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철의 용병라이더-1화 (1/404)

01.버려진 아이

-뿌드득 뿌드득

늦은 12월이라 해가 빨리 저문 탓에 민가에서 멀어진 외딴 길에는 다른 때 보다 어둠이 일찍 몰려왔다. 1시간 전부터 내리기 시작한 가는 눈송이가 이젠 제법 커져 길을 따라 바닥에 차곡차곡 쌓여, 마치 새하얗고 보드라운 솜털처럼 포근해 보였다.

그러나 점차 쌓여 가는 눈이 많아질수록 눈길을 헤치며 걷고 있는 소녀의 걸음은 더욱더 느려질 수밖에 없었다.

“하~.”

잠시 걸음을 멈춘 소녀가 길게 숨을 내뱉었다. 뿌연 입김이 공중으로 뿜어져 나갔다가 차가운 겨울바람에 흩어졌다. 겨울의 추위가 무섭지도 않은지, 소녀의 차림은 체크무늬 치마와 얇은 흰색 블라우스가 전부였다. 추위로 붉게 얼어버린 얼굴을 치켜들고 밤하늘을 올려다보던 소녀가 다시 한번 뿌연 입김을 내뱉었다. 그리고는 품속에 소중하게 감싸고 있던 무언가를 고쳐 안고서 길을 따라 다시 느릿느릿 걸어 나가기 시작했다.

“이곳인가?”

소녀는 고개를 들었다. 눈앞에는 군데군데 푸른 페인트가 떨어져 나간 녹슨 철문이 보였다.

-소망원--소망 도예-

낡은 철문 위로 큼지막하게 적혀 있는 글자를 보니 소녀가 찾던 곳이 분명해 보였다.

“이곳이라면 분명 널 어여삐 봐 줄 거란다.”

소녀는 천천히 앞으로 다가가 철문 한쪽에 적혀 있는 소망원이라는 글자를 쓸어내렸다.

흠칫-

철문의 차가운 기운이 손을 타고 전달되었는지 소녀의 몸이 전보다 더욱 거세게 떨려 왔다.

한동안 소망원이란 글자를 쓸어보던 소녀는 천천히 품 안에 안고 있던 것을 꼭 끌어안았다.

“미안하다!”

소녀는 갈색 반코트에 쌓여 소중하게 안고 있던 무언가를 천천히 바닥에 내려놓았다. 그리고는 조심스럽게 코트를 들춰냈다.

덥석-

그 순간 코트 안에서 조그마한 손이 튀어나와 소녀의 엄지손가락을 꽉 잡아챘다. 깜짝 놀란 소녀가 손가락을 뿌리치며 급히 뒤로 물러났다. 그러나 코트 위로 올라온 작은 손이 아무것도 없는 허공을 허우적거리자 다시 천천히 다가와 조그마한 손을 잡아주었다.

“정말… 미안하다! 내 아가!”

소녀가 조심스럽게 반코트를 풀어헤쳤다. 그 안에는 작은 이불보에 쌓여 있는 갓난아기의 모습이 드러났다.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았는지 아직 눈도 뜨지 못한 아기는 마치 이게 엄마와의 이별이라는 사실을 아는 것처럼 있는 힘을 다해 소녀의 엄지손가락을 꼭 붙들었다.

“아…가.”

아직 제대로 된 이름도 지어주지 못한 갓난아기를 보며 소녀는 눈물을 흘렸다. 볼을 타고 흐르는 눈물을 닦아 낼 생각도 못 하고, 잠시 아기를 바라보던 소녀는 이내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는 주변에 있던 주먹만 한 돌을 들어 철문 옆 도예 공방의 창문을 향해 힘껏 집어 던졌다.

-와장창

돌에 맞은 유리창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깨어져 나갔다. 그러자 소망원 안쪽에 위치한 두 채의 오래된 낡은 주택에서 전등 불빛이 하나둘씩 켜졌다. 주변이 밝아지는 것을 지켜보던 소녀는 왔던 길을 되돌아 달려가기 시작했다. 황급히 자리를 떠나는 그녀의 뒷모습에선 미련을 남기지 않겠다는 굳은 의지가 보였다. 소녀가 사라지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안쪽에서 다급하게 중년의 사내와 사내아이들이 달려 나왔다.

“누구요!”

중년의 사내가 밖을 향해 소리를 쳤다.

그때 문 앞에 놓여 있던 아이가 요란하게 울기 시작했다. 남자의 고함에 놀란 건지, 아니면 떠나간 소녀를 찾기라도 하는 건지. 이유는 모르겠으나 요란하고도 서러운 울음소리였다.

“응애~ 응애~.”

갓난아기의 울음소리에 놀란 중년의 사내가 다급히 대문을 열고 밖으로 뛰어나왔다.

“아기….”

사내가 급히 울고 있는 갓난아기를 들어 올리자, 아기를 감싸고 있던 반코트에서 쌓여 있는 눈 위로 뭔가가 떨어져 내렸다.

-툭.

“이건?”

사내가 허리를 굽혀 바닥에 떨어진 물건을 집어 들었다.

바닥에 떨어진 물건은 고등학생들이 가슴팍에 항시 달고 다니는 플라스틱 명찰처럼 보였다.

푸른색의 명찰은 뒷부분이 부서진 탓에 앞의 두 글자만이 남아 있었다.

“최…일?”

중년 사내의 입에서 명찰의 남은 글자가 흘러나왔다.

* * *

최근 소망원의 최대 관심사는 단연 최일이었다.

이제 갓 태어난 갓난아기이다 보니 더욱더 관심의 중심에 있을 수밖에 없었다.

“아유~ 귀여워라. 이 손 좀 봐~ 너무 작다!”

“쉿~ 조용! 이제 막 잠들었으니 동생이 잘 잠들 수 있도록 모두 조용히 있어야 한단다!”

갓난아기 주변으로 몰려든 소녀들의 재잘거림에 중년 여인이 엄한 얼굴로 아이들에게 말했다.

“네! 원장 엄마.”

아이들이 소곤거리며 조심스럽게 방에서 나갔다. 소망원에서는 최일의 엄마를 찾는 것을 포기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찾지 않는 것이 옳았다. 만약 최일의 엄마를 찾고자 한다면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닐 터였다.

옷을 감싼 반코트는 분명 고등학교 동복이었다. 비록 명찰의 일부가 부서졌다고는 해도 성과 이름 한 글자가 남아 있어 주변의 학교를 뒤져 찾아낼 수도 있었다. 그러나 소망원에서는 그러지 않았다. 어린 나이의 소녀가 아이를 키운다는 것이 얼마나 어렵고 힘든 일인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무엇보다 어린 나이에 아이를 낳았다는 사회의 따가운 시선도 소녀로서는 견디기 어려울 것이다.

“어쩜 이리도 순할까?”

한동안 최일을 바라보며 미소 짓던 중년 여인은 조심스럽게 문을 닫고 방을 나섰다. 잠시 최일의 밥을 챙겨주기 위해 안으로 들어왔지만, 이제는 돌아가 일을 해야 했다.

원래 소망원에서는 갓난아기를 받아 키우지 않았다. 이곳은 민가에서도 한참을 걸어 들어와야 하기에 아는 사람이 드물었다. 제법 오랫동안 소망원을 운영해 왔지만, 이번처럼 갓난아기를 놓아두고 가는 경우는 단 한 번도 없었다. 무엇보다 이곳은 애초부터 10살 이상의 아이만을 받아 키우는 데다가, 현재 보호하고 있는 아이들 역시 십여 명 정도가 전부일 정도로 작은 곳이었다.

방을 나선 중년의 여인은 도예 공방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저, 일이는 어떻게 할 거예요?”

중년의 여인이 물레를 들리며 도자기를 빚고 있는 중년의 사내에게 물었다,

“아직은….”

중년의 사내가 고개를 저었다. 소망원을 운영하면서 갓난아기가 들어온 적은 없어 아직까지 결정을 내리지 못해 고심을 이어가고 있었다.

“우리에게 온 아이를 다른 곳에 보낸다는 건… 우리가 갓난아기 하나 더 키운다고 달라질 것은 없잖아요.”

원래가 사설 보육원이고 정부나 지자체의 지원이 적다 보니 한계가 명확했다.

그나마 이곳 소망원이 다른 보육원보다 나은 점은 정부 차원의 지원뿐만 아니라, 부부가 직접 운영하는 도예 공방에서의 수입이 소망원을 운영하는 대부분의 비용을 충당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물론 달라질 것도 없지만 당신이 힘들 거 아니요. 갓난아기라면 나보다도 당신이 더 고생일 텐데….”

“아이들이 잘 도와줄 거예요.”

“결정을 내린 거요?”

중년의 여인이 쐐기를 박듯 말했다.

“그래요. 우리가 맡아요.”

“그럼, 그럽시다.”

* * *

소망 도예는 이천에서도 제법 이름이 있는 부부도예가가 운영하는 곳이었다. 전통적인 나무 가마와 현대식 전기 가마를 모두 가지고 있는 이곳은, 예술적인 도자기는 물론이고 대량의 주문생산도 가능한 곳이었다.

때문에 소망 도예와 함께 운영하는 소망원은 상대적으로 다른 시설보다는 좋은 곳이라 할 수 있었다.

그런데 이번에 처음으로 갓난아기가 들어오면서 손이 많이 가는 아기부터 도예 일까지 모두 도맡아 해야 하는 원장부부 입장에서는 여간 버거운 일이 아닐 수가 없었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것은 소망원에는 중, 고등학교에 다니는 큰 아이들이 많아 최일을 키우는 데 많은 도움을 주고 있다는 점이었다.

순조로운 듯 순조롭지 않은 듯. 최일은 소망원에서 무럭무럭 자라났다.

“휴~ 걱정이에요! 저리 몸이 약해서….”

다만 최일은 커 가면서도 또래에 비해 왜소한 체격, 그리고 병치레가 잦아 원장부부의 큰 걱정거리였다.

“그러게 말이요. 아무래도 방법을 생각해 봐야 할 것 같소.”

그러나 최일은 몸이 약하고 체격이 왜소하지만, 머리가 좋아 공부를 잘했다. 손재주도 좋아서 초등학교 때부터 공방에서 작은 찻잔이나 그릇 정도는 혼자서 능숙하게 만들 정도였다. 탁월한 재능이 보이는 것 같아 중년 부부는 나중에 최일이 도예가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도 가지고 있었다.

“방법이요?”

“김 사범이 주말마다 오니 부탁을 해볼까 해서 말이요. 이번 기회에 다른 아이들에게도 가르쳐 달라고 해볼 생각이요.”

“김 사범님이면…괜찮을 것 같네요.”

* * *

고등학교를 졸업한 최일은 모두의 기대를 버리고 대학 진학을 포기했다. 원장부부는 그가 대학에서 도예를 전공하길 바랐지만 최일의 결정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소망원이 다른 보육원보다 좋은 조건은 지녔다 해도 이곳 역시 결국 보육원일 뿐이었다. 소망원에서 지원해 줄 수 있는 것은 고등학교까지 만이었다.

그러다 보니 아이들은 대학 진학을 포기하고 대신 기술을 배울 수 있는 공업고등학교나 상업고등학교를 선택했다.

그렇게 들어간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아이들은 대부분 소망원을 떠나갔다.

최일도 마찬가지였다. 그 역시 공고를 졸업하면서 다른 아이들과 마찬가지로 소망원을 떠났다.

하지만 보통의 아이들과 달리 최일은 대학 진학을 포기하지 않았다.

공고에서 배운 공작기술을 살려 공장에 취업한 뒤에도 주말이면 도서관을 찾아 대학 진학을 위한 공부를 이어 왔다.

그리고 이때 그녀를 만났다.

그녀는 이제 고등학교 3학년이 된 여학생이었다. 우연히 도서관에서 만나 안면을 튼 그녀와 최일은 점차 가까워졌다.

최일은 몰랐으나 그녀는 학교뿐 아니라 주변에서도 예쁘다는 소문이 나면서, 여러 방송기획사에서도 찾아올 정도로 유명했다.

그녀가 남자를 만난 건 처음이라 말했을 때, 사실 최일은 믿지 못했다.

그녀처럼 예쁜 소녀라면 분명 주변에 따르는 남자들이 많았을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단지 단순한 여자들의 내숭, 딱 그 정도로만 생각했었다. 그러나 며칠 후 그녀의 말이 사실이라는 것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어이!”

늦은 저녁 일을 마치고 소망원을 나와 얻은 조그마한 월세 집으로 향하는 주택가 모퉁이를 돌 때, 최일은 전신주에 기대어선 두 사내 중 한 명이 외치는 소리를 들었다. 그러나 그는 그게 자신을 부르는 소리라고는 생각지 않았다.

비록 단순한 체육복이지만, 유명상표가 붙은 옷차림만 보더라도 지나가는 사람에게 시비나 거는 동네 불량배로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최일 자신이 저처럼 부유해 보이는 사람을 알지 못했다.

“야! 내 말 안 들려?”

다시금 소리치는 거친 목소리에 그제야 최일이 뒤를 돌아보았다.

“야! 너 말이야, 너!”

“절 부른 겁니까?”

“그럼 여기 너 말고 누가 있어. 네놈이 최일 맞지?”

사내의 말에 그때야 최일은 저들이 자신을 찾아온 사람임을 알 수 있었다.

“예. 제가 최일입니다만…. 절 찾아온 겁니까?”

최일은 가까이 다가온 두 사내를 올려다보며 말했다.

두 남자는 작은 키의 최일이 한껏 고개를 치켜들어야 눈이 마주칠 정도로 거구의 사내들이었다. 하는 일이 정밀 가공이라 그런지 최일은 사내들의 키를 대충 짐작할 수 있었다. 대략 190cm 전후의 큰 키에 운동을 했는지 덩치도 상당했다.

“네놈이 최일이란 말이지!”

신경질적으로 다가온 사내가 최일을 향해 다짜고짜 무언가를 날렸다. 그게 무엇인지 알아보기도 전, 어깨에 강렬한 통증이 찾아들었다. 동시에 머리부터 발끝까지 연속적으로 무언가가 또다시 날아왔다.

퍼퍽- 퍽퍽

정신을 차릴 수 없는 고통이 순식간에 온몸을 강타했다. 쓰러진 최일이 할 수 있는 건, 그저 조금이라도 고통을 줄이기 위해 몸을 잔뜩 웅크리는 것이 전부였다.

“너 이 고아 새끼. 한 번만 더 내 동생 만나면 죽을 줄 알아! 어디서 겁도 없이 내 동생을 만나! 내가 네깟 녀석 만나라고 그동안 다른 녀석들 치운 줄 알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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