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철의 용병라이더-99화 (99/404)

99.워드

마을 사람들은 카일이 만든 강철검을 보일이 정찰 도중 발견한 운석으로 만들었다 알고 있었다. 강철검은 합금검과 비교해 색과 재질이 전혀 달랐기에, 강철검을 가지고 다닐 수 있는 적당한 명분이 필요했다. 그때 생각해 낸 것이 바로 운석이었다.

이곳에서 운석은 무구를 만들기에 뛰어난 재료로 알려져 있었지만, 실제 운석으로 제작된 무구를 본 사람은 극히 드물었기에, 사실상 강철검을 운석검으로 위장한다고 해서 알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카일은 사람들의 눈을 속이기 위해 잡철을 비롯한 각종 금속을 섞은 커다란 가짜 운석까지 만드는 치밀함까지 보였다.

덕분에 사람들은 모두 감쪽같이 속아 넘어갔다.

“쉿!”

카일이 손가락을 입술로 가져가자 무트는 급히 자신의 양손으로 입을 막았다.

만약 테일과 케트가 운석검을 보면 무조건 빼앗으려 할 게 분명했다.

몇 년 전 우연히 보일이 가지고 다니는 기하학적인 문양의 얇은 운석검(강철검)으로, 단번에 오크를 베어버리는 모습을 본 뒤로 운석검에 매료된 무트였다.

그동안 꿈에서나 보아오던 운석검을 빼앗아 갈까 싶었던 무트는 카일의 설명도 듣지 않고 서둘러 단도를 품 속에 집어넣었다.

전전긍긍하는 무트의 모습에 카일은 웃음을 감추지 못하며, 팔에 차고 있던 단도를 뽑았다.

“자, 여기 보면 날이 하나밖에 없는 게 보일 거예요.”

무트는 뒤쪽에 있는 테일과 케트를 경계하며 머리를 까딱였다.

“비록 날은 하나지만 합금검에 비해 아주 예리해서 조심히 다뤄야 해요. 함부로 다룬다면 크게 다칠 수가 있어요. 그리고 합금검보다 녹이 잘 생길지도 모르니, 사용한 다음에는 꼭 마른 천과 기름으로 잘 닦아 주세요. 아셨죠!”

카일은 무트에게 강철 단도를 관리하는 법을 상세히 일러주었다. 합금검의 가장 큰 장점은 관리를 소홀히 해도 녹이 잘 생기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강철은 꾸준히 관리해 주어야 한다는 단점이 있었다.

“그럼! 내 몸보다 더 잘 닦을 테니 걱정하지 말아라.”

무트는 호언장담을 하면서도 여전히 테일과 케트 쪽을 힐끔거렸다.

“그리고 이건 가지고 계세요. 날이 상하면 이걸로 이렇게 갈면 돼요.”

품에서 작은 숫돌을 꺼낸 카일은 직접 날을 가는 흉내를 내어 보였다.

카일의 시늉을 빤히 보던 무트는 이해했다는 얼굴로 숫돌을 챙겨 넣었다.

“둘이 무슨 이야기를 그렇게 오랫동안 해?”

어슬렁거리며 다가온 케트가 카일에게 질문을 던지자, 무트가 허겁지겁 케트의 말을 끊고 카일을 아일론 상단 쪽으로 떠밀었다.

“말은 무슨 말! 자, 자, 마티슨 님께서 기다리신다. 어서 가야지.”

카일은 선선히 무트의 힘에 밀려나 주었다. 근처에서 카일을 지켜보던 보일이 은근슬쩍 다가와 카일에게 물었다.

“강철 단도를 준 것 같던데 괜찮겠느냐?”

“괜찮아요. 무트 형이라면 아마 아까워서 잘 쓰지도 않을 거예요. 그리고 크게 문제 될 것도 없는걸요.”

입이 함지박만 하게 벌어진 무트를 보던 보일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마을 사람들에게 운석을 이용해 만든 검으로 알려져 있으니, 외부로 검이 흘러나간다 해도 크게 문제 될 것 같지는 않았다.

“그만 가보겠습니다.”

“그래, 무사히 다녀오너라!”

보일과 마지막 인사를 나눈 카일은 아일론 상단에게로 향했다. 상단 근처에는 멀린을 비롯한 시안느와 이니엘 영애가 카일을 기다리고 있었다.

“방금 마티슨 부 단주님과 토일 지부장님이 오셨다가 가셨습니다.”

카일의 지척에 선 멀린이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리고요?”

“마차가 아닌 말을 타고 와서인지 좀 놀란 모습이었습니다.”

“그렇겠지요.”

짧은 담소를 나눈 뒤, 카일은 조금 떨어진 곳에 서 있는 중년의 사내에게 다가갔다.

“결국 왔군요.”

“그저 곁에서 감시하려는 것뿐이다.”

카일은 굳이 사내의 말에 대꾸하지 않고 빙그레 미소를 지어 보였다.

* * *

이틀 전, 늦은 밤. 카일은 지붕 위에 앉아 있는 사내를 만날 수 있었다.

“여기서 뭘 하나요?”

지붕 위에 올라간 카일은 아무것도 없는 빈 공간을 향해 말을 걸었다.

그러자 조금 전까지 아무것도 없던 장소에서 검은색 레더 아머를 입은 사내가 모습을 드러냈다.

“도망가지 않네요.”

“지난번… 블랙 와이번에 대한 비밀만 지켜준다면, 얼마든지 감시해도 된다 약속을 했던 것 같은데?”

“마을을 감시하는 건 상관없다고 하긴 했습니다. 하지만 오크 랜드에서 돌아온 이후 저희 집주변만 감시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만?”

“샤론 마을 전체를 통틀어 가장 중요한 사람들이 모인 곳이 바로 이 집이니 그렇다. 상급 엑스퍼트뿐만 아니라 그보다 더 높은 경지의 노인도 있지 않느냐. 하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위험한 사람은 바로 너겠지!”

사내가 카일을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그래서 당분간 널 감시해 볼 생각이다.”

당황한 카일이 떨떠름히 답했다.

“저를요? 하지만 전 이틀 뒤에 마을을 떠날 겁니다.”

“알고 있다. 그래서 널 따라다녀 보려고 한다.”

“당신의 임무는 마을을 지켜보는 것 아니었나요?”

별달리 대꾸할 말이 없었던 사내는 손가락에 끼워진 반지를 한동안 습관처럼 만지작거렸다.

“좋아요. 그럼 차라리 저와 동행 하는 것이 어떻겠어요?”

“…동행?”

“그래요. 멀리서 따라다닐 게 아니라 아예 같이 다니는 게 어떻겠냐는 말이죠. 서로 감시하고 감시당한다는 사실을 알고도 모른 척 지내는 것보다는, 차라리 일행이 되는 게 좋지 않겠어요? 그리고 숨어서 지켜보는 것보다 곁에 있는 게 더 확실한 감시 방법이 되겠죠.”

“일행….”

카일의 제안에 고민하던 사내는 확답을 내놓지 않고 자리에서 쌀쌀맞게 일어났다.

“그만 돌아가겠다.”

“저와 함께 갈 생각이 있다면, 이틀 뒤 북쪽 목책으로 오세요.”

정확한 시일을 알려주는 카일의 목소리에 사내는 화답하지 않았다. 홀로 남겨진 카일은 밑으로 내려갔다.

“함께 하겠다고 하덥니까?”

밑에서 기다리고 있던 멀린이 물음을 던졌다.

“대답을 듣지 못했습니다.”

“음… 아무리 그래도 카일 님을 감시하고 공격했던 자입니다. 어떻게 믿고 그를 일행으로 받아들이려 하시는 겁니까?”

“글쎄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예?”

카일이 눈썹을 문지르며 말했다.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어쩐지 그를 믿을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든다고나 할까요?”

속 편한 카일의 말에 멀린이 어처구니가 없다는 것처럼 입술을 달싹였다.

“그런….”

“하하! 그에 대해서는 더 이상 묻지 마십시오. 저도 대답할 말이 딱히 생각나지 않으니까요. 다만 멀린 님께 부탁을 드리고 싶은 게 있습니다.”

“알겠습니다. 저자가 동행할 것에 대비를 해야겠군요. 마티슨 부 단주님께는 제가 말씀을 드리지요.”

“번거롭게 해드려 죄송합니다.”

“아닙니다. 아일론 상단에서 저에게 부탁한 일도 있으니, 보일 대장님을 통하는 것보다 제가 말하는 게 더 잘 통하긴 할 겁니다.”

멀린은 아일론 상단의 영입제안을 거절했다. 대신 아일론 상단이 트라발트 공작가로 향하는 동안 아티팩트를 만들어 주기로 계약을 맺었다. 하여 멀린은 요즘 아티팩트를 제작에 전념하고 있었다.

아일론 상단은 멀린의 거절에 큰 아쉬움을 나타냈다. 하지만 한시적으로나마 아티팩트 제작을 계약했다는 사실에 크게 고무되어 있었다.

비록 적은 수량이지만 아티팩트를 확보할 수 있다는 점 하나만으로도 상단으로서는 큰 성과라 할 수 있었다.

샤론 마을은 남부 영지에서 최남단에 위치한 오지 마을로, 아일론 상단의 남부 상행에서 가장 마지막 코스라 할 수 있었다.

때문에 아일론 상단은 샤론 마을에서 한동안 휴식을 취하며 상행 동안 수거한 몬스터 부산물을 새롭게 분류하고 정리했다.

샤론 마을에 도착했을 즈음이면, 긴 상행에 상단과 상단을 호위하는 용병들도 많이 지친 상태였기 때문이었다.

그나마 샤론 마을의 경우 다른 오지 마을과는 달리 제법 규모가 큰 마을이라, 상단 사람들이 휴식을 취할 숙소와 공간이 충분했다. 쉬는 동안 분류된 몬스터 부산물들의 절반은 남부지부로 갔고 나머지는 중부, 그중에서도 왕국의 물산이 집결되는 트라발트 공작령으로 향했다.

원래 마티슨과 토일은 5일 전 이곳을 떠나, 중부로 향하는 상단과 함께 트라발트 공작령으로 갔어야 했다. 하지만 차일피일 떠나는 날짜를 뒤로 미루고 있는 이유는 바로 멀린이 만들고 있는 아티팩트 수량을 조금이라도 더 확보하기 위해서였다.

덕분에 일이 바빠진 사람은 바로 대장장이 타론이었다.

이곳에서 멀린이 각인할 무기를 만들 만한 사람은, 카일을 제외하면 대장장이 타론 밖에 없기 때문이었다.

더군다나 타론의 합금 실력은 오지 마을에 있기에는 아까울 정도로 뛰어나, 상단 입장에서는 샤론 마을에 남아 아티팩트의 물량을 늘리는 것이 더 유리했다.

덕분에 멀린은 벌써 20자루의 검에 강화마법을 각인시켰다. 비록 2서클의 하급마법에 지나지 않지만, 멀린처럼 짧은 시간에 대량으로 아티팩트를 만들 수 있는 사람은 무척이나 드물었다. 실지 이 정도 수준으로 아티팩트를 만들어 내는 건, 아티팩트를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6서클 이상의 고위 마법사 중에서도 극히 일부만이 가능했다.

때문에 멀린이 자신만만하게 자신의 말이 더 잘 통할 것이라 했던 것이다.

“동행이라….”

카일의 집이 내려다보이는 절벽 위에 올라선 사내가 뒷마당에서 멀린과 대화를 나누는 카일을 내려다보며 낮게 중얼거렸다.

‘이제 어둠에서 벗어날 때가 되었다.’

머릿속으로 에일럿의 굵은 음성이 울렸다.

‘카일이 날 이 어둠 속에서 끄집어내 줄 수 있을까?’

‘암흑에서 벗어날 방법은 언제나 있었다. 하지만 넌 언제나 스스로 외면했을 뿐이다.’

‘…외면?’

‘알지 않느냐. 어둠에서 벗어날 방법은 저 아이가 아니라, 바로 너 자신의 의지라는 걸. 하지만 저 소년이 그동안 외면당하고 있던 너의 의지를 일깨워 주었으니, 어쩌면 저 아이가 널 어둠에서 벗어나게 해줄 수 있다는 말도 맞는 말인 것 같구나.’

* * *

“그래서 이름은 생각해 보았나요?”

며칠 전의 기억을 떠올리고 있던 사내의 앞으로 다가온 카일이 물었다.

“이름?”

“계속 123호라고 부를 수는 없잖아요.”

카일이 사내의 앞으로 바짝 다가와 작은 목소리로 속닥였다.

“…워드.”

“워드?”

“아주 오래전 국경수비대 시절, 워드란 가명을 썼다.”

‘워드’라는 단어를 발음하는 사내의 모습은 어쩐지 겸연쩍게 보였다. 카일은 입속으로 워드라는 단어를 발음해보다가 활짝 웃었다.

“워드…. 좋아요. 앞으로는 그렇게 부르겠어요. 잘 부탁해요, 워드.”

“음….”

워드가 어색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분명 국경수비대 시절 워드란 이름이 있었지만, 순전히 서류상 위장된 이름일 뿐이어서 국경수비대에서도 이름보다는 별칭으로 불렸다. 때문에 사내에게도 워드라는 이름은 낯설게만 느껴졌다.

‘이름이 생겼군. 워드! 앞으로도 잘 부탁하지.’

뇌리를 울리는 에일럿의 음성에 워드는 가슴께를 문질렀다.

“나에게도 이름이… 생겼다.”

워드의 안면에 조그마한 미소가 어렸다가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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