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8화 〉 [117화]사건의 전말
* * *
이후의 행적은 꽤 심플하다.
마왕 뚜 르 방은 도미닉 경을 닮은 리틀 도미닉 경이 마음에 들었는지 같이 목욕도 하고 밥도 먹고 잠도 같이 잤다.
리틀 도미닉 경은 마왕에게 납치당한 공주처럼 얌전하게 뚜 르 방과 놀았다.
아무리 마도 회로가 있다고는 하지만 리틀 도미닉 경은 봉제 인형.
도미닉 경의 용맹함, 그리고 위험의 유무 정도만 판단할 수 있었다.
리틀 도미닉 경은 마왕이 해가 없는 사람이라고 판단했기에 그저 폭신폭신 걸어 다니거나 말랑말랑 앉아 있거나 할 뿐이었다.
효과음이 조금 이상한 것 같지만, 정말로 리틀 도미닉 경은 그런 소리가 났다.
불법 굿즈임에도 정품보다 훌륭한 퀄리티.
"?"
마왕은 며칠 동안 리틀 도미닉 경의 행동을 가장 가까이서 본 사람이었다.
그리고 마왕만큼은 아니지만 꽤 귀엽다는 사실도 알아차렸다.
용사가 마왕을 잡으러 오는 것도 다 마왕이 세상에서 제일 귀여워 시기질투하기 때문이지 않는가.
...마왕 뚜 르 방은 진짜 그렇게 믿고 있었다.
그런 마왕이 진심으로 귀엽다고 생각할 만큼 뛰어난 완성도.
마왕은 리틀 도미닉 경을 만든 제작자가 누구인지 궁금해질 정도였다.
"그거 뭐야? 귀엽다! 스승님 닮았다!"
마왕은 정말로 리틀 도미닉 경이 마음에 들었다.
얼마나 마음에 들었는지 아카데미에 들고 갈 정도로 말이다.
그런 마왕의 앞에 시린 빛의 머리카락과 투명한 피부를 가진 꼬마가 다가왔다.
꼬마는 시대착오적인 사슬갑옷을 입고 있었는데, 등에는 온갖 무기가 담긴 커다란 배낭을 메고 있었다.
여러분도 짐작하셨다시피 이 아이는 도미닉 경의 종자 앨리스.
"혹시 그거 도미닉 스승님 인형이야?"
"!"
마왕은 자세한 이름은 기억하지 못했지만 대충 그런 이름이었다고 생각했다.
마왕과 앨리스는 오늘 처음 보는 사이였으나 관심사가 맞아떨어지자 순식간에 친해졌다.
"오늘 오전에 스승님께서 방패 슉슉 알려주셨다?"
"?"
방패 슉슉은 뭐지? 마왕은 이 덩치만 큰 애송이를 바라보았다.
"!"
마왕은 방패 슉슉이라는 단어가 너무 신경 쓰여 참을 수 없었다.
"내일 언제 스승님에게 가냐고?"
앨리스는 마왕의 언어를 잘 알고 있었다.
어머니가 가끔 화날 때 쓰는 고대어와 비슷했으니까.
"내일 오전에도 훈련이 있어. 스승님께서 성실해야 기사가 될 수 있다고 하셨거든!"
"!"
"음... 글쎄..."
"?"
"스승님께서 허락하셔야겠지만, 스승님은 착하니까 허락해주실거야! 내일 바로 가 보자!"
"!"
누가 봐도 엉망진창인 대화.
그러나 둘은 어째서인지 원활하게 대화하고 있었다.
마왕은 생각했다. 이 얼마나 오랜만에 제대로 된 대화인가.
마왕은 너무 행복했다.
귀여운 인형. 귀여운 친구. 그리고 방패 슉슉.
마왕은 리틀 도미닉 경을 꼭 끌어안았다.
내일이 너무 기대가 되었다.
...
이튿날 아침.
마왕은 참모장 몰래 평소보다 일찍 일어나 이빨을 닦고 세수를 마쳤다.
그리고 병아리 모양 가방에 사탕 세 개와 리틀 도미닉 경을 넣은 뒤 등에 메고 앨리스와 약속한 장소로 나갔다.
"와! 일찍 왔네? 엄마! 쟤가 마왕이에요!"
"그렇구나."
앨리스는 어머니와 같이 와 있었던 모양이었다.
신장이 하늘에 닿을 것 같이 큰 서리 거인 여성이 뚜 르 방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엄청난 강풍이 불어와 앨리스와 뚜 르 방의 머리카락이 휘날렸다.
"!"
뚜 르 방도 배꼽을 잡고 공손하게 꾸벅 허리를 숙였다.
"예의바르기도 하지."
"엄마가 스승님 집까지 태워주실거야!"
앨리스와 뚜 르 방이 높은 창공의 바람을 가르며 도미닉 경의 저택으로 향했다.
이제 곧 뚜 르 방은 방패 슉슉을 볼 수 있을 거란 기대감에 차올랐다.
...
그때, 도미닉 경은 수련하고 있었다.
스승님이 부담스러워할까 봐 조금 떨어진 곳에서 내린 앨리스와 뚜 르 방은 도미닉 경에게 소리쳤다.
"스승님!"
그 소리가 들렸는지, 도미닉 경이 훈련을 잠시 멈추고 뒤를 돌아보았다.
그리고 이 사건의 처음으로 돌아간다.
도미닉 경은 표정이 굳었다.
마왕이 어째서 여기에 있는가?
"방패 슉슉 보러 같이 왔어요!"
"!"
마왕이 기대된다는 듯 자리에서 방방 뛰었다.
2등신의 짧은 비율 때문인지 제법 높게 뛰어오르고 있었음에도 티가 나지 않는다.
"!"
"그냥 볼 생각은 없대요, 스승님."
앨리스가 마왕의 말을 번역했다.
마왕은 병아리 모양 가방을 열고 사탕 하나를 꺼냈다.
멜론 맛 사탕.
도미닉 경이 사준 사탕 중 하나였다.
도미닉 경은 그 사탕을 잠시 바라보다가 피식 웃었다.
아무래도 마왕은 별 의미 없이 찾아온 것이 맞는 것 같았다.
"방패 슉슉이라..."
어제 자신이 무엇을 보여주었는지 고민하던 도미닉 경이 문득 한 가지 기술을 기억해냈다.
도미닉 경은 방패를 들고 허수아비의 앞에 섰다.
그리고 방패의 아래쪽 모서리로 허수아비를 세 번 후려쳤다.
눈 깜짝할 사이에 목과 명치, 그리고 다시 인중이 있는 부위를 가격한 재빠르고 치명적인 삼연격.
시스템상의 문제로 겉으로 보기엔 3타였으나 1타로 취급되는 평타 기술이었다.
"!"
"방패 슉슉 멋지지?"
"!"
그러나 마왕과 앨리스는 그 모습이 멋있어 보였는지 흥분을 참지 못하고 눈오는 날의 강아지처럼 방방 뛰기 시작했다.
이래선 오늘 훈련은 글렀군. 도미닉 경은 그렇게 생각했다.
앨리스와 훈련을 진행하면서 앨리스가 어떤 아이인지 잘 알고 있는 도미닉 경은 이런 상황에서 앨리스가 얌전히 훈련을 할 리 없다는 것을 알았다.
분명 따라하려다가 다치거나 울적해지거나 둘 중 하나가 되리라.
훈련이 없다면 뭘 해야할까. 도미닉 경은 적어도 이 시간 동안 둘에게 해줄 수 있는 일을 생각해보았다.
그리고 문득 든 생각.
오늘 오후에는 히메와의 약속이 잡혀 있었다.
그렇다면 시내로 나가 맛있는 것이나 사주고 집으로 돌려보내는 것이 좋겠지.
"오늘은 하루 쉬자꾸나. 대신 내일 두 배로 열심히 하고."
"네?"
앨리스가 반문했다.
훈련에 있어서는 엄격한 스승님의 말이라고는 믿을 수 없었다.
"나도 오후에 일이 있는데다가 마왕... 아니, 네 친구를 두고 우리끼리만 훈련하는 것도 이상하지 않느냐. 오늘은 시내에서 놀고 내일 더 열심히 하자."
"!"
"정말요?"
앨리스가 만세를 불렀다.
마왕도 지금 상황이 무슨 상황인지는 몰랐지만 따라서 만세를 불렀다.
...
도미닉 경과 앨리스, 그리고 뚜 르 방은 시내로 나왔다.
"솜사탕! 솜사탕 사주세요!"
"!"
"사탕도요!"
앨리스와 뚜 르 방은 들뜬 상태로 도미닉 경의 좌우에 붙어 먹고 싶은 것을 말했다.
"그래. 그러자꾸나."
도미닉 경이 폰을 꺼내 시간을 확인했다.
1시 27분.
히메와의 약속까지 아직 3시간도 더 남은 시간.
사탕을 사주고 마실 것까지 사준 뒤 집으로 돌려보내면 시간이 얼추 맞을지도 모르겠다.
도미닉 경은 그렇게 생각하며 상업지구의 사탕가게로 향했다.
마왕 덕분에 알게 되었고, 앨리스 때문에 단골이 되어 버린 사탕가게.
사탕을 한아름 산 뒤 금방 만들어진 커다란 솜사탕을 받아 든 도미닉 경이 각자가 원하는 물건을 쥐여주었다.
"!"
마왕은 사탕이 가득 든 봉투를 머리 위로 자랑하듯 치켜들었다가 가방에 고이 집어넣었다.
봉투가 얼마나 컸던지 리틀 도미닉 경의 옆에 두어도 높이가 맞지 않아 덮개를 미처 덮치 못할 정도였다.
마왕은 한참 동안 덮개를 닫으려고 노력하다가 포기하고 앨리스가 먹고 있던 솜사탕의 일부를 뜯어 뺏어 먹었다.
"아! 내 주급!"
앨리스는 왠지 억울한 기분이 들었다.
"여기 계셨군요, 마왕님."
그때였다.
마왕은 솜사탕을 먹던 자세 그대로 굳어 버렸다.
그리고 천천히 고개를 돌려 소리가 난 쪽으로 돌아보았다.
거기엔 참모장이 서 있었다.
"아침부터 사라지시는 바람에 얼마나 찾아다녔는지 아십니까. 납치범이 마침내 집까지 찾아온 줄 알고... 너, 너는 납치범!"
참모장이 시간을 확인하며 가게에서 나오는 도미닉 경을 알아보았다.
현재 시간은 2시 42분.
곧 히메와의 약속 시간이었다.
평소의 도미닉 경이라면 참모장과 싸웠겠지만, 약속 시간을 지켜야하는 도미닉 경은 잠시 전략적인 후퇴를 시도했다.
"납치범이라니. 항상 말하지만 난 기사요. 범죄는 저지르지 않소."
"그건 모르는 일이지."
흥. 하고 코웃음을 친 참모장이 도미닉 경을 노려보다가 도미닉 경이 나온 가게를 바라보았다.
"여긴... 사탕가게로군. 마왕님! 사탕 줄 테니 따라오라고 하면 가라고 했습니까, 가지 말라고 했습니까!"
"!"
"네? 따라가지 말라고 했지 않습니까!"
참모장은 거의 울 듯 말 듯한 얼굴로 버럭버럭 소리를 질렀다.
아침부터 마왕에 대한 걱정과 마침내 찾았다는 감격, 그리고 납치범 도미닉 경을 만난 분노가 겹쳐 형용할 수 없는 감정의 회오리를 만들어냈다.
그 감정은 대체적으로 마왕에 대한 걱정이 우선이었으나, 리틀 도미닉 경이 느끼기엔 너무 공격적이었던 모양이다.
"!"
"!"
도미닉 경이 혹시 모를 공격적인 상황에 대비해 방패를 꺼내는 동안 마왕의 병아리 가방에서 리틀 도미닉 경이 빠져나왔다.
가방의 끝에 걸려 땅을 데굴데굴 구르기는 했지만, 리틀 도미닉 경은 흙먼지가 묻은 몸 따위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듯 벌떡 일어나 참모장에게 말랑말랑 걸어갔다.
그리고 까실까실한 검과 푹신푹신한 방패를 꺼내 참모장의 발등을 내려쳤다.
물론, 봉제 인형의 특성상 데미지는 제로.
그러나 도미닉 경이 탱커 특성을 가지고 있듯, 리틀 도미닉 경도 도발에 일가견이 있었던 모양이다.
"이, 이익! 이 작은 것이!"
도미닉 경에 대한 분노로 이성을 잃기 직전이었던 참모장은, 자신을 때리는 도미닉 경을 닮은 인형을 보고 이 작은 인형도 자신을 무시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참모장의 분노는 고스란히 이성의 끈을 끊어 버리며 인형을 있는 힘껏 걷어차는 것으로 귀결되었다.
리틀 도미닉 경이, 하늘 높이 솟아올랐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