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5.새로운 몬스터 1
시안느가 멀리 보이는 둔덕을 바라보았다. 보기에는 고원의 다른 둔덕과 비슷해 보였지만 한 가지 다른 점이 있다면, 그 주변으로 돌과 바위들이 여기저기 흩어져, 지금까지 보아오던 고원과는 다른 형태를 띠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아닙니다. 이곳은 평원이라 역풍이 불면 곧 냄새를 맡은 몬스터로 인해 위치가 드러날 수 있습니다. 따라오십시오, 멀지 않은 곳에 안전한 곳이 있습니다.”
카일이 이니엘 영애와 시안느를 데려간 곳은 돌 언덕이 보이는 높은 둔덕의 반대쪽 경사면이었다.
“여기입니다.”
“여기요?”
조금 전 있던 곳과 그리 다르지 않은 장소를 둘러보며 불신 서린 목소리로 시안느가 중얼거렸다. 보이는 것이라곤 고작 작은 바위와 무성하게 자란 잡목 군락뿐이었으니 그럴 만도 했다.
“잠시만….”
카일이 비탈면 한곳에 놓여 있는 제법 커다란 검회색의 바위를 들어 올렸다. 그러자 감춰져 있던 작은 굴이 모습을 드러냈다.
“설마 여길 들어가란 말인가요?”
“그렇습니다. 보기에는 작은 굴 같아 보이지만 안으로 들어가면 제법 넓을 겁니다.”
카일은 시안느의 대답도 듣기 전에 바닥에 엎드려 작은 굴 안으로 몸을 밀어 넣었다. 보기에는 좁게만 보이던 동굴은 덩치가 큰 카일의 몸을 순식간에 집어삼켰다.
“어어?”
카일이 대뜸 굴 안으로 사라지자 시안느가 당황한 얼굴로 카일을 삼켜버린 작은 굴을 바라보았다. 그때 뒤에 서 있던 이니엘 영애가 무릎을 굽혀 굴 안으로 몸을 밀어 넣었다.
“아가씨!”
“어차피 여기 있을 게 아니라면 따라 들어가야 하잖아요.”
이니엘은 침착하게 대꾸하더니 순식간에 안으로 사라져 버렸다. 시안느도 결국 어쩔 수 없이 이니엘 영애의 뒤를 따라 허리를 숙여 캄캄해 보이는 동굴 속으로 몸을 밀어 넣었다.
* * *
굴 안으로 들어온 시안느는 무심코 감탄사를 흘렸다.
“어!”
동굴 안쪽은 밖에서 보던 것과 전혀 달랐다. 키가 큰 카일이 서 있어도 될 정도로 높았고 성인 남자 여럿이 잠을 잘 수 있을 정도로 넓었다. 가장 놀라운 것은 동굴 위쪽에서 작은 빛들이 새어 들어와 전혀 어둡지 않다는 점이었다.
“여긴 어디죠?”
“이곳에 있는 몬스터를 감시하기 위해 만들어 놓은 은신처입니다. 처음 아버지께서 발견하셨을 때에는 두세 사람이 겨우 누울 정도로 작았죠. 그걸 제가 흙을 파고 돌을 쌓아 이렇게 넓혔습니다.”
그의 설명을 들으며 시안느는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과연 벽을 살펴보니 돌들이 촘촘히 쌓여 있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꽤 오랫동안 정성을 들인 것 같았다.
“굳이 몬스터를 살필 이유가 있었나요?”
“여기 있는 몬스터는 꽤 위험한 놈이거든요. 그래서 이들의 숫자나 이동하는 방향들을 주기적으로 살피고 있습니다.”
“그럼 가고일들이 있는 곳도 이렇게 은신처가 있나요?”
“가고일이 있는 곳은 아직 만들지 못했습니다. 가고일들은 절벽 중간에 몰려 있을 뿐 아니라 알을 품고 있는 둥지 근처의 가고일들은 무척 예민합니다. 가까이 다가가기도 어렵습니다. 그저 멀리서 살펴볼 수밖에 없죠.”
카일은 가방을 한쪽 구석진 깊숙한 곳에 내려 두고는 무장을 확인했다. 허리에는 환도와 검을 찬 후 가죽가방의 어깨끈에 메어 놓은 단검집을 풀어 팔목에 둘러 최대한 몸을 가볍게 만들었다. 그리고는 품 안 깊은 곳에 넣어두었던 가죽장갑을 양손에 끼웠다.
“혹시 모르니 나가면서 입구는 막아 놓겠습니다. 만약 제가 이틀이 지나도 돌아오지 않는다면 샤론 마을로 가십시오.”
“조심하세요.”
이니엘 영애가 걱정이 가득한 얼굴로 말하자 카일이 염려 말라듯 씩 웃어 보이곤 동굴을 벗어났다.
* * *
“그럼 가볼까?”
카일이 가벼워진 몸을 이리저리 움직이다 몸이 완전히 풀렸다고 여겨졌는지, 언덕을 망설임 없이 뛰어 내려갔다.
-조심해라.
스치는 바람을 만끽하던 카일의 머릿속으로 강한 경고의 음성이 들려 왔다.
블랙 와이번 시카니스가 위험을 미리 감지하고 알려 준 것이다.
깡- 깡-
카일이 검을 들었다. 두 번의 충격음이 울리고 카일의 측면에서 달려든 검은 그림자가 그대로 뒤로 날아가 바닥에 처박혔다. 그러나 곧장 일어나 머리를 세차게 흔들며 자세를 잔뜩 낮추며 붉어진 눈으로 카일을 노려보았다. 카일과 비슷한 체구를 지닌 몬스터는 붉게 충혈된 눈동자와 커다란 이빨을 드러내고 있었다. 보기만 해도 절로 등골이 오싹해질 정도로 흉흉한 광경이었다.
“잘 있었냐!”
카일이 화가 난 듯 털을 곤두세우고 있는 몬스터를 바라보며 호쾌하게 말했다.
“크르르~.”
“크륵, 큭.”
“크르륵~.”
그때였다.
바위와 돌무더기 주변 땅속에서 커다란 머리가 하나둘씩 밖으로 나오기 시작했다. 돌무더기나 큰 바위가 놓여 있어 자세히 관찰하지 않는 이상 몬스터들이 땅을 파 만들어 놓은 구멍을 발견할 수 없었다.
하나둘 빠져나오는 몬스터를 보던 카일은 난감함을 감추지 못했다. 생각보다 굴속에서 빠져나오는 몬스터의 숫자가 많았기 때문이었다.
“흠…. 지난번보다 숫자가 늘었는걸.”
주변을 포위하며 다가오는 몬스터를 바라보던 카일은 가장 먼저 공격을 해왔던 몬스터를 노려봤다.
“크르릉~.”
카일의 말을 알아들었는지 잔뜩 경계하며 엎드려 있던 몬스터가 천천히 몸을 일으켜 세웠다. 굳건하게 일어선 두 다리와 툭 튀어나온 입, 그 사이로 보이는 날카로운 이빨과 커다란 체구, 바짝 곤두선 거친 털 사이로 위협적으로 번뜩이는 길고 날카로운 발톱까지. 대륙에서도 거의 사라져 찾아보기 힘든 몬스터, 웨어 울프가 안광을 사납게 빛냈다.
“시간이 없으니 바로 시작해야겠다.”
스르릉
카일은 처음 웨어 울프의 공격을 막은 환도를 왼손에 쥐고 오른손으론 검을 뽑아 들었다.
-처음 본 사이가 아닌가 보군.
카일이 검을 뽑아 들자 긴장한 듯 두 걸음 물러나는 웨어 울프의 모습에 머릿속으로 블랙 와이번 시카니스의 목소리가 들려 왔다.
‘몇 번 마주친 적이 있죠. 검술을 익히려면 실전이 제일이거든요.’
-웨어 울프의 무리와 싸워본 적이 있다면 그다지 걱정할 것이 없겠군!
시카니스의 말에 카일이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사실 그때 당시엔 외부로 사냥을 나온 웨어 울프를 만난 거라…. 다섯 마리를 상대했던 게 답니다. 이렇게 본거지에 뛰어든 건 처음이에요.’
-지금… 고작 다섯 마리를 상대해 보고 웨어 울프의 본거지에 뛰어들었다는 말인가?
시카니스의 음성엔 황당함이 가득했다. 아무리 카일이 어린 나이에 비해 많은 마나를 가지고 있다고 해도, 웨어 울프 백여 마리가 무리 지어 있는 본거지로 뛰어든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 일이었다.
‘하하…. 워낙 급해서 일단은 뛰어들어봤습니다. 너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저도 나름 대비를 했으니까요.’
이건 시카니스에게 말한다기보다 카일이 자신에게 하는 다짐과 같은 것이었다. 카일도 바보가 아니었다. 다만 그가 이런 위험한 결정을 내린 건 오크를 막을 방법이 바로 웨어 울프를 끌어들이는 것뿐이었기 때문이었다.
“와라!”
카일이 소리치며 검과 도를 들어 올려 앞에 서 있는 웨어 울프에게 겨누었다.
“크와악~.”
뻣뻣하게 털을 곤두세우고 있던 웨어 울프가 그대로 공중으로 뛰어올라 발톱을 휘둘렀다.
사악-
까아앙!
카일은 공기를 가르며 정수리를 향해 다가오는 발톱을 환도로 막아냈다.
샤아악
“헛~.”
웨어 울프의 발톱은 그대로 아래로 내려가며 카일의 옆구리를 노렸다. 카일은 허리를 비틀어 공격을 피하곤 검을 휘둘렀다.
쉬익-
그러나 웨어 울프가 카일의 왼쪽으로 돌아서며 오른쪽 발톱을 휘둘렀다. 카일의 사각지대를 파고든 절묘한 공격이었다.
퍼억-
그러나 카일은 허둥지둥하지 않았다. 그는 침착하게 왼쪽 머리로 날아드는 발톱을 오른팔로 막았다.
깡-
날카로운 발톱과 카일이 팔이 충돌하며 거친 쇳소리가 울렸다. 카일이 서너 걸음 물러나 자신의 팔을 바라보았다.
팔등 위에 메어 놓은 단도집이 거칠게 뜯겨 있었다.
“너….”
카일은 당황한 얼굴로 자신의 팔과 눈앞의 웨어 울프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눈앞에 있는 웨어 울프는 다른 놈들보다 덩치도 크고 힘도 강한 놈으로 무리의 우두머리였다. 카일도 몇 번 합을 나누면서 저 웨어 울프가 다른 놈들보다 더 위협적이라는 걸 느꼈다.
그런데도 카일이 자신 있게 웨어 울프의 무리에 뛰어든 것은 웨어 울프가 집단 전투나 사냥에 뛰어나다 해도, 일단 우두머리와 싸움이 시작되면 아무리 많은 웨어 울프들이 몰려 있어도 집단으로 달려들지 않기 때문이었다.
특히 지난 몇 번의 싸움에서 카일은 항상 우세를 점했기에 이번에도 우세하게 싸울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몇 달 만에 만난 놈은 겉모습은 이전과 같이 달라진 것이 전혀 없었지만, 힘과 스피드는 확연히 달라져 있었다.
“크르릉~.”
카일이 저릿한 팔을 털며 웨어 울프를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기분 탓일까. 어쩐지 웨어 울프의 입꼬리가 올라간 것처럼 보였다.
-아무래도 쉽지 않을 것 같군.
시카니스의 음성이 머릿속을 울렸다. 카일의 얼굴이 절로 찌푸려졌다. 확실히 이번에는 쉽게 놈을 상대할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렇다고 이대로 물러날 수는 없지.”
-어쩔 생각이지?
카일은 시카니스의 물음에 대답하는 대신, 검과 도를 들어 올렸다. 그러자 우두머리 웨어 울프 역시 다시 도약하려는 듯 몸을 잔뜩 움츠렸다.
“흐아압!”
카일이 크게 소리를 지르며 그대로 뒤돌아 주변을 포위하고 있던 웨어 울프에게 달려들었다. 그걸로도 모자라 카일은 무차별적으로 검과 도를 휘두르기 시작했다.
빠르게 한발을 내 닫으며 환도를 내려그어 당황한 듯 서 있는 웨어 울프를 베어내는 것과 동시에, 또다시 한발을 앞으로 내밀며 또 다른 웨어 울프의 가슴에 검을 찔러 넣었다.
쉬익- 푹
“컹.”
“커겅~.”
두 마리의 웨어 울프가 피를 뿌리며 쓰러졌다.
하지만 카일은 멈추지 않았다. 왼손에 들려 있는 환도가 횡으로 낮게 휘둘러지며 좌측에 있는 웨어 울프의 허벅지를 베어냈다. 마지막 일격은 복부에 박혔다.
샤악
“캐앵.”
전혀 예상치 못한 공격에 웨어 울프 십여 마리가 아무런 저항도 하지 못하고 피를 뿌리며 쓰러지기 시작했다.
포위망이 급격히 무너졌다. 그 사이를 놓치지 않은 카일이 빠르게 포위망을 돌파해 남쪽으로 달려가기 시작했다.
“아우우우~.”
달음박질을 멈추지 않는 카일의 뒤로 거친 하울링이 허공을 울렸다.
그 안에는 카일에 대한 분노가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아우~.”
“아우우~.”
우두머리의 분노에 따라 수많은 웨어 울프들이 따라 울었다. 공명하는 것처럼 울리던 하울링이 멈춘 웨어 울프들은 세 방향으로 무리를 지어 카일을 뒤쫓았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분노한 웨어 울프의 우두머리가 가장 앞서 달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