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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차랜드의 행복한 도미닉 경-421화 (509/528)

〈 421화 〉 [420화]히어로즈 오브 레전드

* * *

지금, 이 상황을 한 단어로 표현하자면, 엉망진창이라고 할 수 있었다.

만일 당신이 누군가에게 다가가서 이렇게 말한다고 쳐보자.

'트레일러를 찍고 있다가 잠시 쉬고 있었는데, 갑자기 도적단이 습격했어. 그리고 하늘에서 파란 소용돌이가 나타나더니, 그 소용돌이에서 외눈박이 기사가 나룻배를 타고 나타나 도적 두목의 정수리를 오목하게 만들어 버렸지. 정말이라니까?'

이렇게 말했을 때, 상대방의 반응은 어떨까?

열 명 중 여덟, 아홉 명은 당신이 미쳤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말은, 열 명 중 하나는 당신의 말을 귀 기울여 듣거나, 혹은 정말 흥미를 가질지도 모른다는 뜻이었다.

"언빌리버블...!"

그리고 여기 트레일러를 찍던 감독은 방금 전까지 말하던 후자의 사람이었다.

열 명 중 하나라는 소리다.

그는 지금, 이 엉망진창인 상황이 너무나도 마음에 들었다.

단 하나도 자기의 예상대로 흘러가지 않는 상황.

지금까지 감독은 모든 것을 자기 통제 아래에 놓고 싶어 했다.

그렇기에 자꾸 삐져나가는 한두 가지의 실수가 눈에 밟혔던 것이다.

그러나 반대로, 아예 감독의 통제권을 상실할 만큼... 아니, 아예 감독조차 예상하지 못할 일의 연속이면 어떨까?

거기까지 생각이 닿자, 감독은 새로운 세계에 눈을 떴다.

비로소 지금까지의 편협한 시각을 벗어나 한 발자국 성장한 것이다.

감독은 바로 그 자리에서 가부좌를 틀었다.

이 심득을 바로 체득하려면, 명상이 조금 필요할 것 같았으니까.

"...여기가 어디지?"

감독이 그렇게 자기만의 세상에 빠져들고 있었을 때, 도미닉 경은 주변을 둘러보았다.

이미 타고 있던 나룻배는 산산조각이 나버린 상태였고, 엉덩이 아래에는 깃털로 온몸을 장식한 남자가 깔렸었다.

도미닉 경은 무의식적으로 그 남자의 가면을 벗겨보았다.

그리고 어째서인지 익숙한 얼굴이 드러났다.

도미닉 경은 그 얼굴에 대해서 기억하지는 못했으나, 어디선가 본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도미닉 경은 그를 뒷골목에서, 그것도 아임 낫 리틀이 매번 도적들에게 습격당했을 때마다 본 적이 있었지만, 도미닉 경은 그를 제대로 기억하지 못했다.

아무래도 그의 캐릭터성이 부족하다는 것이겠지.

아무튼, 도미닉 경은 다시 도적단 두목의 얼굴에 가면을 씌워준 후, 다시금 주변을 둘러보았다.

도미닉 경은 이곳이 숲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당연하다면 당연한 소리지만, 나무가 우거져 있었기 때문이다.

나무의 종류까지는 몰랐으나 숲이라는 사실을 알아차린 것만으로도 큰 수확이었다.

물론, 도미닉 경이 알아차린 것은 그뿐만이 아니었다.

바로, 이 주변에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알아차린 것이다.

"다행이로군. 그래도 길을 물어볼 사람들이 있어서."

도미닉 경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방금 전까지 있었던 엉터리 이스터 에그로 가득 찬 공간이나, 검은 배경과 형광색 글씨 밖에 없었던 세상보다 훨씬 나은 공간이었으니까.

도미닉 경은 그렇게 생각하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몸에 묻은 먼지를 탈탈 털어냈다.

그리고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 다가가, 여러 가지 질문을 던지기 시작했다.

"그, 실례하오. 나는 페럴란트의 도미닉 경이라는 사람이오."

"아, 네! 알죠! 그, 영화 잘 봤습니다!"

"영화?"

"양산박 필름에서 만든 '상환'이라는 영화에 나오시지 않으셨습니까! 저 그 영화 보고 감동해서 이렇게 진로도 영화 쪽으로 틀었습니다! 만나 뵙게 되어서 영광입니다!"

"아, 그렇소?"

"연기가 조금 로봇같긴 했습니다만... 아니, 아닙니다! 제가 대 배우께 무슨 소릴..."

도미닉 경은 그런 적이 있었나 싶었지만, 문득 과거에 양산박의 간부인 왕이가 가져왔던 대본을 기억해냈다.

아무래도 왕이는 그 대본에 미련이 남은 나머지 도미닉 경의 허락도 없이 도미닉 경의 정보가 담긴 안드로이드를 주인공으로 내세워 영화를 찍은 모양이었다.

아무렇지도 않게 불법적인 일을 저지르는 걸 보면, 과연 양산박이라고 해야 할지...

아무튼, 도미닉 경은 어쩔 줄 몰라 하는 스태프가 내민 손을 잡아 악수를 해주며 계속해서 질문을 던졌다.

"그, 여기는 어디고, 뭘 하고 있었던 거요?"

"아, 그거요? 여긴 가차랜드 시립 공원 안에 있는 숲입니다. 보통은 휴양하러 오는 곳인데, 오늘은 트레일러 촬영 때문에 저희가 하루 빌린 상태죠."

"트레일러?"

"네. 히어로즈 오브 레전드라고 들어 보셨습니까? 정말 갓.모.드 입니다!"

도미닉 경은 이곳이 가차랜드 안이라는 사실에 안심했다.

아무래도 도미닉 경은 그 엉망진창인 공간을 넘어 다시 돌아오는 데 성공한 모양이었다.

"그나저나 히어로즈 오브 레전드라."

도미닉 경은 이 이름을 들어 본 적이 있었다.

아마 AOS 모드라고 했던가.

FPS 모드와 함께 제법 인기가 있는 모드였던 것 같다.

"그런 게임의 트레일러라니, 보통 트레일러는 출시 전에 나오지 않소? 이미 히어로즈 오브 레전드는 출시 된 걸로 아는데."

"아, 아시는군요. 사실, 이건 다른 트레일러라서요. 정확히 말하자면 2.0이라고 해야 할까요? 게임이 거의 새롭게 개편되면서 새로운 트레일러를 찍고 있었던 거죠."

"흠."

도미닉 경은 스태프의 말에 턱을 쓰다듬으며 생각했다.

트레일러라.

그러고 보니 예전에 성급 심사에서 확장성이라는 항목이 있었다는 것이 기억났다.

지금까지 도미닉 경은 그에 따르는 성과로 성급 심사를 통과했기에 사실상 유명무실한 항목이었지만, 계속해서 그런 요행을 바라는 건 너무 양심이 없지 않은가.

결론적으로 도미닉 경은 5성이 되기 위해선 심사를 통과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려면, 각 항목에 해당하는 목표를 채워 넣는 것이 중요하겠지.

도미닉 경은 다시 5성 확장성 항목을 떠올리려고 노력했다.

"이 캐릭터가 주연인 게임, 영화, 드라마 등 최소 GOTY급 멀티미디어 매체가 있을 것이던가."

"네?"

"아니, 혼잣말이오."

도미닉 경은 마침내 5성 확장성의 항목을 기억해냈다.

도미닉 경은 잠시 고민하더니, 이내 스태프에게 영화에 관련된 것을 물었다.

"혹시 '상환'이라는 영화, 성적이 어떻게 되는지 알 수 있겠소?"

"어... 아마 천만 명은 봤을 겁니다."

천만!

도미닉 경은 천만 명이라고 해도 감이 오지 않았다.

그 정도면 GOTY급인가?

"혹시 그건 GOTY급이오?"

"상이라도 받았으면 그렇겠지만..."

스태프는 도미닉 경의 물음에 말끝을 흐렸다.

아무래도 상을 못 받아 GOTY급은 되지 못한 모양이군. 도미닉 경은 그렇게 생각했다.

역시나 쉬운 길은 없다는 건가.

도미닉 경은 그렇게 생각하며 고개를 저었다.

...

"와 세상에."

숲의 구석진 곳, 카메라에 익숙해지기 위해 버섯이라도 찍을까 생각하던 카메라 팀 막내는 탄성을 내질렀다.

정확히 말하자면, 그는 방금 전 카메라에 찍힌 영상을 몇 번이고 되감고 재생하며 감탄사를 연발하고 있었다.

"이게 인생 샷인가 뭔가 하는 거구나."

막내는 그렇게 말하며 다시 한번 영상을 재생시켰다.

하늘에 떠 있는 푸른 소용돌이부터 찍힌 이 영상은, 이내 그 소용돌이에서 나룻배와 함께 떨어진 도미닉 경의 모습을 찍었다.

그리고 그 도미닉 경이 도적 두목의 머리 위로 떨어져 나룻배가 산산조각이 나는 장면과, 그 이후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마지막으로 영상은 끝이 났다.

"이거 어떻게 좀 살리고 싶은데..."

막내는 안타까운 탄식을 내질렀다.

이 카메라는 카메라 팀의 공용 카메라였다.

그렇기에 빌린 이후에는 영상을 모두 지우고 원래대로 한 뒤 반납을 해야만 했다.

"지우기에는 너무 아까운데..."

막내는 계속해서 이 영상이 지워질 것을 아쉬워하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 방향성도 다르니 감독님도 지우라고 하시겠지. 그래. 지우자."

막내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영상을 나와 메뉴를 클릭했다.

그리고 영상을 선택하고 지우려는 그 순간에­

"잠깐, 내가 지우라고 할 영상이란 게 뭐지?"

"으악! 깜짝이야!"

막내의 뒤에서, 감독이 튀어나왔다.

"어, 별 건 아닙니다. 그냥 방금 전에 있었던 일을 좀 찍었는데...?"

막내는 각이 바짝 선 신병처럼 뒤로 돌아 감독을 바라보았다.

그러고는 의문스러운 표정으로 감독을 바라보았다.

감독의 눈이 이상할 정도로 초롱초롱했기 때문이다.

"방금 전에 있었던 일을 찍었다라..."

"그, 지우려던 참이었습니다! 신경 쓰실 필요는­"

"재밌나?"

"...네?"

"영상이 재미있느냔 말일세."

감독은 막내에게 영상이 재미있냐고 물었다.

"재미는 있습니다. 그래도 지금까지의 방향성과는 조금 달라서­"

"그건 내가 판단해."

감독은 막내에게 그렇게 말하며 막내에게서 카메라를 빼앗아 들었다.

그리고 막내가 찍은 영상을 재생시켰다.

확실히 지금까지 감독이 바라던 완벽하고 멋진 영상은 아니었지만, 감독의 표정은 매우 환했다.

이 영상 하나로, 이번 트레일러의 방향성을 잡았기 때문이다.

"...지금까지의 다른 영상은 다 폐기해야겠군."

"네?"

"이 영상을 메인으로 가자고. 도미닉 경도 섭외를 좀 하고."

감독은 그렇게 말하며 막내에게 소리쳤다.

"빨리 가서 도미닉 경이 아직 계시는지 알아 봐. 그리고 우리와 계약할 생각이 없으신지 물어봐. 일단 기본적으로 이번 트레일러의 주인공으로 도미닉 경을 쓰겠다고 하면서 시간이라도 벌어. 내가 곧 가서 같이 설득할 테니까."

감독은 머리에서 생각나는 대로 막내에게 말했다.

"네? 네."

막내는 감독의 말을 거의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일단 가서 도미닉 경을 잡으라는 건 알아들었다.

"알아들었으면 바로 움직여! 한 시가 급해!"

"네!"

감독은 아직도 어리버리하게 구는 막내에게 호통을 쳤다.

그제야 막내는 빠릿빠릿하게 도미닉 경이 있는 곳을 향해 뛰어갔다.

감독은 다시 한번 영상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이 컨셉... 먹힌다!"

감독의 눈은 지금까지의 그 어떤 때보다 초롱초롱하게 빛나고 있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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