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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차랜드의 행복한 도미닉 경-273화 (273/528)

〈 273화 〉 [272화]상환

* * *

도미닉 경은 당황하는 미스터 왕을 바라보며 고개를 갸웃했다.

아무리 봐도 미스터 왕의 태도는 계략을 꾸민 사람의 것은 아니었던 것이다.

"괘, 괜찮소?"

갑자기 날아온 총알에 놀라 책상 아래로 숨어들어간 미스터 왕이 말했다.

그는 깨진 창문을 통해 쏟아지는 빗물에 젖어 꼴사나운 모습으로 도미닉 경의 안부를 물었다.

도미닉 경은 미스터 왕을 향해 고개를 끄덕이고는 다시 깨진 창문 너머를 바라보았다.

아직 감이 경고를 보내고 있었다.

몇 발의 총알이 비 사이를 뚫고 날아왔으나 도미닉 경의 방패는 그에게로 날아오는 모든 총알을 완벽하게 막아 냈다.

도미닉 경은 혹시나 싶은 마음에 몇 걸음 옆으로 이동해 보았다.

그러자 총알도 도미닉 경이 있는 곳을 따라 조금씩 궤도를 수정하며 따라오는 것을 도미닉 경은 확인했다.

"아무래도... 나를 노리는 모양인데."

"여깄소! 이걸 쓰시오!"

도미닉 경은 미스터 왕의 외침에 고개를 돌려 미스터 왕을 바라보았다.

미스터 왕은 땅에 박을 수 있는 복잡한 장치를 던졌는데, 도미닉 경이 그걸 받아들자 미스터 왕의 설명이 이어졌다.

"그것을 땅에 박으면 보호막이 생성될 거요! 원래는 내가 쓰려고 숨겨둔 한 수였지만, 지금은 당신이 더 필요할 것 같소!"

미스터 왕은 폭우 속에서 최대한 목소리를 높여 말했다.

도미닉 경은 미스터 왕의 말을 믿어보기로 하며 그 장치를 땅에 박아 넣었다.

그러자 장치에서 물리적인 역장이 생기며 빗발치는 총알은 물론, 쏟아지는 폭우마저 막아 내었다.

"이제 여길 빠져나갑시다! 역장이 오래 버티지는 못할 거요!"

미스터 왕은 도미닉 경에게 그렇게 말하며 입구로 뛰어갔다.

도미닉 경은 잠시 역장을 바라보았다.

미스터 왕의 말대로 역장은 총알이 닿을 때마다 균열이 가기 시작하더니, 곧 깨질 것처럼 위태롭게 서 있었다.

도미닉 경은 역장이 깨지기 직전에 문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들이친 빗물에 바닥이 미끄러웠으나, 도미닉 경은 최대한 균형을 잡은 채 문을 넘어 사무실로 오는 데 성공했다.

미스터 왕은 도미닉 경이 돌아오자마자 문을 닫고 옆에 있던 책장을 밀어 막아 버렸다.

"괘, 괜찮소?"

미스터 왕은 숨을 헐떡이며 땅에 주저앉아 도미닉 경에게 안부를 물었다.

아무래도 자기 사무실에서 일어난 일이니, 혹시라도 도미닉 경이 오해라도 할까 봐 최대한 상냥한 태도를 취한 것이었다.

"괜찮소. 다만..."

도미닉 경은 그 엄청난 총알 세례에도 멀쩡했다.

그러나 그의 방패는 그러지 못했는데, 그의 방패는 버그라도 걸린 듯 검보라색의 물질이 비눗방울처럼 나타났다가 사라졌다.

"양산박의 짓이로군."

도미닉 경은 엉망이 된 방패를 보고는 그렇게 단정 지었다.

가차랜드에는 수많은 버그가 있었지만, 이렇게 치명적으로 보이는 버그를, 그것도 무기화시켜 들고 다니는 세력은 양산박 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글리치로군. 아무래도 양산박의 짓이 틀림없소. 분명 어딘가에 도청장치를 숨겨둔 거겠지."

미스터 왕도 같은 결론을 내렸는지, 한숨을 내쉬며 자신을 자책했다.

"이렇게 된 이상, 내 아들의 생사도 불분명해졌소. 지금까지 양산박 측의 말만 듣고 아들이 살아 있다고 생각했지만, 이렇게 막 나가기 시작한 걸 보면 아들도 무사하진 않겠지. 아들의 상태를 확인하러 가야겠소."

미스터 왕은 결연한 표정으로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도미닉 경은 이제 빠지시오. 당신은 어쩌다 보니 휘말린 셈이니, 지금 빠지더라도 늦지 않았을 거요."

미스터 왕은 도미닉 경에게 그리 말하며 어디론가 나갈 준비 했다.

"애초에 도미닉 경이 있던 자리는 내가 상담을 할 때 자주 앉던 자리였소. 그 자리를 노렸다는 것은, 날 살려 둘 생각이 없다는 거겠지. 그러니 도미닉 경은 아직­"

"그건 아니오. 총알의 궤도가 계속해서 나를 따라왔으니."

도미닉 경이 미스터 왕의 말에 반박했다.

"피했음에도 계속해서 그 자리를 공격했더라면, 비로 인해 시야가 가려져 목표 구분하지 못했다고 생각했을 거요. 그러나 나를 따라 쏜 것을 보면 그들이 목표를 구분하긴 했다는 것을 알 수 있소."

도미닉 경은 논리적으로 미스터 왕을 설득했다.

"그러니 이 일은 당신만의 것이 아니오. 나도 낄 자격이 있소."

"..."

미스터 왕은 도미닉 경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는 듯 경고하기 시작했다.

"지금부터 갈 곳은 양산박의 본부나 다름없는 곳이오. 온갖 위험이 가득하다는 뜻이지. 어쩌면 죽을 수도 있소. 가차랜드식 싸구려 죽음이 아니라, 진정한 안식 말이오. 그래도 따라오시겠소?"

도미닉 경은 미스터 왕의 경고에도 미스터 왕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

양산박의 비밀기지 중 가장 큰 곳, 그곳에 양산박의 최고 간부 중 하나인 왕이와 왕이에게 약점을 잡혀 그의 아래에서 일하는 조제프 준장이 있었다.

"이번 일은 포기하도록 하지... 그나저나 그 일은 어떻게 되었지?"

왕이는 손에 와인 잔을 들고 돈이 될 법한 프로젝트 하나를 포기하며 조제프 준장에게 물었다.

황후의 복장을 하는 조제프 준장은 왕이가 말한 그 일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잠깐 고민하다가, 이내 이 가차랜드를 전복시킬 전조를 말하는 것이라는 걸 깨닫고 입을 열었다.

"아쉽게도 진전이 늦어지고 있다고 합니다. 몇몇 부분에서 방해를­ 꺄악!"

"방해? 방­해? 변수까지 계산했다면서 방해 하나에 막혀? 장난해?"

왕이는 포악하게 손에 들고 있던 와인 잔을 있는 힘껏 조제프 준장에게 던졌다.

빠르게 날아간 잔은 벽에 부딪쳐 산산조각이 났는데, 안에 약간 남아 있던 와인이 피처럼 벽에 쫙 퍼져나갔다.

"동시에 진행하는 수많은 계획 중 하나만 차질이 있을 뿐입니다. 다른 계획들은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습니­"

"그래. 그렇다면 이해할 만 하지. 전체의 일부 정도라면야."

조제프 준장은 두렵다는 듯 점점 빨라지고 높아지는 목소리로 변명을 내뱉었다.

왕이는 그제야 만족한다는 듯 엉망이 된 옷깃을 여미었다.

"이번 계획만 제대로 성공한다면, 이 가차랜드는 내 것이 되는 거야."

왕이는 욕망으로 번들거리는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았다.

왕이는 어렸을 때부터 선택을 하며 자라왔다.

분명히 좋은 선택지를 골랐음에도 부정적인 결과가 나오기도 했고, 부정적인 결과를 골랐을 때 가장 큰 보상이 나오기도 했다.

물론 그 반대의 선택지도 많았으나, 왕이는 대개 부정적인 선택지를 고르면 중간 이상은 간다는 것을 깨달았다.

돈이 필요하면 어디선가 훔치고, 기분 나쁜 녀석이 있으면 때리고, 가지고 싶은 것이 있으면 빼앗고...

왕이가 양산박에 들어오게 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수순이었다.

이 선택지 덕분에 왕이는 순식간에 간부가 될 수 있었고, 중간중간 실수도 있었으나 이미 권력의 중심이 된 왕이에게 있어선 아주 사소한 일들이었다.

최고위 간부가 된 왕이는 처음엔 뛸 듯이 기뻐했다.

뒷골목의 제왕은 양산박이었고, 양산박에서도 가장 높은 이가 왕이가 있는 최고위 간부들이었다.

그러나 왕이의 열정은 순식간에 꺼져 버리고 말았는데, 더 이상 올라갈 곳이 없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매달 수십 억, 수백 억에 달하는가차석을 쓰면서 자리를 유지하는 건 아주 쉬운 일이었다.

아랫사람들을 다그치면 가차석 따윈 얼마든지 얻을 수 있었다.

부는 더 이상 그의 목표가 아니었고, 명예로는 더 이상 올라갈 곳이 없었다.

좌절한 왕이는 이렇게 변화없는지루한 삶을 살아야 한다는 사실에 절망했다.

그러나 곧 왕이는 한 가지 좋은 생각을 떠올렸다.

그건 바로, 이 가차랜드를 손에 넣어 진정한 왕이 되는 것이었다.

양산박의 최고위 간부가 뒷세계의 왕이라는 칭호로 불리긴 했으나, 가차랜드 전체를 아우르는 건 아니지 않는가.

그렇게 생각한 왕이는 가진 모든 것을 털어 가차랜드 정복을 위한 계획을 수립하고, 인재들을 영입... 아니, 납치하고 협박해 자기 편으로 만들었다.

그렇게 모인 인재들은 왕이를 위해 가차랜드 정복을 위한 주춧돌을 만들어내야만 했다.

어찌 보면 악취미.

조제프 준장이 왕이의 아래에서 일하게 된 것도 그런 왕이의 취미의 일환이었고, 도미닉 경이 왕이의 눈에 띈 것도 바로 그런 취미 때문이었다.

왕이는 가차랜드가 훤히 내려다보이는 높은 곳에서 가차랜드를 내려다보았다.

물론, 여기는 진짜 가차랜드 중심부는 아니었다.

중심부에 몰래 설치한 고화질 카메라가 보내는 영상을 거대한 액정 모니터의 군체를 통해 보여주고 있는 것이었다.

가차랜드의 번화한 모습을 바라보던 왕이는, 스스로에게 다짐하듯 중얼거렸다.

"나는 아버지처럼 무소유, 무욕의 사람이 아닙니다. 아버지는 틀렸어요. 있는 힘껏 욕심을 내고, 있는 힘껏 빼앗아야 최고가 될 수 있는 겁니다."

왕이는 그렇게 가차랜드를 보여주는 액정 모니터들을 무표정하게 바라보다가 리모컨을 들어 액정 모니터를 일제히 꺼버렸다.

왕이와 조제프 준장이 있던 장소에는, 이제 어둠만이 자리 잡고 있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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