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장 황제의 죽음@@]
코스트너 황제가 급작스럽게 쓰러지고 난 후 황궁은 난리, 그 자체였다. 황태자위를 확정하지 않은 시기에 황제가 쓰러진 것은 피바람의 전조를 알리는 서막이었다. 1황자 진영과 3황자 진영 모두 귀족들을 소집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었다.
황궁의 상황이 악화되는 시점에 다행히도 코스트너 황제가 기력을 회복하고 다시 일어났다. 혼란했던 황궁이 다시 안정을 찾는 듯 보였다. 그럼에도 언제 다시 쓰러질지 모르는 황제이기에 서둘러 황태자위 선정에 대한 건의가 이루어졌다. 이것은 당연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만약 또다시 황제가 쓰러져 영영 일어나지 못하면 제국의 앞날이 어두워질 것이다.
하루가 멀다 하고 황제에게 황태자위 선정에 대한 상소문이 계속 올라왔다.
코스트너 황제는 황태자위를 선정해야 한다는 것을 알기에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고 있었다.
특히 황제 직속 비밀단체인 피닉스윙을 동원하여 각 황자의 동태를 세밀하게 파악했다. 아직 2황자의 죽음에 대한 비밀이 풀리지 않은 상황이었다. 그것이 못내 마음에 걸려 황태자위를 선정하지 못하고 있었다.
아들의 죽음을 외면하고 싶은 아버지가 어디 있겠는가! 그것도 음모가 깔려 있을지 모르는 죽음이었다.
코스트너 황제는 당분간 시간이 필요함을 느꼈다. 쓰러지고 난 후 일어났을 때 몸이 전보다 더 활력이 넘쳤다. 젊었을 때와는 다르더라도 확실히 건강해진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이 상태라면 당분간은 걱정이 되지 않았다.
황제는 상소문을 계속 외면할 수만은 없기에 황궁회의를 열었다.
1황자와 발리스타 공작, 파스트론 공작을 비롯한 상급 귀족이 대전에 입조했다. 그 뒤를 이어 3황자와 타이가라 공작, 네벨리언 공작을 비롯한 상급 귀족이 대전에 들어섰다.
황금빛 나는 화려한 복장을 한 황제가 오랜만에 당당하게 걸어 대전의 상석에 앉았다. 황제는 전보다 더 건강해 보이는 모습이었다. 약간의 홍조를 띠는 것을 봐서는 더욱더 건강해진 것 같았다.
코스트너 황제가 입조한 귀족들을 향해 입을 열었다.
“짐이 오늘 황궁회의를 연 것은 더 이상 황태자위에 대해서 논하지 말라는 말을 하기 위해서다. 짐이 이렇게 건강한데 벌써부터 황태자위를 논하는 것은 역심을 품고 있다는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그러니 더 이상 입을 열지 말라.”
1황자 진영과 3황자 진영 모두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황제가 이렇게까지 말했는데 더 이상 말해 봤자 의심만 받을 것이 뻔했다.
알게 모르게 1황자 진영의 표정이 더 어두웠다. 황제의 장자이며 부족한 것 없는 러쉬 1황자다. 그런데도 황태자위를 주지 않는다는 것은 아직도 의심을 하고 있다는 반증이었다. 1황자를 지지하는 귀족들의 동요가 예상되었다.
그에 반해 3황자 진영의 귀족들은 아직 희망이 있음을 알고 기뻐하는 눈치였다.
“물론 오랜 시간을 기다릴 필요는 없다. 당분간 시간을 달라는 것이다. 짐이 신중하게 생각해서 판단을 내릴 것이다.”
코스트너 황제가 단호하게 선을 그어버리자 황궁회의는 찬물을 끼얹은 것처럼 조용해졌다. 제국 내부적인 문제들을 해결하는 선에서 모든 회의가 마무리되어 버렸다.
황궁회의가 끝나고 난 후에가 오히려 바쁘게 돌아갔다. 황궁에 모인 귀족들이 돌아가지 않고 각 황자 진영에 모여 회의를 했다. 특히 1황자 진영의 귀족들은 황제 폐하의 의중이 다른 데 있는 것이 아닌지 논쟁을 벌였다.
“폐하의 뜻을 모르겠습니다! 이런 식으로 나가봤자 분란만을 초래할 것입니다!”
“그래서 어쩌자는 말들인가! 아직 결정된 것은 아무것도 없으니 경거망동하지들 말게! 러쉬 황자님께서는 가만히 계시는데 자네들이 먼저 나서는 겐가!”
발리스타 공작이 귀족들의 동요를 한순간에 잠재워 버렸다. 그의 압도적인 카리스마가 귀족들을 숨죽이게 만들었다. 제국 제1공작이라고 불리는 발리스타 공작이다. 그의 권위에 감히 도전할 수 있는 귀족은 없었다. 더군다나 그 옆으로 제국 제일 기사단장인 파스트론 공작이 두 눈을 시퍼렇게 뜨고 있었다.
두 공작은 알고 있는 것이다. 흔들리는 모습을 보여주면 귀족들의 동요는 눈에 띄게 불어날 수 있었다. 확고한 모습을 보여줄 필요성이 있었다.
조용히 귀족들의 말을 듣고 있던 러쉬 황자가 드디어 입을 열었다.
“두 분 공작의 말대로 아직 아무것도 결정된 것이 없다. 자네들은 내가 이 정도로 흔들릴 것이라 생각하는가. 나는 제국의 1황자다! 내가 흔들리지 않는 이상 제국은 흔들리지 않는다. 아버님께서 결정하지 못하는 것은 확실하게 동생의 죽음을 밝히시려는 것뿐이다. 나 같아도 동생의 죽음은 명명백백하게 밝힐 것이다. 나를 믿어주는 그대들의 신의를 결코 무너뜨리지 않을 테니 걱정하지 말도록.”
러쉬 황자는 자신의 위치를 깨닫고 있었다. 전혀 무너지지 않을 것처럼 단단한 철벽을 연상케 했다. 러쉬 황자에게 뿜어져 나오는 제황의 기운을 귀족들이 보았다. 이건 아무나 가질 수 있는 기운이 아니다. 역대로 황제의 핏줄만이 가질 수 있는 제황의 기질이었다.
‘과연!’
‘황자님 역시 초대 선황 폐하의 핏줄이시구나!’
카이로만 대제의 후손들이 가지는 제황의 기운을 보자 귀족들의 동요가 금세 사그라졌다. 연약하다는 일말의 의심도 사라져 버렸다.
발리스타 공작과 파스트론 공작도 서서히 제황의 자질을 자각해 나가는 러쉬 황자를 진정한 주군으로 인정했다. 러쉬 황자야말로 황제가 될 충분한 자질을 가지고 있다고 보았다.
귀족들의 동요가 사라질 때 파스트론 공작과 발리스타 공작은 만약의 사태를 대비하기 위한 회의를 진행했다. 황제가 지금은 멀쩡하지만 나중은 어떻게 될지 모른다. 손 놓고 마냥 기다릴 수만은 없다.
또한 황제가 갑작스럽게 서거하는 날에는 순식간에 내전이 발생할 수 있다. 내전이 벌어졌을 때 반드시 이루어져야 하는 것은 황도의 사수다. 누가 먼저 황궁을 사수하고, 황제의 서거에 대한 대의명분을 확보하는가가 무엇보다 중요한 일이 된다. 그 일에 대한 전략회의와 군사의 이동 배치에 대한 귀족들의 동의가 이루어져야 했다.
전략회의는 두 공작의 주도하에 이루어지면서도 러쉬 황자가 차분하게 결정을 내려주었다.
러쉬 황자는 간단명료하면서도 확실한 방법을 선호하였다. 의견은 많을수록 좋겠지만 결정은 한 가지로 귀결되는 것이 나았다. 결정되는 것이 많으면 많을수록 분열이 될 수 있었다.
회의는 반나절이 소모되었다. 아침에 바로 끝나 버린 황궁 회의와는 질적으로 다른 회의였다.
3황자 진영도 회의가 이루어졌다.
네벨리언 공작과 타이가라 공작의 주도하에 이루어졌다. 전에는 다마트 황자가 직접 참여하지 않았지만 이제는 달랐다. 본격적으로 움직이기로 약속했으니 당당한 모습을 보여 주어야 했다.
“황제 폐하의 의중이 아직 결정되지 않았으니 우리에게는 기회가 될 것입니다!”
“맞습니다. 이번에 확실하게 입지를 굳히게 되면 다마트 황자님께서 황태자위가 되는 것도 문제가 없습니다!”
3황자를 지지하는 귀족들은 기회가 있다는 것에 반색하며 자신들의 의견을 내놓았다. 타이가라 공작이 귀족들의 의견을 규합하면서 앞으로의 일을 결정해 주었다.
한동안 네벨리언 공작은 말을 하지 못했다. 황궁회의가 있기 전에 크나큰 모욕을 당했다. 발리스타 공작과 파스트론 공작이 의도적으로 네벨리언 공작의 치부를 거론했기 때문이다. 확정적으로 말을 하지는 않았지만 모욕을 느끼기에는 충분했다. 다른 귀족들이 보는 시선도 신경 쓰이기는 마찬가지였다.
‘가르딘 이놈!’
공작들에게 받은 수모나 귀족들이 보는 시선 모두 가르딘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네벨리언 공작이었다. 놈을 만나고 나서부터 제대로 되는 일이 하나도 없었다.
다마트 황자는 차분하게 회의를 진행해 나갔다. 간간이 핵심적인 내용을 지적하는 예리함을 보여 귀족들의 탄성을 자아냈다. 확실히 생각하지 못한 점을 제대로 끄집어내었다.
“아직 확실하게 정해진 것은 없습니다. 그러니 때가 될 때까지 힘을 규합하고 전략을 세우는 것이 무엇보다 우선시되어야 합니다. 원하지는 않지만 최후까지 어떻게 될지 모르는 것이 현실입니다. 다들 자중하며 준비를 철저히 해주기를 바라겠습니다.”
황궁회의가 끝나고 5일 동안 코스트너 황제는 집무를 보면서 정보를 수집하는데 주력하였다. 바이멘 후작이 대내외적인 정보를 분석하여 황제에게 전했다. 코스트너 황제의 건강이 호전된 것에 바이멘 후작은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아이시런 공주가 자주 코스트너 황제를 찾아와 안부를 물었다. 아버지가 쓰러진 것이 제일처럼 걱정이 되었던 것이다. 조금이라도 더 함께 있고 싶어 하는 아이시런 공주로 인해 코스트너 황제는 마음이 안정되었다.
“아버지! 무리하지는 마세요.”
“몸을 생각해서 적당히 하고 있으니 걱정 마라.”
“그래도 아직 불편하시잖아요.”
“네가 자주 찾아오니 몹시 흡족하구나! 한 번쯤 또 쓰러져도 될 것 같구나!”
“아버지! 그런 소리 마세요.”
아이시런 공주가 새침하게 소리를 질렀다. 그러자 코스트너 황제가 호탕하게 웃으면서 공주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아비는 아직 건강하니 네 걱정이나 해라!”
“내일 또 찾아올게요.”
“내일이 기대되는구나!”
아이시런 공주가 물러가고 난 후 코스트너 황제는 침상에 누웠다. 오랜 시간 공무를 본 후에도 별다른 피로감은 없었다. 회춘하는 기분이 바로 이와 같을 것이다.
자기 전에 침상 옆에 준비된 슬라이트페론을 한 잔 마셨다. 적당히 한 잔 마시면 몸의 피로가 싹 가셨다.
침상에 누워 고민을 계속하던 코스트너 황제가 눈을 감았다. 잠을 자야 내일 또다시 공주와 얘기할 수 있을 것이다.
황제는 두 시간 정도 평온하게 수면을 취했다. 그러다가 갑자기 황제가 눈을 떴다. 순간적으로 왼쪽 가슴에 통증이 심하게 왔다. 심장이 정지하는 것 같은 충격이 전해지자 호흡을 제대로 할 수가 없었다.
부들! 부들!
“밖에 … 누 … 크윽!”
코스트너 황제는 소리를 지르거나 몸부림을 치지도 못했다. 그저 가슴을 만지다가 서서히 힘이 빠져버렸다.
눈을 부릅뜨던 황제의 목이 힘없이 뒤로 가라앉았다.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세상으로 떠나버리고 말았다. 황제의 죽음치고는 허망한 죽음이었다.
두 사람이 밤중에 은밀히 밀담을 나누었다.
다마트 황자와 타이가라 공작이었다.
“증거는 확실히 처리했겠지요.”
“확인해도 이미 다 소모가 되었기에 찾을 수 없을 겁니다.”
“그래도 신중을 기할 필요가 있어요.”
“데스티브의 효능은 황자님도 아시지 않습니까.”
타이 가라 공작이 말한 데스티브란 활성제를 의미한다. 독이라고 할 수 없으며 그저 인체의 장기 중에 약해진 심장을 활성시키는 역할을 한다. 평상시의 두 배 이상으로 활성시켜 주기 때문에 죽어가던 몸이 활력을 얻게 된다. 약효는 한 달이다. 그 시간이 소모가 되면 심장이 정지하게 된다. 몸이 더 이상 버티지 못한다고 하는 것이 맞았다.
이것은 건강한 사람에게는 소용이 없는 물질이다. 노인이나 심장이 약한 자에게만 일시적으로 효과가 있는 물질로 시일이 지나 소모가 되면 검출이 불가능하다.
“너무 깊게 파고들지 않았다면 이렇게까지 하지 않았을 겁니다.”
다마트 황자로서도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겉으로는 3황자가 유리한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달랐던 것이다. 황제가 오래 살수록 불리한 상황이 되어가고 있었다.
황제 직속 단체인 피닉스윙의 정보력이 생각보다 대단했었다. 이 이상 파고들게 되면 다마트 황자와 타이가라 공작의 흉계가 드러날지 모른다. 지금까지 계획했던 모든 것들이 무질 수 있는 일이었다.
다음 날.
황궁은 발칵 뒤집혔다.
황제가 일어나지 않았다. 다시 일어나지 않았다는 것은 죽었다는 것을 의미했다. 어제까지만 해도 공무를 보던 황제가 밤중에 서거한 것이다.
황제의 죽음이 곧바로 모든 귀족들에게 전해졌다. 귀족들도 당황하기는 마찬가지였다.
황제의 서거에 대한 파장은 일파만파로 퍼져 나갔다. 하루가 지나지 않아 황도에 있는 모든 귀족들에게 전달이 되었다.
이로 인해 제국 귀족들의 움직임이 바쁘게 돌아갔다.
가장 중요한 것은 황제의 죽음에 대한 사인 규명이었다. 왜 갑자기 죽었는지에 대한 검사가 이루어졌다. 마법사와 신성사제는 물론, 원인규명을 위한 모든 인원이 동원되었다. 하루아침에 규명이 이루어지지는 않을 것이다.
1황자와 3황자 진영에서는 각 귀족들을 규합, 만일의 사태를 대비했다. 황궁에 흐르는 긴장감이 극도에 달해 있었다. 섣불리 먼저 나설 수 없을 정도로 숨 막히는 상황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각 1황자 진영과 3황자 진영의 대립이 점점 심해졌다. 각 귀족들은 사인을 규명하기도 전에 먼저 상대방을 비난하기 시작했다. 대의명분을 확보하기 위한 일이 진행되는 시기였다.
변방의 귀족들에게까지 전달되는데 3일의 시간이 소요되었다. 정확한 규명은 없지만 황제의 죽음은 무엇보다 중요한 일이었다. 반드시 알고 있어야 했다.
오랜만에 집무를 모두 끝내고 휴식을 취하는 가르딘이었다. 라이나와 차를 마시면서 오붓한 대화를 나누었다.
“매일 오늘만 같으면 좋겠는데.”
“저도요.”
영지 내의 중요한 문제는 대부분 처리가 되었으니 파멜라가 알아서 다 할 것이다. 휴식을 취해도 걱정거리가 없었다. 아버지와 두 형들도 처음에는 불편해했지만 곧 잘 적응하는 듯했다.
후다다닥!
파멜라가 급작스럽게 뛰어 들어왔다. 시급을 다투는 일이라 급박한 표정이 겉으로 다 드러났다.
“영주님! 큰일 났어요!”
“왜?”
“황제 폐하께서 서거하셨다고 통신이 왔어요!”
“뭐?”
황제가 죽었다.
“왜 죽었는데?”
“밤중에 돌아가셨대요. 정확한 이유는 아직 발표하지 않았어요!”
“그래서 황궁에서 뭐라고 연락이 왔는데?”
“아무래도 준비를 해야 할 것 같아요.”
가르딘의 인상이 구겨졌다. 이제 조금 편히 발 뻗고 쉬려고 하니 일이 터져버렸다. 그것도 보통 일이 아닌 대형 사고였다. 가르딘은 라이나를 곁에 두며 안타까운 심정이 되어버렸다.
‘왜 자꾸 나만 귀찮게 하는 거야!’
황태자위를 선정하지도 않고 죽어버린 코스트너 황제가 원망스러운 가르딘이었다.
“황태자위나 정해놓고 뒈질 것이지!”
“여보! 심하잖아요.”
“사실이 그렇잖아! 죽을 날을 말하고 뒈지든가!”
이미 죽은 황제를 대놓고 욕하는 가르딘이다. 죽은 자에게 가차 없었다. 살아 있을 때나 아부하는 존재였던 것이다.
짜증이 물밀듯이 솟구쳐 오른다. 이제부터 더 바쁠지도 모른다. 라이나와 있는 시간보다 전장에 있는 시간이 더 많을 것이다. 되는 일이 하나도 없다. 네벨리언 공작의 흉계를 해결하는 것도 귀찮았는데 이제는 더 귀찮은 내전을 준비해야 한다.
<가르딘 전기> 9권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