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7화 〉 [116화]사건의 전개
* * *
"...이게 뭐야."
성좌 아임 낫 리틀은 방금 전까지 리틀 도미닉 경이 있었던 손을 쥐었다 폈다.
의문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지만 지금 당장 아임 낫 리틀이 떠올린 것은 두 가지였다.
도대체 내 거처를 어떻게 특정하고 찾아왔는가?
그리고 왜 리틀 도미닉 경을 가져갔는가?
"아."
그리고 아임 낫 리틀은 깨달았다.
"여기 내 방이니까, 원한다면 막을 수 있었는데."
그렇다.
전혀 성좌답지 않아서 잊었을 수도 있겠지만 그녀는 성좌였고, 초월적인 존재.
무엇보다 여긴 그녀의 공간이었으니 제한 적이지만 전지전능한 힘을 쓸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녀가 그 힘을 쓰지 않았던 것은 아주 심플한 이유.
그녀가 너무 방에서만 생활하다 보니 까먹은 것이다.
"이제 어쩌지. 불법 굿즈라 신고도 못하겠고..."
아임 낫 리틀은 이제 현실적인 걱정을 하기 시작했다.
이미 지난 일은 잊는 편이 정신 건강에 도움이 되니까.
그녀의 걱정대로, 가차랜드는 정식으로 세 날개, 즉 행정부, 시스템 인더스트리, 그리고 블랙 그룹의 인가를 받은 상품에 대해서는 확실한 보상 서비스가 있었지만, 이렇게 인가되지 않은 상품은 그런 것이 전혀 없었다.
사는 것도 괜찮고, 그 물건으로 무언가를 해도 상관이 없지만, 모든 책임은 산 사람에게 있는 것이다.
"...마음에 들었는데."
성좌 아임 낫 리틀은 리틀 도미닉 경을 찾아 떠날까 생각도 했지만, 누가, 어디로 가져갔는지도 모르는 상황.
결국 아임 낫 리틀은 현실을 받아들이고 체념하고 말았다.
가차튜브에 올릴 썰이 하나 늘었다고 자신을 위로하면서.
...
가차랜드의 뒷골목.
암묵적으로 양산박의 영역으로 인정받는 지역에서 복면을 쓴 수상한 사람이 나타났다.
그는 옆구리에 도미닉 경을 닮은 인형을 끼우고 달려가고 있었는데, 인형은 자아가 있는지 팔다리를 버둥거리고 있었다.
"가만히 있어. 해치려는 건 아니니까."
인형이라 성대가 없다는 것을 다행으로 여겨야할까?
만일 소리라도 칠 줄 알았더라면 제법 귀찮았을 것이다.
이렇게나 반항적인데 귀가 아플 정도로 비명을 질렀을지도.
그렇게 실없는 생각한 도둑은 주변을 둘러보았다.
골목을 꼼꼼하게 바라본 도둑은 지금이 기회라고 여겼는지 복면을 벗었다.
답답하게 막혀 있던 숨이 한 번에 들이쉬어지면서 도둑의 폐에서 시원한 기운이 맴돌았다.
"이런 일은 나랑 맞지 않는단 말이지."
도둑... 아니, 대형이라고 불리는 사나이는 골목길에 기대어 담배를 입에 물었다.
여전히 버둥거리는 이 작은 봉제 인형을 옆구리와 팔로 꽉 잡은 채 라이터를 꺼낸 그가 담배에 불을 붙였다.
"후. 이제 이걸 그년에게 가져다주면 되는 건가."
대형이 중얼거렸다.
골목길에 서늘한 바람이 스쳐 지나간다.
피부에 닿은 차가운 공기에 대형이 몸을 부르르 떨었다.
"왜 이리 추운 거야? 겨울도 아닌데."
뒷골목에는 볕이 잘 들지 않아 언제나 무겁고 서늘한 공기가 감돌았지만, 오늘은 유독 심한 느낌이었다.
대형은 이 서늘한 바람이 어디서 오는지 알아보려고 고개를 돌렸다.
몇 갈래로 나눠진 골목길을 하나하나 살펴보던 대형.
"그거. 뭐야?"
대형의 뒤에서 매혹적인 목소리가 들렸다.
대형은 그 목소리에 놀라 담배를 툭 떨어뜨렸다.
몸을 돌리며 빠르게 그 자리를 빠져나온 대형이 자기 뒤에 섰던 이를 발견했다.
"그렇게 과민반응할 필요는 없잖아."
그녀는 보랏빛이 도는 검고 긴, 마치 고급스러운 흑단 같은 머리카락을 가지고 있었다.
투덜거리던 그녀가 주머니에서 멜론 맛 사탕을 꺼내 입에 쏙 집어넣었다.
누가 보더라도 뒷골목에 어울리지 않는 평범한 소녀.
그러나 그녀의 머리에 달린 거대한 검은 뿔과 망토, 몸매를 그대로 드러내는 착 달라붙은 재질의 옷은 그녀가 평범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려주고 있었다.
"당신은 누구지?"
대형이 경계하며 물었다.
여차하면 도망칠 수 있도록 퇴로를 파악하면서.
"내가 먼저 물었잖아."
검은 여자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했다.
"질문엔 질문으로 답하는 것이 아니랬어. 내가 그게 뭔지 먼저 물었잖아."
대형은 미쳐도 단단히 미친년에게 물렸다고 생각했다.
피부로 느껴지는 거대한 힘.
양산박에서도 손에 꼽힐 강자의 기운이었다.
'소과금으로 서버 1등'과 같은 엉터리 강화제를 쓴 것이 아니다.
인위적인 느낌이 아니라 자연스러운 강함.
그건 저 여자가 태생부터 강자라는 소리였다.
그 사실을 깨닫자마자 대형은 저 여자에게 이 인형의 정체를 말하기로 마음먹었다.
양산박은 기본적으로 범죄 조직.
범죄 조직의 기본은 어떻게든 나만 살아남으면 된다는 마인드였다.
나중에 어떻게 될지 알게 뭔가.
지금이 위험한데 말이다.
중앙 시스템은 양산박을 필요 악으로 인정하고 그저 관찰만 하고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범죄자가 죽었을 때 추방할 권한이 없는 것은 아니었으니까.
"이건 도미닉 경의 인형이오."
대형이 양손으로 인형을 들어 올리며 말했다.
리틀 도미닉 경이 말랑말랑한 검과 방패를 꺼내 대형을 향해 붕붕 휘둘렀으나 한없이 그 거리가 멀었다.
"그것도 움직이는 인형 말이오."
"아하."
검은 여성이 자기 머리카락을 검지 손가락으로 뱅뱅 꼬며 말했다.
그녀의 눈은 리틀 도미닉 경을 지그시 응시하고 있었는데, 아무래도 저 작은 인형에 흥미가 있는 모양이었다.
"두고 가."
마침내 여성의 입에서 오만한 한 문장이 튀어나왔다.
"범죄자 같은데, 목숨은 살려줄게. 그거, 두고 가."
그녀의 눈매가 휘며 입꼬리가 올라갔다.
그녀는 마치 포식자가 피식자를 위해 선심을 쓴다는 듯 말했다.
대형은 임무와 생존 사이에서 잠시 고민했다.
"...내가 주기 싫다면?"
"어쩔 수 없는 거야."
검은 여인은 사탕을 다 먹었는지 주머니를 뒤져 새로운 사탕을 꺼냈다.
그리고 입에 넣기 전에 멈칫하고는 다시 주머니에 넣었다.
하루에 하나. 그 이상은 안 된다는 자각.
벌써 당이 떨어지는 느낌이 들었다.
"죽어야지."
그리고 그 사람을 짜증 나게 하는 묘한 기분에 취한 검은 여인이 대형을 노려보았다.
마치 화풀이용 허수아비, 혹은 물어뜯을 사냥감을 바라보듯이.
"...넘기겠소. 목숨은 살려주시오."
그리고 대형은 목숨을 선택했다.
양산박에서 자기 위치는 꽤 높았으며, 대외적으로 불법을 저지를 수 없는 여섯 수장과 달리 자신은 아직 뒷세계와 연결되어 있었다.
그런 이를 단숨에 끊어내지는 못하리라. 그런 계산.
"좋아."
검은 여인은 다시 기분이 좋아졌다.
"놓고 가."
누가 악당인지 모르겠군. 대형이 속으로 투덜거리며 인형을 여인에게 넘겼다.
여인에게 가까이 다가갔음에도 경계는 하지 않는다.
본능적으로 자신이 강자라는 것을 잘 알고 있고, 어떤 상황에서도 제압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없다면 할 수 없는 태도.
"...가 보겠소."
"잘 가."
대형은 그렇게 인형을 넘기고 골목길의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검은 여인은 리틀 도미닉 경을 양손으로 잡고 유심히 바라보더니, 이내 마음에 들었는지 품에 꼭 안았다.
리틀 도미닉 경이 포식자의 기운을 느끼고 검과 방패를 휘둘렀지만, 이내 공격 의사가 없다는 사실을 알고 얌전해졌다.
...
대형이 도망친 방향의 반대쪽 큰길.
"그러니까, 마왕님...아니, 이렇게 생긴 아이 못 보셨습니까?"
참모장은 잠시 한눈을 판 사이 사라진 마왕 뚜 르 방을 찾기 위해 사람들을 붙잡고 물어보고 있었다.
"미아 보호소를 찾아가야 할지도 모르겠구만..."
참모장은 머리를 부여잡으며 자괴감에 빠졌다.
마왕이 졸라 어쩔 수 없이 나온 외출에 이런 일이 생기다니.
충신으로서 이런 불경을 저지른 자신을 용서할 수 없었다.
그러나 용서는 용서고 찾는 것은 찾는 것.
다음부터는 더 엄격하게 외출을 통제해야겠다고 다짐한 참모장이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혹시 이 근처에 계시는 것이 아닐까 작은 기대감을 품으며.
"!"
"마, 마왕님!"
하늘이 그의 기도를 들어 준 것인지 참모장은 마왕을 찾을 수 있었다.
바로 참모장의 아래에서.
마왕은 2등신의 작은 키를 가지고 있었기에 참모장이 미처 찾지 못한 것이었다.
어째서인지 마왕의 키만큼이나 큰 인형을 꼭 안은 채 참모장의 바지를 붙잡은 마왕은 맹한 눈으로 참모장을 바라보았다.
"?"
이거 가지면 안 돼? 라고 물어보는 마왕.
"이건... 어디서 가져오신 겁니까?"
저기. 골목에. 라는 제스쳐를 취한 마왕.
참모장은 마왕의 품에 안겨진 작은 인형을 유심히 살펴보았다.
말랑말랑한 재질의 봉제 인형.
제법 귀여운 인형이었으나 어째서인지 참모장은 이 인형을 보면서 기분이 나빠졌다.
어째서일까? 고민하던 참모장은 다시 바지에서 느껴지는 흔들림에 고개를 돌렸다.
"?"
정말 안 돼? 라고 물어보듯 촉촉하고 초롱초롱한 눈으로 참모장을 올려다보는 마왕.
윽. 하고 심장을 부여잡은 참모장은 차마 마왕을 슬프게 할 수 없다고 생각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만입니다, 마왕님. 다음엔 이렇게 뭘 주우시고 그러시면 안 됩니다?"
"!"
마왕 뚜 르 방이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커다란 뿔이 참모장의 다리를 때렸으나 다행스럽게도 마왕은 뿔에 안전장치를 달아 뒀기에 다친 사람은 없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