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가차랜드의 행복한 도미닉 경-373화 (373/528)

〈 373화 〉 [372화]납치

* * *

"...음?"

"이건 도대체..."

도미닉 경과 도미니카 경이 히메와 앨리스가 있던 자리에 도착하자 그곳에는 어째서인지 쓰러진 히메만이 있었다.

히메의 트레이드 마크인 귀와 꼬리는 추욱 쳐진 채, 마치 잠을 자는 여우처럼 둥글게 몸을 만 상태로 말이다.

"주군께선 어디로 가신 거지?"

도미닉 경은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앨리스 백작 영애를 찾았다.

그러나 그 어디에도 앨리스 백작 영애의 흔적은 찾아볼 수 없었다.

아니, 흔적이라면 여기저기 있었으나 도미닉 경과 도미니카 경의 시야가 그리 좋지 않은 편이었기에 그 흔적들을 잡아내지 못한 것이다.

결국 앨리스 백작 영애를 찾지 못한 도미닉 경은 히메에게 다가가 히메를 깨웠다.

"히메 공? 히메 공?"

"으... 으으..."

도미닉 경은히메의 어깨에 손을 얹고 적당하게 흔들어 히메를 깨웠다.

그러자 히메는 어딘가 불편한 소리를 내며 힘겹게 눈을 뜨기 시작했다.

"히메 공, 정신이 드시오?"

"도... 도미닉 경?"

히메는 비몽사몽 한 와중에도 도미닉 경의 모습을 정확하게 구분해냈다.

그러고는 머리가 왜 이리 어지러운지, 어째서 도미닉 경이 이토록 가까이 있는지, 그리고 왜 자신이 땅바닥에 엎드려 있는지 등을 생각하기 시작했다.

처음엔 느릿하게 돌아가던 머리가 쏜살처럼 빠르게 굴러가기 시작했다.

히메의 머릿속에 있는 정보가 빠르게 조합되었다.

그리고 마침내 모든 것을 기억해낸 히메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애, 앨리스 씨! 앨리스 씨는 어딨죠?"

히메는 자기가 왕이의 습격으로 정신을 잃었다는 사실을 기억해냈다.

그리고 흐려져 가는 정신 속에서 앨리스에게 다가가는 왕이의 모습을 어렴풋이 본 것 같은 기억이 들었다.

정확한 기억은 아니었으나, 히메는 다급하게 주변을 둘러보았다.

역시나 앨리스의 흔적은 보이지 않았다.

"진정하시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요?"

"아."

히메는 도미닉 경의 말에 어지러웠던 마음이 진정되는 것을 느꼈다.

지금까지 제대로 된 설명도 없이 혼자서 당황하고 있었다.

히메는 닌자의 비술을 통해 마음을 순식간에 안정시킨 후, 도미닉 경을 향해 지금까지의 상황을 대략 설명했다.

"습격이 있었어요. 처음엔 앨리스 씨에게 관심이 있는 듯 다가오더니, 계속해서 거절하니까 갑자기 저를 기절시키고­"

히메는 거기까지 말한 뒤 잠깐 한 템포 쉬었다.

아직 복잡한 머리를 조금 더 정리할 필요가 있었다.

"그러니까, 저를 기절시키고는... 앨리스 씨를 납치한 것 같아요."

"!"

"확실해?"

도미닉 경은 히메의 말에 큰 충격을 받은 듯 눈을 부릅떴다.

도미니카 경은 이 믿기지 않는 사실에 다시금 히메에게 사실인지를 되물었으나, 히메는 조금 혼란스러워하면서도 고개를 끄덕였다.

"방금 전까지 같이 있었으니까요. 없어졌다는 건 두 가지 중 하나예요. 그 사람에게 납치되었거나, 아니면 주변에 숨어서 우리가 당황하는 걸 지켜보고 있거나."

그렇게 말한 히메는 다시 한번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러나 그 어디에도 앨리스의 흔적은 보이지 않았다.

아니, 흔적이라면 있었다.

바닥에는 남성의 것으로 보이는 발자국과 질질 끌려가듯 흙먼지가 밀려난 흔적이 있었다.

그 흔적에 히메는 앨리스가 납치되었다는 쪽으로 완전히 가닥을 잡았다.

도미닉 경은 이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가장 혼란스러워하고 있었다.

앨리스 백작 영애는 도미닉 경의... 주군이었다.

그런 사람이 납치되었다고 하는데 혼란에 빠지지 않을 기사가 어디에 있겠는가?

그러나 도미닉 경은 혼란에 빠져 있기만 한 게 아니었다.

그는 현재 앨리스 백작 영애를 납치한 사람이 누구일지, 그리고 어디로 납치해 갔을지에 대해서 생각하고 있었다.

가차랜드에도 나름 범죄자가 많았지만, 이렇게 대낯부터 사건을 일으키는 이들은 그리 많지 않았다.

이렇게 대놓고 범죄를 저지르는 이들은 크게 두 부류로 나뉘었다.

하나는 가차랜드 뒷골목의 도적 이벤트로 만날 수 있는 도적 떼들이었고, 하나는 바로...

"양산박."

양산박이었다.

도미닉 경은 여기에서 또 한 번 생각했다.

앨리스 백작 영애는 비록 가차랜드에 오면서 힘을 봉인 당하기는 했지만, 애초에 필멸자 시절부터 상대가 될 이가 드물 정도였다.

그런 사람이 납치를 당했다?

그렇다면 뒷골목의 잔챙이보다는 양산박의 소행일 확률이 더욱 높아졌다.

도미닉 경은 잠시 눈을 감고 앨리스 백작 영애를 납치할 수 있을 만한 무력을 가진 이들을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그리고 어째서인지 도미닉 경은 한 사람의 얼굴이 떠올랐다.

바로, 왕이였다.

도미닉 경은 용의자를 좁힌 김에 히메에게 한 가지를 물어보았다.

"히메 공."

"네."

"혹시 그 납치범이 이렇게 생겼소?"

도미닉 경은 휴대폰에 있는 사진 하나를 꺼내 히메에게 보여 주었다.

히메는 잠시 그 사진을 바라보더니, 놀란 눈으로 도미닉 경을 바라보았다.

어떻게 도미닉 경이 납치범의 사진을 가지고 있느냐는 듯 말이다.

맞나 보군. 도미닉 경은 히메의 반응을 보며 그렇게 생각했다.

사실, 도미닉 경이 왕이의 사진을 가지고 있는 건 과거 왕이가 도미닉 경을 주인공으로 한 대본을 가져 왔을 때, 제멋대로 도미닉 경의 폰으로 셀카를 찍었기 때문이었다.

도미닉 경은 폰을 깔끔하게 정리하는 편이 아니었기에 왕이의 사진은 도미닉 경의 앨범에 그대로 저장되어 있었고, 우연히 오늘 범인을 찾는 데 쓸 수 있었다.

참으로 기가 막힌 우연이었다.

도미닉 경은 범인이 확정되자마자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인벤토리에서 명함 하나를 꺼내 그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도미닉 경은 초조하게 신호음을 들으며 상대가 전화를 받기만을 기도했다.

그리고...

딸깍.

["여보세요?"]

수화기 반대편에서 도미닉 경이 기다리던 목소리가 들렸다.

...

왕이는 기절한 앨리스를 데리고 아주 비밀스러운 공간으로 향했다.

최근 가차랜드에 새롭게 생긴 지역으로, 컨테이너 박스와 상자가 아무렇게나 널브러진 창고였다.

이곳은 아직 활성화가 되지 않았기에 숨어 있기에는 최적의 장소였다.

왕이는 눈을 감고 축 늘어져 있는 앨리스를 컨테이너 박스에 기대놓고는 바로 옆의 공터로 걸어갔다.

그리고 넓은 공터에 덩그러니 있는 잘린 드럼통에 장작을 넣고 불을 붙였다.

드럼통은 모닥불이 되어 공터에서 타닥타닥 타올랐다.

왕이는 하늘을 슬쩍 바라보았다.

하늘엔 아직 해가 떠 있었으나 슬슬 지평선 너머로 그 몸을 숨기려고 하고 있었다.

왕이는 하늘에 떠 있는 구름을 보았다.

구름은 흩어졌다가 다시 모였다가를 반복하며 가볍게 흘러가고 있었다.

그 구름들을 바라보던 왕이는 한숨을 내쉬었다.

가벼운 구름들과는 상반되는, 아주 무거운 한숨을.

"...내가 왜 그때 그랬지?"

왕이는 머리를 마구 헝크러뜨리며 짜증을 부렸다.

방금 전, 앨리스 백작 영애를 납치한 사건에 대한 짜증이었다.

왕이는 앨리스를 보자마자 한눈에 반하고 말았다.

그리고 앨리스의 눈에 띄고자, 도미닉 경이 없을 때를 노려 앨리스에게 접근했다.

그리고... 어째서인지 왕이는 앨리스를 기절시키고 납치하고 말았다.

이성을 잃었다고는 하지만 왕이는 범죄를 저지른 것이다.

"...이미 일어난 일은 일어난 일이지. 이젠 해결책을 찾아야 해."

왕이는 지나간 과거를 후회했으나, 이미 과거는 엎질러진 물이었다.

대신 왕이는 앞으로의 계획을 세워야 했다.

왕이가 보기에, 앨리스 백작 영애는 도미닉 경의 사람이었다.

그렇다는 말은 도미닉 경과 반드시 충돌할 것이라는 뜻이었다.

왕이는 도미닉 경과 대적하려 하는 것만으로도 몸에 소름이 돋았다.

과거 3성일 때에도 도미닉 경은 왕이와 대등하거나 그 이상이었다.

그런데 이제는 4성.

고작 성급 하나의 차이였지만, 그 하나의 차이는 하늘과 땅 차이라는 걸 왕이는 알고 있었다.

그런 4성 도미닉 경과 대적해야만 한다?

왕이는 고개를 저었다.

왕이가 생각하기에, 도미닉 경과의 충돌은 가장 최악의 수였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왕이는 도미닉 경과의 충돌을 피하면서, 이 상황을 어영부영 넘길 수 있을까?

"그래! 그거다!"

그때, 마침 왕이의 머릿속에서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왕이는 그 좋은 생각이 머릿속에서 떠나가기 전에 바로 작전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도미닉 경은 이런 일에 꽤 익숙한, 노련한 기사였다.

분명히 느긋하게 있다간 뭔가를 해보지도 못한 채 박살 나버릴 것이었다.

그렇게 박살 나지 않으려면, 지금부터라도 재빨리 작전을 수립하고 실행해야만 한다.

다른 사람들이 보기엔 다소 과한 걱정일지도 모르겠지만, 이후 일어난 일은 절대 왕이의 행동이 과하지 않다는 것을 알려주었다.

왕이의 폰에서 전화가 울렸다.

왕이는 발신자 번호를 보았다.

도미닉 경이었다.

역시나.

도미닉 경이 바로 찾아낼 줄 알았어. 왕이는 그렇게 생각하며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왕이는 도미닉 경의 전화를 받으면서 머릿속으로는 작전에 대해서 끝없이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의 눈동자가 그의 머릿속을 대변하듯 마구 굴러가기 시작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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