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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차랜드의 행복한 도미닉 경-224화 (224/528)

〈 224화 〉 [223화]변수 출현

* * *

도미닉 경은 캐서린과 함께 1층으로 내려왔다.

놀랍게도 도미닉 경이 찾던 슬라톤 벡스는 1층에 내려오자마자 바로 있었다.

"물러서지 마라! 여기서 물러서면 국왕 폐하가 계시는 거처다! 폐하를 위해 죽도록 싸워라! 아니, 죽어서도 싸우라!"

발코니에서 검과 권총을 든 군인이 소리쳤다.

"경비대장이로군요."

캐서린이 말했다.

"1층의 보스지요. 원래대로라면 당신과 싸웠어야 합니다만..."

캐서린이 힐끗 고기 덩어리를 쳐다보았다.

"지금은 저 이상 현상을 막으려고 필사적으로 소리치는군요."

캐서린의 말에 도미닉 경은 현재 1층의 상황을 한눈에 담았다.

"멍청한 것들! 너희의 무모함은 곧 내 힘이 되리라!"

로비 가운데에서 꿈틀거리는 고기 덩어리 마족, 슬라톤 벡스.

"국왕 폐하를 위해!"

"아악!"

그리고 그런 슬라톤 벡스를 향해 창을 내지르거나, 슬라톤 벡스에게 잡아먹히는 경비병들.

"지원하겠습니다. 메이드들은 모두 침입자 격퇴 모드로."

그리고 샹들리에나 테라스에 올라서서 의수와 의족에 달린 단검을 집어 든, 비스크 돌 메이드들.

당장 힘의 균형은 얼추 맞는 듯싶었으나, 도미닉 경은 지금, 이 균형이 곧 깨질 것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마족들은 진명을 불리지 않는 이상, 거의 피해를 입히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었다.

그렇기에 도미닉 경은 더 이상 상황을 관찰하기보다 먼저 본능이 시키는 대로 움직이기로 했다.

"슬라톤 벡스!"

"으윽!"

도미닉 경이 쩌렁쩌렁하게 마족의 진명을 외쳤다.

그러자 다시금 흰개미들이 물어뜯듯 끔찍한 간지러움과 고통에 몸부림치는 슬라톤 벡스.

그러나 슬라톤 벡스는 견딜 만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방금 전 도미닉 경과 처음 마주쳤을 때와 달리, 슬라톤 벡스는 경로 상의 메이드와 경비병들을 잡아먹으며 그 격을 높인 상태였기 때문이었다.

"...할 만하구나!"

"그러나 아직 힘든 것은 사실이니!"

"먹고, 또 먹어라!"

"으하하! 대식가가 포식할 시간이다!"

고깃덩어리가 거의 두 갈래로 쩌억 갈라지더니, 엄청난 크기의 입이 드러났다.

그 입은 순식간에 슬라톤 벡스를 둘러싸고 있던 경비병들 중 수십 명을 삼켜 버렸다.

그러자 다시금 이성을 되찾은 슬라톤 벡스.

피부가 갉아먹히는 듯한 간지러움과 고통도 견딜 만 하게 바뀌었다.

"이것이다! 이것이다! 이제야 대등하게 싸울 수 있겠구나!"

슬라톤 벡스의 백 개의 입이 끔찍한 웃음소리를 내었다.

이곳은 던전이었고, 사방에서 죽었던 경비병들을 대체할 새로운 경비병들이 태어났다.

그 말인 즉, 도미닉 경이 아무리 진명을 외쳐 슬라톤 벡스를 약화시키려고 해도 무한대로 잡아먹고 제약을 상쇄시킬 수 있다는 소리였다.

그야말로 슬라톤 벡스를 위해 준비된 공간!

"...흐."

그러나 도미닉 경은 고개를 숙이고 웃었다.

그 끔찍한 웃음소리를 '따위'로 취급할 수 있을 만큼 기괴하게 웃었다.

그래. 이래야 마족이지. 추하고 더러워 거리낌 없이 죽일 수 있어야 마족이지.

도미닉 경이 고개를 들었다.

그의 눈빛은 이미 광기와 살기로 가득 차 슬라톤 벡스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어찌 보면, 사랑에 빠진 광신도의 눈빛 같기도 한 그 눈빛에 슬라톤 벡스가 움찔했다.

...그리고 슬라톤 벡스는 분노했다.

감히 필멸자 따위에게 겁을 먹었다고? 이 슬라톤 벡스가?

슬라톤 벡스는 지금까지 다른 이들의 공포로 군림해 온 마족이었다.

그런 마족이 공포라는 감정에 지배당하다니.

이는 아주 굴욕적인 것이었다.

슬라톤 벡스의 마흔 다섯 미간이 찌푸려졌다.

일곱 개의 머리가 흉악하게 일그러졌다.

"감히 필멸자가 그런 눈으로 나를 바라보지 마라!"

슬라톤 벡스가 도미닉 경에게 달려들었다.

중심이 되는 가장 큰 눈은 도미닉 경을 바라보고 있었고, 가장 큰 입은 도미닉 경에게 저주를 내뱉었다.

그리고 그 주변에 있는 입들은 경로에 있는 경비병들과 메이드들을 우적우적 씹어먹었다.

평범한 사람이라면 그대로 겁에 질려 미쳐 버려도 이해할 수 있을 만한 상황.

그러나 도미닉 경은... 그래. 강인한 정신력도 물론이거니와 성인 필터와 혐오 필터가 활성화 된 상태.

고작 그 정도로는 도미니 경의 굳센 심지를 흔들 수 없었다.

도미니 경이 방패를 앞세웠다.

그리고 특수 능력 [시네마틱]이 도미닉 경을 보조하며, 기적을 보여 주었다.

도미닉 경이 경사로를 만들어 비스듬히 들어 올린 방패에 슬라톤 벡스의 이빨이 닿았다.

그리고 도미닉 경은, 그 자세 그대로 방패를 들어 올려 뒤로 넘겼다.

슬라톤 벡스의 거대한 몸체가 도미닉 경의 머리 위로 붕 뜬 채 넘어갔다.

"...?"

슬라톤 벡스는 갑자기 하늘과 땅이 바뀌는 느낌에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콰지직 소리를 내며 바닥에 깔린 대리석을 박살 내고 나서야 슬라톤 벡스는 도미닉 경이 슬라톤 벡스의 거대한 몸체를 뒤로 넘겨 메쳤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도미닉 겨어어어엉!"

슬라톤 벡스는 더욱 분노하여 바닥을 부수며 다시 도미닉 경에게 달려들었다.

"슬라톤 벡스! 슬라톤 벡스! 그 저주받을 이름이여!"

도미닉 경이 슬라톤 벡스의 진명을 부르며 온갖 저주를 내뱉었다.

그리고 몸을 뱅글 돌려 방패의 모서리로 수많은 눈 중 하나를 찔렀다.

온몸을 이용해 있는 힘껏 휘둘러진 방패와 그 모든 힘을 일 점에 집중시킨 모서리로 인해 슬라톤 벡스의 눈 중 하나가 사라졌다.

"아으아! 아아! 아아아!"

슬라톤 벡스가 진명으로 인해 더욱 증폭된 고통에 몸부림쳤다.

아니, 몸부림칠 수 없었다.

도미닉 경의 방패 공격 효과인 확률적 스턴이 터지며 슬라톤 벡스는 움직이지도 못한 채 그 고통을 고스란히 받아 내야만 했다.

하지만 역시나 슬라톤 벡스는 강한 마족이었다.

몇 초도 되지 않아 슬라톤 벡스는 스턴에서 풀려났으며, 새로운 눈을 재생시켰다.

그리고 도미닉 경에게 달려들기보다 신체 복구를 위한 행동을 우선시했다.

경비병들에게 달려들어 그들을 처참하게 잡아먹은 것이다.

"슬라톤 벡스!"

도미닉 경이 진명을 다시 불렀으나, 슬라톤 벡스는 몸을 움찔거리기만 할 뿐 경비병들을 먹는 일을 그만두지 않았다.

마침내 수백 명의 경비병들과 메이드들이 사라지고 나서야 슬라톤 벡스는 다시금 온전한 모습으로 돌아왔다.

"배고프다! 배고프다! 배고프다!"

"가장 싱싱한 고기는 바로 단련된 인간의 육체였어!"

그 정도 먹었으면 만족할 만도 하건만, 슬라톤 벡스는 아직도 수천, 수만, 수억 명을 잡아먹을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가 가장 처음 먹었던 대식가 앙트레와 미식가 앤트리가 그의 능력과 시너지를 일으킨 탓이었다.

"이제 난 완전해졌다."

슬라톤 벡스가 오만하게 도미닉 경을 비웃었다.

"무한한 제물! 진명조차 통하지 않는 무한한 회복력! 끊임없이 강해지는 격! 모든 것이 나의 승리를 가리키고 있다."

도미닉 경이 슬라톤 벡스를 올려다보았다.

분하지만 슬라톤 벡스의 말 중에는 틀린 것이 없었다.

도미닉 경도 무시무시할 정도로 강인한 체력과 높은 스탯에서 오는지속 전투력, 그리고 특수 기술 [기수]로 인해 피해를 경감시키는 등 장기전에 강한 면모를 보였으나 슬라톤 벡스는 그런 도미닉 경의 상위 호환이었다.

그야말로 모든 균형이 슬라톤 벡스에게 쏠린 상황.

얼마나 오래 걸리냐의 차이는 있겠지만, 도미닉 경은 본능적으로 자기 패배를 점치고 말았다.

그러나 여전히 도미닉 경은 웃고 있었다.

더 이상 희망이 없을 정도로 힘겨운 상황이었으나, 힘겨울 수록 행복해지는 도미닉 경의 특징 때문이었다.

이제 도미닉 경은 검과 방패를 들고 언제라도 슬라톤 벡스를 향해 달려나갈 준비를 마쳤다.

얼굴엔 그 어떤 때보다도 환한 미소를 지으면서.

"하, 어리석구나. 좋다. 이 어리석은 필멸자에게 주제를 알게 하는 것도 강자의 특권이지."

슬라톤 벡스은 더 이상 회복할 것이 없음에도 겁에 질린 경비병을 몇 명 우적우적 씹었다.

그리고 핏줄이 가득한 두꺼운 팔을 들어, 그 날카로운 손톱이 달린 손바닥을 도미닉 경을 향해 내리쳤다.

도미닉 경이 충격을 흘리기 위해 방패를 비스듬히 들어 올린 그때.

"으음?"

슬라톤 벡스이 기묘한 감각에 의문 가득한 소리를 내뱉었다.

도미닉 경에게 팔을 휘둘렀으니, 도미닉 경이 부딪치는 느낌이 들어야 정상이었다.

그러나 아무리 팔을 휘저어도 도미닉 경에게 닿는 느낌은 없었다.

슬라톤 벡스의 눈들이 자기 팔이 있는 쪽으로 향했다.

그리고 그 모든 눈은 놀란 상태가 되었다.

슬라톤 벡스의 팔은 허공에 뜬 상태였다.

깔끔하게 잘린 단면이 슬라톤 벡스의 눈에 들어왔다.

슬라톤 벡스의 팔은 어깨죽지를 기준으로 위와 아래가 분리된 상태였다.

"...으아아!"

슬라톤 벡스이 비명을 질렀다.

베였다는 사실을 알아차리고 나서야, 베인 부분이 스스로 잘린 것을 인지하고 피를 뿜기 시작했다.

슬라톤 벡스의 독성 가득한 피가 경비병에게 닿아 몇 명의 사상자를 더 내었으나, 이내 그 자리는 다시금 새로운 경비병으로 채워졌다.

"누구냐! 누가 내 팔을­"

슬라톤 벡스이 발작하며 버럭버럭 소리 질렀다.

그러나 슬라톤 벡스의 발작은 이내 새로운 이의 등장으로 멈추고 말았다.

"누가 감히­"

쿵. 하고 땅이 울린다.

"내 영토에서­"

쿵. 하고 또 한 번 땅이 울린다.

도미닉 경은 고개를 돌려 소리가 나는 쪽을 바라보았다.

"소란을 피우는가?"

쿵.

그곳에는 용의 이빨로 제작된­

"자네인가?"

쿵.

블랙 드래곤의 가죽으로 마감을 한 전신 갑주를 입은 거한이 있었는데­

"아니면 자네?"

쿵.

등에는 무두질한 레드 드래곤과 골드 드래곤의 가죽으로 된 망토가 휘날리고 있었고­

"누가 되었든 상관없다."

쿵.

용의 이빨을 제련하여 만든 대검을 들고 있었다.

"감히 이 첨탑을 소란스럽게 한 죄..."

철컥.

그 대검은 도미닉 경의 키와 비교해도 두 배는 될 법 했는데­

"목숨으로 갚아라."

쾅!

그 거한은 그 대검을 한 손으로 휘둘러 그 풍압으로 슬라톤 벡스의 팔을 또 하나 잘라 내었다.

"두려워하라."

거한이 대검을 양손으로 잡고 그 끝을 땅에 박아 넣었다.

그리고 손잡이의 끝자락을 양손으로 덮고, 오만한 자세로 도미닉 경과 슬라톤 벡스을 내려다보았다.

"­학살자 왕을."

또 하나의 변수 등장이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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