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106 회: 23장. 폭풍전야 -- >
23장. 폭풍전야(2)
“그러니까. 소유 네가 사귀는 남자가 강현님아라는 거삼?”
수지가 소유에게 되물었다. 오랜만에 돌아온 자신의 소파에 엎드린 채로 한껏 늘어져 있던 소유는 고개를 끄덕였다. 몇 달간의 미국생활을 끝내고 간신히 한국으로 돌아온 참이었다. 돌아온 길은 일본을 통해서였지만.
강현이 일본에서부터 서울의 집까지 소유를 데리고 날아왔다. 마치 슈퍼맨처럼. 물론, 소유가 강현에게 안겨있는 그런 로맨틱한 모습은 아니었다. 오는 내내 소유는 치료캡슐에 누워있었으니까.
‘내가 지금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돌아올 때를 생각하자. 소유의 하얀 뺨이 분홍빛으로 변했다. 소유는 얼굴을 팔과 소파 사이에 파묻어서 그걸 감췄다. 소유는 강현이 자신의 아파트 옥상에 치료캡슐을 내려놓고 나서야 겨우 치료캡슐을 벗어날 수 있었다. 소유는 한참 동안 안에서 강현에게 뭐라고 고맙다고 해야 할지 고민했다. 편의점 앞에서 몬스터와 조우했을 때부터 해서 자신의 목숨을 몇 번이나 구해줬으니까. 하지만 막상 치료캡슐을 나오자마자 한 소리는 자신이 생각해도 어이가 없었다.
“담에 저녁 식사 대접해드릴게요!”
그렇게 말하고는 그대로 줄행랑쳐버린 것이다. 그 뒤로는 어떻게 집까지 왔는지 기억이 가물가물했다. 뒤늦게 정신 차렸지만, 강현에게는 차마 연락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겨우 다현에게만 전화하자. 언니답지 않게 무슨 짓이냐며 전화기 너머로 다현의 웃음소리를 한바탕 들은 뒤. 자신이 한국에 가서 오빠에게 잘 말해두겠다고 다현이 자신만만하게 이야기했다. 소유는 그 말에 내심 안심하면서도 스스로 못난 여자라는 자괴감이 드는걸 어쩔 수 없었다.
그렇게 얼마 안 된 부끄러운 과거를 반성하고 있다가. 절친의 질문에 한 답변을 조금 정정해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
“아참. 아직 사귀는 사이라고 할 수 있는 건지 아직 잘 모르겠어. 매번 도움받기만 해서….”
“그렇삼?”
수지를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몸을 돌려서 냉장고 쪽으로 향했다.
“그나저나 수지도 역시 강현씨 바로 아는구나. 워낙에 유명이기도 하고, 같은 도퍼기도 하니까 말이야. 혹시 예전에 같이 레이드던가? 했었을 수도 있었겠다.”
“으응. 한 적 있었지 말이삼.”
수지는 말을 흐리면서 어느새 냉장고에서 꺼낸 우유를 단번에 들이켰다.
‘응? 냉장고 안에 우유. 저거 내가 미국 가기 전에도 있었던 거 같은데, 그 뒤로 수지가 채워놓았으려나? 평소에는 도통 안 사두잖아.’
그런 생각을 하던 소유는 또 엉뚱한 생각 한다고 자책하면 고개를 흔들었다.
“어쨌든 예전에 한번 수지 소개해 주려고 했었는데. 계속 시간이 안 맞았지? 다음에 저녁 먹기로 했는데. 그때 내가 살 테니까 같이 가자.”
그렇게 말하면서 소유는 손뼉을 쫙하고 쳤다. 자신이 생각해도 묘안이었다. 강현씨께 저녁 대접도 하고, 이 기회에 수지도 소개해줄 수 있었으니까.
‘내가 일방적으로 한 약속이나 마찬가지지만…. 게다가 나 혼자 가는 것보다는 수지랑 같이 가면 좋겠지?’
하지만. 수지는 별다른 대꾸가 없었다. 소유는 수지가 강현을 만나는데 별다른 흥미를 못 느끼는가 싶어서 황급히 화제를 바꿨다.
“아, 아니면 수지는 일전에 같이 레이드했던 분 좋아하던 눈치던데. 그분 이름은 몰라? 이번에 미국에 채영씨랑도 알게 됐는데, 강현씨랑 채영씨라면 알아봐 줄 수 있을지도 몰라.”
“괜찮삼.”
그렇게 말한 수지는 소파 한쪽에 멋대로 내팽개쳐뒀던 자신의 라이더 재킷을 걸쳤다.
“그럼. 난 일이 있어서 나가보겠삼.”
“으응.”
예상보다 미지근한 반응에 소유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항상 든든하고 다정한 수지가 저런 모습을 보이는 걸 처음 봤기 때문이었다.
‘수지가 왜 저러지?’
******
부아아아아앙-
차체 대부분을 불꽃모양으로 커스텀한 선명한 붉은 색의 할리 데이비드슨은 엑셀을 당길 때마다. 불길이 일어나는 것처럼. 붉을 잔영을 남기면서 도로를 질주하고 있었다.
그리고 자신의 애마와 같은 불꽃이 수놓아진 라이더 재킷을 걸친 수지의 심장도 할리 데이비드슨 못지않게 쿵쾅거리고 있었다.
‘내가 왜 이러는 건지 모르겠삼.’
수지는 평소보다 신나게 도로를 질주하고 있음에도 평정심을 못 찾는 자신에 당황하고 있었다. 분명 가슴이 답답할 때 한바탕 달려주면 머릿속이 상쾌해지곤 했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그 이유는 바로.
‘나 때문인 거셈. 이게 다 내가 못나서 그런 거삼.’
몇 달 만에 재회한 절친이나 동거인이 돌아왔는데도 환영해주지 못하고 이렇게 방황하는 모습이라니. 스스로 생각해도 너무 꼴사나웠다.
‘소유와 강현님아라…. 정말 잘 어울리는 한 쌍이지 않삼? 누구한테 물어봐도 마찬가지.’
억지로 그런 생각을 했지만. 반대로 가슴 한켠이 아파져 오는 걸 참을 수가 없었다.
수지는 액셀러레이터를 당겼다.
부아아아앙-
할리 데이비드슨이 울부짖었다.
‘아니 나 같은 게 뭐라고 실망을 한단 말이삼?’
부아아아아아아앙-
‘나랑 있으면 놀림감밖에 안될 텐데. 내가 무슨 염치로 강현님아 곁에 설 수 있단 말인감.’
부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수지는 있는 힘껏 오토바이를 몰았다.
주위의 경치가 빠르게 뒤로 사라져갔다.
이대로라면 자신도 자신을 괴롭히는 모든 것도 함께 날려버릴 수 있을 거 같았다.
그때.
익숙한 소리가 들렸다. 수지를 그 순간 브레이크를 걸었다. 분노로 울렸던 새파란 비명소리로 뒤바뀌는 순간이었다. 그렇게 한참을 미끄러지듯 비명이 울린 다음에. 수지는 겨우 멈췄다.
하지만. 수지를 부르는 알람 소리는 계속해서 휴대폰에서 울려 퍼졌다. 질주하는 수지를 멈출 수 있게 하는 유일한 알람 소리.
‘몬스터 출현 알람.’
수지는 알람을 끄고, 크게 숨을 내셨다. 그런 다음 휴대폰 디스플레이에 나타난 정보를 확인했다. 몬스터 출현을 알리는 곳은 인천항. 이곳에서 그렇게 멀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 어젯밤 이후로 해안가에 몬스터들이 많이 나타났다는 이야기가 있었삼.’
수지는 어젯밤에 도퍼 커뮤니티에서 본 이야기를 떠올렸다. 몬스터 청정국가인 일본에서 몬스터들이 대거 준동하기 시작했는데. 그 때문에 자극받은 일본 근해의 몬스터들이 주위바다로 퍼진다는 관측이 있었다.
“좋아 가보는 거삼.”
몬스터 레이드라면 지금 답답해진 마음을 달래줄 수 있을지도 몰랐다. 그렇게 마음먹은 수지는 자신의 팀에게 얼른 쫓아오라는 메시지를 남기고 다시 자신의 애마에 시동을 걸었다.
*****
“맴맴 더 줘.”
“안돼!”
강현은 테라의 부탁을 완강히 거절했다. 어느새 문을 하나 사이에 두고 대치하고 있었다. 자신의 방에 틀어박혀 있는 것은 강현. 그 문을 두들기고 있는 건 테라였다.
‘어느새 몇 개나 먹은 거야?’
강현은 식은땀을 흘리며 인벤토리를 열자 대부분이 텅 비어있었다. 인벤토리의 경우 무게가 느껴지지 않을 터인데도. 한껏 비어있는 감각이 가슴이 철렁했다. 처음 만들어졌을 때 사용된 몬스터 코어가 몇백억, 오늘 먹었던 몬스터 코어도 몇십억이었다. 몬스터 코어를 먹어치우는 아이라니. 어떤 부자 부모라도 감당 안 될 게 뻔했다.
그때 다현이 가세했다.
“오빠. 문 좀 열어봐. 얘가 배고파하잖아.”
강현이 벌써 몇 개나 몬스터 코어를 뺏긴 것도 다현이 때문이었다. 다현이 나무라는 데에는 아무리 강현이라도 당해낼 수가 없었다. 다현이는 테라의 존재에 대해서 의아해했지만. 여동생이 생겼다고 마음먹은 뒤부터. 부쩍 테라 편만을 들기 시작했었다.
“안돼. 나중에 쓸건 있어야지.”
강현은 최후의 저항을 했다. 실제로 이게 몇억짜리라고 다현이에게 이야기하면 테라에게 주라는 소리는 절대로 입 밖으로 안낼 테지만. 강현은 그동안 돈 때문에 고생한 다현이에게 그런 이야기를 굳이 꺼내고 싶지는 않았다.
실제로 인벤토리 안의 몬스터 코어도 어디서 돈을 주고 사온 것도 아니고, 몬스터에게서 얻은 거나 마찬가지였으니까.
그때. 강현의 구세주가 나타났다.
“저기 다현씨. 제가 테라 줄 간식 가져왔는데요.”
그 소리에 다현과 테라는 얼른 문에서 몸을 돌렸다. 강현도 문을 슬쩍 열어서 밖을 내다봤다. 밖에는 어느새 거실로 들어온 알렉스가 보였다. 한쪽 손에 들린 캐리어에는 몬스터 코어가 들어있는 보관함이 잔뜩 실려있었다. 그리고 다른 손에는.
“이사 치킨도 잊지 않고 준비했습니다.”
그 말에 다현과 테라 두 사람은 펄쩍 뛸 정도로 기뻐했다.
“정말이에요?”
“맴맴 많아 최고!”
두 사람은 각자 자신의 몫을 향해 돌진했다. 그 모습을 보고 미소 짓고 있던 알렉스는 방문을 열고 자신의 자신을 쳐다보고 있던 강현을 향해서 말을 걸었다.
“강현님 몫도 있으니까. 어서 와서 드시죠.”
“그래요.”
*****
“알렉스님도 드셔 보세요.”
“네네. 감사합니다.”
“자기가 사와 놓고 감사는 뭐에요.”
다현은 자신이 건네주는 닭 다리를 냉큼 받아들면서 고개를 숙이는 알렉스를 보고는 까르르 웃었다. 오랜만에 한국에서 먹는 치킨 때문인지 정말 기분이 좋아 보였다. 그리고 한쪽에는 테라가 몬스터 코어 보관함에서 몬스터 코어를 꺼내서 양껏 섭취하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강현이 쓴웃음을 지었다.
“너무. 어리광 받아주는 것도 안 좋을 텐데요.”
강현의 말에 알렉스가 고개는 내저었다.
“어리광 받아주는 게 아닙니다.”
진지함이 잔뜩 묻어있는 부정에 강현은 눈이 번쩍 뜨이는 거 같았다.
“저 아이는 특이하게도 몬스터 코어를 먹어서 이 세상에 사라지게 하는 거죠. 이건 정말 중요한 일이라고 봅니다.”
“몬스터 코어는 이미 여기저기서 사용되고 있잖아요.”
강현은 고개를 갸웃했다. 몬스터 코어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몬스터 코어를 소모하는 건 코어 발전소를 통하면 됐다. 그 외에도 예거 아머나, 강현이 쓰는 레이저 버스트 외에도 각종 몬스터 코어를 직접 사용하는 장치들이 종종 개발되고 발표되고 있었다.
“아뇨. 단순히 몬스터 코어를 사용해서 소모하게 하는 걸로는 모자랍니다.”
그렇게 말한 알렉스는 자신의 스마트폰을 꺼내서 조작한 다음에 티비에 연결했다. 그러자 텔레비전 화면에 여러 가지 자료가 재생되기 시작했다. 그 자료는 몬스터 코어에 대한 거였다. 발전소에 사용된 몬스터 코어는 강현이 레이저 버스터에 장착해서 사용했을 때처럼. 하얗게 변해있었다. 정확하게는 코어 내부가 텅 비어 있었다.
‘코어 내부의 에너지를 다 사용해 버리면 저렇게 되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다음 장면이 강현을 놀라게 했다. 텅 비어버린 몬스터 코어를 로봇손이 집어들더니만. 그걸 어떤 시커먼 액체에 담가버리는 거였다. 그러자 하얗게 변했던 몬스터 코어의 색이 조금씩 탁해지기 시작했다. 원래의 섬뜩한 느낌이 드는 검은색으로 돌아오기에는 한참 멀었지만. 이것이 의미하는 건 컸다.
“재활용?”
“네. 재활용할 생각은 없었지만요.”
그건 알렉스의 말이 맞았다. 이미 세상에는 몬스터들이 넘쳐나고 안정적으로 몬스터 코어를 몬스터에게서 얻을 수 있었다. 굳이 재활용할 필요는 없었다. 코어 안이 어떤 성분인지도 명확히 규명되지 않았으니까.
“저…. 몬스터 코어를 채웠던 액체는 뭔가요?”
“쓰레기입니다.”
“네?”
“각종 쓰레기와 부산물을 액화시켜둔 것이죠. 코어 발전소에서 다 사용한 몬스터 코어를 외부에 방치해둔 탓에 알게 된 정보지만요.”
알렉스는 그렇게 말하면서 다시 휴대폰을 조작했다. 그러자. 거대한 창고가 나타났다. 그 안에는 셀 수도 없이 많은 몬스터 코어가 있었다. 그리고 그 몬스터 코어는 하나같이 비어있었다.
“저건….”
“엄청나죠? 몬스터 코어의 껍데기는 어떤 수를 써도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원래 다크매터를 얻기 위해 어떻게든 저 껍데기를 부수려고 했지만. 불가능했죠. 하지만.”
그렇게 말한 알렉스는 테라쪽으로 고개를 휙 돌렸다. 테라는 마침 알렉스가 가져온 몬스터 코어를 순식간에 전부 집어 삼킨 다음 만족한 듯 배를 두들기고 있었다.
“저 아이라면 다크매터를 얻는 방법을 알려줄지도 모릅니다. 아니 인류의 미래를 위해서라도 꼭 알려줘야 합니다.”
알렉스는 힘을 주어 말했다. 하지만. 강현은 알렉스의 말을 듣고 감탄하지 않았다. 그저 어이없다는 듯이 되물었다.
“그러니까 알렉스님이 예거아머를 만드는 데 필요한 어두운 매 터라는 게 저 몬스터 코어 껍데기를 뺀 내부에서 추출하는 거란 말이죠?”
“네.”
“그거라면….”
강현이 입을 떼서 말하려는 순간. 텔레비전 화면에서 알렉스에게 들어온 긴급메시지가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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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운 주말 보내세요~;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