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과금전사-111화 (11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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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장. 선택(1)

-이곳에는 아무것도 없군요.

강현은 마이크에 대고 그렇게 말했다.

눈앞의 사무실은 이미 몇 개월 동안 방치되었는지 먼지가 자욱했다. 더 찾을 게 없다고 생각해 몸을 돌려 나오려고 하자, 심비오트 슈트에 장착된 미니 레이저 버스트도 전투 의지를 잃은 듯 총구를 아래로 향했다. 이어서 다른 사람들의 보고가 차례로 들려왔다.

-슈라입니다. 이쪽도 올 클리어.

-하르몬이다. 여긴 텅 비었다.

-제 쪽도 아무것도 없네요.

각각 다른 사람이었지만 자동으로 통역되어 들렸다.

현재 UD팀이 샅샅이 뒤지고 있는 이곳은 일본 도쿄 내 그레이의 지하 비밀기지 중 하나였다.

처음 일본부터 뒤지게 된 것은 세컨드 웨이브 직전 몬스터 폭탄이 터졌다던가. 일본 쪽 몬스터 테이머가 살해당했다던가 하는 등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지만. 일본부터 가기로 결정된 제일 큰 이유는 가까워서였다.

UD팀은 각 나라의 최정예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팀으로서는 미숙했다. 모두 예거 아머를 사용하는 건 처음. 말하자면, 실전훈련과 팀워크 다지기를 위한 사전 작업이었다.

때문에 이 비밀기지에서 특별한 정보를 얻는 것은 실패했지만, 일본까지 몬스터들을 뚫고 이동하는 성과도 거두고. 추가로 제작된 예거아머에도 다들 잘 적응해 보여서 성공적인 출동이라고 할 수 있었다.

-일단 그럼 지상층에서 집합하죠.

-라져.

리더인 강현의 지시에 다들 한목소리로 대답했다. 예거 시뮬레이션 온라인 때를 생각하면 지휘하기가 무척 쉬웠다. 강현이 지상층으로 올라가자. 지상층을 경계하고 있던 한 명이 맞이했다. 강현은 밖을 경계하면서 따로 들고온 태블릿 PC를 보고 있는 사람에게 말을 걸었다. 그 사람에게는 따로 통역기가 필요 없었다.

“채영씨 밖은 어떤가요?”

“100미터내에 B급 몬스터가 1개체, C급 몬스터가 3개체 확인됩니다. 저희가 이곳에 침입해올 때까지 계속 위치를 유지하고 있네요.”

칼같은 보고. 강현 자신도 몬스터 레이더로 외부 상황을 확인했다. 확실히 이쪽으로 다가오는 몬스터는 없었다. 아니, 그전에 그냥 의례적인 인사였을 뿐이지만. 현재 한국의 몬스터 안전 관리국장이 된 채영은 매사에 철저했다.

채영이 예거 시뮬레이션 온라인 때의 일로 청문회 당하고 있을 때였다. 몬스터 안전관리국장이 ‘혼괴’라고 불리는 괴물을 데리고 와서 비공개 청문회장에서 소란을 피웠었다. 그 당시엔 다들 무서워서 쉬쉬했지만. 일본으로 건너간 혼괴는 행방불명된데다가 그 직후 일본에서 몬스터의 출현, 세컨드 웨이브까지 연쇄적으로 일어난 일련의 사건 때. 혹시나 한국으로 책임을 물어올까 걱정된 정부에서는 몬스터 안전관리 국장을 경질시켰다. 소위 말하는 꼬리 자르기였다.

그 후임으로는 의외로 채영이 임명되었다. 정부고관들은 전 국장의 비공개 청문회 때 난동을 생각해 자신들이 컨트롤 할 수 있는 쪽이고새 생각해 채영을 임명한 건지도 몰랐다. 어쨌든 덕분에 이번 UD팀의 활동도 전적으로 서포트 하게 되어있었다.

“이번에는 허탕인가 보네요.”

강현은 그렇게 가볍게 이야기했다. 그러면서 그럴 바에는 소유의 말대로 하는 게 낫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문뜩 들었다.

‘강화도라….’

고개를 저으며 그 생각은 접었다.

그 이후 강화도의 일에 대해서는 소유에게 충분히 이야기를 들었다. 알렉스도 그 일에 흥미를 보였기에 한 번쯤은 조사해볼 수는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은 UD팀의 리더로서 당면한 과제에 집중해야 하는 입장이기도 했다. 그 당면한 과제란 바로 그레이를 분쇄해서 이 세컨드 웨이브를 끝내는 것. 그것도 하나의 가능성에 불과할 뿐이지만 말이다.

“강현님. 이거 한번 보세요.”

채영이 태블릿 PC로 하던 작업을 끝냈는지 강현에게 내밀었다.

“이건?”

“이쪽에서 그레이쪽의 데이터베이스에 직접 침입해서 쓸만한 정보가 없는지 확인했습니다.”

여전히 꼼꼼하면서 유능한 사람이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건네받은 태블릿 PC를 작동시켰다. 자잘한 서류데이터를 넘기자. 동영상이 재생됐다. CCTV 화면이었다.

****

화면에 풍경은 얼핏 보면 평범한 사무실 같았다. 컴퓨터로 업무를 보는 사람들. 책상 한쪽에는 각종 서류가 쌓여있다. 그 외에 각종 결재서류가 오가고 몇몇은 전화기를 들고 여기저기에 보고하는 듯한 모습이었다.

한 가지 특이한 점은 벽 한쪽에 있는 검은색과 흰색, 그리고 회색의 선이 회오리치는듯한 독특한 문양. 미디어가 닿는 곳이라면 전 세계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는 국제적 범죄집단 그레이의 로고였다.

화면 내의 번잡함은 순식간에 정리됐다.

어느 한 인물이 나타났기 때문이다. 조금 왜소한 체격이지만 정정한 할아버지 같은 느낌의 남자였다. 다들 하던 일을 멈추고 기립해서 그 인물이 지나가는 동안 고개를 숙였다. 얼핏 봐도 그레이의 간부급 보이는 인물.

그 뒤에는 화려한 은발을 길게 늘어트린 늘씬한 여인이 뒤따르고 있었다. 흔히 말하자면 간부가 끼고 다니는 애첩? 우중충한 분위기에 어울리지 않게 화려했으니까.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기에는 어딘가 분위기가 달랐다. 다들 그 간부처럼 보이는 남자보다. 여인에게 쩔쩔매는 듯 보였다. 그리고. 그 여인의 모습은 강현의 고개를 갸웃거리게 했다.

‘어딘가 익숙한 얼굴인데?’

그 생각을 하고 있을 때. 누군가가 다가와서 간부에게 보고했다. 그러자 간부의 얼굴이 새파랗게 변했다. 그 모습이 우스꽝스러워 보였다. 그 은발의 여인도 강현과 같은 생각이었는지. 배를 잡고 깔깔 웃었다.

그리고 다음 순간. 여인의 손이 간부의 머리 쪽으로 다가갔다. 어울리지도 않게 쓰다듬기라도 하려나 싶었는데, 여인의 행동 의외였다. 그대로 간부의 머리통은 쳐낸 것이었다. 머리통을 잃은 신체는 그대로 피를 뿜으면서 앞으로 쓰러졌다.

“이게 뭐야?!”

의외의 상황에 보고 있던 강현이 소리쳤다.

화면 안의 사람들도 순간적으로 벌어진 일에 어리둥절했다. 그리고 상황인식이 끝난 순간.

사무실은 아수라장이 됐다. 몇몇은 비명을 지르고 주저앉고, 몇몇은 도망쳤다. 나머지는 어디선가 총을 꺼내서 여인을 향해 쏴 됐다. 하지만. 당연하게도 총 따위로는 쓰러트릴 수 없었다.

여인은 총알을 전신으로 받으면서도 개의치 않은 듯 천천히 손을 들어 올렸다. 눈높이까지 들어 올린 손은 가볍게 주먹을 쥐고 있었다. 그 주먹 쥔 손을 검지부터 하나하나씩 펼치자. 그 손바닥에는 검은색의 구슬이 보였다. 처음부터 손안에 있었을 거라고 보기에는 꽤 큰 구슬이었다.

“저건…?”

그 검은 구슬은 눈에 익숙한 모습이었다. 바로 몬스터 코어였다. 여인은 몬스터 코어를 그대로 바닥에 떨어트렸다. 낙하 중에 몬스터 코어는 시커먼 모양의 몬스터로 변했다.

얼굴과 팔다리가 늘씬하게 생겨난 몬스터는 검은 마네킹 같았다. 몬스터는 땅에 발을 딛자마자 재빨리 뛰어가 총을 쏘아대는 사람들을 공격했다. 사람들은 그 몬스터의 공격을 막을 수도 도망칠 수도 없었다. 그 몬스터는 한 마리가 검은 구슬이 몬스터로 변화하자. 또 다른 검은 구슬이 그 여인의 손바닥에서 생겨났다. 그리고 그 검은 구슬은 다시 몬스터로. 그렇게 무한히 몬스터가 화면에 생겨났다. 끔찍한 광경이었다.

화면은 거기서 끝이었다.

“이거 촬영된 시간은…?”

그렇게 말하며 돌아보자. 어느새 다들 복귀해 자신과 같이 태블릿 PC의 화면을 집중해서 보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다들 심각한 표정이었다. 이 영상만 봐도 그레이가 지금 세컨드 웨이브를 일으킨 게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이번 상대는 그 실체를 알 수 없다는 점에서 그레이를 상대하기보다 더 까다로울 거라는 건 명확한 일이었다.

어쨌든.

화면의 시간을 체크하자. 세컨드 웨이브가 있기 몇십 분 전의 일이었다.

“다른 영상도 있습니다만.”

채영이 그렇게 말했지만. 강현은 일단 태블릿 PC를 껐다. 일단 이곳이 건질 게 없어진 이상 쉘터로 돌아간 다음. 알렉스에게도 알려줘야 하니까.

“나머지는 일단 돌아가서 확인해야겠네요”

채영이 그렇게 말했다. 그때 강현의 머릿속에 적색 경보가 울려 퍼졌다. 다들 CCTV에 정신이 팔려있을 때 몬스터가 근처까지 온가였다. 아니, 다 정신이 팔린 건 아니었다.

펑!

“격퇴합니다.”

어느새 예거 바주카를 쏜 채영이 등 뒤에서 예거 스틱을 꺼내 들고 먼저 뛰쳐나갔다. CCTV에 보였던 예의 그 검은 마네킹 모양의 몬스터였다. 바주카포에 몸통이 뚫린 몬스터는 그대로 뒤로 날아가고 있었다. 그보다 빠른 속도로 채영이 달라붙었다. 휘두른 예거 스틱에 두 동강이 난 몬스터는 그대로 몬스터 코어로 변했다.

그 사이 다른 몬스터들이 이쪽의 소란을 눈치챘는지 이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전원 퇴각준비! 일단 복귀합니다.”

강현의 지시에 따라 모두 예거 아머의 출력을 높였다. 순간적으로 날아오른 UD팀은 몬스터들을 따돌리고 현장에서 벗어났다.

“강현님.”

채영이 부르는 소리에 강현이 쳐다봤다. 그러자 채영이 강현에게 몬스터 코어를 던졌다. 최초에 쓰러트린 마네킹 몬스터의 코어를 어느새 회수했는지 들고 있었다.

그걸 건네받은 강현은 채영을 보고 고개를 끄덕인 다음 인벤토리 안에 그 몬스터 코어를 집어넣었다.

*****

“이럴 수가.”

회의실에서 알렉스가 믿을 수 없다는 듯 중얼거렸다. UD팀을 비롯해 세계 각국에 퍼져있는 쉘터 책임자 등, 주요 인물들이 다 모여있는 데서 채영이 확보한 CCTV 영상을 재생했다.

한번 봤던 장면들이 지나가고 새로운 영상이 보였다. 창고 쪽 CCTV 같아 보였다. 아까 은발 여인이 만들어낸 마네킹 같은 몬스터는 여기까지 내려온 거였다. 그리고는 창고의 문을 힘으로 부수기 시작했다.

“이건 일반적인 몬스터의 패턴이라고는 할 수 없는데.”

알렉스가 중얼거렸다. 화면의 창고는 무슨 귀중품이라도 들었는지 무척 두꺼운 철문으로 되어있었다. 그리고 그 몬스터들이 문을 연순 간. 그 안의 광경에 다들 감탄했다. 그 창고 안에 가득 차 있는 것은 몬스터 코어였다. 이 시대에는 금괴 덩어리보다 값진 것이 몬스터 코어였다. 그게 창고를 가득 채우고 있었다.

그리고 그다음 장면은 사람들에게 아까보다 더 큰 충격을 줬다. 마네킹 몬스터들이 몬스터 코어에 가까이 가자. 그 몬스터 코어에 변형이 일어나서 마네킹 형태의 몬스터로 변해버리는 거였다.

그 마네킹 몬스터는 몬스터 코어 근처에 지나기만 해도 몬스터로 만들어버렸다. 몬스터를 쓰러트려도, 쓰러트린 몬스터 코어 안에 또 다른 몬스터가 만들어지는 거였다. 그것도 몬스터 코어당 하나의 몬스터만 나오는 게 아니었다. 한 마리만 태어날 때도 있지만. 서너 마리가 동시에 만들어질 때도 있었다.

말 그대로 몬스터의 무한 증식.

다들 그 장면을 보고 아연실색했다.

*****

“대책은 있습니다!”

다들 당황하는 와중에 알렉스가 소리쳤다. 그러자 다들 소란을 멈추고 알렉스를 쳐다봤다. 모두 알렉스의 입만 쳐다봤지만, 쉽게 다음 말을 잇지 못했다.

“대책이라니…. 어떤 거죠?”

회의실 한쪽에서 참다못해 누군가 물었다.

“....거의 마무리 단계에 있지만. 아직은 일반에 공개할 수 없습니다.”

두루뭉술한 대답. 하지만. 거기서 알렉스를 더욱 추궁할 사람은 없었다. 결국, 회는 다음에 구체적인 사항을 논의한다고 마무리됐다. 강현도 모르는 이야기였지만. 알렉스가 알아서 하겠거니 생각하고 일어났을 때. 알렉스가 이야기 좀 하자는 눈빛을 보냈다.

“요즘 테라는 어떻죠?”

잠시 후 알렉스의 개인 사무실로 갔을 때. 알렉스가 대뜸 물었다. 알렉스의 질문에 강현은 아까 회의실에서 말한 대책이라는 게 어떤 것인지 깨달았다.

“몬스터 코어를 아예 없앨 생각이군요.”

강현의 말에 알렉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한 이야기였다. 몬스터 코어로 몬스터가 증식한다면. 몬스터 코어까지 없애버려야 했다. 테라 이름을 꺼낸 건. 테라가 그 몬스터 코어를 먹어 없앨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자리에서 발언하기 망설인 건. 테라의 정체에 대한 이야기도 있었지만. 몬스터 코어 획득이 그나마 흉악한 몬스터와 싸워나가는 주요한 동력이었으니까. 실제로 발전기의 동력원으로 쓰이기도 해서 앞으로 인류는 몬스터 코어가 없는 생활을 상상하긴 힘들 터였으니까.

반대로 말하자면 저 몬스터들의 습격에 속수무책이라는 이야기이기도 했다.

“테라를 통해서 몬스터 코어를 없앨 수 있으면. 아니면 다른 방법으로라도 통제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알렉스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강현은 문뜩 테라를 잊고 지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최근에 정신없던 탓에 테라 뿐만 아니라. 무슨 일 있으면 챙기긴 했지만. 차분히 이야기 나눈 적은 오래된 거 같았다.

“일단 테라를 데리고 오죠.”

그렇게 말하고 사무실을 나왔다.

============================ 작품 후기 ============================

항상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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