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40화 (41/93)

    @@[제5장 무적의 파이브 스타즈(Five Stars)@@]

  트윈유니크 협곡

  올라가려는 병사들과 위에서 막아내려고 하는 병사들 모두 필사적이었다. 수적인 열세를 감안하면 수성하는 헥토르 왕국이 상당한 선전을 하고 있었다. 위에 있다는 지형적 이점을 최대한 활용하고 있었기에 가능한 전술이었다.

  “올라가라!”

  “적들을 막아랏!”‘

  각 진영을 맡은 기사들이 병사들을 독려했다. 시끄러운 병장기 소리와 전장의 한가운데서 울려 퍼지는 병사들의 비명이 참혹한 현실을 여지 없이 드러내어ㅤㅆㅏㄷ.

  채! 채챙! 타타타탕!

  “으아아아아아!”

  죽고 싶은 사람이 어디 있으랴! 병사들은 절대 죽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전쟁은 죽음을 종용하고 있는 것 같았다. 한명이 죽고, 또 다른 한 명이 죽어 갈수록 점점 미쳐가고 있었다. 전염이 된 것처럼 서로 치열한 대렬이 진행되었다. 전쟁을 모르던 사람도 마치 악귀처럼 창과, 덤을 찌르고 휘둘렀다.

  트윈 유니크 협곡의 정상에서 지켜보던 사이너스 국왕은 침통함 그 자체였다. 이제는 더 이상 망설일 틈이 없었다. 멜버른 후작의 말대로 이곳에서 계속 버티다가는 고사되는 것을 각오해야 할 판이었다.

  헥토르 왕국이 제국군 두 명을 죽일 때 한 명이 죽어 나간다. 그럼에도 수적인 열 세로 인해 점점 더 밀리고 있는 실정이었다. 마법사들도 마법력을 많이 소모하여 힘겨운 일전을 벌였다.

  “결국 돌아가야 한단 말인가! 어찌하여 하늘은 나에게 이런 가혹한 시련을 주는 것인가!”

  하늘을 향해 한탄의 목소리를 내어 본다. 하늘은 여전히 그 자리에 있을 뿐이다. 어떠한 답변도 주지 않았다.

  “그렇겠지.”

  누군가의 답이 아니라 스스로 결정을 해야한다. 사이너스 국왕은 비장한 각오로 결정을 했다. 현재 사이너스 국왕이 돌아가게 되면 병사들의 사기는 더욱더 저하될 것이다.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돌아가지 않게 되면 모두 죽게 된다.

  사이너스 국왕이 멜버른 후작을 불렀다.

  “멜버른 후작! 최대한 버텨라! 내가 반드시 원군과 식량을 가져오겠다!”

  “목숨을 걸고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반드시 살아 있어야 한다! 짐이 그대와 병사들을 그대로 부고 보지는 않을 것이다!”

  사이너스 국왕의 각오를 느낄 수 있는 멜버른 후작은 마음이 오히려 홀가분해져ㅤㅆㅏㄷ. 사이너스 국왕이 이제야 비로소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왔다고 생각했다. 그렇다면 아직 기회가 있다. 그때까지 최선을 다해 막아낸다면 방법이 생길 수 있다고 믿었다.

  “3천의 병력을 빼서 출발하겠다.”

  “국왕 폐하! 너무 적습니다!”

  “아니다! 후방으로 가는 길에 위험이 있을 리 없지 않은가! 그 정도면 됐다!”

  “폐하! 내정을 다르시려면 병력이 더 필요할지 모릅니다!”

  헥토르 왕국으로 가는 길에 위험은 없을 것이 확실했다. 다만 헥토르 왕국으로 돌아가서 내정을 다스리고, 힘으로 굴복시키기 위해서는 병력이 더 필요했다.

  “괜찮다. 3천으로도 충분히 가능하니 걱정하지 마라. 그러니 더 이상 거론하지 마라.”

  “그러시다면 알겠습니다.!”

   코워드 후작은 트윈유니크 협곡을 바라보면서 한숨이 흘러나왔다. 고작 협곡 따위가 자신을 막아선다는 것 자체가 못마땅했다. 트윈유니크 협곡의 사이로 들어가는 입구가 마치 지옥으로 가는 직행 같았다. 

  병력피해가 계속되고 있었다. 9만 5천의 병력이 8만 5천으로 줄어들었다. 적국의 병력도 줄어들고 있지만 제국군이 배는 더 많은 피해였다. 전쟁이 이렇게 어렵고, 힘들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끼는 코워드 후작이었다.

  “빌어먹을!”

  가장 속상한 것은 병사들이 죽은 것보다 자신의 무능력을 보였다는 것에 있었다. 병사들이야 싸우다 죽으면 그만인 소모품에 불과하다. 자신의 전공을 늘여 주는 도구였다.

  그에 반해 전략과 전술의 실패는 자신의 능력이 모자란다고 광고하는 꼴과 다름없다. 창피하지 않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누구에게도 이 사실이 알려져서는 안 되었다. 

  코워드 후작의 곁으로 버루거 자작이 다가왔다.

  “후작님! 제게 비책이 있습니다!”

  “비책?”

  지금까지의 과정을 보면 그다지 미덥지는 않았다. 병사들의 피해가 막심했던 이유는 코워드 후작의 미숙한 능력도 있었지만 귀족들의 무능함도 한몫했다. 앞뒤 가리지 않고 공격하다 협곡 안에서 죽은 제롬르 백작과 스타인 남작까지 바보같기는 마찬가지였다.

  코워드 후작은 버루거 자작이 못 미덥지만 들어보기는 했다.

  “말해보게?”

  “협곡의 위를 보면 수풀과 나무가 많습니다. 적들이 지형을 이용해서 공격하는데 지속적으로 올라가려고 하는 것은 너무 무모한 전술 같습니다.”

  부릅!

  코워드 후작은 버루거 자작의 말에 심기가 불편해졌다. 지속적으로 공격하라고 지시한 사람은 다른 누구도 아닌 코워드 후작이었다. 작전을 지시한 사람 면전 앞에서 그 따위 말을 하다니 버루거 자작도 눈치가 없기는 마찬가지인 것 같았다.

  ‘네가 날 그렇게 본 것이냐!’

  어디 끝까지 해보라는 듯이 들어는 주었다. 지금 화를 내면 자신의 꼴이 더 우스워진다는 것을 알았다. 

  “이곳 지대를 살펴보니 상당히 건조합니다. 차라리 불을 사용해서 화공전을 펼치는 것이 어떻습니까?”

  “응?”

  코워드 후작은 정말 뜻밖이라는 표정을 지었다. 설마 너 같은 놈이 어떻게 이런 고급 전술을 알아냈느냐 하는 뜻이 담겨 있었다. 솔직히 아주 간단한 전술이지만 생각을 깊게 해보지 않은 것이다. 코워드 후작은 고개를 끄덕였다. 좀 전에 심기를 불편하게 만든 것을 만회하고도 남았다.

  “좋은 생각이다. 그렇게 하지.”

  “그럼 바로 실행하겠습니다!”

  “그런데 자네 어떻게 이런 전술을 생각했나?”

  “코워드 후작님이 고생하시는 것이 안타까워서 최선을 다해 전술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입에 침도 바르지 않고 아부를 떠는 버루거 자작이었다. 기회가 있을 때 아부를 한다. 이것이 버루거 자작이 사는 방식이었다. 거지가 보기에 먹을 수 있을 때 먹는 것과 무슨 차이가 있냐고 할 만한 상황이기도 했다. 

  사실 버루거 자작이 전술을 생각해낸 것이라고 할 수는 없었다. 병사들을 시켜 협곡 위를 공격하는데, 어중되게 자리한 병사 한 명이 투덜거리는 소리를 들었다.

  “제기랄! 그냥 불이나 질러 버리지! 이게 뭔 고생이야!

 득템하고 말았다.

  갑자기 머릿속이 맑아지면서 꽃이 만개하는 듯한 깊은 인상을 받았다. 한순간 지나칠 수 있는 것을 주워 먹게 된 버루거 자작은 무척이나 배가 불렀다. 포만감이 전신을 아우르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그 즉시 코워드 후작에게 달려와서 자신이 심사숙고해서 생각해낸 전술이라고 말을 하였다. 어린 아이가 부모님에게 칭찬받기 위해서 노력하는 것과 별반 차이는 존재하지 않았다.

  코워드 후작이 병사들에게 화공전을 지시했다. 버루거 자작이 말을 한 것처럼 화공전을 한다면 놈들도 오래 버티지 못할 것이라고 보았다.

 화공을 하기 위해서는 불도 필요하지만 기름도 필요하다. 일정 수준 이상의 화력이 일어난 후에 바람의 영향을 받으면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불길이 강해진다. 그때부터는 인간의 힘으로 끄기가 불가능해진다.

  “바람도 불어주고 있군!”

  역풍이 불고 있었다. 바람이 헥토르 왕국 진영으로 불었다. 하늘이 준 절호의 기회였다. 그러나 코워드 후작이 알지 못하는 것이 하나 있었다. 바람을 따라 무언가가 다가오고 있다는 것을 말이다. 인지하지 못한 코워드 후작은 화공전으로 전쟁을 끝낼 수 있다는 것에 많은 기대를 하고 있었다. 

  휘이이잉! 휘이잉!

  바람이 점점 강해졌다.

  화공전에 필요한 물품이 준비되는 대로 바로 시작을 하면 되었다.

  타다다다다닥!

  빗살처럼 나아가고 있다.

 역으로 불어오는 바람을 뚫고 바람처럼 나아간다. 무척이나 빨랐다. 바람 따위는 안중에도 없는 듯한 빠르기였다. 검은 폭풍을 타고 나아가는 오색 천연한 5명의 인물들이 보였다.

 무척이나 생소한 복장을 하고 있었다. 대륙 사람들의 일반적인 옷 입는 풍습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패션이라고 불러도 무방했다. 사실 또라이(미친놈)라는 말을 들어도 틀리지 않았다. 

  “빨리 달려!”

  “누가 볼까 겁난다!”

  필리언, 갈라, 유타는 누군가 자신의 모습을 볼까 봐 더욱 빠른 속도로 달렸다. 정말 쪽팔리기 짝이 없었다. 그 뒤를 끔찍하게 커다란 덩치를 가진 투르가 쫓아 왔다. 필리언은 뒤에서 달려오는 투르를 보고 기가 막혔다.

  “저놈 몸과 얼굴에 저 색깔이 어울린다고 보냐?”

  “전혀!”

  “절대! 아니지!”

  필리언, 갈라, 유타도 짜증이 치밀었다. 그들이 입고 있는 옷도 투르와 비슷한 재질로 이루어져 있었다. 그것도 문제지만 원색적인 색깔이 정말 촌스럽다는 말이 왜 나왔는지 알 수 있는 상황이었다. 

  “이런 걸 생각하는 놈이 있었다니!”

  “그러니까 미친놈이지!”

  “가르딘 말고 이런 걸 생각하는 놈이 있다면 내 주먹을 코에 집어넣겠다!”

  앞에서 달리고 있던 가르딘은 동기들이 투덜거리든 말든 신경 쓰지 않았다. 원색적이고 색깔이 촌스럽기는 해도 옷 재질은 상당히 좋은 편이었다. 다크랜드의 외곽 지역을 조사하던 중에 발견한 것이다. 대륙의 수목백과사전에도 들어 있지 않은 나무의 종류였다. 마을 사람 중에 한 명이 수목의 가지를 자르는 중에 수액을 발견했다. 수액은 상당히 질기고, 점성이 강했다. 나무 이름을 질기고 단단하다고 하여 노프트리라고 불렀다. 수액을 가져다가 우연하게 옷감에 사용했는데, 옷 재질 자체에 탄성이 붙는 것이었다. 옷이 늘어났다 줄어 들었다를 한 것이다. 놀라운 발견이 아닐 수 없었다. 터프트리의 수액을 이용해서 만들어진 옷은 탄력성 있는 것은 좋지만 사람들이 입기에는 조금 민망했다. 너무 타이트하게 조여져서 그런지 남사스러운 옷이 되어 즐겨 입지는 않았다.

  가르딘은 그런 옷이 있다는 것을 발견하고 난 후 일부러 라이나에게 부탁을 해서 5벌의 옷을 만들었다. 어디에서도 없는 재질과, 독특한 패션으로 정체를 알지 못하게 하는 방편으로 사용하기 위해서 말이다.

  “자자! 말할 시간 없어! 빨리 가야 한단 말이야! 가서 기다려야지.”

  “알았어! 인마!”

  헥토르 왕국으로 가는 길은 많지 않다. 트윈유니크 협곡으로 가는 길이 가장 빠른 길이다. 나머지 길은 산을 하나 돌아서 가는 길이었다. 또한 다크랜드에 인접해 있기에 웬만해서는 정해진 길로 가는 것이 보통이었다.

  “잘 어울리는데 왜 그래!”

  “닥쳐!”

  가르딘의 잘 어울린다는 말을 듣자 사납게 변해버린 필리언, 갈라, 유타였다. 저 말은 결코 잘 어울린다는 말이 아니었다. 입가에 살며시 드러난 비웃음이 심증을 사실로 밝혀지게 만들었다.

  “정의의 용사들이 출동한다네! 정의 용사들이 가는 길 누가 말을 쏘냐! 정의의 용사 나가는 길 모두 비켜라! 아! 나는 정의의 용사를 이끄는 수장이라네!”

  한 술 더 떠 노래까지 불렀다.

  가르딘이 여기까지 오기 전에 제목까지 붙였다. 이름하여 <영웅로드>라는 곡이었다. 말도 안 되는 단순 리듬의 반복과, 가사의 반복으로 붙여진 곡이다. 말 그대로 입에서 나오는 대로 지껄인다고 봐도 무방했다. 가르딘은 <영웅로드>에 이어서 <영웅찬가>를 불렀다.

 동기들 모두 이런 생각이었다. 

  ‘젠장! 젠장! 젠장! 젠장!’

  가르딘이 한마디 더 했다.

  “같이 부를까!”

  “닥치라 그랬다!”

  “싫으면 말고.”

  가르딘의 염장기술은 날로 상승하고 있었다. 어쩌면 저렇게 사람의 마음을 잘 뒤집어 놓는지, 대단하다 아니 말할 수 없을 정도였다.

  다크호스가 달리는 모습만 보면 영웅과 같이 빨랐다. 다만 타고 있는 사람들의 촌스러운 모습을 보면 정말 안타까움을 이루 말할 수 없을 지경이다. 저런 굉장한 말을 탄 사람들이 정신상태가 제정신이 아니라는 것에 말이다.

  “저곳만 넘으면 바로다. 어서 가자.”

  능선과 능선 사이를 거침없이 달리는 다크호스였다. 능선의 비탈진 경사가 보통을 넘었다. 그럼에도 전혀 개의치 않았다. 비탈 사이로 나 있는 좁은 길을 정확하고 빠르게 움직여 나갔다.

  능선의 끝으로 넘어가자 앞에는 대지가 펼쳐졌다. 다크랜드의 북쪽지역 끝에 다다른 것이다. 대지를 따라 이동하게 되면 헥토르 왕국으로 가는 길목이 나온다. 그 길에서 먹이가 다가오기만을 기다리면 되었다. 

   5명이다 보니 이동속도는 굉장히 빨랐다. 군대를 이끌고 오는 속도와는 차원이 달랐다. 헥토르 왕국가지 돌아서 이동하는데도 불구하고 먼저 도착한 것을 보면 알 수 있었다.

  능선에서 내려와서 대지를 내달리다 보니 헥토르 왕국의 길목에 다다랐다. 길목의 옆으로 거대한 바윗덩어리가 크게 솟아 있었다. 

  도착한 후 말에서 내려 잠시 휴식을 취하는 가르딘과 동기들, 투르였다. 

  “가르딘! 꼭 이렇게 해야하냐?”

  “왜 그래, 오러 마스터가 될 수 있는 기회라니까!”

  “기회도 기회 나름이지. 이게 뭐냐?”

  입고 있는 옷 꼬라지를 보라는 것이었다. 이 상태로 누군가 자신을 알아볼까 겁이 났다. 

  “지금 라이나가 해준 옷이 그렇게 마음에 안 드는 거냐?”

  입가에 웃음이 사라졌다. 장난이 아닌 것 같았다. 서릿발 같은 기세가 형성이 되었다. 오러 마스터가 작심하고 기운을 형성하자 오러 피어(무형지기)가 발산이 되어 필리언을 압박했다.

  주춤!

  역시 오러 마스터였다. 오러 익스퍼트 최상급의 기사인 필리언, 갈라, 유타가 가르딘의 기세를 정면으로 받기가 힘들었다. 

  ‘역시 오러 마스터인가!’

  ‘되고 싶다!’

  ‘가르딘 저 놈만 오러 마스터라는 게 배가 아프다.’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 아닐 수 없다. 가르딘은 일부러 기세를 올렸다. 오러 마스터의 기운이 어떻다는 것을 다시 한번 상기시켜 의욕을 끌어올릴 필요성이 있었다. 사실을 말하면 오러 마스터의 기운이라기보다는 그랜드 마스터의 기운이었다. 일반적인 오러 마스터의 기운으로는 절대 필리언, 갈라, 유타를 주춤거리게 만들 수 없다. 이미 오러 마스터를 능가하는 오러를 보유한 동기들이었다. 그렇기에 강도를 조금 강하게 해서 무형지기를 발산했다.

  배알이 꼴려서 오러 마스터가 꼭 돼야겠다고 다짐한 필리언, 갈라, 유타였다.

  “되고 만다!”

  “나도 반드시 될 거다! 너 혼자 잘되는 세상 절대 두고 볼 수 없지!”

  “참 더러운 세상이야! 가르딘 같은 놈이 잘되는 것 말이야!”

  “응?”

  가르딘은 동기들의 말에 기분이 묘했다. 자신이 잘되는 것이 왜 더러운 세상인가! 그것은 의문점을 남기기에 충분한 근거가 되었다. 말도 안 되는 억지가 분명하다.

  ‘그렇게 나오겠다 이거지!’

  아직 회심의 카드는 남아 있었다. 가르딘의 입가에 또다시 사악한 미소가 지어졌다.

  “아직 시간이 조금 남았으니, 동작을 연습해 보자.”

  “동작? 무슨 동작인데! 오러 마스터가 되는 동작이야?”

  “그것보다 더 중요한 동작이라고 할 수 있지. 사람이 살면서 반드시 보여주어야 할 필수 동작이라고 할 수 있지.”

  가르딘이 5가지 동작을 동기들에게 보여주었다. 동작은 단순하여 따라하기 그다지 어렵지 않았다. 기본적으로 몸을 움직일 수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가 할 수 있는 동작이기는 했다. 하지만 문제가 있다. 동작은 따라하기 쉽지만 저 동작을 하고 싶지 않다는 것이 문제였다. 

  “야! 너 설마! 이걸 우리에게 시킬 생각이냐?”

  “당연.”

   “우리가 할 것 같아!”

  “당연히 해야지.”

  “죽는 한이 있어도 할 수 없다!”

  죽으면 죽었지 저런 거지같고, 쪽팔린 동작은 절대 하고 싶지 않았다. 차라리 깨끗하게 죽는 게 더 나을 것 같다는 생각마저 든다. 옷이야 어쩔 수 없이 입기는 했다. 그러나 저 말도 안 되는 동작은 정말 아니었다.

  “호오!”

  “너희들이 이렇게 버틴다고 될 일이 아니야.”

  “너나 해라.”

  “다같이 해야 폼이 난다.”

  “닥쳐, 두 번 다시 보거나 듣고 싶지 않아!”

  “이런 말은 하고 싶지 않았는데, 어쩔 수 없지.”

  가르딘은 동기들의 사생활을 누구보다 잘 안다. 그들과 생활을 같이 경험했으니 모를 리 없다. 특히 여자관계에 대해서는 모를 수가 없는 관계에 있다. 20년 동안 사회생활을 하면서 여자와 아무 관계없이 깨끗한 생활을 한다. 사내로서 그것이 쉽지 않은 것만은 틀림없다. 물론 가르딘은 다르다. 결혼 전까지의 사생활은 그렇다 쳐도, 결혼 후에는 청결함 그 자체였다. 동기들과 다르게 약점이 없다.

  가르딘의 입에서 술술 흘러나오는 여자 이름과, 관계, 그리고 있었던 상황, 한계 이상까지 간 상황까지 모두 나왔다.

  동기들의 얼굴이 점점 사색으로 변해간다. 동기들은 정상적인 남자다. 다만 가끔씩 일탈하고 싶을 때 조금 맛만 보고 빠져나왔다. 가족들을 버릴 정도는 아니었다. 가족은 누구보다 소중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 그 사실이 낱낱이 까발려지고 있었다.

  “너 설마?”

  “설마가 사람 잡지.”

  “아니지.”

  “여긴 밖이다.”

  “왜 이래 우리 사이에.”

  “우리가 어떤 사인데.”

  “너 정말 이럴 거야!”

  “아참! 안젤리카가 드래고… 읍!”

  “저놈 입 막아!”

  필리언, 갈라, 유타는 방금 한 가르딘의 말을 누군가 들었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사람이 할 말이 있고, 안 할 말이 있었다. 해서는 안되는 말을 능청스럽게 입에 올리고서는 시치미를 뚝 뗀다. 가르딘의 말은 유치하고 치사하다. 사람의 약점을 잡고, 이렇게까지 치사하게 나오다니. 치사함의 극치가 무엇인지 확실히 보여주었다.

  “그래 한다!”

  “내 참 더러워서 한다!”

  “오러 마스터가 못 되기만 해봐.”

  가르딘은 이번 전투에서 동기들이 오러 마스터가 될 것이라고 판단했다. 생사의 간극과 치열한 사투를 벌이다 보면 자연스럽게 오러의 운용과 능력의 한계를 극복하게 될 것이다. 물론 안 되면 어쩔 수 없기는 하다. 그게 지 팔자려니 생각해야지 어떻게 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럼 내가 순서와 동작을 가르쳐주지. 또한 이름을 속이기 위한 가명도 있으니 잘 따라서 연습하라고.”

   “알았다. 이놈아! 어서 하기나 해라. 뭐든지 다 해주마!”

  동기들은 아예 자포자기였다. 그에 반해 투르는 자신에게 주어진 동작을 화끈하게 연습하고 있었다. 목소리까지 쩌렁쩌렁 울린다.

  슈슈슝! 슈슈슈슈슝!

  불화살이 협곡의 수풀지대를 향해 쏘아졌다. 수만 발의 화살이 일제히 쏘아지자 하늘이 온통 불바다처럼 보인다. 불벼락이 트윈유니크 협곡을 뒤덮었다. 불비가 수풀과 나무에 쏟아지자 불길이 점차 번지기 시작했다. 바람까지 역풍이 불어와 불길이 거세지는 것도 시간문제였다. 수풀도 처음에는 타지 않다가 점차 수분이 증발하자 말라가며 타기 시작했다. 화공전에서 가장 큰 문제는 연기였다. 불길보다 연기에 먼저 질식해서 죽어버리는 경우가 발생한다. 역풍이 불어오니 모든 연기가 협곡의 위로 상승하고 있었다. 헥토르 왕국의 병사들로서는 연기와 불길이 올라오자 숨을 쉴 수 없을 정도로 괴로워했다.

  “콜럭! 콜럭!”

  왕국군 전체가 심한 기침을 토해내었다. 불길이 아직 아래서 시작되고 있건만 연기는 벌써 협곡 전체를 감싸고 있었다. 마치 안개가 바람을 타고 올라오는 것 같았다. 매캐한 냄새와 뿌연 연기가 시야까지 가렸다.

  멜버른 후작은 마법사들과 같이 마법을 사용했다. 처음에는 역풍이 불어오니 윈드 마법을 사용하여 연기를 위로 솟아 오르게 만들었다. 그와 동시에 워터계열 마법을 사용하여 불길을 잡았다. 

  “워터 샤워!”

  “워터 붐!” 

  마법을 쉼 없이 사용하여도 불길을 쉽게 잡히지 않았다. 불길이 잡히려고 하면 끊임없이 불화살이 날아왔다. 마법사들의 마법도 한계가 있기 마련이었다. 가뜩이나 지쳐 있는 상태의 마법사들에게 더 이상의 마법사용은 무리였다.

  멜버른 후작도 지치기는 마찬가지였다.

  “허억! 허억!”

  시간이 급박하여 화공전에 대한 대처는 미흡했다. 애초에 화공전을 당할 것이라는 예상을 하지 못한 것이다. 적들의 공격이 너무 단순해서, 멜버른 후작 역시 단순한 조치를 하고 말았다.

  ‘이런 낭패가!’

  연기가 심하게 올라와서 시야까지 가리고 있었다. 더군다나 놈들이 협곡 아래에서 위로 기름까지 부어대고 있는 것 같았다. 불길을 막는다고 해도 연기가 너무 심했다. 이대로 있다가는 대부분의 병사들이 질식할 것이다. 바람을 막기 위해 마법을 사용해도 한순간의 효용일 뿐이었다. 

  ‘여기서 끝이란 말인가!’

  멜버른 후작은 절망감에 젖었다. 하늘이 헥토르 왕국을 버린다고 생각했다.

  협곡의 아래에서 위를 보고 있는 코워드 후작의 입가에 드러난 미소는 어느 때보다 통쾌했다. 이제까지 당하기만 한 원한을 제대로 복수했다는 만족감이 들었다. 조금만 더 하면 승리는 코워드 후작군의 것이었다. 전쟁에 승리하여 헥토르 왕국의 국왕을 사로잡는다면 제국의 가장 큰 공적을 이룬 것이다. 승리가 눈앞에 있다는 것을 알자 절로 미소가 드리워진다. 간사하게 생긴 그의 얼굴에 드러난 미소는 보는 이로 하여금 떨떠름하게 만드는 마력을 가졌다.

  ‘드디어 끝나는구나!’

   정말 지긋지긋했다. 전투를 벌이는 동안 죽어나간 병사들과 지속적으로 당한 굴욕감을 생각하면 한숨이 흘러나왔다. 이제야 비로써 한숨을 돌리 수가 있었다. 두 번 다시는 이런 처절한 전투는 하고 싶지 않았다.

  코워드 후작은 어서 빨리 전투를 끝내고, 제국의 황성으로 가서 공적을 인정받기를 꿈꾸었다.

  우르르르 꽈과과광!

  번개 치는 소리가 들렸다.

  느긋하게 전투를 바라보는데 갑작스럽게 들린 번개 치는 소리에 놀란 코워드 후작이었다. 그는 소리가 난 뒤를 바라보았다. 뒤에서 버루거 자작이 고개를 들지 못하고 있었다.

  “자넨가?”

  “죄송합니다. 아까 먹은 음식이 입에 맞지 않아서.”

  “이번 작전을 생각해낸 공로를 생각해서 참아주지.”

  버루거 자작은 점심에 먹은 식사와 물이 입에 맞지 않았다. 되도록 참으려고 했지만 참을 수가 없었다. 입을 통해 흘러 들어간 음식물들이 배속에서 버물어져서 부패가 됐는지 엄청난 가스를 양산했다. 입으로까지 흘러나오는 가스를 막아내기는 했지만 뒤쪽을 방심한 결과였다. 가스는 살가죽과 부딪치며 굉장한 소리를 내었다. 흡사 천둥번개가 치는 것과 같은 효과를 내었다. 정말 대단한 위력이 아닐 수 없었다. 코워드 후작이 놀라서 돌아본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었다. 천둥번개가 친다는 것은 비가 내린다는 소리가 아닌가! 비는 화공전에서 가장 최악의 결과를 양산한다. 그런 일 따위가 발생한다는 것이 재앙이었다.

  우르르르 꽈과과광!

  또다시 소리가 들렸다.

  코워드 후작의 뒤쪽으로 들린 소리였다. 이번에는 짜증이 난 코워드 후작이었다. 한 번이라면 공을 감안해서 좋게 봐주려고 했다. 그런데 두 번이나 자신 앞에서 방귀를 끼다니 이게 무슨 실례란 말인가! 자신을 안중에도 두지 않는다는 것과 다르지 않았다. 따끔한 질책을 해줄 필요성이 있었다.

  “자네 내가 만만히 보이나!”

  돌아선 코워드 후작의 말투에 가시가 돋쳐 있었다. 공을 탐하는 귀족일수록 자신의 체면을 몹시나 중요시한다. 누군가에게 무시당했다는 것을 무척이나 참을 수 없다. 또한 자신보다 낮은 계급이라면 가혹할 정도로 밟아 준다. 그것이 코워드 후작이 사는 방식이었다.

 칼날같이 날이 선 말을 들은 버루거 자작은 억울했다. 방귀를 꾸기는 했지만 한 번뿐이었다. 그 이후는 자신이 하지않았다.

  “아…닙니다.”

  “그럼 내 앞에서 볼썽사나운 짓을 두 번이나 하는 이유가 뭔가?”

  “저…는 한 번밖에 하지 않았습니다.”

  “내가 들었는데 거짓말을 하겠다는 말인가!”

  코워드 후작의 음성이 더욱 차가워졌다. 바로 뒤에서 들었는데, 아니라고 하자 화가 치민 것이다.

  “정말 아닙니다. 제가 감히 후작님 앞에서 두 번이나 실례를 하겠습니까! 절대 아닙니다!”

  “아니라고! 정말!”

  코워드 후작이 매섭게 노려보자 찔끔한 버루거 자작이었다. 버루거 자작으로서는 정말 억울했다. 그리고 뒤틀린 위장을 원망했다. 처음부터 소리만 새어 나가지 않았으면 이런 오해는 받지 않아도 될 것이다.

  궁지에 몰린 쥐새끼와 같은 상황에 처한 버루거 자작을 구해주는 소리가 들렸다.

   우르르르! 꽈과과광!

  또다시 천둥소리가 울렸다. 이번에는 위력이 더욱 거셌다. 점점 다가오는 듯했다. 그제야 버루거 자작의 뒤쪽을 바라보게 된 코워드 후작이었다.

  제국군의 뒤쪽을 바라보자 그 앞에는 검은 구름이 잔뜩 몰려오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역풍이 불어오는 이유가 있었다. 검은 구름을 몰고 오기 위해서 불어온 바람 같았다. 천둥 소리를 동반한 검은 구룸이라는 말은… 

  두둑! 두둑! 두둑! 두둑!

  빗방울이 조금씩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아직은 작은 빗방울이 떨어지는 것에 불과하다. 하지만 조금만 더 지나면 악마와 같은 구름이 대량의 빗물을 쏟아낼 것만 같았다.

  “휴우우!”

  버루거 자작은 자신이 한 짓이 아니라는 것이 증명되어서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괜한 오해에서 풀려나니 마음속에 자리한 앙금이 모두 내려가는 것만 같았다. 안도의 한숨을 쉬는 모습을 본 코워드 후작의 표정은 더욱더 사나워졌다. 

  “지금 좋은가!”

  “예? 그게 무슨!”

  “범인이 아니라서 좋으냐는 말이다!”

  “그건 당연한 말씀입니다.”

  “비가 오는데, 좋단 말이지.”

  “허억!”

  버루거 자작이 놀라서 뒤로 물러섰다. 이번 작전의 성패에 가장 중요한 영향을 끼치는 것이 바로 비였다. 비가 온다면 자신이 생각해낸 작전은 물거품이 되어 버린다.

  ‘이런 개 같은!’

  차마 속에 있는 말을 내뱉지 못한 버루거 자작이었다. 범인에서 벗어난 게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이대로 있다가는 코워드 후작의 분노를 모두 자신이 받아야 할지 몰랐다.

  “비가 많이 오지 않기를 바라는 게 좋겠지.”

  “그…렇습니다. 절대 많이 오지 않을 겁니다!”

  “자네 말대로 되어야 할 텐데 말이야.”

  “많이… 오지 않을…!”

  버루거 자작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검은 구름이 협곡위에서 쏟아붓기 시작했다. 계곡으로 흘러나오는 물을 막아두었다가 다시 풀었을 때처럼 넘쳐흐른다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많은 비였다.

  쏴아아아아아악! 쏴아아아아아악!

  버루거 자작은 입을 닫았다. 말이 안 나올 지경이다. 저렇게 많은 비가 쏟아지는 광경은 난생처음 본다. 아주 속 시원하게 쏟아지는 비였다. 헥토르 왕국과 다크랜드로 이어지는 대지에는 비가 자주 오지는 않는다. 다만 국지성으로 한꺼번에 많은 비가 짧은 시간 쏟아진다. 아주 짧은 시간 안에 많은 비가 쏟아지고, 금세 다시 맑아진다. 순식간에 쏟고 사라진다는 표현이 적당하다. 따라서 전체적인 강우량은 많은 편이 아니다. 대지의 대부분에 모래알이 많이 포함이 되어서 금세 다 흡수가 되어 버리기에 물이 항상 부족하다.

  ‘시원하기는 하다!’

  쏟아붓는 광경이 정말 시원했다. 버루거 자작과 비린스 자작 모두 같은 느낌을 받았다. 참 이율배반적인 상황이 아닐 수 없다.

  그에 반해 잔뜩 일그러지는 코워드 후작이었다. 다 된 빵을 뭉개 버린 결과가 아닌가! 지금까지의 상황은 엎드려 빵 먹는 것보다 쉬울 것 같았는데, 현실은 코워드 후작의 바람을 여지없이 무너뜨렸다.

   세상에 안 되는 놈은 뭘 해도 안 된다는 소중한 경험을 코워드 후작은 얻었을지도 모른다. 

  “지금 뭘 멀뚱히 서 있는 건가! 지금 당장 대책을 마련하게들!”

 괜히 엄한 놈 옆에 있다가 불똥이 튄 상황이었다. 버루거 자작과 비린스 자작은 꿀 먹은 벙어리 같았다.

  ‘지금 당장 그게 되면 내가 후작이겠다!’

  ‘뭘 어쩌란 말이야!’

  방법이 없기는 마찬가지였다. 집중호우 같은 자연적인 재앙을 어떻게 인간의 힘으로 막는단 말인가! 솔직히 버루거 자작이나 비린스 자작의 입장에서는 네가 해보라는 말을 해 보고 싶었다. 

  코워드 후작은 화가 풀리지 않았다. 하늘마저 자신을 괴롭힌다고 생각했다. 요즘은 하늘을 원망하는 게 유행인 것 같았다.

  ‘젠장! 젠장! 젠장! 젠장!’ 

  비린스 자작과 버루거 자작도 코워드 후작과 같았다.

  ‘젠장! 젠장! 젠장! 젠장!’

  코워드 후작과 버루거 자작, 비린스 자작이 트윈유니크 협곡을 바라보며, 속을 끓일 때 병사 한 명이 다가왔다. 급하게 소식을 들고 오는 병사였다.

  “코워드 후작님!”

  “무슨 일이지?”

  “협곡의 뒤로 사이너스 국왕과 3천의 병력이 빠져나갔다고 합니다!”

  “뭐야!”

  코워드 후작의 언성이 높아졌다. 설마 병력을 협곡에 남겨놓고, 국왕이 도망을 칠 줄은 생각도 못했다. 코워드 후작이라면 가능한 이야기이지만 사이너스 국왕은 절대 그렇게 하지 않을 줄 알았다.

  “빌어먹을! 어떻게 확인한 거냐?”

  “발키리 영주의 정찰병에게서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젠장!”

  결국 화를 토해내었다.

  코워드 후작에게 사이너스 국왕은 가장 필요한 존재였다. 병력을 10만이 넘게 소모하고 얻은 것이 없다면 그 뒷감당을 할 수가 없게 된다.

  사이너스 국왕이 이대로 도망치는 것을 두고 볼 수 없었다. 어떻게 해서는 사이너스 국왕을 잡아야 했다. 하지만 협곡을 넘지 않고서는 사이너스 국왕을 추격할 수 없었다. 앞뒤로 어떤 방법도 통하지 않고 있었다. 답답하고 짜증이 날 만했다.

  “발키리 영주의 정찰병에 의하면 협곡이 아닌 다른 길이 있다고 합니다. 조금 험하기는 해도 길을 따라 가다 보면 잡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합니다.”

  “거기가 어디냐?”

  잡을 수도 있다는 말에 병사에게 빨리 말해 보라고 재촉했다. 병사는 정찰병이 들려준 대로 설명을 해나갔다.

  “그곳을 따라가며 너무 늦을 것 아니냐?”

  “사이너스 국왕의 병사들이 지쳐서 속력이 나지 않을 테니 시간을 줄일 수 있을 겁니다.”

  “날랜 병사들을 이끌고 가자는 말이냐?”

  “그렇습니다.”

  길이 너무 험한 데다 시간이 오래 걸릴 것 같았다. 따라서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려 결국에는 잡지 못할지도 모른다. 괜히 병력을 빼서 헛수고를 할 수도 있었다. 코워드 후작은 고민이 되었다. 이대로 사이너스 국왕을 포기하느냐! 아니면 어떻게 해서든 따라가서 잡느냐! 하는 기로에 서 있었다. 그러나 결론은 이미 내려졌다. 사이너스 국왕을 포기할 수 없었다. 이제까지 입은 손실을 생각하면 무엇이라도 해야 했다.

  코워드 후작이 버루거 자작을 바라보았다. 버루거 자작은 왜 자신을 보냐는 듯이 눈이 휘둥그레졌다.

  ‘설마! 나!’

  나는 아니겠지라고 생각하면 꼭 걸리는 것이 세상이다.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 지역으로 병사들을 이끌고 가는 것은 별로 하고 싶지 않았다.

  “버루거 자작 자네가 기병 6천을 이끌고 가게.”

  “예?”

  “싫은가!”

  싫다고 하면 절대 가만두지 않겠다는 뜻이 보였다. 코워드 후작에게 잘 보이려면 어쩔 수 없이 선택해야 한다. 여기서 외면하면 다시는 위로 올라가지 못한다. 아니 있는 자리마저 제대로 보존하지 못하는 수가 있었다.

  “아닙니다. 제가 직접 가겠습니다.”

  “반드시 잡아야 하네.”

  “저만 믿으십시오.”

  못 잡으면 뒈진다고 하는 것보다 더욱 무서운 협박이었다. 비린스 자작은 자신이 걸리지 않아서 다행이라는 듯이 버루거 자작을 외면했다. 그들 간에 의리는 쥐뿔도 없었다. 기회가 아니라면 절대 발을 들이지 않는다.

  한숨을 돌렸다.

  트윈유니크 협곡을 수성하는 멜버른 후작은 하늘이 도왔다고 생각을 할 수밖에 없었다. 다시 화공전을 벌이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트윈유니크 협곡 자체가 엄청난 양의 빗물을 흡수했기 때문이다. 또한 흙이 질어져서 적군이 올라오기도 어렵다. 올라오기 전에 미끄러져서 넘어질 가능성이 컸다. 상당한 시간을 벌 수 있는 기회였다. 그동안 병사들과 마법사들은 휴식을 취해야 했다. 치열한 공방전과, 끊임없는 소모전으로 인해 체력이 많이 소진되었다. 남은 시간을 최대한 활용하여 마법력과 체력을 회복하는 것이 관건이었다.

  “아직 하늘이 우리를 버리지 않았다! 그러니 용기를 잃지마라!”

  멜버른 후작은 병사들에게 희망이 있다는 것을 전했다. 어떤 말이라도 해서 병사들의 사기를 진작시켜야 했다. 떨어진 체력만큼이나 사이너스 국왕의 귀환으로 인해 사기가 저하되었다. 병사들이 보기에 자기만 살기 위해 도주한 것처럼 보였을 수 있었다. 멜버른 후작은 사실을 말하면서도 사이너스 국왕이 병사들을 위해 어쩔 수 없는 선택을 했다는 것을 강조했다. 헥토르 왕국의 안위를 위한 힘든 결정이라는 것을 알려주었다.

  멜버른 후작이 헥토르 왕국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사이너스 국왕이 떠난 지 얼마 되지 않은 시간이었다. 시야에서는 보이지 않지만 제발 무사히 왕국으로 돌아가기를 바랐다. 사이너스 국왕이 건재해야만 헥토르 왕국의 안위가 보존된다.

  ‘무사히 귀환해야 합니다! 여기는 제가 최선을 다해 수성하겠습니다!’

  따그닥! 따그닥!

  말을 타고 달리는 소리가 둔탁했다.

  말도 체력이 다 되었지만 말을 타고 있는 인물 역시 무척이나 마음이 무거웠다. 마차를 버리고 말을 택한 것은 조금이라도 빨리 이동하기 위해서였다.

  사이너스 국왕은 뒤를 돌아보았다. 자신을 따라 오는 3천의 병력 역시도 많이 지쳐 있었다.

   ‘내 꼴이 한심하구나!’

  30만 대군을 발키리 영지에 버리고 온 패자의 모습이었다. 마지막까지 싸우고 싶었다. 하지만 현실은 싸우는 것조차 허용하지 않았다. 제대로 된 싸움은 하지도 못했다. 결국 이 모든 것이 자신의 무능함이라는 결론을 내었다.

  ‘그러나 여기서 무너지지 않는다!’

  이렇게까지 만든 놈에 대한 원한 때문이라도 반드시 다시 일어서야 했다. 발키리 영주에 대한 원한은 뼛속 깊이 새겨져 있었다. 뼈에 사무치는 원한을 갚기 위해서 재기하여 헥토르 왕국의 힘을 보여주어야 한다.

  “모두 힘을 내라! 나는 아직 포기하지 않았다!”

  병사들을 독려하며 이동을 서둘렀다. 한시라도 빨리 헥토르 왕국으로 돌아가야 했다. 트윈유니크 협곡에 남겨 두고 온 멜버른 후작과 병사들을 위해서라도 시간을 지체할 수 없었다.

  사이너스 국왕의 말은 그다지 효력이 없었다. 병사들은 이미 지칠 대로 지쳐 있었다. 말 한마디에 사기를 되찾을 시기는 지났다는 뜻이다. 그저 어쩔 수 없이 움직여 가는 것처럼 보인다.

  사이너스 국왕이 고개를 돌리며 앞으로 향했다.

  말없이 행군이 시작되었다. 한참을 가자 헥토르 왕국으로 가는 길목에 다가섰다. 그곳에는 거대한 바위가 자리하고 있었다.

  그때였다.

  바위덩어리로 가린 시야에서 무언가가 튀어나왔다. 튀어 나온 것은 사람이었고, 모두 5명이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5명의 복장이 대륙의 일반적인 상식을 가진 사람들의 복장이 아니었다. 어디 이상한 곳에서 살고 오지 않는 이상 저런 복장을 하고 있을 정상적인 사람은 없었다. 

  특히 색깔이 원색적이었다.

  레드, 블랙, 블루, 옐로우, 핑크.

  다른 색깔은 하나도 섞이지 않은 천연의 색으로 무장한 놈들이었다. 더군다나 얼굴은 이상한 마스크를 쓰고 있었다. 투명한 것 같지만 얼굴이 보이지 않도록 만들어져 있었다.

 사이너스 국왕과 병사들이 보기에 모두 같은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미친놈들!’

  지금 미친놈들 때문에 지체할 시간이 없었다. 감히 일국의 국왕이 지나가는 자리를 정면에서 막아서는 것부터가 미친 놈이라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국왕을 모독한 놈들에게 자비는 존재하지 않았다. 가뜩이나 전쟁으로 인한 심적인 고통이 큰 사이너스 국왕은 저놈들을 죽여버리라고 명령했다.

  “저 미친놈들을 치워라!”

  10명의 병사들이 이상한 마스크를 쓴 놈들을 향해 다가갔다. 미친놈들에게 세상이 얼마나 무서운지 알려줄 필요가 있었다. 또한 발키리 영지의 병사들에 당한 앙갚음을 풀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감히 국왕 폐하의 행차를 막다니! 그 죄를 죽음으로 갚아라!”

  병사들은 조금의 의심도 하지 않았다. 미친놈들에게는 10명도 과분했다. 일제히 달려들어 속전속결로 해치우려고 했다. 병사들 10명이 검을 들고, 원색적인 복장을 한 미친놈들에게 검을 들이대었다.

  휘이익! 푸욱! 휘이익! 푸욱!

  털썩! 털썩! 털썩! 털썩!

  검에 맞은 이들이 쓰러졌다.

   그런데 문제는 쓰러진 이들이 공격했던 병사들이라는 것에 있었다. 10명의 병사들이 반항 한 번 못해보고, 검에 맞아 쓰러졌다. 너무 쉽게 쓰러져서 착시현상이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 만한 장면이었다.

  “응?”

  원색적인 복장의 이상한 마스크를 한 미친놈들이 실력은 전혀 미치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했다. 보고 있던 사이너스 국왕과 3천의 병사들 모두 어안이 벙벙했다.

  사이너스 국왕의 기분이 차갑게 식었다. 복장이 이상한 놈들이라 방심한 결과였다. 그러나 이상한 것은 왜 이곳에 저런 미친놈들이 자신을 막아서냐는 것에 있었다. 도대체 누가 시킨 것인지가 궁금해졌다.

  사이너스 국왕이 말문을 열었다.

  “네놈들은 누구냐?”

  “음하하하하하하하하하!”

  붉은 색의 복장에 마스크를 한 인물이 시원스럽게 웃었다. 목소리가 상당히 우렁차고, 가슴속의 감정을 한 번에 쏟아내는 듯했다.

  호쾌하게 웃음을 소리를 낸 붉은색의 마스크맨이 말을 했다.

  “그 말이 나오기를 기대했다. 우리로 말할 것 같으면!”

  붉은색의 마스크맨이 말과 동시에 한 가지 포즈를 취했다. 한쪽 다리를 들고, 두 팔을 벌려 기이한 자세를 잡았다. 대륙의 조류 중에서 크론 새가 취하는 자세와 비슷했다. 그와 동시에 말이 들렸다.

  “레드 1호 스콜피온!”

  뒤이어서 블랙 마스크맨이 날카로운 발톱모양을 손으로 취하고, 한쪽 다리를 길게 뻗어 자세를 취했다.

  “블랙 2호 타이거!”

  연이어서 3명이 동시에 자세를 취했다. 블루 마스크맨, 옐로우 마스크맨, 핑크 마스크맨이 자세를 취함과 동시에 자신의 존재를 인식시켰다.

  “블루 3호 드래곤!”

  “옐로우 4호 와이번!”

  “핑크 5호 울프!”

  5명이 일제히 자세를 취하며, 말을 하자 그럴 듯한 모양이 형성되었다. 그러면서 동시에 말을 했다.

  “다섯 용사 함게 모여!”

  “우리는 파이브 스타즈라고 한다!”

  “다른 말로 오복성이라고도 한다!”

  띠용!

  모두 얼이 빠져 버렸다. 설마 저런 식으로 대답할 줄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다. 아니 예상했다고 해도 태연하게 저런 낯간지러운 말을 서슴없이 하다니, 그것도 헥토르 왕의 면전 앞에서 말이다. 제정신을 가진 놈들은 절대 아니었다. 실력이 제법 되기에 정체를 물었던 사이너스 국왕의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이것은 국왕 면전에 대로 놀리는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이놈들이 감히! 내가 누군 줄 알고 이런 허무맹랑한 짓을 하는 것이냐! 목숨이 여러 개인 줄 아는 모양이구나!”

  헥토르 왕의 뒤로 있는 병사들도 모두 미친놈이라고 단정했다. 저런 놈들이 정상이라면 자신들이 미친놈이 되어 버린다. 정상적인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들을 위해서도 미친놈들은 반드시 단죄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여봐라! 놈들을 쳐라!”

  척! 척! 척! 척!

  병사들이 움직였다. 이번에는 상당히 많은 수의 병력이었다. 상대가 미친놈들이기는 해도 실력은 대단했다. 병사들 수준으로는 도저히 이길 수 없을 정도로 강했다. 이럴 때 필요한 것이 다구리다. 수에는 장사 없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고작 5명이 할 수 있는 것은 없다고 단정 지었다.

  파이브 스타즈라고 불린 이들이 저마다 작게 소곤거렸다.

  ‘거 봐!’

  ‘아이! 쪽팔려!’

  ‘내 평생 이렇게 창피한 적은 처음이다!’

  필리언, 갈라, 유타는 1시간 전에 이 자세를 연습했다. 말까지 연습하면서 도저히 못할 것을 한다고 여겼다. 얼굴이 알려지면 정말 큰일 날 것만 같았다. 그에 반해 가르딘은 별로 창피하지 않았다. 얼굴도 보이지 않는데, 뭐가 그리 창피한가! 얼굴이 보이면 창피하겠지만 지금은 전혀 아니었다. 투르는 창피한 것보다 전투를 벌인다는 생각에 몸이 달아올라 있었다. 자신을 향해 달려오는 놈ㄷ르의 대갈통을 반으로 쪼개버릴 생각뿐이었다.

  “간다! 영웅이 가는 길! 누가 말을 쏘냐! 간다! 간다! 막아서는 자는 분명 마왕이거나 마왕 부하들일 것이다!”

  택도 없는 소리를 잘도 지껄이는 가르딘이었다. 달려오며 듣던 병사들 모두 벙 찐 기분이었다. 길가에 지나다니는 미친놈들이 용사고, 자신들은 마족이라는 소리가 아닌가! 가르딘의 <영웅로드>는 부를 때마다 가사가 마구 바뀐다. 정해진 가사가 아니라 즉흥적으로 씨부린다는 말이 어울렸다. 다른 이유는 이전 가사를 기억하지 못한다는 치명적 단점 때문이기도 했다.

  “미…친놈들!”

  “죽어랏!”

  “죽여라! 추악하게 미친놈들아!”

  병사들도 저마다 독기 서린 말을 내뱉었다. 100명이 넘는 병사들이 달려들었다. 지쳤다고 해도 정예병들이었다. 날카롭고 예리한 기운이 주변을 압도했다. 추악하게 미친놈들은 절대 막아낼 수 있는 숫자가 아니었다. 

  파이브 스타즈는 달려오는 100명을 바라보면서도 어떤 감흥도 없었다. 뒤에 있는 숫자가 부담되기는 했지만 저 정도도 막아서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서서히 기운이 변했다. 파이브 스아타즈를 감사는 기운이 차갑게 변해가고 있었다. 압도적인 기운이 형성되어 병사들을 향해 쏘아졌다. 

  파이브 스타즈의 응축된 기운은 칼바람이 되어 앞으로 뻗어나갔다.

  “영웅피어!”

  움찔!

  확실히 쪽팔린 언어이기는 했다. 그런데도 몸이 저절로 움직거렸다. 이유는 한가지뿐이다. 파이브 스타즈가 절대 만만한 존재가 아니라는 말이었다.

  병사들은 자신들이 한순간 쫄은 것에 의아했지만 별 것 아닌 것으로 치부하고 달려들었다. 때론 이성보다 감성이 목숨을 보존시켜 준다는 것을 잊어버리고 말았다. 미친놈들이라는 고정관념이 이성을 따르게 만들었기 때문이었다.

  “간닷!”

  채채채챙!

  검과 검이 부딪쳤다.

  가르딘이 앞으로 나아가서 달려드는 병사들의 검을 막아내며 옆으로 밀어내었다. 적과의 공간을 작게 잡은 가르딘은 그 사이를 유유히 빠져나가고 있었다. 홀로 앞으로 나아가는 무모한 짓이었지만 귀신과 같았다.

  뒤에서 지켜보던 필리언, 갈라, 유타로 감탄했다.

  ‘놀라운 스텝이다!’

  ‘저런 스텝은 어디서 배운 거야!’

  ‘우선은 이놈들을 처리하고 물어봐야겠다!’

  필리언, 갈라, 유타도 검을 휘두르며 병사들을 물리쳐 나갔다. 동기들과 병사들의 실력 차이가 확연하게 드러났다. 100명이나 달려들었지만 상대가 되지 않았다. 특히 핑크색 옷을 입은 거한, 투르의 무지막지한 광룡창법에 달려드는 병사들이 오히려 불쌍했다.

  “광룡창법 제 1식 광격살”

  푸아아앙! 크아아아악!

  반경 1미터 안에 생존자는 존재하지 않을 것 같은 위력이었다. 창이 회전하면서 형성하는 무섭도록 강력한 기운에 병사들이 휩쓸리자 그 자리에서 분쇄되어 버렸다.

  “광룡창법 제 2식 분살파”

  살과 뼈로 이루어진 병사들의 몸이 갈가리 찢겨나가고 있었다. 무서울 정도로 광폭했다. 왜 크레이지드래곤랜스라는 이름이 붙어졌는지 여실히 보여주었다. 다가오는 병사들 4명이 순식간에 찢겨졌다. 살아난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할 정도로 말살되었다.

  필리언, 갈라, 유타가 그 모습을 보며 혀를 찼다.

  ‘완전히 물 만났군!’

  “크하하하하!”

  죽인다! 이놈들아! 어서 덤벼라!

  투르가 좋아 죽으려고 하고 있었다. 미친놈들이라는 헥토르 왕국군의 표현이 그다지 틀린 말이 아닌 것처럼 보였다. 사람을 반으로 쪼개고, 살과 뼈를 분쇄시키면서 웃는다. 과연 이런 놈이 정상으로 보일까! 같이 있는 놈들까지 유사인종으로 취급받을지 모른다.

 투르에게 다가간 병사들 모두 기겁했다. 이건 숫제 상대가 되지 않았다. 죽어도 아주 처참하게 죽이고 있었다. 병사들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미친놈에게 죽는 건가!’

  죽어도 정상적인 놈에게 죽고 싶은 병사들이었다. 이런 미친놈에게 물려 죽으면, 죽어서도 미친 혼이 되어 중간계과 천계의 중간에서 고사당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들었다. 아니면 미친놈으로 다시 환생할지도 모른다.

  가르딘은 유유히 빠져나가면서 뇌전폭풍도법을 시전하였다. 가르딘의 검에서 섬전을 방불케 하는 검기가 뻗어나갔다. 뇌전처럼 바르며, 폭풍처럼 강하다. 뇌전폭풍도법의 비전오의가 그 안에 함축이 되었다. 뇌전과, 폭풍이 하나가 되어 서로 구분이 지어지지 않았다. 형을 넘어 의기가 검에 닿아 있었다.

  “뇌전폭풍도법 제 1식 천뢰섬”

  하늘에서 내리치는 벼락 같은 검기가 줄기줄기 뻗어나간다. 그 안에 자리한 병사들은 무엇에 의해 당했는지 알지도 못한 채 이승에서 저승으로 혼이 상승했다. 

  슈슈슈슈슈슉!

  풀썩! 풀썩! 풀썩!

  썩은 인형처럼 힘없이 쓰러져 버린 병사들이었다.

  일직선으로 병사들의 미간을 정확하게 뚫어버렸다. 어떠한 고통도 없다. 그저 의식을 가진 존재에서 의식이 없어진 존재가 될 뿐이었다. 미간에는 벼락의 타는 듯한 기운으로 인해 붉은 반점이 작게 자리 잡았다.

  가르딘은 뇌전폭풍도법의 천뢰섬에 이어 2초식인 와선광천을 연이어 사용했다. 회전하여 돌아오는 기운은 더욱더 강한 힘을 동반한다. 가르딘이 뇌전폭풍도법을 사용하자 공간과 공간 사이에 와류가 형성되어 병사들의 움직임을 제한해 버렸다. 기의 수준이 일정 수준 이상으로 강해지면 주변의 물체조차 마음먹은 대로 조정할 수 있다. 의기만물의 경지가 바로 이와 같았다.

  거친 회오리가 빛살 같은 검기를 동반하며 터져 나갔다. 그 주변에 있던 병사들 10명이 한순간에 사라져 버렸다.

  휘이이잉! 파파팟!

  필리언, 갈라, 유타는 충격을 받았다. 그들 스스로도 뇌전폭풍도법의 성취가 일정 수준 이상으로 올라섰다고 자부했다. 그런데 현실은 아니라고 말하고 있었다. 그들이 보는 가르딘의 뇌전폭풍도법이야말로 가장 이상적인 느낌을 주었다. 빠르며, 강했다. 또한 부드럽기까지 했다. 강맹한 도법에 부드러움까지 자연스럽게 스며들어 있었다. 놀랍도록 자연스럽다는 말이 정확한 표현이었다.

  필리언, 갈라, 유타는 자신들도 모르게 가르딘과 동화되어 가고 있었다. 약간의 부자연스러움이 느껴지던 뇌전폭풍도법이 점차적으로 완성되어 나가는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일반적인 기사라면 느낄 수 없는 것이었다. 동기들이 오러 익스퍼트 최상급에 이르지 않았다면 알 수 없는 움직임이었던 것이다. 간격의 끝에 올라선 자만이 볼 수 있는 세상이었다.

  ‘이거 될 거 같은데!’

  ‘오러 마스터가 진짜 되는 건가!’

  ‘상황은 최악인데, 좋아 죽을 것 같다! 내가 죽을 때가 된 건각 보다!’

  한 단계 앞에 오러 마스터가 존재한다.

  모든 기사들의 로망이 기다리고 있었다. 동기들은 그 한걸음도 나아가지 못해 허우적거리고 있었다. 될 것 같은데 안되는 그 간질거리는 맛. 사람의 짜증을 있는 대로 올라가게 만든다. 그런데 가르딘이 그 앞의 모습을 가장 적절하게 보여주고 있었다. 말도 안 되는 짓을 한다고 생각한 동기들이지만 이제부터는 달랐다. 가르딘을 따라가야 오러 마스터에 이를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놓칠 수 없게 되었다.

  멍!

  헥토르 왕국군 모두 얼이 빠졌다. 지금 눈앞에 펼쳐지는 현상이 과연 사실인지 의문을 가져봐야 했다. 한 병사가 자신도 모르게 옆 병사의 얼굴을 꼬집어보았다.

  “앗!”

  “너 뭐야?”

  “아니 그냥! 환상이 아닌가 해서.”

  병사들이 환상이라고 느낄 만했다. 갑자기 나타난 미친놈들이 모두 엄청나게 강했다. 강한 것도 정도가 있지 저 정도면 오러 마스터라고 해도 부족하지 않았다. 미드라이언 대륙을 구성하는 사람들 중에서 오러 마스터의 수는 극히 적다. 거의 손에 꼽을 정도라 이름이 알려져 있다. 그런데 지금 나타난 미친놈들 5명이 모두 오러 마스터라고 한다면 그게 과연 현실일 수 있는가? 여기서 벌어진 사건을 다른 곳에서 얘기했다가는 미친놈으로 오해받기 딱 좋았다.

  가장 놀라고, 분노한 사람은 다른 누구도 아닌 사이너스 국왕이었다. 이건 황당함을 넘어서는 일이었다. 왜 갑자기 여기서 저런 놈들이 나타난단 말인가! 한시가 급한 이 시점에 나타나 앞을 방해하는 이유를 알 수 없었다.

  “네…놈들은 누구냐?”

  “우리로 말할 것 같으면, 대륙을 안녕을 수호하며, 사람들에게는 미소를, 아이들에게는 꿈과 희망을 전달하는 파이브 스타즈라고 한다!”

  일일이 대꾸를 한다.

   가르딘은 혼전 중에 있었다. 사이너스 국왕의 혼잣말을 들을 수 있는 상황처럼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가르딘은 모두 들었다. 그에 대해 올바르게 알려줄 필요성을 느낀 가르딘은 미리 준비한 대로 말해 주었다.

  사이너스 국왕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을 정도로 작은 반면에 가르딘의 목소리는 내공을 통해 주변으로 널리 퍼졌다. 헥토르 왕국의 병사들이 모두 들을 수 있을 정도였다.

  부들! 부들!

  사이너스 국왕의 냉정했던 마음에 다시 불이 솟구쳤다. 상대는 계속 미친 짓거리를 멈추지 않았다. 말도 안 되는 말을 있는 그대로 믿을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되는가! 결국 상대를 농락하 는 것으로 밖에는 느껴지지 않았다. 사이너스 국왕의 마음속에 염불을 가장 크게 질렀던 놈과 피장파장이었다. 왠지 모르게 같은 놈으로 여겨졌다. 분노가 치솟자 앞뒤를 재지 않았다. 저놈들을 죽이지 않는 이상 화가 사라지지 않을 것 같았다.

  “기사들은 병사들과 함께 저 미친놈들을 모두 죽여라!”

  사이너스 국왕의 총공격 명령이 떨어지자 샤이닝윙기사단의 기사들이 병사들을 이끌고 파이브 스타즈를 향해 달려들었다.

  “이야야야야얍!”

  3천의 병사들이 내지르는 소리가 천지를 진동했다.

  100명의 병사들을 정리한 필리언, 갈라, 유타는 지금이 가장 중요한 결전이라는 것을 느꼈다. 전투에서 병력수를 무시할 수 없다. 가장 중요한 것이 수적인 우세라고 할 수 있다. 오러 마스터가 기사 100명을 상대한다고 하지만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게 여겨진다. 그것은 바로 인간이기 때문이다. 인간은 싸우다 보면 지친다. 인간이 아니라면 문제가 없겠지만 인간이기에 체력적인 문제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다구리에 장사없다는 말이 괜히 나온 말이 아니었다. 

  꽈악!

  필리언, 갈라, 유타는 검을 강하게 움켜잡았다. 긴장감이 들지만 걱정이 되지는 않았다. 하다 보면 방법이 생길 것이라고 보았다. 오러 마스터에만 다다른다면 충분히 승산은 있었다. 못되면 이곳에서 뼈를 묻는 수밖에 없다.

  “좋아! 죽자!”

  “나 죽고 너희 죽는거다!”

  “인생이 한번 죽지 두 번 죽느냐!”

  파이브 스타즈를 향해 다가오는 병사들은 기사들의 지휘에 따라서 움직였다. 샤이닝윙 기사들은 전면전을 벌이면서도 상대의 체력을 떨어뜨릴 수 있는 차륜전을 벌일 생각을 하고 있었다. 이상하게 생긴 옷을 입고 있기는 하지만 분명히 위험한 존재들이었다. 좀 전에 보인 오러의 기운은 충분히 익스퍼트 상급을 웃돌았다. 오러를 정확하고, 자연스럽게 사용하는 자들을 상대로병력을 있는 대로 퍼붓는 것은 바보 같은 짓이었다.

  샤이닝윙기사단의 부단장인 다르크 자작이 병력을 좌우로 퍼뜨리면서 방패부대를 전진시켰다. 방패로 몸을 감싸며, 창으로 상대한다. 또한 그 뒤로 궁수대를 위치시켜, 활로 공격을 한다.

  “놈들을 한곳으로 모이게 한다! 궁수대는 우선 활을 쏴라!”

  300명의 궁수대가 파이브 스타즈를 향해 활을 쏘았다. 일제히 한 발을 쏘고, 다시 연이어 화살 10발을 거의 동시에 발사했다. 상당히 노련하고, 숙련이 잘 된 솜씨였다.

  솨사사사삭!

  가르딘의 머리 위로 화살세례가 날아왔다.

  눈앞을 가득 메우며 날아오는 화살은 교묘하게 필리언, 갈라, 유타, 투르가 한곳으로 모이도록 조준이 되어 있었다.

   ‘모이라는데 모여주어야지.’

  차라리 잘되었다. 같은 공간 안에 있는 것이 지켜보기 편했다. 동기들이 필사적일 수 있도록 가르딘은 길만 만들어주면 되었다.

  “모여! 파이브 스타즈 결합니다!”

  “그런 말 좀 안 하고, 포즈 좀 잡지 않으면 안 되냐!”

  가르딘의 옆으로 다가온 필리언은 여전히 창피한 말을 나불대는 가르딘이 못마땅했다. 더군다나 포즈까지 취하고 있었다. 다가오는 병력이 장난 아닌데, 저런 말과 포즈를 취하고 싶을까라는 생각마저 든다.

  “시끄러! 영웅에게 포즈는 무엇보다 중요해!”

  “하여간 미친놈 옆에 있으니까 나도 미친놈이 된다니까!”

  “그렇게 말했다면 너도 훌륭한 파이브 스타즈의 멤버가 된 것이다.”

  “젠장! 싸우기나 하자!”

  가르딘은 다가오는 병사들을 향해 다시 한 번 소리쳤다.

  “영웅은 시련을 이기며 극복하는 존재다. 영웅에게 시련은 당연한 길이며, 반드시 물리쳐야 할 길이다! 오라! 영웅은 절대 물러서지 않는다!”

  다른 것은 다 참아도 저 미친 소리만은 참아줄 수 없는 병사들이었다. 당장에라도 달려들어 입을 막아버리고 싶은 심정이었다. 세상에 악마가 나타난 것도 아니고, 마왕이 나타난 것도 아니다. 그런데 영웅이 왜 나오는가! 말도 안되는 소리를 계속 듣다 보면 자신들도 이상해질지 몰랐다.

  헥토르 왕국의 병사들과 자칭 대륙의 영웅 파이브 스타즈가 부딪쳤다. 

  꽈과과광! 파파파팡!

  “이것은 절대 입에서 나는 소리가 아니다! 천지가 진동하고, 대륙이 뒤바뀌는 소리다!”

  가르딘이 헥토르 왕국군과 부딪치자 효과음을 내었다. 입으로 부딪치는 소리를 내는 것이었다. 미려도 정도가 있고, 해도 되는 것이 있는데, 가르딘의 과욕은 멈출 줄을 몰랐다.

  “미…친!”

  샤이닝윙기사단의 부단장 다르크 백작도 결국 두 손 들었다. 저놈들 중에 특히 붉은 옷을 입은 놈은 완전히 미친놈이라고 인정했다.

  “붉은 옷을 입은 놈을 집중 공격하라!”

  “예!”

  병사들도 가르딘의 말은 듣기가 거북했는지 알아서 공격 방향을 정했다. 붉은 옷을 입은 가르딘이 집중타격대상이 되었다.

  격전이 시작되었다.

  필리언, 갈라, 유타는 최선을 다해서 병사들을 공격해 나갔다. 뇌전폭풍도법을 적절히 써 나가면서 병사들과의 간격과, 거리를 조절했다. 그에 반해 투르는 광룡창법을 마음먹은 대로 쏟아부으며 공격해 나갔다. 상대가 자신을 공격하든 말든 신경쓰는 스타일이 아니었다. 이미 몸은 금강불괴지체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병사들의 나약한 칼질과, 창질이 통할 상대가 아니라는 말이다. 다수를 상대할 때 가장 강력한 힘을 발휘하는 투르였다.

  “광룡창법 분살파!”

  파파팟! 크아아악!

  방패로 막아서든 말든 소용없는 짓이었다. 방패와 더불어 뚫고 지나가는 투르의 창은 병사 두 명을 꿰뚫어 버렸다.

  필리언, 갈라, 유타는 투르에게 질 수 없었다. 기사생활이 무려 20년이나 되었다. 이제 막 전투를 깨달은 투르에게 밀린다고 생각하니 자존심이 상했다. 그래서 더욱더 열심히 검을 휘둘렀다.

   차차창!

  “뇌전폭풍도법 제 4식 참풍멸마”

  푸아아아앙!

  광폭한 폭풍이 병사들에게 들이닥쳤다. 필리언, 갈라, 유타가 동시에 사용한 뇌전폭풍도법의 마지막 절초였다. 위력에 있어서는 어떤 도법보다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 일순간에 반경 3미터 안에 있는 존재들은 폭풍에 휩쓸려 사라져 버렸다.

  파이브 스타즈의 필리언, 갈라, 유타, 투르는 정말 열심히 싸웠다. 다가오는 적들을 차례로 바닥에 쓰러뜨렸다.

  그런데 문제는 왜? 파이브 스타즈에서 가장 최전선에 있어야 할 인물이자 대장이며, 가장 말이 많았던 가르딘이 필리언, 갈라, 유타, 투르의 뒤에 있냐는 것이다.

  여전히 가르딘은 말이 많았다.

  “용사들에게 이런 잔인한 공격을 하다니 역시나 네놈들은 마왕의 부하들이 틀림없구나! 하지만 우리는 절대 네놈들에게 굴복하지 않는다! 오라! 마왕의 졸개들이여!”

  헛소리는 계속되었다.

  헥토르 왕국의 병사들은 어떻게 해서든 가르딘을 공격하고 싶었지만 그게 말처럼 쉽지 않았다. 필리언, 갈라, 유타, 투르의 방어선을 뚫고 들어가는 것이 불가능해 보이기까지 했다.

  ‘제법 하는데’

  가르딘은 냉정했다. 이런 미친 소리를 하는 것도 연기의 한 부분일 뿐이다. 놈들에게 우리의 인상이 어떠하다는 것을 확실하게 보여주는 방법이 된다. 나중에 누가 물어봐도 절대 믿지 못할 일로 기억이 될 것이다. 가르딘과 동기들을 결코 연상할 수 없다는 말이 된다. 그래서 미치면 미칠수록 좋은 방법이었다.

  동기들과 투르를 모이게 한 것도 뒤에서 그들의 움직임을 살피기 위해서였다. 가르딘은 전음을 사용해서 필리언, 갈라, 유타에게 불필요하게 움직이는 동작들을 점검해 주었다. 투르는 그냥 놔두는 게 가장 적절하다. 투르에게 격식은 중요하지 않다. 형식에 얽매이면 스스로 가진 힘을 제대로 발휘하기가 어려운 체질이었다. 그냥 놔두면 알아서 최정점의 힘을 발휘하게 되는 녀석이었다. 한마디로 타고난 투사라고 할 수 있었다.

  필리언, 갈라, 유타는 전투를 치르면서 미묘한 전율을 느꼈다. 뒤에서 들려오는 가르딘의 목소리는 짜증났지만 하는 말은 정확했다. 검의 찔러 들어가는 위치와 간격, 힘의 배분에 대한 분석이 날카로웠다. 한 치의 오차도 없다는 것은 가르딘이 필리언, 갈라, 유타의 능력을 꿰뚫고 있다는 말이 되었다.

  ‘가르딘이 이 정도로 대단했나!’

  ‘오러 마스터는 사람의 마음도 읽나!’

  ‘유령에 홀린 기분이네!’

  가르딘의 진정한 실력을 조금이나마 본 것 같았다. 이유가 어찌되었던 검 격이 더욱더 날카로워지며, 강력해졌다. 최소한의 움직임으로 최대의 효과를 내고 있었다.

  “적은 많다. 사방의 적은 한곳을 향해 다가오지 않는다. 빠르고 정교하게 그리고 짧게 공격한다. 찌르고 난 후 다시 원래의 위치로 돌아와야 한다. 자신이 갖고 있는 최정점을 자세를 찾아야 해! 몸은 사람마다 틀려, 모두가 같은 수련을 한다고 해도 같은 위력을 낼 수 있는 것이 아니냐! 자신만의 길을 찾아! 그것이 바로 오러를 개척하여 마스터의 경지에 오르는 길이야!”

  형식을 따르되 잊으라는 말이 아니다. 그 형식 안에서 자신의 길을 찾는다. 오러 마스터란 그런 존재였다. 정해진 것만 따라가서는 절대 검의 길을 개척할 수 없다. 가르딘이 말하는 오의는 오러 마스터 이상의 경지를 뜻하기도 했다. 같은 오러 마스터라도 또 다른 길을 개척할 수 있는 본질을 동기들에게 알려주었다.

  다르크 부단장은 기가 막혔다. 고작 5명을 3천의 병력이 이겨내지 못하고 있었다. 시간이 30분이나 흘렀음에도 결과는 그대로였다.

  “이럴 수가 있는 것인가! 저것들은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황당하고 답답한 마음이었다. 뒤에서 지켜보는 사이너스 국왕의 살기가 느껴지는 듯했다. 여기서 끝을 내지 못하면 다음 차례는 자신이 될 것 같은 기분이었다.

  “뭣들 하고 있는 것이냐! 기사들은 병사들과 함께 저놈들을 공격해!”

  공격이 더욱더 강해졌다.

  병사들은 집요하게 파이브 스타즈를 물고 늘어졌다. 한 명의 병사가 희생해서 다른 병사에게 기회를 주는 수법이었다. 그러나 상대도 상대 나름이었다. 일반병사 중에서 뛰어난 실력을 가진 병사에게나 통하는 수법이, 파이브 스타즈에게 통할 리 없었다.

 공격이 강해진 만큼 파이브 스타즈의 공격도 강해지고 있었다. 체력이 떨어지고 있는 것 같지만 그에 반해 검은 예리하며 정교해지고 있었다.

  슈슈슉!

  한줄기 빛살 같은 뇌전이 병사들의 미간을 뚫었다. 필리언의 검이 뇌전의 성격을 띠기 시작했다. 유타와 갈라보다 먼저 능숙하게 펼쳤다. 필리언이 한 발짝 앞으로 나가자 유타와 갈라도 지지 않으려고 최선을 다했다.

  슈슈슉! 슈슈슉! 슈슈슉!

  세 줄기의 뇌전이 뻗어나갔다. 한 발 앞서면 뒤이어 또다시 따라온다. 사로가 같이 있기에 상승효과를 불러오고 있었다. 체력이 점점 빠지는 가운데서도 경지는 점점 더 강해지는 느낌을 받았다.

  다음으로 폭풍 같은 도법이 작렬한다. 뇌전과 폭풍이 절묘하게 뒤섞이며 최종의 목표를 향해 나아갔다.

  필리언, 갈라, 유타는 환희와 전율을 느꼈다. 체력이 떨어지며 검이 무거워지고 있는 것이 느껴졌지만, 적군의 움직임이 슬로모션처럼 보이고 있었다. 그저 가장 최단의 거리에서 검을 찌르면 병사는 쓰러졌다.

  831명의 병사들이 죽어 나갔다. 숫자는 정확하다. 왜냐? 그 이유는 가르딘의 죽은 병사의 숫자를 세고 있었기 때문이다. 전투 중에 상대편이 죽은 병사들 수를 세다니 정말 제정신이 아니었다.

  “2호 블랙 : 201명.”

  “3호 블루 : 198명.”

  “4호 옐로우 : 196명.”

  “5호 핑크 : 236명.”

  “야! 어떻게 막내보다 못하냐!”

  가르딘의 목소리에 동기들의 투지가 살아 오른다. 그에 반해 죽은 병사들의 숫자를 실제적으로 듣게 된 헥토르 왕국의 병사들은 사기가 저하되고 있었다. 1천 명에 달하는 병사들이 죽어 나갔다는 소리를 듣고 사기충천할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면서도 상대를 건드리지도 못하고 있었다.

  “오호! 블랙이 힘을 내는구나! 역시 영웅은 위기에 강해! 가라! 파이팅!”

  4명의 뒤에 숨어서 목소리만 큰 가르딘이었다.

  “영웅의 무서운 점을 보았느냐! 지치고, 힘들어도 언제 그랬냐는 듯이 힘을 내는 것이 영웅이다! 영웅은 좀비라는 소리다! 이놈들아!”

  영웅은 위기에 강하며, 절대 지쳐서 쓰러지지 않는다. 한 순간 지쳐도 원기 회복한 후 다시 일어서는 게 영웅이다. 악당은 그래서 안 되는 것이다. 한 번에 확실하게 죽여도 시원찮을 판에 일장연설을 하는 것이 말이 되는가! 영웅이 회복할 시간을 주는 것 자체가 패배의 지름길이라는 말이었다.

  1천 명의 병사들이 쓰러졌다.

  이 정도까지 되니 상대가 미친놈들처럼 보이지 않았다. 아니 무섭기까지 했다. 길 가던 사람들이 왜 미친놈을 피하는지 이제는 이해가 되었다. 미친놈에게 물리는 정말 약도 없었다. 그냥 황천길로 직행하는 것이다.

  “놈…들은 지쳐가고 있다! 어서 공격하라!”

  이제는 물러서기도 힘들었다. 다르크 부단장이 목청껏 소리 질렀다. 병사들 속으로 섞여 있는 기사들이 본격적으로 나섰다. 지금까지는 놈들의 힘을 확인하려고 했었다. 그런데 예상외로 너무 강하다 보니 나서지 못하고 있었다. 다르크 부단장의 말대로 파이브 스타즈가 지쳐가고 있는 것이 눈에 띄게 보였다.

  “허억! 허억! 허억!”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른다. 입에서 단내가 풀풀 풍기는 가운데도 몸이 저절로 움직이고 있었다. 팔을 들어 휘두르는 것이 억겁의 시간 속에 받는 고통처럼 느껴졌다. 온몸이 천근만근처럼 무거웠다. 산술적으로는 기사 한 명이 10명 이상의 힘을 발휘하고, 오러 익스퍼트 최상급의 기사가 200명의 병사를 상대한다고 하지만 실전은 이론에 적혀진 내용대로 흘러가지 않았다.

  필리언, 갈라, 유타는 생각했다. 이제는 가르딘이 나서야 한다고 말이다. 왜 아직도 안 나서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우리가 죽는 꼴을 보고 싶은 거냐?’

  ‘저놈은 충분히 그럴지도 몰라!’

  ‘지금 뒤에서 비웃고 있을지도 몰라!’

  가르딘이 혼자 잘되는 꼴은 절대 못 본다. 이대로 좋은 세상 가르딘만 남겨두고 가기 억울한 동기들이었다. 갈려면 같이 가야 했다. 동기들은 물귀신처럼 물고 늘어지는 끈질긴 생명력을 가지고 있었다.

  “이대로는 억울해서 못 죽어!”

  “어디 갈 때까지 가보자!”

  “다 죽인다! 이놈들아!”

  전신의 힘을 다 사용했다고 생각을 했을 때였다. 자신들도 믿지 못할 힘이 몸 안에서 솟구치고 있었다. 이제까지 모두 사용한 힘과는 대조적인 힘이었다. 아직 다듬어지지 않았지만 순수하며, 강렬했다. 강렬한 기운이 전신으로 퍼져 나갔다. 힘이 솟구치며 분출이 되어가고 있었다. 스스로도 믿지 못할 정도로 강력한 힘이었다. 앞으로 나아갈수록 솟아오른다. 

  “힘이 솟는다! 가자!”

  필리언, 갈라, 유타의 검에서 뻗어나가는 기운이 서서히 유형화되어 검의 완벽한 모양으로 변해갔다.

  “후후!”

  가르딘은 뒤에서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드디어 사용하게 된 것이다. 극한까지 사용해야 했다. 동기들의 힘은 이미 오러 마스터에 올라와 있었다. 몸은 자체적으로 방어를 하게 되어 있었다. 죽을 정도의 경험을 하지 않는 이상 몸을 보호하는 자체적인 방어 본능에 의해 최대의 힘을 발휘할 수 없게 한다. 원천진기라고 불리는 이 힘은 인간의 근원적인 생명력이었다. 생명력은 불꽃과 같다. 완벽하게 쓰여버리면, 타면서 사라져 버릴 수 있다. 하지만 원천진기의 힘을 끌어올릴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하고, 그 길로 나아간다면 경지의 발전을 이룰 수 있는 방법이 되기도 한다. 원천진기가 오러를 자극하여 오러의 힘을 증폭시켜 힘을 분출시킨다. 동기들의 몸 안 깊숙이 자리한 힘이 드디어 모습을 드러낸 현상이었다. 지금부터가 중요하다. 한 단계 앞으로 나아가 오러 마스터에 접어들었다. 힘을 모두 소모하면 원천진기가 모두 소모될 수가 있다. 되도록 적당히 힘을 사용하고 빠져나가야 했다.

  가르딘의 시야가 헥토르 왕국군의 넘어 그 뒤로 향했다.

  ‘이제야 오는군. 꽤나 늦었구나!’

  조금 더 버티고 나서 가르딘은 뒤로 물릴 생각을 하고 있었다. 어차피 여기서 사이너스 국왕을 끝장낼 것은 아니었다.

  “저…럴 수가!”

  다르크 부단장은 이제야 알았다. 이 미친놈들은 진짜로 오러 마스터들이었다. 3명의 검에 타오를 듯이 뿜어져 나오는 오러 블레이드를 보니 확실했다. 지금까지 지친 척한 것은 모두 거짓 연기일 뿐이라는 결론이 나왔다.

  기사들과 병사들의 동요가 눈에 띄게 커졌다. 1명도 아니고 3명이나 되는 오러 마스터를 어떻게 이긴단 말인가! 더군다나 나머지 한 놈은 오러 마스터가 아니라고 해도 충분히 위협적으로 미친놈이었다. 투르는 지칠수록 투지가 끌어 올랐고, 광천패황신공의 영향으로 지독한 광기를 뿜어내고 있었다. 광기에 취해 너무도 위험한 놈이 되어 버렸다.

 다 죽는다는 공포감이 순식간에 전염되었다.

  사이너스 국왕도 놀라기는 마찬가지였다. 설마 했다. 병사들을 도륙하는 놈들이 정말 오러 마스터일 줄은 생각지도 못 했다.

  “이… 럴 수가 있는 것인가! 오러 마스터가 왜 이곳에 나타나 나를 막는 것이냐!”

  다시 한 번 의문이 들었다.

  사이너스 국왕은 하늘이 계속 원망스러웠다. 이런 말도 안되는 상황이 왜 자꾸 발생하는지 한번 물어 보고 싶어졌다.

  벌써 절반에 달하는 병력이 죽어나가고 있었다. 병사들은 공포감에 젖어 들면서 한껏 몸이 움츠러들었다. 차라리 도망치는 게 나을 것 같다는 생각마저 하는 것 같았다.

 사이너스 국왕은 기사들과 병사들의 동요를 보았다. 자신도 느낀 감정은 기사들과 병사들이 느끼지 못할 리 없었다.

  “쳐라! 여기서 물러서면 너희들의 가족들도 죽는다!”

  사이너스 국왕은 결국 악수를 쓰고 말았다. 군주라면 절대 기사들과 병사들의 가족을 인질로 잡아서는 안 되었다. 지금 당장은 통할지 몰라도 나중이 되면 결국 무너지는 관계가 되어버리기 때문이다. 사이너스 국왕은 그 사실을 알면서도 어쩔 수 없었다. 지금 당장이 너무 급했다.

  “어?”

  사이너스 국왕은 뒤에서 무언가 다가오는 것 같은 기분을 느꼈다. 먼지바람이 일어나는 것으로 봐서는 말을 타고 달리는 것으로 보였다.

  “설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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