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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철의 용병라이더-168화 (168/404)

168.운수 좋은 날8

곰팡이가 썩어가는 퀘퀘한 냄새가 풍기는, 빛 한점 들지 않는 어둡고 좁은 방안.

벽에 기대앉은 사내가 독한 싸구려 귀리 술을 입안으로 털어 넣었다.

“크으-”

독한 귀리 술의 텁텁하고 불쾌한 맛과 목구멍을 불로 지진 듯 뜨거운 기운이 위장으로 흘러들며 쓰라린 통증을 만들어 냈다.

“크크크!”

사내가 손에 들린 싸구려 귀리 술을 보더니 미친 듯이 웃음을 흘리다, 갑자기 손에 들린 술통을 던져 버렸다.

퍼석-

“젠장! 나 밀런이 고작 하루 만에 이 모양 이 꼴이 되다니….”

밀런이 허탈한 표정으로 고개를 숙였다.

* * *

핀코 단장이 쓰러졌을 때만 해도 밀런은 큰 걱정을 하지 않았다.

아니, 솔직히 기뻤다.

핀크 단장이 부상을 당하긴 했지만, 로하스 단장이 죽은 이상 이제 아킨스 자작령의 기사단은 사실상 핀크의 손에 들어온 것이나 마찬가지였기 때문이었다.

“하하하! 이제 우리 세상이다. 더 이상 누구의 눈치도 볼 필요가 없다.”

로하스 단장의 죽음에 영지의 모든 사람들이 슬퍼할 때, 밀런은 마크와 비터로부터 살아남은 몇 안 되는 부하들을 불러 축배를 들었다.

하지만 그런 기쁨도 반나절을 넘지 못했다.

쾅-

단단히 잠긴 문이 박살이 나며 십여 명의 건장한 용병들이 난입해 들어왔다.

“밀런이 저기 있다. 죽여라!”

다짜고짜 문을 박살 내며 들어온 용병 중 하나가 밀런을 가리키며 소리쳤다.

“뭐야!”

밀런이 검을들고 다가오는 용병의 얼굴을 향해 들고 있던 술잔을 던졌다.

퍼석-

날아가던 술잔이 검에 막혀 산산이 부서지며 용병의 시야를 가리는 순간, 밀런이 급히 뒤로 물러나며 검을 뽑아 들었다.

“이놈들!”

밀런이 사방에서 다가오는 용병들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밀런! 오랜만이다.”

“누구냐!”

“기억을 못하는군!”

용병들 사이를 빠져나온 사내가 밀런을 사납게 노려보았다.

“누구냐고 물었다.”

“크크! 하긴 누구에게 죽었는지는 알아야겠지! 내 이름은 우트다.”

“우트…?”

“보름 전 네놈들에게 골드를 빼앗겼다. 기억하나?”

“고작 골드 몇 개에 용병들을 끌고 복수를 하러 온 건가? …죽고 싶어 환장했군!”

“하하! 오늘 이 자리에서 죽는 건 너희들이다.”

검을 뽑아 든 우트와 용병들이 사납게 밀런과 부하들을 노려보았다.

“이놈들! 이러고도 무사할 것 같으냐! 우릴 죽이면 핀크 단장이 절대 가만있지 않을 거다.”

밀런이 용병들을 노려보며 소리쳤다.

“핀크… 기사단장?”

“흥! 이제 겁이 난 건가?”

우트를 돌아보던 밀런이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오늘 로하스 단장이 죽은 이상 이제 기사단의 단장은 오직 핀크 단장님뿐이다. 이게 무슨 의미인지 모르진 않겠지!”

밀런의 말에 우트와 용병들이 잠시 서로를 돌아보았다.

“하하, 하하하!”

갑자기 용병들이 서로를 쳐다보며 한참 동안 커다란 웃음을 토해내기 시작했다.

“크크크! 이런 멍청한 놈에게 피 같은 골드를 빼앗겼다니… 이봐! 우리가 왜 네놈을 죽이러 온 것 같으냐!”

“무슨 소리냐?”

밀런이 당황한 표정을 숨기지 못하고 되물었다.

“크크. 핀크라는 놈이 더 이상 너희를 지켜주지 못한다는 소리다.”

“뭐?”

“그놈은 더 이상 엑스퍼트가 아니다. 아니, 이제 더 이상 오러를 사용할 수 없는 몸이라더군.”

“무슨… 거짓말! 내가 그 말을 믿을 것 같으냐?”

밀런이 고개를 세차게 흔들며 우트를 향해 소리쳤다.

“믿고 싶지 않은 모양이군! 하지만 포라스 님과 신관들이 나누던 대화를 내가 직접 들었다. 한마디로 이제 핀크는 끝이란 말이지. 하하하.”

“그… 럴리가! 믿을 수 없다. 절대 아니야!”

밀런은 얼굴이 창백하게 굳어지며 절규하듯 소리쳤다.

“믿든 안 믿든 상관없다. 어차피 넌 여기서 죽어…. 아! 그렇다고 너무 아쉬워할 필요는 없다. 곧 핀크란 놈도 네놈에게 보내줄 테니 말이야!”

“이, 이놈들….”

“죽여라!”

용병들이 일제히 밀런과 부하들을 향해 달려들었다.

꽝-

밀런이 앞에 있던 식탁을 발로 차 날려 보내자 용병들이 주춤 뒤로 물러났다. 그사이 밀런이 창문을 부수고 밖으로 뛰어내렸다.

“이런! 잡아!”

설마 부하들을 버리고 창으로 달아날 줄 생각도 못 했던 우트가 급히 소리쳤다. 용병들이 서둘러 밖으로 달려 나갔지만 이미 밀런은 어두운 골목 사이로 사라진 뒤였다.

“젠장! 놈을 놓치다니….”

우트가 분노한 얼굴로 밀런이 사라진 어두운 골목길을 바라보았다.

그때 밖으로 달려 나온 용병 하나가 우트를 보며 소리쳤다.

“우트! 찾았다.”

“어디야!”

“침상 밑에 비밀공간이 있다.”

우트가 건물 안으로 들어섰을 때는 이미 내부는 난장판으로 변해 있었다.

“생각보다 금방 찾았군!”

“남은 녀석들 족쳤더니 금방 불었다.”

“잘됐군! 얼마나 될 것 같아?”

“생각보다 많다. 이틀 뒤가 핀크에게 상납하는 날이더군.”

“잘됐군!”

우트가 고개를 끄덕이며 반쯤 뜯겨나간 침상 안을 살폈다. 안쪽에는 금화가 가득 들어 있는 작은 상자와 가죽 주머니가 놓여 있었다.

“좋아! 금화는 공평하게 나눈다.”

“그럼 밀런은 어쩌지? 추격해야 하는 거 아니야.”

“아니! 우린 계획대로 내일 새벽 여길 뜬다. 여기가 털렸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자칫 골드를 빼앗긴 용병들이 몰려들 수 있어!”

“그럴 수도…. 그럼 붙잡은 녀석들은 어쩌지?”

“살려둬서 좋을 게 없어! 모두 죽여!”

“흠… 알겠다.”

우트와 용병들의 목적은 밀런과 그 부하들을 죽이는 것이 아니었다. 이들은 그저 부수적인 복수의 대상일 뿐 그들의 목적은 처음부터 용병들을 갈취해 모아놓은 골드였다.

이미 목적을 달성한 이상 아킨스 영지에 남을 필요도 없었다.

“아쉽군! 핀크와 밀런은 꼭 내 손으로 죽이고 싶었는데….”

“밀런은 몰라도 핀크는 어려워! 아무리 오러를 잃었어도 놈은 서임을 받은 기사야. 괜히 건드려 좋을 게 없다.”

“하긴…. 오러를 모두 잃었으니 사는 게 고통일 수 있겠군.”

우트가 불길에 휩싸인 건물을 보며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건물이 불타고, 부하는 물론 골드까지 가진 것을 모두 잃은 밀런도 핀크와 그다지 다를 것 없다는 생각이 들자 저절로 기분이 좋아져 웃음이 터져 나왔다.

“하하하!”

* * *

“…안돼!”

밀런이 비명 같은 고함을 지르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온몸을 흠뻑 적신 땀을 닦았다.

우트의 예상대로 밀런은 모든 것을 잃었다. 건물은 물론 부하들과 숨겨놓은 금화까지. 그에게 남은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하지만 이 모든 사실보다 그를 더 절망에 빠트린 것은, 바로 핀크 단장이 우트의 말대로 오러를 쓸 수 없는 폐인이 되었다는 말이었다.

이제 밀런을 지켜줄 수 있는 사람은 어디에도 없었다.

밀런에게 당했던 수많은 용병들이 밀런의 숨통을 끊어 놓기 위해 사방으로 퍼져 그를 찾고 있었다.

“이제… 정말 끝인가?”

밀런이 고개를 숙여 바닥에 뒹굴고 있는 술통을 집어 들었다.

어서 빨리 술에 취해 이 상황을 벗어나고 싶었다.

하지만 바닥에 널려 있는 술통은 이미 모두 비어 있었다.

‘이젠 정말 마지막인가?’

밀런이 허탈한 표정으로 바닥을 뒹굴고 있는 검을 집어 들었다.

꽝-

그때였다. 겨우 입구를 막아주던 낡은문짝이 떨어져 나가며 밝은 빛이 내부로 쏟아져 들어왔다.

“누구….”

밀런이 쏟아져 내리는 빛줄기에 급히 얼굴을 가리며 본능적으로 손에 들린 검을 뽑으려 했다.

퍼억-

하지만 갑자기 날아든 충격에 밀런은 그대로 바닥에 널브러져 버렸다.

“이놈… 이냐?”

방안으로 들어선 랄프가 지독한 악취와 술 냄새에 얼굴을 찌푸렸다.

“그렇습니다.”

“이놈! 소드 유저라 들었는데… 하루 만에 완전 폐인이 다 됐군.”

“어떻게 할까요?”

“일단 데려가! 영주님께서 찾으시니 어쩔 수 없다.”

랄프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알겠습니다.”

영지병들이 코를 틀어막으며 랄프를 일으켜 데리고 나갔다.

“수고했다.”

랄프가 품 안에서 주머니 하나를 꺼내 던졌다.

“감사합니다. 랄프 님!”

문 앞을 지키던 작은 소년이 주머니를 재빨리 낚아채며 고개를 숙였다.

“그런데… 밀런이 여기 있는 걸 어찌 안 것이냐? 영지병은 물론 용병들도 밀런을 찾으려 사방을 뒤지고 다녔지만 찾지 못했는데 말이다.”

랄프가 주변을 돌아보며 물었다.

“…그냥 우연히 찾아낸 것뿐입니다.”

“우연?”

랄프가 고개를 숙인 소년을 바라보며 피식 웃음을 짓더니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밀런의 은신처는 빈민가 깊숙한 곳에 자리를 잡고 있어 쉽게 찾을 수 없는 곳이었다. 그런데도 소년이 밀런의 위치를 정확히 알고 있었던 건, 바로 소년이 직접 이곳에 밀런을 숨겨 주고 술과 음식을 날라다 주었기 때문이었다.

“이크! 이러다 누나에게 또 혼나겠다. 빨리 가야지!

소년이 손에 들린 주머니 묵직한 무게감을 느끼며 급히 품 안에 밀어 넣었다. 그리고는 달려 나갔다.

* * *

“여기서 빠져나갈 수 있다고 생각하시는 겁니까?”

카일이 눈을 가늘게 뜨고 조세츠 자작을 노려보았다.

“그럴 이유도 생각도 없다네! 어차피 자넨 날 죽이지도 구속하지도 않을 테니 말이야.”

“절 너무 믿으시는 것 아닙니까? 전 그렇게 좋은 사람이 아닙니다만?”

“나와 잠시만 대화를 나눠 보면 그 이유를 쉽게 알 수 있을 거야! 어떤가? 나와 대화를 나눠 보겠나?”

조세츠 자작이 얼굴을 잔뜩 찌푸린 카일을 보면서도 여유 있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좋습니다. 이야기를 들어 보도록 하겠습니다. 단 그전에… 제가 와이번 오너란 사실은 어떻게 아신 겁니까?”

“정확히는 블랙와이번이겠지?”

조세츠 자작이 말을 정정해 주었다.

“…어떻게 아신 겁니까?”

카일이 눈썹을 찡그리며 되물었다. 사실상 블랙와이번과 맹약을 맺었단 사실을 인정한 것이다.

“하하! 역시 짐작대로였군!”

“…정확한 사실은 알지 못했다는 말이군요.”

“그저 예상일 뿐이었지.”

“이유를 들어 볼까요?”

카일이 굳은 얼굴로 자작을 바라보며 재촉했다.

“기사단장이 죽었다는 소릴 듣는 순간 자넬 의심했지. 하지만 자작령은 굉장히 멀었고, 자네의 승마 실력도 서툴더군.”

“그래서 제가 와이번과 맹약을 맺었다 생각한 겁니까?”

“자네가 범인이라 가정하면, 와이번만이 이런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니까!”

조세츠 자작의 말에 카일이 고개를 끄덕였지만, 사실 자작의 생각은 그저 카일을 범인으로 지목해 놓고 모든 것을 끼워 맞춘 것에 불과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완전히 의문을 해결한 것은 아니었다.

“제가 와이번과 맹약을 맺었다 유추할 수 있다고 해도, 더하여 블랙 와이번이라 생각한 이유가 있습니까? 이건 눈으로 확인하지 않는 이상 알 수가 없는 일입니다만?”

“그건 내가 말해 주었네.”

“네…?”

카일이 찻잔을 들어 올리며 뜨거운 김을 불어내고 있는 노인을 의아하게 바라보았다.

“얼마 전 영주성에서 놀라운 소식이 들려왔지! 아킨스 자작에게 와이번 나이트가 생겼다고 말이야.”

“와이번 나이트….”

노인이 들고 있던 찻잔을 내려놓으며 카일을 바라보았다.

“제1 기사단을 복귀시키기 위해 랜트라는 기사가 뒤를 추적했다더군. 그러다 레드스톤 일대에서 부상을 당한 골드 와이번과 맹약을 맺었지.”

“…와이번이 죽지 않았군요.”

카일의 옆으로 다가온 이엘이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하지만 그보다 더 놀라운 사실이 뭔지 아는가? 바로 블랙 와이번이 나타났다는 것이지! 랜트라는 기사는 당시 숲에 숨어 공중에서 벌어지는 전투를 모두 보았다고 하더군.”

“그래서… 제가 블랙와이번과 맹약을 맺었다고 생각하신 겁니까?”

카일의 물음에 조세츠 자작이 고개를 저었다.

“아니! 난 어제의 대련으로 자네에 대한 의심은 모두 지웠네! 내가 잘못 판단했다고 생각했지.”

아킨스 자작이 가볍게 수염을 쓸어넘기며 말을 이었다.

“아킨스 자작은 쉬운 상대가 아니야. 어제 자네에게서 조금이라도 의심스러운 정황을 발견했다면 그냥 돌아가진 않았을 거야.”

“아킨스 자작 때문에 의심이 풀렸단 말이군요.”

“그렇다고 볼 수 있지…. 그래서 조금 더 정확한 당시의 상황을 묻기 위해 어르신을 찾아왔지! 그리고 당시의 상황과 자네가 여길 찾았다는 사실도 알게 된 거네.”

조세츠 자작의 말에 노인이 얼굴을 찌푸리며 카일을 바라보았다.

“난 말이야. 조금 전 자네가 저 문을 열고 들어오기 전까지 며칠 전 찾아온 자네와 자작이 말하던 카일이란 사람이 동일인 일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다. 왜인지 아나?”

노인이 지팡이를 허공으로 들어 올려 빙글빙글 원을 그리기 시작하자, 노인의 지팡이를 따라 서로 다른 색깔의 원이 수없이 만들어지다가 사라지길 반복했다.

“…마법사.”

카일이 심각하게 굳은 얼굴로 검을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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