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르딘 전기 3 건드리고고 @@[Title [email protected]@]
@@[제1장 이별@@]
쉴라는 주신 라이니언의 신언을 전파하는 성녀로서 각성했다. 성녀로서 각성을 하게 된 순간 신의 지식을 미약하지만 받아들이게 되어 미숙했던 성격과 자질을 벗어나게 되었다.
하지만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성녀가 되어 각성을 했다고 해도 실질적으로 각성한 힘을 제대로 활용하기 위해서는 수업이 필요하다. 신의 능력을 제대로 활용하고 더욱더 갈고 닦기 위해서 마련된 장치라고 볼 수 있다. 신성제국의 성녀가 되면 반드시 거쳐야 하는 수련단계에 쉴라가 들어가게 되었다.
-세인트 트레이닝(성녀 수업).
세인트 트레이닝의 과정은 총 3년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대신관이 직접 집행을 하는 것이 관례다. 세인트 트레이닝은 신성제국 대교단 지하 3층에 마련된 장소에서 아무도 모르게 진행된다. 일단 대교단 지하에 들어가게 된 후 3년간은 외출이 불가능하다. 이 수행은 대신관이 직접 진행시키지만 그조차도 수행의 내용은 알 수 없게 되어 있었다. 주신 미드 라이언의 시험이라는 것만 글로 전해질 뿐이었다.
공주가 떠나는 날 쉴라도 성녀 수업을 받기 위해 들어가야 했다.
이제 들어가서 다시 보려면 최소 3년, 각자의 지위를 생각 하면 5년 안에 만나기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성녀 수업과 성 인식 인증의 종결.
그로 인한 귀로와 수행.
애틋한 마음을 간직한 마지막 날 밤이다.
아이시런 공주와 쉴라 성녀의 간절한 마음을 위로받기 위해서 서로 은밀히 만남을 가졌다. 하지만 엄밀히 말하면 은밀함과는 거리가 먼 상황이기는 했다.
아이시런 공주는 엘리언과 가르딘을 대동했고, 쉴라는 대신관과 성기사단장의 허락을 받고 만났기 때문이다. 이게 은밀하다면 세상사람 다 알고 있어도 은밀하다는 말이 된다.
가르딘은 조금 떨떠름했다.
자신은 왜 여기에 참석해서 불편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어야 하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아이시런 공주와 쉴라 둘 다 이상하게 보였다.
두 여인은 서로의 감정을 토해내며 아쉬움을 토로하고 있었다. 둘의 표정만 보면 앞으로 다시는 볼 수 없는 사람처럼 느껴진다. 누가 보면 서로 사귀는 것 아니냐는 오해의 시선을 보낼 만했다.
여인과 여인의 사랑.
금단의 열매와 같은 무서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바늘방석과 같은 자리임에도 불구하고 가르딘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들어주었다.
‘사내와 사내의 사랑보다는 백 배 낫지.’
생각만 해도 구역질이 나는 일이 아닐 수 없다. 토 나오는 생각은 그만 하기로 마음먹은 가르딘은 다시 그녀들의 애틋한 대화를 억지로 들어야 했다.
아이시런 공주가 이제 다시 보기 힘든 쉴라에게 걱정 섞인 말을 했다.
“쉴라야, 어려운 일 있으면 꼭 내게 말해 알겠지.”
“물론이에요, 언니! 제가 믿을 사람은 언니밖에 없어요.”
“아이쿠, 귀여운 내 동생!”
헛!
가르딘의 입에서 결국 참지 못하고 헛바람이 흘러나왔다. 순간적으로 주화입마의 단계에 들어설 뻔했다. 겨우 1살 차이에 저런 대화를 하다니 생각 이상으로 정신이 이 상하다고 볼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가르딘의 헛기침을 들은 아이시런 공주와 쉴라의 눈이 예리하게 빛을 발했다. 그 옆으로 엘리언마저 눈을 흘기자 순식간에 공적이 되어버린 가르딘이었다.
“이별을 위한 오붓한 대화가 상당히 거슬리나 보네요, 가르딘 경!”
“무슨 그...런 말씀을!”
“맞는 것 같은데요, 왜 말투가 계속 떨리는지 심히 의심이 가는군요.”
역시 아이시런 공주였다.
한순간 생긴 빈틈을 파고드는 예리함을 가지고 있었다.
“언니, 그만 하세요. 가르딘 오빠도 굉장히 불순한 의도는 아닐 거예요, 아주 조금 그런 의도를 가지고 있기는 하지만 관대하기가 하늘과 같은 언니가 참으세요.”
“그럴까, 아무튼 조심하세요.”
“역시는 언니는 마음이 넓어요!”
“그렇지, 내가 보기에도 그렇게 생각해. 그리고 절대 가르딘 경에게 오빠라고 하지 마라. 네 체면을 생각하면 절대 그러면 안 돼! 알겠지.”
“예, 언니!”
호호호호호!
쉴라의 말에 가르딘은 어이가 없었다. 말투는 가르딘을 위해 대변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 그 속을 들여다보면 말리는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가르딘을 속 좁고, 편협한 사람으로 모는 내용이었다.
‘저것들이!’
속에서 열화가 치밀었다. 생각 같아서는 딸 가진 아버지로서 훈계를 해주고 싶지만 상황이 불리하기에 참았다. 결국 신분이라는 철벽을 무시할 수 없었던 가르딘이었다.
가르딘은 다시 묵묵히 차를 마시며 가만히 있었다. 소외와 타박에도 굳건히 버티는 불굴의 기사 가르딘이다. 카이로만 제국의 최강 기사단인 피닉스기사단의 오러 마스터가 이 정 도에 굴복할 수 없다는 듯 한 태도였다.
‘아이시런 언니를 지켜주세요.’
‘걱정 마라.’
가르딘의 뇌리를 파고드는 언어에 대답했다. 쉴라가 아이시런 공주와 대화하면서 가르딘과도 대화를 했다.
가르딘의 입장에서 공주를 지키는 것은 당연히 해야 할 임무 중에 하나였다. 쉴라의 염려가 아니라고 해도 무조건 해야 될 일이다.
‘수행이 끝나고 볼 수 있었으면 좋겠네요.’
‘난 아닌데.’
‘왜요?’
‘그건 네가 가장 잘 알지 않느냐.’
‘그런 가요!’
쉴라의 성녀 수업이 끝나고 난 후 성녀로서의 맡은 바 일을 처리하게 된다. 성녀로서의 일은 대륙의 평온을 도모하고, 사람들에게 주신 라이니언의 말을 전하는 것이다. 그 일을 하면서 바쁜 나날을 보내게 된다. 쉴 틈 없는 생활 속에서 가르딘을 찾아온다는 말은 그만큼 위험한 일이 있다는 말이 된다. 세상이 위기에 처하게 되면 쉴라가 자신을 찾아오게 된다는 말이었다. 세상이 위험하고, 그 일을 하기 위해서 자신이 필요하다는 것은 절대 사양이었다. 차라리 쉴라가 안전하게 신성제국 대교단에서 생활하기를 바랐다. 절대 찾아오지 말고 말이다.
가르딘의 입장에서는 당연한 생각이었다. 반면에 쉴라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무슨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고 해도 보고 싶은 사람이 가르딘이었다. 가르딘과 있으면 즐겁고 행복한 기분이 들기 때문이었다. 그 감정이 무엇인지는 정확 하게 파악할 수 없으나 따뜻하다는 것은 사실이었다.
대화가 이어질수록 시간은 빠르게 흘러갔다.
시간 가는 줄 모르던 수다도 점점 밤이 깊어감에 따라 다음 날을 준비해야 했다. 서로의 바쁜 삶에서 이 정도의 휴식도 감지덕지한 일이었다.
해가 떠오른다.
아침의 선선한 기운을 데우려는 듯이 활화산처럼 타오르는 태양의 빛이 지상을 비추었다.
잠들어 있던 대지가 깨어나는 시간에 맞추어 사람들도 부산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대교단 앞에는 이미 여러 대의 마차와 사람들이 시간에 맞추어 준비를 하고 있었다.
아이시런 공주가 다시 카이로만 제국으로 떠나는 것을 마중하기 위한 준비였다. 사람들의 얼굴에는 생기가 넘쳐흘렀다. 아름다운 아이시런 공주의 배웅이었고, 성녀가 그 자리에 있었기 때문이다.
성녀의 탄생 하나로도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안정을 찾아 주고 있었던 것이다. 반면에 중년의 기사가 눈가를 비비며 입을 벌렸다. 입이 찢어지도록 벌린 입은 숨을 대량으로 흡입 했다.
하아아암!
입이 찢어지도록 하품하는 가르딘이었다. 어제 잠을 제대로 못 자서 피곤한 것은 아니었다. 그랜드 마스터가 하루 못 잤다고 해서 피곤할 리 만무했다. 가르딘은 육체적 피곤보다 정신적으로 피곤한 상태였다. 어제 하루 종일 두 사람의 수다를 들어주며 핀잔을 받느라 고생이 심했기 때문이다.
그래도 참는 자에게 복이 오고, 고생 끝에 낙이 온다지 않는가!
다시 집으로 돌아간다는 것에는 기분이 좋아졌다.
‘이제 드디어 라이나를 내 품에 안을 수 있구나!’
오직 그 일념 하나로 오늘까지 갖은 수모를 모두 참았다. 물론 수모 조금 받는 것으로 모욕을 당했다고 길길이 날뛰는 성격도 아니었다. 주변에서 보는 눈이 있기에 행동을 자제하는 것뿐이지 아니었다면 귀찮아서 상관하지도 않았을 가르딘이었다.
가르딘에게 라이나와 브리안이 있는 이상 모든 것을 다 인내할 수 있었다. 가족의 평화를 위해서 희생은 당연했다. 반면 가족의 희생이 걸린다면 충분히 이기적일 수 있다. 개백정 이 되라고 해도 할 수 있는 가르딘이었다.
“이제 돌아가는구나.”
“그러게, 우리도 이제 활짝 필 시기가 다가왔잖아.”
가르딘의 말에 필리언이 맞장구를 쳐주었다. 어느새 다가 온 필리언이었다. 필리언이 기사들과 병사들에 대한 준비를 모두 마치고 가르딘에게 온 것이다. 필리언은 무언가 잔뜩 기대를 하고 있었다.
“한턱 거하게 쏘는 것 잊지 않고 있겠지!”
“걱정 마라.”
필리언은 돌아가서 가르딘이 한턱 크게 내야 한다고 강력히 주장했다. 가르딘도 모른 척 넘어갈 수 없는 일이었다. 연례행사, 그리고 관행처럼 이어져 내려온 것이다. 일단 승진을 하거나 경지를 개척하면 한턱 거하게 쏘는 것이 가르딘과 동기들 간에 관행이었다. 이것은 무조건 지켜야 하는 룰이었다. 단체생활에서 룰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안내면 쪼잔한 놈으로 찍혀서 다시는 친구들이라는 울타리로 접근하지 못한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가장 우울한 것은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겠지만 그것보다 커다란 것은 외톨이다. 혼자라는 것, 즉 주변 사람들과 어울리지 못하는 것은 소외대상의 충분한 매력조건이다. 결국 버티지 못하고 낙오하는 놈들이 무수히 많을 수 있다.
가르딘은 필리언의 말대로 한턱 낼 준비를 했다.
기사로서의 임무를 충실히 이행할 때마다 격려금이 나온다. 책임자인 가르딘에게 배정된 액수가 이번에는 꽤 될 것으로 보인다. 그 돈으로 내면 문제는 없다. 다만 어디에서 마시고 놀 것인가를 고민해 봐야 했다. 물론 결론은 하나였다. 펀머푸, 즉 가르딘의 집에서 매상을 엄청나게 올려줄 생각이다.
가르딘이 돌아가서 회포를 풀 계획을 세우는 동안 아이시런 공주가 숙소에 나왔다. 그에 따라 쉴라와 대신관이 그 뒤를 따랐다.
귀족과 신관들이 2열로 나누어 서서 아이시런 공주의 귀향을 반기고 있었다.
아이시런 공주는 마차에 타는 순간까지 우아함과 세련됨을 잃지 않았다. 어제 쉴라와는 가르딘이 피곤해할 정도로 많은 대화를 나누었기에 간단한 인사로 마무리를 지었다.
“건강해야 돼.”
“언니도 건강하세요!”
“프리먼 대신관님의 환대에 감사드려요!”
“아닙니다. 공주님이야말로 신성제국 최고의 손님입니다. 허허허!”
아이시런 공주가 오고 나서 모든 일이 순조롭게 이루어졌다. 특별한 일을 한 것도 아닌데 귀족들의 힘이 급속하게 약해지고 있었다. 또한 성기시단의 기사들이 예전과는 다르게 필사적으로 수련하는 것이 아닌가! 놀라운 변화였다. 그 모든 것이 아이시런 공주가 찾아왔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대신관이었다. 그녀가 왔기에 성녀도 돌아왔다. 모든 것이 좋은 쪽으로 돌아간다고 생각했다.
프리먼 대신관의 입장에서 아이시런 공주는 귀빈 중에 귀빈이 되어 있었다.
성대한 환대를 받은 아이시런 공주가 만면에 미소를 띠우며 마차에 올라탔다.
가르딘은 공주가 탄 것을 확인하자마자 천천히 마차를 이동시켰다. 가르딘이 잠시 쉴라를 보았다. 혼자 남겨진 상황이었다. 성녀라고 하지만 아직은 어린 소녀일 수밖에 없었다. 걱정이 되지 않는다면 거짓말이었다.
하지만 돌아선 가르딘은 걱정의 눈빛을 지웠다. 스스로 일어서야 굳건한 사람이 된다. 결국에는 홀로 살아가는 세상일 수밖에 없다. 누군가 무언가를 해주기 전에 자신이 바로 서 야 도움을 받을 수 있다는 말이었다.
‘잘하겠지.’
쉴라라면 충분히 잘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