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과금전사-98화 (98/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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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장. 예거 아머(2)

“이딴 종이 쪼가리 하나 얻자고, 그 막대한 예산을 투자한 겁니까?”

사내가 얼굴을 붉히며 서류를 쥐고 흔들었다. 사내의 비싸 보이는 고급 양복에는 금배지가 달려있었다. 사내 좌우 횡으로 비슷한 차림의 사내들과 각각 군경의 정복을 입은 사내들이 각각 무리 지어 앉아있었다.

이 모두의 시선은 하나같이 그들의 앞에 굳은 표정으로 서 있는 남자들에게 향해있었다. 비난의 시선이었다. 뜨거운 주목을 받고 있는 남자들은 각각 양복과 군경의 정복을 입고 있어 각자의 출신을 가늠케 했다.

이곳은 청와대 내부의 비공개 청문회 장소. 사내가 흔든 종이는 알렉스 루엘이 보내온 예거 아머의 설계도였다. 그리고 그 앞에서 있는 남자들은 청와대 비서실, 국방부, 경찰청에서 각각 대표로 뽑힌 장래가 촉망한 엘리트들. 아니, 이제는 ‘장래가 촉망했었던’ 이라고 정정하는 게 좋겠다. 지금 열리는 청문회는 이들의 미래에 암운을 드리우기 충분하니까.

이들은 몬스터 안전관리국의 관리자를 도와 JS 온라인 내에 한국 플레이어를 지원하는 임무를 맡고 수개월 동안 가상세계에서 힘겨운 수련과 싸움을 해왔다. 그 결과 한국이 JS 온라인에서 우승국이 되었다. 이점만 생각한다면 무엇보다 뛰어난 성과. 하지만. 청문회를 진행하는 사내들은 거기에 만족 못 해 보였다.

“나 참. 어떻게 민간인이 그런 무기를 가지게 하는데 날름 허가한단 말인지.”

국회의원이 혀를 찼다. 이 국회의원이 말하는 민간인이란 유강현. 그런 무기란 예거 아머를 말했다. 그러자 옆에서 잠자코 듣고 있던 군복을 입은 남자가 국회의원의 말을 정정했다.

“거 말은 삼갑시다. 우리 국방부에서 일체 허가 한 적이 없습니다. 응당 회수해야 합니다.”

“그렇죠. 안 그래도 도퍼들 때문에 치안이 불안한데. 민간인까지 손댈 수 없는 무력을 손에 넣는다면 어떻게 될지….”

군복 입은 남자의 말을 경찰 정복을 입은 남자가 받았다. 그러자 이 비공개 청문회장 내의 십여 명 남짓한 사람들에게서 일제히 공감하는 듯한 웅성거림이 이어졌다.

그 웅성거림을 깨는 항변은 청문회 대상인 남자들에게서 나온 게 아니라. 그 옆에 잠자코 있던 여성에게서 나왔다.

“잠깐만요. 보고서에 적혀있는 바와 같이. 예거 아머의 설계도는 한미일 삼국밖에 안 가지고 있습니다. 이점을 고려하면 결코 부족한 성과라고는 할 수 없을 겁니다.”

누가 들어도 정론. 하지만. 주위의 분위기는 결코 우호적이지 않았다. 그 시선을 받고도 주눅이 들지 않고 늘 그렇듯 무표정한 표정을 짓고 있는 여성은 채영이었다.

하지만 채영도 비공개 청문회가 열리는 것까지는 이해했지만. 마치 죄인을 다루는 듯 그들이 태도를 돌변할지는 예상 못 했다.

“그래 봤자. 설계도 아닌가? 게다가 재료도 없어서 못 만든다면서? 그럼 그림의 떡이나 마찬가지지. 아니, 실상 설계도가 정말인지 거짓말인지도 모르잖나?”

채영을 쏟아 붙이는 국회의원의 말에 모두 침을 삼켰다. 이 자리에 있는 대부분이 국회의원의 말에 동의했지만. 지금 발언은 알렉스 루엘을 의심하겠다는 것이나 마찬가지였기 때문이다.

“대국을 볼지 모르는 여자에게 무얼 이야기하겠습니까? 괜히 기운 빼지 말고 진정하시지요.”

“그래. 지금 우리가 이 자리에 모인 건 설계도 때문이 아니잖습니까?”

“그렇지요.”

주위의 만류에 국회의원은 흥분을 가라앉히고 설계도를 내려뒀다. 그다음 한 손으로는 사람들 앞에 있는 모니터에 띄어져 있는 화면의 남자를 톡톡 건드렸다.

“이 우승자라는 자가 국가대표로 출전한 만큼 어디까지나 그 우승상품인 예거아머에 대해서는 국가에서도 권리가 있지 않겠습니까? 아니 정상적인 국민이라면 당연히 국익을 위해서라도 알아서 국가에 위탁해야 정상일 텐데 어찌된 영문인지.”

국회의원이 가리키는 화면 안 남자의 모습은 한국인이 아니라 서양인처럼 보였다. 실물이 아니라 JS 온라인 내의 아바타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그 아바타의 이름은 1234. 그 아바타를 움직인 플레이어의 이름은 유강현이었다.

“그래서 당신들은 이 자와 몇 개월씩이나 함께 다녔으면서 누군지도 모른다?”

국회의원의 나무라는 목소리가 그 앞의 세 사람을 움찔하게 했다. 팀 다이내믹 코리아의 구성원들이었던 이 세 사람은 JS 온라인상에서는 스타로드, 빅사이즈, 인텔파이브라는 이름을 쓰고 있었지만. 현실에서는 각각 청와대 비서실 소속의 조성제, 국방부 소속의 대치수, 경찰청 소속 지성오였다.

이들은 국회의원의 말 그대로 자신들의 리더인 1234의 정체를 몰랐다. 기껏해야. 도퍼라는 것 정도? 하지만 국내에 레이드를 할 수 있을 정도의 도퍼 숫자만 해도 천여 명 가까이 됐다. 다만 국가에 관리하고 있는 만큼 외국에 체류하고 있는 도퍼라고 하면 오히려 추려내기 쉬웠다. 그 때문에 강현이 접속할 때에도 일부러 한국 팀의 접속스케쥴을 한국시각에 맞추는 등 여러모로 신경을 썼었다.

거기다가 강현은 JS 온라인이 발표된 뒤 JS 온라인에 접속하지 않고 미국에 나가서 활약하고 있는 걸로 언론에 알려졌었어. 그를 의심하는 사람은 오히려 적었다.

현재까지 강현이 그 아바타의 주인이라는 걸 알고 있는 사람은 극소수. 이곳 비공개청문회장 내에서는 채영뿐이었다. 채영에게서 강현의 정체를 캐내기 위해 갖은 협박과 회유가 있었지만. 고아여서 친인척을 통한 협박도 통하지 않고, 본인에게 위해를 가하기에는 그녀 자신의 능력도 있지만. 퍼스트 도퍼와 친근한 사이라는 것도 알려져 쉽게 건드리지 못하고 있었다.

“잘못하면 퍼스트 도퍼 꼴이 날지도 모릅니다.”

퍼스트 도퍼. 노정석.

그 이름이 이 비공개 청문회장 내 사람들의 심기를 불편하게 만들고 이번 사안에 대해 유난히 과민반응하게 한 것이기도 했다.

예거 실험으로 최초의 몬스터를 퇴치한 도퍼로서 유명세를 탔지만. 그와 즉시 대한민국 군인의 신분을 벗어나 미국으로 전향해버렸다. 미국이 강대국이라 대놓고 불평하지는 못하지만. 한국의 자원을 미국에 뺏겨버린 듯한 기분이 든 것이다.

그때 국내 분위기는 스탠리 유 비난 여론 못지않아서 도퍼에 관한 각종 관리 및 통제 법률이 생겨났다.

“그 우승자란 사람도 도퍼라지요? 안전관리국의 협조만 있으면 쉽게 찾을 수 있지 않겠습니까?”

경찰정복을 입은 사람의 말에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채영은 단호한 말로 거절의사를 보였다.

“개인정보라 알려드릴 수 없습니다.”

“지금 나라 안보가 중요한 판에 딱딱하게 굴기는 저런 목석 같은 여자가 다 있나.”

“저런 여자들이 잠자리에서도 마찬가지로 목석 같더군요.”

“그렇지? 크흐흐.”

군복을 입은 자가 그렇게 말하자 그 옆에 계장급을 빼고 똑같은 군복 사내가 받아넘겨 불쾌한 농담을 던졌다. 그래도 이 자리에 앉아있는 대부분이 그 농담이 먹혔는지 다들 웃음으로 불쾌한 분위기를 잔뜩 뿜어냈다.

“그런데 제가 알려드린다고 해도. 무슨 수로 그를 잡아들이시려고요?”

질 나쁜 농담에도 채영이 개의치 않자. 분위기는 급속도로 냉각됐다. 다들 서로 눈치를 보고 있었다. 한국 내에서는 미스테리한 영웅이라는 점 때문에 팬클럽도 생기는 분위기라 아무래도 그 도퍼의 정체가 공개되면 공개되는 데로 쉽사리 손을 못 댈 분위기였으니까.

아이러니하게도 연일 언론에서는 JS 온라인의 우승자와 유강현 중 어느 쪽이 더 잘나가느냐는 대결구도로 특집기사까지 내보내고 있었다.

“제게 방법이 있습니다.”

그때 굳게 닫혀있던 청문회장 안으로 들어온 두 사내가 있었다. 사람들은 갑작스럽게 나타난 두 사내를 보고 깜짝 놀랐다. 철저히 비밀리에 진행되는 청문회장에 불청객이 나타난 탓도 있었지만. 그 불청객이 문을 열고 들어온 게 아니라 갑자기 문앞에 나타났기 때문이었다.

“당신은…….”

채영은 두 사람의 정체를 알고 있었다. 두 사람 다 채영이 상대하기에는 껄끄러운 상대였다.

*****

“몬스터 안전관리국 국장 배인석라고 합니다. 제 부하직원이 처신을 제대로 못 하고 있는 거 같아서 이렇게 실례를 무릅쓰고 찾아왔습니다.”

두 사내중 큰 키게 검은 트렌치코트를 멋들어지게 입은 사내가 자신의 정체를 밝혔다. 몬스터 안전관리국의 최고 책임자라는 소리를 듣자 회장 내의 사람들이 대부분 긴장의 끈을 살짝 놓았다. 이 자리에는 각 부처의 최고 책임자들은 나타나지 않았다. 당연히 문제가 생겨도 책임지지 않기 위해서였다. 그 때문에 각 부처의 2, 3인자들이 많았는데. 대부분 자신이 혹여나 책임질 일이라도 생길까 봐 청문회 내내 까칠한 분위기로 진행됐었다.

그런데 정부의 특수부처인 몬스터 안전관리국의 최고 책임자가 나타났다? 그렇다는 건 책임질 사람이 나타났다는 말이었다. 회장 내의 분위기가 한결 부드러워졌다.

“JS 온라인의 우승자 1234 플레이어의 정체는 도퍼 유강현입니다. 인천펭귄상륙대첩의 주인공이라고 하는 편이 다들 알기 쉽겠습니다만.”

배인석은 아무렇지도 않게 폭탄발언을 했다. 몬스터 안전관리국에서도 아는 것은 국장인 인석과 채영밖에 없던 JS 온라인의 우승자를 밝힌 것. 청문회장 내에 있던 사람들이 술렁거렸다. 당혹함과 기쁨. 이 귀중한 정보를 자기가 닿아있는 외부에 어떻게 하면 비싸게 팔아먹을 수 있을까를 생각하면서 즐거운 미소가 표정으로 흘러나오는 것이다.

청문회를 진행하고 있던 국회의원도 문득 일본에 있던 연줄을 떠올렸다가 이내 자신의 역할을 기억해내고는 배인석에게 물었다.

“그런데 무슨 수로 방법이 있다는 거요?”

“먼저 이쪽 분을 소개해 드려야겠네요. 이분은 ‘환괴’님이십니다.”

배인석은 그제야 자신과 함께 들어온 남자를 가리켰다. 환괴라고 불린 남자는 배인석보다 연배가 훨씬 어려 20대 초반의 청년처럼 보였다. 환괴는 자신에게 쏟아지는 시선에 고개를 숙이는 대신 자신감 넘치는 표정으로 콧대를 치켜세웠다.

“내가 환괴이네.”

회장에 있는 이들은 그 오만한 태도에 불쾌했지만. 안전관리국장이 데리고 온 걸로 봐서 그저 못 배워먹은 어린 도퍼 능력자가 아닌가 하고 넘어갔다. 단 한 명만 빼고.

“어린놈의 녀석이 무례하기는. 그쪽 인간들은 왜 다 그 모양인가?”

“저도 정말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제 아들놈이었다면 다리를 그냥 확!”

아까 채영을 나무랐던 국방부 측 인사였다. 거기다 예의 채영을 성희롱했던 부하가 추임새를 넣으면서 다리를 부러트리는 시늉을 했다. 그러자 주위에서 자잘한 웃음이 번져 나왔다.

“호오. 그런 식으로 내 다리 몽둥이를 부러트리시겠다?”

환괴는 어느새 부하 옆으로 가서 그 모습을 유심히 쳐다봤다. 다들 놀라운 눈으로 환괴를 쳐다봤다. 이 자리에 있는 누구도 환괴가 거기까지 가는 모습을 못 봤다. 다행히 키득거리는 모습이 크게 개의치 않아 보였다. 하지만. 채영은 알 수 있었다. 저 불길한 웃음을. 상대방을 어떻게 부셔놓을까 생각했을 때 나오는 웃음이었다.

“자, 잠깐만요!”

“으아아아악!”

채영이 말리기 위해서 소리친 것과 동시에 부하가 비명을 질렀다. 환괴가 부하가 다리를 부러트리겠다면서 보여준 동작 그대로 부하의 팔을 분질러 버린 거였다. 마치 나무젓가락을 부러트리듯이.

“뭐, 뭐야.”

다들 깜짝 놀라 환괴의 주위에서 떨어졌다.

“지, 지금 이곳에서 뭐하는 짓인가?”

진행자가 간신히 정신을 수습하고 환괴대신 배인석에게 물었다. 공포로 부들거리는 다리를 간신히 부여잡고 물어온 건 칭찬해줄 만했다.

“죄송. 손 속에 사정을 두지 않으시는 분이라.”

무심한 듯 어쩔 수 없다는 투의 사과를 한 배인석은 환괴를 돌아봤다.

“그래도 너무 심하셨습니다.”

“아아, 여기서는 나이 많으면 마음대로 부러트려도 되는 거 같아서. 내가 이곳에 있는 놈들 다 합친 것보다는 나이가 많잖아? 안 그래?”

환괴의 말에 청문회장 내 공기가 싸늘해졌다. 누구도 환괴의 말에 이의를 제기하지 못했다. 배인석이 그 모습을 보고 쓴웃음을 지었다.

“그 정도는 아닙니다.”

“아니면 말고.”

그렇게 말한 환괴는 근처에 있는 의자에 걸쳐 앉아서는 다리를 책상 위에 올렸다. 배인석은 그 옆에 서서 눈앞의 사람들에게 선명하게 들리도록 이야기했다.

“이런 이유로 안전관리국에서 이 사안에 대해서 전적으로 맡아 해결할 테니 정부의 각 부처와 군경 모두 협조를 부탁한다는 차원에서 인사드리러 왔습니다.”

다들 배인석의 말에 한마디도 대꾸하지 못했다. 그 옆의 환괴가 무서웠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목표는?”

“잘 아시겠지만. 금방 이야기한 유강현이란 도퍼입니다. 곧 일본으로 향할 거 같은데 괜찮으시겠습니까?”

“문제없지.”

환괴는 손이 심심했던지 책상 위에 놓여 있던 서류를 손이 잡히는 데로 한 장씩 찢기 시작했다. 심지어는 태블릿 PC도 종이처럼 찢었다.

“그동안 몬스터 코어를 비축해둔 게 얼마인데. 게다가 그 녀석 앞으로 S급 몬스터 코어도 있고. 일본에도 하나 있다며? 거기다 예거 아머인가 뭐시기까지. 일석삼조아닌가? 그렇다면 어디든지 쫓아가야지. 그 정도면 아마 본래의 모습을 되찾을 수 있을지도 몰라.”

“그건 기대되는군요. 그럼. 일본행 비행기를 준비하겠습니다.”

그렇게 말한 배인석이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가 감추고는 채영쪽으로 돌아봤다.

“권채영. 넌 저분 치료해드려.”

“알겠습니다.”

채영은 파리한 안색으로 배인석의 지시대로 쓰러진 채로 홀로 내버려져 있는 부하에게 다가가 힐로 치료했다. 금세 고통이 경감되자 이번에는 실신해버렸다. 채영은 그 부하를 살펴보는 척하면서 이 상황을 어떻게 강현에게 전달할 수 있을까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다.

‘강현 님…….’

============================ 작품 후기 ============================

올해도 어느새 한달이 지났습니다.

2월에도 잘 부탁드리겠습니다.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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