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101 회: 21장. 예거 아머 -- >
21장. 예거아머 (5)
“무슨 일 있나요?”
예거아머 케이스를 들고 비행기 안으로 들어가려던 강현은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자신을 마중 나온 사설부대원이 난처한 표정을 짓고 있었기 때문이다. 어서 안으로 들어오라는 제스쳐에 예거 아머 케이스를 비행기 한쪽 구석에 놓고 안으로 들어갔다.
사설부대원들이 대기하고 있던 곳을 지나 안쪽으로 더 들어가자 소유가 보였다. 소유는 어느새 캡슐에 나와 있었다. 안색이 파리하고 식은땀을 연신 흘리고 있어서 금방이라도 쓰러질 거 같은 모습이었기에 주위의 부대원들이 안절부절못하고 있었다.
“소유씨.”
강현은 그런 소유의 모습을 보고. 소유를 부르면서 다가갔다. 힐을 해주기 위해서였다. 소유는 자신을 부르는 소리를 듣고 고개를 돌렸다가 강현이 있는 걸 보고 간신히 입을 열었다.
“강현님…. 그때처럼 몬스터들이...”
그 말에 강현은 황급히 몬스터 레이더에 주의를 기울였다. 이제까지 일본에 입국하고부터는 몬스터의 기척이 전혀 느껴지지 않아서 신경 쓰지 말고 있었던 터였다.
“어떻게 된 거야?”
저도 모르게 불평이 튀어나왔다. 깨끗했던 몬스터 레이더 화면에 가득히 몬스터 표시가 나타났기 때문이다. 이곳은 몬스터 청정국가로 소문난 일본. 이곳에서 갑자기 다수의 몬스터가 나타나 버렸다면. 답은 하나였다.
‘뉴욕처럼 몬스터 폭탄이 터진 건가?’
“지금 어떤 상황인가요?”
강현의 강함을 익히 알고 있던 사설부대원들은 강현이 심각한 표정을 짓는 걸 보고는 덩달아 긴장했다. 결국, 리더가 대표로 물어왔지만. 강현은 대답할 겨를이 없었다.
“전방에 몬스터 다수 접근 중입니다. 충격에 대비하세요!”
그렇게 외치면서 출구 쪽으로 뛰었다. 몬스터 폭탄이 터졌다면. 최대한 빨리 이곳을 벗어나는 게 급선무였다. 그러기 위해서는 비행기가 온전해야 했다.
“네?! 일본은 몬스터가 없다고….”
강현은 그렇게 대답하는 대원을 뒤로하고 비행기 밖으로 나갔다. 바로 눈앞에 보이는 건 흑표범을 닮은 몬스터였다. 그 아래쪽으로 몬스터는 기다랗게 난 이빨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 이빨의 전면은 송곳 같다기보다는 전면이 칼날처럼 날이 서 있었다.
“요격해.”
강현은 양손으로 그 무시무시한 칼날을 막아내면서 [ 콩 ]에게 지시했다. [ 콩 ]은 심비오트 슈트에 장착된 미니 레이저 버스터를 조작해 흑표범 몬스터를 공격했다. 강현은 깨갱 하며 쓰러지는 흑표범 몬스터를 보지도 않고 몸을 돌렸다.
비행기 안의 인간을 노리고 싶은 것인지 비행기 몸통으로 돌진하는 녀석도 있었다. 강현은 재빨리 뛰어서 몸통박치기 하려는 몬스터의 다리를 베어 버렸다. 그리고 넘어진 녀석의 위로 뛰어 올라타 아래쪽으로 깊숙이 건틀릿 소드를 꽂아넣었다. 그런 다음 다시 건틀릿 소드를 축소해 검을 뺐다. 하지만. 아직 전투는 끝나지 않았다.
“한 마리 더.”
그렇게 말하면서 건틀릿소드를 다시 기다랗게 늘여서 뒤쪽에 비행기 꼬리를 잡아 부수려고 하는 녀석의 목을 노렸다. 이번에는 새 형태의 몬스터였는데, 날개 대신 팔이 달려있었다. 강현은 어려움 없이 몬스터의 목을 날렸다. 강현은 순식간에 B급 전후의 몬스터 세 마리를 쓰러트렸다.
다행히 이곳이 활주로여서 몬스터 레이더로 봤을 때 이 근처에서는 몬스터 모습을 이제 볼 수 없었다. 그 밖에는 몬스터들이 바글바글했지만.
-콰직!
불길한 소리. 비행기에 다시 탑승하기 위해 가고 있던 강현은 고개를 휙 돌렸다. 거기에는 머리가 잘린 새 몬스터가 잘린 목 위로 피를 쏟으면서 날개 대신으로 달린 손을 마구잡이로 휘두르는 게 맞은 모양이었다.
“젠장.”
강현은 몬스터에 달려들어 난도질했다. 그 후 몬스터는 움직임을 멈췄지만. 비행기는 후미가 완전히 뜯겨나가서 육안으로 봐도 비행하기 힘들어 보였다.
더는 덤벼드는 몬스터가 없는 걸 확인한 다음 비행기 안으로 황급히 뛰어들어갔다. 비행기 안은 몬스터의 공격 때 받은 충격으로 내부는 엉망진창이었다.
“소유씨.”
강현은 소유부터 찾았다. 몬스터 테이머의 능력을 갖추고 있는 소유가 전혀 힘을 못 쓰고 있는 걸 보면 상태가 나쁠 거라고 짐작했기 때문이었다. 소유는 다행히 다친 곳은 안보였지만. 한쪽에 기댄 채로 가쁜 숨을 내쉬었다. 강현은 힐과 버프를 걸었지만. 한동안 캡슐 내에 갇혀있어서 체력이 약해진 탓인지 크게 효과가 나타나지 않았다.
“죄송해요. 제가 몬스터를 멈췄어야 하는데.”
“괜찮습니다. 무리하지 마세요.”
강현은 미안해하는 소유를 달랬다. 잠깐 이야기를 나눠보니. 몬스터 테이머의 능력으로 몬스터에 지시하지 않더라도. 몬스터의 감정 일부분을 공유한다고 했다. 그래서 정신적으로도 피로가 엄청나 보였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뉴욕사건에서 예거를 먹고 능력을 각성했음에도 결국 쓰러졌던 것도 이해가 갔다.
“알렉스한테 연락하셨나요?”
강현의 질문에 사설부대의 리더가 고개를 끄덕였다. 주위 경계를 지시하고 있던 참이었다.
“네. 현재 상황을 보고하고 현재 빠르게 수배할 수 있는 비행기를 알아보고 있습니다.”
이곳에서 비행기를 구하러 가는 것도 문제였다. 조금만 들어가도 몬스터가 바글바글했으니까. 여기 몬스터들 대부분을 강현 혼자서 처치할 수 있겠지만. 괜히 주의를 끌었다가 비행기 안의 사람들이 위험할까 걱정됐다.
‘역시 기다릴 게 아니라. 먼저 움직이자.’
강현은 고민 끝에 그렇게 결정했다.
“일단 여러분은 이곳에 몸을 숨기고 계세요. 전 일단 소유씨를 안전한 곳에 모셔다 드리고 다시 오겠습니다.”
“알겠습니다.”
리더는 별다른 이의를 제기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충격이 있을지 모르니까. 소유씨는 다소 갑갑하시더라도 다시 캡슐에 들어가 주세요.”
“네.”
그렇게 대답한 소유는 치료캡슐로 향하다가 발걸음을 멈췄다.
“그래도 걱정이에요. 이곳 일본은 몬스터에 대한 대비가 거의 없지 않나요?”
“예전에 일본에서 파견 들어온 도퍼들도 있던데. 도퍼 능력자들은 꽤 많이 보유하고 있을 겁니다. 다만. 민간의 피해가 좀 걱정되네요.”
강현도 입맛이 썼다. 뉴욕보다는 피해가 덜할 테지만. 정황으로 봐서는 그레이가 자신 때문에 몬스터 폭탄을 터트린 거였을 테니까.
그때. 두 사람의 대화를 듣고 있던 리더가 끼어들어 왔다.
“강현님 그래도 괜찮을 겁니다.”
“네?”
“일본이 몬스터 청정구역인 건 몬스터들이 아예 없어서가 아니니까요.”
리더의 말을 듣고 나니. 이해가 됐다. 강현도 그동안 일본의 사정에 대한 소문을 들었던 터였다.
“그럼 역시.”
“네. 확신할 수 없지만. 일본 내에서 몬스터를 조종할 수 있는 능력자가 있다는 게 통설이니까요. 아마 몬스터가 강제로 발생한 거라면 조종해서 외부로 쫓아낼 겁니다.”
소유를 생각해봐도 충분히 있을 가능성이 있었다. 뉴욕에서도 소유가 무의식적으로 조종했던 몬스터들은 S급 몬스터를 쓰러트리고 난 뒤로는 조용히 사라지려고 했으니까.
“소유씨. 그러니까. 일본일은 일본에 맞기고 우리는 무사히 돌아갈 걱정만 합시다.”
“...네.”
다소 억지는 있었지만. 소유는 납득한 듯 고개를 끄덕인 다음. 캡슐 안에 들어갔다.
*****
한 시간 전.
심야의 나리타 공항. 한국에서 출발한 비행기에서 내린 관광객들 사이에 숨어서 조용히 일본땅을 밟은 두 남자가 있었다.
“흠. 이것도 꽤 탈 만해. 엄청난 속도야.”
첫 비행의 소감을 담담하게 밝힌 것은 혼괴였다. 그리고 그 옆에는.
“비행기도 끝내주지만. 일본에 왔으면 전철을 타야 합니다. 역별로 도시락도 얼마나 맛있는데요? 우리 꼭 전철 타러 가요. 네?”
안전관리국 소속 관리자 중 한 명인 김지훈이었다. 일본여행경력이 많다는 이유로 국장인 배인석이 일본 안내역으로 붙여준 남자였다.
“아참. 나리타 공항에 왔으니. 면세점도 들릴까요? 짐이 좀 많기는 해도 나중에 복귀할 때는 허겁지겁하다가 제대로 못 사는 일이 종종 있거든요. 이게 다년간 일본여행 다녀온 저의 노하우죠.”
‘이 자식이.’
혼괴는 혼자서 한참 떠드는 지훈을 보고 똥 씹은 표정을 지었다. 뭐가 그렇게 신 났는지. 만나서 비행기를 타고 일본 오는 내내 떠들었던 거였다. 처음에는 자신이 평범한 모습을 하고 있기에 얕보는가 싶어서 슬쩍 살기로 위협도 해봤지만. 원래 태연한 성격이었는지. 아니면 그런 감각이 망가져 버렸는지. 전혀 개의치 않았다.
게다가 평소의 혼괴의 성격이라면 이딴 녀석쯤은 직설적인 의미로 모가지를 날려버렸을 테지만. 배인석의 당부가 혼괴의 손을 무겁게 했다.
“귀국하신 뒤에는 어떻게 처리하셔도 좋으니까. 일본에 있을 때 동안만은 살려두세요. 그쪽이 일하는데 편리하실 겁니다.”
즉, 배인석의 말에 따르면 소모품일 뿐인 부하라는 의미였다.
“자 이것 드세요.”
지훈은 어느새 매점에 다녀왔는지. 손에 분홍색 떡이 담긴 종이 그릇이 들려있었다.
“이건 이치고 모치라는 거예요. 이 떡 안에 딸기가 통째로 들어있거든요. 아주 그냥 맛이 죽입니다. 죽여~”
그렇게 말한 지훈은 떡을 자기 입에 자기 입에 털어놓고서는 온갖 표정으로 감탄사를 표현하는 거였다.
‘불쌍한 녀석.’
혼괴는 애처로운 눈빛으로 지훈을 쳐다봤다. 짜증 나긴 했지만. 왠지 배인석을 떠올리니 불쌍해 보이는 거였다. 혼괴는 황급히 고개를 흔들어서 그런 생각을 떨쳤다.
‘또 이러는군.’
수백 년 넘게 살아온 혼괴였지만. 몸을 갈아탈 때마다 이런 감정의 기복이 반복되는 건 유쾌한 기분이 아니었다. 그때. 진담 반 농담 반으로 느껴질 만큼 가벼운 투로 지훈이 강현의 이야기를 꺼냈다.
“근데 유강현 그분 저도 몇 번 봤는데 그렇게 나쁜 사람은 아니었는데 말이죠. 아마 오해가 있었을지도 몰라요.”
지훈은 예전 수지와 함께 레이드 다닐 때 처음 봤던 강현의 모습을 떠올리면서 그렇게 이야기한 것이다. 지훈은 그저 옆의 청년을 강제력으로 써서 강현과 협상을 해서 예거 아머를 되찾아오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예거 아머가 왜 국가의 소유여야 하는지에 대한 부분은 납득하기 힘들었지만. 지인의 일인 만큼 원만하게 해결되기를 바라고 있던 터였다.
“....”
하지만. 혼괴는 뭔가 생각하는 듯. 불만스러운 표정을 지으면서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았다. 지훈은 눈치를 보면서 다시 한 번 혼괴에게 말을 걸었다.
“지금 강현님 일보다 더 시급한 일도 많은데 말이죠.”
지훈의 말에 혼괴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그래 보이네.”
그 모습을 보고 지훈은 기뻤다. 드디어 자신의 마음을 알아주는 건가 싶었지만. 이어서 혼괴가 한 말은 엉뚱한 말이었다.
“이 지독한 냄새를 풍기는 녀석을 잡아 족쳐야겠어.”
“지독한 냄새요?”
“혹시 이 이치고 모치 상한 거 같으신가요? 전 괜찮은 거 같은데….”
지훈은 자신의 손에 들려있는 종이 그릇 위에 예쁘게 놓여있는 이치고 모찌를 여러 방향으로 연신 살펴봤다. 그때 한숨 신 혼괴가 지훈을 잡아끌었다.
“됐고. 움직인다.”
“어어.”
지훈이 발에 힘을 주고 버텼지만. 혼괴의 괴력에 쭈욱 미끄러지듯 끌려갈 뿐이었다. 간신히 종이그릇을 양손으로 잡아 이치고모찌가 안 떨어지게 한 지훈은 혼괴에게 물었다.
“지금 어디로 가는 건가요?”
“내 오랜 숙적에게.”
“친구분이 여기 근처 사시나 봐요?”
“친구도 아니고. 여기 근처도 아닌 거 같은데. 좀 더 멀리 있는 게 느껴져.”
“얼마나요?”
끌려가면서도 쉴 새 없이 물어오는 지훈에게 질려 하고 있던 혼괴는 지훈의 마지막 말에 그 자리에서 딱 멈춰 섰다.
자신이 느끼는 거리를 현대 측량에 맞게 표현하려고 하니 혼괴로서도 난감했기 때문이다.
“글쎄. 엄청나게 멀리 있어. 아까 타고 온 비행기라는 녀석을 타고 거리상 꽤 되는데.”
“앗, 그러면 우리 케이세이 전철 타고 가요.”
혼괴의 말에 지훈이 잘됐다는 듯 기쁜 탄성을 내지르더니 이번에는 자신이 혼괴를 잡아끌었다.
“케이세이 전철? 그쪽이 빨라?”
“물론이죠. 비행기보다는 느리지만 이렇게 걸어가는 것보다는 훨씬 빠른걸요. 기왕 일본까지 왔으니까 역시 전철은 맘껏 타야죠.”
“그래.”
혼괴는 지훈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 녀석만 쓰러트릴 수 있다면 케이세이든 세이케이든 몇 번이라도 타주리라 생각하면서.
============================ 작품 후기 ============================
100화 축하 댓글 남겨주신 이든소우님 사랑합니다.^^
그외 말없이 추천하고 응원하고 계시는 독자분들도
모두 감사합니다.__)
즐거운 하루 되시길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