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12화 〉 [외전 11화]사소한 오해 : 동서양 전쟁
* * *
도미닉 경의 아들 도미노 경은 아버지를 뛰어넘을 수도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받고 있었다.
아버지 도미닉 경에게서 물려받은 체력과 방어력, 그리고 저항력은 탱커로서의 기본소양으로 자리했고, 어머니 히메에게서 물려받은 재빠른 몸놀림과 회피율은 안 그래도 든든한 탱킹력에 날개를 달아주었다.
또한 아버지의 특수 기술인 [반응성 장갑]과 어머니의 특수 기술인 [위상 전이]를 물려받아 공격을 받으면 최대 체력 비례의 보호막을 생성하며 잠깐 물질계에서 사라지기까지 하는, 그야말로 이게 맞아? 싶을 정도로 강력한 탱커 유망주였다.
그래. 유망주.
도미노 경은 아직 유망주였다.
그 이유는 간단했다.
도미노 경은 사람들에게 자기 성능을 인정받지 못했으니까.
도미노 경은 이제 막 성인식을 치렀고, 이제서야 가차랜드의 일원 중 하나로 겨우 인정받은 상황이었으니까.
"인정받고 싶다."
이는 도미노 경이 성인식 때 중얼거렸던 말이었다.
사실, 도미노 경은 남 부러울 것 없이 살아왔다.
아버지는 자수성가한 부자면서 스스로 이름값을 세상에 알린 유명인이었다.
어머니는 명가의 여식이었고, 손이 귀한 운류 가문의 딸이었기에 역시나 원한다면 운류 가문의 막대한 재산을 사용할 수 있었다.
이렇게 유명하고 부유한 부모 아래서 자라난 도미노 경.
원하는 것이 있다면 무엇이든 얻을 수 있었고, 필요한 것이 있다면 언제든 손에 넣을 수 있었다.
그러나 도미노 경은 가슴 깊숙한 곳에서 한 가지 열망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 열망은, 지금처럼 살아서는 절대로 이룰 수 없는 열망이었다.
그 열망은 바로...
"나도, 내 손으로 내 명성을 널리 알리고 싶다."
그렇다.
도미노 경은 확실히 도미닉 경의 아들이었다.
도미닉 경이 자기 스스로 한 가문을 세웠듯, 도미노 경도 자기 손으로 가문의 이름을 드높이고 싶어 했다.
도미노 경은 아버지에게서 받은 사자 문양 방패와 어머니에게서 받은 수실이 달린 장검을 물그러미 바라보았다.
"돈 카게야샤가 그랬지. 남자가 이름을 알리기 위한 가장 쉬운 방법은, 바로 무(?)라고."
도미노 경이 사자 문양 방패와 장검을 들어 올리며 엄숙하게 말했다.
"그리고 이름뿐만이 아니라 그 명성을 올리고 싶다면, 협(?)이 제격이라고."
도미노 경은 묵묵히 양손으로 들어 올린 검과 방패를 올려다보았다.
창문으로 들어온 빛 한 줄기가 그 무구들을 비췄다.
도미노 경은 그것이 신의 뜻(DEUS VULT)이라고 믿었다.
"이것이 바로, 내가 가야 할 길이야."
도미노 경이 그 빛줄기에 감동하며 떨리는 목소리로 그렇게 말했다.
...사실, 도미노 경은 너무 오냐오냐 큰 나머지, 중2병이 늦게 온 케이스였다.
그것도, 하필이면 행동하는 중2병 쪽으로.
...
도미노 경은 가장 먼저 검과 방패를 챙긴 뒤, 길을 나섰다.
그는 아버지가 처음 가차랜드에 왔었던 때처럼 갑주 하나, 예복 하나를 들고나온 상태였는데, 아버지를 존경하는 마음으로 머리에 삼색의 깃털을 꽂았다.
"음. 역시 마음에 드는군."
도미노 경은 근처 가게에 비치는 자기 모습이 너무나도 마음에 들었다.
물론 그것은 도미노 경이 좋은 옷을 입어서기도 했지만, 도미노 경의 외모가 아주 뛰어나기 때문이었다.
도미노 경은 어머니 히메를 닮아 상당한 미남이었다.
거기에 도미닉 경의 갈색 머리카락과 녹색 눈이 합쳐져, 굉장히 부드러운 인상의 미소년처럼 보였다.
도미노 경은 머리에 꽂은 깃털을 매만지며 만족스러운 미소를 짓더니, 이내 갑자기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나저나, 무와 협은 어디서 행할 수 있지?"
도미노 경은 잠시 고민하더니, 이내 그 부분에 대해서 검색해 보기 시작했다.
굉장히 멋이 없는 모습이었으나 어쩔 수 없었다.
"음. 이건 동방 연합 쪽의 말이구나."
도미노 경은 동방 연합이라는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는 말은..."
도미노 경은 동방 연합이라는 말에 잠시 고민하더니, 이내 고개를 저었다.
"아니, 아무래도 어머니에게 부탁하는 건 좀 그래. 나 스스로 명성을 얻겠다고 나왔는데, 어머니의 도움을 바랄 수는 없지."
도미노 경은 동방 연합의 일원인 운류 가문의 도움을 받을까 생각했으나, 이내 그 생각을 휴지통으로 던져 버렸다.
뜻밖에 착실하고 성실한 모습!
"그렇다면 나 혼자서 어떻게든 해 봐야 한다는 건데... 아!"
도미노 경은 잠시 고민하더니, 이내 무언가 좋은 생각이 났다는 듯 탄성을 내질렀다.
"그래! 운류 가문만 아니면 되는 거 아니야?"
도미노 경은 그렇게 생각하며 동방 연합으로 향했다.
...
동방 연합은 삼두 정치로 유지되는 곳이었다.
운류 가문과 이 씨 가문, 그리고 주씨 가문이 바로 그 주인공들이었다.
세 가문은 어느 하나가 동방 연합을 독점하지 못하도록 서로 견제하며 동방 연합을 이끌었다.
이 세 가문은 주기적으로 회동하며 차후의 일을 논의했는데, 가끔 급한 일이 생기면 이렇듯 긴급 회의가 열리기도 했다.
"요즘 요한 양치기 원정대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소."
주씨 가문의 대표, 주걸량이 말했다.
"계속해서 우리 구역을 기웃거리며 눈치를 보고 있소. 분명 무언가 노리고 있는 것이 분명하오."
"당연히 경계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이 씨 가문의 대표, 이원이 주걸량을 견제하며 말했다.
"저번에 요햔 양치기 원정대가 가려던 레이드를 새치기하지 않으셨습니까. 한두 번이라면 모를까, 여러 번을요."
"쓰읍! 지금 우리 주씨 가문을 욕보이는 게요?"
"욕보이다니요, 사실만을 말한 겁니다."
"그만, 그만."
운류 가문의 대표, 운류 무사시는 그런 두 사람을 말렸다.
"이렇게 서로 싸우려고 모인 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그러니 진정들 하시고, 일단 안 건부터 보시지요."
"흠."
"안 건은 이미 알고 있습니다. 요한 양치기 원정대에서 우리 동방 연합에게 사과를 요구했다지요?"
이원은 쥘부채를 펼치며 입가를 가렸다.
분명히 주씨 가문을 비웃고 있음이 분명했다.
"주씨 가문은 동방 연합에 도움을 주려는 건지, 해를 끼치려는 건지 모르겠군요."
"어허!"
주걸량은 이원의 말에 이를 갈았다.
이원의 말은 옳았으나, 자존심 강한 주씨 가문의 일원인 자기, 그것도 대표까지 꿰찰만큼 자존심 강한 주걸량 자기 자존심이 이원의 말을 용납하지 못했다.
"이럴 때가 아닙니다."
무사시는 검을 뽑아 들었다.
"진정들 하시지요."
"...흥."
이원은 검을 보자마자 바로 주걸량을 놀리는 것을 그만두었다.
이원의 무력이 무사시에 비해 낮은 것은 아니었으나, 이원은 원거리 딜러였다.
이렇게 가까운 거리에서 무사시와 한 수 겨뤘다간 큰 코 다칠 것이라는 걸 이미 알고 있었다.
"지금 우리는 서로 싸우기보다, 요한 양치기 원정대 클랜의 요구에 어떻게 대응할지를 먼저 고민해야 합니다."
"거, 다 쓸어 버리면 되지. 칭원 클랜 때처럼 말이오."
"주걸량!"
무사시는 주걸량의 말에 머리가 아파 왔다.
무사시에게 있어서 주걸량은 아주 골치가 아픈 사람이었다.
자존심이 매우 강해 자존심에 조금의 상처도 용납 못하면서, 남의 자존심은 박박 긁어내리길 좋아했다.
또한 모든 것이 자기 것이나 다름없다는 마인드를 가지고 있어서 오늘처럼 다른 클랜들과 마찰을 빗는 주된 원인이기도 했다.
'전임 대표인 주원향은 저러지 않았거늘...'
무사시는 주걸량의 삼촌이었던 주원향을 떠올렸다.
그는 무와 협을 기치로 삼아 협객, 대협이라고 불리던 자였는데, 타인에게 그렇게 불렸다는 점에서 얼마나 뛰어난 인물인지 알 수 있었다.
무사시는 이내 고개를 저었다.
물론 주원향과의 추억을 떠올리는 것도 좋았지만, 지금은 주걸량이 일으킨 사건을 수습하는 것이 먼저였으니까.
그때였다.
문이 벌컥 열리며, 화포를 들쳐 멘 총통수가 들어왔다.
호랑이 가죽을 뒤집어쓰고 부무장으로 창을 든 것이, 이가의 착호갑사인 것 같았다.
"대, 대표님들! 큰일 났습니다!"
"음?"
"지금 문 앞에 있던 요한 양치기 원정대의 사절들과 저희 인원들 사이에 시비가 붙었습니다!"
"뭐, 뭐라?"
"어허... 어째서 시비가 붙었느냐?"
동방 연합의 대표들은 갑자기 시비가 붙었다는 말에 착호갑사를 닦달했다.
"그, 그것이..."
착호갑사는 말을 더듬으며 조금 전에 있었던 일을 설명했다.
...
"있지, 언제까지 여기서 기다려야 해?"
"조금만 더 기다리시지요, 성자. 인내심은 성직자의 미덕이랍니다."
요한 양치기 원정대의 사절들은 동방 연합의 클랜 본부 입구에서 하염없이 기다리고 있었다.
일단 자신들의 제안을 전하기는 했으니 절반은 해낸 셈이었지만, 사절들은 대답까지 듣고 가길 바랐다.
그래야 자신들이 곧바로 동방 연합의 행동에 대처할 수 있을 테니까.
"있지, 추기경. 그냥 전쟁하면 안 돼? 교황도 그랬잖아. 전쟁, 결코 다시 전쟁."
"...그건 '결코 전쟁은 안 된다.' 라는 뜻입니다. 아직 고어에 익숙하지 않으신가 보군요. 돌아가면 고어 연습을 좀 더 하셔야겠습니다."
"엥."
성자라고 불린 이와 추기경이라고 불린 이는 수십 명의 경호원들과 함께 문 앞에서 계속해서 기다렸다.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밖에서 기다리는 일은 금방 끝이 났다.
동방 연합의 사람들이 그들을 손님용 휴게실로 안내하기 위해 나온 상태였기 때문이었다.
"요한 양치기 원정대에서 오신 분들이시지요?"
"그렇소."
"저희 수장님들께서 한창 답을 고심하고 계시니, 잠시만 기다려달라고 하셨습니다. 안으로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고맙소."
추기경은 흘낏 주변을 둘러보았다.
여긴 동방 연합의 본 거지였기에, 고작 수십 명에 불과한 자신들에 비해 열 배는 될 법한 인원들이 마중 나와 있었다.
'정치적으로 위압감을 주는 건가?'
추기경은 애써 아닌 척 하려고 했으나 이마에서는 한 줄기 땀이 흘러내렸다.
그때였다.
갑자기 누군가가 난입한 것은.
"다들 멈춰라!"
움찔. 하고 그 자리에 모인 수백 명의 인원들이 한 번에 멈췄다.
초능력이나 특수 기술은 아니었다.
그저 갑자기 누군가가 소리치자, 놀라서 몸이 굳어 버린 것이었다.
"보아하니 수백 명이 수십 명을 핍박하는 모양인데, 내 눈은 못 속이지!"
"...응?"
"아니... 누구신지는 모르겠지만, 저들은 저희 클랜에 사절로 오신..."
"닥쳐라! 만일 손님으로 왔다면, 어째서 저자는 저리 식은땀을 흘리는 거지?"
의문의 사내는 검 끝으로 추기경의 이마를 가리켰다.
그곳에는, 조금 전까지 흐르던 식은땀 한 방울이 또르르 굴러가고 있었다.
"...날이 더워서 그렇소."
추기경은 남자의 말에 어떻게든 이 사태를 진정시키려고 했지만, 남자는 막무가내였다.
"그렇게 눈치 볼 필요 없소! 내가 도와줄 테니!"
그와 동시에, 이상한 남자는 동방 연합의 사람들을 향해 달려들었다.
...알다시피 이 남자의 정체는 도미노 경이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