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철의 용병라이더-402화 (402/404)

외전 - 136. 페네셀 공국

두두두-

어스룩한 저녁 하늘 위로 검은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이글스! 준비됐나?”

“악!”

“소리가 작다. 이글스 1소대 1분대 준비되었나!”

“아악!”

비명인지 고함인지 모를 소리를 지른 이글스 부대원들이 눈을 빛내며 헬켄을 돌아봤다.

“우리가 바로 선봉 이글스다. 후속부대의 안전은 우리 손에 달렸다. 알겠나!”

“아악!”

“좋다.”

헬켄이 만족스럽게 미소를 지었다.

“강하 1분 전!”

“강하 1분 전!”

조종사가 소리치자 이글스가 큰 소리로 복명복창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덜컹-

AP-1의 측면 문이 열렸다.

“십 초 전!”

“십 초 전!”

낙하산을 등에 멘 이글스가 입구로 모여들었다.

“낙하!”

“낙하! 뛰어!”

헬켄의 외침과 함께 이글스가 허공으로 뛰어내렸다.

“핼켄 분대장님! 행운을 빕니다.”

“하하! 나중에 또 보자고!”

헬켄이 붉은 수염을 날리며 공중으로 몸을 날렸다. 핼켄을 마지막으로 기수를 돌린 AP-1기의 뒤로 또 다른 비행기가 연이어 다가서며 하늘 위로 이글스 부대를 떨어트렸다. 무려 백여 명의 공중특수부 이글스가 추수가 끝난 평원 위로 내려앉았다.

“부대원 정렬! 이상 있나?”

“없습니다.”

“우린 곧장 베카 계곡을 점령한다. 서둘러!”

델프의 명에 각 조장들이 빠르게 베카 계곡을 점령하기 시작했다. 베카 계곡은 이미 오래전 비워진 곳이라 특수부대원들이 점령하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대대장님! 저기 적 전령입니다.”

참호를 파던 병사의 외침에 급히 스코프를 확인한 델프가 소리쳤다.

“남부 반란이 바런트 왕국에 알려져서는 안 된다. 저격병!”

“말아주십시오.”

말을 타고 달려가는 기사를 조준한 병사의 라이플이 불을 뿜었다.

타앙-

“컥-”

목을 정확히 관통당한 기사가 바닥에 처박혔다.

“흔적을 지워!”

산을 빠르게 내려간 병사들이 쓰러진 기사를 재빨리 숲으로 끌어당겼다.

그렇게 날이 밝을 무렵까지 세 번을 왕복한 수송기 덕분에 베카 계곡엔 라이플로 무장한 3백의 병사들이 자리를 잡아 철통같이 계곡을 사수했다. 물론 삼백의 병사들이 끝은 아니었다. 아군이 베카 계곡을 확실히 점령하자 다음 날부터 필 테일 영지에서 훈련 중이던 서북부 예비군들이 10대의 AP-1 수송기에 실려 라멜라 강으로 쏟아지기 시작했다. 그 사이 카일은 남부 기사단을 이끌고 왕실 직영지의 핵심 거점 갈라코 성을 급습하고 있었다.

꽈앙-

청백색의 오러 블레이드에 거대한 성문이 반으로 쪼개지며 쿵 소리와 함께 성문이 열리자 남부 기사들과 병사들이 거침없이 성문을 뚫고 성안으로 진입했다.

“죽여라!”

“막아! 막으란 말이다.”

성벽 위에 올라 고래고래 고함을 치고는 있지만, 그도 이번 전투가 가망이 없음을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비, 빌어먹을 소드 마스터! 남부에 소드 마스터가 있었어!”

소드 마스터를 앞세운 남부 반란군은 사실상 왕도로 끌려가는 남부 영주과 후계자들을 은밀히 구출하더니 여세를 몰아 왕실 직영지를 습격했고 단 하루 만에 대평원 절반을 점령해 버렸다.

“이 사실을 어떻게 해서든 왕실에 알려야 하는데…!”

문제는 하늘 위를 선회하는 와이번 무리다. 무려 20마리의 와이번이 보란 듯이 제공권을 장악하며 대평원을 점거하고 있었다. 더 큰 문제는 왕실은 이런 사실도 모른 채 서북와 서남쪽에서 밀려오는 크로노스 왕국군을 상대하기 위해 전력을 집중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만 항복하는 것이 어떤가?”

갑자기 들려온 목소리에 생각을 끊어낸 사내가 고개를 들었다. 소드 마스터! 장대한 체구에 앳된 얼굴. 소드 마스터가 되면 바디체인지가 일어난다던데, 정말 어려지는 걸까? 쓸데없는 생각에 잠시 고개를 내저은 사내가 뒤를 슬쩍 돌아봤다. 이제 밀리고 밀려 성벽 끝이다. 더는 그도 갈 데가 없었다. 살고 싶다면 그에게 남은 건 항복뿐이다.

“흥! 난 대 바런트 왕실, 국왕 전하의 영지대리인이다. 국왕의 영지를 책임진 사람이 항복이라니, 이는 곳 불충이다. 말도 안 되는 소리!”

버럭 고함을 친 이름 모를 귀족이 성벽 아래로 스스로 뛰어내리고 그 모습을 바라보던 기사들 역시 검을 거꾸로 잡고 스스로 목숨을 끊어 버렸다.

“지독하군!”

죽은 귀족과 기사들을 돌아본 남부 귀족의 목소리에 한숨을 쉰 카일이 돌아섰다.

“저런 충성심이 지금의 바런트 왕국을 만든 거겠죠.

카일이 씁쓸하게 돌아서자 건장한 사내가 카일의 뒤를 빠르게 따라붙었다.

“매제!”

“소영주님!”

“소영주라니! 편하게 처남이라 부르게! 이미 우린 한 가족이 아닌가! 하하하”

소영주 첸들러가 카일의 옆으로 바짝 다가와 큰 소리로 말하며 보란 듯이 카일의 어깨를 팡팡 두드렸다. 천성이 내세우기 좋아하지만 그렇다고 나쁜 사람은 아닌듯했다. 왕도로 끌려가면서도 영지민이나 어린 귀족 자제를 보호하려 나섰다가 왕실 기사들에게 많이 얻어맞아 처음 봤을 땐 제법 큰 상처를 입고 있었다.

“이제 어디로 가는 건가? 남은 것은 작은 장원 수준이고 대부분 전쟁이 참전하느라 점령하기가 수월할 것 같은데? 남은 곳은 남부 귀족들에게 맡겨도 좋을 거야!”

“아닙니다. 이미 베카 계곡을 일대로 지시한 병력들이 집결하고 있을 겁니다. 남은 장원이나 작은 요새들은 병사들에게 맡겨도 됩니다. 지금은 그보다 더 급한 일이 있지 않습니까! 소영주님과 귀족들은 서둘러 남부로 돌아가셔야 합니다.”

이미 반란을 준비했다면 서둘러 공국으로서의 체계를 잡아야 했고 소영주인 첸들러는 공국의 후계자로 더더욱 이곳이 아니라 네드 자작, 아니 페네셀 공왕의 옆에 있어야 했다.

‘욕심도 많지!’

카일이 내심 혀를 찼다. 첸들러가 이렇게 대평원 점령에 열을 올리는 건 바로 전리품 때문이다. 주요 영지와 성들을 점령할 때마다 그동안 남부 귀족들을 착취했던 얻었던 엄청난 전리품들이 산처럼 쌓이고 있으니 귀족에서부터 병사까지 돌아가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이젠 첸들러도 알고 있었다. 벌써 여러 번 복귀를 요구하는 공왕과 남부 귀족 가문의 전언이 쇄도하고 있으니 이젠 정말 돌아가야 했다. 그리고 카일도 더는 양보만 할 수는 없었다. 1만에 달하는 대군을 이끌고 와서 그냥 갈 수는 없었다. 주요 영지와 성에서 얻은 전리품은 포기하더라도 대평원에 자리 잡은 수백 수천의 귀족 장원은 포기해선 안 됐다.

“장원 점령은 됐고… 나도 매제를 따라가면 안 되나? 그 비행기란 물건 나도 꼭 한번 보고 싶은데….”

“휴… 이젠 정말 돌아가셔야 합니다. 장차 공국의 후계자가 되실 분이 위험한 전장에 계시다니요. 비행기는 나중에 충분히 보실 수도, 직접 타실수도 있으니 이젠 돌아가십시오.”

“정말인가?”

첸들러가 환한 얼굴로 소리치자 카일의 얼굴이 찌푸려졌다. 그 모습에 깜짝 놀란 첸들러가 급히 입을 막았다.

“왜? 비밀인가?”

주변을 돌아본 첸들러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뭐… 비밀이라 할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널리 알려져서도 좋을 게 없죠”

“하하… 맞아! 알려져서 좋을 건 없겠지”

첸들러가 아쉬운 듯 고개를 끄덕였지만, 썩 믿음이 가는 모습은 아니었다. 아마도 조만간 남부 귀족 전부가 비행기에 대해 알게 될 것 같은 불안한 기분까지 들었다.

“휴… 그만! 가시죠.”

카일이 말에 오르자 기사들도 카일의 뒤를 쫓아 베카 계곡으로 향했다. 이렇게 남부가 조용히 독립을 준비하고 있을 때 각기 북쪽과 남쪽을 향한 1,2왕자는 연이은 패전을 넘어 연신 후퇴를 거듭하고 있었다. 네드 자작의 생각대로 크로노스 왕국의 몇 배에 달하는 엄청난 와이번의 등장으로 제공권에서 완전히 말려버린 두 왕자는 결국 자국 영토에서까지 후퇴를 거듭하고 있었다.

“호오! 또 패했단 말이군요.”

공주가 연이어 날아든 패전 소식에 미소를 지었다.

“이젠 본국 영토도 위험할 정도입니다.”

테링 자작의 걱정스런 말에 공주가 고개를 저었다.

“그건 걱정할 필요 없어요. 곧 그들은 물러갈 거예요.”

공주가 양피지 한 장을 테링 자작에게 내밀었다.

“지금… 페네셀 공국…!”

“네! 어제저녁 받은 서신이죠. 남부 대평원에서 군량 공급이 막혔으니 절대 본국 영토로 들어오지 못할 거예요.”

“대단… 하군요. 어떻게 이런 생각을!”

“저도 어떤 방법을 썼는지, 어떻게 네드 자작을 설득했는지는 모르지만 네드 자작이 본국의 속국임을 스스로 천명하고 공국으로 남기로 한 이상 이 전쟁의 최고의 전공자는 필 테일 남작과 그를 통해 자작을 설득한 저 에이린 공주가 되는 거죠.”

공주가 환하게 미소를 지었다.

“이 사실을 언제 전하께 알리실 생각입니까?”

“지금은 안 돼요. 이 사실이 알려지면서 두 왕자가 어떻게 나올지 몰라요. 어쩌면 당장 군사를 돌려 왕국으로 돌아올 수 있으니 조금 더 시간을 두고 푹 익을 때까지 기다리는 게 좋겠죠.”

공주의 말에 테링 자작도 동의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

“좋아요. 그럼 이 기쁜 소식 타바트 백작께도 알려야겠죠.”

공주가 싱긋 웃으며 펜을 들었다. 이때쯤 바런트 왕국도 남부에 어떤 문제가 발생했음을 인지했지만 무시했다. 큰 문제가 발생했다면 당연히 전령이 당도했을 거라생각했다. 더구나 승기를 잡고 크로노스 왕국을 밀어붙이고 있는 상황이니, 문제가 발생했다고 해도 당장 다수의 병력을 남부로 되돌릴 수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남부와 연락이 한 달 이상 끊어지고, 병영 안 식량이 바닥을 보이고서야 바런트 왕국은 남부의 상황이 심상치 않음을 인지했다. 숨 가쁘게 연이어 전해진 승전에 남부 사정을 등 한시하면서 뼈아픈 실책을 범한 것이다.

와장창-

한창 승전 파티로 즐거운 한때를 보내던 중 전해진 비보에 분노한 바런트 국왕이 눈앞에 식탁을 뒤집었다.

“뭐! 남부가 독립했다? 이게 말이 되느냐 말이야! 왕실 직영지를 지키던 병력은 바보 멍청이들만 모인 것이냐!”

“송… 구합니다. 영주와 가문의 후계자들을 잡아들이다 반발이 일어난 것 같습니다. 여기에 네드 자작이 살아서 돌아온 영향도 못 할 일이었습니다.”

“아무리 그렇다고 독립을 천명해! 그것도 적국인 크로노스의 속국이 되겠다! 이 멍청한 자들이! 당장 서남부로 진격 중인 병력 회군시켜!”

“전하! 서남부 방면군을 회군시키면 적군이 다시 아국 영토로 밀고 들어온 것입니다.”

“서남 부군은 아서 가문에게 맡긴다. 최대한 시간을 끌라고 해! 지금은 남부 대평원을 찾는게 먼저다.”

꽝-

바런트 국왕이 주먹을 말아쥐며 탁자를 내려쳤다.

국왕의 명은 곧장 전령을 통해 바런트 왕국 서남부 방면군 총사령관인 할레트 후작에게 전해졌다.

“실로 멍청한 명이다.”

국왕의 명령서를 구겨 바닥으로 날려버린 할레트 후작 멀지 않은 곳에 진을 치고 있는 크로노스 왕국 1왕자의 진형을 바라보았다.

“후작님.”

“명이 이미 떨어졌으니 따라야겠지! 회군해 남부로 간다.”

“명 받듭니다.”

고개를 숙인 기사가 밖으로 급히 달려 나갔다.

* * *

“왕자님!”

“무슨 일인가?”

“적군이 회군을 준비 중입니다.”

“회군? 무슨 말도 안 되는….”

연전 연승을 하던 적군이 갑자기 회군을 준비한다. 1왕자로선 지금 상황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함정인가?”

“알 수 없습니다.”

“휴… 일단 기병을 통해 신중하게 추적한다.”

“알겠습니다.”

연전연패만 아니었다면 후퇴하는 적병을 추격하며 전공을 올리겠지만 이미 상당한 병력을 잃은 1왕자로서는 후퇴하는 적병을 지켜보면서도 쉽사리 공격할 수 없었다.

이런 왕자의 심리를 이미 파악한 할레트 후작은 적 기병대가 훤히 지켜보는 상황에서도 더 과감하게 병력을 정렬시킨 후 여유롭게 병력을 뒤로 물렸다.

“짜증 나는 상황이군! 눈앞에서 뻔히 후퇴하는 병력을 보고도 공격할 수 없는 상황이라니!”

마음 같아선 당장이라도 전 병력을 몰아 적병을 도륙하고 싶지만, 이것이 정말 함정이라면, 그나마 남은 병력까지 모두 잃고 왕위를 동생에게 내어줘야 할 비참한 상황에 처하고 말 것이다.

“절대 그렇게는 안 되지!”

입술을 질끈 깨문 왕자가 후퇴하는 적병의 뒤를 쫓았다. 그리고 그들이 질서정연하게 아서 성으로 퇴각한 후에야 바런트 왕국의 서남부 방면군의 퇴각이 함정이 아님을 알았다.

“빌어먹을, 진짜란 말인가!”

1왕자가 땅을 치며 후회하고 있을 때 2왕자의 사정은 정반대였다. 1왕자가 너무 신중을 기하다 절호의 기회마저 놓쳤다면 2왕자는 반대로 취약한 제공권에도 불구하고 성급하게 대규모 회전을 치르다 번번이 패를 거듭하고 있었다. 그나마 2왕자가 지금까지 버틸 수 있었던 것도 막대한 재정을 바탕으로 소모된 병력을 재빠르게 보충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엄청난 재력을 보유한 2왕자라도 결국 한계가 있기 마련이다.

“왕자님! 이런 식으로 전쟁을 지속할 수는 없습니다.”

새롭게 포슈 상단 주로 임명된 슈미츠 남작이 바닥에 엎드려 하소연했다.

“나도 알아! 재정이 얼마나 소모되고 있는지. 하지만 여기서 전공을 세우지 못하면 왕위는 끝이다! 알겠어? 어떻게 해서든… 골드가 얼마가 들든 상관 없으니 병력을 뽑아와!”

2왕자의 외침에 슈미츠 남작도 더는 하소연하지 못하고 고개를 숙인 채 물러날 수밖에는 없었다.

“젠장! 골드, 전쟁은 골드로 하는 거란 말이야! 전쟁을 알지도 못하는 멍청한 놈 같으니라고!”

2왕자가 버럭 소리를 지르며 탁자를 뒤집었다.

와장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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