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107 회: 23장. 폭풍전야 -- >
23장. 폭풍전야(3)
-Second Wave
알렉스의 휴대폰으로 날아온 긴급 메시지에는 저 두 단어가 빨간색으로 굵직하게 떠 있었다. 그 글자를 본 순간 알렉스와 강현의 눈이 커졌다. 세컨드 웨이브. 지금까지와는 비교되지 않을 정도의 대규모 몬스터 출현. 예언자 도퍼가 예언한 미래의 모습이었다. 그 미래에서는 몬스터가 점점 많아져 종국에는 인간보다 많아진 몬스터들에게 밀려서 멸종 직전에까지 이르렀다.
“잠시만요.”
알렉스는 황급히 텔레비전과의 연결을 끊고, 휴대폰을 조작해서 메시지를 보낸 쪽으로 연락했다. 휴대폰 너머로 들리는 목소리는 세바스찬이었다. 심각한 표정으로 한참 통화한 뒤, 전화를 끊은 알렉스는 강현에게 간략하게 알려줬다.
요약하면 몬스터 관련 정보를 수집 분석하고 있는 루엘타워에서 현재 전 세계 각지에 몬스터들이 급증하는 중이라는 분석을 내놓았다는 것. 게다가 현재 인터넷 커뮤니티와 SNS를 통해서 실제로 몬스터 다수 나타났다는 제보가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다고 한다. 그 때문에 사람들은 하나같이 소문만 무성하던 세컨드 웨이브가 시작되었다고 떠들어대고 있는 중. 그 때문에 미국정부에서는 대책 마련을 위한 긴급회의가 소집되었다고 한다.
미국 정부에서는 세컨드웨이브라는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 알렉스 루엘과 여러 가지 진행 중인 협력사업이 있었다. 그래서 알렉스 루엘 측에게도 현 상황을 공유하고 대책을 논의하기 위해 긴급히 연락이 왔다는 것이다.
“무슨 일이야?”
만족스럽게 치킨을 먹은 다현은 심각한 표정의 두 사람을 보고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텔레비전을 켰다. 그러자 방송이 예정되어있던 텔레비전 쇼 대신, 뉴스속보로 몬스터 출현 때문에 위험하니 외출을 삼가고 외출하신 분들은 대피소로 이동하라는 안내 멘트가 계속해서 화면에 지나갔다. 그와 동시에 사이렌 소리가 아파트에 울려 퍼졌다.
“몬스터 출현?”
다현은 불안한 눈빛으로 강현을 돌아보았다. 그 모습을 보고 알렉스가 한숨을 쉬었다.
“한국도 마찬가지 상황인가 보네요.”
“그러게요. 한국에 오자마자 이 난리라니….”
강현이 쓴웃음을 지었다. 하지만. 지금 탄식하며 지체할 시간은 없었다. 텔레비전에서는 지금까지의 몬스터 출현할 때 대처법대로 외출을 삼가라고 되어있지만. 이건 집에 숨어있으면 도퍼들이 출동해서 몬스터를 처리할 여유가 있을 때 가능한 이야기였다. 지금처럼 전국, 아니 세계적으로 몬스터들이 동시다발적으로 나타나기 시작했을 때는 집에 가만히 있다간 고립될 뿐이었다.
“다현아.”
“응?”
“일단 이 아파트에서 나가서 대피하자. 짐 싸.”
“방송에서는 집에 있으라고….”
망설이는 다현을 보고 알렉스가 다현의 어깨를 잡았다. 그리고는 평소와는 달리 진지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아닙니다. 다현씨. 지금 이곳에 있어도 되겠지만. 장기적으로 봤을 때는 쉘터로 미리 옮기는 게 안전해요.”
그렇게 말한 알렉스는 강현을 돌아봤다.
“물론, 강현님이 계시니까. 이 아파트는 안전하겠지만. 계속 이곳만 지키고 있을 수는 없잖아요.”
“네에.”
다현은 그제야 납득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강현이 한국과 미국에서 벌인 활약에 대해서는 다현도 충분히 알고 있었다. 강현이 다치는 건 싫었지만. 혼자서 수십 몬스터를 상대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강현이 집만 지키고 있어선 안 될 테니까.
“알았어요. 짐 챙길게요.”
“간단히 챙기세요. 어지간한 건 거기서도 구할 수 있으니까.”
결정이 난 뒤의 다현은 재빠르게 움직였다. 그 사이 강현은 예거를 먹고 몬스터 레이더로 주위를 파악하고 있었다. 아직 아파트 근처까지는 몬스터가 나타나지 않았다.
“그럼 일단 미군 부대 쪽의 쉘터로 옮기죠. 거기에 예거 아머와 일본에서 강현님 도와드렸던 팀이 대기해 있습니다. 현재 세바스찬이 전용기를 호위할 전투기를 준비하고 있을 테니까. 여차하면 미국으로 모시겠습니다.”
알렉스의 말에 강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강현뿐만이 아니라 다현의 안전까지 고려하면 지금 상황에서는 알렉스의 호의에 의지하는 게 제일 나았다.
“그렇게 하죠. 저도 가져갈 거 챙겨가야겠네요.”
강현은 그렇게 말하고는 자신의 방으로 향했다. 그때. 다현이 한 손에 핸드폰을 들고 방에서 다급히 뛰쳐나왔다.
“왜 그래?”
“오빠, 소유 언니 전화야.”
*****
“터무니없는 소리 마세요.”
강현은 자신의 앞에 고개를 숙이고 있는 소유를 보고 난처한 듯 말했다. 하지만 소유는 여기에서 물러날 수 없다는 듯 고개를 들고 강현에게 바짝 다가갔다. 그때마다 커다란 융기가 출렁였다.
“그래도. 그게 필요해요. 돈이라면 얼마든지 드릴 테니까요.”
결연한 표정으로 말하는 소유에게 마음이 약해졌지만. 쉽게 줄 수는 없었다.
“그렇게 말씀하셔도…. 또 예거를 함부로 드셨다가 쓰러지시기라도 하면 어떡하시려고요.”
“그래도….”
소유는 말끝을 흐리며 울먹였다.
세컨드 웨이브 징후 때문에 짐을 챙기고 있을 때. 소유로부터 급한 일로 만나고 싶다고 연락이 왔다. 몬스터 출현 사이렌이 전국에 울리는 위험한 와중에 이곳까지 오겠다는 걸 간신히 말린 다음 강현이 심비오트 슈트를 사용해 직접 소유네 집까지 찾아간 것이다.
소유는 집 앞에서 강현이 언제 오나 목이 빠져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다가 강현이 나타나자마자 인사도 까먹고 먼저 한 이야기가 [ 예거 ]를 빌려달라는 소리였다.
통상적으로 예거는 정부에서 도퍼 관리자를 통해 판매한다. 비상용으로 평상시에 들고 다닐 수 있는 예거한 알 외에는 레이드 후에만 관리자들이 도퍼들에게 판매한다. 일종의 보충 개념. 그런 귀중한 예거를 일반적인 도퍼들에게 빌려달라고 하면 보통은 무시당하거나 싸우자는 소리밖에 되지 않는다. 관리 소홀의 문제로 여러 가지 불이익을 당할 수도 있으니까.
하지만. 강현은 예거의 생산을 독식하는 루엘사의 총수인 알렉스에게 받아둔 예거만 해도 몇 통. 소유에게 한 알 정도는 그냥 줄 수도 있었다. 하지만. 몬스터 테이머로서 강력한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소유였지만. 능력을 사용한 뒤에 혼수상대에 빠지는 등. 쉽사리 능력을 사용하게 하기에는 걱정스러운 면이 많았다. 그런 위험을 무릅쓰고 소유가 예거를 먹으려고 하는 데는 이유가 있었다.
“같이 사는 친구가 연락이 안 돼요. 아무래도 큰일 난 거 같아요.”
“그러고 보니 그 친구분도 도퍼라고 하셨죠. 지금 상황이라면 몬스터 헌팅이라도 간 게 아닐까요? 텔레비전 보셨죠? 지금 전국, 아니. 전 세계가 난립니다.”
“네. 레이드 하러 나간 거 같긴 한데. 같은 팀 동료분들로부터 친구가 연락 두절이라고 전화가 왔어요. 그것도 친구가 팀리더라서 그쪽으로 먼저 가 있겠다고 어서 오라고 연락까지 해놓고선 말이에요.”
단숨에 쏟아내듯 말한 소유는 감정이 북받쳐 올랐는지 눈물을 주르륵 흘리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본 강현은 어찌할 줄 몰랐다.
“아앗 진정하세요. 아직 큰일 났다고 정해진 건 아니니까.”
“죄송해요. 친구가 너무 걱정돼서….”
간신히 소유의 울음이 잦아드는 걸 본 강현이 머리를 긁적였다.
“정말 친하신가 보네요.”
“네. 그동안 도움도 많이 받고, 서로 의지도 많이 되었거든요. 오늘은 왠지 분위기가 이상했는데, 그때. 좀 더 신경 썼으면….”
그렇게 말한 소유는 결국 주저앉으면서 다시 울기 시작했다.
“흐윽. 수지야.”
“수지?”
소유의 입에서 이름이 강현의 주의를 끌었다.
‘그 수지라는 게 설마 함수지님은 아니겠지? 수지라는 이름이 흔한 이름이라면 흔한 이름이니까.’
그래도 신경 쓰였던 강현은 여전히 울먹이고 있던 소유에게 물었다.
“저기 혹시…. 그 친구분 이름이….”
*****
“이거 난감하게 됐심.”
수지는 밖으로 보며 낭패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수지가 현재 있는 곳은 인청항 외곽의 컨테이너 임시 건물 안. 일전의 펭귄상륙대첩 후 재건 중인 공사 현장사무실로 쓰이고 있던 곳이다. 이곳도 이미 몇몇 대형 몬스터가 밟고 지나가는 바람에 반쯤은 찌그러져 있었다.
인천항에 몬스터가 출현해서 지원이 필요하다는 연락을 받고 한걸음에 외곽까지 자신의 애마를 타고 도착했다. 하지만. 탱커인 수지가 혼자서 몬스터를 상대할 수는 없었기에 더 진입하지 않고, 오는 길에 호출한 자신들의 팀을 기다리고 있던 참이었다. 하지만. 인천항 내부에서 몬스터를 막아내는 데 실패한 것인지. 내지로 올라오는 몬스터의 육중한 소리가 점점 가까워졌다.
수지는 일단 물러나기로 했다. 평소에 돌아다니던 몬스터 사냥구역도 아니었다. 가능한 조심하는 편이 좋다는 건. 성질 급한 수지도 경험으로 충분히 알고 있었다.
그때.
“살려줘요!”
애타게 도움을 청하는 외침이 들렸다. 그 외침에 애마쪽으로 향하던 수지의 발걸음이 멈췄다. 몬스터에게 쫓기는 중임이 틀림없었다. 자세히 귀를 기울이자 몬스터의 육중한 발걸음 소리 사이사이로 이쪽으로 전력으로 뛰는 몇몇 발걸음이 들렸다.
“꺄아아아악!”
여자의 비명. 수지는 발걸음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저 님아들은 포지션도 없이 마구잡이로 이쪽으로 온 거삼?’
속으로 구시렁거리면서도 사람들을 향해 달려나갔다. 어떤 몬스터가 와도 잠깐이라면 막아낼 자신이 있었다. 그 사이에 저 사람들이 도망치거나 전력을 재정비할 수도 있을 터.
게다가 수지네 팀이 올 시간도 그렇게 멀지 않았다. 기다리는 게 싫어서 매번 느긋하게 오는 수지가 호출했으니까. 다들 꽁지가 빠지게 뛰어오고 있을게 눈에 훤했다.
하지만. 어느 쪽도 수지의 예상을 벗어났다.
수지 쪽으로 달려오던 생존자는 둘. 그 둘은 수지를 지나쳤다. 수지는 그 둘을 쫓아오던 몬스터를 막기 위해서 당당하게 섰다. 눈앞의 몬스터는 중소형 몬스터로 자주 보여서 익숙한 미니 크랩. 수지가 탱킹하는 데 어려움 없는 몬스터였다.
‘겨우 이 정도 몬스터에게 쫓겼단 말이삼?’
그렇게 생각하면서 수지는 미니 크랩의 집게발 공격을 막아냈다. 문제는 그다음. 수지가 미니 크랩을 막고 있는 동안. 다른 몬스터들이 뒤이어 나타나 생존자를 쫓는 것이었다.
“몬스터가 더 몇 마리나 있는 거삼?”
수지는 예상 밖의 상황에 당황했다. 분명 몬스터가 다가오는 소리는 하나뿐이었다. 미니 크랩의 다음 공격을 피한 뒤 생존자들을 쫓아가는 몬스터들의 정체를 보고 눈을 크게 떴다.
앞다리가 달린 뱀처럼 보이는 몬스터들이었다. 그 몬스터들은 미끄러지듯이 앞으로 나아갔다.
“젠장. 그러니까 아무 소리도 안 들렸지 말이삼.”
수지는 그렇게 외치고 뒤를 돌아봤다. 자신이 막아낼 수 있는 몬스터는 한 마리뿐. 결국, 생존자들의 입장에서는 크게 달라질 것도 없었다.
“도망치삼!”
수지가 간절히 외쳤지만. 들려오는 건 차례로 몬스터의 밥이 되어버린 생존자들의 비명뿐이었다. 반대로 이번에는 혼자인 수지가 몬스터들에게 둘러싸여 곤란한 입장이 되어버렸다. 간신히 도망쳐서 겨우 이 임시 건물에 숨을 수 있었다. 그 와중에 자신의 애마나 짐들은 어떻게 됐는지 알 수조차 없었다.
“몬스터가 왜 이렇게 많은 거삼.”
수지는 살짝 고개를 내밀어서 밖을 둘러봤다. 일전에 인천펭귄상륙대첩 때와 비슷할 정도로 몬스터가 많아 보였다. 그때와 다른 점은 그때는 펭귄 몬스터 한 개체만 있었던 것과 달리, 몬스터 동물원. 몬스터 백화점을 방불케 할 정도로 다양한 몬스터들이 있었다. 그중에서는 결코 다른 몬스터들과 함께 행동하지 않을 듯 보이는 몬스터도 있었다.
예를 들면. 닿으면 그대로 피부가 썩어버리게 할 정도의 독연기를 내뿜는 해파리 몬스터. 그 존재만으로 민폐인 몬스터는 다른 몬스터들의 위협에 밀려 점점 외곽으로 나왔다. 문제는 그게 수지가 몸을 숨기고 있던 임시 건물 쪽이라는 거였다.
‘어어. 다가오지 마삼.’
수지가 그렇게 속으로 외쳤지만. 해파리는 자신의 독연기에서 헤엄치듯 둥둥 떠서 점점 가까이 다가오고 있었다. 그대로 건물에 부딪히자. 건물이 순식간에 부식되어 바스러지기 시작했다.
‘위, 위험하삼.’
탱커로서 상태이상 공격에도 어느 정도 버텨낼 수 있겠지만. 문제는 방어한다고 기척을 내면 단번에 몬스터들의 끄게 될 것이었다.
진퇴양난의 순간.
“이판사판이삼.”
가만히 앉아서 위기를 기다리는 건 수지의 성미에 맞지 않았다. 결국, 임시 건물 밖을 나와서 자신의 애마를 찾아보기로 마음먹었다.
피융-
그때. 밖에서 섬뜩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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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운 주말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