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97 회: 21장. 예거 아머 -- >
21장. 예거 아머(1)
강현은 중상을 입은 알렉스를 힐로 치료 해주면서 JS온라인에서 자신이 겪었던 일에 관해서 이야기했다. 알렉스는 이 여자애가 JS온라인. 그것도 상급 퀘스트의 마지막 층에 있었다는 말을 듣고 깜짝 놀랐다.
“이 분이 지하 100층에 계셨다고요?”
무척 공손한 태도. 알렉스는 눈앞의 여자애한테 손목이 바스러지는 고통을 겪은 뒤에 태도가 돌변했다. 강현은 항상 갑질만 하고 살아왔을 법한 녀석이 손바닥 뒤집듯 태도를 바꾸는 걸 보고 놀랐다. 새삼 고통은 사람을 변하게 하는 가장 쉬운 방법이란 생각이 들었다. 방금 알렉스가 겪었던 것은 고통을 넘어서 생존의 위협에 가까웠을 테지만.
“네. 마지막에는 S급 몬스터가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의외였어요. 아무리 이런 취미가 있다고 해도 굳이 저런 데서 표출할 건 없을 텐데….”
“제, 제가 만든 건 아닙니다.”
장난스레 건넨 강현의 말에 알렉스는 손사래를 치며 전력으로 부정했다. 그다음 강현과 여자애를 번갈아가며 쳐다봤다.
“그보다 강현님 말이 사실이라면 시뮬레이션 안에 있던 사람을 어떻게 밖으로 데려 나오신 건가요?”
“그야 저도 모르죠. 이 게임에 관해서는 저보다 알렉스님이 더 잘 아시잖아요.”
하지만. 알렉스는 여자애에 대해서 도통 모르는 기색이었다. 그래도 한동안 머리를 주억거리며 고민하던 알렉스는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일단…. 버그가 맞겠네요.”
“버그?”
“히익!”
알렉스의 말에 여자애가 인상을 쓰면서 대꾸하자. 알렉스가 겁을 먹고 비명을 지르며 뒤로 물러났다. 여자애는 그 모습이 재밌다는 듯 장난기 가득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여자애의 긴 머리카락을 땋고 있던 채영이 조용한 목소리로 여자애를 나무랐다.
“겁먹었잖아요. 그 정도만 하세요.”
“흥.”
채영의 말에 여자애가 고개를 휙 돌렸다. 알렉스는 겨우 한숨을 돌린 다음. 자신이 아는 것에 대해서 털어놓기 시작했다.
“어쨌든. 예거 시뮬레이션 온라인에 관해서 이야기하자면 조금 복잡합니다. 이 시뮬레이션이 원래 서비스 종료되었던 온라인 게임을 바탕으로 제작되었다는 건 잘 알고 계시죠? 강현님은 서비스 종료된 게임을 플레이하기 위해서 게임회사까지 직접 찾아오셨으니까요.”
물론 강현도 잘 알고 있다. 강현의 강함은 이 예거 시뮬레이션 온라인의 전신이었던 몬스터 레이드 온라인에서 나왔으니까. 게임상에서 레벨업을 하고 능력치를 높여주는 아이템을 샀을 때의 강함이 현실에도 반영되었으니까.
그보다 강현은 알렉스의 마지막 말을 듣고 놀랐다.
“그 사건 알고 계셨군요.”
그때 강현은 자신에게 엉뚱한 원한을 품었던 여자 때문에 게임 속에 갇혀버렸었다. 그 게임이란 바로 몬스터 레이드 온라인에서 탈바꿈했지만, 아직 오픈되기 전이었던 JS 온라인이었다.
“시스템적 부분은 거의 기존 게임에 따라갔습니다. JS 온라인 같은 경우에도 시뮬레이션 엔진 개발비용을 줄이기 위해서 뿐만 아니라 개발기간을 단축하기 위해 JS온라인에 거기에 스킨을 입혀서 시뮬레이션 프로그램처럼 보이게 만든 거죠.
그리고 이 JS 온라인은 애초 개발 의도에 맞게. 게임 내의 모습은 예언자 도퍼인 엘리야에게 도움을 받아 만들었지요. 컴퓨터로 뇌파를 입체스캔해서 머릿속의 이미지를 컴퓨터 안의 가상세계에 구현한 거랍니다.”
알렉스는 강현이 알아들을 수 있게 좀 쉬운 용어를 골라가면서 차근차근 이야기했다. 강현은 그 말을 듣고 나서야 알렉스가 JS 온라인의 우승자가 되도록 못 도와준 이유를 깨달았다.
“그 때문에 내부 시스템에 관여하기 힘든 거였군요.”
“네. 최대한 미래에 대비하기 위해 만들었던 것만큼. 예언가가 만들어둔 걸 시스템 내부를 해킹해서 들여다보거나 혹은 변조하거나 할 순 없었어요.”
어쨌든. 알렉스의 말을 종합해 보면. 알렉스 자신은 이 JS 온라인의 게임 디자인이 관여한 바가 없었다는 것이다. 강현은 여자애를 돌아봤다.
‘그렇다는 것은?’
“이 아이는 그 예언자가 상상했거나. 미래를 보고 나서 등장하는 인물인 거 같네요.”
채영이 끼어들었다. 어느새 여자애의 머리카락을 다 땋은 상태였다. 거의 바닥에 닿아 질질 끌리던 머리카락은 양 갈래로 땋아져 허리 근처까지 길이를 줄였다. 여자애는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것임에도 이야기보다는 자신의 머리 형태가 마음에 들었는지 채영이 손에든 거울에 비친 자신의 뒷모습을 이리저리 돌려가며 쳐다보고 있었다.
“그런데 왜 현실까지 나올 수 있게 되었죠?”
“글쎄요. 그것까진.”
채영의 질문에 알렉스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결국, 제일 중요한 부분을 놓치고 있는 거였다.
반면에 강현은 알렉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자신의 능력에 대해서도 곰곰이 생각했다.
아무리 도퍼의 능력들이 어떻게 나타나는지 구체적으로 해명되지 않았다고 해도. 자신처럼 게임에서 강해진다고 게임 밖에서도 강해진다는 건 일반적인 상식의 범위를 벗어난 것이다. 그럼 그렇게 보일 뿐 다른 능력이라고 생각하는 게 맞을 터.
‘머릿속의 이미지를 그대로 구현하는 능력?’
정확하진 않지만. 아마 근접할 것이었다. 어떤 의미에서는 알렉스가 예언자의 뇌를 스캔해 JS온라인을 만든 것과 비슷한 맥락이라도 할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문제는 이 능력의 발동조건이었다. 강현이 이제까지 고민해본 바로는. 게임을 플레이했을 때 얻은 능력이 뇌리에 선명하게 남았을 때. 혹은 거기에 더해 그 능력이 현실에서 쓸 수 있다고 무의식적으로라도 느끼고 있을 때만 가능했었던 거 같다.
너무 판타지틱하거나 몬스터 레이드와 관련 없는 다른 게임을 했을 때는 강해지진 않았으니까.
‘그렇다고해도 이 여자애는 어떻게 된 거야? 혹시 무의식적으로 여자애가 귀엽다고 생각해서 만들어 낸 건가?’
가능한 것 같지 않지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자 등골이 서늘했다. 만약 그렇다는 것은?
‘난 로리콘이 아냐!’
강현은 다른 사람이 들을 수 없도록 속으로 절규했다.
*****
잠시 후.
-마스터. 테라는 마스터가 만들어낸 게 맞습니다.
“무슨 소리야?”
뒤처리를 마친 강현은 휴식을 위해 샤워실에 들어갔다. 씻기 위해 샤워기에 물을 틀려고 할 때. [ 콩 ]이 갑작스레 말을 걸어왔다.
-JS온라인 지하 100층과 접속 캡슐에서 만나신 미성숙 아성체이야기입니다. 그녀의 이름은 테라. 아까는 노출 우려 때문에 말씀 못 드렸습니다만. 테라는 마스터의 자원과 능력으로 만들어낸 게 맞습니다.
“아, 걔 이름이 테라였어? 근데 내가 만들어냈다고?”
-그렇습니다. 모습이 마스터와 비슷한 인간형이긴 해도. 실제 모습은 아니니까요.
생각해보면 강현 신체에 예거 잔여물이 실체화한 [ 콩 ]도 어떤 의미에서는 강현이 만들어 낸 거나 마찬가지였다.
‘아무리 그래도. 사람 정도의 크기를 만들어낼 정도의 예거를 먹지는 않았는데…. 설마?’
강현은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얼른 인벤토리를 열어봤다. A급과 S-급 몬스터 코어로 가득하여 있어야 할 인벤토리 안은 누가 봐도 많이 비어있었다.
“젠장. 얼마나 없어진 거야.”
-체크했습니다. 마스터. 테라의 생성 시에 소모된 몬스터 코어는….
“됐어. 됐어. 들어봐야 나만 속 터지지.”
강현은 [ 콩 ]의 보고를 막고 샤워기 아래에서 길게 한숨을 쉬었다.
*****
“주인님. 이제 가실 시간입니다.”
“알았어. 세바스찬.”
알렉스는 세바스찬이 부르는 소리에 고개를 끄덕이며 일어섰다. 곧 있을 기자회견 관련 서류를 보고 있던 참이었다.
몇 시간 전 알렉스를 찾아온 강현은 JS 온라인 내에서의 협상 내용에 대해 전달했다. 예거 아머는 강현의 개인 물품으로 하되. 비밀리에 미국과 중국에 접촉해서 예거아머의 설계도를 전달하는 것. 물론, 강현의 팀원으로 도와준 한국측에서도 마찬가지로 예거 아머의 설계도를 전달해 달라고 요청했다. 알렉스는 흔쾌히 승낙하고는 곧바로 기자회견을 준비하라고 세바스찬에게 지시했다.
그 준비가 끝났다고 세바스찬이 알렉스를 모셔가기 위해서 찾아온 거였다.
지금 알렉스가 있는 곳은 루엘타워 안의 개인실. 원래 몬스터의 습격으로 엉망이 되었지만. 세바스찬이 사건이 끝나자마자 알렉스가 이곳을 사용하는 데 불편함이 없도록 신경 써서 원상복귀 시켜뒀다.
개인실에서 나온 알렉스는 기자회견장으로 내려갔다. 기자회견 내용은 별거 없었다. JS 온라인의 공략을 선언하고 우승자를 발표하는 것. 이미 상급 퀘스트 클리어 이후 JS 온라인에서 튕겨 나간 플레이어들이 공략소식을 전 세계에 알린 상태였으니 중요한 발표는 아니었다.
중요한 것은 예거 아머를 가지게 될 우승자의 정체였다. 이미 JS온라인 내에서 알고 있는 우승자의 국적을 빼고는 모든 사항을 비밀로 하기로 되어있었다. 게다가 이미 미국과 중국팀 그 우승자를 도와준 대가로 예거 아머의 설계도를 받은 뒤라. 멋모르는 대중만이 이 기자회견에 주목할 뿐이었다.
알렉스는 기자회견장에서 JS 온라인의 공략을 선언한 다음. 수리한 예거 아머를 이 자리에서는 등장하지 않은 우승자 1234님에게 증정한다고 밝혔다. 그리고 우승자의 연락처는 루엘가쪽으로 문의하길 바란다며, 질문을 받지 않은 짧은 기자회견을 마쳤다.
그 이후.
1234라는 플레이어에 접촉하기 위해 세상이 떠들썩했다. 강현과 인터뷰하고 싶어하는 사람부터 강현이 손에 넣은 예거 아머에 대해서 관심이 많은 사람까지. 수많은 연락이 왔지만. 알렉스가 중간에 적절히 막아내서 강현에게까지 전달되는 경우는 없었다.
하지만.
그 사이에 강현이 기다리고 있던 연락이 왔다. 알렉스가 철저히 보안을 유지해서 JS온라인의 우승자를 숨기고 있음에도. 은밀하게 강현에게 직접 연락이 닿은 것이다.
연락해온 그곳은 세계적인 도퍼 범죄조직. 그레이였다.
강현은 예거 아머의 교환 조건을 회색 측에 전달했다. 그 조건은 회색 측을 놀라게 했다. 단순히 개인적인 복수 즉, 원한을 풀려고 했기 때문이다.
그 내용인즉.
이성제라는 인물을 잡아 오라는 거였다. 그레이 측은 쾌재를 부르며 승낙했다. 범죄조직에게 납치만큼 쉬운 일은 없었으니까. 그것도 7등급 정도의 도퍼라면 그레이에겐 일반인이나 마찬가지였다.
그 뒤로 회색 측에서는 성제에 관한 정보를 계속해서 보내왔다. 성제를 찾긴 쉬웠다. 현재 일본 측에 S급 몬스터 코어를 기부(?)한 탓에 귀빈 대우를 받고 있었는데. 성제를 일본 측과 연결해주고 커미션을 받은 것 또한 그레이였으니까.
그레이에서 넘겨둔 정보를 받고서야 강현은 부평 서브웨이 스테이션에서 어떤 일이 벌어졌었는지 속 시원히 알 수 있었다.
최초 그레이가 알렉스로부터 S급 몬스터를 탈취해 한국에 건너와 부평 서브웨이 스테이션에 숨어들었다. 그곳의 보스가 추후 있을 거래까지 그레이를 숨겨두고 있어야 했지만. 성제 때문에 쫓아 들어온 안전관리국 요원들 때문에 보스는 체포. 성제는 S급 몬스터 코어를 가지고 필사의 탈출에 성공해. 인천펭귄상륙대첩이 벌어졌을 당시. 모든 시선이 거기로 쏠려있을 때. 한국을 도와준다는 명목으로 국내에 들어온 일본 측의 도움을 받아 일본 측으로 탈출했다는 것이다.
그레이 측에서 보자면 성제는 어떤 의미에서는 자신들의 S급 몬스터 코어를 가로챈 얌체기도 하지만. 어차피 한국 측에 뺏길지도 몰랐던 S급 몬스터 코어를 당초 거래처 중의 하나였던 일본 측에 무사히 거래를 성사시킨 은인이기도 했다.
어느 쪽이든 탐내고 있는 예거 아머를 위해서라면 성제를 강현에게 넘겨주는 건 일도 아니었다.
문제는 강현이 원한 건 시체가 아니라. 성제를 산 채로 잡아다 대령하길 원한다는 것이었다. 성제는 무슨 일이 있어도 일본 밖으로 벗어날 생각이 없어 보였다. 시험 삼아 미국 내의 그레이 본거지에서 주요직책을 약속했지만. 꼼짝도 하지 않았으니까. 결국, 그레이에서는 성제를 며칠 안에 납치해 오겠다며 강현에게 연락했다.
거기에 대해 대답으로 강현은 자신이 직접 일본으로 들어가 성제를 심판하겠다는 의사를 전달했다. 단신으로 일을 하기엔 어려우니 그레이 조직의 인원과 자원을 빌리겠다는 말과 함께.
그레이측은 당연히 승낙했다.
그레이측에서는 보자면 강현이 예거 아머도 일본으로 가져가 성제를 얻는 즉시 거래하겠다는데 이보다 좋은 조건이 없었다. 게다가 자신들과 엮인다는 측면에서 더욱 좋았다.
그레이측과 몇 가지 협상을 한 강현은 그날 바로 알렉스의 개인기를 타고 일본으로 향했다.
그때.
한국 측에서도 급히 일본으로 떠나는 비행기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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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무대는 미국을 떠나서 일본으로...
늦은 연재 죄송합니다.ㅠㅠ
즐거운 주말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