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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차랜드의 행복한 도미닉 경-495화 (462/528)

〈 495화 〉 [494화]끝을 향하여

* * *

도미닉 경은 지하 통로를 지나가던 도중, 거미와 융합된 듯한 마법사와 울먹거리는 궁수가 대치하는 상황을 보았다.

궁수는 화살을 쏘아내며 마법사가 접근하지 못하도록 견제하고 있었는데, 차마 급소는 노리지 못하는 모습으로 보아 두 사람은 꽤 잘 알고 있는 사람인 것 같았다.

"누구지?"

도미니카 경이 중얼거렸다.

"누구길래 여기에 있는 거지? 분명 여긴 봉인으로 인해 아무도 들어오지 못할 텐데."

"납치범들과 한 패일지도 모르오."

도미니카 경의 의문에 도미닉 경은 합리적인 의심을 내뱉었다.

도미니카 경도 도미닉 경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납득했다.

"그렇겠네. 그런데 왜 저들이 싸우고 있는 걸까?"

"그건... 모르겠군."

도미닉 경은 은근슬쩍 앨리시아를 바라보았지만, 앨리시아도 어깨를 으쓱하며 고개를 저었다.

이런 사소한 것들은 기록이 부족하니까.

"그래도 확실한 것이 있어요."

앨리시아가 도미닉 경을 향해 말했다.

"저들을 지나가야 봉인이 있는 장소로 갈 수 있어요."

앨리시아는 그렇게 말하며 중절모를 눌러썼다.

도미닉 경과 도미니카 경도 그 말에 동의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한 말이었지만 이 지하 통로는 길이 하나였고, 이곳을 지나가려면 당연하게도 저 둘을 지나쳐야 했기 때문이다.

"둘 다 처치하고 가야 할까?"

도미니카 경이 물었다.

"혹은, 한쪽을 도와주는 것도 생각해 볼 수 있구요."

"음."

도미닉 경은 잠시 턱을 쓰다듬으며 고민에 빠졌다.

둘 모두 몰래 지나간다는 것은 배제하고 있었지만, 도미닉 경은 왜 그 선택지를 배제하는지 잘 알았다.

도미닉 경과 도미니카 경의 머리에 걸린 후광들은 너무나 눈에 잘 띄기에, 숨어서 지나가기가 거의 불가능했다.

도미닉 경은 이내 선택지 내에서 가능한 최선의 선택지를 골랐다.

"그래도 한 사람을 도와주는 것이 더 나을 것 같소만..."

"뭐, 그렇겠지."

도미니카 경이 도미닉 경의 결정에 납득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둘을 모두 처리하는 것보다는, 다른 하나를 도와 처리한 뒤 지나가는 것이 나을 것 같았다.

"그렇다면 누굴 도와야 할까?"

도미니카 경이 두 사람을 번갈아 가리키며 말했다.

도미닉 경은 잠시 고민하더니, 이내 한 사람을 골랐다.

"의외네."

도미니카 경은 그렇게 말하며 고개를 갸웃했다.

정말 의외의 선택이었기 때문이었다.

"예전에 본 사람이 생각나서 말이오."

"예전? 언제?"

"내가 던전에 갇혀 있을 때요."

"...던전?"

도미니카 경이 그게 무슨 소리냐는 듯 고개를 갸웃했다.

도미닉 경은 아차 싶었지만, 그저 뻔뻔하게 입을 다물었다.

도미닉 경이 던전에 갇혀 있었다는 건, 과거를 바꾸는 검으로 바뀐 과거였기 때문이었다.

"아무튼, 그런 것이 있소."

그렇게 말한 도미닉 경은 검과 방패를 들고 저벅저벅 궁수와 마법사를 향해 걸어가기 시작했다.

"자, 그럼. 도와주러 가봅시다."

도미닉 경이 먼저 움직이자, 도미니카 경과 앨리시아도 같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한쪽을 돕기 위해서.

그러나 이내 도미닉 경은 궁수와 마법사에게 가까이 다가간 뒤 한숨을 내쉬었다.

두 사람의 말과 행동이 아주 꼴불견이었기 때문이었다.

"아무래도 작전을 변경해야 할 것 같소."

도미닉 경이 그렇게 말했다.

...

"우, 우리 예전에 좋았잖아. 우리의 우정을 기억해..."

"우정? 그런 게 있었으면 내가 던전에 갇혔을 때 구해주러 왔어야지!"

"작전인 줄 알았지! 넌 항상 혼자서 작전짜고 혼자서 행동했잖아!"

"...그랬지. 하지만 그게 날 구해주지 않을 이유는 못 돼!"

"우리라고 구해주고 싶지 않아서 구해주지 않은 줄 알아? 시스템 때문에­"

"양산박의 간부들이면서, 시스템의 속박 따위!"

"넌 항상 그런 식이었지! 혼자서, 제멋대로 일하면서 일이 잘못되면 다 우리 탓으로 돌리고!"

"뭐라고?"

궁수와 마법사는 서로 원수를 만난 듯 싸우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서로 급소를 피하며 쏘아내던 공격들도, 서서히 매서워지며 급소도 거리낌 없이 공격하기 시작했다.

여러분도 알다시피, 궁수는 바로 양산박의 간부 중 하나이자, 정체불명의 남자가 양산박을 습격했을 때 목숨을 구걸해 살아남은 유일한 사람이었다.

그리고 마법사는, 역시나 양산박의 간부였다가 예전에 도미닉 경을 던전에서 처리하려다가 오히려 던전에 묶여 던전 보스가 되어 버린 마법사였다.

어째서 이 둘은 여기에 있는 것일까?

"이제 그만 죽어! 나도 슬슬 침입자들을 막아 내야 한다고!"

궁수가 짜증을 부리기 시작했다.

방금 전까지 착한 척, 여린 척은 다 하던 궁수의 본모습이 서서히 나오기 시작했다.

궁수는 정체불명의 남자의 명령으로 이곳을 지키는 임무를 맡았다.

혹시라도 모를 침입자를 막아 내거나, 못해도 시간을 벌기 위해서였다.

반면, 던전의 마력에 뒤틀려 버린 마법사도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바로 이 통로의 옆이 그녀가 있던 던전 보스 룸이었기 때문이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궁수와 마법사가 있는 곳은 서로 다른 위상이었으나, 마법사가 던전을 탈출하겠다고 땅굴을 파는 바람에 두 위상이 만나버린 것이었다.

결국, 오랜만에 만나게 된 궁수와 마법사.

궁수는 처음에는 오랜만에 보게 된 마법사가 반가웠다.

모습은 조금 달라졌을지언정, 옛 친구가 돌아온 것만 같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마법사는 궁수를 원망하고 있었다.

이유는 던전에서 구해주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결국, 마법사의 투덜거림에 짜증이 난 궁수가 버럭 화를 냈고, 마법사는 궁수에게 더 짜증을 부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싸움이 시작되어 버린 것이었다.

"아, 아! 야! 머리카락은 잡지 마!"

"그러는 너야말로 자꾸 눈 찌르지 마! 재생하는 게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알아?"

궁수와 마법사는 이제 완전히 지쳐 버려 헉헉대며 서로의 머리채를 잡고 싸웠다.

그리고 이런 상황에서 조금 더 유리한 쪽은 뜻밖에 마법사였다.

그녀는 거미처럼 뒤틀려 버린 육체로 인해 마치 몬스터나 다름없는 취급받고 있었고, 이로 인해 궁수보다 신체 능력이 조금 더 뛰어났던 것이었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이 무슨 소용이 있으랴.

깡! 하는 소리와 함께 모든 것이 정리되면 끝인 것을.

"윽!"

"이게 무슨..."

궁수와 마법사는 갑자기 뒤통수에서 느껴지는 화끈한 감각에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났다는 말인가?

궁수와 마법사는 거의 동시에 자기 후방을 기습한 존재를 확인하려고 고개를 돌렸다.

아니, 돌리려고 했다.

또 한 번의 기습이 그녀들의 뒤통수에 박히기 전까지.

"악!"

"으억!"

그녀들은 예쁜 입에서 나올 것이라곤 상상도 못 할 비명을 지르며 앞으로 고꾸라졌다.

그녀들은 무시무시한 충격으로 인해 바닥에 개구리처럼 고꾸라졌다.

"누... 누구..."

궁수는 그 자리에서 곧바로 기절하고 말았으나, 마법사는 아직 의식이 남아 있는 듯 고개를 돌려 습격한 이들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그녀는 여전히 습격자들의 얼굴을 볼 수 없었다.

그녀가 볼 수 있었던 건, 백금색으로 빛나는 환한 벽 하나였다.

깡!하는 소리와 함께, 그녀는 그 벽에 얼굴을 박았다.

그리고 마법사는 마침내 정신을 잃고 말았다.

...

"...어부지리로군."

"그러게 말이야."

도미닉 경과 도미니카 경은 땅에 꼴사납게 쓰러져 있는 궁수와 마법사를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설마 이렇게까지 가까이 오는데도 모를 줄이야..."

도미닉 경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궁수를 바라보았다.

그렇다.

궁수의 뒤통수를 친 것은 도미닉 경이었다.

도미닉 경은 방패를 들고 천천히 궁수의 뒤편으로 다가가 설득력이 넘치는 한 방을 먹여주었던 것이다.

"둘이 싸우고 있어서 다행이었지."

도미니카 경도 다시 방패를 들어 올리며 말했다.

방패로 인해 이빨 다섯 개가 빠져 버린 마법사의 얼굴을 보며 인상을 찌푸리면서 말이다.

역시나, 마법사를 기습한 것은 도미니카 경이었다.

궁수보다 마법사가 한 방 더 맞았던 것은, 5성 도미닉 경과 4성 도미니카 경의 스탯 차이였다.

"뭐, 그래도 시간을 그렇게 끌지는 않았네."

"음."

도미니카 경은 방패에 묻은 마법사의 콧물을 닦아내며 인상을 찌푸렸다.

도미닉 경은 도미니카 경의 말에 동의하며 다시금 통로를 바라보았다.

"이제, 그리 머지 않은 것 같소."

도미닉 경은 통로의 끝에서 희미하게 빛나는 빛을 보았다.

그것은 아마 이 통로의 출구일 것이었다.

어둠으로 인해 거리는 제대로 확인할 수 없지만, 빛이 보인다는 건 거리가 그다지 멀지 않다는 소리이리라.

"다시 움직여야겠소."

도미닉 경은 그렇게 말하며 다시 통로로 걸음을 옮겼다.

...

"이제 머지 않았어."

도미닉 경을 닮은 남자는, 사당에 도미니아 경과 히메를 집어넣었다.

"제물이 하나가 더 있었더라면 좋았겠지만, 문제가 될 일은 없겠지. 시간이 조금 느려질 뿐일 테니."

휠체어를 탄 남자는 기괴한 표정으로 웃으며 히메를 바라보았다.

"...변태."

히메는 표독한 표정으로 눈앞에 있는 남자를 매도했다.

"마음대로 불러. 그것도 이제 곧 마지막일 테니."

남자는 히죽히죽 웃으며 히메를 바라보았다.

히메는 그 시선을 죽일 듯한 눈빛으로 마주 보았으나, 이내 분한 듯 이를 악물었다.

히메는 현재 손발이 묶인 상태로 사당 앞에 던져져 있었다.

남자는 이내 한 손에 양손 검을 소환한 채, 히메를 바라보았다.

"그럼, 의식을 시작해볼까?"

남자는 지금까지 한 손으로 휘두르던 양손 검을, 본래의 용도대로 양손으로 들어 올렸다.

그리고... 히메를 향해 있는 힘껏 내려쳤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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