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철의 용병라이더-67화 (67/404)

67.힐튼 남작의 회상2

“뭔가 문제가 있었군요.”

“그것이… 흑마법사가 추종하던 악마는 바로 서큐버스였네. 흑마법사 역시 여인이었지.”

“그것이 이상한가요?”

“흠흠, 서큐버스는 남성을 통해서 힘을 얻게 되지. 정확히는 성교를 통해 상대의 마나를 흡수한다네. 몸 안에 모든 마나가 빨려 나는 순간 남자는 죽고 말지.”

남작의 설명을 듣던 카일의 낯이 붉어졌다. 정말 생각지도 못한 이야기였기 때문이었다.

“당시 사로잡혔던 기사들 역시 모두 나체로 광장 안에서 흑마법사와… 험~ 뒹굴고 있었지.”

“그, 그런 일이 있었군요.”

카일이 어색하게 더듬거리며 대답했다.

“더욱 큰 문제는 바로 함께 들어온 용병들 대부분이 흑마법사가 피워놓은 마법 향초에 취해버렸다는 사실이었네. 용병들이 모두… 광장 안으로 뛰어들었거든.”

“설마, 남작님도….”

“커험! 향기에 취해…. 하지만 다행히 슈안 덕분에 위기를 모면하고, 동굴을 빠져나올 수 있었지. 하지만 문제는 거기서 끝나지 않았네!”

“무사히 빠져나왔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물론 무사히 빠져나오긴 했지만, 문제는 내가 이미 마법 향초의 향에 중독되었다는 점이었네.”

사실 힐튼 남작은 당시 상황을 제대로 기억하고 있지 못했다. 이미 마법 향기에 중독되어 제정신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슈안이라는 분은 중독되지 않았던 건가요?”

“향기의 정체가 바로 서큐버스를 추종하는 흑마법사가 만들어낸 강력한 최음향었거든. 그것도 남자만 대상으로 삼는. 그 덕에 다행히 여인인 슈안은 중독되지 않아 빠져나올 수는 있었지. 하지만 워낙 강력한 마법향이라 해독할 방법은 하나밖에 없었네! …결국 슈안의 도움으로 해독할 수 있었지만, 다음날 슈안은 사라지고 없었네.”

당시 힐튼 남작은 슈안을 찾기 위해 한동안 동부지역을 뒤지며 다녔다. 그러나 아무리 찾아도 슈안을 찾을 수 없었던 남작은 결국 다시 북부 영지로 돌아가게 되었다.

“그럼… 슈안이란 분은….”

“그렇게 사라진 그녀는 아이를 낳았고, 그 아이가 바로 하린이라네.”

“그럼 왜 슈안은 아이의 이름을 하린으로 한 것일까요?”

“휴… 슈안과 검술을 대결하면서 우린 서로에 대해 어느 정도 알게 되었다네. 비록 정확한 신분은 밝히지 않았지만, 용병이 아니라는 것과 그리고 지금의 이름이 가명이라는 사실 정도는 능히 짐작할 수 있었지. 허나 정확한 신분과 내력은 알리지 않았네. 당시에도 동부와 북부가문은 앙숙이었으니 쉽사리 신분을 밝힐 수는 없는 일이었네.”

“그렇군요.”

힐튼 남작은 과거를 회상하듯 지그시 눈을 감으며 말했다.

“어느 날 말일세. 뛰어난 검술과 방패술로 동부에서 이름을 날리는 용병이 있다더군. 그 이야기를 들으니 어릴 적 동부에서의 일이 떠올라, 나도 모르게 그자에 대해 알아보게 되었지. 그런데 그 용병의 이름을 듣는 순간 너무도 놀라 한동안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네!”

“설마….”

“그래. 이미 짐작했겠지만, 그자의 이름이 바로 하린이더군. 해서 직접 그 용병을 찾아갔었지…. 그리고 그때 그 아이가 사용하던 방패술을 보게 되었네.”

“하린의 방패술!”

“내가 물어보자 그 아이는 어머니가 아버지의 이름을 붙여 가르쳐준 방패술이라고 하더군. 언젠가 이 방패술이 세상에 알려지고 직접 보게 된다면, 아버지가 자길 알아보고 찾아올 거라며 가르쳐 준 것이라 하더군. 그래서 알게 되었지 나에게 아들이 있었다는 사실을 말이야.”

“그럼 슈안이란 분도 만나보셨습니까?”

“그녀는 이미 죽은 지 오래되었다고 하더군.”

“그럼 하린 님과는 어떻게 되셨습니까?”

“난 그때 하린을 데리고 남작가로 돌아가려 했네! 내 유일한 아들이자 후계자이니 말이야. 하지만 하린이 거절했지. 그에게는 그만의 길이 있다면서 말이야.”

힐튼 남작의 눈가에 눈물이 맺혔다.

“내 평생을 검술에만 미쳐 살았네! 내가 일전 말하지 않았나? 쌍검술로는 결코 경지에 도달할 수가 없다고.”

“기억하고 있습니다.”

“원래 이 조언은 슈안이 나에게 해준 말이었네. 검과 방패술 두 가지 모두 익혀서는 결코 경지에 오를 수 없다고 말이야. 그래서 난 방패, 아니 스틱을 버리고 오직 검술 하나만 집중해 이 자리에 올랐다네.”

일전에 남작은 카일이 들고 있는 검과 도를 보며 쌍검술로는 결코 경지에 오를 수 없다며 조언을 해준 적이 있었다. 아마도 남작은 지난날 방패와 검을 익히던 자신에게 조언해줬던 슈안을 떠올린 것 같았다.

“슈안 님의 조언이 정확했군요.”

“그렇네. 스틱을 버리고 검술에 집중하는 순간 실력은 빠르게 늘어가기 시작했지. 하지만 상급 엑스퍼트에 올라 뒤를 돌아보았을 때에는 주변에 남은 것은 아무것도 없었네! 검술 하나에 미쳐 살아가다 보니, 가문을 이을 후계자도 가족도 없더군. 그걸 깨닫자 어찌나 외롭던지….”

남작은 씁쓸하게 웃으며 말했다. 비록 높은 경지에 올랐다 해도 결국 남작에게는 아무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때 하린의 존재를 알게 된 거라네. 하지만 난 가족이 생겼다는 기쁨보다는 걱정이 앞섰네.”

“걱정이라면… 동부와 북부의 갈등 때문입니까?”

“정확히 알고 있군. 여전히 동부와 북부의 반복이 심한 상황에서 하린에 대해 밝힐 수는 없었네. 나야 크게 상관이 없지만, 동부에 남은 그 아이의 가족들이 위험할 수 있으니 말이야.”

“북부 최고 기사의 아들이라면 그린넨 백작 가문에서 가만히 두고 볼 수는 없었겠지요. 어쩌면 남작님을 움직일 가장 큰 패를 얻게 되는 것이니 말입니다.”

카일의 말대로 백작 가문에서 하린과 그의 가족을 인질로 잡고 남작을 움직이려 했다면, 남작은 분명 백작 가문의 뜻대로 움직일 수밖에는 없었을 것이다.

“아마도…. 하지만 그것보다 더 큰 문제는 하린이 그린넨 가문과 상당히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는 사실이었네. 난 그 사실 하나만으로 동부 그린넨 백작 가문과 얽히지 않으려 노력했다네.”

“그럼 남작님께서 마파린 후작의 호위를 위해 곁을 떠나지 않는다는 것도….”

“혹여 아들에게 피해가 갈 걸 우려해 최대한 외부활동을 자제하다 보니 세상에 그렇게 알려진 것뿐이지. 물론 그러다 보니 이제는 후작님의 호위를 전담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네. 아무래도 내가 후작가에 있다면 그만큼 많은 기사를 외부로 보낼 수 있거든.”

한 명의 강한 기사가 후작의 곁에 머물러 있다면, 호위 인력을 줄여도 상관없었다. 때문에 호위에 투입되지 않은 기사들이 외부로 투입된 것이다.

이로 인해 후작가는 북부는 물론이고, 동부로 세력을 점차 넓혀 갈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할 수 있었다.

“그럼 하린 님을 죽였다는 말은….”

“하나뿐인 소중한 아들이네. 내 손으로 죽이다니 말도 안 되는 소리지!”

“그럼 왜 그 같은 거짓을 말하고, 죽음을 자초하신 겁니까?”

“어쩔 수 없었네. 이니엘 영애가 듣고 있는 상황에서 이 사실을 밝힐 수는 없는 일 아닌가!”

당시 힐튼 남작은 카일에게 양다리가 부러져버린 절망적인 상황이었다. 그 상황에서 하린에 대한 진실을 밝힐 수는 없는 일이었다. 시안느가 남작의 손녀라는 사실이 밝혀지는 순간, 그녀는 물론이고 그녀의 가족들까지 어떤 일을 당할지 모를 일이었다.

“그럼 하린 님은 어디로 사라진 걸까요?”

“사라지기 전 하린이 날 찾아온 적이 있었다. 당시에는 모종의 일로 북부를 떠나있어 만나지 못했지만, 당시 집사의 말로는 상당히 다급해 보였다고 들었지. 해서 비밀리에 하린을 찾아보았으나, 동부 어디에서도 하린을 찾을 수가 없었다네. 다만 흔적을 이리저리 찾던 중 제국으로 향했다는 사실만은 알게 되었네!”

“그럼 이제 어쩌실 생각입니까. 시안느에게 이 사실을 알리실 생각입니까?”

“이미 그 아이는 그린넨 백작가의 사람이 된 상황 아닌가. 이제 와 데려올 수는 없는 일이지. 더군다나 아직 아이의 가족들이 동부에 있는 이상 내가 나서 좋을 게 없을 거고 말이야.”

“그럼 이번 일에 나서신 것도….”

“역시, 눈치 하나는 빠르군! 아들의 행방을 알아보기 위해서였네. 이니엘 영애를 데려간다면, 백작가를 통해 하린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 해서 후작을 설득했지. 아무래도 백작을 직접 움직인다면, 하린에 대한 정보를 더 많이 알아낼 수 있을 테니까. 더군다나 하린이 백작가의 일로 제국으로 향했을 가능성도 있고.”

힐튼 남작의 말에 카일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동안 후작의 옆에서 꼼짝도 하지 않던 힐튼 남작이 이렇게 나선 이유도, 그리고 영애에게 집착했던 이유도, 바로 아들인 하린 때문이었던 것이다.

“내 이야기는 여기까지라네. 이 사실을 아는 사람은 이제 나와 자네뿐이야. 만약 이 비밀이 세상에 알려져 저 아이와 가족들에게 피해가 간다면, 자네는 물론이고 자네의 아비와 마을 사람들 모두 가만두지 않겠네.”

“그런 일은 없을 겁니다.”

“이번에는 자네의 말을 믿을 수 있었으면 좋겠군.”

걱정스러운 낯의 힐튼 남작이 카일을 향해 말했다.

“걱정 마십시오. 반드시 약속은 지켜질 겁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시안느 경?”

화들짝 놀란 힐튼 남작이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는 몸을 일으킨 시안느가 슬픔이 가득한 눈으로 남작을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었다.

“어디, 어디까지 듣고 있었느냐.”

“애초부터 잠들지도 않은 것 같았습니다.”

“자네!”

“오해하지 마세요. 저도 조금 전 알았습니다.”

급히 두 손을 흔들며 카일이 결백을 주장했다. 그러나 이미 카일에게 여러 번 속은 전적이 있는 남작은 믿지 않는 눈치였다.

“워낙 오래전 일이라 잊고 있었지만, 어릴 적 아버지께서 말씀해주신 적이 있었던 것 같아요. 저에게 할아버지가 계시다고.”

“하린이 나에 대해 말을 했다는 말이냐?”

“아버지께서 수련을 하시면 전 항상 옆에서 지켜보곤 했어요. 오래전 일이라 기억이 선명하지는 않지만, 당시 할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를 한 적이 있었던 것 같아요.”

“그런 일이 있었구나….”

어찌할 바를 모르던 힐튼 남작이 은은히 미소 지었다.

그동안 하린의 가족들 중 누구도 자신의 존재를 모르리라 생각했다.

동부에 적을 두고 살아가는 하린에게는 힐튼 남작의 존재가 치명적인 약점과도 같았기 때문이었다.

그런 상황 속에서도 하린은 시안느에게 만은 자신의 존재에 대해 알렸다. 그것으로 충분했다. 힐튼 남작은 그 사실만으로 기쁨을 만끽할 수 있었다.

“먼저 죄송하다는 말씀부터 드리겠습니다. 아시겠지만 전 그린넨 백작가로부터 서임을 받은 기사이자, 이니엘 영애를 호위하는 호위 기사로서, 동부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때문에… 지금까지 들은 모든 이야기는 듣지 않은 것으로 하겠습니다.”

“…그렇겠지! 이 할아비도 그 정도는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괜찮다는 말과 달리 힐튼 남작의 낯빛은 침울하게 변해 갔다.

“다만… 한 가지 부탁드리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부탁이라니. 말해 보거라. 내 할 수 있는 것은 뭐든 들어주겠다.”

망설이던 시안느는 결심한 듯 입을 열었다.

“아버지께서 갑자기 사라진 터라, 방패술을 거의 익히지 못했습니다. 온전한 방패술을 배우고 싶습니다.”

남작은 바로 답하지 않았다. 눈을 지그시 감고 잠시 생각에 골몰하던 남작은 이내 눈을 뜨며 시안느에게 물었다.

“지금의 검술은 누구에게 배운 것이냐.”

“전 동부의 플랜스 기사 가문의 사람입니다. 할머님의 가문이죠.”

“플랜스 가문이라…. 미안하구나. 들어본 적이 없다.”

하린 역시 가문에 관해서는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힐튼 남작 역시 하린이 우려하는 점을 알고 있어, 따로 하린을 조사하지 않은 것이다.

“미안해하실 것 없으세요. 동부에서도 그다지 알려지지는 않은 가문입니다.”

힐튼 남작이 이해할 수 없다는 것처럼 머리를 갸우뚱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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