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가차랜드의 행복한 도미닉 경-374화 (374/528)

〈 374화 〉 [373화]납치

* * *

도미닉 경은 왕이와 통화를 시작했다.

["여보세요?"]

전화 너머에서 떨리는 목소리가 들렸다.

도미닉 경은 그 목소리가 왕이의 것을 알아보았다.

도미닉 경은 다짜고짜 본론부터 말했다.

"당신이 내 주군을 납치한 것을 알고 있소."

["..."]

"지금이라도 내 주군을 풀어 준다면, 모든 일은 없었던 걸로 해주겠소."

도미닉 경은 왕이에게 상당히 관대한 제안을 건넸다.

그러나 왕이는 침묵을 지킬 뿐, 도미닉 경의 말에 대답하지 않았다.

"...그 침묵은 거절의 의사라고 생각해도 되겠소?"

["아니, 그게 아니라."]

수화기 너머에서 다급한 왕이의 목소리가 들렸다.

["지금 나도 곤란해서 그런 거였어."]

"곤란하다?"

도미닉 경은 왕이의 말에 미간을 찌푸렸다.

도대체 납치범이 곤란할 일이 뭐가 있단 말인가?

"그래서, 그건 풀어 주지 못하겠다는 뜻이오?"

["아니, 그게 아니라..."]

수화기 너머에서 왕이의 한숨 소리가 들려왔다.

["그, 말하자면 좀 길어. 양산박 내의 권력 다툼 문제인데..."]

"권력 다툼?"

도미닉 경은 왕이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계속 말해 보시오."

["그게 말이지­"]

전화 너머에서 왕이의 변명이 시작되었다.

...

"그게 말이지, 아무래도 누명을 쓴 것 같아."

["누명이라."]

"그러니까, 내가 납치한 것이 아닌데 납치한 게 되어 버린 거지. 아마 양산박 내부에 있는 누군가가 나를 담그려고 그런 것 같아."

왕이는 듣는 사람이 껌뻑 속을 정도로 유창하게 거짓말을 하기 시작했다.

"대낯부터 사람을 납치하는 미친놈이 어디 있겠어? 심지어 사람들이 자주 다니는 시가지에서 말이야. 아마 내가 범죄를 일으켰다는 걸 알리기 위해 계략을 쓴 거겠지."

["그래서 당신은 아니다?"]

"그러니까. 나도 방금 전에 부하한테서 듣고 나서야 알았어. 시내에 내가 나타났다고 말이야."

왕이는 필사적으로 거짓말에 거짓말을 덧씌웠다.

양산박의 간부로서 살아온 세월이 헛되지는 않았는지, 도미닉 경은 왕이의 거짓말에 거의 속고 말았다.

["...그럼 주군은 어디에 있는 거요?"]

"나야 모르지."

왕이가 어깨를 으쓱하며 도미닉 경에게 말했다.

"하지만 우리 쪽에서도 위치를 찾고 있으니, 찾으면 바로 연락 줄게."

["...어째서 그쪽이 주군을 찾는 것이오?"]

"그야, 우린 도미닉 경과 척을 지기 싫으니까."

왕이는 입술에 침도 안 바르고 거짓말을 내뱉었으나, 이번만큼은 진실이었다.

왕이는 더 이상 도미닉 경과 척을 지기 싫었다.

"알다시피 우린 양지화를 꿈꾸고 있어. 그러기 위해선 강자들과 척을 지지 않아야 하지. 도미닉 경은 우리 기준으로 충분히 강자고 말이야."

["이해했소."]

전화 너머 도미닉 경은 그제야 왕이의 결백을 믿어 주는 듯했다.

["믿겠소. 아무래도 당신은 납치범이 아닌 모양이군."]

"고마워. 믿어 줘서."

왕이는 잠깐 전화를 몸에서 멀리 떨어뜨리고 작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일단 한 고비는 넘긴 것 같았다.

["그럼 일단 찾아내면 연락 주시오. 어떻게든 사례를 하리다."]

"아니 뭐, 사례는 되었고. 아무튼 부하들에게 연락해야 하니, 이만 끊는다?"

왕이는 황급하게 통화 종료를 눌렀다.

그리고 재빨리 부하들에게 단체 문자를 돌리기 시작했다.

[현재 신규 보급 창고에 인질이 있음. 적당한 버림패를 물색해 납치범의 소행인 것처럼 꾸밀 것.]

왕이의 부하들에게 위와 같은 메시지가 일괄 전송되었다.

왕이는 초조한 듯 손톱을 물어뜯었다.

일단 계획을 시행하기 전에 앨리스가 깨어나면 안 되었고, 도미닉 경이 먼저 앨리스를 찾아서도 안 되었으며, 버림패가 준비될 때까지 이 계획들이 어긋나서도 안 되었다.

아. 왕이는 문득 한 가지를 더 준비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고 다시 한번 부하들에게 전체 문자를 보냈다.

[변신이나 변장에 능한 이도 하나 준비할 것. 이왕이면 나랑 닮은 녀석으로.]

문자를 보낸 왕이는 슬쩍 보급 기지의 입구를 바라보았다.

"빨리 준비가 되어야 할 텐데."

그의 초조함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었다.

...

약 2시간 뒤.

다행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왕이는 준비가 완벽하게 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적당한 도적 떼에게 의뢰를 넣어 보급 창고를 점령하라고 해 뒀습니다. 물론 다섯 다리를 건너 의뢰한 것이기에 양산박의 의뢰일 줄은 꿈에도 모를 겁니다.]

부하에게서 온 문자였다.

[또한 당신과 닮은 변신술사 하나를 찾았습니다. 도적 떼의 두목이더군요. 지금까지는 선량해 보이는 상인이나 귀족으로 변신해 도와준 사람의 뒤통수를 쳤던 모양입니다만, 돈만 준다면 무슨 일이든 제대로 해내는 프로기도 하죠.]

왕이는 그 문자를 보자마자 답장을 보냈다.

[잘했다. 돈은 얼마든지 들어도 좋으니, 입 막음비를 넉넉하게 준비해.]

왕이는 그 답장을 마지막으로 모든 문자와 통화 기록을 지웠다.

혹시나 도미닉 경이 나중에 이것을 보고 왕이를 의심할까 봐 였다.

왕이는 다시 한번 보급 기지의 입구를 바라보았다.

지평선에 진 노을로 인해 보급 창고에도 그늘이 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저 멀리서 오토바이와 차량의 전조등이 하나둘 보이기 시작했다.

아마 저들이 버림패로 고용된 이들이리라.

왕이는 그렇게 생각하며 조심스럽게 보급 창고의 뒷문으로 향했다.

그리고 뒷문을 나서며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기 시작했다.

바로 도미닉 경에게 말이다.

...

["찾았다. 가차랜드 외곽에 새로 생긴 C 보급 기지의 3번 보급 창고야."]

"...!"

도미닉 경은 왕이가 연락하자마자 바로 전화를 받았다.

그리고 도미닉 경이 그토록 원하던 정보를 들을 수 있었다.

"고맙소. 당장 그리로 가야겠소."

["우리가 확인한 바로는, 거기에는 납치범의 부하들이 지키고 있다더군. 그리 강해 보이지는 않지만 조심하는 게 좋아."]

"고맙소. 정말 고맙소."

도미닉 경은 그 말을 끝으로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다급하게 자리에서 일어나 왕이가 말한 외곽의 보급 기지로 향하기 시작했다.

"어디래?"

"가차랜드 외곽의 C 보급 기지요. 그곳의 3번 보급 창고에 있다더군."

도미니카 경이 도미닉 경의 걸음에 합류했다.

"...도미닉 경. 저도 같이 갈래요."

"음."

"도움은 많을수록 좋은 걸잖아요?"

그렇게 말한 히메도 도미닉 경의 행보에 합류했다.

셋은 성큼성큼 걸어 가차랜드 외곽에 새로 생긴 C 보급 기지를 향해 걸어갔다.

앨리스 백작 영애를 구출하기 위해서.

...

그리고 도미닉 경과 도미니카 경, 그리고 히메가 외곽으로 향하고 있을 때, 여전히 그들을 바라보는 이가 있었다.

바로 팬텀 박사였다.

"여기는 팬텀. 밴시는 응답하라."

팬텀 박사는 도미닉 경과 도미니카 경, 그리고 히메가 움직이기 시작하자 바로 밴시 박사에게 연락을 넣었다.

["여기는 밴시. 팬텀은 말하라."]

"도미닉 경과 누나... 도미니카 경이 그쪽으로 향한다. 합류할 준비."

["확인."]

밴시 박사의 통신은 그 말을 마지막으로 끊어졌다.

팬텀 박사는 잠시 도미닉 경과 도미니카 경의 등을 바라보더니, 이내 그들이 모르는지름길을 통해 외곽의 보급 기지를 향해 이동하기 시작했다.

...

잠시 후, 가차랜드 외곽의 C 보급 기지.

도미닉 경은 이내 완전히 어두워진 하늘을 바라보다가 다시 보급 기지를 보았다.

보급 기지는 현재 알 수 없는 이들이 점거하고 있었는데, 그들은 감시 초소에서 전조등을 잔뜩 켠 채 사방에서 들어오는 길들을 모조리 감시하고 있었다.

"아무래도 잠입은 어려울 것 같네요."

이 난공불락의 요새를 바라본 히메가 한마디를 꺼냈다.

"그렇다고 정면 돌파하기엔, 원딜러들이 너무 많아."

도미니카 경이 하나같이 원거리 무기를 들고 있는 의문의 납치범들을 바라보았다.

도미닉 경과 도미니카 경은 원거리 무기에 대해서 충분히 저항할 수는 있었으나, 반격이 힘들다는 점에서 원거리 딜러들은 그들의 약점이었다.

"아무래도 우리가 올 것을 알고 대비를 단단히 한 모양이오."

도미닉 경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아무래도 앨리스 백작 영애를 납치한 이들은 굉장히 조직적인 이들인 모양이었다.

"그나저나 저 선은 뭐지?"

도미니카 경이 보급 기지 외곽에 그어진 빛나는 선을 바라보며 말했다.

"저것도 저들이 설치한 건가?"

도미니카 경은 의문스럽다는 듯 고개를 갸웃했다.

"일단 한 번 확인하고 올까요?"

히메가 도미닉 경에게 물었다.

도미닉 경은 잠시 고민하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알 수 없는 것을 그냥 두는 것보다는 일단 알아내고 보는 게 더 나을 것 같았으니까.

도미닉 경의 동의가 떨어지자, 히메는 가까이 다가가 빛나는 선을 만졌다.

빛나는 선은 정확하게 보급 기지 외곽을 직사각형 모양으로 감싸고 있었는데, 일단 만지는 것으로는 별문제가 없어 보였다.

히메는 만지는 것으로는 별문제가 없다는 것을 깨닫자, 이내 그 선을 넘어가 보려고 했다.

그때, 히메와 도미닉 경, 그리고 도미니카 경의 눈앞에 갑자기 시스템 메시지가 나타났다.

[경고! 현재 이 지역은 테러리스트들이 장악하고 있으며, 난이도는 ★★★★입니다.]

[난이도★★★★의 미션을 이행하기 위해선 5명의 인원이 권장됩니다.]

[권장 인원 5명, 현재 인원 3명.]

[이대로 미션을 수행하시겠습니까?]

도미닉 경과 도미니카 경은 눈앞에 떠오른 시스템 메시지에 서로를 마주 보았다.

도대체 갑자기 떠오른 시스템 창이 말하고자 하는 바가 무엇이라는 말인가?

도미닉 경과 도미니카 경은 물론, 히메도 가차랜드에서 처음 보는 듯한 메시지에 당황하고 있을 때­

"이럴 줄 알았어. 안 그래, 팬텀?"

도미닉 경은 갑자기 들려온 익숙한 목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너무 무턱대고 간다 싶더니, 따라오길 잘했네, 밴시."

그리고 그곳에는, 밴시 박사... 아니, 레미와 팬텀 박사가 있었다.

* *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