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0.레드스톤 전투6
“타스!”
앤더슨의 와이번이 날개를 접어 급강하하기 시작했다.
시야를 가르는 구름층을 뚫고 나오는 순간, 거대한 블랙 와이번에 붙잡힌 골드 와이번이 곧장 붉은 대지로 추락하는 모습이 생생하게 눈에 들어왔다.
“이런 미친!”
앤더슨의 낮은 욕설을 내뱉었다.
지금 놈은 와이번 오너가 아닌 골드 와이번 자체를 대지에 처박아 죽이려는 듯 빠른 속도로 떨어져 내리고 있었다.
앤더슨과는 이미 거리가 상당히 벌어져 있었다. 이대로 뒤를 쫓는다고 해도 타스와 와이번을 모두 구하기에는 너무 늦은 상황이었다.
앤더슨은 급히 안장에서 마지막 남은 붉은 스피어를 뽑아 오러를 밀어 넣었다. 오러를 집어삼킨 창이 붉은 빛을 뿜어내며 타오르자, 앤더슨이 곧장 블랙 와이번을 향해 던졌다.
쉬익-
붉은 화염으로 휩싸인 창이 곧장 블랙 와이번, 정확히는 카일을 향해 떨어져 내렸다.
‘제발… 피해라!’
앤더슨이 마음속으로 간절하게 외치는 순간, 블랙 와이번이 움켜쥔 골드 와이번을 내팽개치고는 급상승하며 화염의 스피어에서 멀어졌다.
꽝-
막 블랙 와이번이 화염의 스피어를 피해 멀어지는 순간, 엄청난 폭음과 함께 하늘이 붉은빛으로 물들었다가 순식간에 사라져 버리며 지상의 모습이 확연하게 드러났다.
블랙 와이번에서 떨어져 나간 골드 와이번이 힘겨운 날갯짓으로 추락하듯 바닥에 착지했다.
“타스, 괜찮아? 타스!”
“…전 괜찮습니다.”
타스의 안정된 목소리가 통신구에서 들려오자 앤더슨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조금 전 던진 붉은 화염의 창은 골드 와이번에서 블랙 와이번을 떨어트리기 위한 목적으로 던진 위협용에 지나지 않았다. 비록 값비싼 화염의 스피어를 소모해야 했지만, 타스와 와이번을 구한 것만으로 전혀 아깝지 않았다.
“휴…. 다행이구나! 일단 넌 지금 당장 베링 산맥으로 가 이 사실을 단장님께 알려라!”
“제가 말입니까? 그럼 조장은….”
“난 여기서 놈을 최대한 막고 있겠다.”
“안… 됩니다. 혼자서는 위험합니다.”
“잠시 시간만 끌다가 몸을 피할 거다. 안심하고 먼저 움직여.”
“하지만….”
“놈이 쫓아오면 어차피 이대로 도망가기도 힘들다. 너까지 보호하며 싸우란 거냐!”
앤더슨이 화난 목소리로 소리쳤다. 와이번이 부상 당한 이상 타스가 앤더슨을 도울 방법은 없었다. 오히려 앤더슨이 타스가 블랙 와이번으로부터 공격을 받지 않게 보호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알… 겠습니다.”
타스가 힘없이 고개를 끄덕이더니 와이번을 아공간석으로 소환했다.
“최대한 멀리 도망쳐라! 그래야 나도 안심하고 빠져나갈 수 있다.”
“알겠습니다. 쉬지 않고 달리겠습니다.”
“좋다! 타스, 살아서 다시 만나자!”
“꼭 돌아와야 합니다. 조장!”
“걱정 말고, 빨리 가기나 해!”
앤더슨의 짜증 섞인 말투에 타스가 곧장 몸을 돌려 베링 산맥으로 달려 나갔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앤더슨이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블랙 와이번이 마치 먹잇감을 찾듯 날개를 활짝 펼쳐 원을 그리며 구름 사이를 선회하고 있었다.
“좋아! 얼마나 대단한 놈인지, 어디 한번 해보자!”
앤더슨이 입술을 깨물며 안장 고리에 감긴 사슬을 풀어 벨트에 달린 고리에 연결했다.
철컥-
“그러고 보니 이것도 오랜만에 사용해 보는군.”
앤더슨이 사슬을 매만지며 씁쓸하게 미소를 지었다.
‘녀석은 블랙 와이번이다.’
앤더슨의 생각을 읽기라도 했는지, 머릿속으로 골드 와이번 멜파스의 음성이 들려왔다.
‘나도 알고 있다. 하지만 이게 최선이다. 멜파스.’
‘맹약에 따라 나 멜파스 가디언으로서 너와 함께 할 것이다. 하지만 지금의 선택은 최악이다.’
골드와이번 멜파스가 단호하게 말했다.
‘최선의 선택은 뭐지?’
‘이곳을 빠져나가는 것이다.’
‘빠져나갈 수는 있고?’
‘……최선을 다하겠다.’
멜파스의 말에 앤더슨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예상한 대답이었다.
‘자신이 없다는 말이군.’
‘…그렇다. 이렇게 넓은 평원에서 블랙 와이번을 피해 달아나기는 힘들다. 하지만 수많은 협곡이 얽혀있는 베링 산맥까지 간다면 놈을 떨쳐 낼 수 있다.’
‘아니, 베링 산맥으론 갈 수 없다.’
앤더슨이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자칫 베링 산맥에 만들어놓은 거점이 노출되기라도 하면 기사단이 위험할 수 있었다.
‘그리고 타스가 도망갈 시간을 벌어주기 위해서라도 놈을 붙잡고 있어야 해.’
‘결국 저 녀석과의 전투는 피할 수 없다는 말이군’
‘그래!’
‘블랙 와이번을 상대로 오래 버티진 못할 거다.’
‘나도 시간을 오래 끌 생각은 없다.’
‘이미 결정을 내렸다면. 더 이상 말하지 않겠다.’
멜파스의 말에 앤더슨이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고맙다, 멜파스.’
* * *
골드 와이번 멜파스가 하늘 위로 치솟으며 구름 사이를 선회하고 있는 시카니스를 향해 빠른 속도로 다가갔다.
“아직도 포기할 생각이 없나 보네.”
카일이 눈썹을 찡그리며 말했다. 카일이 잠시 공격을 멈추고 구름 사이를 선회하고 있었던 건 앤더슨과 타스가 몸을 피할 수 있는 최소한의 기회를 주기 위해서였다.
갑작스러운 공격을 받긴 했지만, 카일이 받은 직접적인 피해도 없었고 귀찮게 추적해오는 기시단까지 처리되었다. 아무런 이득도 없는 전투를 더 이상 이어가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더구나 가면을 쓰고 신분도 감춘 상태라 블랙 와이번의 존재가 알려진다고 해도 카일로서는 크게 걱정할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앤더슨의 생각은 달랐다.
애초부터 기사단과 카일이 함께 있는 모습을 확인했기에 한 무리로 생각했다. 때문에 동료를 잃은 카일이 끝까지 추적해 반드시 복수하려 할 거라 생각한 것이다.
“계속 싸우길 원한다면… 어쩔 수 없지.”
카일이 허리에 맨 작은 가방 안에서 탄환을 꺼내 라이플에 장전했다. 그리고는 빠르게 다가오는 앤더슨을 향해 조준했다. 순간 골드 와이번 멜파스가 날개를 크게 틀어 곡선을 그리듯 방향을 바꿔 구름 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차르륵-
순간 어디선가 낯익은 쇳소리가 들려왔다.
“이건!”
카일이 깜짝 놀라 주변을 빠르게 살폈다. 근접 공중전에서 워드가 익숙하게 사용했던, 사슬 달린 커다란 낫을 던질 때마다 들려왔던 마찰음이었다.
당시 여러 번 사슬낫의 변칙적인 움직임에 고전을 면치 못했던 카일은 잔뜩 긴장한 얼굴로 골드 와이번이 사라진 구름 속을 살폈다.
순간 구름 속에서 빠져 나온 새카만 그림자가 카일을 향해 떨어져 내렸다. 카일은 반사적으로 오러를 잔뜩 밀어 넣은 라이플을 휘둘렀다.
꽝-
갑작스러운 충돌과 함께 카일이 주춤 물러나며 고개를 드는 순간, 눈앞으로 대검이 날아들었다.
“젠장!”
카일이 급히 라이플을 반 바퀴 돌려 날아드는 대검을 쳐냈다.
꽝-
또다시 불안정한 자세에서 받은 충격에 뒤로 밀려났지만, 다행히 안전끈을 묶어놓아 떨어지는 것만은 면할 수 있었다.
차르륵-
또다시 이어지는 거친 마찰음에 카일은 재빨리 자세를 바로 하고 주변을 살폈지만, 더 이상 공격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조금 전 공격 분명….”
차르륵-
또다시 울리는 마찰음에 카일이 빠르게 주변을 살폈다.
쉬익-
순간 머리 위로 강력한 일격이 떨어져 내렸다. 카일은 더 생각할 겨를도 없이 검을 뽑아 떨어져 내리는 대검을 향해 휘둘렀다.
꽝-
강력한 충격이 손목을 통해 전달되었다. 카일은 입술을 깨물며 날아든 대검을 밀어냈다.
“대단하구나! 설마 이걸 막아낼 거란 생각은 못 했는데 말이야!”
앤더슨이 감탄한 얼굴로 카일을 바라보며 말했다.
“놀랍군! 사슬에 낫이 아니라 사람이 묶여 있다니….”
카일은 앤더슨의 허리에 묶여 있는 사슬을 놀란 얼굴로 바라보며 말했다.
“하하! 이런, 정말 애송이 오너였군!”
“무슨 말이지?”
“말로 설명하는 것보다 직접 경험하는 게 좋겠지?”
앤더슨이 비웃음 가득한 얼굴로 카일을 노려보다니 곧장 공중으로 몸을 날렸다.
차르르륵-
마치 누군가가 쇠사슬을 감아올리듯, 앤더스의 신형이 구름 속으로 빨려 들어가듯 사라져 버렸다.
“음….”
카일이 심각한 얼굴로 손에 들린 라이플을 바라보았다. 라이플 여기저기에는 검을 막아내면서 생긴 흠집들이 남아 있었다.
탄환을 한 발씩 장전해 쏴야 하는 볼트액션식 라이플은 지금처럼 갑작스러운 기습공격에는 효율이 떨어졌다.
“아무래도 조금 더 보완할 방법을 생각해 봐야겠군.”
카일이 고개를 저으며 안장에 라이플을 꽂아 넣었다. 지금 같은 기습공격에는 차리리 검을 사용하는 게 편했다.
차르르-
거친 쇳소리에 카일이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려 검을 찔러 넣었다.
쉬익-
카일의 검이 다가오는 앤더슨의 심장을 향해 정확히 찔러 들어갔다. 허공에서 방향을 바꿀 수 없는 앤더슨으로서는 스스로 카일의 검에 달려드는 꼴이었다.
“끝이다!”
카일은 곧 앤더슨의 심장에 자신의 검이 박혀들 거라 확신했다.
하지만 갑자기 앤더슨의 몸이 허공에 잠시 멈춰 서더니, 뒤로 급격하게 당겨지며 다시 구름 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마치 허공에서 몸을 자유자재로 유영하듯 움직임에 거침이 없었다.
“어떻게….”
카일이 당황한 표정으로 잠시 구름 속으로 사라진 앤더스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이내 고개를 흔든 카일이 주변을 둘러보며 고개를 저었다.
“바보 같은 짓을 하고 있었군. 시카니스, 구름 아래로 내려가자!”
카일은 곧장 구름 아래로 하강했다. 구름은 적에게 모습을 감추게 해주는 가장 좋은 은신처였다. 전혀 생각지도 못한 전투방식에 당황한 나머지 상대에게 구름이란 이점이 있다는 걸 간과하고 있었던 것이다.
‘놈이 나타났다.’
시카니스의 음성이 머릿속으로 울리는 순간, 카일의 좌측 위쪽으로 골드 와이번 한 마리가 다가왔다.
쉬익-
“이런!”
카일이 급히 몸을 틀어 날아오는 스피어를 피했다.
앤더슨이 공중으로 도약하며 들고 있던 스피어를 던져 카일을 직접 공격한 것이다.
쾅-
앤더슨은 스피어를 피하느라 자세가 무너진 카일을 향해 곧장 대검을 내려쳤다.
쾅-
카일이 무너진 자세를 바로 하지도 못하고 두 검을 교차하며 앤더슨의 대검을 막아냈다.
“크윽!”
카일이 힘겹게 대검을 막아내며 짧은 신음을 내뱉었다.
“무너진 자세로 연달아 내 검을 막아내다니…. 생각보다 대단한 놈이구나! 하지만 이제 그만 끝내야겠다!”
앤더슨이 싸늘하게 카일을 내려다보며 대검에 더욱 힘을 가했다. 앤더슨은 중급 엑스퍼트로 타고난 체력과 강인한 파워를 바탕으로 상대를 압살하는 검술을 익혔다. 카일보다는 못해도 그 역시 천부적인 힘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가가각-
두 개의 검을 교차시켜 앤더슨의 대검을 막아내던 카일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아무리 카일이 선천적으로 강한 힘과 오러를 가지고 있다고 해도 비슷한 경지에서 벌이는 두 사람의 대결은 작은 변수 하나가 승패를 가른다. 카일은 이미 자세가 무너진 상태라 앤더슨의 힘을 제대로 해소하지 못해 검을 든 손에 점차 밀려나는 것이다.
“헉! 뭐야….”
그때였다. 카일을 밀어붙이던 앤더슨의 몸이 뒤로 주르륵 밀려나더니 이내 허공으로 딸려 올라가기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골드 와이번 멜파스가 고통에 찬 비명을 토해냈다.
끼아아악-
“안돼!”
엔더슨이 고개를 돌려 멜파스를 바라보며 절망적으로 소리쳤다. 블랙 와이번이 멜파스의 날개를 물어뜯으며 아래로 떨어져 내리고 있었기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