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96화 〉 [495화]끝을 향하여
* * *
도미닉 경의 일행은 통로의 끝자락에 다다랐다.
저 멀리 공동이 보였고, 그 공동에는 사당이 작게 보였다.
아무래도 저기가 봉인이 있는 장소인 모양이었다.
"도미니아 경!"
도미닉 경은 혹시나 하며 도미니아 경의 이름을 불러 보았으나,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대신, 다른 이의 대답은 들려왔지만 말이다.
"쿨럭."
정확히 말하자면, 그건 대답이라기보다는 그저 의미 없는 기침 소리에 가까웠다.
목에 피가 가득 낀 것만 같은, 죽어 가는 사람의 기침 소리에.
도미닉 경은 그 기침 소리를 듣고는, 여기에 또 다른 누군가가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누구요?"
"도미닉 경입니까."
도미닉 경은 소리가 난 쪽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거기에는 배에 크게 다친 채 상처 부위와 입에서 피를 흘리는 닌자 하나가 있었다.
아무래도 부상을 입은 탓에 지금까지 숨어 있었던 모양이었다.
도미닉 경은 그 닌자의 정체를 알고 있었다.
바로 집사 닌자였다.
도미닉 경은 그가 히메의 집사 닌자라는 것을 알아차리자마자, 바로 그에게 다가가 포션 하나를 건넸다.
가차랜드 초창기에 지나가던 행인에게서 받았던 포션이라 그리 큰 효과는 보지 못했지만, 그래도 상처가 덧나지 않을 정도로는 조치를 취할 수 있었다.
"고맙습니다. 덕분에 살았군요."
집사 닌자는 도미닉 경에게 꾸벅 고개를 숙이려 했으나, 아직 그의 배가 완전히 나은 것은 아니었기에 갑자기 찾아온 통증에 눈을 찌푸리고 말았다.
"죄송합니다. 아직 완전히 낫질 않아서..."
"괜찮소. 그나저나 한 가지 묻고 싶은 것이 있소."
도미닉 경은 집사 닌자의 사과받아주며 반대로 궁금한 것을 물어보았다.
"혹시 여기에 이만한 키의 여자아이가 잡혀 오지 않았소?"
"아. 그렇습니다."
"!"
"그럼 지금 어디에 있는지도 알고 있나요?"
집사 닌자의 대답에 앨리시아가 갑자기 끼어들었다.
"이분은?"
"내 며느리요."
"네?"
"아직 미래로의 회귀 이벤트 중이잖소."
"아."
집사 닌자는 그제야 이해했다.
아무래도, 잡혀 온 여자아이는 도미닉 경과 관련이 깊은 모양이었다.
"그 아이라면, 저기 안에 있습니다."
집사 닌자는 손가락 끝으로 통로의 끝자락을 가리켰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통로 끝 공동에 있는 사당을 가리키고 있었다.
"저기가 바로 봉인이 있는 곳이오?"
"그렇습니다. 이미 알고 계셨군요."
집사 닌자는 도미닉 경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도미닉 경은 사당을 유심히 바라보았다.
붉은 밧줄과 부적으로 칭칭 감겨진 사당은, 딱 봐도 무언가 위험해 보이는 기운을 마구 풍겨 대고 있었다.
"굉장히 불길한 기운이로군."
"아무래도 봉인 해제 의식이 시작되고 있는 모양입니다."
집사 닌자는 어두운 표정으로 사당을 바라보았다.
그러고는, 도미닉 경에게 한 가지 부탁을 전했다.
"부탁이 있습니다, 도미닉 경."
"무엇이오?"
"저기에 저희 공주님도 같이 있습니다."
"공주님이라고?"
"히메 공주님 말입니다."
"히메가 공주였어?"
도미니카 경이 놀란 듯 말했다.
지금까지 히메가 공주라는 생각을 단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었다.
꽤 예의가 몸에 배어 있는 게 높은 분의 자제라고는 생각했지만, 설마 공주일 줄은.
그러나 도미닉 경은 별다른 반응 없이 계속 대화를 이어 나갔다.
"구해 달라는 뜻이오?"
"그렇습니다."
"도와줄 의향은?"
"지금은 힘듭니다. 몸이 이래서..."
집사 닌자는 도미닉 경에게 자기 배를 보여 주었다.
죽을 고비는 넘겼으나, 상처는 여전히 아무는 중이었다.
"제가 위로 올라가 지원군을 부르겠습니다."
"힘들 거요. 전부 출정을 나갔으니."
"아..."
집사 닌자는 이를 악물었다.
그의 입술에서 피가 한 줄기 흘러나왔다.
이래도 도움이 안 되고, 저래도 도움이 안 되는 자신에 대한 분노였다.
집사 닌자는 잠시 고민하더니, 이내 결론을 내린 듯 도미닉 경에게 말했다.
"도미닉 경, 제가 잠시 위로 올라갔다 와도 되겠습니까? 암기 세트를 가져와야 할 것 같습니다."
"...싸우겠다는 뜻이오?"
"그렇습니다."
"부상자인데도 말이오?"
"공주님을 위해서라면, 목숨도 바쳐야지요."
"...우린 먼저 진입할 거요."
"오히려 좋습니다. 뒤에서 암습하기 좋을 테니까요."
도미닉 경은 집사 닌자의 놀라울 정도의 충성심을 보았다.
도미닉 경은 그런 집사 닌자의 의지를 보고는,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말했지만, 기다리지는 않을 거요."
"알겠습니다."
그 말과 함께, 집사 닌자는 어디론가 사라졌다.
비록 부상을 당했다고는 하지만 놀라울 정도의 속도였다.
도미닉 경은 잠시 집사 닌자가 사라진 통로를 바라보더니, 이내 다시 검과 방패를 들어 올렸다.
이제 도미니아 경을 구출할 때까지, 고작 몇십 걸음 뿐이었다.
...
도미닉 경과 도미니카 경, 그리고 앨리시아는 각자의 무기를 들고 주변을 경계하며 사당으로 움직였다.
분명히 적의 습격이 있을 거라고 예상했지만, 이 공동은 놀라울 정도로 조용했다.
그저 사당만이 불길한 기운을 마구 뿜어내고 있을 뿐이었다.
"봉인 해제 의식을 하는 모양이라더니, 상당히 버거운 공기로군."
도미닉 경이 숨을 몰아쉬었다.
도미닉 경의 말대로, 현재 이 공동안에는 사악한 기운이 가득해 숨이 턱턱 막힐 지경이었다.
"그나저나, 왜 이렇게 조용한지."
"불안하네요..."
도미니카 경과 앨리시아도 불안한 듯 주변을 계속 두리번거렸으나, 여전히 이 공동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도미닉 경의 일행은 그 어떤 방해도 없이 사당에 도착할 수 있었다.
"...도미니아 경!"
앨리시아는 사당의 입구에서 사당 안에 잠들어 있는 도미니아 경을 발견했다.
그녀는 지금, 이 상황에서도 새근새근 잘 자고 있었는데, 주변의 분위기를 생각하면 굉장히 부자연스러운 모습이었다.
"앨리시아!"
앨리시아는 도미니아 경을 보자마자 순식간에 사당 안으로 진입했다.
도미니카 경이 앨리시아를 말리려고 했지만, 이미 앨리시아는 사당 문을 넘어서고 있었다.
붉은 밧줄과 부적들이 앨리시아를 막아섰지만, 고작 밧줄과 종이는 앨리시아를 막아 낼 수 없었다.
그렇게 사당 안으로 들어간 앨리시아는 곧바로 도미니아 경을 안아 들었다.
"도미니아... 도미니아..."
앨리시아는 도미니아 경을 끌어안고는 엉엉 울기 시작했다.
"이런 줄도 모르고 매일 반항기라고 걱정하기만 하고... 설마 이렇게 위험한 일에 빠졌었을 줄은..."
앨리시아는 어린 도미니아 경이 너무나도 불쌍했다.
과거의 앨리시아는 도미니아 경 보다 일이 우선이었었기에, 설마 이런 일에 연루되었으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돌아가면 당장 남편에게 한마디 해야겠"
"앨리시아! 조심하시오!"
그때였다.
갑자기 사당 안에서 빛이 번쩍한 것은.
"...어?"
앨리시아는 등이 화끈거린다고 생각했다.
아니, 그건 생각이 아니라, 정말 등이 화끈거리는 것이었다.
앨리시아는 지금, 이 상황이 이해되지 않았다.
그러나 한 가지는 확실했다.
누군가가 자기 등을...
베어 버린 것이다.
"누, 누구...?"
앨리시아는 고개를 돌려 자신을 벤 사람을 바라보았다.
"이로써, 세 사람의 피가 흐르게 되었네?"
앨리시아는 눈앞에 한 남자가 휠체어에 탄 채 양손 검을 들고 있는 것을 보았다.
그 남자는 한 손에 천을 들고 검에 묻은 피를 닦아내고 있었다.
방금 전에 앨리시아의 등을 베어 버린 자라고 보기에는, 너무나도 여유롭고... 오만한 사람이었다.
그러나 앨리시아는 그런 남자를 보고 화를 내거나, 냉정해질 수 없었다.
그러기에는 눈앞의 남자의 모습이, 너무나도 황당했으니까.
"아버...님?"
"음?"
의문의 남자는 앨리시아의 말에 기분이 좋아진 듯, 기분 나쁘게 웃었다.
"도미닉 경의 며느리마저 속을 정도란 말이지..."
그렇게 말한 남자는 음산하게 흐흐거리며 웃기 시작하더니, 이내 세상이 떠나가라 크게 웃기 시작했다.
"그거 좋은걸."
그 말과 함께, 의문의 남자는 다시 한번 검을 들어 올렸다.
그리고...
앨리시아의 심장이 있는 부분을 찔렀다.
"내가 도미닉 경과, 거의 같은 경지에 올랐다는 뜻이니까."
앨리시아는 믿을 수 없다는 눈으로 의문의 사나이를 보더니, 이내 더 이상 견디지 못하고 풀썩 쓰러지고 말았다.
사당 내부에는, 앨리시아의 피가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앨리시아!"
도미닉 경이 그 상황에 경악하며 앨리시아를 불렀으나, 이미 기절해 버린 앨리시아는 그 말을 들을 수 없었다.
의문의 남자는 검에 묻은 피를 다시금 털어내었다.
그러고는... 사당 내부에서 나와 도미닉 경과 도미니카 경에게 그 모습을 드러내었다.
"반가워, 도미닉 경. 그리고 도미니카 경. 처음 뵙겠습니다... 라고 해야 하나?"
의문의 사나이는 휠체어 위에서 상체를 흔들거리며 잠시 고민했다.
"역시, 도미닉 경과 도미니카 경의 처지에서는 처음일 테니 처음 뵙겠습니다가 맞겠지. 그래."
그렇게 말한 의문의 남자는, 이내 검을 어깨에 걸쳐 메며 도미닉 경을 바라보았다.
"...당신은 누구지?"
도미닉 경은 기사의 예법도 잊은 채 눈앞의 남자를 경계했다.
"도미니아 경과 앨리시아를 어떻게 한 거냐."
"아, 그거?"
남자는 시무룩한 표정으로 구시렁댔다.
"이상하네. 난 내 이름부터 물어볼 줄 알았는데."
남자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도미닉 경에게 횡설수설 말을 이었다.
"글쎄. 어떻게 된 걸까? 그냥 사당에 들어와버리는 바람에 베어 버린 걸까? 아니면..."
남자가 양팔을 크게 벌리며 히죽 웃었다.
그와 동시에, 사당의 불길한 기운이 한 층 짙어졌다.
"제물로 바치려고 일부러 끌어들였던 걸까?"
"이건..."
도미닉 경은 점점 더 불길해지는 기운에 검과 방패를 들고 더욱 남자를 경계했다.
그러자, 남자는 손사래를 치며 도미닉 경에게 소리쳤다.
"워워. 기다려. 난 이 날 만을 기다려왔다고. 조금만 더 대화를... 나누는 건 어때?"
"대화를?"
도미닉 경은 그 말에 더 이상 들어줄 수 없겠다는 듯 검 끝을 남자에게 겨눴다.
"아무래도 시간을 끄는 것 같은데, 내가 굳이 그 말에 따라야 하나?"
그 말에 남자는 아무 말 없이 입을 꾹 다물었다.
남자는 한참 동안 도미닉 경을 바라보았다.
"...완벽해."
"뭐?"
그리고 갑자기 남자는 도미닉 경을 보며 황홀한 표정을 지었다.
"완벽하다고."
도미닉 경은 황당하다는 듯 남자를 바라보았지만, 남자는 이미 자신만의 세계 속에 있는 것 같았다.
"정말... 정말..."
남자가 고개를 들고 도미닉 경의 하나 남은 눈을 유심히 바라보았다.
도미닉 경은 남자와 시선을 마주했으나, 이내 움찔하며 뒤로 한 발자국 물러나고 말았다.
기사도에 충실한 도미닉 경으로서 아주 보기 힘든 상황이었다.
그러나 도미닉 경은 그럴 수밖에 없었다.
"완벽해."
눈앞의 남자는, 아주 위험한 눈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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