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철의 용병라이더-50화 (50/404)

50.블랙 와이번 2

“죽여라.”

블랙 와이번 위에 당당하게 서 있는 검은 레더 아머를 입은 사내의 입에서 작은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그의 말은 가면 안쪽에 만들어져 있던 작은 통신구에 의해 하늘을 날고 있는 와이번 나이트들에게 전해졌다. 공중을 선회하던 골드 와이번을 타고 있던 와이번 나이트들이 일제히 아래를 향해 스피어를 날렸다.

쉬익- 퍽

쉬익- 퍽

와이번 나이트들의 스피어는 제국의 기사들의 몸에 곧장 박혀 들었다. 도저히 피할 수 없는 절벽에서 당하는 공격에 제국 기사들은 속수무책으로 떨어져 내렸다.

“아… 안돼!”

페링 남작이 깜짝 놀라 급히 소리를 질렀지만, 이미 제국의 기사들 대부분이 죽임당한 후였다. 이제 남은 병력은 부상을 당한 힐튼 남작과 일칸을 포함한 마파린 후작가의 기사 3명이 전부였다.

나머지는 모두 제국 기사와의 전투에서 사망했다. 3명의 기사들과 일칸은 힐튼 남작을 부축해 급히 바위 사이에 몸을 숨겼지만, 와이번 나이트들의 공격이 시작되면 살아남기 힘든 위치였다.

“저들은 어찌합니까?”

“모두 죽인다. 생존자는 오직 페링 남작 한 명뿐이다.”

“알겠습니다.”

사내의 말에 공중을 선회하던 와이번 나이트들이 일제히 스피어를 뽑아 들었다.

타앙

그때 기묘한 울림이 공기를 찢었다. 위풍당당하게 서 있던 사내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남자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자신의 가슴을 더듬거렸다. 어디서 어떻게 날아온 것인지도 모를, 빠른 무엇인가가 자신의 가슴을 관통하고 지나갔다는 걸 사내는 본능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끼아아악.”

곧이어 블랙 와이번이 비명 섞인 괴성을 지르며 공중을 돌더니 어디론가 빠르게 날아가기 시작했다.

탕-

또다시 폭음이 울렸다. 이번에도 또 한 명의 와이번 나이트가 피를 뿜어내는 목을 부여잡았다.

“피하라! 마법 무구다. 누군가 마법 무구를 쓴다. 흩어져라!”

통신구를 통해 누군가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공중을 날던 와이번들이 빠르게 주변으로 흩어지더니 곧이어 블랙 와이번을 쫓아 사라졌다.

“이럴 수가. 이건 아니야, 이건 아니란 말이다!”

멀리 사라져 가는 와이번 나이트들을 보며 페링 남작이 절규했다. 자신을 따르던 부하들은 물론이고 후안 백작까지 자신의 손으로 직접 죽인 상황에서 와이번 나이트들까지 모두 도망가듯이 떠나버렸다. 이제 페링 남작의 주변에는 아무도 남지 않았다. 페링 남작은 오크 랜드에 홀로 남겨져 버린 것이다.

“아무래도 그대는 이곳에서 살아 돌아가기는 틀린 것 같구려.”

와이번들이 날개를 펄럭이는 소리가 완전히 사라지자, 힐튼 남작 일행이 슬그머니 몸을 숨겼던 장소에서 나왔다.

“안… 돼!”

힐튼 남작이 검을 뽑아 들자 폐링 남작의 얼굴은 사색이 되었다. 페링 남작은 자신이 힐튼 남작의 상대가 되지 못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더군다나 자신들과 같이 온 제국의 기사는 물론이고 와이번 나이트들까지 모두 떠난 상황이라, 이대로라면 죽음을 면치 못할 것이다. 그가 후안 백작까지 죽이면서 얻으려 했던 권력이 한순간 모두 잃게 된다는 생각에 페링 남작은 그대로 몸을 돌려 달아나기 시작했다.

“우욱.”

다급히 달아나던 페링 남작을 바라보던 힐튼 남작은 내내 참았던 검은 피를 토해냈다.

“남작님!”

옆에서 힐튼 남작을 부축하고 있던 일칸이 등을 두드려 주었다. 힐튼 남작은 후안 백작과 검을 부딪치는 순간 이미 심각한 내상을 입은 상태였다.

당장 서 있기도 힘든 상황에서 페링 남작으로부터 일칸과 살아남은 기사들을 보호하기 위해 허장성세를 펼친 것뿐이었다.

척 보기에도 힐튼 남작의 상태가 정상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으나, 수하들의 죽음과 자신을 버려두고 떠나버린 와이번 나이트들로 인해 제정신이 아니었던 페링 남작은 도주를 선택하고 만 것이다.

“휴~. 와이번의 알은 어찌 되었나!”

힐튼 남작이 입가를 훔치며 물었다.

“절벽 위에서 뛰어내린 와이번 나이트가 상자를 들고 있는걸 보았습니다.”

“결국 화이트 와이번이 제국으로 갔다는 말이군. 적어도 제국의 손에 화이트 와이번의 알이 돌아가는 것은 막았어야 했는데….”

힐튼 남작이 착잡히 얼굴을 쓸어내렸다. 힐튼 남작이 피해를 감수하면서까지 제국의 기사를 공격한 것도 바로 제국으로 화이트 와이번의 알이 가게 되는 것만은 막기 위해서였다. 화이트 와이번의 알이 제국으로 간다면 사실상 왕국이 큰 피해를 볼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갑자기 나타난 와이번 나이트 때문에 어쩔 수 없었습니다.”

“허허! 처음부터 와이번의 알을 추적해서는 안 되는 일이었어. 이번 일로 너무 많은 기사를 잃었으니 말이야.”

힐튼 남작이 죽어있는 기사들을 바라보며 고개를 저었다.

“쿨럭, 커허억.”

힐튼 남작이 다시 한번 격한 기침과 함께 피를 토해냈다.

“남작님, 내상이 심각합니다. 서둘러 돌아가셔야 합니다.”

피 섞인 침을 뱉으며 힐튼 남작이 대꾸했다.

“그래, 돌아가지!”

남작의 허락이 떨어지자마자 일칸은 스피어 맞아 죽은 자들의 몸에서 두 자루의 스피어를 뽑은 후, 자신의 레더 아머를 벗어 팔 부분에 스피어를 끼워 넣어 간이 들것을 만들었다. 죽은 자들의 옷을 벗겨 들것을 만들 수도 있지만 스피어에 관통당해 핏물로 얼룩진 레더 아머로 힐튼남작이 누워갈 들것을 만들 수는 없었다. 초라했으나 힐튼 남작은 불평하지 않았다. 이게 최선이라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이었다. 남작이 들것에 몸을 누이자마자 일간이 외쳤다.

“가자! 서둘러야 한다.”

기사들은 조심스레 들것을 들어 올려 샤론 마을을 향해 발걸음을 재촉했다.

* * *

“흑흑~.”

이니엘 영애와 시안느가 주안 기사단장의 주검 앞에 앉아 눈물을 흘렸다. 카일이 절벽을 내려왔을 때, 주안은 이미 싸늘한 시체로 변해 있었다.

“오늘은 이곳에서 머물러야 합니다. 일단 저는 아래를 살펴보고 오겠습니다.”

씁쓸했는지 카일은 입술을 질겅질겅 씹더니 밧줄을 절벽 아래로 내렸다. 갖은 고생을 하며 절벽을 오를 때보다 지금이 훨씬 수월했다. 후안 백작이 절벽에 박아놓은 스피어 덕이었다.

“흠….”

마침내 땅을 밟은 카일은 얼굴을 찌푸렸다. 절벽 아래에는 수십 구의 시체들이 처참하게 흩어져 있었다.

대부분 암벽을 등반하던 중 하늘에서 떨어진 스피어에 맞아 절벽에서 떨어져 내렸기 때문이었다.

카일은 주변에 널려있는 시체를 보며 잠시 애도하듯 눈을 감았다 떴다. 그리고는 시체에 박혀 있거나 등 뒤로 매어져 있는 스피어를 비롯한 무구들을 모았다.

이곳에 수많은 시체가 널려있었다. 그렇다면 피 냄새를 맡고 언제 몬스터, 특히 오크들이 몰려올지 몰랐다. 그전에 시체에서 무기를 걷어 들여야 했다.

제국의 기사들이 달려오며 주변의 오크들을 몰살시켰을 테지만 언제 다시 오크들이 몰려들지 몰랐다. 오크들의 손에 무기가 들어가지 않게 수거하는 일은 자경대에서는 전투가 끝난 후 반드시 거치는 일상적인 일이었다.

더군다나 지금 바닥에 널려있는 무구들은 모두 제국 황실에 사용하는 값비싼 물건들이었기에 내버려 둘 생각도 없었다.

“응?”

한참을 돌아다니며 스피어는 물론이고 검을 비롯한 기사들이 가지고 있던 무구를 모으고 있던 카일의 눈에 푸른빛이 깜박이는 물체가 눈에 들어왔다.

카일은 홀린 듯이 빛을 뿜어내는 물체에 다가갔다. 푸른색의 보석 위에 기하학적인 문양을 그려 넣은 목걸이였다.

“맹약석!”

아마도 힐튼 남작이 급히 이곳을 떠나다가 떨어트리고 간 것 같았다. 카일은 급히 절벽 위를 바라보다 누가 볼 새라 맹약석을 얼른 옷 안으로 집어넣었다.

* * *

“지금 뭘 하는 거죠?”

카일은 바리바리 싸든 무기를 흘리지 않도록 주의하면서 힘겹게 절벽을 등반했다. 가상한 노력이 통했는지 무기는 하나도 떨어지지 않고 무사히 절벽 위에 도착했다. 무기를 내려놓는 카일에게 어느새 시안느가 다가와 차갑게 물었다.

주안 기사단장이 목숨을 잃은 상황에서도 기사들의 값비싼 무구를 챙기고 있는 카일의 모습에 화가 났기 때문이었다.

“보시는 것처럼 기사들의 무구를 걷어 들이고 있습니다.”

“비록 적들이라고 하지만 기사들과 평생을 함께한 물건이에요.”

“그렇습니다. 하지만 이미 죽어 사용할 수 없는 무기이기도 하지요.”

시안느의 말에 무덤덤하게 대꾸하며 카일은 밧줄에 묶어둔 무기들까지 하나둘 절벽 위로 끌어올렸다.

“당신… 정말!”

시안느는 화를 참지 못하고 뒤돌아 가버렸다. 카일은 그런 시안느를 일별하고 묵묵히 무구들을 끌어 올리는 작업에 열중했다.

“미안해요. 기사단장 때문에 예민해져서 그래요.”

언제 다가왔는지 이니엘 영애가 카일에게 나지막이 말했다.

“괜찮습니다. 영애께서는 제가 죽은 기사들의 값비싼 무기들을 챙기는 속물처럼 보이지 않습니까?

“어차피 죽은 자들인걸요. 더군다나 전투에 이긴 승자가 취할 수 있는 당연한 권리라고 알고 있어요. 전쟁에서는 흔한 일인걸요”

“전리품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그래요. 전투에서 승리하면 상대가 가지고 있던 무기들을 챙기는 일은 얼마든지 있다고 알고 있어요.”

묘하게 다르긴 했지만, 완전히 틀린 말은 아니었다. 어찌 보면 이것 또한 전리품이라면 전리품일 수 있었다.

“전리품이라…. 그렇군요. 그렇게 볼 수도 있겠네요.”

“…무기를 수거한 다른 이유가 있군요. 그러고 보면 정말 값비싼 무구들은 정작 챙기지 않았네요.”

“예?”

“붉은 트롤 가죽으로 만든 레더 아머 말이에요. 언젠가 들어 본 적이 있어요. 제국 황실의 기사들이 입는 붉은 트롤 가죽으로 만든 레더 아머는, 값으로 매길 수 없을 정도로 귀한 갑옷이라고요.”

“그런 건 대체 어디서 알게 되신 겁니까?”

“제 가문은 그린넨 백작 가문이에요. 대대로 이어 내려오는 상인 가문이죠. 오래전 우리 가문은 전쟁터에서 병사들이나 기사들로부터 전리품을 거둬들여, 제물을 모아 지금의 백작가를 이루었어요. 이 정도는 얼마든지 알고 있어요.”

“그렇군요.”

새로운 정보였다. 카일이 짐짓 흥미로운 표정을 지었다.

“이제 말해 보세요. 제가 붉은 트롤 가죽 갑옷에 대해 말했을 때 놀라지 않은 걸 보면 이미 그것들의 값어치를 알고 있었단 거잖아요. 그런데도 벗겨오지 않은 걸 보니, 무기들을 가져온 이유가 단순히 전리품 때문만은 아닌 것 같은데…. 감추고 있는 이유가 뭐죠?”

“딱히 중요해서 감춘 것은 아닙니다. 이곳 오크 랜드처럼 오크와의 전투가 일상적인 곳은, 전투가 끝나면 일 순위로 하는 일이 바로 부상자들을 챙기고 무기를 수거하는 것이거든요.”

“혹시 무기 수거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이유가 있나요?”

이니엘 영애의 물음에 당연하다는 것처럼 카일이 대꾸했다.

“금속 무구들이 되도록 오크들에게 흘러 들어가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죠. 특히 이렇게 튼튼하고 값비싼 무기들이 오크들 손에 들어갈 경우에는, 마을 사람들이 큰 피해를 입을 수도 있으니까요.”

“아! 그렇군요. 오크들은 금속 무기를 제련할 수 없으니….”

“…물론 이 무구들이 값비싼 무구들이란 점은 부인할 생각은 없으니, 그냥 전리품이라 생각하시면 됩니다.”

카일은 자리에서 일어나 꽤 멀쩡해 보이는 무기들을 한쪽에 쌓아두었다. 무려 백여 자루에 달하는 양으로 전투가 얼마나 격렬했는지 알 수 있었다. 카일은 한쪽에 쌓아둔 스피어를 보며 고개를 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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