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04화 〉 [303화]첫 클랜전
* * *
도미닉 경과 도미니카 경이 탱커 노조에 가입했다는 소문은 신문 기사들을 통해 기정 사실이 되었다.
이 놀라운 소식에 가차랜드 사람들은 크게 세 가지로 반응이 나뉘었는데, 그중 첫 번째는 바로 납득이었다.
"도미닉 경은 탱커니까. 탱커 노조에 가입하는 건 당연한 일이지."
"늦은 이유도 다른 클랜들과 비교해 보다가 그런 걸지도 몰라."
"탱커 노조가 도미닉 경에게 꽤 꾸준히 어필했나 보군."
이들은 도미닉 경이 탱커 노조에 들어갔다는 사실 자체를 납득하는 부류였다.
두 번째 부류도 첫 번째와 크게 다르지는 않았다.
두 번째는 바로 납득을 넘어선 호감의 경지였다.
"도미닉 경이 탱커 노조에 들어갔다고? 그럼 탱커 노조와 동맹을 체결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아야겠군."
"도미닉 경과 굳이 척을 질 필요가 있나? 탱커들과 싸우지 않는 것만으로도 이득이지."
"오히려 우호적으로 지내면, 인도주의적 차원에서 도움을 주지 않을까?"
이렇게 생각하는 이들은 도미닉 경과 친한 사람이 있는 클랜이거나, 혹은 중소 클랜이었다.
도미닉 경 및 탱커들과 척지고 싶어 하지 않는 부류.
혹은 더 이상 적을 늘리고 싶지 않은 부류.
그런 부류들은 도미닉 경 자체를 넘어 탱커 노조와 친하게 지내고 싶어 했다.
마지막 세 번째 부류는 바로 부정이었다.
"도미닉 경이 탱커 노조에 들어갔다고? 왜?"
"도미닉 경은 우리 클랜에 왔어야 했어! 우리 것이었다고!"
"남이 가졌다면 빼앗으면 되고, 빼앗지 못하면 부셔버리면 된다!"
이들은 남이 잘되는 꼴은 절대로 보지 못 하지만 욕심은 많은 부류였다.
그리고 당연하다면 당연하겠지만, 이런 부류가 보통 문제를 일으키는 부류이기도 했다.
물론, 이번에도.
...
"군자는 서두르지 않는다면서 늦장을 부리더니, 결국 도미닉 경을 빼앗겼구려."
면류관을 쓴 이가 불쾌한 표정으로 아랫사람들을 노려보았다.
"왜 다들 말이 없으시오? 체면치레에 대해서는 그렇게나 말이 많더니, 왜 지금은 말이 없는냔 말이야!"
면류관을 쓴 이가 앞에 놓인 작은 걸상을 뒤집어 엎자, 아래에 있는 사람들이 움찔했다.
"이 칭원 클랜이, 이 위대한 칭원 클랜이 이런 굴욕을 당해야만 했소?"
여기 있는 이들은 바로 동양풍의 양대산맥 중 하나, 칭원 클랜이었다.
무협 및 중화풍으로 컨셉이 통일된 이들은 기묘할 정도로 자존심이 높은 이들이었다.
지금 상황에서도 알 수 있겠지만, 이들은 법도와 도리를 중시하고, 효율보다는 멋과 절차를 더욱 떠받들었다.
"...아뢰옵기 황송하오나"
"황송할 짓을 왜 하오!"
면류관을 쓴 이가 버럭 화를 질렀다.
그러나 말을 꺼낸 젊은 도사는 목에 칼이 들어와도 할 말은 해야겠다는 듯 계속해서 말을 이어 나갔다.
"도미닉 경이 탱커 노조로 간 이유는, 그가 탱커 노조와의 약조를 해서라고 합니다."
"...그게 뭐 어쨌다는 거요."
면류관을 쓴 이의 화가 조금 누그러졌다.
젊은 도사의 기개가 대단하여, 말이라도 한 번 들어 보자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젊은 도사는 면류관을 쓴 이가 조금 누그러졌다는 사실에 안도하며 계속해서 말을 이어 나갔다.
"그는 무를 숭상하며, 협을 이행하니 우리 칭원의 기치에 알맞은 인재입니다."
"그걸 몰라서 이러는 게 아니잖소."
"물론 그렇습니다. 다만, 지금까지의 명분이 억지 명분이었다면, 도미닉 경이 협을 행함으로서 우리는 진짜 명분을 가지게 된 것이라는 사실은 왜 모르십니까."
"...계속 말해 보시오."
옳지. 젊은 도사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면류관을 쓴 이가 완전히 노여움을 풀고 흥미를 보였기 때문이다.
"현재 우리는 도미닉 경이 무와 협을 숭상하기에 우리 칭원에 와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만, 이는 주변에서 억지 주장이라며 비난을 받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번에 도미닉 경이 진정으로 무와 협을 숭상한다는 사실이 밝혀졌으니, 이제 도미닉 경이 우리 칭원에 오더라도 그 누가 컨셉이 맞지 않다고 하겠나이까."
"오호."
면류관을 쓴 이는 젊은 도사의 말에 완전히 현혹되었다.
"하지만 도미닉 경이 다른 클랜에 들어간 건 사실이지 않사옵니까."
젊은 도사 반대편에 있던 꼬리 아홉 달린 사악한 여우가 말했다.
"이미 다른 클랜에 들어간 이를, 어떻게 데려오시겠단 소리이신지요?"
"그, 그건..."
젊은 도사는 여우의 말에 말을 더듬었다.
도사는 아직 젊어 경험이 부족한 탓에 거기까지는 생각하지 못했다.
그러나 도사는 문득 머릿속에서 번뜩이며 지나가는 생각을 잡았고, 다시 숙고하지 않은 채 그 생각을 그대로 입 밖으로 꺼내버렸다.
"그, 그건 클랜전하면 됩니다!"
"클랜전?"
면류관을 쓴 이는 젊은 도사의 말에 의아한 듯 눈썹을 들어 올렸다.
그리고 옥좌의 등받이에 몸을 파묻으며 다시 한번 그 단어를 읊조렸다.
"클랜전이라."
"그, 그렇습니다. 클랜전으로 흡수합병을 한다면, 그 누가 우리 칭원에게 비난을 날릴 수 있겠습니까."
젊은 도사는 임기응변이 통했다는 생각에 고양되어 아무 말이나 내뱉기 시작했다.
"명분은?"
"네?"
"명분은 무엇이냐는 말이야."
면류관을 쓴 이는 젊은 도사의 말이 마음에 들었으나, 결국 이 싸움은 명분을 가진 이가 유리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면류관을 쓴 이는 혹시나 하며 젊은 도사에게 어떤 명분이 있어야 전쟁을 걸 수 있느냐는 뜻으로 그리 물어보았다.
"..."
젊은 도사는 면류관을 쓴 이의 말에 말문이 막힌 듯 침묵을 지키며 고개를 푹 숙였다.
그의 미천한 경험이 밑천을 드러내버린 것이다.
그러나 여기까지 길을 닦았다면, 그 길을 이어서 닦는 이도 나오는 법.
"당당하게 나가심이 어떻사옵니까?"
"당당하게?"
젊은 도사 옆에 있던 늙은 중이 염주를 돌리며 말했다.
"우리 칭원에서 탱커가 부족하니, 탱커 노조를 흡수해 필요한 인력을 보충한다는 명분을 쓰는 것이옵니다."
"...너무 적나라하지 않은가?"
"아니옵니다. 사람들은 억지로 만들어진 명분보다는, 이렇게 단순한 명분이 잘 먹힐 것이옵니다."
늙은 중이 하는 말은 나름 근거가 있었다.
가차랜드의 사람들은 복잡한 것보다는 단순한 것을 좋아한다.
그렇기에 복잡한 명분보다, 단순한 명분이 더 잘 먹힐 것이라는 그의 주장은 알음알음 긍정적인 반응을 이끌어냈다.
"소인도 저 명분이 좋다고 생각하옵니다."
"아예 이런 건 어떻겠습니까? 베타 테스트에 남을 8개의 클랜에 들기 위해 탱커 노조와 합병하려고 한다는 식으로"
젊은 도사가 꺼낸 말은 점점 살이 붙고 뼈가 자라 그럴듯한 모습으로 변해가기 시작했다.
누가 들어도 꽤 그럴싸한 수준까지 올라온 '탱커 노조를 친다.'라는 주장은, 면류관을 쓴 이라고 해서 솔깃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아니, 면류관을 쓴 이는 오히려 이 제안에 모든 마음을 빼앗긴 상태였다.
탱커 노조를 아예 삼켜 버린다라.
만일 그게 가능하다면 칭원 클랜은 지금의 두 배, 아니, 세 배, 네 배까지도 성장할 수 있으리라.
그럼 저 경우도 모르는 동방연합도 고개를 숙이고 위대한 칭원의 이름 아래에 들어오겠지.
"좋소. 그렇다면 이건 시간이 생명이겠구려."
"사절로는 내가 가는 것이 좋겠사와요. 가는 길에 도미닉 경을 홀릴 수 있다면 더 좋겠지요."
면류관을 쓴 이는 아직도 열심히 토론을 하는 아랫사람들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들 모르게 소매로 입을 가리고 히죽 웃었다.
이것이라면, 사촌 형의 코를 납작하게 해 줄 수 있으리라.
그렇게 생각하면서.
그 모습은, 어째서인지 양산박의 누구와 닮아 있었다.
...
"도미닉 경. 당신이 탱커 노조에 가입하던 날에, 온 클랜원이 당신의 이름을 속삭였소."
"그 말 하고 싶어서 입이 근질근질하더니, 소원 이뤘네?"
도미닉 경이 탱커 노조에 가입하던 날, 탱커 노조의 클랜원들은 도미닉 경을 둘러싼 채 기쁜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그들이 이렇게 기뻐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였다.
지금까지는 모두 쉬쉬하던 상황이었지만, 사실 탱커 중에서는 5성 이상에 도달한 이가 없었다.
5성 이상의 딜러가 각 분야에서 하나 이상, 많게는 다섯까지도 있다는 것을 감안 하면 이상할 정도였으나, 그 내면을 보면 이 상황을 이해할 수 있었다.
탱커는 그 수가 심각할 정도로 적다.
가차랜드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딜러들은 표본이 많아 당연히 5성에 도달하는 이들도 많았으나, 탱커들은 그 수가 적어 5성에 도달한 사람은커녕 4성에 도달한 사람도 손에 꼽을 정도였다.
괜히 탱커 노조에서 탱커들의 권익을 지키려고 노력하는 것이 아닌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새롭게 4성에 닿기 직전인, 그리고 어쩌면 5성이나 그 이상을 노릴 수도 있는 재능을 가진 도미닉 경의 존재는 그 자체로 호재였다.
게다가 그런 도미닉 경이 탱커 노조에 가입까지 했다고?
당연히 클랜원들은 환호할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이거 민망하구려."
"그러니까. 이렇게나 환영해 줄 줄은 몰랐는데."
도미닉 경과 도미니카 경은 겸연쩍은 얼굴로 서로를 바라보았다.
그들의 머리 위에는 파티용 고깔이 씌워져 있는 상태였다.
"파티다 파티!"
"빨리 비번인 애들도 다 불러!"
이제 탱커 노조 사무실은 완전히 광란의 도가니에 빠지기 시작했다.
누군가가 들어오기 전까진.
쾅! 하는 소리와 함께 탱커 노조 사무실의 문이 박살 났다.
그리고 그 사이에서 안개가 스멀스멀 기어들어오더니, 이내 누군가가 나타났다.
그자는 여우 귀와 아홉 개의 꼬리를 가진 채 화려한 비단으로 몸을 감싼 이였는데, 우아한 자태와는 다르게 포악한 포식자의 눈을 하고 있었다.
"여기가 탱커 노조 사무실. 맞사옵니까?"
"...그렇습니다만?"
풍선을 불고 있던 판데모니아가 침입자에게 대답했다.
그가 들고 있던 풍선은 바람이 다 빠져 버려 다시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온 상태였다.
"다행이로군요. 하마터면 길을 잃을 뻔했사옵니다."
여우 귀와 아홉 개의 꼬리를 가진 여성은 입을 가리고 단아하게 웃더니, 곧바로 본론을 말했다.
"하마터면 선전포고도 없이 전쟁을 할 뻔했지 않사옵니까."
"...선전포고?"
판데모니아가 아홉 꼬리의 여자에게 되물었다.
"그렇사옵니다."
아홉 꼬리의 여자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언제?"
판데모니아가 황당하다는 듯 말했다.
"지금."
아홉 꼬리의 여자가 대답했다.
쾅! 하는 소리와 함께 건물이 흔들렸다.
도미닉 경은 갑작스러운 진동에 순간 창문 밖을 바라보았다.
그곳엔, 동양풍의 옷을 입은 이들이 빛나는 검을 들고 창문을 두드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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