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철의 용병라이더-2화 (2/404)

02.분노

최일은 그때서야 두 사내가 바로 그녀의 오빠들이란 사실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자신이 무엇으로 얻어맞았는지도 알게 되었다.

갑작스러운 공격에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죽도였다.

“잠시 전지훈련 갔다 왔더니 별 시답지 않은 것이 감히 내 동생에게 접근해?”

사내의 거친 말에 최일은 고개를 들고 사내를 노려보면서 말했다.

“고아는 사람도 아닙니까? 당신들도 부모 잘 만난 것 빼면 별 볼일도 없으면서.”

“뭐? 이 자식이.”

다시 사내가 죽도를 들어 올리자 뒤에 서 있던 사내가 손을 들어 올렸다.

“그만.”

“그만이라니, 형! 이런 자식은 더 밟아 줘야 정신을 차린단 말이야.”

분에 못 이겨 식식거리던 사내가 다시 죽도를 들어 올렸다.

그때였다.

지금까지 속수무책으로 맞고만 있던 최일이 재빨리 일어나 죽도를 들어 올린 사내의 품 안으로 파고들었다.

“어! 조심….”

뒤에 있던 사내가 다급하게 소리쳤지만 이미 최일이 왼발을 사내의 다리 사이로 밀어 넣은 뒤였다. 재빠른 몸놀림이었다.

“뭐야?”

죽도를 들고 있던 사내가 당황한 얼굴로 아래를 내려 보았다. 그러나 그때는 이미 늦은 후였다. 외발을 지지대로 삼은 최일은 그대로 어깨로 온 힘을 다해 힘껏 사내의 몸을 밀어냈다.

“허억.”

-쿵-

“컥!”

거구의 몸뚱이가 그대로 바닥에서 떠올라 일 미터 이상 날아가더니 바닥에 처박히며 땅바닥을 뒹굴었다.

갑작스러운 기습으로 제대로 대처도 하지 못하고 바닥에 떨어져, 충격이 상당한지 남자는 한동안 바닥에서 일어나지 못했다.

최일은 재빨리 달려가 떨어진 죽도를 집어 들고는 쓰러진 사내를 향해 무차별적으로 내려쳤다.

퍽- 퍽- 퍽-

사내는 처음 최일이 그랬던 것처럼 급히 머리를 보호하듯이 감싸며 일어나 달려들려 했다. 그러나 최일은 재빨리 사내를 피하며 죽도를 휘둘렀다. 쏟아지는 매질 속에 사내는 다시 바닥에 엎드려 몸을 잔뜩 웅크렸다.

퍼억-

“커억~.”

“죽일 놈들. 네놈들이 잘나면 얼마나 잘났다고 사람을 무시하는 거냐. 너도 한번 맞아 봐라.”

퍼억-

“악! 넌 잡히면 죽을 줄… 아악! 네놈이 기습만 하지 않았어도 넌 내 손에 죽었어!”

“네놈은 기습해도 괜찮고 난 안 된단 말이냐!”

최일이 화가 난 얼굴로 죽도를 내려쳤다. 소망원에서야 귀여움을 받으며 살아왔지만 바깥의 세상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학교를 다닐 때도, 공장을 다닐 때도, 언제나 부모가 없다는 이유로 멸시와 차별을 받아왔던 최일은 독해질 수밖에 없었다.

퍼퍽-

그때 뒤에서 지켜보고만 있던 사내가 빠르게 다가와 최일을 향해 죽도를 내려쳤다.

“커억~.”

순식간에 손목과 허리 그리고 어깨를 두들겨 맞은 최일은 죽도를 떨어트리며 황급히 뒤로 물러났다. 쓰러진 사내에게 죽도를 휘두르면서도 최일은 뒤에 서 있는 사내를 의식하고 있었다. 그 나름대로 대비를 하고 있던 셈이다.

그러나 워낙 사내의 움직임이 빠르고 절묘해서 순식간에 당하고 만 것이다.

“제법이군! 나 말고 명도를 이렇게까지 두들겨 팬 놈은 네가 처음이다.”

사내가 죽도를 어깨에 걸치며 말했다.

그때였다.

지금껏 쓰러져 있던 남명도가 벌떡 일어났다.

“이 자식, 죽여 버리겠어.”

바닥에 떨어진 죽도를 집어 든 그는 최일에게 달려들려 했다.

최악의 상황이다.

최일로서는 남명도가 공격하면 제대로 방어할 방법이 없었다.

방심한 사이 기습적으로 공격해 우위를 점했지만, 신체적으로만 보아도 최일은 남명도의 상대가 될 수 없었다.

“그만!”

그때 뒤에 서 있던 사내가 남명도를 보며 말했다. 그러나 남명도는 멈추지 않고 최일을 향해 달려들었다.

“남명도. 분명 그만하라고 했다. 내 말이 들리지 않아!”

뒤에서 있던 사내가 다소 화가 난 목소리로 소리쳤다. 그제야 남명도는 천천히 죽도를 내리며 물러섰다.

“내 이름은 남명철이다. 그리고 저쪽은 남명도. 모두 남혜원의 오빠들이지.”

자신을 남명철이라 소개한 남자는 천천히 최일에게 다가갔다.

“방금 명철이를 날려버린 동작, 태극권 같은데 맞나?”

남명철의 말에 최일이 경계의 눈빛을 보내며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어릴 적부터 태극권을 수련해 오긴 했으나 실전에 사용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어린 시절 건강을 걱정한 원장 아빠가 배우게 한 운동이었다. 과격한 운동은 되려 독이 될 수 있어, 친분을 가진 태극권 사범을 통해 신중히 익힌 전통 진식 태극권이었다.

그러나 태극권이 실전에서 실제로 도움이 될 거라고는 단 한 번도 생각한 적 없었다. 다만 건강을 생각해 꾸준히 수련해오고 있을 뿐이었다.

이번에 남명도를 날려버린 것도 방심한 상태라 가능한 것이지, 실제 싸움에서 사용하기 힘든 동작이었다.

“하하! 역시 태극권이군! 중국 친구들이 하는 걸 몇 번 보긴 했지만…. 명도가 태극권에 쓰러질 줄은 몰랐어.”

“그건! 저 녀석이 갑자기 기습해서….”

“그만! 변명은 집어치워!”

남명철이 최일을 위아래로 훑어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우린 부모를 잘 만났다. 그러나 우리 형제는 부모만 잘 만난 게 아니다. 우리 형제들 모두 최선을 다해 노력해 왔다. 네가 얼마나 최선을 다해 살아왔는지 난 알 수 없지만 그래도 명도를 쓰러트렸으니 너에게 기회를 주겠다. 1년의 시간을 주겠다. 그 안에 저 녀석을 정정당당한 대결로 쓰러트려 보아라. 그럼 내가 책임지고 혜원이와 만날 수 있게 도와주지.”

남명철이 최일을 내려다보다 몸을 돌려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형의 뒤를 따라가던 남명도가 비웃음이 가득한 얼굴로 최일을 돌아보며 말했다.

“만약 네 녀석이 1년 안에 날 쓰러트리면 나 역시 네 놈과 혜원이 사귀는 걸 도와주지! 참고로 난 지난해 전국 검도 대회에서 3위 했다는 것만 알아둬라! 비록 방심한 틈에 공격을 당했지만, 정식으로 붙으면 다를 거야! 물론 큰형은 우승을 했지만 말이야. 크크.”

남명도는 최일을 한껏 비웃으며 죽도를 어깨에 걸치고는 천천히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그때부터였다.

최일이 검도를 배우기 시작한 것이, 마침 인근에 오래전부터 소망 도예와 친분이 있던 검도 사범이 있던 게 천운이었다.

* * *

“핫!”

탁- 탁- 타악-

머리 위로 들어 올린 죽도를 힘차게 내리쳤다. 방울방울 흘러내린 땀방울이 바닥을 흥건히 적셨다. 지친 지 오래였으나 남명도의 비웃음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아, 죽도를 멈출 수가 없었다.

‘검도 3위라고 했지. 좋아! 네놈이 자신 있어 하는 검도로 쓰러트려 주겠어. 난 절대 지지 않아. 두고 보란 말이야!’

아무 생각도 없었다. 그저 가슴 속에 가득 쌓인 분노를 털어내듯이 죽도를 또다시 힘껏 내려쳤다.

그리고 그렇게 지쳐 집으로 돌아오면 쓰러지듯이 잠이 들고는 했다.

그 당시에는 그것만이 유일한 방법이었다.

최일은 도서관도 잊었다.

대학교 진학도 잊었다.

새벽같이 일어나 도장에서 죽도를 휘두를 뿐이었다. 직장에서 퇴근한 뒤에도 도장으로 향해 밤늦게까지 다시 죽도를 휘둘렀다.

“일아. 그러다가 몸 상한다. 무엇보다 검은 그렇게 다루는 게 아니야.”

최일에게 다가간 검도 사범이 걱정 어린 말을 하며 타이르기도 하고 화를 내보기도 했지만, 분노에 사로잡혀 있는 최일은 못 들은 척 그저 미친 듯이 죽도를 휘둘렀다. 그러다 보니 정작 이번 일의 계기가 되었던 남혜원과의 사이는 점점 멀어져 갔다.

대학에 합격한 후 달라진 일상에 적응하며 바쁜 하루를 보내는 그녀와 달리 여전히 검에 미쳐 죽도만 휘두르는 최일과는 이제 연락이 거의 끊어질 지경이 되었으나, 최일의 일상은 바뀐 것이 없었다.

다람쥐 쳇바퀴 돌리듯 똑같은 일상의 반복이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가던 어느 날. 그는 우연히 멀리서 걸어가던 남혜원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어느새 그녀의 옆엔 큰 키에 잘생긴 남자가 서 있었다. 행복하게 웃던 그녀를 최일은 아무런 감정도 담기지 않은 눈으로 가만히 바라보았다.

‘아. 아무렇지도 않구나. 정말 아무런 기분도 들지 않아.’

정말 그녀를 사랑하기는 한 걸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덤덤하기만 했다.

어쩌면 이렇게 잊히리라는 걸 알고 있었던 것 같기도 했다. 그저 부모 없는 자식, 고아라는 말 한마디에 울분이 일었는지 몰랐다.

어쩌면 1년 동안 남명도라는 인물을 쓰러트리기 위해 밤낮으로 죽도를 휘둘렀지만, 남혜원에 대한 사랑은 까맣게 잊어버린 채 분노에만 사로잡혀 죽도를 휘두르던 자신에 대해 화가 난 것일 수도 있었다.

그 뒤로 최일은 며칠을 공장에 출근도 하지 않고 멍하니 방안에 앉아있었다. 몇 날 며칠을 식물처럼 살던 그는 무언가 마음을 굳힌 듯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는 곧장 군대에 자원입대 신청을 했다.

* * *

군대는 최일에게 일상의 도피처로 선택한 곳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군대 생활은 최일에게 더없이 잘 맞았다.

비록 자유로운 일상생활은 빼앗겼지만 적어도 겉으로는 누구도 자신을 고아라 무시하지 않았으니까.

1년간 밤낮으로 죽도를 휘두르다 보니 체력과 지구력이 좋아졌는지 훈련도 그리 힘들지 않았다.

무엇보다 집중력이 좋아서인지 사단 집체훈련에서도 사격으로 실력을 인정받을 정도로 뛰어난 능력을 보여 주었다.

“최일. 이리 와봐.”

“일병 최일! 부르셨습니까?”

“너! 혹시 부사관 될 생각 없냐?”

갑작스러운 부사관 제안에 최일이 당황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부사관 말입니까?”

“그래. 요즘 나가면 취직도 힘들잖아! 지금은 예전처럼 군 생활도 힘들지 않고… 나름 할 만 한데. 어때?”

“…한 번도 생각해보지 못했습니다.”

“그래, 그래. 지금부터라도 생각해보라고! 알지? 부사관 지원서에 서명만 하면 곧장 남은 휴가, 바로 다 쓸 수 있는 거.”

“알고 있습니다.”

최일이 고개를 끄덕였다. 바로 확답을 내리지 않은 탓인지 그 뒤로도 중대 행정보급관에게서 부사관에 대한 권유가 끊임없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계속된 권유에 최일 역시 부사관 지원에 대해 긍정적으로 고민하기 시작했다.

“최일!”

“일병 최일!”

아침 구보 후 돌아오자마자 소대장이 급히 최 일을 찾았다.

“너 연대에 다녀와야 할 것 같다.”

“연대 말입니까?”

“그래. 너 분대장하고 부사관 지원하는 일로 상의 했다며?”

소대장의 말에 최일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얼마 전 행정보급관님으로부터 제안을 받았습니다.”

“그래. 그러니 연대에 다녀와라. 이번에 특전부사관을 뽑는다고 각 중대에서 실력 좋은 병사들 차출해서 연대로 보내라고 공문이 왔다. 넌 이번 집체 교육에서도 사격으로는 연대에서도 손에 꼽을 정도로 실력이 뛰어났고, 부사관도 생각 중이니 네가 가는 게 좋을 것 같다.”

“특전부사관 말입니까?”

“그래. 그러니 한번 다녀와.”

“알겠습니다.”

최일이 물러가자 소대장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이거 당분간 행정보급관 피해 다녀야겠는걸. 자기 사람 빼앗아 갔다고 한동안 난리 칠 것 같으니.”

소대장이 벌써부터 행정보급관에게 들을 잔소리가 들리는지 몸을 한차례 부르르 떨었다.

“당분간은 피해 다녀야 할지도… 그런데 설마 진짜 특전 부사관에 지원하는 건 아니겠지?”

잠시 최일이 닫고나간 문을 바라보던 소대장이 고개를 흔들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 * *

아침 식사를 마치자마자 최일은 각 중대에서 뽑은 몇 명의 병사들과 함께, 대대 정보장교의 인솔을 받으며 연대로 향했다.

이번에 연대로 향하는 병사는 총 4명의 병사였다. 최일을 제외하고는 다들 상병의 계급을 달고 있었다. 일병은 그가 유일했다.

“쉬어~.”

연대장 집무실 한쪽에는 연대장과 함께 소령의 계급을 달고 있는 30대 중후반쯤은 되어 보이는 건장한 체구의 사내가 앉아있었다.

“그럼 이야기들 나누지. 난 잠시 나가 있겠네.”

“감사합니다. 충성!”

소령계급의 사내가 연대장에게 경례를 붙이자 연대장이 손을 저으며 밖으로 나갔다. 소령은 다시 자리에 앉았다.

“모두 착석하지.”

소령이 앞쪽에 있는 의자를 가리키며 말하자 병사들이 긴장한 듯 조심스럽게 자리에 앉았다.

“일단 내 소개부터 하는 것이 먼저겠지. 난 특수전단사령부 소속 강창석 소령이다. 새롭게 창설되는 특수 전 부대에 필요한 부대원들을 모집하고 있다.”

강창석 소령이 앞쪽에 앉아있는 병사들을 바라보며 부드럽게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특수 전 부대는 우수한 사병 중 지원자에 한해서 특전 부 사관을 모집할 계획이다. 제군들은 연대에서 우수한 성적의 병사들이라 들었다. 혹 이 중 특전 부 사관에 지원할 사람 있나? 참고로 뽑힌 뒤 훈련을 마치면 한동안 외국에서, 아마도 중동지역으로 파견을 나가게 될 것이다.”

강창석은 아무 말 없이 잔뜩 굳어 있는 병사들을 보며 고개를 흔들고서는, 대대 정보장교가 놓고 간 서류를 한 장씩 넘겨보기 시작했다.

서류에는 네 명의 병사에 대한 신상과 정보, 부대 생활과 훈련평가에 대하여 나와 있었다.

강창석은 그중 한 장의 서류를 세심하게 살폈다.

“음…. 최일 일병?”

“일병 최일!”

“음. 평가가 아주 좋군. 특히 사격 실력이 아주 뛰어나다고 되어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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