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과금전사-92화 (92/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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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장. 설계(5)

“예상치 못한 상황입니다.”

하지메는 상대의 입을 꿰매버리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벌써 몇 번이나 듣는 말인지 몰랐다. 테일러는 자신의 작전이 실패한 게 충격이었는지. 도망치는 와중에도 연신 저 말을 중얼거렸다.

테일러의 계략에 따라 중국팀을 궁지에 몰아넣었다고 생각한 순간. 나타난 응원군 때문에 중국팀의 두목인 장이평을 처치하는 데 실패했다. 이어지는 중국팀의 반격에 테일러가 일단 자리를 피해야 한다고 자꾸 주장하는 탓에. 부하들을 제대로 추스르지도 못하고 테일러를 데리고 도망칠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소기의 성과를 달성한 셈. 중국팀을 괴멸시키지는 못했더라도 이번 작전에 꽤 많은 병력이 사망 페널티를 받았다. 그보다 신경 쓰이는 건 중국팀을 구원한 응원군의 정체였다.

“아까는 어디서 나타난 응원군일까요?”

“그거야. 당연하죠. 그레이팀의 별동대입니다.”

하지메의 질문에 테일러가 걸음을 멈추고. 그것도 모르느냐는 듯 으스대며 말했다. 꽤나 쇼크 상태였는데 상대방에게 핀잔을 주면서 자존감을 회복하는 걸 보고. 속으로 혀를 찼다. 게다가. 하지메의 생각은 테일러와 달랐다.

일반적으로는 중국팀과 동맹관계에 있는 그레이팀의 별동대라고 생각할법하지만. 복장에 무채색으로 포인트를 주곤 하는 그레이팀의 특징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그래도 그레이팀의 복장 같지는 않습니다만.”

“어디까지나 별동대이니까요. 게다가 하지메님도 보셨지 않습니까? 그 거구들의 괴팍한 모습을.”

테일러의 말에 하지메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최초에 나타난 응원군의 모습은 지금 생각해도 아찔했다. 하지메의 상식에 벗어났다. 들고 있는 무기와 상관없는 공격에 일본팀은 완전히 흐트러졌었다.

하지메는 그 치욕적인 순간을 가슴 한쪽에 묻어두고 테일러에게 물었다. 지금 방향은 이 F 지역의 중앙으로 무작정 들어가는 중이었다.

“다음 계획은 어떻게 되십니까?”

하지메의 질문에 의외의 대답이 돌아왔다.

“남은 일본팀의 병력을 모아서. 그레이의 별동대를 공격하세요.”

그렇게 총명해 보였던 테일러의 지시라고 볼 수 없는 명령. 금방까지 그 공격하라는 그레이팀의 별동대가 현재 중국팀과 합류했고, 그들에게 금방까지 중과부적으로 쫓기던 걸 까먹은 거 같았다.

자신에게 지시를 내린 뒤 허공을 쳐다보고 있는 테일러의 모습을 보고 하지메는 한숨을 내쉬었다.

‘위기에 쉽게 무너지는 성격인가?’

그렇다고 해서. 아니, 그렇기에 더더욱 무리한 명령을 마구잡이로 들어줄 수는 없었다.

“테일러. 무리입니다.”

“하지만. 변수를 제거해야지. 앞으로의 계획이 선명해지는 겁니다. 흩어진 인원을 모으면 가능하지 않나요? 일본팀은 그 정도도 무리입니까?”

도발적인 어투. 저렇게 악다구니를 쓰는 이와 더는 대화가 통하지 않으리라는걸 느낀 하지메는 결국 하겠다고 대답을 한 뒤 일어섰다.

마치 부하를 부리는듯한 태도는 일본팀의 리더인 하지메로서는 굴욕이나 다른 없었다. 하지만. 중국팀을 잡기 위해 일본팀을 전력을 소모한 지금. 미국팀의 지원책으로 데려온 테일러를 무시했다가 미국팀에 버림받는 상황이 더욱 두려웠다.

하지메는 이 지역의 중심 구역을 쳐다봤다. 거기에는 한창 미국팀이 중급 퀘스트 공략을 위해 몬스터와 전투를 벌이고 있을 터였다. 거기서 하지메가 떠올린 것은.

‘오와루 부탁한다.’

미국팀을 감시하기 위해 붙여둔 자신의 직속부하였다.

*****

“보고드립니다. 남쪽 입구의 B급 지원 몬스터 넷은 퇴치. A급 몬스터와 교전 중입니다.”

“피해는?”

“중상자가 2분대에 둘. 3분대에 하나 있습니다. 현재 해당 인원은 후방으로 이동시켜서 치료 중입니다.”

“좋아. A급 몬스터만 쓰러트리면 바로 중앙입구로 진입할 수 있겠군.”

달려와서 보고 하는 걸 들은 올리버는 만족스러운 듯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러다가 문득 잊은 걸 깨달았다는 듯이 부하에게 재차 물었다.

“정찰은 아직도 안 돌아왔어?”

“최근 정찰병력은 미복귀. 변동이 없다면 아직 별다른 움직임은 없을 것으로 예상합니다.”

“좋아 이대로 몰아붙인다.”

그렇게 지시를 내린 뒤 올리버는 테이블에 펼쳐놓은 지도를 살펴봤다.

작전 목표는 먼저 중급퀘스트를 클리어해 마지막 남은 상급퀘스트의 진입로를 확보하는 것. 그걸 위해 방해꾼들을 제거할 필요가 있었다.

최초계획은 일본팀이 동쪽으로 진입한 그레이팀과 중국팀은 양쪽으로 쪼개서 유인. 유인된 집단부터 이곳과 최대한 멀리 떨어트리기 위해 북쪽으로 향하게 한 다음. 남은 집단을 먼저 공격해서 방해 못 하도록 발을 묶어두는 거였다. 그사이에 미국팀은 중앙을 지키고 있는 몬스터를 제거해야 했다.

현재는 설계된 작전대로 잘 굴러가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미끼를 문 것은 중국팀으로 무사히 공격에 성공했다고까지 보고를 들었다. 그렇다면 최악의 상황을 가정해도 중국팀이 여기까지 치고 들어오는 경우는 없을 것. 남은 건 그레이팀의 발을 얼마나 잘 묶어두는가 하는 것뿐이었다.

정말 다행스러운 상황. 그간 막대한 예산만 소모되고 실적이 없어서 곤란하던 차였다. 올리버는 어서 이곳에서 일을 마무리 짓고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가족들은 올리버가 해외파병 가 있는 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정작 올리버는 미국 내 부대 안에서 이곳 JS온라인에 접속 중이었다.

“정찰이 안 돌아오는 게 신경 쓰이는군요.”

“깜짝이야!”

지도를 보고 있던 올리버는 그답지 않게 소스라치게 놀라면서 한걸음 물러섰다. 올리버를 놀라게 한목소리의 주인공은 올리버의 반응에 개의치 않고 지도를 가까이 들여다봤다.

“진정하시죠. 오와루입니다.”

“놀랐잖나.”

올리버는 헛기침하고. 지도를 들여다보고 있는 오와루의 옆으로 갔다. 시커먼 옷을 두르고 막대기처럼 꼿꼿이 서 있는 오와루를 보고 질렸다는 표정을 지었다.

‘워낙 조용하니 있었는지 없었는지 자꾸 까먹는단 말이야.’

“지금쯤이면 외곽순찰을 나갔다가 돌아올 시간이 아닙니까?”

오와루가 재차 이야기했다. 몇 시간 동안 겪어온 바로는 오와루가 묻는 건 단순히 질문이라는 걸 알 수 있었지만. 올리버라는 추궁받는 듯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겨우 안 떨어지는 입을 열어 대꾸했다.

“그렇긴 한데. 아직 허용범위 내네. 중간중간에 몬스터들이 방해하면 전투를 벌이지 말고 우회하도록 지시했으니.”

올리버는 이 일본인이 불편했다. 보통 일본인들은 자신에게 웃는 낯으로 굽실거리기가 일수였는데. 일본인은 달랐다. 피가 안 통하는 마치 안드로이드 같은 느낌을 줬다.

“그럼 A급 몬스터 레이드가 한창일 때니 슬슬 함께 가보실 텐가?”

순간 막사 안이 거북해진 올리버는 오와루에게 제안했다. 오와루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이고 막사 밖으로 나왔다. 그러자 막사 밖을 지키고 있던 부하 둘이 올리버에게 경례하고 따라 붙었다.

전투의 흔적을 따라 이동하니 아직 사라지지 않은 몬스터들의 사체가 보였다. 그렇게 채 10분도 이동하지 않아서 후방에 물러나 간이막사 안에서 치료하고 있는 부하들이 보였다. 부하들이 올리버를 발견하고 일어서서 맞이하려고 할 때. 올리버는 가볍게 손을 들어서 제지했다.

“그래. 상황은 어떤가?”

올리버는 그 말을 하면서 부하들을 살펴봤다. 중상자는 별로 없지만. 치료를 받는 이가 생각보다 많았다. 하지만. 이것도 올리버의 방침이었다. 중급퀘스트의 제일 난관이라면 입구를 앞에서 틀어막고 있을 이 구역의 보스몬스터. 그 보스몬스터를 상대하려면 최대한 전력을 살려서 돌파할 필요가 있었다. 그래서 조금만 데미지를 입으면 물러나 치료를 하라고 지시했다.

그 때문에 제일 바쁜 건. 의무병. 아니 힐러들이었다.

“한참 A급 몬스터와 싸우는 중입니다만. 곧 쓰러트릴 거 같습니다.”

치료를 기다리고 있던 병사 한 명이 올리버에게 보고했다. 올리버는 고개를 끄덕였다. 코앞에서 전투가 벌어지고 있는 듯 치열한 전투소리가 여기까지 간간이 들어왔다.

“둘은 몬스터가 고개를 못 숙이게 하고 나머지는 다리부터 공격해 어서.”

의무대 임시막사를 지나가자. 한창 전투 중인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1분대 장이 지시를 내리고 나머지 분대원들이 지시에 따라 일사불란한 움직임으로 공격해 들어갔다. 공격 대상은 십여미터 정도 크기의 A급 몬스터. 주위에 다른 몬스터가 안 보이는 걸 봐서 남은 몬스터는 지금 상대하고 있는 몬스터 한 마리뿐인 거 같았다.

그때. 후방에서 전황을 분석하고 있던 병사한 명이 올리버가 온 걸 눈치채고 얼른 달려왔다. 그리고 올리버가 묻기 전에 알아서 전황에 대해서 곧바로 보고했다.

“올리버 대장님. 데미지 계산결과 앞으로 5분 안에 결판날 것 같습니다.”

“좋은 타이밍에 왔구먼. 안 그런가?”

빠른 보고에 만족한 올리버는 보란 듯이 오와루를 돌아봤지만. 오와루는 무표정한 얼굴로 시선을 몬스터에게 고정한 채로 대답했다.

“네.”

‘쩝. 역시 정이 안가?’

올리버는 몬스터를 쓰러트린 후에 곧바로 중앙으로 돌파할 수 있도록 지시를 내려두려고 했다. 그때. 좌측 숲 속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올리버가 잠깐 멈칫한 순간. 그 소리는 빠르게 가까워졌다.

“자아. 이것들아 다 마음껏 쓸어버려라!”

수풀을 해치고 드러난 사내는 회색 옷차림에 회색 안대를 하고 있었다. 사내가 들고 있던 검을 앞으로 휘두르면서 소리치자. 수풀에서 무기를 든 사람이 튀어나왔다.

그레이팀의 기습이었다.

*****

“지금은 팝콘이 없는 게 아쉽네요.”

아래쪽을 보면서 빅사이즈가 중얼거렸다. 지금 강현의 다이내믹 코리아팀은 커다란 나무 위에 각자 줄기에 앉은 채 몸을 숨기고 있었다. 그리고 그 아래는 치열한 전투 중이었다.

상대는 기습한 그레이팀과 몬스터와 싸우다가 갑작스레 기습당한 미국팀.

원래 강현 일행은 미국팀과 그레이팀의 행방을 찾기 위해 중앙으로 왔다가. 미국팀이 A급 몬스터 레이드를 하고 있는 걸 확인한 다음 상황에 맞춰서 행동하기 위해서 대기하는 중이었다. 세 거한은 한국과 미국의 관계를 생각해서 협력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특히나 일본팀과 미국팀이 협력관계에 이미 있는 걸 보고. 우리나라가 일본보다 더욱 미국과 가까운 관계가 되어야 한다는 이유를 들었는데, 강현은 즉시 거절했다.

한창 레이드를 잘하고 있는 상황에서 끼어들었다가 협력자가 아니라. 방해꾼으로 몰릴 위험이 있을 뿐이었다. 다른 팀에 비하면 여섯 명밖에 안 되는 다이내믹 코리아팀은 초라하기 그지없었으니까. 끼어도 부하취급이나 당하기 십상이었을 게 눈에 보였다.

그런 상황에서 저 미국팀 옆에 서 있었더라면. 금방 그레이팀의 기습공격에 함께 당했을지도 몰랐다.

“혹시. 예상하셨었나요?”

채영의 질문에 강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확신한 건 아니지만. 혹시 저러다가 안보이던 그레이팀에 습격당할 수도 있겠다 싶은 생각은 잠깐 했으니까. 거짓말은 아니지?’

그런 가벼운 마음으로 고개를 끄덕였지만. 뜻밖에 빅사이즈, 인텔파이브, 스타로드가 존경하는 눈빛으로 강현을 쳐다봤다.

“어쨌든. 미국팀이 많이 위험해 보이넴.”

아래쪽을 유심히 보고 있던 수지가 중얼거렸다.

지금 미국팀 상황은 여러모로 위험했다. 기습당한 것도 당한 거지만. 현재 미국팀은 몬스터만을 상대하기 위해 최적을 포지션을 준비해 온 상태로 보였다. 대인 전에서 유리한 근접딜러는 배제하고 탱커와 원딜, 힐러위주의 구성이 때문이다.

그에 반해 달려드는 그레이팀의 전열은 모두 근접딜러. 거리를 두고 있는 인원들은 다른 포지션인걸 감안할 때. 기습효과에 덧붙여 금방이라도 패퇴할 거 같았다.

“1234님. 이제 어떻게 하실 거예요?”

스타로드가 아래쪽의 상황을 보고 물어왔다. 여기에서 강현이 선택할 수 있는 건 세 가지. 미국팀이나 그레이팀 어느 하나를 돕거나 아니면 어느 쪽도 돕지 않고 관망하거나.

강현이 금방 그레이팀의 기습을 예상했다고 생각한 덕분인지 모두 강현이 어떤 결정을 내릴지 기대에 찬 눈빛으로 쳐다봤다. 강현은 부담감을 느끼면서 간신히 입을 뗐다.

============================ 작품 후기 ============================

항상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ㅁ;/

오늘도 파이팅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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