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41화 〉 [340화]이벤트 : 스팀 스피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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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기 기관차에서 나오는 높은 경적 소리가 울려 퍼졌다.
어둑하니 밤그늘이 깔리기 시작하는 시간.
그 미묘한 어둠을 뚫고 형형한 눈빛의 붉은 텐구가 레일을 따라 달린다.
야간 운행으로 인한 소음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일부러 도시 외곽을 선택한 것은 참 잘한 일이었다.
히메는 이토록 즐거운 운행을 방해받고 싶지 않았으니까.
"도미닉 경! 다음 분기점에서 1번 선로로 들어갈 거예요!"
차장 복장의 히메가 도미닉 경에게 무전기를 통해 다음 선로에 대한 정보를 알려주었다.
이번 선로는 각 선로마다 진행 방향이 달라지는 구조였기에, 일단 가장 무난하고 평범한 1번 선로를 선택한 것이다.
그렇게 말한 히메는 두 개의 선로를 바로 뛰어넘어 1번 선로로 들어섰다.
정확한 타이밍에 정확한 조작하지 않으면 그대로 기차가 전복될 수도 있는 위험천만한 상황!
그러나 히메의 기차는 약간의 기우뚱거림만 있었을 뿐, 순식간에 균형을 잡고 1번 선로에서 속도를 올리기 시작했다.
히메 스스로 닌자 톨토이스의 장점은 속도와 견제라고 하더니, 그 말이 빈말은 아닌 모양이었다.
순식간에 선로를 변경한 기관차를 바라보고는 역시나 무전기에다 대고 외쳤다.
"확인했소."
도미닉 경은 현재 거미 전차를 타고 증기 기관차와 나란히 달리는 중이었는데, 거미 전차의 성능이 얼마나 뛰어난지 도미닉 경은 지금까지 탔던 탈 것들 중에서 최고라고 생각했다.
마치 기사들이 수만 골드를 써서 구하려는 명마처럼, 마치 사람의 생각을 읽기라도 하는 듯 도미닉 경의 의도를 그대로 따라오는 거미 전차.
도미닉 경은 기관차가 1번 선로로 움직이자마자 조종간을 돌려 1번 선로로 진입했다.
거미 전차는 기관차보다 조금 빨랐기에 하마터면 기관차의 꼬리와 충돌할 뻔했으나 도미닉 경은 자연스럽게 왼쪽의 완만한 절벽을 타고 벽을 달리기 시작했다.
그야말로 거미 전차라는 말에 어울리는 예상치 못한 움직임!
도미닉 경은 벽을 달리며 서서히 위로 올라가더니, 이내 절벽 위쪽으로 올라가 버렸다.
각각의 선로는 다른 선로보다 낮아지는 때가 있었다.
이는 다른 선로에서 낮아진 선로를 더 쉽게 견제할 수 있게끔하는 변수였다.
1번 선로는 바로 지금이 그때였고, 도미닉 경은 무의식적으로 고지대를 점해 낮게 달리는 기관차를 커버하고 있었다.
"대단해요!"
도미닉 경의 무전기에서 히메의 감탄사가 흘러나왔다.
"보통은 이렇게까지 해주는 사람이 없거든요."
히메는 그렇게 말하며 기관차의 속도를 올렸다.
이렇게까지 커버를 해준다면, 기관사로서는 온전히 운행에만 집중할 수 있었으니까.
1번 선로에서 가장 약한 구간을 순식간에 주파한 도미닉 경과 히메.
도미닉 경은 거미 전차를 탄 그대로 절벽에서 떨어져 내렸다.
보통 탈 것이었다면 이 11미터쯤 되는 높이에서의 낙하는 멍청한 짓이겠지만, 새로운 거미 전차는 달랐다.
최신 기술이 탑재된 서스펜션... 그러니까 현수 장치가 대부분의 충격을 막아주었으니까.
거기에 도미닉 경의 스탯과 13.5%에 달하는 피해 감소를 생각하면 이보다 더 높은 곳에서 떨어져도 거미 전차는 멀쩡할 것이었다.
도미닉 경은 속도를 조금 늦춰 기관차의 뒤에 바짝 따라붙었다.
그리고 이내 시야가 암전되었다.
터널 구간이 시작된 것이다.
터널 구간에서도 선로 변경은 이어졌다.
1번에서 2번으로, 2번에서 4번으로, 4번에서 3번으로, 3번에서 5번으로.
그리고 다시 4번으로.
놀라울 정도로 정교한 타이밍으로 가장 빠른 코스를 탄 히메.
도미닉 경은 그 놀라운 컨트롤에 혀를 내두르며 히메가 간 4번의 옆, 3번 선로 위를 달렸다.
이제 곧 통로의 출구가 나올 것이었으니까.
4번 입구에서 히메의 기관차가 맹렬한 연기를 뿜으며 튀어나왔다.
얼마나 빠른지 텐구의 눈에서 나오는 빛이 어둠 속에서 늘어져 거의 기관실까지 이어질 정도였다.
도미닉 경은 그런 기관차와 가로로 나란히 달리다가, 먼저 앞서나가기 시작했다.
이 구간에서는 가끔 선로 위에 장애물이 있었던 탓이다.
"도미닉 경! 전방에 석상이에요!"
아니나 다를까, 도미닉 경은 4번 선로의 위쪽에서 정말 당당하게 서 있는 석상 하나를 발견했다.
도미닉 경은 시야가 조금 나쁜 편이었기에 이런 것은 시야가 넓은 히메가 도미닉 경에게 알리는 방향으로 합의를 본 상태였다.
"알겠소!"
도미닉 경은 놀랍도록 자연스럽게 기관차를 앞질러 달렸다.
석상은 가만히 놔두더라도 기관차의 체급이라면 박살 내고 지나갈 수 있을 정도의 크기였지만, 만일 잔해라도 밟고 기관차가 튀어 오를 경우 탈선으로 인한 실격패가 선언될 수도 있었다.
이를 미리 예방하기 위해, 도미닉 경의 거미전차는 재빨리 석상에게 다가가 거미 전차의 다리로 그 석상을 옆으로 걷어찼다.
석상은 날아가 땅에 떨어지며 산산조각이 나기는 했으나, 다행스럽게도 선로에는 아무런 피해가 없었다.
"해결했소!"
"좋아요! 이제 마지막 구간이에요!"
도미닉 경과 히메는 마지막 구간에 돌입했다.
유리로 된 수중 동굴을 지나가는 구간이었는데, 여기서는 꽤 조심해야 할 것들이 많았다.
일단 유리로 되어 있었기에 큰 충격을 주면 안 되었고, 선로도 3개밖에 되지 않아 추월이 극히 어려웠다.
결국, 이 트랙의 승패는 바로 이 마지막 수중 동굴 구간에 누가 먼저 진입하느냐의 싸움이었다.
히메는 순식간에 선로를 바꿨다.
비틀거리듯 4번에서 2번, 2번에서 3번으로 재빠르게 선로를 바꾼 히메.
이는 실수가 아니라 전략이었다.
만일 선두에 섰을 경우, 추격하는 인원들이 감히 끼어들지 못하도록 견제하는 움직임이었다.
그야말로 왜 닌자 톨토이스가 항상 상위권에 위치했는지 알 수 있는 놀라운 컨트롤!
도미닉 경은 히메와는 반대로 3번에서 2번, 2번에서 4번, 4번에서 3번으로 돌아왔다.
히메의 움직임과는 별도로 움직임으로서, 또 한 번 추격하는 이들을 방해하고 격차를 벌리려는 본능적인 움직임이었다.
수중 동굴은 매우 어두웠다.
낮이었더라면 호수 바닥까지 햇빛이 비쳐 몽환적인 분위기를 연출했겠으나, 지금은 밤이었으니까.
그렇게 몇 분을 더 달려 다시 호수 위로 올라온 도미닉 경과 히메.
히메는 바로 앞에 있는 결승선을 지나치는 것과 동시에 브레이크를 밟기 시작했다.
얼마나 빠르게 달렸는지 바로 브레이크를 밟았음에도 거의 200미터는 더 움직인 것 같았다.
"...휴."
히메는 기관실에서 진이 빠진다는 듯 그제야 긴장을 풀었다.
단정한 기장 복장이 살짝 구겨졌다.
"괜찮소?"
그런 히메의 옆에 도미닉 경이 거미 전차를 타고 나란히 섰다.
도미닉 경은 방금 전 놀라울 정도로 정교한 컨트롤을 보며 히메를 걱정하고 있었다.
정교한 컨트롤이라는 것은 꽤 심한 체력 소모를 요구하는 일이었으니까.
탱커인 도미닉 경은 이런 레이스를 몇십 번 해도 끄떡 없었으나, 히메는 도미닉 경과 달리 이것저것 생각해야 할 것도 많은 포지션이었다.
그러니 도미닉 경이 히메를 걱정할 수밖에.
"괜찮아요."
그러나 히메는 긴장감에 땀을 조금 흘렸을 뿐, 겉으로 보기에는 멀쩡했다.
"이 정도로 지쳤으면, 닌자 톨토이스가 상위권을 유지하지는 못했겠죠."
도미닉 경은 히메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리 겉으론 괜찮아 보여도 속으론 모르는 법이오. 그래도 휴식이 필요하지 않겠소?"
"...그렇긴 하네요."
도미닉 경은 거미전차에서 내려오며 히메에게 휴식이라도 취하자고 권유했다.
히메는 도미닉 경의 말에 기관실에서 내려왔다.
도미닉 경의 말대로 조금은 쉴 필요가 있었던 탓이다.
지나친 긴장감으로 인해 온몸이 경직된 탓에 스트레칭이라도 해야 할 것만 같았다.
히메는 천천히 기관실 옆에 있는 사다리를 타고 내려왔는데, 너무 피곤했던 탓인지 마지막 한 칸을 헛디디고 말았다.
"...!"
"히메 공!"
히메는 아찔한 감각과 함께 몸이 붕 뜨는 느낌이 들었다.
헛디딘 상태에서 사다리를 잡고 있던 손마저 미끄러져 버린 것이다.
평소라면 날렵한 몸놀림으로 별 탈 없이 넘어갔겠으나, 3번 연속으로 한 연습으로 인해 지칠 대로 지친 히메는 몸을 움직이려고 해도 움직일 수가 없었다.
그때, 이미 아래에 내려와 있던 도미닉 경이 떨어지는 히메를 붙잡았다.
말 그대로 공주님 안기 자세로 말이다.
"...어디 다친 곳은 없소?"
도미닉 경은 히메에게 괜찮은지를 물었다.
"아, 아. 네. 덕분에..."
히메는 잠시 방금 일어난 일에 대해서인지하지 못했다.
너무 갑자기 사건이 일어난 나머지 피곤한 히메가 인식하지도 못했다.
마침내 방금 전에 일어난 일을 깨달은 히메는 당황하며 말을 더듬었다.
"괜찮다니 다행이오."
도미닉 경은 히메를 땅에 내려놓으며 그리 말했다.
히메는 도미닉 경의 품에서 벗어나며 맹렬하게 귀와 꼬리를 흔들었다.
누가 봐도 부끄러움으로 가득한 모습이었다.
히메는 빌었다. 누구라도 좋으니, 이 부끄러움을 숨길 수 있게 해 달라고.
그런 히메의 소원을 누군가가 들었던 것일까?
그때, 갑자기 수중 동굴이 있는 쪽에서 환한 빛이 보였다.
그리고 굉장히 아포칼립스 적인 디자인의 증기 기관차가 도미닉 경과 히메 옆에 멈춰 섰다.
아포칼립스 적인 디자인의 증기 기관차 안에는 모히칸 머리의 인원이 다수 타고 있었는데, 그 인원들은 혀를 내밀고 엄지손가락으로 목을 긋는 시늉을 하며 갑자기 도미닉 경과 히메를 도발했다.
"뭐야, 커플? 켁. 보아하니 증기 기관차 레이스에 나가려는 모양인데, 그렇게 달달해서 어디 이길 수야 있겠어?"
"푸흐헤헤헤! 표정 좀 보소! 꼽냐? 꼬와? 그럼 말로 하지 말고 행동으로 보여주시던가! 우릴 이길 수 있으면... 아니, 우릴 따라오기라도 한다면 우리가 사과하지!"
그렇게 말한 모히칸들은 엄청난 연기와 함께 저 멀리 달려 나가기 시작했다.
갑자기 도발당한 도미닉 경과 히메!
"...아무래도 도발을 당하고도 참는 건, 안 될 말이지 않겠소."
"...그러네요."
도미닉 경과 히메는 서로를 바라보더니, 이내 다시 각자의 거미 전차와 증기 기관차 마츠리 호에 탔다.
히메는 마츠리 호의 엔진실에 석탄 몇 알을 집어넣으며 생각했다.
어째서 이럴 때만 소원을 들어 주느냐고.
한숨을 푹 내쉰 히메는 다시금 엔진을 가동시켰다.
마츠리 호와 거미 전차는, 선로를 따라 움직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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