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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철의 용병라이더-66화 (66/404)

66.힐튼 남작의 회상1

카일은 습지까지 쫓아온 50여 마리의 웨어 울프들을 떠올리며 인상을 찡그렸다. 웨어 울프는 강력한 몬스터지만 의외로 개체 수가 많이 늘지 않은 몬스터 중 하나였다.

평생 한 명의 짝을 만나 하나에서 두 마리 정도의 새끼를 낳기 때문이었다.

그런 웨어 울프에게 이번 오크 무리와의 전투는 무리의 절반 이상이 죽임을 당한 엄청난 피해였다. 그러니 웨어 울프로서는 오크들과 싸움을 붙인 카일에 대한 분노가 하늘을 찌를 수밖에 없던 것이다.

“음….”

“이번 일은 결국 제가 웨어 울프를 끌어들이는 바람에 일어난 일입니다. 만일 처음부터 다른 선택을 했다면 굳이 남작님과 마주치지도, 일칸 경을 죽이는 일도 없었겠죠. 그래서 이번에는 좀 다른 선택을 한 것뿐입니다. 죽이는 쪽이 아니라 살리는 쪽으로 말입니다. 물론 그 과정에서 남작님이 시안느 경과 엮여 있다는 사실이 가장 중요했습니다.”

카일의 말을 듣던 남작은 마른세수를 하듯 얼굴을 쓸어내리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내게 이런 이야기하는 이유가 결국 그것이었나. 나와 시안느의 관계를 알아보는 것?”

“부인하지는 않겠습니다.”

“시안느와 나의 관계는 자네와 아무런 상관이 없는 일이네. 왜 굳이 우리 사이의 일을 알려고 하는 것인가.”

“제가 남작님의 두 다리를 부러트렸기 때문입니다. 처음에는 남작님이 이곳에서 죽는다 해도 큰 문제가 없을 거라 생각했습니다. 마파린 후작가 사람들 중 살아남은 사람이 없으니, 남작님의 죽음 역시 이니엘 영애와 시안느 경만 입을 다문다면, 아무도 몰랐을 겁니다.”

“허나 백작 영애가 살아 돌아간다면 분명 마파린 후작가에서도 의심하지 않겠나?”

“그야 어렵지 않습니다. 지금 절벽 위에는 제국 와이번 나이트와 기사들이 사용한 스피어와 검이 있습니다. 그걸 보여준다면 후작도 더는 저희를 의심하지 않을 겁니다. 더군다나 남작님은 최상급을 바라보는 엑스퍼트가 아닙니까. 나이 어린 저를 누가 의심하겠습니까?”

카일이 중급 엑스퍼트라고는 해도 힐튼 남작과는 엄청난 실력 차가 존재하고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카일이 남작을 죽인다는 것은 마파린 후작가에서도 생각할 수 없는 일이었다. 오히려 제국 황실 기사의 검이나 스피어를 본다면 제국에서 남작을 죽였다는 사실을 더 신뢰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허허, 용의주도하군! 헌데 이제는 왜 날 살려 주려는 것인가?”

“남작님을 직접 죽이든 아니면 몬스터로 인해 죽임을 당하든, 결국 그 책임은 다리를 부러트린 저에게 있습니다. 이 사실을 만약 누군가 마파린 후작가에 알린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시안느를 걱정하는 것인가? 걱정 말게 그 아이는 나에 대해 알지 못할 것이네.”

카일이 가당치도 않다는 듯 힐튼 남작의 말에 반박했다.

“그야 남작님의 생각일 뿐입니다. 이미 제가 두 분의 관계를 의심하고 있습니다. 시안느 경이라고 모를 것 같습니까? 어떻게 해서든 남작님과 자신의 관계에 대해 알아내려 할 겁니다. 그렇게 된다면 이후 남작님을 죽음에 이르게 한 저에 대한 미움이나 복수심을 키울 가능성이 높지 않겠습니까.”

“억측이 심하군.”

“물론 억측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가능성 하나만으로 시안느 경이 속한 그린넨 백작가와, 남작님이 속한 마파린 후작가 양측으로부터 공격받을 위험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 않습니까.”

“음… 그래서 원하는 것이 뭔가?”

“저와 제 아버지 그리고 샤론 마을 사람들의 안전을 보장받을 수 있는 방법입니다.”

카일의 말에 힐튼 남작이 침울한 표정을 지으며 잠들어 있는 시안느를 바라보았다.

“결국 저 아이와의 관계를 알려달라는 말이군. 저 아이의 안전을 담보로 말이야.”

“저와 마을이 안전하다면 비밀은 지켜질 것입니다.”

“만약 알려 주지 않는다면 어쩔 생각인가?”

힐튼 남작의 질문에 카일은 잠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가만히 남작을 바라만 보았다.

짧지만 무거웠던 침묵이 흐르고, 마침내 카일이 입을 열었다.

“그렇다면 살리는 쪽의 선택이 잘못되었다는 뜻이겠죠. 잘못된 선택은 늦기 전에 되돌려야겠지요.”

“자네 무서운 사람이군. 인제 보니 이 습지로 들어온 이유가 단순히 웨어 울프를 피하려는 것만은 아니었군.”

카일은 아무런 말도 없이 남작을 응시할 뿐이었다. 무언의 긍정이었다.

“…허허.”

힐튼 남작이 허탈한 웃음과 함께 고개를 저었다.

“이 나이가 되도록 수많은 일을 겪어 보았지만, 자네와 같이 냉철한 사람은 처음 보았네. 난 자네가 시안느에게 어느 정도 마음이 있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나?”

자신을 날카롭게 노려보는 힐튼 남작의 시선에 카일이 당황을 감추지 못했다.

“…그것과 이것은 다른 일입니다. 제가 시안느 경에게 어느 정도 마음이 있다는 것은 부인하지 않겠습니다. 허나 마을 사람과 아버지를 위험에 빠트릴 정도로 어리석지는 않습니다.”

“냉정한 말이군!”

“그것이 현실이죠.”

“그것 역시 맞는 말이군. 좋아, 저 아이와의 관계에 대해 이야기해주지.”

힐튼 남작이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한동안 머뭇거리더니 입을 열었다.

“저 아이는… 내 손녀라네.”

깜짝 놀란 카일이 반문했다.

“손녀요? 하지만 남작님의 나이가….”

“그래 놀랄 만도 하겠군. 하지만 사실이라네. 내 나이 16살 무렵 용병으로 위장해 동부에서 활동한 적이 있었지. 그때 불렸던 내 이름이 뭔지 아는가?”

“설마!”

“그래. 바로 하린이었네! 당시 내가 사용한 무기가 바로 검과 함께 스틱 방어술을 변형시킨 방패술이었지.”

힐튼 남작은 하린으로 불렸던 자신의 지난 과거에 관한 이야기를 풀어놓기 시작했다.

어린 나이에 신분을 감추고 동부에서 용병으로 한동안 활동하며, 실전경험을 쌓아가던 어느 날. 하린은 자신보다 세 살이나 많은 슈안이라는 용병을 만났다.

“슈안이란 용병은 대단히 빠른 검을 구사하는 검사로 제법 이름을 날리고 있었지. 당시 누구보다 검술에 자신이 있던 나는 당장 그를 찾아가 결투를 신청했네.”

“당연히 남작님이 이겼겠지요. 아무리 뛰어난 검술이라 해도 정통 기사 가문의 검술을 용병이 당해내기 쉽지 않았을 겁니다.”

카일의 말에 힐튼 남작이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천만에! 형편없이 졌네! 그것도 단 일수에….”

“네에? …그럴 리가요?”

카일이 깜짝 놀란 얼굴로 물었다. 그러자 힐튼 남작이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자네는 지금 17살에 날 이겼다는 걸 잊은 것인가?”

“그야 전 편법을 쓰지 않았습니까.”

“그런 말은 날 더 비참하게 만들 뿐이네.”

“그건… 죄송합니다.”

힐튼 남작이 크게 한숨을 내쉬며 말을 이었다.

“휴~. 어찌 되었든 자존심이 상한 난 매일같이 그에게 도전했네. 하루도 거르지 않고 말이야.”

힐튼 남작은 그때의 기억이 떠오르는지 굳어 있던 얼굴에 살며시 미소가 어렸다.

“매일같이 대결을 벌였다면 결국 슈안을 이겼겠군요.”

“아니. 난 단 한 번도 이기지 못했네. 매일같이 처참하게 박살이 났지.”

“어떻게 그런 일이!”

“그래도 난 계속 도전했네. 이길 때까지… 그리고 결국!”

“이기셨군요!

이야기에 완전히 몰입한 카일이 눈을 반짝였다.

“박살이 났지!”

“….”

“단 한 번도 못 이겼다는 말이네! 하지만 난 계속 도전하고 또 도전했지. 그리고 어느 순간 우리는 항상 함께하는 사이가 되어 있었다네. 하지만 난 그때까지 그녀가 여인이라는 사실을 알지 못했네. 그 일이 있기 전까지는 말이야.”

얼굴을 찌푸린 힐튼 남작이 말을 이었다.

“동부에서 이상한 일이 벌어졌지. 갑자기 기사들이 사라지기 시작했네. 그것도 무려 30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말이야.”

“이유도 모르는 상태로 말입니까?”

“그래. 그것도 중급 엑스퍼트 이상의 실력자들이 말이야.”

“어떻게 그런 일이!”

“아무튼 그 일 때문에 각 영지마다 비상이 걸렸지. 생각해 보게 그렇지 않아도 사람이 부족한 중소 영지에서 기사단장 급의 기사들이 속속 사라져 버렸다고 말이야. 정말이지 보통 일이 아니었지. 때문에 동부 영주들이 힘들 모아 대대적으로 용병을 모집했네. 사라진 기사들을 찾기 위해서 말이야.”

“용병을 모집하기보다는 기사들을 풀어 찾아보는 것이 좋았을 것 같은데요.”

“그러다 나머지 기사들까지 사라지면 어찌하나!”

“아, 그렇군요.”

사라진 기사를 찾기 위해 남은 기사들을 뿔뿔이 흩어놓았다가, 남은 기사들까지 사라진다면 영지는 돌이킬 수 없는 큰 타격을 입게 될 터였다. 때문에 용병들을 대규모로 모집해 사라진 기사들을 찾게 한 것이다. 용병들은 결국 골드로 움직이는 존재라, 용병들이 사라진다 해도 영주로서는 아쉬울 것이 없었다.

아니 오히려 골드를 받아갈 용병이 줄어든다면 영주로서도 나쁜 일이 아니었다.

“남작님도 그 슈안이란 분과 함께 기사들을 찾아 나선 겁니까?”

“그래. 슈안이 갑자기 사라진 기사를 찾기 위해 떠나려 하자 내가 따라나섰지. 나로서는 슈안을 이길 때까지는 절대로 옆을 떠날 수 없었으니까.”

“그럼 사라진 기사들은 찾았나요?”

“의외로 쉽게 찾았네, 사라졌던 기사 하나가 돌아와 기사들이 갇혀 있는 곳을 알려 주었거든, 해서 우리는 기사들이 갇혀 있다는 곳으로 달려갔지.”

당시 기사들이 갇혀 있었던 곳은 오랫동안 구리를 채광하던 곳으로 이미 폐광된 낡은 광산 안이었다.

“헌데 이상하지 않습니까? 기사들이 갇혀 있는 곳을 알았다면 당연히 기사단을 보내는 것이 이치에 맞을 텐데요. 왜 용병들을 보냈단 말입니까?”

“그야 함정이었으니까.”

“네?”

“영주들은 이미 알고 있었지. 이번 일이 보통 일이 아니라는 것을. 해서 용병들을 시켜 미리 함정을 파악하려 한 것이지. 자신들의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서 말이야.”

“어떻게 그런!”

화난 카일이 소리쳤다. 남작은 그런 카일을 바라보며 가볍게 미소를 지었다.

“왜 그러나?”

“몰라서 물으십니까? 함정인 줄 알면서도 용병들을 사지로 밀어 넣었지 않습니까?.”

“하하! 그래 나도 한때는 그렇게 화를 낸 적이 있었지. …하지만 말이야 용병들이 과연 몰랐다고 생각하나?”

“설마, 알고도 함정으로 뛰어들었다는 말입니까?”

“그것이 바로 돈을 좇는 용병들이지! 물론 모르고 뛰어든 용병들도 있지만, 이미 수십 년을 용병으로 굴러먹은 자들은 이미 이 상황을 짐작하고 있었다네.”

“그런데도 광산으로 뛰어들었다는 말이군요.”

“아니지, 그게 아니야. 수십 년을 용병으로 굴러먹은 자들은 쉽게 광산 안으로 뛰어들지 않았네.”

“그럼….”

“이야기하지 않았나. 돈을 좇는 자들과 아무것도 모르는 하급용병들 말이야.”

“아!”

카일은 그때서야 용병을 믿지 말라는 보일의 말을 떠올렸다. 영주들이 용병들을 미끼로 함정을 돌파하려 했던 것처럼, 상급용병들 역시 하급용병들을 방패막이로 함정을 돌파하고 이득을 취하려 한 것이다.

“그런 남작님께서는…?”

“나 말인가? 나야 슈안과 함께 하급용병들을 따라 들어간 멍청이 중 하나였지.”

카일이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으로 남작을 쳐다보았다.

“그런 눈으로 보지 말게나. 말하지 않았나? 당시에는 그저 그런 멍청이 중 하나였을 뿐이라고. 아무튼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달려 들어간 광산은 놀랍게도 마법사의 던전이었네. 정확히는 어둠의 악마를 추종하는 자의 던전이었지.”

“흑마법사!”

“그렇지! 헌데 이 마법사는… 뭐랄까 좀….”

힐튼 남작이 잠시 머뭇거리며 쉽사리 말을 잇지 못하자, 카일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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