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가차랜드의 행복한 도미닉 경-420화 (508/528)

〈 420화 〉 [419화]히어로즈 오브 레전드

* * *

"컷! 컷!"

어느 야외 세트장.

여기저기 유적처럼 보이는 건물들이 세워져 있고, 나무가 무성한 숲이 인상적인 곳이었다.

그곳에서 감독으로 보이는 자가 신경질적으로 컷을 외쳤다.

이 감독은 이번에 AAA급 모드인 히어로즈 오브 레전드의 트레일러를 맡은 감독이었는데, 그는 무엇이 그리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짜증이 가득한 표정으로 묵묵히 담배를 입에 물었다.

"야, 조감독."

"네. 감독님."

"일 이따구로 할래?"

"네?"

"커피가 비었잖아! 당장 가서 커피 사와!"

"아, 네!"

조감독을 비롯한 스태프들은 감독의 신경질에 미칠 것만 같았다.

지금 감독은 별것 아닌 것까지 트집을 잡아가며 패악질을 부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감독도 할 말은 많았다.

우선, 그가 지금, 이렇게 신경질적으로 변한 이유부터 시작해서 말이다.

처음부터 감독이 이렇게 짜증을 부리던 것은 아니었다.

그는 뜻밖에 가차랜드에서 잘 알려지지 않았던 AOS라는 장르를 사람들에게 알릴 수 있다는 사실에 어린아이처럼 기뻐하던 사람이었다.

그렇기에 지금처럼 트레일러 제작 작업에 기꺼이 감독 자리를 맡겠노라고 수락하지 않았던가.

처음엔 정말 행복함으로 가득했던 감독이었다.

그러나 그는 점점 짜증과 화가 많아지기 시작했다.

바로, 그에게 맡겨진 과중한 책임 때문이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감독이 스스로에게 가지는 막대한 책임감 때문이었다.

'AAA급 모드니, 트레일러도 AAA급으로 뽑아야 한다!'

'인생 최고의 역작을 만들어 모드의 발목을 잡지 않아야 한다!'

감독은 점점 그런 책임감에 얽매여 평정심을 잃어갔다.

무엇보다도 감독이 짜증을 부리게 된 것에는 바로 스태프들과 배우들의 탓도 있었다.

인생 최고의 트레일러를 만들고자 한 그의 욕심과 이상은 저 하늘을 뚫고 우주를 지나고 있었건만, 배우들과 스태프들은 그런 감독의 이상을 따라오지 못했다.

그러니 감독이 스태프와 배우들에게 짜증을 부릴 수밖에.

"감독님! 여기 커피­"

"식었잖아! 88도에 맞추라고 했지! 온도는! 88도! 뭐라고?"

"88도 입니다!"

"그래! 그러니까 다시 데워 와! 이번엔 88도에 맞춰서!"

감독은 조감독이 가져온 커피를 내동댕이치며 버럭버럭 화를 내질렀다.

그리고 스태프들은 그런 감독의 모습을 보며 소근소근 뒷담화를 까기 시작했다.

"제법 명성있는 감독이라고 해서 지원했는데, 감독이 아니라 망나니잖아?"

"그러니까. 돈은 제대로 주니까 그나마 낫지만, 아무리 그래도 두 번 같이 일할 사람은 아니야."

카메라팀 촬영 감독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오디오팀 녹음 감독의 말대로, 지금의 감독은 두 번 같이 일하기 힘든 사람이었다.

"에휴. 오늘도 고생길이 훤하구만."

"뭐, 어쩌겠냐. 괜히 돈 잘 준다고 지원한 우리 잘못이지. 아, 막내야! 거기 카메라 좀 치워라!"

"아, 넵!"

촬영 감독이 카메라 팀의 막내를 시켜 카메라를 치웠다.

그때, 카메라를 치우던 막내가 잠시 촬영 감독의 눈치를 보더니 이내 조심스럽게 한마디를 물었다.

"그, 저 카메라가 너무 신기해서 그런데 잠깐 좀 만져 봐도 되겠습니까?"

촬영 감독은 그런 말을 한 막내를 빤히 쳐다보았다.

막내는 이런 기회가 잘 오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았기에 필사적으로 촬영 감독을 설득하려고 생각을 짜냈다.

"그, 제가­"

"그래라."

"...네?"

"쉬는 동안만 카메라 좀 만져 보라고."

"아...!"

카메라 팀 막내는 촬영 감독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바로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가, 감사합니다!"

막내는 촬영 감독에게 감사의 인사를 한 뒤, 카메라를 들고 구석진 곳으로 향했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이런저런 기능들을 만져 보기 시작했다.

물론, 기껏 해야 녹화, 정지, 되돌리기, 빨리감기 정도였지만 말이다.

"뭐야, 저거 비싼 카메라 아니야? 막내 들려 줘도 되는 건가?"

"냅 둬. 요즘 저런 의욕 있는 녀석 없어. 카메라 한 번 만지게 해주고 호감 쌓으면 남는 장사지."

"하긴. 에휴. 우리 오디오 팀에는 언제 저런 의욕과 패기가 넘치는 신입이 들어오려나..."

촬영 감독과 녹음 감독은 그렇게 말하며 잡담을 나누었다.

대개, 감독에 대한 뒷담화를 말이다.

...

카메라 팀의 막내는 쉬는 시간 동안 내내 녹화하고 지우고를 반복했다.

이런 카메라에 익숙해져야 나중에 욕을 덜 먹을 것 아닌가.

"이봐! 그러니까 그곳은 슈욱! 파박!이 아니라 슈­욱 파밧!이라고 몇 번을 말해!"

막내는 저 멀리 감독이 배우들에게 소리치는 것을 들었다.

하지만 막내는 그다지 개의치 않았는데, 이런 일이 하루 이틀 벌어진 것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카메라를 조작하던 막내는 문득 쎄한 기분이 들었다.

"...응?"

막내는 쎄한 기분이 드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거기엔 구름 사이로 뱅글뱅글 도는 푸른 게이트가 있었다.

"저게... 뭐지?"

막내는 뱅글뱅글 도는 푸른 게이트를 바라보며 멍하게 있으면서도, 이내 곧 저것을 찍어야겠다고 생각하며 카메라를 조작했다.

막내는 푸른 게이트를 향해 카메라를 돌린 뒤 초점을 맞췄다.

그리고 막내가 모든 촬영 준비가 끝난 뒤 녹화 버튼을 눌렀을 때...

...

"이래서야 발목만 잡는 꼴이지!"

감독은 씨익씨익거리며 있는 힘껏 분노를 표출했다.

"아무도 내 원대한 이상과 목표를 이해하질 못해!"

감독은 진정으로 그렇게 말하며 손에 들고 있던 모자를 땅에 내동댕이쳤다.

뭐 하나 같이 마음에 드는 것이 없었다.

배우들은 적당적당하게 연기하고 있었고, 스태프들도 제대로 일하는 녀석이 없었다.

모두가 돈 뺏어가는 도둑들이요, 강도요, 밥버러지들이었다.

"이제 제대로 안 하면 지급할 돈을 깎아버리던가 해야... 응?"

그때였다.

감독은 문득 옆에 있는 수풀이 부스럭거리는 것을 느꼈다.

"야생 동물인가?"

감독은 그렇게 말하며 발아래에 있던 돌멩이를 주웠다.

그리고 수풀을 향해 집어던지며 버럭 화를 내었다.

"꺼져! 안 그래도 짜증이 나 죽겠는...데..."

버럭버럭 소리를 지르던 감독의 말이 이제는 개미 만큼이나 작아졌다.

수풀에서 나타난 무언가 때문이었다.

"다, 당신은 누구요?"

아니, 무언가가 아니라 누군가였다.

수풀에서 나타난 이는 가면을 쓴 근육질의 사내였는데, 상의는 벗고 있었으며 끈과 깃털로 몸 곳곳을 장식한 자였다.

그는 잠시 감독을 노려보더니, 이내 갑자기 알 수 없는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알랄랄라이­!"

그러자 사방에서 수풀이 부스럭거리더니, 근육질의 사내와 비슷한 복장의 사람들이 여럿 나타났다.

그들은 근육질의 사내처럼 감독을 노려보더니, 이내 다시 한번 알 수 없는 소리를 외쳤다.

"알랄랄라이­!"

그러자 그들은 각자 숨겨두었던 손도끼를 꺼내 들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근육질의 사내가 또 한 번 알 수 없는 소리를 내자, 그들은 감독을 향해 달려들기 시작했다.

"알랄랄라이­!"

"저, 저리 가!"

감독은 갑작스러운 습격에 놀라 그 자리에서 넘어지고 말았다.

의문의 습격자가 감독의 가랑이 사이로 도끼를 집어 던졌다.

감독은 눈을 질끈 감고 다리를 쩍 벌렸다.

그러자 다행스럽게도 의문의 습격자가 던진 도끼는 아슬아슬하게 땅에 박혔다.

감독은 이 상황에 놀라 오줌을 지릴 뻔했으나 바로 정신을 차리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촬영장으로 뛰어가기 시작했다.

일단 사람이 많은 곳으로 가면 습격을 포기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었다.

...

"알랄랄라이­!"

깃털로 온몸을 장식한 가면의 사내는 도끼를 든 채 감독을 쫓았다.

이 자는 어째서 감독을 쫓아가는 것일까.

사실, 이 자는 도적이었다.

정확하게는 도적단의 두목이었다.

그들은 얼마 전, 경찰들의 추격을 피해 이 숲으로 도망쳐왔다.

숲에서의 야영은 하루 이틀 정도는 즐거운 법이지만, 그 이상이 되면 지루하고 짜증이 나는 법.

그러던 와중에, 이 도적단은 영화를 촬영하는 이들을 발견했다.

도적단들은 재밌는 놀잇감을 발견했다는 듯 서서히 포위망을 좁혀들어갔다.

이대로라면 스태프들과 배우들은 도적단의 존재를 눈치채지도 못하고 습격을 당할 상황.

그런 상황에서 감독이 던진 돌 하나가 그들을 발견해낸 것이었다.

"알랄랄라이­!"

놓치지 마라!

도적단의 두목은 대충 그런 느낌으로 소리쳤다.

이대로 감독을 놓치게 된다면, 그들은 이 숲에서도 도망치는 신세가 될지도 몰랐으니까.

"으악!"

마침 놓치지 말라는 하늘의 뜻인지, 감독이 나무뿌리에 발이 걸려 넘어지고 말았다.

"알랄랄라이­!"

도적단의 두목은 그럴 줄 알았다며 감독을 비웃었다.

그리고 천천히 감독에게 다가가기 시작했다.

꽥꽥거리며 시끄럽게 하기 전에 멱을 따버리려는 속셈이었다.

그때였다.

뻑!

"...?"

도적단의 두목은 갑자기 머리를 강타하는 충격에 놀라 앞으로 고꾸라졌다.

그리고 정신을 잃은 뒤, 다시는 일어나지 못했다.

감독은 다가오는 도적단의 두목에게 쫄아 눈을 질끈 감고 있었다.

그러나 갑자기 빡!하는 소리와 함께 자기에게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자, 감독은 슬쩍 실눈을 떠 주변 상황을 살펴보았다.

쓰러진 도적단 두목, 사방에 널브러진 판자들.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에 대해 생각하던 감독은, 문득 놀란 눈이 되었다.

이 자리에 왜 있는지 모를 이가 여기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도, 도미닉 경?"

"음?"

쓰러진 도적단 두목의 주변에 나무판자가 널브러진 곳에는, 바로 도미닉 경이 있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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