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제 검술도 욕심납니까
뒤쪽과 옆에서 달려드는 검을 무시한 카일은 오히려 앞에서 다가오는 검을 향해 폭발적으로 마주 달려들었다.
창-
카일은 상체를 살짝 틀어 찔러 오는 검을 쳐내는 것과 동시에, 검을 잡은 손목을 베어버리고는 상대의 앞으로 스치듯이 빠져나갔다.
“크악!”
한꺼번에 세 곳에서 공격이 들어갔지만 카일은 오직 한 방향으로 순식간에 치고 나가며, 빠르게 손목만 베어버리고 상대를 지나쳐버렸다. 그러자 뒤와 옆쪽에서 달려들던 남은 두 명은 손목을 붙잡은 동료에 막혀 공격이 제대로 이룰 수 없었다.
“폰티!”
폴론이 급히 폰티를 바라보았지만 이미 폰티의 손목은 깨끗하게 잘려나가 있었다. 격분한 폴론이 카일을 노려봤다. 그새 몸을 돌린 카일은 아무 일 없다는 듯 환도를 두 손으로 말아 쥐고 머리 위로 들어 올린 채 폴론 일행을 싸늘하게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얼굴을 일그러트린 폴론은 손목을 붙잡은 폰티와 검을 들고 있는 카일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방금 폴론은 카일을 순간적으로 놓쳤다. 아니 카일이 움직이는 모습은 분명 보았지만 정작 어떤 식으로 검이 움직였는지는 보지 못했을 정도로 빠른 검이었다.
검술의 위력이 어찌나 대단한지 오러를 두르지 않았으면서도, 공격당한 부위가 깨끗하게 절단되었다. 정말이지 강력한 검술이었다.
보통 소드 유저끼리 맞붙을 땐 이런 큰 상처보다는 급소가 찔려 상처 입는 경우가 많았다. 이렇게 신체의 일부가 절단되는 상처는 오러를 이용한 공격에서 나타나는 경우가 종종 있을 뿐이었다.
즉 녀석이 펼치는 검술 자체가 지금까지 본 적 없는 독특한 형식의 검술이란 소리였다.
지금껏 보일에게 가르침을 받은 폴론은 그 형태나 방식이 보일의 검술과는 전혀 다르단 것을 확신할 수 있었다.
“그 검술은… 뭐지?”
폴론의 말에 카일이 머리 위로 치켜들고 있던 환도를 천천히 내렸다.
“휴~. 이젠 아버지의 검술도 모자라서 제 검술도 욕심납니까?”
카일의 말에 폴론은 자신의 귀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설마 직접 검술을 만들었단 말이냐!”
놀란 폴론이 소리쳤다. 카일은 대꾸하지 않고 그저 미소만 지을 뿐이었다.
그리고 이런 폴론의 외침에 놀란 또 다른 존재는 바로 기사단장 켈토와 수행기사 볼란이었다.
* * *
“다, 단장님 들으셨습니까? 저 아이가 방금 사용한 검술을 직접 만들었답니다.”
수행기사 볼란은 입을 딱 벌린 채 단장을 바라보았다. 기사단장 켈토 역시 놀란 기색을 지우지 못하고 카일 쪽을 유심히 바라보았다.
방금 목격한 검술 동작은 켈토의 생각을 뒤집는 검술이었다.
검술은 튼튼한 하체를 기반 삼아 허리와 손목, 그리고 팔로 이어지는 선을 중심으로 변화를 주는 것이 보통이었다.
그러나 카일이 보여준 검술은 발의 스텝에서 상체와 팔 그리고 손목까지, 신체의 모든 부위가 변화와 공격에 사용되고 있었다.
고요한 정적인 동작에서 공격 시 순간적으로 모든 힘을 집중해 폭발적인 움직임과 스피드로 상대를 공격하는 동시에 회피가 이루어질 수 있었던 것이다. 또한 다수에게 포위되어 공격을 받는 상황에서도 오히려 상대에게 1대1 상황을 강요하며, 사방에서 들어오는 공격을 회피하면서도 정면으로 상대한 자를 무력화 시킬 수 있던 것이다.
무엇보다 베기 동작이 크고 단순하면서도 공격 범위가 넓어, 상대가 피하기도 쉽지 않은 대단히 강력한 검술이었다.
“허~. 정작 보물은 보일의 검술이 아니라 저 아이였군. 보일에게 저런 아들이 있었다니….”
기사단장의 한탄을 들으며 수행기사 볼란은 카일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 * *
카일은 다시 환도를 들어 올렸다. 그의 검술은 이전 생에서 배운 검술이라 딱히 어디서 배웠다고 말할 수 없었다. 그렇다고 자신이 만들었다고 하기에도 어색한 일이라, 카일은 그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다른 이들이 받아들이기에는 결국 카일이 만든 검술로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재빨리 머리를 굴린 폴론은 다시 검을 들어 올리며 투스를 향해 말했다.
“이젠 정면 공격뿐이다.”
폴론의 말에 투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만약 다시 앞뒤로 공격한다면 카일은 분명 또다시 앞으로 튀어 나가 정면 공격을 벌일 것이 분명해 보였다. 그렇게 되면 뒤에서 공격하는 사람은 카일을 놓치고, 정면의 사람만이 카일을 상대하는 1대1의 상황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만약 이곳이 좁은 건물 안이라면 앞뒤의 공격도 가능할 것 같았지만, 사방이 트인 넓은 공간이라 카일의 스피드를 따라갈 수 없을 터였다.
폴론은 먼저 앞에서 검을 사선으로 짧게 올려치며 카일을 공격해 들어갔다. 카일의 환도가 빠르게 폴론의 머리 위로 떨어져 내렸다. 폴론이 놀란 얼굴로 급히 검을 들어 올렸다.
창-
폴론의 검과 가볍게 부딪친 카일의 환도가 튕기듯이 다시 위로 올라갔다가 회전하는 카일의 몸을 따라, 우측에서 공격해 들어오는 투스의 좌측 어깨를 향해 강하게 떨어져 내렸다. 투스가 놀라 급히 뒤로 물러나자 카일의 검이 아슬아슬하게 투스의 어께를 비켜나갔다.
“헉~. 헉~.”
정교한 합격을 보여주는 것처럼 폴론과 투스는 카일을 공격하고 있었으나, 두 사람의 체력은 급격하게 떨어지고 있었다. 카일의 검술이 워낙 빠르고 파괴적일 뿐만 아니라 기괴한 궤적을 그리고 있어 검이 언제 어느 방향으로 향할지 알 수가 없기 때문이었다.
“벌써 지친 겁니까? 조심하세요, 그러다 제 칼에 팔목이 날릴 수 있으니.”
“이 녀석이! 잡히면 가만히 안 두겠다.”
투스가 화가 난 얼굴로 당장 카일에게 달려가려 했지만 폴론이 급히 그의 앞을 막았다.
“그만. 놈이 널 도발해 먼저 공격하게 하려는 것이다. 지금 달려들면 놈에게 당한다.”
폴론이 심각한 표정으로 카일을 바라보며 말했다. 폴론은 이미 이번 일이 실패했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만약 처음부터 카일의 검술이 이렇게 뛰어나다는 사실을 알았다면 매튜를 배신하면서까지 이번 일에 가담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음…. 전 이렇게 가만히 있어도 되지만 두 사람은 다르지 않나요?”
고개를 쭉 빼든 카일이 폴론의 뒤쪽을 바라보며 말했다.
“형님, 서둘러야 합니다!”
“으음….”
폴론은 짧은 신음을 삼키며 검을 들어 올렸다. 이미 마음으로는 이번 일이 실패했다고 생각하고는 있지만 카일만 사로잡을 수 있다면 마지막 반전을 노릴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폴론으로서도 어차피 더는 물러설 곳도 없었다. 투스의 말대로 서둘러 카일을 잡아야만 했다.
“가자! 투스”
“예!”
폴론과 투스가 검을 세우며 빠르게 달려들었다. 이전과는 다른 격렬하고 치명적인 검과 환도가 오갔다. 그러나 이번에는 단 한 번도 검 격이 부딪히는 소리가 울리지 않았다. 폴론과 투스 두 사람 모두 더 이상 상처 없이 카일을 사로잡는다는 생각은 버렸다. 그래서인지 더욱 과격하면서도 치명적인 검격이 오가며 오히려 검과 검이 부딪치는 상황은 줄어들었다. 오직 거친 숨소리만이 오가는 카일과 폴론 그리고 투스의 대결이었다.
이와는 정반대로 보일과 쟝 그리고 조셉의 대결은 이제 일방적으로 쟝과 조셉이 몰리고 있었다.
마치 장난처럼 휘둘러진 보일의 검격에 쟝과 조셉은 바닥을 굴러 피해 다니는 것이 고작이었다.
“이! 멍청한 녀석들! 이 정도로 자만해서 나에게 검을 들이민 것이냐? 당장 일어나 다시 검을 들고 찔러 보거라!”
보일은 힘겹게 일어난 조셉의 정강이를 걷어차며 중심이 무너트리고는 검면으로 사정없이 얼굴을 날려버렸다. 조셉은 뒤로 넘어가 피를 뿌리며 바닥을 뒹굴다가 그대로 정신을 잃어버렸다.
“조셉!”
비틀거리며 서 있던 쟝이 조셉을 걱정스러운 듯 힘겹게 불렀지만, 대답은 없었다.
그때 어느새 다가온 보일이 쟝의 검을 올려 치며 열린 가슴으로 주먹을 날렸다.
“컥~!”
“흥. 네놈이 저 녀석을 걱정할 때냐!”
바닥을 나뒹구는 쟝에게 다가간 보일은 발을 들어 얼굴을 차버렸다. 다시 몇 번을 무력하게 맞고 있던 쟝 역시 결국 움직이지 않았다.
보일이 쓰러진 쟝과 조셉을 한번 쓱 쳐다보다가, 고개를 돌려 카일이 대결을 펼치는 곳 주변에 널브러진 세 명에게 다가갔다.
“녀석, 과감하게 손을 썼군!”
다소 안타깝단 표정을 지은 보일은 집 안으로 들어가 간단한 약초와 천을 가지고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는 쓰러진 녀석들을 간단하게 치료하기 시작했다.
카일이 비록 과감하게 손을 쓰기는 했지만 다행히 죽은 사람은 없었다.
다만 다시 검을 들기는 어려울 정도로 중상을 입혀 놓았다. 처음 단도로 배에서부터 가슴까지 사선으로 그어놓은 두 명은 교묘하게 어깨와 팔이 연결되는 급소의 힘줄을 모두 끊어놓았다. 앞으로 한쪽 팔을 움직이는 것은 거의 불가능해 보였다. 남은 한 명 역시 검을 쓰는 손을 깔끔하게 잘라놓았다.
세 명 모두 일부러 검 쓰는 팔을 망가트려 놓은 것 같았다.
사실상 검사로서의 생명은 끝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래도 살려 놓은 게 다행인가?”
보일은 아직도 대결을 펼치는 카일을 보았다.
보일이야 이들과 수십 년의 관계를 쌓았지만 카일은 이들과 깊은 교류를 가진 것은 아니었다.
어려서 간단한 몇 가지 검술을 배우긴 했으나 본래 카일은 검술에 그다지 관심이 없었다. 더군다나 이들은 외곽 순찰로 외부에 나가 있는 일이 많아 고작 안면이 있는 정도에 불과했다. 마음을 다잡은 카일이 검술을 제대로 배울 무렵엔 집에서 검술만 익히거나, 타론의 대장간을 나가는 것이 전부라 이들과 만날 일 역시 없었다.
최근 1년간 보일 따라 마을 외곽순찰을 돌긴 했으나 그때도 간혹 인사를 하는 정도였다. 관계만 따진다면 그저 얼굴을 익힌 사람들뿐인 것이다.
쓰러진 녀석들을 대충 치료해준 보일은 한쪽에다 놈들을 던져 놓곤 잘라놓은 통나무 위에 팔짱을 낀 채 앉아 카일의 대결을 바라보았다.
그러다가 한순간 잠시 시선을 돌려 먼 곳을 응시했다.
* * *
기사단장 캘토는 고개를 흔들었다. 이미 이번 계획은 확실히 실패했다. 소득이 있다면 보일의 아들인 카일이 대단한 인재라는 사실을 알았다는 정도에 불과했다.
흠칫
답답한 마음에 기사단장이 고개를 들었다. 그 순간 보일과 눈이 마주친 것 같다는 느낌이 들어 그는 한순간 몸을 딱딱하게 굳혔다.
“다… 단장님…. 보일 대장이 이곳을 보는 것 같은데요?”
볼란의 말에 켈토는 보일의 시선이 확실히 자신과 볼란을 보고 있다는 확신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지금 보일과 자신의 거리는 중급 엑스퍼트로서 위치를 파악하기 어려운 곳이었다. 이곳은 거리도 거리지만 나무가 우거진 어두운 그늘이 만들어진 곳이었다. 절대 중급 엑스퍼트의 실력으로 파악할 위치가 아니었다.
“설마!”
서서히 캘도의 얼굴이 일그러지는 것을 확인한 볼란이 떨리는 목소리로 말하자 켈토는 그저 고개를 저으며 돌아섰다.
“이곳을 벗어난다. 서둘러라!”
“예!”
켈토의 말에도 굳어 있던 볼란이 고개를 흔들며 급히 켈토의 뒤를 따라 달려가며 중얼거렸다.
“상…급 엑스퍼트!”
보일은 사라지는 켈토와 기사 볼란을 보며 살짝 미소 지었다.
* * *
“확실히 다른 느낌이군.”
보일은 몇 달 전에는 상상할 수도 없었던 기감과 신체적인 능력에 요즘도 가끔 놀랄 때가 있었다. 이에 적응하기 위해 몇 달 전부터 오크들의 마을을 찾아 토벌하면서 실전적인 감각을 높이고 있었다.
덕분에 요 몇 달간 오크토벌은 더욱 살벌하고 치열해졌다. 보일이 카일을 걱정하지 않은 것도 이미 십수 마리의 오크를 혼자서 상대할 정도로 그의 검술이 정교하고 빨랐기 때문이었다.
수많은 오크와 전투를 벌이며 다수를 상대하는 법을 자연스럽게 익히면서 폴란과 투스를 상대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본래 카일은 상대의 공격을 되받아 공격하는 방식을 선호했지만, 이 방법을 사용하면 아무리 두껍게 만든 환도라고 하더라도 검신이 오래 버티지 못하고 부서져 버렸다.
이래서는 오랜 시간 많은 오크를 상대할 수 없어 차츰 무기를 서로 부딪치지 않고 상대의 공격을 회피하며, 반격할 때 상대의 무기를 튕겨 상대를 공격하거나 급격히 방향을 바꿔 사각지대를 공격하는 방법을 주로 사용하고 있었다.
그러나 정작 보일이 대단하게 생각하는 것은 따로 있었다.
“이제 슬슬 나올 때가 되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