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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차랜드의 행복한 도미닉 경-511화 (478/528)

〈 511화 〉 [외전 10화]극장판 : 폭풍을 부르는 클래시카 섬의 비밀

* * *

"...토끼?"

도미닉 경은 바닷물을 향해 우수수 떨어져 내리는 토끼 떼를 보며 황당한 마음을 금치 못했다.

"오, 오고야 말았어..."

도미닉 경은 목소리가 들린 쪽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거기엔 여해적이 덜덜 떨면서 앵무새를 쓰다듬고 있었는데, 그 모습은 누가 보더라도 겁에 질린 모습이었다.

"...혹시 당신이 두려워하는 게, 바로 저 토끼들이오?"

"그, 그래."

여해적은 리얼리티 쇼크 상태까지는 가지 않았으나, 아까 전부터 계속해서 뒷걸음질 치기 시작했다.

"저런 악마들을 보고 두려워하지 않는 게 이상한 거 아니야?"

"악마라니, 그저 토끼잖아요?"

앨리스가 그렇게 말했다.

"그저 토끼라고?"

여해적은 덜덜 떨며 버럭 화를 냈다.

아무래도 겁에 질린 모습을 보이기 싫어하는 것 같았다.

"저 날카로운 이빨, 핏줄이 가득한 붉은 눈, 탁탁거리며 위협하는 뒷다리를 보고서도 그런 말이 나와?"

그렇게 말하는 와중에도 하늘에서는 토끼들이 가득 떨어지고 있었다.

그 토끼들은 바다에서 빠져나와 고개를 파르르르 흔들며 몸에 묻은 물을 털어냈다.

가차랜드의 토끼인 만큼 제법 강인한 모양이었다.

"차라리 거북이가 나아."

"음?"

"거북이들은 저렇게 빠르게 돌아다니며 무시무시한 얼굴로 올려다보지 않는다고. 느긋하고 얼마나 좋아."

그렇게 말한 여해적은 얼굴을 감싸며 울기 시작했다.

"기껏 달 토끼들이 오는 걸 막아 뒀더니, 결국 이렇게 퍼즐을 풀고 달 토끼들을 풀어 줘버리다니..."

"...너였구나? 빅토리아."

그때였다.

또 다른 이의 목소리가 들린 것은.

도미닉 경과 히메, 그리고 여해적은 새롭게 등장한 이를 바라보았다.

그는 심하게 곱슬거리는 검은 머리에 창백한 피부를 가지고 있었는데, 품에는 망원경의 부품들과 알 수 없는 그림들을 그린 종이들로 가득했다.

도미닉 경은 바람에 펄럭이는 그림 중 하나를 우연히 보게 되었는데, 그 순간 도미닉 경은 형용할 수 없는 감정에 빠졌다.

도무지 무엇을 그렸는지는 모르겠으나, 무시무시하기 그지없었기 때문이었다.

"헥산나...!"

여해적과 새롭게 나타난 이는 서로 친분이 있었는지, 서로에게 말을 놓았다.

도미닉 경과 히메는 지금, 이 상황이 어떤 상황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

"유도 장치가 멀쩡하면 분명히 어제 왔어야 했는데, 달 토끼들이 관찰되지 않아서 걱정했더니...!"

"그, 그게 말이야, 헥산나..."

빅토리아와 헥산나라고 불린 둘은 갑자기 싸우기 시작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일방적인 질타가 이어졌다.

헥산나가 빅토리아를 몰아붙이고, 헥산나는 빅토리아에게 변명하는 구도.

"설마 네가 이럴 줄은 몰랐어. 알잖아! 내가 달 토끼에 대한 논문을 쓰기 위해 무려 11년을 일했어!"

"알지, 알아. 그런데..."

"그런데 뭐?"

"잠깐, 잠깐."

도미닉 경은 이 상황을 도무지 이해하지 못했기에 두 사람 사이에 무심코 끼어들고 말았다.

이 상황에 대한 설명이 필요했다.

"도대체 이게 다 무슨 상황이오?"

"아."

헥산나가 날카로운 눈으로 빅토리아라고 불린 여해적을 노려보았다.

"제가 논문을 쓰고 있어서요. '딸기잼과 달 토끼 사이의 만류인력과 이를 통한 역사적 변곡점'이라는 제목으로요."

"딸기잼과 달 토끼... 뭐, 이해했소. 논문을 쓰고 있다라."

"이를 확인하기 위해서 제가 딸기잼으로 달 토끼를 유도하는 장치를 만들었거든요. 그런데 저 녀석이 제멋대로 그 장치를 멈춰버리는 바람에 데이터가 모두 꼬여 버렸어요."

도미닉 경은 다이아몬드 피라미드 위에 있던 붉은 수정을 떠올렸다.

사실, 그건 붉은 수정이 아니라 딸기잼이 가득 든 유리 병이었던 모양이었다.

여기서 헥산나는 빅토리아를 또 한 번 노려보았다.

"달 토끼의 휴가 궤도를 계산해 보면 12년마다 한 번 있는 대 이벤트인데, 그걸 망치려고 했단 말이예요."

"하, 하지만!"

"하지만 뭐?"

빅토리아는 헥산나에게 변명을 내뱉었다.

"네가 떠나는 건 너무 외롭단 말이야!"

"뭐?"

"이번에 논문을 내고 학위를 따면 본가로 내려갈 거라며!"

빅토리아는 헥산나에게, 마치 내 마음도 몰라주는 바보라고 외치듯 소리쳤다.

순간, 해안 가에 침묵이 내려앉았다.

빅토리아의 말은 그만큼 의미불명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니까... 그저같이 있고 싶다는 생각에, 어디 떠나지 말라고 이렇게 방해를 했단 소리야?"

"그래!"

"까딱 잘못했으면, 11년의 노력이 허사로 돌아가고, 앞으로 12년을 더 기다려야 하는 실험을?"

"그, 그래!"

"너는 알겠지만, 학비를 지원받지 못할 정도로 가난해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하루에 2시간을 겨우 자는 내 실험을?"

"... 그..."

헥산나는 계속해서 빅토리아를 몰아붙였다.

옆에 있던 도미닉 경과 히메는 그 모습을 보며 고개를 저었다.

누가 보더라도 한 사람이 잘못한 상황에서, 도미닉 경 부부가 끼어들 곳은 없어 보였다.

"이만 가보는 것이 좋겠소."

"그래요."

도미닉 경과 히메는 일방적으로 영혼이 털리고 있는 빅토리아와 울먹이면서 버럭버럭 소리 지르는 헥산나를 뒤로한 채 여관으로 걸음을 옮겼다.

아무래도 오늘은 더 이상 관광을 할 기분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음?"

도미닉 경과 히메가 여관으로 돌아오자, 여관은 어째서인지 웃고 떠드는 소리가 가득 새어 나오고 있었다.

여관의 옆에는 오토바이를 포함한 빠른 탈 것들이 가득했다.

"무슨 일이 있는 건가?"

"저 뒤를 보세요. 여객선이네요?"

도미닉 경이 고개를 갸웃거리자, 히메가 부둣가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그곳에는 히메의 말대로 여객선 한 대가 서 있었다.

"아, 그러고 보니 여객선들이 이 마을에서 보급을 하기도한다고 들었소."

"그래요?"

"오늘 아침에 알게 된 사실이오."

도미닉 경은 그렇게 말하며 여관 문을 열고 들어갔다.

그리고 로비에 있는 이들을 보고 깜짝 놀라고 말았다.

예상외의 존재들이 로비에 있었다.

"...거북이?"

"거북이... 네요?"

그들은 거북이였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거북이가 절반, 그리고 여객선의 선원이 절반이었다.

여객선의 선원들은 거북이들을 보고도 별 이상하다는 느낌 없이같이 먹고 마시며 즐기고 있었는데, 도미닉 경이 보기엔 이 모든 것이 꽤 낯설었다.

"돌아오셨군요?"

그때, 도미닉 경 부부 옆으로 바텐더가 나타났다.

그는 양손에 무려 10개의 맥주잔을 한 번에 들고 있었는데, 매우 놀라운 기술이었다.

"이게 다 뭐요?"

도미닉 경은 거북이들의 모습에 충격을 받아 앞뒤를 모두 자르고 본론만 말해 버렸다.

그러나 바텐더는 눈치가 좋은 편이었기에 도미닉 경이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인지 바로 알아차렸다.

"그러고 보니 손님께는 알려드리지 못했군요. 잠시."

그렇게 말한 바텐더는 승무원들과 거북이들에게 맥주를 가져다주고 다시 돌아왔다.

그리고 도미닉 경에게 이 마을에 대해서 설명해주었다.

"이 마을은 용궁과 꽤 가까운 마을이랍니다."

"용궁 말이오? 그게 뭐요?"

"말 그대로 용이 사는 궁전이죠."

"용이라면... 드래곤?"

"드래곤...으로 번역되기는 하는군요. 하지만 제가 말하는 용은 길쭉한 뱀과 같은 용입니다."

"아."

도미닉 경은 카드 팩 교환소의 베테랑, 쉔롱을 생각했다.

그는 용이지만, 뱀처럼 생겼었으니까.

"용궁이 있는 것과 거북이들이 무슨 상관이오?"

"그야, 거북이 분들은 용궁의 신하들이니까요. 모두 일과가 끝나면 이렇게 뭍으로 나와 한 잔 하신답니다."

바텐더는 도미닉 경에게 비밀이라는 듯 목소리를 낮춘 채 말했다.

"알다시피, 바닷속에서는 맥주가 다 희석되어 버리니까요."

"으음..."

도미닉 경은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

"아, 이만 가시려고? 바텐더! 여기 계산요! 여기 거북이 분께서 가시겠답니다!"

"아, 잠시만 기다리시죠! 죄송합니다. 아무래도 계산이 먼저라..."

"괜찮소. 그, 내가 방해를 한 것 같구려."

"아닙니다. 손님은 왕이니끼요."

그렇게 말한 바텐더는 거북이에게서 진주 한 알을 받더니, 바로 현금 보관함에 집어넣었다.

그러자 곧바로 현금 보관함은 그 진주를 크레딧으로 바꿔 주더니, 바텐더 머리 위에 [ 72,000 크레딧]이라는 문구를 띄웠다.

도미닉 경은 술에 취해 비틀거리며 여관을 나서는 거북이를 보았다.

그 거북이는 이런 상황이 익숙한 듯 방수가 잘되는 휴대폰을 꺼내 어디론가 전화를 했는데, 이내 거북이가 있는 곳으로 대리 기사가 찾아왔다.

거북이는 능숙하게 자기 탈 것을 찾아 대리 기사에게 운전을 맡겼다.

부르릉. 하고 소리를 낸 오토바이는 이내 해안 가의 모래를 파바박 튀기며 바닷속으로 사라졌다.

그 소리는 어쩐지 묘하게 끈적거리는 느낌이었다.

아마 모래가 바닷물에 닿아 약간의 점성을 가져서 그런 거겠지.

도미닉 경과 히메는 이 황당한 상황에 서로를 바라보더니, 이내 큰 소리로 웃었다.

"설마 이런 일들을 겪을 줄이야, 누가 알았겠소?"

"그러게요. 누가 이런 일들을 겪어 볼 수 있을까요?"

도미닉 경과 히메는 클래시카 섬에서 상당히 즐거운 하루를 보냈다.

도미닉 경은 이 섬으로 신혼여행을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직 이틀도 채 지나지 않았지만, 그만큼 이곳에는 신비하고 흥미로운 것들이 가득했다.

"내일은 또 어떤 일들이 일어날 지 기대가 되는구려."

"내일은 조금 더 멀리 나가 볼까요?"

도미닉 경과 히메는 지금까지 짰던 모든 계획을 파기하고는 새로운 계획을 짜기 시작했다.

오늘 있었던 일처럼, 그야말로 예상치 못한 재미를 위해서 말이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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