 남아 있으며 그 이후로도 대결은 계속될 것이다 (to be continue). 그로 인해 사상 최강의 드래곤과 사상 최강의 인간이 탄생되는 시발점이 되었다.
발키리 영지로 돌아온 가르딘은 여유만만했다. 남자의 자존심은 어디에서 나오는가 바로 돈이다. 품 안에 돈이 있어야 넉넉한 인심도 생기고 여유도 생긴다. 사실 돈 없으면 짜증만 나는 것이 남자의 습성이기도 하다. 괜한 일에도 신경 질이 난다고 보는 것이 정답이다.
가르딘은 늦은 밤 시간에 돌아와서 라이나의 침대 속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말없이 두 손을 라이나의 허리 사이로 끼어 넣었다. 인기척을 느낀 라이나가 돌아서며 부스스한 모습으로 미소를 짓는다. 어찌나 귀엽고 아름다운지 가르딘은 희열을 느꼈다. 가만히 잘 수가 없게 만든다.
다음 날 가뿐하게 일어난 가르딘은 라이나의 정성스러운 식사를 대접받고 난 후 집무실로 향했다. 전날의 피로가 확 풀리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만면에 담대한 미소를 지으며 집무실로 걸어가면서 집사들과 시녀들의 인사를 받았다. 오늘따라 기분이 좋은 가르딘은 일일이 손을 흔들어 주었다.
‘나는 관대하다.’
집무실에는 파멜라가 어제 말해 놓은 서류를 정리해 놓고 대기하고 있었다. 역시 일 처리하는 솜씨는 예사롭지 않았다. 또한 시간관념도 철저했다. 점점 더 완벽을 추구해 나가는 파멜라였다.
“군사장비와 기본적인 비축식량, 적정 병력 통계까지 모두 작성해 놨어요.”
“잘했어.”
“파이트너상단을 통해 군수물자를 지원받기 로 했는데, 선금을 주어야 할 것 같아요.”
“얼마면 되는데.”
가르딘은 돈에 여유가 생겼다. 파멜라가 신중하게 꺼낸 군수자금에 관한 일을 별것 아닌 것으로 치부해 버렸다. 그에 반해 파멜라는 영지의 사정을 알기에 가르딘을 이해하지 못했다. 돈이 나올 곳이 한정되어 있는 상태다. 더 이상의 무리한 자금 운영은 빚이 될 수밖에 없는 처지였다.
“영주님, 지금 그런 농담할 때가 아니라고요.”
“날 뭘로 보는 거야. 나 이래 봬도 피닉스기사단 출신이야. 그 정도 능력은 된다고.”
“영주님!”
파멜라의 목소리가 날카롭다. 농담은 아무 때나 하는 게 아닌 모양이다. 그럼에도 가르딘은 여유롭다. 가르딘이 아공간 주머니에서 덩어리 한 개를 책상에 올려놓았다. 파멜라의 화난 표정이 급속도로 풀려 나간다. 찡그린 얼굴 근육들이 가르딘이 올려놓은 덩어리로 인해 화해를 촉진시켰다.
“이걸 어디서? 하지만 조금 부족한데요.”
“이거면 되겠지.”
그냥 돌덩어리도 아닌 황금 덩어리 10개를 마저 올려놓았다. 파멜라의 얼굴에 화색이 돈다.
“필요하면 말만 해.”
“대단해요. 영주님!”
‘*당연하지. 나 영주다. 이 정도 책임감은 있어.”
“갑자기 존경심이 무럭무럭 상승하네요.”
“평소에도 그 마음 유지하도록.”
“물론이에요.”
역시 인심은 돈이다. 또한 존경심도 돈과 권력에서 나온다는 옛말이 틀리지 않았다. 가식이건 진심이건 그건 중요하지 않다. 보이는 것이 중요할 뿐이었다.
가르딘은 집무실에서 필요한 일을 마치고 난 후 기사단으로 갔다.
아침부터 기사단은 열을 올리고 있었다. 필리언, 갈라, 유타의 집중적인 수련을 받고 있는 상태였다. 기사단이 집중적인 수련을 받는 이유는 사이론 때문이었다. 사이론만 특수 훈련을 받는다고 기사들이 착각을 한 것이다. 그것이 가혹행위라는 것은 전혀 생각해 보지 않았다. 그럼에도 기사들은 잘 따라왔다. 원체 수련에 익숙해졌기 때문에 가능한 현상이었다.
가르딘이 나오자 일제히 수련을 멈추고 인사를 올렸다.
“충!”
한마디면 되었다. 길게 해봤자 번거롭고 낯간지럽다. 가르딘은 수련하는 기사들을 둘러보며 한 명씩 눈빛을 마주쳐 주었다.
“수고가 많구나. 매일 수련만 하는 것도 힘들 테니 오늘 저녁에는 내가 크게 한 번 내겠다. 그러니 모두 모여 즐겁게 놀아 보지.”
가르딘은 자신이 쏜다고 말을 했다. 그러자 기사들의 환호성이 절정에 올랐다. 역시 영주를 이 맛에 하는 모양이다. 가르딘은 우월감과 우쭐함을 동시에 만끽하며 만면에 담대한 미소를 여전히 짓고 있었다.
“영주님 ! 만세!”
언제 들어도 지겹지 않은 단어다. 그에 반해 필리언, 갈라, 유타는 몹시 놀라며 의외라는 표정이다. 짠돌이 구두쇠인 가르딘이 돈을 쓰다니 하늘이 반으로 갈라지고 바닷물이 위로 승천하는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네가 돈을 쓰다니.”
“너 가르딘이 아니지.”
“그럴지도 몰라. 저번처럼 변신한 것 아냐!”
쉽사리 믿지 않으려는 동기들이다. 역시 사람을 믿지 않는 정상적인 놈들이다. 너무 쉽게 믿는 게 훨씬 위험할수 있다.
“오늘은 믿어라. 미리 돈을 주마.”
반짝! 반짝!
빛에 반사된 황금의 찬란한 역광이 동기들의 얼굴색마저 변화시켰다. 언제 보아도 기분 좋아지는 누런색이 아닐 수 없다.
“여기에 하나 더 기분 좋은 소식이 있지.”
“뭔데?”
“검에 파이럴을 섞을 수 있을 것 같아.”
“정말!”
“내가 노력 좀 했지.”
파이럴은 금보다 비싼 금속이다. 그 사실을 알기에 동기들도 감탄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드워프에게 엄청난 돈과 정성을 들여 허락을 받을 수 있었다고 동기들에게 말해 버렸다. 드워프 장로가 여기 와서 사실을 떠벌리지 않을 테니 거짓을 사실처럼 조작하는 가르딘 이다. 이로 인해 가르딘의 인기는 대박이었다. 기사들의 충성심을 고양시키는 계기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